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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4.19 성경인물 20. 요셉 - 바로앞에서, 하나님앞에서
  2. 2012.03.07 성경인물 20. 요셉 -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감옥생활
  3. 2011.12.14 성경인물 20. 요셉 - 어린시절과 보디발의 집에서
  4. 2011.10.26 성경인물 19. 유다 - 야곱의 아들, 통치자의 지팡이
  5. 2011.10.19 성경인물 18. 르우벤 - 야곱의 큰 아들

성경인물 20. 요셉 - 바로앞에서, 하나님앞에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2. 4. 19. 19:20

 [요셉에게 2년은?]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 41:1)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만 이년 후에 → 직역 ‘그리고 그것은 만 2년의 끝으로부터 있었다.’

→ 술관원장의 복직 이후 꽉찬 2년이 지났고, 그때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한다.


▷ 요셉에게 2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 배경1, 술관원장의 꿈을 해석한 후 부탁한다.

(창 40:14-15)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배경2, 그런데 술관원장은 잊는다. 그리고 2년후 기억한다.(41:9-13)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 요셉의 심리는?

→ 기대에서 포기와 수용까지 어떤 과정을 보냈을까?

→ 퀴블러-로스(Kubler-Ross) 5단계 - 부정단계, 분노단계, 타협단계, 우울단계, 수용단계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6)는 자신이 중풍병으로 죽기 전에 자기 인생을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고백했다. “절망 속에서 속히 빠져 나오려고 하지 마라. 절망하려면 100% 절망하라. 철저하게 절망하면 앞이 보인다. 완전히 절망하라,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되고 생활 여건이 좋아져도 인간으로써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Elizabeth Kubler-Ross는 노화든 질병으로든 죽음을 앞두게 되면 몇 가지 심리적인 단계적 적응 과정을 보인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심리를 바라본 것이기에 매정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과정을 앎으로 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을 심리적으로 편안하게 해주고 죽음을 편안하게 맞도록 도와주기 위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단계. 충격과 부정 (Shock and Denial) 죽음이 앞에 왔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은 충격을 받게 된다. 또한 믿지 않으려고 하며 진단 과정이 잘못되었거나 그 외에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2단계. 분노 (Anger) 죽음을 확인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단계로 '왜 내가 죽어야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인다. 신(God)을 원망하고 운명을 저주하고 가족 친구 의사 병원 등 주위 상황에 대해서 화를 낸다.

3단계. 타협 (Bargaining) 신(GOD)과 타협하려고 하거나 입원 중일 경우 의사, 가족 등과 타협하려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죽지 않을까?'를 고민하며 종교 단체 등에 헌금을 하거나 마음속으로 다짐과 약속을 한다.

4단계. 우울 (Depression) 타협으로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에 우울해하고 위축되며 자살도 고려한다.

5단계. 받아들임 (Acceptance)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단계로 용기있게 죽음과 사후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때 종교적인 신앙이 큰 힘이 된다.

→ 웨스트버그(Westberg) 10단계 - 충격과 부정단계, 감정분출단계, 분노단계, 질병유발단계, 고통단계, 죄책감 단계, 우울과 외로움 단계, 어려움에의 재봉착단계, 희망단계, 현실확신단계

▹ 요셉에게 술관원장은 어떻게 보였을까?

⇒ 요셉 스스로가 2년의 시간을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그 기간에 요셉은 성장을 선택했다.

cf. 술관원장은 외상의 반복?

▹ 만약 요셉에게 2년의 시기 없이 술관원장이 도움을 주었다면?

⇒ 요셉의 근시안적인 바램과 2년 뒤의 준비된 은혜는 달랐다. 실제로 기억하고 풀어줄 사람은 술관원장이 아니라 꿈을 통해 연결된 바로였다.


▷ 기억의 차이

(자카르) 표하다, 기억하다, 언급하다

(창 40:14-15)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창 41: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 요셉은 자기를 기억해달라 하고 술관원장은 복직의 과정에서 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준비된 은혜 속에서 기억할리 없는 기억을 나게 하며 요셉에게 응답과 다음을 준비하신다.


▷ 술관원장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왜 도움을 받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다가 바로의 꿈을 통해 기억하고 바로에게 말하는가?

→ 그가 요셉을 기억할 필요가 있었을까? 도움을 받았다고 바로 요셉을 풀어주려고 바로에게 말할 수 있었을까?

1. 꿈꾼 바로의 번민에서 자신을 본다.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40: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2.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나게 한다.

(창 41:9-10)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 그가 왕에게 자신의 과거의 죄를 말한다는 것은?

→ 이제는 요셉의 부탁대로 바로에게 말할 명분이 생겼다.

3.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창 41:11-13)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 꿈을 꾸었고, 히브리청년이 해석해주었고, 해석대로 되었다.

→ 무엇을 제안하거나 강요하지도 않고 자신의 경험을 나눌뿐이다. 선택은 바로에게 있다.

4. 그가 잊고 있는 것, 해석은 하나님에게 있다.

- 술관원장에게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 바로에게 (창 41:25,28)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 요셉의 예언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응답으로 고백하고 있다.


[정리]

수없이 많은 시대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보며 자신의 삶과 연결시켰을까?

2년의 시간동안 요셉의 선택은? 기다림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다.

2년의 시간동안 하나님의 은혜는? 준비된 은혜이다.


[창세기 41:1,25,28 요셉에게 2년은? 준비된 은혜!]

(창세기 41:1,25,28)『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막 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 41:1)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 40:14-15)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1. 꿈꾼 바로의 번민에서 자신을 본다.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40: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2. 그것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나게 한다.

(창 41:9-10)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3. 자신의 경험을 나눈다.  (창 41:11-13)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4. 그가 잊고 있는 것, 해석은 하나님에게 있다.

- 술관원장에게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 바로에게 (창 41:25,28)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 기억의 법칙 (자카르) 표하다, 기억하다, 언급하다

1. 요셉은 자기를 기억해달라고 사람에게 부탁했다.

(창 40:14-15)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2. 사람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다.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3. 하지만 하나님이 기억나게 하신다.

(창 41: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바로의 불안과 요셉의 샬롬]

 

▷ 바로의 꿈과 불안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 41:1) 『그로부터 만 이 년이 지나서 바로가 꿈을 꾸었다.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바로가 꿈을 꾼즉 : 바로가 꿈을 꾸었다는 것을 진행형으로 묘사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

→ 애굽 제12왕조의 최후의 왕인 아메넴하 3세(Amenemmah III, BC 1885년경)로 추정.

-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 나일강은 아프라카 동부에서 발원하여 지중해로 흘러가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6,400km), 애굽전역의 농업과 상업, 종교적 영감을 주는 애굽에게는 생명과 같은 강이다.


* 첫 번째 꿈 :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 vs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

(창 41:2-4)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 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 고대 이집트에서 ‘암소’는 농업에 중요한 가축이며, 대양과 달의 신인 이시스(Isis)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이다.

-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 연례적으로 범람하여 강유역을 기름진 땅으로 만드는 자연현상을 연상하게 한다.

→ 일곱 암소 : 일곱 번의 범람으로 7년을 의미할 수 있다.

-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 나일강의 범람이 이전과는 다른 7번의 범람, 즉 심각한 가뭄을 예상하게 된다.

-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 시각적으로, 큰 풍년과 처참한 기근을 대조적으로

-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 지라 :


* 두 번째 꿈 :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 vs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

(창 41:5-7)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 이삭 : 이집트는 BC 5000년 경 나일강 유역에 정착할 때부터 수량이 풍부한 나일 강 유역에서 농사를 지은 전형적인 농업국가로 발전해왔다.

- 동풍(카딤) : 거칠고 건조한 사막의 바람, 애굽에서는 캄신바람


▷ 꿈의 구조와 대칭

a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 vs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

b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 vs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

c 먹은지라 vs 삼킨지라

→ 원어에서는 단어수와 문장의 위치까지 완전한 대칭과 은율,

→ 소와 이삭이라는 단순한 이미지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풍년과 흉년을 잘 형성화


▷ 바로의 불안을 느끼게 하는 표현

- 먹은지라(아칼) 대개의 경우 음식물을 먹는 것에 사용

- 삼킨지라(빨라) ‘삼키다’의 의미와 ‘멸하다, 죽이다’

⇒ 먹은지라 → 삼킨지라 : 단순한 ‘먹다’에서 ‘멸망’의 의미를 가진 차별성있는 단어를 사용

cf. 바로가 직접 꿈 이야기를 할 때도 동일한 단어를 사용한다.(20,24)


(창 41:4b-5a) 『[4] ..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

(창 41:4b-5a) 『[4] .. 바로는 잠에서 깨어났다. [5] 그가 다시 잠들어서 또 꿈을 꾸었다. ..』

→ 바로는 첫째 꿈에서 놀래서 깼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잠이 들어 같은 꿈을 꾼다.

(창 41:7b) 『.. 바로가 깬즉 꿈이라』

(창 41:7b) 『.. 바로가 깨어나 보니, 꿈이다.』

→ 바로가 깼을 때 꿈이란 것을 알았다.

⇒ 잠에서 깰 정도로의 꿈을 꾼 바로의 마음은 놀래고 불안 공포로 이어지고 해석할 자를 찾는다.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 직역 ‘그의 영혼이 괴로웠다’

→ 그는 자신이 꾼 꿈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워하며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 꿈으로 인해 불안을 느낀 바로는

cf. 술관원장과 떡관원장도 꿈을 꾸고 불안해 했었다.

(창 40: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이집트의 모든 지혜자들은 바로의 불안을 해결할 만큼 해석을 하지 못하고 있다.


* 41:9-13 술관원장의 기억과 추천


▷ 요셉을 부르다. 바로 앞에 서는 요셉

(창 41: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 .. 보내어 .. 부르매 .. 옥에서 내 놓은지라 .. 수염을 깎고 .. 옷을 갈아 입고  .. 바로에게 들어가니 → 6개의 동사를 사용함으로 요셉이 왕 앞에 서게된 과정이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cf. 수염과 옷 : 당시 이집트사람들은 수염을 깎는 것이 일반적이나 셈족은 턱수염을 길렀다. 겉옷은 죄수복이 아닌 이집트의 평상복으로 갈아 입는다.

cf.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立身行道 揚名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입신행도 양명후세 이현부모 효지종야)

[출처] 《효경》의 첫장인 <개종명의(開宗明義)>


Q. ‘구분 vs 분리’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인가?

cf. 불의 전차 에릭 리들 : 운동선수로서 주일성수 & 중국선교사


▷ 바로의 불안과 기대

(창 41:15) 『[15]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

cf. 술관원장의 표정에서 근심의 빛을 읽었던 요셉

(창 40:6-7) 『[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 바로는 능히 요셉을 꿈을 해석할 것으로 들었다고 하며 불안해소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다. cf. 바로는 술관원장에게서 하나님의 하신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 요셉의 대답과 고백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였다.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임금님께서 기뻐하실 대답은 하나님이 해주실 것입니다."』

- 내가 아니라 → 요셉은 해석의 능력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분명하게 말한다. 이는 바로의 기대와 평가를 거절하는 것이다.

cf (빌 4:13-14)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편안(쉘롬)

→ 요셉은 하나님이 주실 대답이 ‘평안’한 것임을 말한다.

cf.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평안한 언약의 관계 (민 25:12)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사 32: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1. 요셉의 대답은 술관원장 때와 마찬가지로 해석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한다.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2. 요셉의 고백은 하나님이 주시는 대답은 샬롬의 대답임을 강조한다.

3. 분리와 구분의 차이에서 요셉은 겉과 달리 속은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있다.

(창 41:25,28,32)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정리] 우리는 불안하다. 하나님은 편안한 대답을 준다.

 

[요셉의 고백과 하나님이 하실 일]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바로가 요셉에게 꿈을 이야기하다.

* 첫째 꿈 :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 vs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

(창 41:17-21) 『[17]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18] 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 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 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 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 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 꿈이야기를 하며 추가된 바로의 감정

① 그 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 바로는 꿈에서 본 느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고 가장 흉악한 것이라고 최상급의 표현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생생하게 나타낸다.

②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 흉악한 소가 살찐 소를 단숨에 먹었음에도 여전히 흉함에 대한 놀람을 표현한다.


* 둘째 꿈 :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 vs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

(창 41:22-24) 『[22] 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 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 다시 꿈에 보니 : 직역 ‘그리고 내가 나의 꿈 속에서 보았다. 그리고 보라!’

- 꿈의 내용은 5-7절의 내용과 동일

-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cf.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바로는 자신의 꿈을 어떤 신적인 존재로부터 온 특별한 의미를 가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는 꿈을 요셉이 해석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 요셉의 고백과 해석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두번 꾸신 꿈의 내용은 다 같은 것입니다. 임금님께서 장차 하셔야 할 일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입니다.』

-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 : (에카드) 아카드에서 유래한 수사. ‘통일된, 하나, 첫째의’

cf. (아카드) 통일시키다, (상징적으로 생각을) 모으다

cf. 요셉의 꿈의 특징은 모두 두 번씩이다. 이는 분명하게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 하나님(엘로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 이집트의 신이 아닌 하나님 하심을 말한다.

cf. 포로기에 이 내용을 보았다면 유대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 하실 일(아샤), 행하다, 만들다. (넓은 의미로 다양하게 사용되는 단어) 달성하다, 전진하다, 지정하다, 적합하다. ~이 되다, 실시하다, 실행하다, 다루다, 꾸미다, 성취하다, 제공하다, 모으다, 얻다, 배회하다, 다스리다, 주다, 반기다, 절기를 지키다, 근면하다, 여행하다, 지키다, 노동하다, 유지하다, 만들다, 관찰하다, 점령되다, 제공하다, 껍질을 벗기다, 일으키다(발생하다), 수행하다, 행하다, 준비하다, 획득하다, 공급하다, 두다, 갚다, 섬기다, 놓다, 보다, 소비하다, 전적으로 가지다, 다듬다, 용사가 되다, 일하다(노동자), 산출하다, 쓰다

 

빠라()

아사(השׂע)

의미

1. 오직 하나님과만 관련되어 쓰이며, 이전과는 자르듯이 완전히 단절된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드시고 또 있게 하시는 하나님만의 절대 주권적 행위를 나타낸다.

2. 무에서 유로 존재하게 하심

이미 있는 기존 재료를 이용하여 어떤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것

영어

create

make

구절

신 4:32, 시89:12, 사43:1, 렘 31:22

창8:6, 13:4, 출5:16

1절-무에서 유로 우주의 모든 물질을 지음

21절-기존 물질의 물리적 조합만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생명을 만드심

27절-흙에서 나온 여러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와 완전 분리된 것으로서 인격의 근본적 주체인 영혼을 지어내심

7절-궁창을 만드시고,

16절-하늘의 궁창에 해 달 별을 만드실 때

 

야차르(רצי)

빠나(הנב)

의미

토기장이가 흙으로 토기를 만들 듯이 주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기술과 결과를 강조하는 말로서 기존 재료로 새로운 모양을 꾸며내는 것

어떤 물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주로 강조하는 것으로서 벽돌로 성벽을 쌓는 것과 같이 새로운 물건을 차근차근 지어내는 행동

영어

form

build

구절

시95:5, 사29:16, 44:10

창11:5, 민32:37

2:7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흙이란 재료를 사용하여 지음

2:19 역시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지었음을 묘사

2:22 아담의 갈빗대를 사용하여 여자를 만드심

“만들다, 지어내다”-아사(השׂע) 야차르(רצי) 빠나(הנב)


(창 41:26-31)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 해석 : 일곱 암소와 일곱이삭은 일곱해, 칠년 풍년에 이어 칠년 흉년

- 고백 :  “그 꿈은 하나라. ...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 요셉은 해석에도 동일한 고백을 하고 있다.


▷ 요셉의 확신과 대안

(창 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창 41:32) 『임금님께서 같은 꿈을 두 번이나 거듭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시기로 이미 결정하시고, 그 일을 꼭 그대로 하시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 정하셨다 : (쿤) ‘세워지다’(즉, 수직으로 서있다), 세우다, 고정하다, 준비하다, 적용하다, 지정하다, 확실하게 하다, 확정하다, 고정되다, 적합하다, 형성하다, 적당하다, 제정하다, 명하다,완전한, 채비하다, 제공하다, (똑바로, 굳게, 앞에)세우다, 안정하다, 세우다(튼튼히 하다), 서있다, 지체하다

→ 하나님이 특별히 준비하신 일이므로 확실하게 시행하실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 행하시리니 : 25절의 (아샤)와 동일한 단어.


(창 41:33-36)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정리 및 질문]

Q.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이렇게 확고하게 말할 수 있게 했을까? 하나님이 정하신 일을 고백하는 요셉은 꿈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하고 하나님이 하실 것을 준비케 한다.


 

[요셉의 준비와 하나님의 준비]


(창 41:25-31) 『[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한 일곱 소는 칠 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 [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그 기근으로 망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

* 바로의 꿈 해석요약

① 두꿈은 하나이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보이신 것이다.

② 일곱은 7년으로 7년 풍년이후 7년 흉년이 이어진다.

③ 7년흉년이 너무 심해 엄청난 재앙이 될것을 강조한다.


▷ 하나님의 뜻(의지)를 파악한 요셉

(창 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 정하셨다 : כּוּן(쿤) ‘세워지다’(즉, 수직으로 서있다), 고정하다, 준비하다, 적용하다,

→ 하나님이 특별히 준비하시고 정하신 것은?

→ 요셉이 안 것은?

→ 요셉의 고백은? 하나님은 정하신 일을 행하신다.


▷ 요셉의 제안과 바로의 할일

(창 41:33-36)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35]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 이제 : ‘그러므로 지금’이란 의미로 바로의 꿈에 대한 해석을 마친 요셉은 지금부터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바로에게 설명하기 위해 주의를 집중시킨다.

① 보라, 찾으라 - 바로께서는 ... 택하여 : 라아()의 일차적 의미 ‘보다’, 더 나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세밀히 ‘살피다’, 여기에서는 ‘관심을 가지고 위기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라’는 의미. 요셉은 바로에게 어떤 사람을 등용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역량을 세밀히 살펴야 한다는 조언까지 한다.

-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 명철하고(삔-분명하다, 이해하다, 지혜롭다 노련하다), 지혜있는(하캄-단순한 지적인 능력을 넘어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남을 의미)

→ 이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구분과 상황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위기에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요셉의 말처럼 ‘사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상황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② 임명하라 -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 다스리게(쉬트, 놓다 적용하다 임명하다 배열하다.)

③ 일하라 -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 아샤() → 바로가 일할 방향을 알려준다.

④ 관리자를 세우라 - 나라 안에 감독관들을 두어 : 직역 ‘그리고 살피는 자들을 살피게 하라’

→ 파카드() (기본적으로는) 방문하다, (유추적으로) 감독하다. 이는 군림하는 관리가 아니라 돌보고 바로와 백성을 위해 정책을 펼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⑤ 세금을 거두고 잘 보관하라 -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 하마쉬() 5분의1을 징수하다

- 그들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 콰바츠() 붙잡다, 모으다.

⑥ 권한 아래 두라 -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 7년풍년의 세금을 거두어 바로의 권위와 통제 아래 두라

⑦ 쌓고 지키라 - 양식을 위하여 각 성읍에 쌓아 두게 하소서. : 차바르() 집합하다, 쌓아올리다, 쌓아두다

- (지키게) 하소서 : 샤마르()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보호하다

→ 곡식을 저장하고 지켜서 상하거나 도난당하지 않도록 흉년을 준비케 하라는 요셉의 제안

-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 ‘저장하여’는 관리감독의 의미

⇒ 결론 → 왕은 이렇게 대비하면 망하지 않는다.

-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에 대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아니하리이다. : 망하다(카라트)는 ‘자르다, 베어내다, 함축적으로‘파괴하다, 소멸시키다, 언약을 맺다

→ 공동체의 규율을 위배하거나 도덕적 혹은 종교적 죄를 범한 사람이 그 공동체로부터 배제당할 때 쓰는 용어.


Q. 요셉은 간접적으로 명령을 하고 있다. 요셉은 일개 죄수이고 이방인인데 신으로 추앙받는 바로에게 명령할 수 있을까? → 바로의 꿈을 해석해줄 어떤 지혜자도 없었다. 지혜자의 조언은 신탁과 같게 느껴졌을 것이다.

Q.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집트에 아무도 그런 자는 없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런 사람으로 10여년간 훈련받아왔다. 노예와 죄수로 밑바닥부터 실무경험을 쌓은 사람이다. 예를 들어 1/5을 거두라고 말할 정도로 이집트의 정책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 즉 요셉은 다가올 위기를 예고하고 장기간 그것을 극복할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준비할 수 있는 지혜로운 지도자이다.


▷바로의 반응과 임명

(창 41: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창 41:37) 『바로와 모든 신하들은 이 제안을 좋게 여겼다.』

→ 그 계획을 좋게 여긴 것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실행에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의미이다.

cf. 요셉의 제안이 명철하고 지혜로울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창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창 41:38) 『바로가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을, 이 사람 말고, 어디에서 또 찾을수 있겠느냐?"』

→ 다신론적 이해를 갖고 있는 바로는 요셉의 조언을 신에게서 온 것으로 받아들인다.


(창 41:39-41)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창 41:39-41) 『[39]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하나님이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알리셨는데, 너처럼 명철하고 슬기로운 사람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 [40] 네가 나의 집을 다스리는 책임자가 되어라. 나의 모든 백성은 너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내가 너보다 높다는 것은,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를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운다."』

- 보이셨으니 → 하나님이 요셉에게 철저하게 알게 하셨다는 의미. 바로의 이해와 고백은 요셉의 해석과 방책이 요셉이 믿는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본다.

-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 바로가 준 첫 번째 권한(입법의 권한). 이집트의 모든 관리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앉게 하여 앞으로 닥칠 위기를 준비케 한다.

cf. 집(빼트)-요셉에게는 3개의 집이 있다. 보디발의 집(39:2), 감옥(39:20), 이집트전체(41:40)

-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 바로가 준 두 번째 권한이자 책임(관리의 의무)

→ 직역 ‘내가 이집트 온 땅 위에 너를 두었다’ 즉 바로가 요셉에게 온 애굽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지위를 주었다는 의미.

cf. 관리자로 세워지는 경험-보디발과 감옥에서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창 41:42) 『그렇게 말하면서, 바로는 손가락에 끼고 있는 옥새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고운 모시 옷을 입히고, 금목걸이를 목에다 걸어 주었다.』

cf. 요셉의 손 : 보디발, 간수장, 바로에게서

- 자기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 반지에는 소유자의 이름이나 상징이 새겨져 있다. 이는 소유자의 권한을 대신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의미다. 곧 바로가 요셉에게 칙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했다는 의미이다.

-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 요셉이 죄수의 신분에서 바로의 대리자로 신분이 변화됨을 보여주고, 금목걸이는 바로가 요셉에게 직접 명예와 권세를 준다는 의미이다.


(창 41: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창 41:43) 『그런 다음에, 또 자기의 병거에 버금가는 병거에 요셉을 태우니, 사람들이 "물러나거라!" 하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바로는 요셉을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웠다.』

- 버금 수레 : 두 번째 수레로 애굽의 2인자라는 사실을 모든 이집트인들에게 보여주는 것.

cf. 요셉의 꿈(37장)대로 모두가 절하는 모습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창 41:44)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창 41:44)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였다. "나는 바로다. 이집트 온 땅에서 총리의 허락이 없이는 어느 누구도 손 하나 발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 나는 바로라 : ‘나는 이집트의 유일한 왕이다’는 의미.

-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 모든 행정의 결재권을 요셉에게 주고 있다.


(창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창 41:45) 『바로는 요셉에게 시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이스낫과 결혼을 결혼을 시켰다. 요셉이 이집트 땅을 순찰하러 나섰다.』

- 사브낫바네아 : ‘그 신이 말한다. 그리고 그가 산다’ ‘신이 말했다. 그가 살 것이다’ ‘사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 그 사람’ ‘생명의 지탱자’ ‘그 땅의 자양분은 살아 있는 것이다’는 의미 → 곧 이집트의 생명, 운명을 맡은 사람이란 의미이다.

→ 요셉을 이집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 이름을 바꾸고 지도층인 제사장의 딸과 결혼시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이집트인으로 대우하고 상류층에 속하게 하는 것이다.


[정리]

요셉의 준비는 곧 하나님의 준비였다. 나의 준비는 곧 하나님의 준비하심이어야 한다.

cf. 포로기에 요셉의 손에 맡겨진 것을 읽으며 이스라엘은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라 6:22)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건축하는 그들의 손을 힘있게

 

[요셉의 성실, 대비, 그리고 고백]

▷ 요셉의 성실

(창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 삼십세 : 어린 나이에 팔려와 종과 죄수로 13년의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가정총무로 재정과 행정실무를, 감옥에서 이집트 고위층을 만나 정치 경제 문화 등을 배웠다. 이기간은 하나님이 요셉을 훈련시키는 시간이었다.

cf. 30세-예수님의 공생애 시작(눅 3:23), 레위인의 공직 시작(민4장), 다윗이 유다왕이 되었을 때

(민 4:3) 『곧 삼십 세 이상으로 오십 세까지 회막의 일을 하기 위하여 그 역사에 참가할 만한 모든 자를 계수하라』

(삼하 5:4) 『다윗이 삼십 세에 위에 나아가서 사십 년을 다스렸으되』

(삼하 2: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


-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

→ 떠나 - (야차) 나가다,  순찰하니 - (아바르) 건너가다(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됨)

cf. (창 41:45) 『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야차)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 이집트 전역을 돌며 풍년과 흉년을 관리한다. 요셉은 집무실에 있거나 권한과 명예로 교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이다.

cf. 요셉의 성실은 어디서 왔을까?


(창 41:47) 『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창 41:47) 『풍년을 이룬 일곱 해 동안에 땅에서 생산된 것은 대단히 많았다.』

→ 거두어 들인 곡식이 차고 넘치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대로 7년의 풍년이 온 땅에 계속 되었다.


▷ 요셉의 철저한 대비

(창 41:48-49) 『[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 저장하다, 쌓아두다. : 앞으로 닥칠 7년의 흉년을 철저히 계획적으로 대비하는 요셉의 준비를 볼 수 있다.

- 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 이집트에 임한 풍년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수사적인 표현

cf. 요셉의 대비와 하나님도 다가올 재난을 준비케 하시고, 야곱의 가족을 민족으로 만들 대비를 하고 계신다.

Q. 우리의 준비는 하나님의 어떤 준비와 관련이 있을까? 창세기를 읽는 이스라엘은 그들의 삶과 준비를 어떻게 하나님과 관련할까?


▷ 요셉의 두 아들과 고백

(창 41:50-52) 『[50] 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 흉년이 들기 전에 : 풍년의 시간 동안에 아들이 출생한다.

- 므낫세 =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 ‘잊게 하는 자’, 요셉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으로 승화됨을 고백한다.

- 에브라임 =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 갑절로 열매를 맺다의 의미

⇒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므낫세를 통해 과거에 초점을, 에브라임을 통해 현재에 초점을 둔다.

- 나의 수고한 땅에서 - 직역 ‘나의 고통의 땅 안에서’

→ 요셉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 이집트의 온땅을 돌고 있는 요셉에게 과거의 그 땅은 고통의 땅이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요셉은 그 땅을 억지로 ‘약속의 땅’이라고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억압 해리하지 않는다. 그 고통의 땅에서 하나님이 번성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cf. 고통(오니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받았던 고통을 표현할 때도 쓰였다.

(출 3: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출 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면』

(출 4:31)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신 26: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 요셉의 고통과 고백은 그것을 보는 이스라엘 후손에게 삶을 보게 하는 시각이 된다.

cf. 요셉의 고통을 보며, 이집트에서의 고통을 보며, 바벨론의 포로의 삶을 보며.. 그리고 내 삶에 고통을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며..


▷ 요셉과 하나님의 준비대로 되다.

(창 41:53-54) 『[53] 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 그치고 ~ 시작하매 :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닌 하나님이 약속하신 풍년기간이 끝나고 다음으로 이어짐을 표현한다.

- 요셉의 말과 같이

→ 1. 기자가 보기에 ‘요셉의 말과 같이’ 되었다는 것, 2. 요셉은 자신의 확신대로 진행하였다.

-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Q. 왜 가나안에서는 흉년을 준비할 수 없었을까? 요셉은 이집트에서 준비하지만 야곱의 가족은 가나안에서 준비하지 못했을까?


(창 41:55) 『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리라.』

→ 바로는 모든 식량판매의 재량권을 요셉에게 주었다. 바로는 곡식을 모으는 일뿐 아니라 나누는 일까지 요셉에게 맡겼다. 결국 요셉은 이집트와 인근국가의 운명도 영향을 주는 자가 되었다.


(창 41:56-57)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 기근이 시작되고 각국의 백성들은 양식을 사러 이집트로 온다.


[정리]

요셉의 삶은 하나님의 준비와 인도 안에 있었다.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정이 하나님의 어떤 준비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좋으나 나쁘나 동일하게 성실하다.

요셉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을 고백한다.

 

[창세기 41:1,16,56,57  하나님의 샬롬과 준비를 보라]

(창 41:1,16,56,57)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눅 15:17-19) 『[17]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꾼들에게는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에게 들어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하겠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19] 나는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으로 삼아 주십시오.』


(눅 15:28-32)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내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기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 아니냐? [32]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하였다."』


(계 3:7-8)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 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41: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창 41:56-57)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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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20. 요셉 - 하나님이 함께 하는 감옥생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2. 3. 7. 17:26
[요셉의 감옥생활과 형통함]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 옥(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 : ‘둥근 집’이란 의미. ex)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 가두니 : 죄목은 형벌이 사형에 해당. 흥분된 상황에서도 바른 경계선을 보이는 보디발의 모습


Q. 상황에 대한 질문.

1. 어떻게 요셉은 다른 집이 아닌

2. 아무리 바른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3. 웅덩이에 빠졌던 요셉이 노예가 되듯

⇒ 요셉을 훈련시키는 하나님이 뜻과 인도


Q. 요셉은 모든 과정에서, 자기 앞에 있는 권위자(집, 노예, 감옥, 바로왕)에게, 일관된 모습

1. 그는 모든 것을 아픔을 잊는 사람인가?  (창 41: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2. 그는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고백

a. 보디발의 집에서 (창 39:9)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b. 감옥에서 (창 40:8)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c. 바로 앞에서 (창 41:16) 『..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창 41:25) 『..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 41:28) 『..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창 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d. 자녀를 얻을 때, (창 41: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창 41: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e. 형제들 앞에서, (창 45:7-9)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아뢰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지체 말고 내게로 내려오사』

3. 그중에 가장 특징적인 모습은?

a. 보디발이 보다.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b. 간수장이 보다.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c. 바로가 보다. (창 41:38-39)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cf. Hartmann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 3가지

a. 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autoplastic)

b. 환경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allplastic)

c. 좀더 호의적인 환경을 찾는 것

→ 요셉은 이 모든 방식을 그의 삶에 적용한다.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장소(가나안, 보디발의 집, 감옥)는 변하지만

-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 직역 ‘그러자 그분은 그에게 인자를 더하였다’

→ 주체는 하나님

cf. 우리가 원하는 것은?

→ 그 결과 환경이?

- 간수장 :

-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창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 손에 맡기므로 →

cf. 요셉이 죄수로만 있다면?

cf. 보디발의 집에서도 동일하게 위임받았었다.

(창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 요셉은 보디발에 이어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간수장이 모든 것을 맡긴 이유는?

cf. 보디발은 그런 모습을 본다. (창 39:5) 『..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형통하게’는 찰라흐()의 사역형으로 ‘번성하게 하다, 번영을 체험하다’의 의미로,


▷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동일한 과정

1. 하나님이

2. 하나님이

3. 그런 요셉을

Q.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는가?

1. 어려운 환경 속에서

2. 아버지의 삶의 모습과 고백은?

3. 채색옷은 요셉에게 관리자가 되는 꿈이 되었다. 채색옷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창 37:3-5)

⇒ 요셉의 관리자의 꿈과 삶은 계속된다.


[정리]

① 형제들의 시기로 이집트의 노예가 된, 여주인의 모함으로 감옥의 죄수가 된 요셉

② 요셉은 웅덩이에 이어 감옥에 갇히면서도 어떻게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③ 요셉은 여전히 성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④ 보디발과 간수장은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본다.

⑤ 이런 가운데 요셉의 관리자로서 꿈과 삶은 계속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요셉의 감옥생활]


(창 40:1)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창 40:1)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이집트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그들의 상전인 이집트 왕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 그 후에 : 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cf. (창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 우리의 삶에도 매일 똑같을 것같지만 ‘그 후에’(이런 일들이 있은 지 얼마 뒤에) 무엇인가 새롭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기 마련이다. 요셉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 왕의 식사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자, 절대권력자인 왕의 심복이고 큰 권력을 지닌 자들이다.

→ 그런 그들이 ‘범죄하였다’ 자신의 맡은 일에서 어긋난 어떤 일을 하거나 누명을 씀?

Q. 그렇다면 그 범죄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창 40:2)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창 40:2) 『바로가 그 두 시종장, 곧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에게 노하셔서,』

- 바로가 ... 노하여 →

cf. 요셉이 감옥에 들어온 것도 부인의 이야기를 들은 보디발의 분노 때문이다.

(창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40:2은 (카차프) - 짝 갈라지다, 금가다, 즉(상징적으로는)분노로 격동하다, 불쾌하게 하다

39:19은 (아프) - 코, 콧구멍, 얼굴, 사람, 분노, 노하

(창 41: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Q. 이렇게 왕의 분노를 사서 감옥에 들어오게 된 두 관원장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창 40:3)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창 40:3) 『그들을 경호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힌 감옥이었다.』

-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 cf.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창 39:20)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 곧 이 감옥은 두가지 특징이 있다. 친위대장의 집에 있으며,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라는 것.

cf. 요셉은 왜 일반감옥이 아닌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에 있게 되었을까? 다르게 질문하면 보디발은 왜 그를 일반감옥에 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 있는 감옥에 보냈을까?

1. 감옥이라기 보다는 보디발이 부인을 피해서 인사대기발령인가? 다만 신분은 죄인이다.

2. 보디발은 잠시 분노는 했지만 계속해서 요셉을 신뢰하고 옆에 있게 하고 싶었다.

3. 하나님은 이런 과정을 다음을 준비하는 곳에 있게 한다.


(창 40:4)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창 40:4) 『경호대장이 요셉을 시켜서 그 시종장들의 시중을 들게 하였으므로 요셉이 그들을 받들었다. 그들이 갇힌 지 얼마 뒤에,』

⇒ 요셉에게 그들의 수종을 들게 한 이유는?

1. 보디발의 일은 그들을 관리하는 것이다.

2. 보디발은 그런 그들에게 완전히 죄인으로 대우할 수는 없다.

3. 요셉을 선택한 것은 보디발이 요셉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 그들이 갇힌 지 여러 날이라. → 막연한 기간에 대한 관용적 표현으로

1. 이렇게 시간을 말하는 것은 다음의 무슨 일이 있음을 예상하게 한다.

2. 이 여러날은 요셉과 그들의 관계가 가까워지게 하는 시간적 상황이다.


(창 40:5)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창 40:5) 『감옥에 갇힌 두 사람, 곧 이집트 왕에게 술잔을 올리는 시종장과 빵을 구워 올리는 시종장이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의 내용이 저마다 달랐다.』

→ 두 사람은 같은 것을 한다. 그런데 그 내용은 다르다.


(창 40:6)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창 40:6) 『다음날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갔는데 요셉은 그들에게 근심스런 빛이 있음을 보았다.』

→ 요셉의 성실함을 보여준다.

1.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부지런함을 보여준다.

2. 그들 방에 들어가 그들을 수종한다. 맡겨진 일에 성실하다.

3. 그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을 본다.


(창 40:7)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

(창 40:7) 『그래서 요셉은 자기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두 시종장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 그들의 신분의 차이는 크다. 함께 감옥에 있다고 해서 같은 상황은 아니다.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 40: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나에게 말씀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 그들의 근심은 꿈에 있었다. 그것을 해석하고자 원하지만 해석할 사람이 없어 근심하고 있다.

1. 애굽인의 믿음? 잠은 우리로 하여금 죽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신들이 거하는 다른 세계와 실제로 그리고 직접 접촉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꿈은 신들로부터 오는 선물이라고

2. 만약 그들이 밖에 있다면 해몽을 쉽게 들었을 것이다.

3. 고대이집트에서 꿈해석의 기법은 배우는 것이고, 학문적 대가로 행세할 수 있었다.

cf. 바로가 소 꿈을 꾼 후에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 그러나 요셉에게 꿈해석은 인간적인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다.

cf.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cf. (단 2:26-28) 『[26]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하니 [27]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지혜자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쟁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28]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리 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

⇒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만 해석할 수 있다는 요셉의 고백은 위험한 발언이다.

1. 당시 제국의 군주들은 지식을 독식하고 싶어 한다.

2. 당시의 왕은 신의 대리자이다.

3. 이런 인식으로 본다면 평상시 같아서는 굉장히 긴장할 수 있는 상황

4. 요셉이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한다.

5. 요셉은 단호하게 말한다.

cf. (마 21:23-24)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정리]

① 요셉의 감옥생활은 보디발이 준 것으로 하나님의 다음준비이다.

② 요셉은 감옥에서도 성실하며 그 성실은 하나님 안에서 이다.

③ 요셉의 고백은 감옥보다 더 위험할 수 있으나 흔들림이 없이 단호하다.

④ 요셉의 단호함은 다음을 준비하게 한다.


 [요셉의 꿈해석-다음을 위한 준비와 기대]

▷ 요셉의 인생에서 3가지꿈

1. 어릴적 자신이 꾼 꿈 →

2. 감옥에서 두 신하가 꾼 꿈 →

3. 바로가 꾼 꿈 →

⇒ 특징

1. 순환적, 확대적이다.

2. 단순히 개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야곱의 가족이 민족이 되게 하는 과정이다.

3. 그 중심에는 하나님 안에 있는 요셉의 고백이 있다. (창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4. 이스라엘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술관원장의 꿈 vs 떡관원장의 꿈

(창 40:9-11)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 술관원장의 꿈은?

▷ 3이라는 숫자

1. 세가지에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는 성장의 세단계

2. 포도를 따다가 그 즙을 짜서 포도주를 바로에게 올리는 술장관의 세가지 행동


(창 40:16-17)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 술관원장 꿈은?


▷ 공통점? vs 차이점?

1. 자신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 꿈이다. vs 꿈의 내용과 꿈에서 결과가 다르다.

2. 꿈의 형식은 같다. vs 꿈 이야기를 하는 과정이, 해석이 다르다.


* 요셉의 해석

- 술관원장의 꿈 해석

(창 40:12-13)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 머리를 들고, 전직을 회복하고, 전에 하던 것같이 :


- 떡관원장의 꿈 해석

(창 40:18-19)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 이번에도 요셉의 해석은 거침이 없다.

-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 13절은 복직을 의미하나, 여기는 참수형을 의미한다.


* 꿈에 대한 요셉의 반응

- 술관원장의 꿈에 대한 반응

(창 40:14-15) 『[14]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당신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

-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

-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

-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

cf. 술떡관원장은 범죄하고 바로의 분노를 사서 감옥에 왔다. 범죄의 내용은 없지만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있듯이 술관원장도 억울하였을까?

- 떡관원장에 대한 반응 : 술관원장의 반응과 달리 아무것도 없다.


* 이후의 이야기

(창 40: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

- 머리를 들게 하니라 : 13,19절의 표현과 같다.


(창 40:21-22)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


(창 40: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 술관원장은 잊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 요셉의 꿈해석의 특징

1. 하나님에게 있다고 고백한다. (창 40:8)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2. 분명하게 말한다.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해석을, 그래서 틀리면 변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ex) 세 가지와 세 광주리는 3일이다.


* 요셉의 해석에 도움을 주었을 상황-상상

1.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창 40:20) : 요셉이 단호하게 3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3일뒤 바로의 생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2. 감옥의 모든 일을 요셉이 맡았다. 이는 두 관원장의 수종을 들면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창 39: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꿈의 의미와 정서]

 

▷ 요셉의 인생에서 3가지꿈 : 어릴적 자신이 꾼 꿈, 감옥에서 두 신하가 꾼 꿈, 바로가 꾼 꿈

* 술관원장의 꿈 vs 떡관원장의 꿈

(창 40:9-11)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창 40:16-17)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 여기서 느끼는 정서는? 소망과 불안

- 꿈 → 기억 → 전달 : 2차적 작업, 무의식이 검열을 통해 전의식에서 꿈으로, 꿈을 깨고 기억나는 것을 언어로

- 꿈꾸는 자는 잠재적 소망을 충족시키려하고, 쌓인 감정과 흥분을 풀고 갈등을 해소하고자 한다.


* 요셉의 해석

(창 40:12-13)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창 40:18-19)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 현대적인 꿈의 해석과는 다른 점이 많다.


▷ 꿈의 해석(1900)-프로이트의 저서. 꿈을 무의식의 표출로 해석해 정신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

▷ 꿈의 분석을 왜 하는가?

1. 노이로제를 치료하기 위해. 의미와 원인을 알기 위해, 무의식적 억압을 의식으로

2. 억압된 소망충족을 위해.

3. 최근의 경험과 과거의 체험이 합성.


▷ 꿈이란?

-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맛보게 되는 소원 성취로서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 꿈은 잠자는 동안 마음의 작용이며, 꿈의 목적은 외적 내적 자극을 처리하며 수면을 보호한다.

- 꿈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만 다만 꿈꾼 사람은 안다.

- 무의식의 것이 검열을 통해 전의식의 상태에서 시각화하여 나온다.

- 현재몽(발현몽) vs 잠재몽

  현재몽? 꿈을 꾼 사람이 기억하는 꿈의 내용(의식적)

  잠재몽? 꿈의 내용 이면에 감춰진 무의식적 의미(전의식과 무의식)

  잠재몽→현재몽 : 꿈의 작업

  현재몽→잠재몽 : 꿈의 해석


* 꿈의 작업은? 무의식에서 전의식으로 검열을 통해

1. 응축(Condensation) 하나의 사실에 여러가지 의미가 존재

2. 이동(Displacement) 이행치환으로 불리며 검열에 의해 대상이 바뀌는 현상

3. 시각화(Dramatization) 생각을 극적인 이야기로 바꾸는 작업

4. 상징화(Symbolization) 억압된 것이 다른 모습으로 모양을 바꿔 여러사람에게 공통으로 번역되는 꿈의 위치

5. 이차가공(Secondary Elaboration) 단편적인 꿈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도록 여러가지 각색과 스토리의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

cf. 무의식에서 전의식까지 올라오는 것(일차가공), 전의식에서 의식으로 올라와 설명하는 것(이차가공)


* 꿈의 해석을 통하여

1. 본인의 개인사 및 체험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

2. 대부분은 본인의 연상을 통해 해석

3. 꿈은 소망충족의 결과

4. 왜곡이 심하다.

5. 어릴적 체험, 특히 성적 체험이 최근의 소망과 함께 꿈으로..


▷ 꿈의 의미와 정서

- 자면서 꿈을 꾸는 것(잠재몽) vs 꾼 꿈을 말로 표현하는 것(현재몽) → 밀접한 관련은 있으나 동일하지는 않다.

- 모든 꿈은 꿈 꾼자의 창작품이다. 대부분의 꿈이 일상적인 삶과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의 심리상태를 보여준다. 곧 꿈을 이해하는 것은 곧 자신을 이해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술관원장꿈에서 느껴지는 것은 ‘기대’이고, 떡관원장의 꿈에서 느껴지는 것은 ‘불안’이다.

- 꿈은 꿈꾸는 사람이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메시지를 만들어 자신에게 시각적 형상으로 전달한다. 꿈에서 시각형상을 만들어 내는 일은 꿈꾸는 사람의 의지나 의식적인 노력과는 무관하게 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다.

- 자신의 경험과 잔재로 꿈을 꾸었다.→ 술관원장은 술로, 떡관원장은 떡으로 바로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 꿈꾸는 사람의 뇌는 과거의 삶의 상황 안에서 최근 사건의 중요성을 재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즉 꿈의 궁극적인 역할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만나고 이해하고 새롭게 하도록 도와준다.

- 꿈은 꿈꾸는 사람의 마음의 작용의 산물이고 정서가 중심된 역할을 하고 있다. 꿈꿀때 ‘경험하는 감정’과 꿈의 내용에서 ‘상징화하는 감정’은 꿈꾸는 동안 실제로 느끼지 못하나 꿈에 나오는 인물 배경 사건 등에 의해서 암시되고 있는 정서이다. 꿈을 통해서 경험하는 감정은 말그대로 꿈을 꾸는 동안 실제로 경험하는 감정이다.


[정리]

- 요셉의 해석과 꿈의 해석은 다르다.

- 현대인은 꿈을 꾸고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꿈 속에서 맛보게 하는 ‘소원성취’를 꾼다.

- 술관원장의 꿈은 복귀하는 소원을 기대한다. vs 떡관원장은 복귀를 바라지만 불안한 꿈을 꾼다.

⇒ 그들의 기대와 불안은 요셉의 기대와 불안이기도 하다. 감옥에서 나가고 싶은 기대와 그렇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이 함께 있다.


:

성경인물 20. 요셉 - 어린시절과 보디발의 집에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2. 14. 16:25

[야곱 속의 어린 요셉]

 

20번째 성경인물을 나누게 되었다. 꿈쟁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 요셉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을까? 오늘은 어릴적 요셉은 어떤지 살펴 보고자 한다.


▷ 요셉의 출생

- 야곱의 80후반-90세경 출생했다.

① 요셉은 17세에 꿈을 꾸고 이후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간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② 30세에 이집트의 관리가 된다.

(창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③ 7년의 풍년이 이어진다.

(창 41: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창 41: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④ 요셉이 40쯤일 때 야곱은 130세로 바로 앞에 선다.

(창 47:8-9)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즉 야곱과 요셉의 차이는 약 90세이다.


▷ 야곱의 처가생활

① 쌍둥이 형 에서가 40세에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다.

(창 26: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②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은 것은 40세이후의 일이다. 야곱은 벧엘을 지나 하란 곧 밧단아람에 가서 지낸다.

③ 결혼지참금으로 처가에서 2번의 7년을 봉사한다.

④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시도한다.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⑤ 20년 중 6년의 봉사와 계약수정에 대해 야곱이 라반을 떠나고 추격해 오자 이야기한다.

(창 31: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cf.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 요셉의 출생 이후의 일인가?


▷ 요셉이 태어날 즘 야곱의 상황과 정서

① 14년의 결혼지참금을 위한 처가생활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 전 7년은 며칠같이 여기고, 후 7년은 라헬을 사랑해서이다.

② 라헬과 레아의 갈등과 10 아들의 출생

cf. 야곱의 정서는 어떠했을까? (창 30:1-2)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후 7년의 기간은 야곱에게 스트레스상황이다.

③ 요셉의 출생 → 이 기간이 끝나고 요셉이 태어났다.

(창 30:22-24)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④ 야곱의 반응-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보인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야곱에게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요셉이 태어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① 이는 단지 후7년이 끝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② 이는 야곱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그런 아들에게 편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③ 요셉의 출생은 야곱을 다시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게 한다.

④ 고향으로 가려는 의지는 이후 라반의 새로운 계약제시에 ‘자기 집을 세우려’ 하는 의지로 표현된다.

(창 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⑤ 이후 라반과의 새로운 계약을 맺고 자신의 재산을 위해 수고하고 부자가 된다. → 이전 14년은 라반을 위한 봉사라면 이어지는 6년은 자신의 집을 세우는 봉사였다.

(창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⑥ 31장에서 고향으로 가려는 야곱의 적극적인 모습이 나온다. 천사의 명령과 아내들과의 상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온다.

⑦ 32장에서 얍복나루의 야곱의 모습은 라헬과 요셉을 챙기는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한다.


▷ 요셉과 10형제들간의 차이(아들들의 관점에서 본)

① 아버지 야곱은 라헬은 사랑하고 레아는 사랑하지 않는다. → 요셉은 자기 어머니가 사랑받고 있음을 보고, 10형제는 자기 어머니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며 자란다.

cf. 자신의 어머니가 사랑받고 아니면 그렇지 않음을 보며 자랄 때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겨질까?

② 야곱의 자식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동일하게 이어진다. → 요셉은 사랑받는 어머니 라헬을 이어 자신도 사랑받지만, 10형제는 사랑받지 않는 어머니를 이어 자신도 사랑받지 못함을 경험한다. 모든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지만 그 사랑은 요셉에게만 주어지고 이는 다른 형제에게 시기가 된다.

③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통해 삶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만 10형제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요셉이 태어난 후 삶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감정과 표현은 요셉에게 표출되었을 것이고, 다른 아들과 달리 요셉은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다.

④ 이후 얍복나루에서의 야곱의 라헬과 요셉을 더 보호하는 행위는 다른 형제와 달리 요셉에게 보호의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cf. 베냐민에 대한 요셉의 반응?

※⇒ 10아들의 유아때 아버지 모습과 요셉의 유아때 아버지 모습은 과연 같은가? 레아와 10아들에게 야곱은 그저 후7년을 채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의 모습은 굉장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곧 10형제들과는 달리 요셉은 그런 야곱의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 요셉은 긍정적인 동일시의 과정을, 10형제들은 열등감의 과정을 걸었다.


<동일시(同一視)>

- 정신분석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게 된다.

- 어떤 주체가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특성이나 속성을 동화시켜,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그 사람을 모델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심리과정. 인격은 일련의 동일시에 의해 구성되고 분화된다.

- 동일시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작품에서 점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여러 심리기제 중의 하나인 것을 넘어서서, 인간 주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작용이다. 그러한 발전은 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적 효과가 조명되면서 그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과 상관이 있고, 그 뒤에는 심리 장치의 두 번째 이론이 가져온 수정-그것으로부터 분화된 심역들이 동일시에 의해 특수성을 갖게 되고 따라서 그 영역들은 동일시의 결과라는 사실-과 상관이 있다.

- 어떤 부류가 다른 부류와 닮았다고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동일시하는 행위’ 또는 사고나 사실의 차원에서 전체나 부수적으로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는 행위’

- ‘동화되다’는 의미에서 동일시는 - 예컨대, 모방, 감정이입, 공감, 정신적 전염, 투사 등 -을 관용적인 용법으로 통합하고 있다.


<열등감>

- 아들러(Adler)에게 열등감이란 실제 신체기관의 열등성에 기초를 둔 감정이다. 열등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개인은 많든 적든 적당히 자신의 결함을 채우려고 한다. 아들러는 그러한 기제에 모든 질병에 유효한 아주 일반적인 병인적 가치를 부여한다. “유아기의 체질적인 결함과 그와 유사한 다른 상태들은 열등감을 일으키고, 그 열등감은 인격의 고양이라는 방향의 보상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주체는 권력의지로 특징지어지는 순전히 허구적인 최종 목표, 즉 모든 심리적 힘을 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 최종목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열등감이 오직 신체 기관의 열등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병인적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증상으로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 열등감은 어린아이가 겪을 수 있는, 현실적 내지는 환상적인 두가지 손실-사랑의 상실과 거세-에 대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열등감을 느낀다. 그것은 성인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 구조적으로 열등감은 자아와 그 자아를 비난하는 초자아 사이의 긴장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열등감과 죄책감의 인척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의 구별을 힘들게 만들어 버린다. 라가슈(D. Lagache)는 특별히 죄책감을 ‘초자아-자아 이상의 체계’와 연결시키고, 열등감을 이상적 자아와 연결시켰다.

- 임상적 관점에서, 죄책감과 열등감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곳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울증이다. 파슈(F. Pasche)는 오늘날 특히 빈번한 형태인 열등감 우울증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정리]

① 야곱은 요셉의 출생과 함께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보인다.

② 이것은 요셉에게 사랑받으며 삶에 대한 자세를 보고 자라게 한다.


 

[37장이야기]

 

 

지난 시간에 함께 본 내용은 요셉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 야곱의 모습은 요셉에게 굉장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37장을 중심으로 보자. 가나안에 들어온 야곱의 가족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때 야곱은 요셉을 사랑하고 그런 요셉을 형들은 미워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형들의 미워함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요? 어디서 나온 것이라 할까요? 잠시후 보겠지만 형들의 옳지 않은 행동과 그것을 보고 정직하게 말한 요셉에 대한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다. 형제간에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모든 일은 20여년 뒤에 모두 무엇이 거짓이었고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그럼, 이런 일이 먼 옛날에만 있고, 옛날 이야기 속에만 있고 현재는 없을까요? 그렇지 않다. 형제간의 이익 때문에 생기는 갈등들, 거짓과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들과 이로인한 갈등들.. 우리는 많이 겪고 있다.

그런데요, 이런 일이 작은 단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큰 조직에서도 일어난다.

며칠전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일도 꼭 이런 구조를 갖는다. 이틀전에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수감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진실이 갇히지만 내일은 거짓이 갇힐 것이다’  이과정을 그는 ‘진실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지난 대선때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씨이고 그는 주가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점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가조작은 너무나 큰 거짓이고 죄악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지난 22일 대법원에서는 ‘허위사실유포’를 이유로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징역 1년이 선고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은 아직도 수사중이고, 3년이 지나서 선고되었다는 것이고, 새로 임명된 대법관에 의해서 판결되었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같은 주장을 했지만 그것은 ‘명예훼손’이고 별개의 것이라 보며 상대가 고발하지 않았기에 상관없다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박근혜씨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정봉주 전의원은 계속 말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정봉주 전 의원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조가 재미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를 감옥에 보냈다는 것.. 법의 힘으로, 정치의 힘으로, 모든 힘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수감하고 사면이 없다면 10년간 피선거권이 없게 되어, 사실상 정치를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보려는 요셉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즉 이런 일은 우리의 생활 속에 작고 크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 요셉이야기를 자세히 볼까요?


* 1-4절 : 37장의 배경과 근거설명이 된다. 요셉의 성격과 형제의 미움을 사는 이유가 나온다.

(창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창 37:1)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몸붙여 살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 야곱은 가나안에 거주하게 되었다. 조상(아브라함, 이삭)이 지내고 원했던 땅이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 37:2)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살 된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 족보뒤에 하나님의 구속사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 아직은 어린 아이임을 표현한다.

-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양을 돌보고, 형제들을 돌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 야곱은 요셉을 레아의 아들과는 같이 있지 않게 했다. 모두 6명인 레아의 아들이 아닌 다른 부인의 아들과만 있게 했다. 이는 레아와 라헬의 경쟁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cf. 이후 요셉은 레아의 아들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다..

-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직역 ‘그리고 그는 그들의 나쁜 문제들을 가져왔다’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뜻과 실제적으로 해롭다는 의미이다. ‘가져왔다’는 말은 미완료형으로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cf. 이것이 요셉에게 어떤 결과를 주었을까? 야곱은 요셉의 존재자체가 좋기에 이유불문하고 그의 행동에도 칭찬을 했을 것이다. 이 칭찬은 요셉으로 하여금 더욱 그러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도왔을 것이고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익숙해진 것은?

1. 권위자를 거부저항하지 않고 즐거워하며 다가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후 보디발, 감옥생활, 파라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권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이후 아버지의 부탁으로 형들을 감시하기 위해 가기도 하고 이집트 삶에서 권위자가 원하는 일을 한다. 당시는 그것이 허락되는 세계관이지만 지금 시각으로 보면 7년풍년과 7년흉년은 자연히 모든 백성을 파라오의 노예가 되고 절대왕권강화의 과정이 된다. ex) 일중독, 인정중독?

cf. 이 일로 야곱은 다른 아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나쁜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야곱의 마음은 다른 아들들에 대해 더욱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cf. 요셉의 정직은 형제들의 그림자를 자극한다. 요셉의 행동은 더욱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꺼내게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 아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 골은 더욱 깊어지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는 요셉을 보게 될 것이다. 이후 요셉이 그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3)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나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고, 라헬만 편애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요셉만 편애하게 되었다.

- 채색옷 : 온 몸을 덮는 긴옷. 이 옷은 노동에 불편하며 관리자의 옷에 해당한다.


(창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아버지의 행동에 아들들은 그들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어 어린 요셉에게 쏟는다.

→ 점층적인 과정 - 그들은 야곱의 편애를 본다 → 요셉을 미워하게 된다 → 부드럽지 않는 말을 한다.


* 5-11절 꿈이야기

(창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 37:5)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 꿈 이야기는 더욱 요셉을 미움의 대상으로 보게 했다. 꿈의 내용은 진짜 자신들의 관리자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 첫 번째 꿈이야기

(창 37:6-7)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6-7) 『[6]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7]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 요셉은 형들이 자신의 꿈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일지 전혀 모른다. 전혀 배려하지 않고 신나서 말한다.

- 절하더이다. : 솨하(שׁתה) 구푸리다-군주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인사하는 방법

cf. (창 43: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총리가 된 요셉에게 곡식을 구하러간 형제들은 동일한 표현으로 절을 함으로 꿈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 형들의 반응

(창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창 37:8)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게 될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막내가 아닌 첫째였다 할지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들과는 달리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들의 왕이 되기를 수락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형제서열의 관계보다는 막내에게 채색옷을 입히시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담겨져 있다.


- 두 번째 꿈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 37:9) 『얼마 뒤에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 첫 번째 꿈과 동일하게 전혀 배려가 없이 신나서 꿈이야기한다.


- 아버지의 반응

(창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창 37:10) 『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위계질서가 엄격한 근동사회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요셉이 말하고 있다. 이에 야곱은 요셉을 책망하고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금지한다.

⇒ Q. 이것이 야곱의 본심일까? 자신은 채색옷을 주고 요셉은 말하지 못하게 한다? 진심일까?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11)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 야곱이 금지함으로 형들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마음은 시기로 가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야곱은 요셉만 신경쓴다. 그의 말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 여전히 동일한 행동을 하는 야곱과 요셉

(창 37:12-14)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창 37:12-14) 『[12]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려고 세겜 근처로 갔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요셉이 대답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그의 아버지는 헤브론 골짜기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하였다.』

-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 야곱은 2절에서 행한 행동을 계속한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 요셉도 동일한 행동을 한다.

-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 야곱이 원하는 것도 여전히 동일하다. 2절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왜 요셉이 고자질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요셉의 방황-요셉의 성격

Q. 성경은 왜 이부분을 기록하는가? 그냥 형제들에게 갔다고 해도 되는데.. 세겜이 아닌 도단이라서?

(창 37:15-17)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창 37:15-17) 『[15] 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가 요셉에게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 [16] 요셉이 대답하였다. "형들을 찾습니다. 우리 형들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는지, 나에게 일러 주시겠습니까?" [17]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너의 형들은 여기에서 떠났다. 도단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 가서 도단 근처에서 형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한다. 어느정도 찾다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요셉은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이런 모습을 성경은 다른 사람이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 그리고 요셉을 본 그가 요셉에게 묻는다.

-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 아버지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 도단에 갔다는 정보를 들은 요셉은 결국에는 도단까지 가서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Q. 무엇이 요셉을 이렇게 끝까지 찾아가게 했을까? 위에서 말한 권위자를 향한 마음인가?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열심이 그를 곤란에 빠지게 하고 살리게도 한다.


18-22절 : 자신들에게 오는 요셉을 보고 죽이자는 형제들과 생명은 해치지 말자는 르우벤의 보호

* 23-28절 : 형들의 행동(여섯가지)

(창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창 37: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 형들의 첫행동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긴다. 그들에게 채색옷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창 37: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 37: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 형들의 둘째 행동은 아무것도 없는 구덩이에 던진다. 구덩이는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판 것으로 입구는 좁고 속은 넓고 벽면은 미끄러워 혼자힘으로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비록 물없는 구덩이에 요셉이 들어갔지만 계속 있다보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형들은 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cf. 형들은 자신들의 그림자 속에 가두었다. 이후로 형들은 아버지 앞에 있을 때도 거짓말을 하면서 여전히 요셉을 자신의 마음의 그림자에 가둬두게 된다.


(창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 37:25) 『그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마침 이스마엘 상인 한 떼가 길르앗으로부터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낙타에다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 형들의 세 번째 행동은 음식을 먹고 있다. 그러나 요셉은 구덩이에서 고통 속에 있다. 형들은 그런 요셉의 고통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음식을 먹고 있다.

→ 형들의 네 번째 행동은 이스마엘 상인들을 본다. 이스마엘 사람들을 자세히 본다. 이것은 겉으로는 편하게 음식을 먹는 것같지만 긴장이 있음을 보여준다. 주변을 살피면서 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같다.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창 37:26-27)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27]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 형들의 다섯 번째 행동으로 유다가 죽이지는 말고 팔자고 제안을 한다. 두려움 속에 있는 다른 형제들은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창 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 37:28) 『그래서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에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다. 그들은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 형들의 여섯 번째 행동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 노예로 판다. 요셉은 이집트로 간다.

cf. 이후 모든 과정 뒤에 요셉은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29-35절 : 르우벤의 괴로움과 형제들의 거짓말과 야곱의 애통


(창 37: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창 37:36)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 요셉에게 이집트노예생활은 또다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이집트 상류귀족의 생활을 보았고, 이후 특별한 감옥의 생활을 하게 되고 이집트총리가 되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이 먼저 보내신 것으로 고백하게 된다.

⇒ 사람이 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경험이지만 반대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 되기도 한다. 홀로 자신을 다시 보고 구덩이(자궁)에서 다시 나올 때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정리]

① 야곱과 요셉의 관계가 훗날 요셉이 이집트생활에서 권위자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② 요셉의 정직과 꿈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③ 그러나 이는 이집트생활을 통해 다듬어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고백하는 사람이 된다.

④ 형제들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감추는 것에 급급하다.

⑤ 요셉의 구덩이는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다.

 

[보디발의 집에서-보디발과 요셉]


 

37장에서 요셉은 아버지(권위자)에 향한 열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형제들의 그림자를 자극하게 되며 구덩이에 빠지고 이집트에 팔려간다. 39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과 보디발이라는 새로운 권위자와의 관계와 경계선을 배운다. 야곱에게서는 제한이 없다면, 보디발은 가족은 제외하였으며, 이후 감옥과 바로와의 관계에서 경계선을 배운다.


(창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창 39:1)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갔다. 요셉을 이집트로 끌고 내려간 이스마엘 사람들은 바로의 신하인 경호대장 이집트 사람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다.』

-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 : 보디발에 대한 수식어가 '바로의 신하+친위대장+애굽 사람'이다. 이는 그가 바로의 궁중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임을 보여준다.

cf.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 37:36에서는 미디안사람이라 하였다. 실제로 요셉을 사고 판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마엘 사람’과 ‘미디안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창 37: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 요셉의 형통과 보디발의 목격

(창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3) 『[2]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3]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1.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다-앞의 상황과 다른 시각이다. 지금까지 요셉은 구덩이에 빠져 있었고 노예로 팔려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한다. 이후의 상황이 그것을 설명한다.

2. 그가 형통한 자가 된다-‘형통한’은 찰라흐()의 사역형으로 ‘번성하게 하다, 번영을 체험하다’의 의미로, 요셉 개인만의 형통이 아닌 주변도 그러하도록 한다.

3. 주인의 집에 있다-요셉이 일하게 된 곳은 보디발의 가정이고 그의 임무는 보디발의 가족들을 위한 봉사였다. 그가 밖이 아닌 집 안에서 일하게 됨으로 이후 보디발의 시각에 띠게 된다. 또한 집 밖의 중노동이 아닌 가사업무를 맡음으로 이집트의 귀족의 생활상을 익히게 되는 기회가 된다.

4. 주인은 두가지,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는 것을 본다. 그가 어떻게 한낱 가사노동노예를 보게 되었을까?


(창 39:4-5)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4-5) 『[4]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안 일과 그 모든 재산을 맡겨서 관리하게 한 그 때부터 주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 직역 ‘요셉이 그의 눈들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 히브리적 관용구로 상대방의 눈에서 호의가 있음을 표현한다. 아마 보디발은 요셉의 성실성을 보았을 것이다.

- 섬기매 : 보디발의 호의에 대한 요셉의 성실한 행동이다. cf. 요셉은 아버지의 부탁에 끝까지 형들을 찾아 갔던 성실성이 있는 사람이다.

-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보디발은 요셉을 성실성을 보고 신뢰하여 모든 것을 맡긴다. 일을 맡김에 있어 그는 노예에 대한 편견이 없으며 신뢰하며 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 보디발의 경계선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 39:6) 『그래서 그 주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하고, 자기의 먹을거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요셉을 믿기 때문이다.

-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 이집트의 법에 외국인과 음식관리와 식사시 합석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cf. 요셉의 말 (창 39:8-9)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그는 원칙적인 기준으로 경계선을 세운다.


39:7-18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비방


(창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창 39:19) 『주인은 자기 아내에게서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 같은 향패를 부렸어요." 하는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 보디발의 아내는 모든 과정을 남편에게 탓을 돌린다.

- 심히 노한지라 : ‘그러자 그의 얼굴이 뜨거워지다’ 아내의 말을 들은 그는 분노의 감정에 억제하지 못하고 표가 난다. 요셉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대해 감정이 분노의 감정으로 변하였다.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20)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 당시 간음죄는 사형이었다. 특히 이 상황은 사형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들은 후에 요셉을 투옥하는 것으로 그친다. 아마 보디발은 흥분이 가라앉은 후 사건의 정황과 그동안의 요셉의 성실함 등을 생각하고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요셉의 처벌을 유보하였을 것이다.


* 보디발은 어떤 사람인가?

①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이다. 높은 신분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② 전체를 보는 시각이 있다. 그는 한낱 노예를 유심히 보았고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보는 사람이었다.

③ 자상하고 호의가 있다. 보디발에 비친 노예에 대해 편견없이 바라보는 사람이다.

④ 가정총무 등 일을 분배하는 인사권을 볼때 신뢰성과 객관성이 있다.

⑤ 객관적인 경계선을 세운다. 

⑥ 아내의 모함은 신뢰의 감정이 배신감으로 분노로 바뀐다.

⑦ 요셉을 투옥하는 과정에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보디발의 집에서-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지난주에 나눈 부분은 37장에서 철없고 경계선 없고 권위자인 아버지 중심으로 형제들에게 배려없던 요셉이 39장에서는 보디발집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권위자를 만나 경계선을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보디발은 높은 신분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임에도 자상하고 편견없어 보이며 객관적인 경계선을 세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 요셉은 그런 건강한 경계선을 보이는 보디발의 집에서 잘 지내는가? 그렇지 않다. 보디발이 건강한 경계선을 보였다면 그의 아내는 반대로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이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 투옥되게 된다. 오늘은 이러한 보디발의 아내의 모습을 성격장애의 모습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행동양식과 대인관계방식을 가지고 있다.

- 성격장애는 어린시절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며 이러한 특성이 굳어져 성인기에 나타난다.

- DSM-IV 에서는 성격장애를 10가지 하위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크게 A, B, C의 3가지 군집으로 분류하고 있다.

cf.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은 미국 정신의학 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출판하는 서적으로,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책으로는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적 통계 분류(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ICD)가 있는데, DSM은 정신질환에 집중하는 반면 ICD는 모든 종류의 질병을 다룬다.

A군: 특징-사회적 고립, 기이한 성격

특성-이상하고 괴이하며 사회적으로 엉뚱하고 고립되어 있다.

종류-편집성(망상)/ 분열성(성격에 대한 것)/ 분열형

B군: 특징-정서적이고 극적 성격

특성-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특성

종류-반사회성/ 연극성/ 경계성/ 자기애성

C군: 특징-불안하고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성격

특성-쉽게 불안하고 근심이 많고 무서움을 잘 느끼는 특성

종류-강박성/ 의존성/ 회피성

*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진단기준

1. 실제 혹은 상상적인 거부, 배신을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

2. 이상화/평가절하의 양극단을 오고가는 인간관계

3. 일관된 자기상, 가치관 등의 부재

4. 충동적 행동(과소비, 약물남용 등) 자살, 자해행동

5. 정서적 불안정성, 만성적 공허감, 강렬한 분노

6. 스트레스와 관련된 편집증적 사고 혹은 해리증상


* 특징

얼핏 보면 괜찮은데 자세히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된다.

10대후반에서 시작,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되고 20대-40대에 가장 심하다.

일반인의 3-5%, 신경정신과 입원환자중에 20%, 그중에 2/3는 여성이다.


* 정신분석적 이해

- 경계선성격장애는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가 없다.

- 인격장애의 한 종류이다. 자신은 나쁜줄을 모른다.

- 따돌림에 민감하다.-어릴적부터 혼자있고, 상처의 경험이 많다.

- 버림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혼자 있기가 힘들다. 싸움이후에도 같이 있으려 한다.

- 버림받기 전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버린다.

- 만성적인 공허감에 시달린다.

- 자기 주체성도 계속 바뀌고 흔들린다.

- 인격의 통합기능이 없다. - 현재의 상황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인격의 통합성이 있어 상황에 대한 책임성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ex) 카드를 긋는 사람도 갚는 사람도 자신이라는 인식의 연속성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조각적인 생각을 한다.

cf. 현대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조각으로 나누고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 인격이 분리된다.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격이 작동한다.

- 인격을 조절하는 '자율'기능이 약하다. ex) 상대가 3분 늦었다고 폭발한다. 이에 대한 반성은 없고 모든 책임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다시 연락해서 싸운다. 그리고 분이 풀리지 않으면 자해한다. 이런 모습에 상대는 죽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몇 번 반복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말 멀어지게 된다. 버림을 원치 않고 이에 불안하여 행했던 모든 행동은 더욱 상대가 자신을 버리도록 만든다.

ex) 내가 기분나쁜 일이 있다. 이것은 잊고 상대가 나를 기분 나빠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에 화를 낸다. 또는 자신이 기분 좋으면 상대로 기분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투사동일시(타인의 태도나 감정 등이 나와 같은 것을 가졌다고 단정하려 드는 경향으로 타인의 목적이나 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마치 자기의 가치나 목적인 것처럼 여김)

cf. 이런 사람이 간혹 히스테리를 하고 연극을 하는데도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화끈한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 치료적 이해

- 초자아가 든든해야 한다. 현대에는 내적인 규범이나 가치관에 대한 준비가 없다. 현실검증 능력이 약하고 자기애적 경향이 강하다. 이들의 큰 문제는 충동적이다. 참고 기다림이란 기본을 못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이다.

ex) 왕자병 공주병-집에서만 제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학교 등 집단생활에서 관계를 파괴한다. 스토커는 상대가 거절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을 갖는다. 미래예측력과 자제력이 없다.

ex) 엄마가 자기 아이에 대해 계속 간섭을 한다. 핸드폰으로 계속 확인을 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고 끊어놓는다. 아이를 혼자 있게 하지 못하게 함으로 결과적으로 버림받거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다 어느순간 사소한 일로 폭발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를 두게 해야 한다. 부부도 애인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ex) '조용히 해, 엄마 신경질 나게 왜그래. 엄마가 창피하게..' 아이가 떠든다고 엄마가 폭발한다. 이것은 훈육이 없는 엄마의 단순한 신경질이지 교육이 아니다. 단지 조용하라고 하고 아이는 왜 그런지 모르며 엄마가 신경질 내니 조용해야겠다고 생각할 뿐 그 속에 불만이 가득하게 된다. 이는 아이에게 왜 자신이 조용해야하는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이는 훗날 논리적 사고를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감정을 폭발하는 아이가 되고 그것만 배운다.


* 대처&치료방법

1.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대인관계에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

2. 극과 극으로 불안한 이들에게 안정을 주어야 한다.


* 정석환교수의 글(연세대학교 기독교상담, 출처:국민일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의 필수적 요소는 가족 구성원들의 사심 없는 사랑의 체험이다. 이 사랑을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듬뿍 받고 자랄 때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건강한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심리적 산소’라 부른다. 이 심리적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으로 오염된 산소가 공급이 되면, 소위 발달결핍으로 인한 여러 가지 모습들의 성격장애로 평생을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며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신경증적 성격장애나 타인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정신증적 성격장애,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골고루 괴롭히며 살아가는 경계선적 성격장애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자신의 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결혼생활과 자녀와의 관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대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 건강한 성격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결단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흔히 사랑이란 훈련 없이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사랑한다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갈등이 더 심각한 것이다. 우리들의 감정은 사랑이나 분노의 감정까지도 훈련을 거쳐 표현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시각으로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의 관계를 보자.

39:1-6 보디발과의 관계, 보디발의 경계선을 보았다.

39:7-20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상황과 사건이 나온다.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 39:6) 『그래서 그 주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하고, 자기의 먹을거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용모(토아르) ‘형상, 모양’으로 신체 자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고, 번역되지 않은 ‘보기에’(마르에)는 ‘보다’(라아 ראה)의 명사형으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요셉의 성실함은 편견없이 성실함을 보는 보디발의 시각에 들어 가정총무의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제한시킴으로 문학적 반전을 느끼게 한다. 이후 이어지는 여주인의 유혹의 근거를 설명하는 듯하다.


(창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 39:7) 『일이 이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나하고 침실로 가요!" 하고 꾀었다.』

- 그 후에(일이 이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 주인 보디발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가정총무가 된 이후에

-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 전체적으로 보고 있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이제야 요셉이 보였다. 특히 유혹의 대상, 제한된 대상으로만 보았다.

- 눈짓하다가 : 직역 ‘그러자 그녀는 그녀의 눈들을 높이 올렸다’ →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관심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보냈다. 남편이 세운 경계선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한다.

- 동침하기를 청하니 : 직역 ‘나와 함께 누워라’ → 이는 명령형으로 주인 아내의 동침요구는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유혹이나 간청이 아니라 주인의 횡포로서 이를 거절할 때 요셉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협적인 것이다.

⇒ 남편은 전체적으로 보고 경계선을 분명히 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나, 아내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제한된 시각으로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창 39:8-9)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8-9) 『[8]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주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는 가지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9]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 요셉이 거절하며 → ‘마엔(מאן) 거절하다’의 강조형으로 요셉이 유혹을 완강하게 거절했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하타(הטא) 벗어나다, 빗나가다’의 의미로 바른 길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 요셉의 거절은 단순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 건강한 경계선을 지키는 행위이며, 이것은 신앙적인 결단으로 이어지고 바른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결단이고 선택이다.

cf. 요셉의 거절은 여주인의 거절감, 불안감, 혼자있지 못함, 배반감 등을 자극하고 더욱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했을까? 건강한 경계선이 있다면 멈췄을 것이다. ex) 홈쇼핑에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당장 사지 않으면 안된 것같은 불안감을 준다.


(창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창 39:10) 『요셉이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주인의 아내는 날마다 끈질기게 요셉에게 요구해 왔다. 요셉은 그 여인과 함께 침실로 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

→ 날마다 계속되는 여인의 강하고 끈질긴 유혹에도 요셉은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거절과 설득을 보여준다. 또한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는 분명한 행동도 자신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다.


(창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창 39:11) 『하루는 요셉이 할 일이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 종들이 집 안에 하나도 없었다.』

→ 7-10절이 상황설명이라면 11절이하는 결정적인 계기(투옥과 이후의 사건)가 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Q. 왜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을까? 이것이 여주인의 계획이라면 이후까지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여주인의 모함에 증인이 없고 증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게 된다.


(창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매』

(창 39:12) 『여인이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하고 침실로 가요!" 하고 졸랐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 ‘타파스’(תפשׁ) 손으로 물체나 사람을 잡다‘는 의미

→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회라고 여긴 여주인은 강력하게 붙잡고 바램을 이루려는 집념을 보인다.

cf. 눈짓(7)-동침요구(7)-매일 동침요구(10)-옷을 붙잡으며 요구(12)

-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매

→ 여주인의 극단적인 행위에도 요셉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신속하고 일관된 행동을 보인다.

cf. 거절(8)-이야기하다(8)-함께 있지 않다(10)-버리고 밖으로 나가다(12)


(창 39:13-15)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창 39:13-15) 『[13] 여인은 요셉이 그 옷을 자기의 손에 버려둔 채 집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14] 집에서 일하는 종들을 불러다가 말하였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이 히브리 녀석을 데려다 놓았구나. 그가 나를 욕보이려고 달려들기에 내가 고함을 질렀더니, [15] 그는 내가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 제 옷을 여기에 내버리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여주인은 극에서 극으로 돌변한다. 요셉에 대한 욕정은 강한 분노와 수치심으로 변한다.

-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 거짓으로 사건을 말함으로 요셉을 궁지에 빠뜨리려 한다. 어느 누구도 여주인의 말에 반대할 수 없게 만든다.

- 히브리 사람을 → 주인은 편견이 없으나 여주인은 변심과 함께 편견을 도구로 삼고 자신을 변호하려 한다.

-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 결과와 목적의 관계를 설정한다. 즉, 주인이 히브리사람을 데려온 결과 희롱하게 되었음을 연결함으로 모든 책임을 주인에게로 돌리며 비난한다. 즉 주인의 노예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와 가정총무로 세운 건강한 의도를 왜곡시켜 모든 비난을 남편에게 돌리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cf. 투사적 동일시-자신의 잘못은 가리고 자신에게 있는 잘못을 상대에게 쏟아낸다..

- 우리에게.. 우리를 → 여주인은 이일의 피해자를 자기만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는, 모두가 주인의 부당한 처사로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곧 여주인은 요셉과 자신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히브리인과 집안 모든 사람의 문제로 확대시키고 있다. 모든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모든 거짓말로 집안 사람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말한 것을 요셉이 말한 것으로 말한다.


(창 39: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창 39:16) 『이렇게 말하고 그 여인은 그 옷을 곁에 놓고,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요셉의 순결의 증거는 음란의 증거로 왜곡 보관된다.

- 곁에 두고 ... 기다려 →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있을까?

Q. 경계선 성격장애자의 경우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창 39:17-18)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창 39:17-18) 『[17] 주인이 돌아오자 그에게 그에게 이렇게 일러바쳤다. "당신이 데려다 놓은 저 히브리 사람이 나를 농락하려고 나에게 달려들었어요. [18] 내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옷을 내 앞에 버려두고, 바깥으로 뛰어나갔어요."』

→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남편에게 말한다. 위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남편에게 말함으로 모든 것은 남편탓이며 자신과 모두가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창 39:19-20)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19-20) 『[19] 주인은 자기 아내에게서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 같은 향패를 부렸어요. " 하는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20]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 보디발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심히 화가 나지만 이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옥에 가둔다.


*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보이는 모습들 vs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기준

1. 실제 혹은 상상적인 거부, 배신을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

2. 이상화/평가절하의 양극단을 오고가는 인간관계

3. 일관된 자기상, 가치관 등의 부재

4. 충동적 행동(과소비, 약물남용 등) 자살, 자해행동

5. 정서적 불안정성, 만성적 공허감, 강렬한 분노

6. 스트레스와 관련된 편집증적 사고 혹은 해리증상


* 보디발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① 극으로 좋은 대상이 극으로 나쁜 대상이 된다.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② 자신도 타인도 괴롭힌다.

③ 건강한 경계선을 임의로 바꾼다.

④ 자신의 유혹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인격의 통합기능, 미래에 대한 예측기능, 조절하는 자율기능'이 없다.

⑤ 자신의 수치와 잘못을 타인에게 돌리고 자신에게서는 전혀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⑥ 남편과 요셉의 건강한 경계선을 비난하고 악용한다.


* 요셉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① 요셉은 충분한 사랑으로 경계선을 만들게 된다.

② 요셉은 건강한 경계선을 만들면서 신앙적 경계선도 함께 만들어 간다.

③ 요셉의 건강한 경계선은 일관된 행동을 선택한다.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창 39:2-4, 21-23

 

* 창 39:2-4(보디발)과 39:21-23(간수장)의 공통점

(창 39:2-4)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21-23)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4(보디발)

창 39:21-23(간수장)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

그래서 형통한 자가 된다.

그에게 하나님의 인자가 더해진다.

보디발이 본다.(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주인에게 은혜를 입는다.(눈에 들어)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는다.(눈에 들어)

가정총무가 되어 위탁받는다.

옥중 죄수와 제반사무를 맡긴다.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1. 이삭의 권면

(창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벧엘에서의 하나님 약속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3. 벧엘에서의 야곱의 서원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4. 라반의 집에서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5. 가족회의하며..

(창 31:4-5)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쫓아온 라반에게 고백

(창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7. 얍복에서의 경험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8. 벧엘로 올라가자는 야곱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 아브라함

1.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창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2. 99세의 아브람을 부르셔서

(창 17:4-8)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3.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협약이 있을 때

(창 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이삭

1. 이삭이 이집트로 가려 할때

(창 26: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 이삭이 아비멜렉과의 관계에서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3. 이후 아비멜렉과의 협약에서

(창 26: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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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9. 유다 - 야곱의 아들, 통치자의 지팡이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0. 26. 12:29

 [형제들의 감정과 유다의 제안]


레아의 아들은 르우벤에 이어 시므온과 레위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다. 있다면 34장에 디나의 성폭행으로 인한 분노로 기습하여 히위족속의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과 그의 성읍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고 다른 형제들은 노략을 했다. 그리고 유다와 요셉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들들도 함께 있고 움직이지만 기록이 없다. 베냐민의 경우 출생과정과 이집트로 가는데 아버지의 감정과 요셉의 특별대우가 기록되어 있을뿐 역시 다른 기록은 나와 있지 않다.

지난주 르우벤을 보면서 굉장히 감정적이고 상대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레아도 야곱도 빌하도 모두 감당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그로 인해 장자이지만 그 역할은 자연스럽게 살육으로 인한 시므온과 레위를 이어 유다에게로 넘어갔다. 유다는 장자 르우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창 29:35 레아의 4째 아들로 출생

창 37장 요셉의 어릴적 이야기에서 요셉을 팔도록 주도한다.

창 38장 유다의 가족사와 다말이야기

창 43장 유다의 야곱설득과 2차 이집트행

창 44장 요셉에게 간청하고 인질이 되려 한다.

창 46:28 야곱의 일행 먼저 요셉에게 간다.

창 49:8-10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 → 통치자의 지팡이, 메시야 형통으로


* 유다의 출생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레아의 4째아들로 출생


* 이후 외가집의 생활과 떠남, 얍복나루와 가나안의 정착, 생활은 목축으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한다. 이때까지는 리더로서의 유다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 그들의 상황은 르우벤과는 달리 형제들에게 불편한 감정이 쌓이게 할뿐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요셉이 자기들에게 올 때 유다의 제안으로 팔게 된다.

→ 37장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꿈(1-11),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낸다.(12-18)

→ 18-25 요셉이 그들에게 오자 형제들은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려 계획하고, 르우벤은 요셉을 구하려 한다. 형제들은 요셉을 붙잡아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진다.


* 형들의 미움의 표현(미움은 희생양을 만든다)

(창 37:18-20)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 37:18-20) 『[18] 그런데 그의 형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 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 멀리서 동생 요셉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요셉은 100km나 넘는 거리를 왔다. 그런 동생이 반갑기는 커녕 죽이고 싶다.

Q. 무엇이 이토록 한 사람을 보고 죽이고 싶게 했을까? 어떤 과정으로 이렇게 되었을까?

① 과거의 삶에 미움이 쌓였다. 어머니간의 갈등과 고통, 아버지의 편애는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쌓이게 했을 것이다. ⇒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있다. ex)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밉고 미우면서 사랑한다.

② 이 마음이 구체적인 희생양을 찾아 겉으로 드러내며 표현하기 시작한다.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시기하다(카나)  흥분이 넘치어 질투의 성을 내다.

요셉의 꿈이야기는 형들이 시기의 마음을 갖게 한다. 미움과 불편한 마음은 ‘시기’의 마음으로 대상을 정하고 구체적인 마음을 정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인 요셉을 정하게 했을 것이다. ⇒ 이때 자신의 고통이 미움으로, 미움이 시기로 되었음을 모른다. 공격대상인 요셉만 보이고 미워하는 이유가 정당하고 생각한다.

③ 그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자기들 앞에 나타났다.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이다. 형들의 눈에는 요셉이 먼 여정으로 지치고 힘들었을 형편없는 모습임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고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보인다. ⇒ 익명의 상황이 되자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마음이, 그동안 감추고 눌러 놨던 그림자의 마음이 올라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가 이런 마음이구나’하며 오히려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제어가 되지 않는 마음은 희생양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

④ 행동의 근거로 삼는다 :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 요셉의 꿈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었을 그들에게 좌절감(동생에게 절하는 형)을 갖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있음에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헛되게 보고 조롱거리게 되게 한다. ⇒ 자신의 행위에 정당한 근거로 삼는다. 그림자의 시각으로 볼때 꿈이 틀렸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옳다는 것이다.

⑤ 행동을 계획한다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 요셉을 괴롭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고통의 근원인 아버지를 괴롭게 하려 계획을 상상한다. ⇒ 구체적인 행동을 준비한다.

⑥ 목적은 상대들이 고통을 받기를 원한다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 정리 : 쌓아진 고통은 대상을 찾아 희생양으로 만든다. 미움으로, 시기로, 정당함으로, 행동의 근거와 계획으로 점차 커져간다. ⇒ 극복의 방법? 경계선을 알고 영향받지 않는 것.. ex) 예수께서 광야의 유혹때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의 자극에도 영향받지 않고 그저 자신의 고백을 하실 뿐이다.


* 르우벤의 제안

(창 37:21-22)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창 37:21-22)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르우벤의 제안은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넣게 한다. ⇒ 장자의 권위보다는 그림자에 붙잡혀 있는 형제들의 양심이 된다. 아버지에게 괴로움을 주려던 형제들의 그림자는 르우벤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과 만나게 된다. 죽이려던 그림자의 욕구는 진정된다.

(창 37:23-24)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 37:23-24) 『[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 형들은 무방비의 동생을 구덩이에 던진다.

Q. 며칠을 있었을까? 3일 정도였을 것이다.(후에 요셉이 그들을 3일 감옥에 가둔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Q. 이때 형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동생이 애걸하여도 듣지 않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창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유다의 제안, 유다의 리더쉽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했다. 전체적인 그림자적 감정의 분위기이다. 이들은 정말 죽이려 했을까? 르우벤은 자리에 없고 유다가 제안한다.

Q. 르우벤은 어디에 있을까? 3일의 시간이 형제간의 다툼의 시간이었다면 르우벤은 구덩이에 있는 요셉과 화가 나 있는 형제들 사이에게 힘들어 자리를 피한 걸까? 가장 부딪치는 형제는 누구일까? 빌하와 실바의 자녀보다는 직접적인 피해의 대상인 레아의 자녀일 것이고, 그중에 손위인 시므온과 레위와 가장 마찰이 크지 않았을까? 이후에 발생하는 디나와 세겜의 대처방법을 볼때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와 표출이 많았을 것이고, 가장 주동적일 수 있다.

cf. 요셉이 형제들의 1차 여행때 볼모로 시므온을 결박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였을까?

(창 42: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직역 :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고 그의 피를 철저히 숨긴다면 무엇이 유익할까

→ 형제들의 계획-죽이고 숨긴다-이 그대로 된다하여도 무엇이 유익인지 반문한다. 형제들의 반발을 줄이면서도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 우리 동생 → ‘우리의 형제’(아히누) ⇒ 유다는 요셉을 형제라고 부름으로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 자신의 적이 아니라 형제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게 한다.

- 무엇이 유익할까 → 이는 절제된 언어를 반어법적으로 사용하여 형제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헛되고 부당한 일임을 상기시켜 생각을 돌이키게 유도한다.

-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 원래 크기의 악보다는 다음으로 작은 죄를 선택한다. 르우벤의 제안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다의 제안은 대안이 된다. ⇒ 이때 그들은 요셉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아픔을 보았어야 했다.

-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 직역 ‘왜냐하면 그는 다름 아닌 우리 형제 우리 살이기 때문이다.’

→ 앞에 ‘왜냐하면’(키)이 있다. 요셉을 죽이지 말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형제임을 말하면서 원초적인 감정을 말하면서도 거기까지는 행하지 않도록 제안한다.

-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형제들이 즉각적으로 동의한다.

▷ 잘못된 제안과 선택, 그리고 결과

① 차선이라며 동생을 팔기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보아야 했다.

② 자신의 분노로 제한적인 판단을 한다. 다른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20)며 요셉만 없으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후 아버지와 라헬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 창 37:29-36 르우벤이 괴로워하는 모습, 숫염소피를 요셉의 옷에 적시고 아버지에게 보이는 형제들, 오랫동안 애통하며 자녀들의 위로를 거절하는 야곱의 모습이 나온다.

(창 37:34-35)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정리]

① 르우벤과 유다의 모습 외에 다른 형제들의 활동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다.

② 형제들의 감정은 미움에서 죽이고 싶은 분노까지 확대되고 있다.

③ 그것을 자신을 보는 도구로 삼지 않고 다른 희생양을 삼아 쏟아낸다.

④ 유다의 제안은 차선을 선택하게 할 뿐 가장 좋은 것은 아니었다.

⑤ 형제애에 대한 유다의 언변이 요셉을 살린다.

⑥ 인간적인 모습 vs 하나님의 활동 ?


[유다의 리더십과 어법]

 

지난주 37장 요셉을 파는 장면을 중심으로, 요셉에 대하여 형제들의 깊은 미움의 감정과 희생양을 삼는 것, 해결방법으로 르우벤의 제안은 무시되고 유다의 제안대로 되는 것을 보았다. 장남 르우벤에서 4남인 유다에게로, 유다의 설득력과 리더쉽의 시작으로 보았다.

오늘은 유다의 제안을 보충해보고 유다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보자.


Q. 과연 유다의 제안이 옳고 유일한 방법이었나?(보충)

* 두 형제의 발언들 사이에 모티프의 대칭적 구조

모티프

르우벤

유다

생명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면 무엇이 유익할까

를 흘리지 말라

[우리가] 그의 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처분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라

자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

그에게 을 대지 말라

그에게 우리 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 르우벤은 아버지를 생각하여 요셉을 죽이지 않으려 하고, 유다는 요셉을 죽여 무슨 유익이겠냐며 팔자고 한다.


* 율법의 이해

(출 21: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6) 『사람을 유괴한 자는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가 데리고 있든지,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신 24: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24:7) 『어떤 사람이 같은 겨레인 이스라엘 사람을 유괴하여 노예로 부리거나 판 것이 드러나거든, 그 유괴한 사람은 죽여야 한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그러한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레 24:17) 『만일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민 35: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민 35: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 살인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유괴하고 파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된다. 곧 형제를 죽이는 것보다 파는 행위는 좀더 작은 행위이거나 차선의 선택이 아닌 그 자체로도 사형에 해당된다.

→ 곧 형제들의 감정과 희생양은 르우벤의 제안이 아닌 유다의 제안을 선택했고 그렇게 한 것은 사형에 해당된다. cf. 가인의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사형에 해당된다.

⇒ 이런 율법적 이해가 있음에도 창세기는 유다의 제안과 실행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악함을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악함에도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비교 대조된다.

ex) 이삭의 장자기도와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장자로 선택된 야곱은 타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만드셨을 것이다.

르우벤과 유다 모두 요셉을 죽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 르우벤이 논리적이지는 않아도 옳았다. 하지만 유다는 논리적이지만 옳지 않았다.

르우벤은 야곱의 감정을 위해서는 살리려 하면서, 형제들의 감정은 살피지 못한다. 결국 급하게 처리하려 하면서 중요한 시기에는 그 자리에 없었고 실패한다.

유다는 요셉을 살리려는 분명한 의도는 나타나지 않지만, 형제들의 도덕감과 감정(죽여서 무엇이 유익인가, 우리 형제이다)을 논리에 이용한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뒤 논리적 수사적으로 표현한다.

→ 유다의 이러한 논리 설득은 이후에도 나온다.


38장 유다와 다말이야기

39-41장 요셉의 이집트생활

42장 1차 이집트행-시므온을 결박되고 르우벤의 설득은 실패

43장 2차 이집트행


(창 43:1-2)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창 43:1-2) 『[1] 그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 갔다. [2] 그들이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곡식이 다 떨어졌을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다시 가서, 먹을거리를 조금 더 사오너라."』

* 상황

① 1차 여행이후 야곱은 베냐민을 보낼 생각이 없다.

② 여전히 기근은 심하고 곡식은 다 먹었다.

③ 결국 조급해진 아버지가 말을 한다. 이집트에 가서 곡식을 구하려면 베냐민을 보내야 함을 알지만..


* 유다의 설득방법

(창 43:3-5)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창 43:3-5)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하게 경고하면서 너희가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다시는 나의 얼굴을 못 볼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4] 우리가 막내를 데리고 함께 가게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면 다시 가서 아버지께서 잡수실 것을 사오겠습니다. [5] 그러나 아버지께서 막내를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면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다시는 나의 얼굴을 못 볼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

①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 유다는 아버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cf. 르우벤은 요셉이 잡혔을 때도 바로 말하지만 유다는 며칠을 기다렸고, 야곱도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1차 이집트행에서도 르우벤은 바로 자기 아들을 볼모로 삼겠다 한다. 하지만 유다는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창 42: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베냐민)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②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 [5] ...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지금의 상황을 재인식시킨다.

cf. 요셉 때도 르우벤은 그냥 죽이지 말자고 하지만 유다는 형제들에게 요셉이 자신들의 형제임과 죽임으로 무엇이 유익하냐고 강조했다.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③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아버지의 결정이고 선택이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그 선택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보내시면 가고 아니면 못간다.’

cf. 요셉 때도 죽이지 않기 위해 형제들을 자극하면서 선택하게 했다.

(창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유다의 논리순서 : 기다림-재인식-선택하도록


* 야곱의 괴로움과 아들들의 설득

(창 43:6-7)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창 43:6-7) 『[6] 이스라엘이 자식들을 탓하였다. "어찌하려고 너희는 아우가 있다는 말을 그 사람에게 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느냐?" [7]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와 우리 가족에 관하여서 낱낱이 캐물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계시냐? 하고 묻기도 하고, 또 다른 형제가 더 있느냐?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가 묻는 대로 대답하였을 뿐입니다. 그가 우리의 아우를 그리로 데리고 오라고 말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 유다를 중심으로 모든 아들들은 괴로워하는 야곱을 설득하고 있다.


* 유다의 재차 강조

(창 43:8-10)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창 43:8-10) 『[8] 유다가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말하였다. "제가 막내를 데리고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곧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우리도 아버지도, 우리의 어린 것들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9] 제가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아이에 대해서는 저에게 책임을 물어 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그 죄를 제가 평생 달게 받겠습니다. [10]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지 않았으면 벌써 두 번도 더 다녀왔을 것입니다."』

- 보내시면 : 명령형으로 부탁에서 강요로 바뀌고 있다.

-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 보증하다(아라브 )

→ 자신이 보증한 사람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을 대신하여 보상하겠다는 의미, 더 나아가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겠다는 의미이다.

→ 따라서 유다는 베냐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뜻과 안전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 실제로 유다는 요셉이 베냐민을 종으로 삼으려 할 때 대신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창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cf. 르우벤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하지만 유다는 자신의 목숨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고대근동사회에서 자식이나 가족의 생명이 가장의 손에 있다.

Q. 왜 그리고 어떻게 유다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자신은 피해갈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후 20여년동안 아버지의 괴로움을 충분히 보았기에 베냐민은 데려간다고 해도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 야곱의 결단(11-14)

(창 43:13-14)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11절 예물을 가져가라. 12절 넣어준 돈을 다시 가져가라. 13절 네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14절 잃게 되면 잃으리라


[정리]

① 르우벤이 논리적이지는 않아도 옳았지만 유다는 논리적임에도 옳지 않았다.

② 유다의 논리설득방법은 '기다림-재인식-선택하도록'이다.

③ 유다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리더십의 관점변화)


 

[삶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옳지는 않으나 논리적인 유다의 어법은 야곱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와 야곱의 결단은 그들을 애굽으로 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요셉 앞에 선다.

(창 43: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창 43:15) 『사람들은 선물을 꾸리고 돈도 갑절을 지니고, 베냐민을 데리고 급히 이집트로 가서, 요셉 앞에 섰다.』

→ 요셉 앞에 서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베냐민이다. 베냐민을 데려오면 간첩이라는 오해를 벗고 시므온을 구해올 수 있다. 단 예물과 갑절의 돈은 요셉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혹시의 경우라도 안전장치로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예상하고 준비한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 창 43:16-34 요셉의 집에서 세가지 감정

요약 : 요셉의 집으로 인도된 형제들은 지난 일이 생각나며 긴장한다.(18) 자루에 있던 돈에 대해 이야기하자(20-22) 안심시키며 시므온을 데려온다.(23) 요셉과의 대화에서 형제들의 나이순을 알아 이상히 여기다(33)

→ 장소는 요셉의 집이다. 여기서 형제들은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① 두려움 vs 안심

(창 43: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창 43:18) 『그 사람들은 요셉의 집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서 겁이 났다. 그들은 "지난 번에 여기에 왔을 적에, 우리가 낸 돈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자루 속에 담겨서 되돌아왔는데 그 돈 때문에 우리가 이리로 끌려온다. 그 일로 그가 우리에게 달려들어서, 우리의 나귀를 빼았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 틀림없다." 하고 걱정하였다.』

⇒ 대답 : 안심하라, 관리인이 안심을 시켜준다.

(창 43: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창 43:23) 『그 관리인이 말하였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댁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댁들의 조상을 돌보신 그 하나님이 그 자루에 보물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댁들이 낸 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관리인은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데리고 왔다.』

→ 시므온을 데려다 줌으로 안심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의 상황도 안심이 되어간다.


(창 43:24-25)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창 43:24-25) 『[24] 관리인은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 안으로 안내하고서 발 씻을 물도 주고, 그들이 끌고 온 나귀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25] 그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게 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정오에 올 요셉을 기다리면서 장만해 온 선물을 정돈하고 있었다.』

- 발을 씻게 하며 → 당시의 손님접대법이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간첩이 아닌 손님으로 대우받는 것에 대해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 예물을 정돈하고 → 그럼에도 예물을 정돈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나안에서 준비해 온 예물을 애굽총리가 잘 볼 수 있도록 배열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관리인을 통해 정중한 대접과 시므온과의 상봉, 총리와의 오찬예고에도 불안함과 선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된다.

-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 애굽의 총리와 타국의 일개 평민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이다. 형제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다시 긴장되게 하는 상황일 것이다. 예물을 정돈하고 기다림은 오해가 풀렸다는 것에 안심과 동시에 높은 분과의 식사해야 하는 긴장을 보인다.


26-32 요셉과의 대화내용이다. 아버지의 안부와 베냐민에 대한 감정이 나온다.


② 이상히 여기다 : 대화이후 식사 자리에서 요셉이 형제들을 나이순대로 앉힌다. 이것을 보고 서로 어리둥절해 한다.

→ 타마흐() 소스라치게 놀라다. : 형제들은 총리가 자신들의 서열을 알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 깜짝 놀라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창 43: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창 43:33) 『요셉의 형제들은 안내를 받아가며 요셉 앞에 앉았는데 앉고 보니, 맏아들로부터 막내 아들에 이르기까지 나이 순서를 따라서 앉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면서 서로 쳐다보았다.

cf. (창 43: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 따로 상을 차리는 것은 애굽인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이로 이해 형제들은 전혀 요셉을 알아볼 수 없다.


③ 즐거워하다 : 취했다는 것을 즐겁다고 의역. 형제들은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되는 것같아 안도감에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 솨카르() 취하다 : 직역 ‘그들은 마셨고 그리고 그와 함께 취하였다’

(창 43: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창 43:34) 『각 사람이 먹을 것은 요셉의 상에서 날라다 주었는데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몫이나 더 주었다. 그들은 요셉과 함께 취하도록 마셨다.』


* 44:1-17 요셉의 새로운 계략

(창 44:1-3)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창 44:1-3) 『[1] 요셉이 집 관리인에게 명령하였다. "저 사람들이 가지고 갈 수 있을만큼 많이, 자루에 곡식을 담아라. 그들이 가지고 온 돈도 각 사람의 자루 아귀에 넣어라. [2] 그리고 어린 아이의 자루에다가는 곡식 값으로 가지고 온 돈과 내가 쓰는 은잔을 함께 넣어라." 관리인은 요셉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 [3] 다음날 동이 틀 무렵에 그들은 나귀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 요셉은 새로운 계략을 세우고,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는다. 아침에 형제들은 출발한다. 이때까지 형제들은 너무나 즐거웠다. 베냐민도 시므온도 모두 안전하게 함께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 청지기에 쫓아가게 하다.

(창 44:4-6)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창 44:4-6) 『[4] 그들이 아직 그 성읍에서 얼마 가지 않았을 때에, 요셉이 자기 집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빨리 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 가거라. 그들을 따라잡거든 그들에게 너희는 왜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어찌하려고 은잔을 훔쳐 가느냐? 그것은 우리 주인께서 마실 때에 쓰는 잔이요, 점을 치실 때에 쓰는 잔인줄 몰랐느냐? 너희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매우 고약하구나! 하고 호통을 쳐라." [6] 관리인이 그들을 따라잡고서, 요셉이 시킨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하면서, 호통을 쳤다.』

→ 그들이 그리 멀리가기 전 요셉이 청지기를 보내어 호통치게 한다.


- 형제들의 반론

(창 44:7-9)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창 44:7-9) 『[7] 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인들 가운데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8] 지난번 자루 아귀에서 나온 돈을 되돌려 드리려고 가나안 땅에서 여기까지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대의 상전 댁에 있는 은이나 금을 훔친다는 말입니까? [9] 소인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것이 나오면 그를 죽여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

→ 누명을 벗기 위한 간절함이 있다. 9절은 그만큼 훔치지 않았음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Q. 9절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섣부르게 말한다. 르우벤과 유다와 다른 형제중 누구의 말일까? 섣불리 말하는 르우벤인가, ‘우리’라는 표현으로 볼 때 집단과 공동체적인 표현을 하는 유다일까?


- 청지기의 대답

(창 44: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창 44:10) 『그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좋다. 너희가 말한 대로 하자. 그러나 누구에게든지 그것이 나오면, 그 사람만이 우리 주인의 종이 되고, 너희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다."』

→ 9절의 말대로 다른 사람은 죄가 없고 발견된 사람은 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그런데 베냐민에게서 나오다.

(창 44:11-13)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창 44:11-13) 『[11] 그들은 얼른 각자의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서 풀었다. [12] 관리인이 맏아들의 자루부터 시작하여 막내 아들의 자루까지 뒤지니,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다. [13] 이것을 보자 그들은 슬픔이 북받쳐서 옷을 찢고 울면서 저마다 나귀에 짐을 다시 싣고 성으로 되돌아갔다.』

→ 검사를 받던 형제들은 베냐민에게서 나오자 옷을 찢으며 괴로워한다.

→ 베냐민만이 아니라 모두가 요셉에게로 돌아온다.


창 44:14-17 요셉앞에서 유다가 말하다.

(창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창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거기에 있었다. 그들이 요셉 앞에 나아가서 땅에 엎드리자,』

-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 형제들이 길에서 붙잡혀 왔다. 앞에다가 ‘유다’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유다와 형제들이 따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보다 ‘유다’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 요셉은 그들을 떠나 보냈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 이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그 앞에서 급히 꿇어 엎드린다.


(창 44: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창 44:15) 『요셉이 호통을 쳤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쳐서 물건을 찾는 줄을 너희는 몰랐느냐?"』

→ 요셉이 자신을 모든 것을 아는 사람으로 말함을 자기 앞에서 속이지 못하게 한다.


(창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6) 『유다가 대답하였다. "우리가 주인 어른께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의 죄없음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소인들의 죄를 들추어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을 가지고 간 아이가 모두 주인 어른의 종이 되겠습니다."』

→ 반어적인 질문법을 통해 자신의 정직을 강조하며, 좌절과 낙담을 표현한다.

-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 자신들의 정직을 강조하는 유다가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찾아내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보여주고 있다.

-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 9절에서는 발견자는 죽고 나머지는 노예가 된다고 했으나 이제는 모두 노예가 되겠다고 수정한다.

⇒ 베냐민이 범인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그를 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두가 노예가 되겠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직을 강조한다.


* 요셉의 의도와 유다의 반응

(창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창 44:17) 『요셉이 말하였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다. 이 잔을 가지고 있다가 들킨 그 사람만 나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돌아가거라."』

→ 요셉은 모두 돌아가고 베냐민만 남게 하라며, 그렇게 했을 때 어떤 반응을 하는지 의도적으로 테스트한다.

⇔ 요셉의 표현으로 유다는 무엇을 알았을까? 1. 죽이지 않을 것이는 것, 2. 베냐민만 노예로 삼겠다는 것 3.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베냐민을 데려가지 못하면 요셉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반응이 예상된다.

cf.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이 상황에서 유다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리]

① 형제들은 예상되는 것을 준비하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 총리의 집과 상황들

② 요셉의 집에서 환대와 안심을 받지만 길에서 짐을 검문받으며 누명을 쓴다. → 요셉이 형들에게 붙잡혔을 때와 유사하다.

③ 유다를 본격적으로 리더로 내세운다.

 

[형제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정직해졌을까?]


지난 주에 나눈 부분은 우리가 삶을 예상하고 준비하여도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유다를 중심으로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된 형제들은 순탄하게 데려올 것이라 생각했다. 단지 베냐민만 데려가면 간첩오해에서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은 것은 새로운 변수였다. 그 동생이 도둑으로, 그래서 환대를 베푼 총리의 물건을 훔친 사람이 되어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저히 풀수 없는 오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CF에서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스피드’라고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또다른 준비이다. 순간의 변수와 상황에 반응하고 그것만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체질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유다와 형제들은 무엇을 보이는가? 요셉이 형들의 거짓과 시기로 팔려간뒤 20여년의 세월은 그들을 어떻게 바뀌어 놓았는가?

과연 거짓이 정직으로 바뀌는가? 요셉과 이야기하는 유다의 한마디 한마디를 보면서 그들의 정직을 보자..


▷ 일단 요셉의 제안에서 그 키워드를 볼 수 있다.

(창 42: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창 42:20) 『그러나 너희는 반드시 막내 아우를 나에게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가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 진실됨을 증명하면 죽지 않는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① 1차 여행을 왔을 때 요셉은 그들에게 정탐꾼이라 했다.

(창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② 이에 형제들은 자신들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며, 한 아버지의 아들임을 정직히 말한다.

(창 42: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 독실한 자, 확실한 자 - 케님(true man) 청렴한, 강직한 → 자신들은 심지가 굳고 청렴함을 강조

(창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③ 그러나 요셉은 진실함을 증명하라 한다.

(창 42: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 방법은 막내를 데려오는 것

(창 42: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 요셉의 의지와 시험방법은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④ 그들은 3일을 갇힌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⑤ 3일뒤 요셉은 다시 강조한다.

(창 42:19-20)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⑥ 이에 그들의 반응-요셉의 일로 이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⑦ 요셉은 그들의 반성을 알아듣고, 시므온은 남고 형제들은 집으로 간다.

⇒ 이후 그들이 보이는 모든 과정에서 형제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요셉에게도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가? 확인해보자.


▷ 상황(44:14-17)은 요셉의 환대 이후 베냐민에게서 은잔이 나왔고 모두 요셉의 집으로 온다. 요셉의 책망에 유다가 말한다. 유다는 자신이 노예가 되겠다(16)고 하고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되리라(17) 한다.

(창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 정직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한다. 정직에 준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 44:18-34 유다가 베냐민을 위하여 간청하며 자신이 대신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① 간청하기 시작하다.

(창 44: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창 44: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간청하였다. "이 종이 주인 어른께 감히 한 말씀 드리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께서는 바로와 꼭 같은 분이시니, 이 종에게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 엎드린 상태에서 앞으로 간다. 굉장히 다급해진 유다의 마음을 느껴진다.

- 내 주여 원하건대 →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게 해달라기 앞서 자신을 낮추며 요셉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

⇒ 다급한 상황에서도 대화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집트의 총리가 그들의 말을 들을리 없고 더 이상의 기회도 없을 것이다. 유다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자리에서 급하고 간절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② 19-24 발단이유-베냐민을 데려온 이유는 요셉이 베냐민을 보고 확인하기 원해서 였다.

(창 44:19-24)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1절 ‘내가 그를 보게 하라’ - 단순히 한번 보겠다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자세히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강력한 제안하여 데려오게 되었다고 유다는 강조한다.

22절 ‘동생이 아버지를 떠나면 아버지는 죽는다’고 말했지만 - 아버지와 동생을 보호하려는 의지

23절, 그럼에도 요셉이 데려오라 했음을 강조한다.

cf. 요셉과의 대화에서 베냐민을 데려오면 진실함을 믿겠다고 하였다. (창 42: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아버지에게 전할 때 요셉의 말을 전한다. (창 43: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4절, 요셉의 의사를 아버지에게 전했다. 요셉은 진실함을 요구하고 유다는 자신들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진실하게 말했음을 강조한다. cf. 요셉이 팔려갔을 때는 거짓말을 했었다.


③ 25-29 유다는 아버지의 감정을 전한다. → 베냐민마저 잃게 되면 스올로 내려가는 것이라 한다

(창 44:25-29)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가려 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25절, 그 뒤에 있었던 상황을 요셉에게 이야기한다.

26절, 곡식을 사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함을 말했음을 이야기한다.

27-29절, 아버지의 감정이 들어 있는 말을 그대로 전한다.


④ 30-31 아버지가 베냐민과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다.

(창 44:30-31)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 야곱은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고 그 사랑을 베냐민에게 쏟았다. 곧 베냐민은 야곱에게 모든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 사랑을 넘어 생명과 같다.

-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 생명에 이어 죽음을 이야기한다. 야곱의 삶과 죽음이 사랑의 대상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 베냐민이 가야하는 이유는 곧 아버지를 살리는 이유이고 그래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말한다.


⑤ 32-34 유다의 바램과 제안

(창 44:32-34)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32절, 유다가 아버지에게 담보하며 약속하였음을 말한다. (창 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 [요약]

① 어릴적 요셉은 정직하나 형제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것을 알고 있는 야곱은 요셉을 보내고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에게 갔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② 20여년 뒤 다시 만난 요셉은 형들에게 진실됨을 증명하라 한다.

③ 세월과 아버지의 우울을 보면서 그들은 더 이상 거짓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④ ⇒ 요셉의 확인과 상관없이 형제들은 정직해져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베냐민을 대신할 정도록 마음이 달라져 있다.

⇨ 요셉이 확인한 것 - 형제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요셉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형제들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고 그 편애의 대상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편애는 더욱 심해져서 야곱의 생명과 죽음이 베냐민과 묶여 있다고 한다.

핵심 :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진실되게 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바뀌었을까?

① 형제들의 삶의 여정에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보면서 자신들의 시각을 자신에게서 연약한 아버지로 옮겨진 것이다. 시기만큼 아버지를 원했던 그들이 자신들의 거짓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거짓을 버렸으리라.

②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은 요셉이다. 그의 모습은 정직이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하지만 형제들은 요셉의 정직의 모습을 자신에게 받아들이려 했으리라. 시기의 대상인 요셉이 모델이 되는 것이다.

⇒ 거짓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였으리라.


[유다를 위한 축복기도와 메시야]

 남은 5분은 오디오로..



지난주에 나눈 것은 유다의 형제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정직해졌을까?’하는 부분을 나누었다. 평상시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던 그들이 사랑을 받는 동생을 요셉을 시기했다. 그 시기심은 그 동생을 해하려 했고 결국에는 노예로 팔았다. 이후 아버지는 아들이 없어져 그 상실에 죽음과 같은 시기를 지냈고, 그 아픈 마음은 베냐민에게 표현되었다. 20여년의 이 과정이후 유다와 형제들을 거짓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만나 요셉은 그들의 진실함을 요구했고 그들은 전혀 거짓없이 진실함을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바뀌었고 이과정에서 유다는 형제들의 리더로 세워졌다.


45:1-15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45:16-20 바로가 이스라엘가족을 이집트에 들어오도록 하다.

45:21-28 야곱이 듣고 기뻐한다.

46:1-7 브엘세바에서 제사한 후 애굽으로 가다.

46:8-27 애굽으로 가는 가족명단

46:28-34 요셉이 야곱을 만나다.


* 이렇게 애굽으로 향할 때 야곱은 유다를 먼저 보낸다.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창 46:28) 『이스라엘이 유다를 자기보다 앞세워서 요셉에게로 보내어, 야곱 일행이 고센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게 하였다. 일행이 고센 땅에 이르렀을 때에,』

→ 야곱은 유다를 인정한다. 모든 과정에서 그의 역할(리더)을 인정하는 듯하다.


이것을 보면 확실히 유다가 형제에게서 리더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아버지가 인정하고 형제들이 이에 반박하지 않는다. 그럼 현대의 리더는 어떤가? CEO를 한 리더로 본다면 어떨까?



피테르 브뢰겔(Pieter Bruegel de Oudere)의 바벨탑.(1563년, 155x114cm)

독일에서 미디어심리학을 가르치는 저자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Peter Winterhoff-Spurk)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열두 가지 진실 중 ‘4.고급 노동자에 불과한 살찐 고양이’(p.83-103)


* ‘뉘른베르크 소비연구회’의 ‘직업군신뢰도’ 조사에서 2006년 대기업의 CEO에 대해 18%의 신뢰도를 보였다. 이보다 낮은 직업군은 10%의 정치가뿐이었다.

*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2005년 직업가치순위에서 CEO는 22개 직업중 16위를 했고, 응답자 14%만 직업군 5개 안에 뽑았다.

* 위싱턴의 경제정책연구소의 발표-미국 CEO의 평균월급은 최저임금의 851배(2005)로 하루 오전근무가 최저임금노동자의 1년치보다 많다. 1965년에는 51:1이었다.

cf. 이외에도 거대한 퇴직보상금이나 보수등과 권한남용이 있다. 경제범죄의 1/3은 CEO가, 1/5는 중간간부에 의해 저질러진다.

Q. (엘리트사회학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 이런 경제계 지도층에 오르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은? 부유한 가정환경과 박사학위이다.

1. 부유한 가정환경 - CEO의 절반이 상류층출신이고 1/3이 중류층출신이다. 간부진은 92%가 이들이다. 이들 출신의 아들이 기업과 경제계에서 지도층이 된다. 간부직원의 아들이 기업의 최고자리에 오르는 비율은 일반노동자의 자녀보다 10배가 높다.

2. 박사학위 - 2만6천명(2005년), 독일100대기업의 CEO와 간부진 절반은 박사학위이고 대부분 경영학박사 혹은 자연과학박사이다.

3. 생활방식 - CEO와 간부진이 되려면 자신의 생활방식을 그들과 유사하게 맞춰야 한다. ex) 당당한 몸가짐, 기업가정신, 그들의 의복 및 행동양식에 통달 및 폭넓은 일반교양 갖추기

→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이외-사회적 신분상승자들이 중상류층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따라잡기는 힘들다. 이들에게는 중상류층의 사교형식을 어려서부터 저절로 몸에 익힐 기회와 가능성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놀이처럼 익힌 사교형식이 이미 그 무리에 속한 사람과 그 무리에 속하고자 애쓰는 사람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지도층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순진한 척해서는 안된다. “위로 오르려면 고난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한때의 인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변절이 필요하다. 변절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고 완전히 전향해야 한다”

* 20세기말의 기업정책의 변화

1. ‘이해관계가치’관점 → ‘주주가치’지향으로

2. 독일CEO의 첫채용은 52세에서 45.8세로, 퇴직나이는 58.6세에서 54.9세로 낮아졌다.

3. 2005년 전세계 CEO 중 퇴직은 15%이고 독일권은 절반이 넘는다. 사유는 실적미흡이다.

cf. 최근 3년간 CEO교체비율은 44%, 정년퇴임은 1995년에 65%에서 2005년 40%

cf. 우리나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중 대표이사교체가 2002년 177개, 2006년 250개

cf. 문책성 CEO 교체 증가와 경험, 경험자 모셔오기,

4. CEO의 신규채용과 실적-경험없는 후보자를 외부에서 데려올 경우 초반 5년동안 실적이 좋다.

cf. 외부영입으로 성과에 대한 의구심, 외부영입 CEO의 보상에 대한 이사회의 불만, 외부영입과 내부육성에 대한 고민,

5. CEO의 카리스마-최근의 카리스마는 직원의 이성이나 이해력에 호소하는 것은 부족하다. 직원이 지도부를 따르게 되는 과정의 감정을 살피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상징적 지도’이다.

ex) 지멘스의 클라우스 클라인펠트는 직원에게 피자를 돌렸다. “클라우스는 직원들을 보살핀다”→비자금조성 및 뇌물로 부패기업이미지

   베텔스만의 라인하르트 몬(Reinhard Mohn)은 몇 년동안 점심시간에 똑같이 식판을 들고 정직하게 기다렸다. → 상징적 메시지? “나는 너희 중 하나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곧 직원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그의 가족이 운영해 온 출판사 베텔스만의 경영을 맡은 뒤 잡지, TV 방송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으며 1971년에는 베텔스만을 주식회사로 전환해 회장 겸 CEO로 취임하는 등 45년간 재직했다. 2009년 88세로 사망.


⇒ 현대는 ‘미디어’ 활용하라.

1. 정치가는 전문지식, 지성, 신뢰, 신용과 잘생긴 외모에 호감가는 인상, 우월성과 자신감, 결단력과 신념에 대한 확신 등을 카리스마 넘치게 화면에 보여야 한다. 다음으로 지지자의 가치와 잠재력을 강조하고 지지자에 대한 친근함과 도덕성과 미래비전을 통해 믿음과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인 구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2. 경제계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조직에 대한 비전이 없어도 사회적 환경에 대한 민감성과 비전에 대한 설득력이 있거나 독특한 행동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의 옹호자로 표현할 수 있다.

⇒ 단점 : 시간이 흘러 지도자 스스로 본인이 정말 직원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조직전체에 해가 된다.

※ 평균 46세의 CEO에 속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행동양식이 선임자의 수준에 잘 맞아야 하고, 박사는 기본이고, 전문가 및 경영자로서의 성품 즉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외국경험은 필히 있어야 하고, 직원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동시에 감정적 욕구를 살펴야 하고, 기업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며 직원의 창의성, 소통, 팀워크 능력을 발견하여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속에 감추어진 감각부족, 거만함, 폐쇄성, 경직성, 과중한 부담, 불성실 등의 특성을 들켜서는 안되고, 관심을 끄는데 너무 신경을 쓰거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서도 안되고, 사회적 지식 부족이나 협동심 부족을 드러내서는 안되며, 야망이 너무 커서는 안되고, 전략적인 사고력도 갖추어야 한다.

※ 기업에는 수직적인 직급체계가 사라져서 ‘수직상승’은 불가능하고, 평생직장개념은 사라졌고, 거대한 사회적 지역적 이동을 감수해야 하고,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를 쟁취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야 하고, 속으로는 ‘주주가치’지향이지만 겉으로는 상징적으로 ‘이해관계자’와 직원의 관심을 고려해야 하고, 회사와 관련된 여러분야에 계속 참여해야 하고, 끊임없는 정보를 모으고 미리 진단 해결하며 관계를 잘 돌봐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신속히 처리하기에 늘 시간에 쫓긴다. 또한 가정과 친구에게는 사랑이 넘치지만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을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그들은 기업문화에 자신을 맞추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을 버리도록 강요받는다.

※ 퐁텐블로의 유럽경영대학원 석좌교수 만프레드 케츠 드브리스 “그들의 방향 설정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자기애다. 지도자가 특별히 선호하는 개인적인 특정상황이 있는 경우라면 이것은 이미 자아도취단계이다. ... 자기애는 지도자가 되려는 소망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삶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또한 흡족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는 상실감과 공허감이 밀려온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상실감과 공허감을 떨치기 위해 그들은 타인의 지지, 권력, 아름다움, 지위, 명성을 얻고자 하며 그것으로 우월성을 증명하려 애쓴다.”

1.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

2. 타인과 기생관계나 착취관계를 맺으며 질투심이 매우 강하다.

3. 다른 사람을 오로지 선 아니면 악으로만 인식하고 과대망상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는다.


* 지도자의 유형과 특성

① ‘건설적 자기애’를 가진 건강한 지도자.

a. 직원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독특한 과제와 목표지향을 주도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직원들과 잘 지낸다.

b. 그러나 때때로 냉정하고 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c. 비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탄 받기를 즐기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으며, 풍부한 분석과 조언을 바탕으로 결정한다.

② '자기기만형 자기애‘를 가진 친절한 지도자. 이는 병적 자기애의 전단계이다.

a.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매우 친절한데, 실제 본 마음이 친절해서가 아니라 친절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한다.

b. 그는 직원이나 동료의 충고에 귀 기울이는데, 불안감을 없애고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함이다.

c. 그는 다른 사람에게 추앙받고 인기를 얻고자 한다.

③ ‘민감한 자기애’를 가진 감독관형 지도자.

a. 그는 직원에게 종종 극단적인 요구를 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주변 가까이에 둔다.

b. 그는 직원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의 욕구는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c. 심지어 모험 요소가 매우 많은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도 충분한 검토 없이 무작정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d.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법이 없고 비판에 민감하고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 “지도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기애가 필요하다. 자기애는 사회,정치참여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건강한 자존감, 안정적 정체성, 명확한 자기 이해를 마탕으로 하는 건설적 자기애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격조건이다”


* 리더인 유다의 축복기도

(창 49:8-10)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

-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 태어날 때 레아의 고백이다.

-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 이 예언은 유다의 후손인 다윗과 솔로몬이 주변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함으로 증명된다. 또한 유다의 혈통으로 태어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의 세력을 진멸하는 약속의 성취에도 증명된다.

-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유다지파 출신인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고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했으며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통한 온 세상의 통치를 가리킨다.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사자는 승리의 이미지다. 여기서 유다를 사자의 새끼로 표현한 것은 유다의 후손이 장차 승리자 정복자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유다의 자손이 독보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을 강조하며, 이후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심을 예언한다.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 ‘규’는 막대기나 지팡이로 상징적으로 ‘권세’를 뜻한다. 왕은 공중집회때 항상 이것을 휴대한다. 곧 유다지파가 계속적으로 왕권을 계승할 것을 예언한다.

→ 통치자의 지팡이 - 입법자, 지도자, 지휘봉, 혈통적 보존

-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1. ‘실로’는 예루살렘 북쪽 약 50km지점의 에브라임 경내에 위치한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성읍 → 유다후손의 통치권이 실로에 와서야 비로서 끝나게 된다는 의미. 그러나 역사적 상황과 맞지 않는다.

2. ‘평화, 안식의 시기’를 의미하는 견해. 유다가 그들의 적들을 정복하여 ‘안전하게 될 때’까지 후손의 통치가 계속 된다는 견해

3. ‘실로’를 사람의 이름, 특히 유다가문에서 ‘메시야’를 의미하는 견해. 어근인 ‘쉴’(שׁל)이 갈대아어나 아랍어로 ‘후손’이란 의미이기 때문. 그리고 ‘보낸다’의 의미인 ‘솰라’(שׁלה)와 함께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의미

4. ‘실로’를 안전하다, 평안하다의 뜻의 솰라에서 유래하여 ‘중재자, 화평케 하는자, 침묵을 지키는 자’ 곧 ‘메시야’를 의미하는 견해.

⇒ 예언의 성취로 볼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짐을 예언하고 있다.

-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그에게로 백성이 모이리라’

⇒ 메시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임재, 그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만왕의 왕에게 순종하며 모일 것을 예언한다.


[정리]

1. 순서적으로 보면 유다의 진실됨과 지도력이 유다지파의 다윗과 예수에게로 이어진다.

2. 역순으로 보면 유다의 지파의 정통성은 메시야로 근거한다.

:

성경인물 18. 르우벤 - 야곱의 큰 아들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0. 19. 16:52


 


가정사에 문제가 생기면,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거나 실속을 챙기려 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들, 반응들을 보인다. 순서상에서 첫째는 어떻게 할까? 그의 영향력은 어떨까? 야곱의 첫째는 르우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가족과 형제간의 갈등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 르우벤의 출생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 레아의 첫아들이고 12아들중에 첫째.

→ 직역‘하나님이 레아의 괴로움을 보았다.’ 그래서 이름이 ‘보라 아들이다’

→ 상황 :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힘들어 할때 첫 아들로 태어난다. 그로 인한 위로를 받으며 남편의 사랑을 기대한다.

⇒ 르우벤은 그런 레아의 괴로움을 보며 자란다. 그는 엄마의 괴로움을 볼때마다 어떤 감정일까?


(창 30: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 상황 : 레아의 4남 출산이후, 라헬이 빌하를 통해 두아들, 레아는 실바를 통해 두아들을 얻었다.

→ 르우벤은 우연히 합환채를 얻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는 엄마에게 드린다. 왜일까? 엄마의 괴로움을 아는 아들이기 때문인가? 출산이 멈춘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그는 엄마에게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엄마를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 결과 : 합환채는 라헬에게 갔지만 레아가 잇사갈, 스불론, 디나를 출산한다.(17절이하)


▷ 이후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후의 과정에서 그의 성향과 생각을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30:25-43 야곱과 라반의 재계약, 부자가 된 야곱

→ 르우벤이 바라본 모습들은 외가에 있으면서 특별히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똑같은 대우를 받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이런 과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31장 야곱은 부인들과 상의하고 라반을 떠난다. 라반이 추격해오고 레아와 라헬의 방을 조사한 후 불가침 조약과 손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 과정에서 어떤 마음일까?

① 가족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겠지만 과정상 적극적인 라헬과 소극적인 레아를 본다.

② 모든 가족이 길을 떠날 때 특별히 라헬과 요셉을 더 신경썼을 야곱과 이에 아무말 못하는 레아를 본다.

③ 맏형으로서 역할을 생각하고 도움이 되려 한다.

④ 추격해 와서 딸들의 장막을 조사하는, 그리고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작별인사를 외할아버지를 본다.


32장 에서를 맞이하기 전 두려워하던 야곱이 얍복나루의 경험으로 바뀐다.

→ 르우벤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 두려워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앞서게 하는 것을 본다. 특히 라헬과 요셉은 뒤에 있는 것을 본다. 이후 얍복나루에서 변화된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서는 것을 본다. 그렇게 편애하며 어려움에 대처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보였을까?


33장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 르우벤은 에서를 만나 부둥켜 안고 우는 야곱을 본다. 처음 본 백부 에서, 아버지와 전혀 다른 외모의 에서를 본다. 이후 야곱과 함께 숙곳과 세겜땅에 머문다.


34장 동생 디나가 성폭행을 당한후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적으로 그들을 노략할 때 큰 아들인 르우벤의 역할은 언급이 없다. 큰 아들이고 친오빠로서 왜 주도적이지 못하였을까?


35장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과 라헬의 죽음, 빌하와의 동침, 이삭의 죽음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이 다시 벧엘로 올라간다. 세겜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때 두려움중에 새롭게 결단하는 야곱은 어떻게 보였을까?

* 빌하와의 동침

(창 35:21-22)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창 35:21-22)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서 에델 망대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장막을 쳤다. [22] 이스라엘이 바로 그 지역에서 머물 때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였는데 이스라엘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다.』

→ 라헬이 에브랏에서 죽고 에델망대에 있을 때 르우벤은 빌하와 동침한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이었다. 라헬의 죽음으로 빌하는 보호자가 없다.

→ 그런 빌하와 왜 동침할까? 빌하가 외롭고 힘들어 보여 위로하려 했을까, 힘없는 빌하를 라헬에 대한 복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욕정이고 쾌락인가? 전반적인 르우벤의 모습을 볼때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결과 : 야곱은 이것을 듣는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자식이 되어 상속권을 상실한다.(49:4)


36장 에서의 자손

37장 요셉의 꿈이야기와 팔려감

→ 시간상으로는 35장 앞이다.

(창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 아버지는 고자질하는 요셉을 편애한다. 그런 요셉에게 형들은 잘해줄 수 없었다.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11)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 시기하다(카나) 흥분이 넘치어 질투의 성을 내다.

→ 꿈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더욱 마음이 불편해진다.

⇒ 계속되는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행동에 다른 형제들은 시기의 마음까지 생기고 후에 죽이려는 마음까지 생길 때 르우벤은 이런 상황에 어떤 마음을 키웠을까?


(창 37:18-20)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 37:18-20) 『[18] 그런데 그의 형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 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한다. 치밀한 계획과 거짓말까지 생각한다.


(창 37:21-22)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창 37:21-22)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 형제들의 흥분과 잔인한 계획을 막는다.

-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 르우벤이 원한 것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는 왜 다른 형제들과 같은 생각이 아닐까? 그에게는 요셉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그보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고통받을 것을 예상한 것인가?

⇒ 자신이 아파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창 37:29-30)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창 37:29-30) 『[29]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와 보니, 요셉이 거기에 없었다. 그는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서, [30] 형제들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그 아이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 르우벤이 돌아와 → 위급한 시기에 요셉을 맡겨놓고 어디를 다녀왔다. 그는 왜 형제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어디를 다녀왔을까? 목동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며칠을 다녀왔을 수도 있지만, 동생들의 시기와 계획을 알고 막으려 했던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 자기가 제안한 구덩이에 와보니 요셉이 없다.  그 사이에 형제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 옷을 찢고 → 요셉이 없는 사실에 당황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절망과 고통을 참을 수 없다.

- 아이가 없도다. → 옐레() 갓난아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 다른 형제와 달리 르우벤은 요셉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다. 요셉이 17세라면 르우벤은 10살 이상 차이나는 성인일 것이다.

- 나는 어디로 갈까? → 나는(아니)와 어디(아나)가 유사한 소리를 낸다. 소리나는대로 이하게 되면 ‘나는 나는 나는’이란 외마디 비명으로 들린다.

→ 요셉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매우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37:31-36 동생들은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적시고 아버지에게 보인다. 야곱은 오랜시간 애통해하고 모든 자녀가 위로하지만(35) 야곱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 이런 과정을 모두 보아야 했던 르우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38장 유다와 다말

39-41장 요셉의 이집트 생활

42:1-17 기근으로 곡식이 없는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집트로 가서 곡식을 구해 오도록 보낸다. 10형제를 알아본 요셉은 정탐꾼으로 누명을 씌우고, 막내를 데리고 오게 하라며 3일을 가둔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 42:17) 『요셉은 그들을 감옥에 사흘 동안 가두어 두었다.』

→ 형제들이 3일동안 감옥에 있었다. 3일은 이들에게 무엇일까?

cf. 요셉은 구덩이에서 며칠을 있었을까? 3일이라면 형들도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당시의 이해는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창 42:18-20)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요셉의 제안 : 한명만 남고 곡식을 가지고 가라. 가족을 굶지 않게 하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

-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형제들은 요셉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 괴로움 : 차라() 압박을 당하다는 의미로 ‘환난, 고통’

cf 레아의 괴로움(창 29:32) 뻬오느이()

→ 3일동안 감옥에서 억울함을 경험한 이들은 이것이 인과응보로 받아들인다. 20여년전의 일을 기억해낸다.

→ 요셉의 애걸에서 괴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이 경험하고서 공감하게 된다.

(창 37:24-25)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 비어있는 구덩이에서 고생하는 요셉과 달리 그들은 음식을 먹고 있다.

⇒ 상대의 괴로움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에게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창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창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죄를 짓지 말자고 하지 않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값을 치르게 되었다."』

- 그 아이 : 여전히 르우벤에게 요셉은 아이이다. 옐레드()

→ 과거일을 들추어 낸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동생들에게 책임과 탓을 돌린다.

- 죄를 짓지 말라 →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창 37:21-22)

cf. 그런데 동생들은 손을 대지 않기로만 한다.

(창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42:26-34 집에 돌아온 형제들은 야곱에게 정탐꾼으로서 누명과 과정을 보고 한다.

(창 42:35-36)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 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 42:35-36) 『[35] 그들은 자루를 비우다가 각 사람의 자루에 각자가 치른 그 돈뭉치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는 그 돈뭉치를 보고서 모두들 겁이 났다. [36]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나의 아이들을 다 빼앗아 가는구나. 요셉을 잃었고 시므온도 잃었다. 그런데 이제 너희는 베냐민마저 빼앗아 가겠다는 거냐? 하나같이 다 나를 괴롭힐 뿐이로구나!"』

→ 그들과 아버지는 돈뭉치를 보고 두려워한다. 야곱은 3아들을 잃게 되었다고 괴로워한다.

- 해롭게 한다 → 직역‘모든 일들이 내 위에 있다’ 모든 일들을 야곱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는 의미.


(창 42: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창 42:37)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가 베냐민을 다시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못한다면 저의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 막내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오겠습니다."』

→ 고대근동사회에서 아들은 자신의 분신으로 여긴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일처럼 죽을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르우벤은 자기가 책임지고 다녀오겠다고 한다. 자신의 두 아들도 담보로 내민다. 장자의 책임감인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인가?

cf. ‘야곱의 아들 베냐민 vs 르우벤의 두아들’에 대한 마음

→ 요셉의 동생 베냐민 vs 르우벤의 친동생 시므온

cf. 만약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면, 계속해서 르우벤이 장남의 역할을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2차여행에서는 유다의 역할을 강조된다. 요셉은 은잔을 통해 베냐민을 보호하려는 형들의 모습과 유다의 변론(44:18-33)을 듣는다. 장자권의 이양?

cf. 야곱이 르우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창 42: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르우벤은 계속 강조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 이후 르우벤의 역할은 나오지 않는다.


▷ 43장 이후에는 2차여행과 이집트로 들어가는 과정, 야곱의 축복기도가 있다.

(창 49:3-4)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 49:3-4) 『[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이요, 나의 힘, 나의 정력의 첫 열매다. 그 영예가 드높고, 그 힘이 드세다. [4] 그러나 거친 파도와 같으므로 또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와서 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네가 으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 아버지가 기억하는 르우벤은 첫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자..


* 모세의 축복

(신 33:6)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신 33:6) 『르우벤은 비록 그 수는 적으나, 잘 살게 하여 주십시오.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BC 11세기 암몬족속의 침략을 받아 그 수가 격감되고, B.C.9세기 모압에 멸망당함. 가장 먼저 멸망당한 지파


[정리]

왜 그는 이스라엘의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사권은 레위에게로, 통치권은 유다에게로, 상속권은 요셉에게로 넘겨주고 말았을까? 무엇보다 그는 장자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치명상이다. 동생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지 말라’는 권고 밖에 못했을까? 이것은 그의 무능을 입증하며, 그리고 일가족이 함께 벧엘로 올라가고 라헬이 죽은 후 그의 서모 빌하와 동침했다는 것은 그의 생애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되었다.

① 첫아들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② 자신이 아프더라도 상대의 괴로움을 책임지려 한다.

③ 어머니의 괴로움을 책임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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