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9. 유다 - 야곱의 아들, 통치자의 지팡이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0. 26. 12:29

 [형제들의 감정과 유다의 제안]


레아의 아들은 르우벤에 이어 시므온과 레위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다. 있다면 34장에 디나의 성폭행으로 인한 분노로 기습하여 히위족속의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과 그의 성읍의 모든 남자들을 죽였고 다른 형제들은 노략을 했다. 그리고 유다와 요셉을 제외하고는 다른 아들들도 함께 있고 움직이지만 기록이 없다. 베냐민의 경우 출생과정과 이집트로 가는데 아버지의 감정과 요셉의 특별대우가 기록되어 있을뿐 역시 다른 기록은 나와 있지 않다.

지난주 르우벤을 보면서 굉장히 감정적이고 상대가 아픈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레아도 야곱도 빌하도 모두 감당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그로 인해 장자이지만 그 역할은 자연스럽게 살육으로 인한 시므온과 레위를 이어 유다에게로 넘어갔다. 유다는 장자 르우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창 29:35 레아의 4째 아들로 출생

창 37장 요셉의 어릴적 이야기에서 요셉을 팔도록 주도한다.

창 38장 유다의 가족사와 다말이야기

창 43장 유다의 야곱설득과 2차 이집트행

창 44장 요셉에게 간청하고 인질이 되려 한다.

창 46:28 야곱의 일행 먼저 요셉에게 간다.

창 49:8-10 유다에 대한 야곱의 축복 → 통치자의 지팡이, 메시야 형통으로


* 유다의 출생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레아의 4째아들로 출생


* 이후 외가집의 생활과 떠남, 얍복나루와 가나안의 정착, 생활은 목축으로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한다. 이때까지는 리더로서의 유다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 그들의 상황은 르우벤과는 달리 형제들에게 불편한 감정이 쌓이게 할뿐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 요셉이 자기들에게 올 때 유다의 제안으로 팔게 된다.

→ 37장은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꿈(1-11), 야곱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낸다.(12-18)

→ 18-25 요셉이 그들에게 오자 형제들은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려 계획하고, 르우벤은 요셉을 구하려 한다. 형제들은 요셉을 붙잡아 채색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던진다.


* 형들의 미움의 표현(미움은 희생양을 만든다)

(창 37:18-20)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 37:18-20) 『[18] 그런데 그의 형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 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 멀리서 동생 요셉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요셉은 100km나 넘는 거리를 왔다. 그런 동생이 반갑기는 커녕 죽이고 싶다.

Q. 무엇이 이토록 한 사람을 보고 죽이고 싶게 했을까? 어떤 과정으로 이렇게 되었을까?

① 과거의 삶에 미움이 쌓였다. 어머니간의 갈등과 고통, 아버지의 편애는 누군가를 향한 미움으로 쌓이게 했을 것이다. ⇒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 자신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가 있다. ex)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밉고 미우면서 사랑한다.

② 이 마음이 구체적인 희생양을 찾아 겉으로 드러내며 표현하기 시작한다.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시기하다(카나)  흥분이 넘치어 질투의 성을 내다.

요셉의 꿈이야기는 형들이 시기의 마음을 갖게 한다. 미움과 불편한 마음은 ‘시기’의 마음으로 대상을 정하고 구체적인 마음을 정하게 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아버지의 사랑의 대상인 요셉을 정하게 했을 것이다. ⇒ 이때 자신의 고통이 미움으로, 미움이 시기로 되었음을 모른다. 공격대상인 요셉만 보이고 미워하는 이유가 정당하고 생각한다.

③ 그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자기들 앞에 나타났다.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이다. 형들의 눈에는 요셉이 먼 여정으로 지치고 힘들었을 형편없는 모습임에도 그렇게 보이지 않고 죽이고 싶은 대상으로 보인다. ⇒ 익명의 상황이 되자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마음이, 그동안 감추고 눌러 놨던 그림자의 마음이 올라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내가 이런 마음이구나’하며 오히려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그러나 제어가 되지 않는 마음은 희생양에게 폭력을 가하게 된다.

④ 행동의 근거로 삼는다 :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 요셉의 꿈은 그렇지 않아도 힘들었을 그들에게 좌절감(동생에게 절하는 형)을 갖게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이 있음에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헛되게 보고 조롱거리게 되게 한다. ⇒ 자신의 행위에 정당한 근거로 삼는다. 그림자의 시각으로 볼때 꿈이 틀렸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옳다는 것이다.

⑤ 행동을 계획한다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 요셉을 괴롭게 하고, 더 나아가 자신들의 고통의 근원인 아버지를 괴롭게 하려 계획을 상상한다. ⇒ 구체적인 행동을 준비한다.

⑥ 목적은 상대들이 고통을 받기를 원한다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 정리 : 쌓아진 고통은 대상을 찾아 희생양으로 만든다. 미움으로, 시기로, 정당함으로, 행동의 근거와 계획으로 점차 커져간다. ⇒ 극복의 방법? 경계선을 알고 영향받지 않는 것.. ex) 예수께서 광야의 유혹때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의 자극에도 영향받지 않고 그저 자신의 고백을 하실 뿐이다.


* 르우벤의 제안

(창 37:21-22)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창 37:21-22)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르우벤의 제안은 죽이지는 않고 구덩이에 넣게 한다. ⇒ 장자의 권위보다는 그림자에 붙잡혀 있는 형제들의 양심이 된다. 아버지에게 괴로움을 주려던 형제들의 그림자는 르우벤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과 만나게 된다. 죽이려던 그림자의 욕구는 진정된다.

(창 37:23-24)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 37:23-24) 『[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 형들은 무방비의 동생을 구덩이에 던진다.

Q. 며칠을 있었을까? 3일 정도였을 것이다.(후에 요셉이 그들을 3일 감옥에 가둔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Q. 이때 형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동생이 애걸하여도 듣지 않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창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유다의 제안, 유다의 리더쉽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 했다. 전체적인 그림자적 감정의 분위기이다. 이들은 정말 죽이려 했을까? 르우벤은 자리에 없고 유다가 제안한다.

Q. 르우벤은 어디에 있을까? 3일의 시간이 형제간의 다툼의 시간이었다면 르우벤은 구덩이에 있는 요셉과 화가 나 있는 형제들 사이에게 힘들어 자리를 피한 걸까? 가장 부딪치는 형제는 누구일까? 빌하와 실바의 자녀보다는 직접적인 피해의 대상인 레아의 자녀일 것이고, 그중에 손위인 시므온과 레위와 가장 마찰이 크지 않았을까? 이후에 발생하는 디나와 세겜의 대처방법을 볼때 시므온과 레위는 분노와 표출이 많았을 것이고, 가장 주동적일 수 있다.

cf. 요셉이 형제들의 1차 여행때 볼모로 시므온을 결박하는 것은 그러한 이유였을까?

(창 42: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직역 :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고 그의 피를 철저히 숨긴다면 무엇이 유익할까

→ 형제들의 계획-죽이고 숨긴다-이 그대로 된다하여도 무엇이 유익인지 반문한다. 형제들의 반발을 줄이면서도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는다.

- 우리 동생 → ‘우리의 형제’(아히누) ⇒ 유다는 요셉을 형제라고 부름으로 그들의 분노의 대상이 자신의 적이 아니라 형제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게 한다.

- 무엇이 유익할까 → 이는 절제된 언어를 반어법적으로 사용하여 형제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 헛되고 부당한 일임을 상기시켜 생각을 돌이키게 유도한다.

-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 원래 크기의 악보다는 다음으로 작은 죄를 선택한다. 르우벤의 제안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유다의 제안은 대안이 된다. ⇒ 이때 그들은 요셉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아픔을 보았어야 했다.

-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 직역 ‘왜냐하면 그는 다름 아닌 우리 형제 우리 살이기 때문이다.’

→ 앞에 ‘왜냐하면’(키)이 있다. 요셉을 죽이지 말아야할 분명한 이유가 형제임을 말하면서 원초적인 감정을 말하면서도 거기까지는 행하지 않도록 제안한다.

-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형제들이 즉각적으로 동의한다.

▷ 잘못된 제안과 선택, 그리고 결과

① 차선이라며 동생을 팔기보다는 스스로의 감정을 보아야 했다.

② 자신의 분노로 제한적인 판단을 한다. 다른 것을 예상하지 못한다.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창 37:20)며 요셉만 없으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후 아버지와 라헬의 고통은 너무나 컸다.

→ 창 37:29-36 르우벤이 괴로워하는 모습, 숫염소피를 요셉의 옷에 적시고 아버지에게 보이는 형제들, 오랫동안 애통하며 자녀들의 위로를 거절하는 야곱의 모습이 나온다.

(창 37:34-35)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정리]

① 르우벤과 유다의 모습 외에 다른 형제들의 활동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다.

② 형제들의 감정은 미움에서 죽이고 싶은 분노까지 확대되고 있다.

③ 그것을 자신을 보는 도구로 삼지 않고 다른 희생양을 삼아 쏟아낸다.

④ 유다의 제안은 차선을 선택하게 할 뿐 가장 좋은 것은 아니었다.

⑤ 형제애에 대한 유다의 언변이 요셉을 살린다.

⑥ 인간적인 모습 vs 하나님의 활동 ?


[유다의 리더십과 어법]

 

지난주 37장 요셉을 파는 장면을 중심으로, 요셉에 대하여 형제들의 깊은 미움의 감정과 희생양을 삼는 것, 해결방법으로 르우벤의 제안은 무시되고 유다의 제안대로 되는 것을 보았다. 장남 르우벤에서 4남인 유다에게로, 유다의 설득력과 리더쉽의 시작으로 보았다.

오늘은 유다의 제안을 보충해보고 유다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되는지 보자.


Q. 과연 유다의 제안이 옳고 유일한 방법이었나?(보충)

* 두 형제의 발언들 사이에 모티프의 대칭적 구조

모티프

르우벤

유다

생명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우리가 우리의 형제를 죽이면 무엇이 유익할까

를 흘리지 말라

[우리가] 그의 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처분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라

자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

그에게 을 대지 말라

그에게 우리 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 르우벤은 아버지를 생각하여 요셉을 죽이지 않으려 하고, 유다는 요셉을 죽여 무슨 유익이겠냐며 팔자고 한다.


* 율법의 이해

(출 21: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6) 『사람을 유괴한 자는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가 데리고 있든지,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


(신 24:7)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신 24:7) 『어떤 사람이 같은 겨레인 이스라엘 사람을 유괴하여 노예로 부리거나 판 것이 드러나거든, 그 유괴한 사람은 죽여야 한다.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그러한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레 24:17) 『만일 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민 35:18) 『만일 사람을 죽일 만한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죽이면 그는 살인한 자니 그 살인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니라』

(민 35:31) 『고의로 살인죄를 범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 살인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유괴하고 파는 행위는 사형에 해당된다. 곧 형제를 죽이는 것보다 파는 행위는 좀더 작은 행위이거나 차선의 선택이 아닌 그 자체로도 사형에 해당된다.

→ 곧 형제들의 감정과 희생양은 르우벤의 제안이 아닌 유다의 제안을 선택했고 그렇게 한 것은 사형에 해당된다. cf. 가인의 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사형에 해당된다.

⇒ 이런 율법적 이해가 있음에도 창세기는 유다의 제안과 실행을 기록하고 있다. 결국 악함을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악함에도 선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비교 대조된다.

ex) 이삭의 장자기도와 그것을 가로채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장자로 선택된 야곱은 타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가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민족으로 만드셨을 것이다.

르우벤과 유다 모두 요셉을 죽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다. 르우벤이 논리적이지는 않아도 옳았다. 하지만 유다는 논리적이지만 옳지 않았다.

르우벤은 야곱의 감정을 위해서는 살리려 하면서, 형제들의 감정은 살피지 못한다. 결국 급하게 처리하려 하면서 중요한 시기에는 그 자리에 없었고 실패한다.

유다는 요셉을 살리려는 분명한 의도는 나타나지 않지만, 형제들의 도덕감과 감정(죽여서 무엇이 유익인가, 우리 형제이다)을 논리에 이용한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뒤 논리적 수사적으로 표현한다.

→ 유다의 이러한 논리 설득은 이후에도 나온다.


38장 유다와 다말이야기

39-41장 요셉의 이집트생활

42장 1차 이집트행-시므온을 결박되고 르우벤의 설득은 실패

43장 2차 이집트행


(창 43:1-2)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창 43:1-2) 『[1] 그 땅에 기근이 더욱 심해 갔다. [2] 그들이 이집트에서 가지고 온 곡식이 다 떨어졌을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다시 가서, 먹을거리를 조금 더 사오너라."』

* 상황

① 1차 여행이후 야곱은 베냐민을 보낼 생각이 없다.

② 여전히 기근은 심하고 곡식은 다 먹었다.

③ 결국 조급해진 아버지가 말을 한다. 이집트에 가서 곡식을 구하려면 베냐민을 보내야 함을 알지만..


* 유다의 설득방법

(창 43:3-5)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창 43:3-5)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하게 경고하면서 너희가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다시는 나의 얼굴을 못 볼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4] 우리가 막내를 데리고 함께 가게 아버지께서 허락하여 주시면 다시 가서 아버지께서 잡수실 것을 사오겠습니다. [5] 그러나 아버지께서 막내를 보낼 수 없다고 하시면 우리는 갈 수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막내 아우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다시는 나의 얼굴을 못 볼 것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

①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 유다는 아버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린다.

cf. 르우벤은 요셉이 잡혔을 때도 바로 말하지만 유다는 며칠을 기다렸고, 야곱도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1차 이집트행에서도 르우벤은 바로 자기 아들을 볼모로 삼겠다 한다. 하지만 유다는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창 42: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베냐민)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②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 [5] ...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지금의 상황을 재인식시킨다.

cf. 요셉 때도 르우벤은 그냥 죽이지 말자고 하지만 유다는 형제들에게 요셉이 자신들의 형제임과 죽임으로 무엇이 유익하냐고 강조했다.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③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아버지의 결정이고 선택이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그 선택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보내시면 가고 아니면 못간다.’

cf. 요셉 때도 죽이지 않기 위해 형제들을 자극하면서 선택하게 했다.

(창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유다의 논리순서 : 기다림-재인식-선택하도록


* 야곱의 괴로움과 아들들의 설득

(창 43:6-7)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창 43:6-7) 『[6] 이스라엘이 자식들을 탓하였다. "어찌하려고 너희는 아우가 있다는 말을 그 사람에게 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느냐?" [7]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 사람은 우리와 우리 가족에 관하여서 낱낱이 캐물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계시냐? 하고 묻기도 하고, 또 다른 형제가 더 있느냐?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가 묻는 대로 대답하였을 뿐입니다. 그가 우리의 아우를 그리로 데리고 오라고 말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 유다를 중심으로 모든 아들들은 괴로워하는 야곱을 설득하고 있다.


* 유다의 재차 강조

(창 43:8-10)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창 43:8-10) 『[8] 유다가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말하였다. "제가 막내를 데리고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곧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야 우리도 아버지도, 우리의 어린 것들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9] 제가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 아이에 대해서는 저에게 책임을 물어 주십시오, 제가 그 아이를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그 죄를 제가 평생 달게 받겠습니다. [10] 우리가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지 않았으면 벌써 두 번도 더 다녀왔을 것입니다."』

- 보내시면 : 명령형으로 부탁에서 강요로 바뀌고 있다.

-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 보증하다(아라브 )

→ 자신이 보증한 사람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그 사람을 대신하여 보상하겠다는 의미, 더 나아가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겠다는 의미이다.

→ 따라서 유다는 베냐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는 뜻과 안전에 이상이 생기면 자신의 목숨도 내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 실제로 유다는 요셉이 베냐민을 종으로 삼으려 할 때 대신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창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cf. 르우벤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라고 하지만 유다는 자신의 목숨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고대근동사회에서 자식이나 가족의 생명이 가장의 손에 있다.

Q. 왜 그리고 어떻게 유다는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게 되었을까? 충분히 자신은 피해갈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셉이후 20여년동안 아버지의 괴로움을 충분히 보았기에 베냐민은 데려간다고 해도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 야곱의 결단(11-14)

(창 43:13-14)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11절 예물을 가져가라. 12절 넣어준 돈을 다시 가져가라. 13절 네 아우 베냐민을 데리고 가라. 14절 잃게 되면 잃으리라


[정리]

① 르우벤이 논리적이지는 않아도 옳았지만 유다는 논리적임에도 옳지 않았다.

② 유다의 논리설득방법은 '기다림-재인식-선택하도록'이다.

③ 유다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리더십의 관점변화)


 

[삶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옳지는 않으나 논리적인 유다의 어법은 야곱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강조와 야곱의 결단은 그들을 애굽으로 갈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요셉 앞에 선다.

(창 43: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창 43:15) 『사람들은 선물을 꾸리고 돈도 갑절을 지니고, 베냐민을 데리고 급히 이집트로 가서, 요셉 앞에 섰다.』

→ 요셉 앞에 서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베냐민이다. 베냐민을 데려오면 간첩이라는 오해를 벗고 시므온을 구해올 수 있다. 단 예물과 갑절의 돈은 요셉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혹시의 경우라도 안전장치로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은 예상하고 준비한대로 가는 것은 아니다.


* 창 43:16-34 요셉의 집에서 세가지 감정

요약 : 요셉의 집으로 인도된 형제들은 지난 일이 생각나며 긴장한다.(18) 자루에 있던 돈에 대해 이야기하자(20-22) 안심시키며 시므온을 데려온다.(23) 요셉과의 대화에서 형제들의 나이순을 알아 이상히 여기다(33)

→ 장소는 요셉의 집이다. 여기서 형제들은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① 두려움 vs 안심

(창 43: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창 43:18) 『그 사람들은 요셉의 집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서 겁이 났다. 그들은 "지난 번에 여기에 왔을 적에, 우리가 낸 돈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자루 속에 담겨서 되돌아왔는데 그 돈 때문에 우리가 이리로 끌려온다. 그 일로 그가 우리에게 달려들어서, 우리의 나귀를 빼았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것이 틀림없다." 하고 걱정하였다.』

⇒ 대답 : 안심하라, 관리인이 안심을 시켜준다.

(창 43:23)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창 43:23) 『그 관리인이 말하였다. "그 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댁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댁들의 조상을 돌보신 그 하나님이 그 자루에 보물을 넣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댁들이 낸 돈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관리인은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데리고 왔다.』

→ 시므온을 데려다 줌으로 안심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의 상황도 안심이 되어간다.


(창 43:24-25) 『[24]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고 물을 주어 발을 씻게 하며 그들의 나귀에게 먹이를 주더라. [25]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창 43:24-25) 『[24] 관리인은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 안으로 안내하고서 발 씻을 물도 주고, 그들이 끌고 온 나귀에게도 먹이를 주었다. [25] 그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게 된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정오에 올 요셉을 기다리면서 장만해 온 선물을 정돈하고 있었다.』

- 발을 씻게 하며 → 당시의 손님접대법이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간첩이 아닌 손님으로 대우받는 것에 대해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 예물을 정돈하고 → 그럼에도 예물을 정돈하는 것은 자신들이 가나안에서 준비해 온 예물을 애굽총리가 잘 볼 수 있도록 배열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관리인을 통해 정중한 대접과 시므온과의 상봉, 총리와의 오찬예고에도 불안함과 선물로 모든 것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표현된다.

- 그들이 거기서 음식을 먹겠다 함을 들었으므로 예물을 정돈하고 요셉이 정오에 오기를 기다리더니 → 애굽의 총리와 타국의 일개 평민들과 식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이다. 형제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다시 긴장되게 하는 상황일 것이다. 예물을 정돈하고 기다림은 오해가 풀렸다는 것에 안심과 동시에 높은 분과의 식사해야 하는 긴장을 보인다.


26-32 요셉과의 대화내용이다. 아버지의 안부와 베냐민에 대한 감정이 나온다.


② 이상히 여기다 : 대화이후 식사 자리에서 요셉이 형제들을 나이순대로 앉힌다. 이것을 보고 서로 어리둥절해 한다.

→ 타마흐() 소스라치게 놀라다. : 형제들은 총리가 자신들의 서열을 알고 있다는 것에 너무나 깜짝 놀라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

(창 43:33)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창 43:33) 『요셉의 형제들은 안내를 받아가며 요셉 앞에 앉았는데 앉고 보니, 맏아들로부터 막내 아들에 이르기까지 나이 순서를 따라서 앉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어리둥절하면서 서로 쳐다보았다.

cf. (창 43:32)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 따로 상을 차리는 것은 애굽인에게 당연한 것이지만 이로 이해 형제들은 전혀 요셉을 알아볼 수 없다.


③ 즐거워하다 : 취했다는 것을 즐겁다고 의역. 형제들은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되는 것같아 안도감에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 솨카르() 취하다 : 직역 ‘그들은 마셨고 그리고 그와 함께 취하였다’

(창 43:34)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창 43:34) 『각 사람이 먹을 것은 요셉의 상에서 날라다 주었는데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몫이나 더 주었다. 그들은 요셉과 함께 취하도록 마셨다.』


* 44:1-17 요셉의 새로운 계략

(창 44:1-3)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창 44:1-3) 『[1] 요셉이 집 관리인에게 명령하였다. "저 사람들이 가지고 갈 수 있을만큼 많이, 자루에 곡식을 담아라. 그들이 가지고 온 돈도 각 사람의 자루 아귀에 넣어라. [2] 그리고 어린 아이의 자루에다가는 곡식 값으로 가지고 온 돈과 내가 쓰는 은잔을 함께 넣어라." 관리인은 요셉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 [3] 다음날 동이 틀 무렵에 그들은 나귀를 이끌고 길을 나섰다.』

→ 요셉은 새로운 계략을 세우고,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는다. 아침에 형제들은 출발한다. 이때까지 형제들은 너무나 즐거웠다. 베냐민도 시므온도 모두 안전하게 함께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 청지기에 쫓아가게 하다.

(창 44:4-6)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창 44:4-6) 『[4] 그들이 아직 그 성읍에서 얼마 가지 않았을 때에, 요셉이 자기 집 관리인에게 말하였다. "빨리 저 사람들의 뒤를 쫓아 가거라. 그들을 따라잡거든 그들에게 너희는 왜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어찌하려고 은잔을 훔쳐 가느냐? 그것은 우리 주인께서 마실 때에 쓰는 잔이요, 점을 치실 때에 쓰는 잔인줄 몰랐느냐? 너희가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매우 고약하구나! 하고 호통을 쳐라." [6] 관리인이 그들을 따라잡고서, 요셉이 시킨 말을 그들에게 그대로 하면서, 호통을 쳤다.』

→ 그들이 그리 멀리가기 전 요셉이 청지기를 보내어 호통치게 한다.


- 형제들의 반론

(창 44:7-9)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창 44:7-9) 『[7] 그러자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소인들 가운데는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8] 지난번 자루 아귀에서 나온 돈을 되돌려 드리려고 가나안 땅에서 여기까지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대의 상전 댁에 있는 은이나 금을 훔친다는 말입니까? [9] 소인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것이 나오면 그를 죽여도 좋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주인의 종이 되겠습니다."』

→ 누명을 벗기 위한 간절함이 있다. 9절은 그만큼 훔치지 않았음을 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Q. 9절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섣부르게 말한다. 르우벤과 유다와 다른 형제중 누구의 말일까? 섣불리 말하는 르우벤인가, ‘우리’라는 표현으로 볼 때 집단과 공동체적인 표현을 하는 유다일까?


- 청지기의 대답

(창 44: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창 44:10) 『그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좋다. 너희가 말한 대로 하자. 그러나 누구에게든지 그것이 나오면, 그 사람만이 우리 주인의 종이 되고, 너희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죄가 없다."』

→ 9절의 말대로 다른 사람은 죄가 없고 발견된 사람은 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 그런데 베냐민에게서 나오다.

(창 44:11-13)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창 44:11-13) 『[11] 그들은 얼른 각자의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서 풀었다. [12] 관리인이 맏아들의 자루부터 시작하여 막내 아들의 자루까지 뒤지니,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나왔다. [13] 이것을 보자 그들은 슬픔이 북받쳐서 옷을 찢고 울면서 저마다 나귀에 짐을 다시 싣고 성으로 되돌아갔다.』

→ 검사를 받던 형제들은 베냐민에게서 나오자 옷을 찢으며 괴로워한다.

→ 베냐민만이 아니라 모두가 요셉에게로 돌아온다.


창 44:14-17 요셉앞에서 유다가 말하다.

(창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창 44:14)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거기에 있었다. 그들이 요셉 앞에 나아가서 땅에 엎드리자,』

-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 형제들이 길에서 붙잡혀 왔다. 앞에다가 ‘유다’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유다와 형제들이 따로 온 것이 아니라 다른 형제보다 ‘유다’를 본격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 요셉은 그들을 떠나 보냈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 이들은 요셉을 보자마자 그 앞에서 급히 꿇어 엎드린다.


(창 44:15)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창 44:15) 『요셉이 호통을 쳤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쳐서 물건을 찾는 줄을 너희는 몰랐느냐?"』

→ 요셉이 자신을 모든 것을 아는 사람으로 말함을 자기 앞에서 속이지 못하게 한다.


(창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6) 『유다가 대답하였다. "우리가 주인 어른께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의 죄없음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소인들의 죄를 들추어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을 가지고 간 아이가 모두 주인 어른의 종이 되겠습니다."』

→ 반어적인 질문법을 통해 자신의 정직을 강조하며, 좌절과 낙담을 표현한다.

-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 자신들의 정직을 강조하는 유다가 하나님이 자신의 죄를 찾아내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보여주고 있다.

-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 9절에서는 발견자는 죽고 나머지는 노예가 된다고 했으나 이제는 모두 노예가 되겠다고 수정한다.

⇒ 베냐민이 범인으로 지목된 상황에서 그를 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모두가 노예가 되겠다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직을 강조한다.


* 요셉의 의도와 유다의 반응

(창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창 44:17) 『요셉이 말하였다. "그렇게까지 할 것은 없다. 이 잔을 가지고 있다가 들킨 그 사람만 나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돌아가거라."』

→ 요셉은 모두 돌아가고 베냐민만 남게 하라며, 그렇게 했을 때 어떤 반응을 하는지 의도적으로 테스트한다.

⇔ 요셉의 표현으로 유다는 무엇을 알았을까? 1. 죽이지 않을 것이는 것, 2. 베냐민만 노예로 삼겠다는 것 3.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베냐민을 데려가지 못하면 요셉의 경우처럼 아버지의 반응이 예상된다.

cf.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 이 상황에서 유다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리]

① 형제들은 예상되는 것을 준비하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 총리의 집과 상황들

② 요셉의 집에서 환대와 안심을 받지만 길에서 짐을 검문받으며 누명을 쓴다. → 요셉이 형들에게 붙잡혔을 때와 유사하다.

③ 유다를 본격적으로 리더로 내세운다.

 

[형제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정직해졌을까?]


지난 주에 나눈 부분은 우리가 삶을 예상하고 준비하여도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았다. 유다를 중심으로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된 형제들은 순탄하게 데려올 것이라 생각했다. 단지 베냐민만 데려가면 간첩오해에서 벗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놓은 것은 새로운 변수였다. 그 동생이 도둑으로, 그래서 환대를 베푼 총리의 물건을 훔친 사람이 되어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도저히 풀수 없는 오해, 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CF에서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스피드’라고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또다른 준비이다. 순간의 변수와 상황에 반응하고 그것만 무마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단단하고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체질로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유다와 형제들은 무엇을 보이는가? 요셉이 형들의 거짓과 시기로 팔려간뒤 20여년의 세월은 그들을 어떻게 바뀌어 놓았는가?

과연 거짓이 정직으로 바뀌는가? 요셉과 이야기하는 유다의 한마디 한마디를 보면서 그들의 정직을 보자..


▷ 일단 요셉의 제안에서 그 키워드를 볼 수 있다.

(창 42: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창 42:20) 『그러나 너희는 반드시 막내 아우를 나에게로 데리고 와야 한다. 그래야만 너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며, 너희가 죽음을 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 진실됨을 증명하면 죽지 않는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① 1차 여행을 왔을 때 요셉은 그들에게 정탐꾼이라 했다.

(창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② 이에 형제들은 자신들이 정직한 사람이라고 하며, 한 아버지의 아들임을 정직히 말한다.

(창 42: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 독실한 자, 확실한 자 - 케님(true man) 청렴한, 강직한 → 자신들은 심지가 굳고 청렴함을 강조

(창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③ 그러나 요셉은 진실함을 증명하라 한다.

(창 42: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 방법은 막내를 데려오는 것

(창 42: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 요셉의 의지와 시험방법은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④ 그들은 3일을 갇힌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⑤ 3일뒤 요셉은 다시 강조한다.

(창 42:19-20)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⑥ 이에 그들의 반응-요셉의 일로 이렇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⑦ 요셉은 그들의 반성을 알아듣고, 시므온은 남고 형제들은 집으로 간다.

⇒ 이후 그들이 보이는 모든 과정에서 형제들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요셉에게도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가? 확인해보자.


▷ 상황(44:14-17)은 요셉의 환대 이후 베냐민에게서 은잔이 나왔고 모두 요셉의 집으로 온다. 요셉의 책망에 유다가 말한다. 유다는 자신이 노예가 되겠다(16)고 하고 요셉은 잔이 발견된 자만 종이 되리라(17) 한다.

(창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 44:17)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 정직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을 요구한다. 정직에 준한 책임도 감당해야 한다.


* 44:18-34 유다가 베냐민을 위하여 간청하며 자신이 대신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① 간청하기 시작하다.

(창 44: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창 44:18)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간청하였다. "이 종이 주인 어른께 감히 한 말씀 드리는 것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른께서는 바로와 꼭 같은 분이시니, 이 종에게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 엎드린 상태에서 앞으로 간다. 굉장히 다급해진 유다의 마음을 느껴진다.

- 내 주여 원하건대 →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게 해달라기 앞서 자신을 낮추며 요셉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고 있다.

⇒ 다급한 상황에서도 대화의 순서를 따르고 있다.

⇒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집트의 총리가 그들의 말을 들을리 없고 더 이상의 기회도 없을 것이다. 유다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 자리에서 급하고 간절하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② 19-24 발단이유-베냐민을 데려온 이유는 요셉이 베냐민을 보고 확인하기 원해서 였다.

(창 44:19-24) 『[19] 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 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 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 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 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 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21절 ‘내가 그를 보게 하라’ - 단순히 한번 보겠다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자세히 지켜보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강력한 제안하여 데려오게 되었다고 유다는 강조한다.

22절 ‘동생이 아버지를 떠나면 아버지는 죽는다’고 말했지만 - 아버지와 동생을 보호하려는 의지

23절, 그럼에도 요셉이 데려오라 했음을 강조한다.

cf. 요셉과의 대화에서 베냐민을 데려오면 진실함을 믿겠다고 하였다. (창 42: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아버지에게 전할 때 요셉의 말을 전한다. (창 43: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24절, 요셉의 의사를 아버지에게 전했다. 요셉은 진실함을 요구하고 유다는 자신들에게 있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진실하게 말했음을 강조한다. cf. 요셉이 팔려갔을 때는 거짓말을 했었다.


③ 25-29 유다는 아버지의 감정을 전한다. → 베냐민마저 잃게 되면 스올로 내려가는 것이라 한다

(창 44:25-29) 『[25] 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 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 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 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가려 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25절, 그 뒤에 있었던 상황을 요셉에게 이야기한다.

26절, 곡식을 사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함을 말했음을 이야기한다.

27-29절, 아버지의 감정이 들어 있는 말을 그대로 전한다.


④ 30-31 아버지가 베냐민과 어떤 상태인지 설명하다.

(창 44:30-31) 『[30]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 야곱은 요셉이 죽은 것으로 알고 그 사랑을 베냐민에게 쏟았다. 곧 베냐민은 야곱에게 모든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 사랑을 넘어 생명과 같다.

- 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 생명에 이어 죽음을 이야기한다. 야곱의 삶과 죽음이 사랑의 대상에게 있음을 강조한다.

⇒ 베냐민이 가야하는 이유는 곧 아버지를 살리는 이유이고 그래서 자신이 베냐민을 대신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말한다.


⑤ 32-34 유다의 바램과 제안

(창 44:32-34) 『[32]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32절, 유다가 아버지에게 담보하며 약속하였음을 말한다. (창 43: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 [요약]

① 어릴적 요셉은 정직하나 형제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것을 알고 있는 야곱은 요셉을 보내고 요셉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형제에게 갔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② 20여년 뒤 다시 만난 요셉은 형들에게 진실됨을 증명하라 한다.

③ 세월과 아버지의 우울을 보면서 그들은 더 이상 거짓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④ ⇒ 요셉의 확인과 상관없이 형제들은 정직해져 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베냐민을 대신할 정도록 마음이 달라져 있다.

⇨ 요셉이 확인한 것 - 형제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요셉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형제들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고 그 편애의 대상까지도 사랑하게 되었다. 그 편애는 더욱 심해져서 야곱의 생명과 죽음이 베냐민과 묶여 있다고 한다.

핵심 :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진실되게 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바뀌었을까?

① 형제들의 삶의 여정에 그들의 선택의 결과를 보면서 자신들의 시각을 자신에게서 연약한 아버지로 옮겨진 것이다. 시기만큼 아버지를 원했던 그들이 자신들의 거짓으로 힘들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거짓을 버렸으리라.

②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은 요셉이다. 그의 모습은 정직이다. 야곱이 요셉을 사랑의 대상으로 사랑하지만 형제들은 요셉의 정직의 모습을 자신에게 받아들이려 했으리라. 시기의 대상인 요셉이 모델이 되는 것이다.

⇒ 거짓에 대한 죄책감과 불편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였으리라.


[유다를 위한 축복기도와 메시야]

 남은 5분은 오디오로..



지난주에 나눈 것은 유다의 형제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정직해졌을까?’하는 부분을 나누었다. 평상시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던 그들이 사랑을 받는 동생을 요셉을 시기했다. 그 시기심은 그 동생을 해하려 했고 결국에는 노예로 팔았다. 이후 아버지는 아들이 없어져 그 상실에 죽음과 같은 시기를 지냈고, 그 아픈 마음은 베냐민에게 표현되었다. 20여년의 이 과정이후 유다와 형제들을 거짓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만나 요셉은 그들의 진실함을 요구했고 그들은 전혀 거짓없이 진실함을 보였다. 그들은 그렇게 바뀌었고 이과정에서 유다는 형제들의 리더로 세워졌다.


45:1-15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45:16-20 바로가 이스라엘가족을 이집트에 들어오도록 하다.

45:21-28 야곱이 듣고 기뻐한다.

46:1-7 브엘세바에서 제사한 후 애굽으로 가다.

46:8-27 애굽으로 가는 가족명단

46:28-34 요셉이 야곱을 만나다.


* 이렇게 애굽으로 향할 때 야곱은 유다를 먼저 보낸다.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창 46:28) 『이스라엘이 유다를 자기보다 앞세워서 요셉에게로 보내어, 야곱 일행이 고센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게 하였다. 일행이 고센 땅에 이르렀을 때에,』

→ 야곱은 유다를 인정한다. 모든 과정에서 그의 역할(리더)을 인정하는 듯하다.


이것을 보면 확실히 유다가 형제에게서 리더가 된 것은 분명하다. 아버지가 인정하고 형제들이 이에 반박하지 않는다. 그럼 현대의 리더는 어떤가? CEO를 한 리더로 본다면 어떨까?



피테르 브뢰겔(Pieter Bruegel de Oudere)의 바벨탑.(1563년, 155x114cm)

독일에서 미디어심리학을 가르치는 저자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Peter Winterhoff-Spurk)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열두 가지 진실 중 ‘4.고급 노동자에 불과한 살찐 고양이’(p.83-103)


* ‘뉘른베르크 소비연구회’의 ‘직업군신뢰도’ 조사에서 2006년 대기업의 CEO에 대해 18%의 신뢰도를 보였다. 이보다 낮은 직업군은 10%의 정치가뿐이었다.

* ‘알렌스바흐 연구소’에서 2005년 직업가치순위에서 CEO는 22개 직업중 16위를 했고, 응답자 14%만 직업군 5개 안에 뽑았다.

* 위싱턴의 경제정책연구소의 발표-미국 CEO의 평균월급은 최저임금의 851배(2005)로 하루 오전근무가 최저임금노동자의 1년치보다 많다. 1965년에는 51:1이었다.

cf. 이외에도 거대한 퇴직보상금이나 보수등과 권한남용이 있다. 경제범죄의 1/3은 CEO가, 1/5는 중간간부에 의해 저질러진다.

Q. (엘리트사회학에 의하면) 독일의 경우 이런 경제계 지도층에 오르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은? 부유한 가정환경과 박사학위이다.

1. 부유한 가정환경 - CEO의 절반이 상류층출신이고 1/3이 중류층출신이다. 간부진은 92%가 이들이다. 이들 출신의 아들이 기업과 경제계에서 지도층이 된다. 간부직원의 아들이 기업의 최고자리에 오르는 비율은 일반노동자의 자녀보다 10배가 높다.

2. 박사학위 - 2만6천명(2005년), 독일100대기업의 CEO와 간부진 절반은 박사학위이고 대부분 경영학박사 혹은 자연과학박사이다.

3. 생활방식 - CEO와 간부진이 되려면 자신의 생활방식을 그들과 유사하게 맞춰야 한다. ex) 당당한 몸가짐, 기업가정신, 그들의 의복 및 행동양식에 통달 및 폭넓은 일반교양 갖추기

→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이외-사회적 신분상승자들이 중상류층의 생활방식을 완전히 따라잡기는 힘들다. 이들에게는 중상류층의 사교형식을 어려서부터 저절로 몸에 익힐 기회와 가능성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놀이처럼 익힌 사교형식이 이미 그 무리에 속한 사람과 그 무리에 속하고자 애쓰는 사람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지도층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순진한 척해서는 안된다. “위로 오르려면 고난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한때의 인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변절이 필요하다. 변절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버리고 완전히 전향해야 한다”

* 20세기말의 기업정책의 변화

1. ‘이해관계가치’관점 → ‘주주가치’지향으로

2. 독일CEO의 첫채용은 52세에서 45.8세로, 퇴직나이는 58.6세에서 54.9세로 낮아졌다.

3. 2005년 전세계 CEO 중 퇴직은 15%이고 독일권은 절반이 넘는다. 사유는 실적미흡이다.

cf. 최근 3년간 CEO교체비율은 44%, 정년퇴임은 1995년에 65%에서 2005년 40%

cf. 우리나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중 대표이사교체가 2002년 177개, 2006년 250개

cf. 문책성 CEO 교체 증가와 경험, 경험자 모셔오기,

4. CEO의 신규채용과 실적-경험없는 후보자를 외부에서 데려올 경우 초반 5년동안 실적이 좋다.

cf. 외부영입으로 성과에 대한 의구심, 외부영입 CEO의 보상에 대한 이사회의 불만, 외부영입과 내부육성에 대한 고민,

5. CEO의 카리스마-최근의 카리스마는 직원의 이성이나 이해력에 호소하는 것은 부족하다. 직원이 지도부를 따르게 되는 과정의 감정을 살피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상징적 지도’이다.

ex) 지멘스의 클라우스 클라인펠트는 직원에게 피자를 돌렸다. “클라우스는 직원들을 보살핀다”→비자금조성 및 뇌물로 부패기업이미지

   베텔스만의 라인하르트 몬(Reinhard Mohn)은 몇 년동안 점심시간에 똑같이 식판을 들고 정직하게 기다렸다. → 상징적 메시지? “나는 너희 중 하나다. 우리는 한 가족이다” 곧 직원을 생각하는 기업이라는 신화와 전설이 만들어졌다. 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 그의 가족이 운영해 온 출판사 베텔스만의 경영을 맡은 뒤 잡지, TV 방송사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으며 1971년에는 베텔스만을 주식회사로 전환해 회장 겸 CEO로 취임하는 등 45년간 재직했다. 2009년 88세로 사망.


⇒ 현대는 ‘미디어’ 활용하라.

1. 정치가는 전문지식, 지성, 신뢰, 신용과 잘생긴 외모에 호감가는 인상, 우월성과 자신감, 결단력과 신념에 대한 확신 등을 카리스마 넘치게 화면에 보여야 한다. 다음으로 지지자의 가치와 잠재력을 강조하고 지지자에 대한 친근함과 도덕성과 미래비전을 통해 믿음과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의도적인 구성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2. 경제계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조직에 대한 비전이 없어도 사회적 환경에 대한 민감성과 비전에 대한 설득력이 있거나 독특한 행동방식으로 자신을 변화의 옹호자로 표현할 수 있다.

⇒ 단점 : 시간이 흘러 지도자 스스로 본인이 정말 직원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 이것은 조직전체에 해가 된다.

※ 평균 46세의 CEO에 속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우선 행동양식이 선임자의 수준에 잘 맞아야 하고, 박사는 기본이고, 전문가 및 경영자로서의 성품 즉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고 외국경험은 필히 있어야 하고, 직원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동시에 감정적 욕구를 살펴야 하고, 기업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며 직원의 창의성, 소통, 팀워크 능력을 발견하여 키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속에 감추어진 감각부족, 거만함, 폐쇄성, 경직성, 과중한 부담, 불성실 등의 특성을 들켜서는 안되고, 관심을 끄는데 너무 신경을 쓰거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서도 안되고, 사회적 지식 부족이나 협동심 부족을 드러내서는 안되며, 야망이 너무 커서는 안되고, 전략적인 사고력도 갖추어야 한다.

※ 기업에는 수직적인 직급체계가 사라져서 ‘수직상승’은 불가능하고, 평생직장개념은 사라졌고, 거대한 사회적 지역적 이동을 감수해야 하고,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를 쟁취한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야 하고, 속으로는 ‘주주가치’지향이지만 겉으로는 상징적으로 ‘이해관계자’와 직원의 관심을 고려해야 하고, 회사와 관련된 여러분야에 계속 참여해야 하고, 끊임없는 정보를 모으고 미리 진단 해결하며 관계를 잘 돌봐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신속히 처리하기에 늘 시간에 쫓긴다. 또한 가정과 친구에게는 사랑이 넘치지만 직장생활과 개인생활을 엄격히 분리해야 한다. 그들은 기업문화에 자신을 맞추고 자신의 고유한 가치관을 버리도록 강요받는다.

※ 퐁텐블로의 유럽경영대학원 석좌교수 만프레드 케츠 드브리스 “그들의 방향 설정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자기애다. 지도자가 특별히 선호하는 개인적인 특정상황이 있는 경우라면 이것은 이미 자아도취단계이다. ... 자기애는 지도자가 되려는 소망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삶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또한 흡족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는 상실감과 공허감이 밀려온다고 털어놓는다. 이런 상실감과 공허감을 떨치기 위해 그들은 타인의 지지, 권력, 아름다움, 지위, 명성을 얻고자 하며 그것으로 우월성을 증명하려 애쓴다.”

1.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다.

2. 타인과 기생관계나 착취관계를 맺으며 질투심이 매우 강하다.

3. 다른 사람을 오로지 선 아니면 악으로만 인식하고 과대망상과 열등감을 동시에 갖는다.


* 지도자의 유형과 특성

① ‘건설적 자기애’를 가진 건강한 지도자.

a. 직원의 능력을 신뢰하면서 독특한 과제와 목표지향을 주도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직원들과 잘 지낸다.

b. 그러나 때때로 냉정하고 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c. 비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감탄 받기를 즐기기는 하지만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현실적으로 가늠할 수 있으며, 풍부한 분석과 조언을 바탕으로 결정한다.

② '자기기만형 자기애‘를 가진 친절한 지도자. 이는 병적 자기애의 전단계이다.

a. 그는 다른 사람에게 매우 친절한데, 실제 본 마음이 친절해서가 아니라 친절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한다.

b. 그는 직원이나 동료의 충고에 귀 기울이는데, 불안감을 없애고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함이다.

c. 그는 다른 사람에게 추앙받고 인기를 얻고자 한다.

③ ‘민감한 자기애’를 가진 감독관형 지도자.

a. 그는 직원에게 종종 극단적인 요구를 하고 아첨하는 사람을 주변 가까이에 둔다.

b. 그는 직원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의 욕구는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c. 심지어 모험 요소가 매우 많은 프로젝트를 결정할 때도 충분한 검토 없이 무작정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d.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법이 없고 비판에 민감하고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서 찾는다.

⇒ “지도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기애가 필요하다. 자기애는 사회,정치참여를 추동하는 원동력이다. 건강한 자존감, 안정적 정체성, 명확한 자기 이해를 마탕으로 하는 건설적 자기애는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자격조건이다”


* 리더인 유다의 축복기도

(창 49:8-10)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

-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 태어날 때 레아의 고백이다.

-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 이 예언은 유다의 후손인 다윗과 솔로몬이 주변의 원수들을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함으로 증명된다. 또한 유다의 혈통으로 태어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단의 세력을 진멸하는 약속의 성취에도 증명된다.

-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유다지파 출신인 다윗이 왕으로 즉위하고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했으며 궁극적으로 메시야를 통한 온 세상의 통치를 가리킨다.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사자는 승리의 이미지다. 여기서 유다를 사자의 새끼로 표현한 것은 유다의 후손이 장차 승리자 정복자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유다의 자손이 독보적인 힘을 갖게 될 것을 강조하며, 이후 예수께서 만왕의 왕이 되심을 예언한다.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 ‘규’는 막대기나 지팡이로 상징적으로 ‘권세’를 뜻한다. 왕은 공중집회때 항상 이것을 휴대한다. 곧 유다지파가 계속적으로 왕권을 계승할 것을 예언한다.

→ 통치자의 지팡이 - 입법자, 지도자, 지휘봉, 혈통적 보존

-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1. ‘실로’는 예루살렘 북쪽 약 50km지점의 에브라임 경내에 위치한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성읍 → 유다후손의 통치권이 실로에 와서야 비로서 끝나게 된다는 의미. 그러나 역사적 상황과 맞지 않는다.

2. ‘평화, 안식의 시기’를 의미하는 견해. 유다가 그들의 적들을 정복하여 ‘안전하게 될 때’까지 후손의 통치가 계속 된다는 견해

3. ‘실로’를 사람의 이름, 특히 유다가문에서 ‘메시야’를 의미하는 견해. 어근인 ‘쉴’(שׁל)이 갈대아어나 아랍어로 ‘후손’이란 의미이기 때문. 그리고 ‘보낸다’의 의미인 ‘솰라’(שׁלה)와 함께 메시야를 가리킨다는 의미

4. ‘실로’를 안전하다, 평안하다의 뜻의 솰라에서 유래하여 ‘중재자, 화평케 하는자, 침묵을 지키는 자’ 곧 ‘메시야’를 의미하는 견해.

⇒ 예언의 성취로 볼때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짐을 예언하고 있다.

-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 ‘그에게로 백성이 모이리라’

⇒ 메시야의 도래와 하나님 나라의 임재, 그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만왕의 왕에게 순종하며 모일 것을 예언한다.


[정리]

1. 순서적으로 보면 유다의 진실됨과 지도력이 유다지파의 다윗과 예수에게로 이어진다.

2. 역순으로 보면 유다의 지파의 정통성은 메시야로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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