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8. 르우벤 - 야곱의 큰 아들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0. 19. 16:52


 


가정사에 문제가 생기면, 형제간에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거나 실속을 챙기려 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형제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들, 반응들을 보인다. 순서상에서 첫째는 어떻게 할까? 그의 영향력은 어떨까? 야곱의 첫째는 르우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가족과 형제간의 갈등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 르우벤의 출생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 레아의 첫아들이고 12아들중에 첫째.

→ 직역‘하나님이 레아의 괴로움을 보았다.’ 그래서 이름이 ‘보라 아들이다’

→ 상황 :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힘들어 할때 첫 아들로 태어난다. 그로 인한 위로를 받으며 남편의 사랑을 기대한다.

⇒ 르우벤은 그런 레아의 괴로움을 보며 자란다. 그는 엄마의 괴로움을 볼때마다 어떤 감정일까?


(창 30: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 상황 : 레아의 4남 출산이후, 라헬이 빌하를 통해 두아들, 레아는 실바를 통해 두아들을 얻었다.

→ 르우벤은 우연히 합환채를 얻었다.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그는 엄마에게 드린다. 왜일까? 엄마의 괴로움을 아는 아들이기 때문인가? 출산이 멈춘 엄마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분명한 것은 그는 엄마에게 드리고 싶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엄마를 향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 결과 : 합환채는 라헬에게 갔지만 레아가 잇사갈, 스불론, 디나를 출산한다.(17절이하)


▷ 이후 야곱의 이야기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이후의 과정에서 그의 성향과 생각을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30:25-43 야곱과 라반의 재계약, 부자가 된 야곱

→ 르우벤이 바라본 모습들은 외가에 있으면서 특별히 변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똑같은 대우를 받는 엄마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이런 과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31장 야곱은 부인들과 상의하고 라반을 떠난다. 라반이 추격해오고 레아와 라헬의 방을 조사한 후 불가침 조약과 손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떠난다.

→ 과정에서 어떤 마음일까?

① 가족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했겠지만 과정상 적극적인 라헬과 소극적인 레아를 본다.

② 모든 가족이 길을 떠날 때 특별히 라헬과 요셉을 더 신경썼을 야곱과 이에 아무말 못하는 레아를 본다.

③ 맏형으로서 역할을 생각하고 도움이 되려 한다.

④ 추격해 와서 딸들의 장막을 조사하는, 그리고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작별인사를 외할아버지를 본다.


32장 에서를 맞이하기 전 두려워하던 야곱이 얍복나루의 경험으로 바뀐다.

→ 르우벤은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전 두려워하고 부인과 자녀들을 앞서게 하는 것을 본다. 특히 라헬과 요셉은 뒤에 있는 것을 본다. 이후 얍복나루에서 변화된 아버지가 가족들 앞에서 서는 것을 본다. 그렇게 편애하며 어려움에 대처하는 아버지가 어떻게 보였을까?


33장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 르우벤은 에서를 만나 부둥켜 안고 우는 야곱을 본다. 처음 본 백부 에서, 아버지와 전혀 다른 외모의 에서를 본다. 이후 야곱과 함께 숙곳과 세겜땅에 머문다.


34장 동생 디나가 성폭행을 당한후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적으로 그들을 노략할 때 큰 아들인 르우벤의 역할은 언급이 없다. 큰 아들이고 친오빠로서 왜 주도적이지 못하였을까?


35장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과 라헬의 죽음, 빌하와의 동침, 이삭의 죽음

→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이 다시 벧엘로 올라간다. 세겜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때 두려움중에 새롭게 결단하는 야곱은 어떻게 보였을까?

* 빌하와의 동침

(창 35:21-22)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창 35:21-22)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서 에델 망대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장막을 쳤다. [22] 이스라엘이 바로 그 지역에서 머물 때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였는데 이스라엘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다.』

→ 라헬이 에브랏에서 죽고 에델망대에 있을 때 르우벤은 빌하와 동침한다. 빌하는 라헬의 여종이었다. 라헬의 죽음으로 빌하는 보호자가 없다.

→ 그런 빌하와 왜 동침할까? 빌하가 외롭고 힘들어 보여 위로하려 했을까, 힘없는 빌하를 라헬에 대한 복수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욕정이고 쾌락인가? 전반적인 르우벤의 모습을 볼때 다른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 결과 : 야곱은 이것을 듣는다. 르우벤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자식이 되어 상속권을 상실한다.(49:4)


36장 에서의 자손

37장 요셉의 꿈이야기와 팔려감

→ 시간상으로는 35장 앞이다.

(창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 아버지는 고자질하는 요셉을 편애한다. 그런 요셉에게 형들은 잘해줄 수 없었다.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11)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 시기하다(카나) 흥분이 넘치어 질투의 성을 내다.

→ 꿈이야기를 들은 형들은 더욱 마음이 불편해진다.

⇒ 계속되는 야곱의 편애와 요셉의 행동에 다른 형제들은 시기의 마음까지 생기고 후에 죽이려는 마음까지 생길 때 르우벤은 이런 상황에 어떤 마음을 키웠을까?


(창 37:18-20)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창 37:18-20) 『[18] 그런데 그의 형들이 멀리서 그를 알아 보고서 그를 죽여 버리려고 그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마주 보면서 말하였다. "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 [20] 자,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들짐승이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리고 그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한다. 치밀한 계획과 거짓말까지 생각한다.


(창 37:21-22)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창 37:21-22) 『[21] 르우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건져 내려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22] 피는 흘리지 말자. 여기 들판에 있는 구덩이에 그 아이를 던져 넣기만 하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자." 르우벤은 요셉을 그들에게서 건져 내서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 형제들의 흥분과 잔인한 계획을 막는다.

-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 르우벤이 원한 것은 요셉을 죽이지 않고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는 왜 다른 형제들과 같은 생각이 아닐까? 그에게는 요셉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까? 그보다 그로 인해 아버지가 고통받을 것을 예상한 것인가?

⇒ 자신이 아파도 다른 사람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창 37:29-30)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창 37:29-30) 『[29]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와 보니, 요셉이 거기에 없었다. 그는 슬픈 나머지 옷을 찢고서, [30] 형제들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그 아이가 없어졌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 르우벤이 돌아와 → 위급한 시기에 요셉을 맡겨놓고 어디를 다녀왔다. 그는 왜 형제들과 함께 하지 않고 어디를 다녀왔을까? 목동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 며칠을 다녀왔을 수도 있지만, 동생들의 시기와 계획을 알고 막으려 했던 그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 자기가 제안한 구덩이에 와보니 요셉이 없다.  그 사이에 형제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렸다.

- 옷을 찢고 → 요셉이 없는 사실에 당황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절망과 고통을 참을 수 없다.

- 아이가 없도다. → 옐레() 갓난아기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단어. 다른 형제와 달리 르우벤은 요셉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있었다. 요셉이 17세라면 르우벤은 10살 이상 차이나는 성인일 것이다.

- 나는 어디로 갈까? → 나는(아니)와 어디(아나)가 유사한 소리를 낸다. 소리나는대로 이하게 되면 ‘나는 나는 나는’이란 외마디 비명으로 들린다.

→ 요셉이 없어진 것을 보고 매우 힘들어 하는 모습이다.


37:31-36 동생들은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적시고 아버지에게 보인다. 야곱은 오랜시간 애통해하고 모든 자녀가 위로하지만(35) 야곱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 이런 과정을 모두 보아야 했던 르우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38장 유다와 다말

39-41장 요셉의 이집트 생활

42:1-17 기근으로 곡식이 없는 야곱은 아들들에게 이집트로 가서 곡식을 구해 오도록 보낸다. 10형제를 알아본 요셉은 정탐꾼으로 누명을 씌우고, 막내를 데리고 오게 하라며 3일을 가둔다.

(창 42: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창 42:17) 『요셉은 그들을 감옥에 사흘 동안 가두어 두었다.』

→ 형제들이 3일동안 감옥에 있었다. 3일은 이들에게 무엇일까?

cf. 요셉은 구덩이에서 며칠을 있었을까? 3일이라면 형들도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이다. 당시의 이해는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창 42:18-20)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요셉의 제안 : 한명만 남고 곡식을 가지고 가라. 가족을 굶지 않게 하고 막내를 데리고 오라.

-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형제들은 요셉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그렇다! 아우의 일로 벌을 받는 것이 분명하다. 아우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에 그가 그렇게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가 아우의 애원을 들어 주지 않은 것 때문에 우리가 이제 이런 괴로움을 당하는구나."』

- 괴로움 : 차라() 압박을 당하다는 의미로 ‘환난, 고통’

cf 레아의 괴로움(창 29:32) 뻬오느이()

→ 3일동안 감옥에서 억울함을 경험한 이들은 이것이 인과응보로 받아들인다. 20여년전의 일을 기억해낸다.

→ 요셉의 애걸에서 괴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자신들이 경험하고서 공감하게 된다.

(창 37:24-25)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 비어있는 구덩이에서 고생하는 요셉과 달리 그들은 음식을 먹고 있다.

⇒ 상대의 괴로움에 전혀 개의치 않는 그들에게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창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창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러기에 내가 그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죄를 짓지 말자고 하지 않더냐? 그런데도 너희는 나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값을 치르게 되었다."』

- 그 아이 : 여전히 르우벤에게 요셉은 아이이다. 옐레드()

→ 과거일을 들추어 낸다.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동생들에게 책임과 탓을 돌린다.

- 죄를 짓지 말라 →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피를 흘리지 말라.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창 37:21-22)

cf. 그런데 동생들은 손을 대지 않기로만 한다.

(창 37: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42:26-34 집에 돌아온 형제들은 야곱에게 정탐꾼으로서 누명과 과정을 보고 한다.

(창 42:35-36) 『[35] 각기 자루를 쏟고 본즉 각 사람의 돈 뭉치가 그 자루 속에 있는 지라.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가 돈 뭉치를 보고 다 두려워하더니 [36]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창 42:35-36) 『[35] 그들은 자루를 비우다가 각 사람의 자루에 각자가 치른 그 돈뭉치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과 그들의 아버지는 그 돈뭉치를 보고서 모두들 겁이 났다. [36] 아버지 야곱이 아들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나의 아이들을 다 빼앗아 가는구나. 요셉을 잃었고 시므온도 잃었다. 그런데 이제 너희는 베냐민마저 빼앗아 가겠다는 거냐? 하나같이 다 나를 괴롭힐 뿐이로구나!"』

→ 그들과 아버지는 돈뭉치를 보고 두려워한다. 야곱은 3아들을 잃게 되었다고 괴로워한다.

- 해롭게 한다 → 직역‘모든 일들이 내 위에 있다’ 모든 일들을 야곱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는 의미.


(창 42:37) 『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창 42:37) 『르우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제가 베냐민을 다시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못한다면 저의 두 아들을 죽이셔도 좋습니다. 막내를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아버지께로 다시 데리고 오겠습니다."』

→ 고대근동사회에서 아들은 자신의 분신으로 여긴다. 그런데 자신의 아들을 내어준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바치는 일처럼 죽을 각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르우벤은 자기가 책임지고 다녀오겠다고 한다. 자신의 두 아들도 담보로 내민다. 장자의 책임감인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참지 못하고 자신을 희생하려는 것인가?

cf. ‘야곱의 아들 베냐민 vs 르우벤의 두아들’에 대한 마음

→ 요셉의 동생 베냐민 vs 르우벤의 친동생 시므온

cf. 만약 르우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갔다면, 계속해서 르우벤이 장남의 역할을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리고 2차여행에서는 유다의 역할을 강조된다. 요셉은 은잔을 통해 베냐민을 보호하려는 형들의 모습과 유다의 변론(44:18-33)을 듣는다. 장자권의 이양?

cf. 야곱이 르우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창 42:38) 『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르우벤은 계속 강조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 이후 르우벤의 역할은 나오지 않는다.


▷ 43장 이후에는 2차여행과 이집트로 들어가는 과정, 야곱의 축복기도가 있다.

(창 49:3-4) 『[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창 49:3-4) 『[3] 르우벤아, 너는 나의 맏아들이요, 나의 힘, 나의 정력의 첫 열매다. 그 영예가 드높고, 그 힘이 드세다. [4] 그러나 거친 파도와 같으므로 또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와서 네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네가 으뜸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 아버지가 기억하는 르우벤은 첫아들이지만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자..


* 모세의 축복

(신 33:6) 『르우벤은 죽지 아니하고 살기를 원하며 그 사람 수가 적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신 33:6) 『르우벤은 비록 그 수는 적으나, 잘 살게 하여 주십시오. 절대로 망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BC 11세기 암몬족속의 침략을 받아 그 수가 격감되고, B.C.9세기 모압에 멸망당함. 가장 먼저 멸망당한 지파


[정리]

왜 그는 이스라엘의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사권은 레위에게로, 통치권은 유다에게로, 상속권은 요셉에게로 넘겨주고 말았을까? 무엇보다 그는 장자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치명상이다. 동생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못하고 ‘피를 흘리지 말라’는 권고 밖에 못했을까? 이것은 그의 무능을 입증하며, 그리고 일가족이 함께 벧엘로 올라가고 라헬이 죽은 후 그의 서모 빌하와 동침했다는 것은 그의 생애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이 되었다.

① 첫아들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 하나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② 자신이 아프더라도 상대의 괴로움을 책임지려 한다.

③ 어머니의 괴로움을 책임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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