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7. 라헬과 레아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9. 7. 14:45출산을 통해 보는 라헬과 레아의 갈등 1
출산을 통해 보는 라헬과 레아의 갈등 2
귀향을 결정하다
결혼 생활과 죽음
[야곱은 라헬을 만나 사랑하고, 하나님은 레아를 보신다]
* 야곱의 상황
① 장자의 축복기도 이후 형의 분노를 피해 외가로 피신한다.
②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③ 가나안의 브엘세바에서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이동한다.(약 800km, 하루에 40km를 걸어도 20일정도 걸린다.)
④ 하란에 도착하여 목자들을 만나다(29:1-8, 라반을 아냐고 묻자 라헬이 양을 몰고 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 라헬을 만나다.
(창 29:9-12)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창 29:9-12) 『[9]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고 있는 사이에 라헬이 아버지의 양 떼를 이끌고 왔다. 라헬은 양 떼를 치는 목동이었다. [10]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가 치는 양 떼를 보고는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어 외삼촌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11] 그러고 나서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기쁜 나머지 큰소리로 울면서 [12] 라헬의 아버지가 자기의 외삼촌이라는 것과, 자기가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라헬에게 말하였다. 라헬이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다.』
→ 라헬을 만난 야곱의 행동 순서
① 야곱이 목자들과 이야기하는 중에 라헬이 아비의 양과 함께 오는 것을 본다.
②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인다.
③ 라헬에게 입맞추고 운다.
④ 자신을 소개한다.
cf. 창 24:15-에서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물항아리를 메고 왔고 아브라함의 종의 낙타에게도 물을 준다. 리브가의 물항아리와 라헬의 양을 치는 것은 당시의 생활방식과 여성의 노동력을 보여준다.
▷ 라헬은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야곱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 야곱의 첫인상에 당황했을 것이다. 한달 가까이 홀로 여행을 한 상태로 양들에게 물을 먹인다.
→ 야곱의 자기소개에 놀랐을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과 혈육이라는 것이다.
⇒ 라헬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알린다. 라헬에게 있어 야곱의 첫만남은 인상적일 것이다.
* 야곱의 연애와 7년봉사(창 29:13-20)
(창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 라반은 야곱을 만나고 한달이 지난 후에, 노동의 보수를 주겠다고 한다.
(창 29:17-18)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기에 그를 위해 노동하겠다고 한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야곱의 사랑은 7년이 며칠같이 여기게 한다.
→ 야곱의 사랑의 깊이는? 일반적인 지참금으로 보통 2-3년인데 라헬을 위해서는 7년을 약속한다.
⇒ 라헬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7년을 즐겁게 보내는 야곱을 보면서, 라헬에게 7년의 연애기간은 어떤 마음일까?
⇒ 레아는 자신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오히려 시력이 약하다고 멀리하는 야곱을 보면서, 7년 동안 사랑받는 라헬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 야곱은 왜 라헬을 사랑하는가?
(창 29:16-17)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 야곱의 판단 - 레아는 시력이 약함을 거절의 이유로, 라헬은 아름답다는 이유로 선택한다.
cf (창 25: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 레아의 시력에 대해서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 이삭의 시력이 없음을, 즉 자신의 상황을 직면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라헬을 아름답게 본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어머니 리브가와 같이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모습과 동시에 자신이 있기를 바라는 곳이 그 사랑의 자리임을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 결혼(창 29:21-30)
(창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 7년이 지나고 라반에게 약속이행을 요구한다.
(창 29: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 라반은 공개결혼을 준비한다.
cf. 자신의 결혼이라고 생각하면서 준비했을 라헬과 그것을 바라본 레아는 각각 어떤 마음일까? 서로 상반된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창 29: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 라반은 자기마음대로 레아를 들어가게 한다. 딸들의 의견은 전혀 묻지도 개의치 않는다.
⇒ 라헬은 7년을 기다린 결혼이 한순간 레아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레아는 라헬의 결혼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자신의 결혼이 되는 것을 보면서 이 상황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 야곱에게도 자신에게도 약속을 아무렇지도 않게 파기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져왔을까? 분명한 것은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라헬은 처음부터 아버지가 약속을 지킬지 걱정이었을 것이다.
⇒ 가부장적 분위기와 가정의 결정권자인 라반에게 딸들은 어떤 표현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대로 따르는 익숙함을 보인다.
(창 29:26-27)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 외삼촌의 속임에 따지는 야곱에게 지역관행과 7년을 다시 요구한다.
(창 29: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 야곱은 라반에게 따져 보기도 하지만 라반의 요구에 따른다.
cf. 야곱은 바르지 않은 요구에도 왜 그대로 할까? 순응이 익숙하다면 언제부터 그러했을까?
→ 거짓으로 축복기도를 가로챌 때(바르지 않은 어머니의 교육에도)
① 리브가가 야곱에게 에서로 변장하고 이삭에게 들어가 축복기도를 받으라 요구한다.(27:6-10)
② 야곱은 리브가의 계획이 처음에는 불가능을 말한다.(27:11-12, 불합리가 아니다.)
③ 그러나 야곱은 리브가가 준비한 음식을 들고 이삭에게도 들어간다.(27:18-19)
→ 야곱에게 떠나라 할때(27:42-46)
① 리브가는 야곱을 죽이겠다는 에서의 분노를 듣는다.(41)
② 야곱에게 떠날 것을 설득한다.(42-46)
③ 라반의 집에 가서 아내를 취하라 한다.(28:2)
④ 이삭은 야곱을 보내고(5), 야곱은 부모의 명을 좇아 떠난다.(7)
→ 라반에게서 결혼으로 속을 때
① 라헬을 위해 7년봉사를 약속한다.
② 결혼식 아침에 보니 레아였다.
③ 라반은 지역관행을 핑계로 7년봉사를 더 요구한다.
④ 야곱은 그대로 하여 7일을 채우고 라헬과 결혼을 한다.
∴ 공통점 1 : 불합리에 반응하는 것같지만 야곱 개인의 욕구때문에 끝까지 주장하지 않는다.
→ 축복기도, 자신의 안정과 결혼, 라헬을 원하기에
∴ 공통점 2 : 라반의 두 딸도 순응적이다. 다른 반응없이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따른다.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는 또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 이후 결과 : 라반이 원하는대로 결혼은 시켰지만 레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으로, 라헬은 계속 사랑받는 여인이 된다. 이 관계는 계속된다.
→ 라헬을 위해서는 14년을, 레아를 위해서는 0년을 사용했다.
cf. 라헬과 레아는 사랑받고 못받음에 대해 각각 어떤 마음일까? 또 서로를 향해 어떤 마음일까?
* 12아들들의 출생(29:31-30:24)
→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레아는 아들을 낳음으로 남편의 사랑을 원한다.
→ 남편의 사랑을 받지만 아들이 없는 라헬은 경쟁의 마음으로 힘들어 한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사랑받지 못함 : 키 세누아() ‘세누아’는 ‘가증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사네’()의 분사수동태. 단순히 사랑받지 못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 레아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라헬은 자녀가 없다. 레아는 남편의 감정에 어떤 마음일까? 그 마음이 아들들의 이름으로 표현된다.
- 보시고 : 라아()-(사물을 눈으로) 보다, 쳐다보다, (상대방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섬세하게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다, 알다.
- 그의 태를 여셨으나 : 직역 ‘그리고 그가 여셨다’, 파타흐() 열다, 풀다, 시작하다.
→ 보시고 여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레아의 처지와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시고, 레아의 막힌 삶을 풀어주신다. 창세기기자는 레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
모친명 |
뜻 |
연령순 |
축복순 |
르우벤 |
레아 |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
1 |
1 |
시므온 |
들으신다 |
2 |
2,3 | |
레위 |
더불어 연합한다 |
3 |
| |
유다 |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4 |
4 | |
단 |
빌하 |
재판장 |
5 |
7 |
납달리 |
겨룸, 씨름 |
6 |
10 | |
갓 |
실바 |
복됨 |
7 |
8 |
아셀 |
기쁨 |
8 |
9 | |
잇사갈 |
레아 |
값,보상 |
9 |
6 |
스불론 |
더불어 거함 |
10 |
5 | |
요셉 |
라헬 |
더하다 |
11 |
11 |
베냐민 |
오른손의 아들 |
12 |
12 |
[정리]
① 야곱이 라헬을 만나고 사랑하며 14년을 봉사한다.
② 라반의 임의적인 행동에 그대로 따르는 순응적 모습을 보인다.
③ 하나님은 레아를 보시고 태를 열어주신다. 레아가 가장 바라고 필요한 것을 주셨다.
[출산을 통해 보는 라헬과 레아의 갈등 1]
주부에게 명절은 어떤 날인가? 행복한 날인가 고역의 날인가? 단지 해야할 노동 때문에 힘든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지 않지만 오고가는 감정의 관계 때문에 힘들다. 수년동안 쌓인 사건들과 감정들, 말한마디들로 인한 상처들.. 자신들의 상황들, 며느리로서의 상황, 남편과 자녀들의 모습들, 자기 어깨를 펴지 못하게는 하는 이런저런 일들..
오늘 우리가 나눌 사람은 친 자매이면서도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모습이다. 굳이 표현하지만 사랑받는 아내와 그렇지 않은 아내, 자식을 낳은 아내와 그렇지 않은 아내.. 과연 이 둘은 어떻게 지낼까? 잘 지낼까요, 자매로의 관계에서 한 남자의 아내들로 상황과 관계가 어떨까?
우리는 이 둘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안다. 왜인가? 누구때문인가? 야곱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어서 인가?
12아들을 낳으면서 이 둘은 어떤 감정적 표현을 할까? 지난주 우리가 나눈 부분은, 야곱이 라헬을 만나 사랑하지만, 라반에게 속아 레아와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들은 굉장히 순응적이다. 결혼생활에서 갈등은 12아들을 낳는 과정에서 표출된다. 이것을 표로 만들면 이렇다.
|
모친명 |
뜻 |
연령순 |
축복순 |
르우벤 |
레아 |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
1 |
1 |
시므온 |
들으신다 |
2 |
2,3 | |
레위 |
더불어 연합한다 |
3 |
| |
유다 |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4 |
4 | |
단 |
빌하 |
재판장 |
5 |
7 |
납달리 |
겨룸, 씨름 |
6 |
10 | |
갓 |
실바 |
복됨 |
7 |
8 |
아셀 |
기쁨 |
8 |
9 | |
잇사갈 |
레아 |
값,보상 |
9 |
6 |
스불론 |
더불어 거함 |
10 |
5 | |
요셉 |
라헬 |
더하다 |
11 |
11 |
베냐민 |
오른손의 아들 |
12 |
12 |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레아는 사랑받지 못하고 하나님은 그런 레아를 보시고 자녀를 주신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에게 자녀출산은 무엇일까? 유일한 방법이다.
→ 그러나 라헬은 불임이다. 사랑받는 여인에게 당시에 자녀가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완벽하지 못한 불안이다.
* 레아는 4남을 낳으면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한다.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 르우벤 : "주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이제는 남편도 나를 사랑하겠지."
→ 레아는 자신이 괴롭고 하나님은 그것을 보셨다며 남편의 사랑을 기대한다.
(창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 시므온 : "주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렇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
→ 레아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처지를 들으셨다고 한다.
(창 29: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 레위 :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
→ 레아는 남편이 자신과 연합하여 하나가 되기를 매우 바란다.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유다 : "이제야말로 내가 주를 찬양하겠다."
→ 레아는 남편에 대한 표현없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 4아들을 낳으며 레아는 어떤 감정과 고백을 하는가?
① 하나님이 자신의 괴로움을 보시고 사랑받지 못함을 들었다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 보고 들었다는 것으로 그만큼 괴롭다는 것과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남편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두 아들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② 시간의 표현 : 이제는(르우벤), 지금부터(이제는, 레위), 이제는(이제야말로, 유다) → 이전에는 너무나 힘들었던 상황(남편의 마음)이 바뀌기를 바라는 레아의 바램
③ 야곱의 특수성(성장과정)을 전혀 모른채 일반적인 이해와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하고 있다.
④ 유다(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를 낳을 때 레아의 마음은 무엇일까?
→ 이제 남편은 안보고 하나님만 보겠다? 4명이나 낳았으니 남편오는 것은 시간문제? 자녀가 없는 라헬을 이겼다? 적어도 라헬보다는 유리한 위치이다?
⑤ 레아의 특징은 남편을 바라보면서도 자신의 상황과 감정을 하나님 안에서 고백하려 한다.(라헬의 고백과는 너무나 다르다)
* 이렇게 4아들을 낳는 동안 라헬은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는가?
① 특징 : 레아는 자신의 감정을 하나님께 드러냈다면 라헬은 남편에게 말한다.
② 시기한다.
(창 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 30:1) 『라헬은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
- 시기하여 : 카나() 마음 속의 질투심과 함께 흥분된 감정이 성을 내는 외적 표현까지 드러내는 아주 강렬한 표현이다. 시기하는 이유는 자신은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언니 레아가 출산을 거듭함으로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남편에게) 발산했음을 보여준다.
- 시새우다 : 저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다.
- 내가 죽겠노라 : 직역 ‘이미 죽었다. 바로 내가 그 죽은 여자다’
→ 자식낳기 경쟁에서 실패함으로 아내의 위치와 남편의 사랑도 빼앗길 것임을 나타내는 절박한 표현이다.
▷ 질투의 4가지 형태
질투의 형태 |
매커니즘 |
연관된 생각 |
분노 |
좌절 지위훼손 |
이따 두고 보자 내게 어떻게 이럴수가! 자기가 뭔데? |
두려움 |
실연에 대한 근심 |
만일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떡하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
슬픔 |
자아평가에 대한 훼손 버림받은 느낌 |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나. 어떻게 그 사람 마음을 붙잡아 둘수 있을까? |
수치심 |
질투를 한다는 수치심 패자가 된다는 수치심 |
비루한 감정이다. 나는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 멜라니 클라인의 정신병리 이론에서 공격성에 대한 부분
1) 시기심(envy)과 탐욕(greed)
시기심은 타고난 공격성의 심리적 표현이다. 탐욕의 목적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풍요로움을 차지하려는데 있다. 그러므로 탐욕으로 인한 손상은 의도적인 파괴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나 시기심의 직접적인 목적은 대상이 가진 풍요로움을 파괴하는 것이다.
2) 시기심(envy)과 질투(jealous)
질투는 좀 더 성숙한 감정으로서 사랑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질투는 욕망하는 대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쟁자를 증오하는 것이다. 질투심은 대상이 가진 좋음을 인정하고 견딜 수 있다.
시기심은 질투보다 더 원초적인 감정이다. 시기심은 대상이 가진 좋은 것을 견딜 수 없으며 망쳐버리려고 한다.
3) 시기심과 죽음 본능
죽음 본능이 주체의 생명을 증오하는 충동이라면, 시기심은 주체에게 생명을 제공하거나 지원해주는 외적인 대상을 증오하는 것이다. 이것은 증오를 외부 대상에 전가하고, 그 대상이 주체가 살아있는 것을 증오한다고 여기는 전략과 대조를 이룬다.
유아는 어머니가 제공하는 음식, 사랑, 안락함이 외부에 있으며 자신은 이것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임을 자각하면서 시기심으로 반응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바깥에 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좋은 젖가슴에 대해서도 적대감을 갖게 된다. 시기심은 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파편화함으로써 나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렇게 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 사이의 혼동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많은 정신병적 혼동의 근원이기도 하다.
4) 시기심의 극복
원초적인 자기 파괴성(죽음 본능)은 생명을 주는 외부 원천에 대한 증오(시기심)를 거처 질투심으로 나아간다. 질투심은 좋은 대상과 관계하면서 수정될 수 있고 건강한 경쟁으로 발전될 수 있다.
공격성을 극복하는데 좋은 대상(좋은 젖가슴)의 내사가 중요하다. 시기심은 좋은 대상 경험이 가져다 주는 사랑과 감사에 의해 극복된다.
선천적으로 과도한 시기심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다. 또 좌절에 의해 시기심이 강화된다. 시기심은 좋은 대상을 평가절하하고 망쳐놓기 때문에 시기심이 과도하면 좋은 대상의 내사 과정을 방해한다. 그 결과 자아가 허약해지며 허약해진 자아는 다시 시기심을 더욱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5) 부정적인 치료반응
왜 어떤 환자들은 분석을 통해 아무런 긍정적인 효과도 얻지 못하는가?
클라인에 따르면 부정적인 치료반응은 치료자가 지닌 '좋음' 자체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환자는 분석가가 지닌 잠재적인 선함, 능력, 사랑을 시기한다. 환자가 분석가에게 저항하는 것은 분석가가 지닌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모든 해석은 쓸모 없거나 환자를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환자는 시기심을 사용하여 모든 희망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클라인은 분석가가 시기심의 작용을 해석함으로써 분석상황에서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시기심의 파괴적인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③ 야곱이 분노하자 빌하를 부인으로 준다. 자식을 원한다.
(창 30: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 라헬은 인간의 힘을 빌어서 명예를 회복하려고 하고, 그 인간적 수단을 맹신한다.
④ 인간적인 방법으로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창 30:5-6)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 단 :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려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 단 : ‘정당성을 입증하다, 판단하다’의 띤()에서 나온 말 → 라헬은 단을 통해 자신의 수치에서 벗어나고 진실함을 입증하려 했다. 빌하의 임신과 출산은 라헬에게 특별한 의미이고 자기중심적이다.
→ 라헬의 자기해석은 ‘억울함’이다. vs 레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움이다.
-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 하나님을 말하지만 신앙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억울함과 호소를 표현하는 도구로 삼는다. 라헬의 호소는 기도일까?
(창 30:7-8)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 납달리 : "내가 언니와 크게 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 단을 통해 자신의 수치(억울함, 호소)를 없앴다는 라헬에게 납달리는 언니와의 경쟁에서 이겼다고 말한다.
→ 라헬은 자신의 경쟁자가 언니라고 할 정도로 극심하게 뒤틀린 감정과 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하를 통한 2번의 출산은 경쟁대상인 언니를 이겼고 이제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그동안 레아가 바라보는 대상은 남편이다. 그러나 라헬이 바라보는 대상은 언니이다. 그 언니에 대해 경쟁관계로만 보는 라헬의 표현은 자신이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싸움을 시작이다. 그동안 신앙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던 레아를 이 싸움(경쟁)으로 들어오게 하여 자신도 여종을 야곱에게 주게 된다.
[출산을 통해 보는 라헬과 레아의 갈등 2]
지난주에 나눈 것은 레아가 4남을 낳으며 마음의 변화, 그것을 보는 라헬의 시기의 마음과 빌하를 아내로 주는 마음, 시기의 마음은 상대를 힘들게 한다.
①대상이 가진 풍요로움을 파괴하는 것
②대상이 가진 좋은 것을 견딜 수 없으며 망쳐버리려고 한다.
③좋은 대상을 공격하고 파편화함으로써 나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오늘 나눌 부분은 경쟁 속으로 들어온 레아의 마음은 어떨까?
* 경쟁으로 들어온 레아
(창 30: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창 30:9) 『레아는 자기가 다시는 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 라헬의 경쟁을 본 레아는 ‘이제는 남편이 오겠지’했던 레아는 불안해지고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한다. 이는 계획적인 행동이 아닌 불안에서 나온 것으로 신앙 속에 덮혀 있던 감정이 나타난다.
cf. 두 부인의 경쟁 속에서 야곱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야곱은 두 자매간의 불화와 긴장을 잠재우기 보다는 오히려 방관하고 있다. 이는 사라와 하갈의 관계에서 보였던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다. → 그러나 이 과정으로 이스라엘은 12지파가 된다.
(창 30:10-11)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 갓(가드) : "내가 복을 받았구나" 행운, 복됨 → 실바를 통해 새롭게 아이를 얻은 레아는 기쁘고 만족스러움을 표현한다.
(창 30:12-13)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 아셀(아쉐르) :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 기쁨, 행복, 흡족함
→ 갓과 같이 레아의 감정이 계속 아들을 얻음으로 지극히 흥분되고 만족스러웠음을 보여준다.
-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 ‘왜냐하면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부를 것이기 때문에’
⇒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고, 그것을 신앙으로 표현하지만, 라헬의 시기와 경쟁은 레아도 반응하게 한다. 다만 경쟁속에서도 레아의 반응은 평안과 기쁨, 긍정적이다.
cf. 왜 레아는 라헬과 달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아버지 반응과 그 경험이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 레아와 라헬의 직접적인 대면
(창 30: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보리를 거두어들일 때에,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주니,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였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조금만 나눠줘요."』
- 합환채 : 옛날 히브리인들은 이 식물을 최음제, 강장제, 임신촉진제로 믿고 있었다.
→ 임신을 원하는 라헬은 자신의 바램(욕구)을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창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창 30:15) 『레아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내 남편을 차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냐? 그래서 내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까지 가져 가려는 것이냐?" 라헬이 말하였다. "좋아요. 그럼,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나에게 주어요. 그 대신에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하고 함께 자도록 하지요."』
-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환채를 달라는 동생의 모습에서 드러난 레아의 마음은?
①불안한 라헬은 자신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고 한다.
②라헬은 레아의 것을 빼앗아 가는 존재로 레아에게 영향을 주려 한다.
③‘내 남편’이란 표현으로 원래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④자신은 라헬에게 빼앗기는 위치에 있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감정의 폭발
⑤만약 직접적인 남편을 표현했다면 감정을 감추었을 것이나 매개물이 나오자 자신의 그동안의 감정을 순간적으로 표출한다.
⑥라헬의 시기와 흔들어 놓음에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한다.
-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 라헬 역시 불안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얻으려 한다. 이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도덕적인 수치나 거부감도 없이 부도덕하고 성결치 못한 매매를 하고 있다. 불안한 레아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 라헬도 레아도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불안은 안정을 바라고 이것은 객관적인 ‘옳고 좋음’보다 주관적인 이익, 즉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라헬의 반응과 레아의 반응은 차이를 보인다.
(창 30: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 30:16) 『그 날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레아가 그를 맞으러 나가서 말하였다. "당신은 오늘 밤에는 나의 방으로 드셔야 합니다. 나의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라헬에게 주고, 그 대신에 당신이 나의 방으로 드시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날 밤에 야곱은 레아와 함께 잤다.』
- 내게로 들어오라 : ‘당신은 내게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뜻으로 요청이 아닌 강한 명령조.
→ 야곱이 라헬보다 레아에게 남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레아도 이것을 알기에 거래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 ‘내가 확실하게 당신을 샀기 때문이다’
→ 레아는 자신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만큼 오늘밤 남편과 동침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 야곱의 편애, 라헬의 경쟁시기심, 레아의 불안 등은 가정의 분위기를 부도덕적이고 성결치 못한 매매(거래)까지 행하게 한다.
cf. 야곱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의 마음은 나오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외상으로) 레아에 대해 관계와 책임이 소홀했다는 것과 (그간 라반의 약속불이행때문인지) 거래를 깨지 않는다는 것이다.
* 레아의 2남 1녀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호소를 들어 주셔서, 레아가 임신을 하였고, 야곱과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다. [18] 레아는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e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e. 히, 사갈)』
-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하나님이 레아를 염려하여 듣다’
→ 레아에게 남편은 자신에게 소홀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cf. 하나님은 라헬보다 레아에게 더 마음을 주시는가? 뒤에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신다. → 하나님의 뜻(시기와 방법과 과정 등)을 우리는 모른다.
- 잇사갈(잇사스카르) : ‘있음,존재,있다’의 ‘예쉬’ + ‘빌리다, 매수하다’의 사카르 → ‘보상이 있다, 값이 있다’
→ 레아는 자신이 실바를 야곱에게 주고, 합환채로 거래함으로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함을 암시한다.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을 하여서 야곱과의 사이에 여섯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20] 레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 주겠지.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하였다.』
-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 후한 선물 -하나님편에서 선하고 충실하고 온전한 선물이고 레아에게는 기쁘고 형통하고 넉넉한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 스불론(제불룬) : ‘누구와 같이 거한다’의 ‘자발’, 이는 ‘경계를 만들다, 경계를 정하다’는 의미로 발전하여 ‘경계안에 함께 동거한다’ 즉 자신이 얻은 자녀로 기쁨과 함께 남편도 돈독해질 것을 기대하는 레아의 마음이 표현된다.
(창 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창 30:21) 『얼마 뒤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아이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다.』
- 디나(띠나) : ‘심판, 판단, 변호’라는 뜻의 ‘단’()
cf. 다른 딸들도 있었다? 디나를 기록한 것은 34장의 상황을 위해..
(창 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 46: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처음 4남때와 달리 실바의 2남과 자신의 2남은 라헬의 경쟁모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경쟁모드의 원인은 야곱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의 마음과 자신의 것을 빼앗는다고 보이는 라헬에 대한 반응에서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 라헬의 요셉출산
(창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 30:22)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 단순히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이 깊이 통촉하시고 친히 돌보신다는 의미이다. 아들이 없어 심히 번민하며 애통해 하는 라헬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이다.
→ 라헬은 분노표출과 경쟁시기심을 나타내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깊은 마음 속의 애통하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 17절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17절과 같은 표현으로 레아에 대해 염려하듯 라헬도 염려하신다. 레아와 라헬의 과정은 다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동일함을 보여준다.
-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 31절 ‘그의 태를 여셨으나’ 와 같은 표현, 파타흐()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처럼 라헬도 태를 열어주신다.
cf. 31절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창 30:23-24)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30:23-24) 『[23] 그가 임신을 하여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하고 생각하였다. [24]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에 주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g)요셉이라고 하였다. (g. 더하다)』
-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이 느끼는 마음은 ‘부끄러움’이다. 그녀는 이것을 위해 빌하나 합환채거래라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이 씻어주었다고 고백한다.
cf. 만약 빌하대신 자신이 출산을 했다면 그 아이의 이름이 요셉보다는 단이나 납달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헬이 출산한 아들의 이름이 요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과정이 지나며 자신의 경쟁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 결과가 아닐까?
- 요셉(요쎄프) : 이름에는 ‘씻다, 치워버리다’의 ‘아싸프’와 ‘더하다’의 ‘야싸프’의 뜻이 있다. 즉 라헬에게 요셉은 부끄러움을 씻어주는 존재이면서 더 받기를 원하는 라헬의 마음을 표현해주는 이름이다.
(창 35:16-18)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베노니(뻰오니) : ‘아들, 자식’의 뻰 + ‘나의 불행, 슬픔’의 ‘오니’ - 나의 불행의 자식, 나의 슬픔의 자식 → 난산으로 인해 죽음에 임박한 라헬이 슬픔가운데 지어준 이름
- 베냐민(비느야민) : ‘아들,자식’의 ‘뻰’ + ‘오른손’이란 ‘야민’ - ‘오른손의 아들’ → 고대근동사람들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에 야곱은 12번째 태어난 아들의 삶이 행복하고 능력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쳐 지었다.
[정리]
①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 레아는 남편의 사랑을 바라보지만 그렇지 않아 괴로워한다. 이를 출산을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후 라헬의 인간적인 방법은 레아를 다시 그 경쟁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자신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서도 여전히 ‘복됨과 기쁨’을 표현한다. 그러나 레아에게 라헬은 자신의 것(내 남편)을 빼앗는 대상으로 보며 감춰두었던 감정을 표출시킨다. 이후 얻은 아들은 자신을 보상하고 선물이라고 마음을 표현한다.
② 사랑을 받으나 자녀가 없는 라헬은 레아의 출산을 보며 자신은 자녀가 없음에 자신의 감정을 ‘시기’를 통해 드러낸다. 이후 라헬은 빌하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억울’함으로 해석하고 경쟁하여 이기려 하고 있음을 보인다. 이후 계속되는 언니의 출산에 힘들었으나 요셉을 통해 ‘부끄러움’의 마음이 씻어지면서도 동시에 더 얻기를 원하는 마음을 표현한다. 그러나 마지막 베냐민을 출산하면서 슬픔 속에서 사망한다.
③ 야곱은 라헬의 반응에 분노하지만 이후 순응적이 된다. 야곱은 엄마 닮아 좋은 라헬을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쟁취하고자 하는 라헬로 힘들어한다.
④ 하나님은 두 여인의 소원을 들으신다.(17,20) 야곱은 부인들의 갈등에서 조정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상처는 하나님이 풀어주신다. 그 하나님이 레아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
[귀향을 결정하다]
출산기록이후
30:25-36 고향으로 가려는 야곱과 새계약을 맺는 라반
30:37-43 야곱의 재산이 많아지다 → 이전은 라반의 양을 치는 것이고, 이제는 자신의 재산이 되는 것. 이 기간을 6년으로 표현한다.
* 귀향결정을 나누다.
(창 31:1-2) 『[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1-2) 『[1]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 야곱의 귀향결정 배경은 야곱이 부자가 되자 라반의 아들들의 모함과 라반의 표정이 달라졌다.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1: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귀향결정의 결정적 동기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30:25에서 고향으로 가겠다는 야곱의 의견은 임의적이지만 여기서 하나님은 ①돌아가라는 명령과 ②함께 한다는 약속을 주신다.
* 여기에 필요한 것은 동행인의 결정이다. 야곱은 아내들을 불러 이유와 과정을 이야기한다.
(창 31: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 31:4)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들을 그의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서』
→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야곱은 자신이 집에 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부른다.
cf. 라헬의 이름이 앞에 있다는 것과 라헬만 부르지 않았다.
(창 31:5-13)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라반의 악한 행위 vs 하나님의 사랑
5절 야곱에 대해 안색이 변한 라반 vs 야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6-7절 야곱을 속여 품삯을 변역한 라반 vs 야곱을 해치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
8-9절 야곱의 삯을 임의로 바꾸는 라반 vs 라반에게서 빼앗아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
10-13절 꿈이야기-마음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
→ 야곱의 대조적 표현
5절 ‘그대들의 아버지’ vs ‘내 아버지의 하나님’
6절 당신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 일했음을 알거야.
7절 10번의 의미는 ‘거의 매번, 기회가 있을 적마다’로 라반은 나를 속이지만 하나님이 막으셨다.
8절 라반은 계속해서 계약을 바꾸지만 그때마다 계약대로 되었다.
9절 이는 하나님이 응당 내가 받아야 댓가를 받도록 하신 것이다.
⇒ 야곱의 말에 딸들의 감정은 어땠을까?
* 부인들의 대답(14-16)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5]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딸들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평가는?
① 라헬과 레아가 → 계속 라헬이 앞에 있다. 적극성에서 보면 레아보다는 라헬의 표현과 입장이 더 적용되었을 것이다.
②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 근동지역의 관습에서 부모의 재산의 권리는 출가한 딸에게는 없다.
→ 지금까지 아버지 집에서 태어나 자라고 결혼후에도 친정에 있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에 대한 분리적인 마음을 표출한다.
③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 14년간의 노동은 야곱의 결혼 지참금이다. 일반적인 기간인 2-3년(1명, 게다가 원하지 않은 7년을 추가강요하여 두배가 되었다)에 비해 훨씬 길다. 당시 근동풍습에 지참금의 일부는 다시 딸에게 주어 결혼밑천을 준다. 그러나 라반은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마카르() 팔다, 적에게 넘기다
아칼() 먹다 삼키다. → 여기서 문법적 의미는 계속적으로
직역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팔았고 그리고 그가 또한 우리의 돈을 삼키고 삼켰기 때문이다’
→ 아버지에 대한 딸들의 평가다. 돈(소유 재물)에 대한 아버지의 행동은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④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 아버지가 자기들을 대했던 행동에 대한 감정이다. 매정하고 단절된 느낌으로 거절감이 가득하다.
cf. 과연 이정도로 라반은 매정한가? 이런 부분을 볼때 특히 레아의 의견보다는 라헬의 입장과 감정이 더 적용된 것같다. 라반도 동생 리브가가 출가할 때 며칠이라도 있기를 바랬다.
(창 24:55,58) 『[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cf. 야곱이 라헬에게서 어머니로서 리브가의 모습을 보았다면, 라반도 라헬에게서 매정한 동생으로서 리브가의 모습을 보았을 수 있다. 또한 어릴적부터 출가이후에도 레아와 라헬의 갈등을 보았다면 라헬의 아버지의 이미지와 라반의 딸(라헬)이미지는 상호적이었을 수 있다.
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1절-라반의 아들들의 시각, 라카흐()-빼앗다, 취하다, 탈취하다, 탐하다
9,16절-야곱과 부인들의 시각, 나찰()- 건져내다. 끌어내다, 빼내다, 되찾게 하다, 건져내다, 구원하다.
→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빼앗았다고 표현하지만 야곱과 딸들은 하나님이 취했다고 표현한다. 야곱과 같은 시각으로 철저히 야곱쪽에 이같은 시각을 보이고 있다.
→ 계약조건상 정당한 노동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그들은 남편을 편든다.
cf. 라헬의 도적질 - 까나브() 훔치다, 도적질하다.
(창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창 31: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⑥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준행하라 - 아사() 단순한 호응이 아니라 적극적인 동조를 표현한다.
* 야곱이 떠나다
(창 31:17-20) 『[17]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 야곱은 라반에게 말하지 않고 떠나고, 라헬은 라반이 없는 사이에 드라빔을 훔친다. 드라빔은 상속과 지배권을 가진다.
cf.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축복기도를 받듯이 라헬은 집안의 드라빔을 훔친다. 이는 야곱이 그로 인해 어려움을 당하듯 드라빔으로 위기를 맞는다.
(창 31:21-24) 『[21]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23]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 3일뒤 그 사실을 알게된 라반은 추격하고 하나님이 말리심을 듣는다.
(창 31:25-29) 『[25]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2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 야곱에게 도착한 라반은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까지 말한다. 그러나 드라빔에 대해 말한다.
(창 31: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 라헬도 드라빔을 도적질했고, 라반도 도둑질이라 표현한다. 까나브()
창 31:31-55 이후 이야기는 라헬은 드라빔을 숨기고 라반은 찾지 못하게 되고 야곱은 그동안 힘들었던 부분을 말하면서 상호불가침조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라반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떠난다.
(창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정리]
① 라반과 아들들의 반응,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향을 결정하여 아내들과 상의한다.
② 라헬과 레아의 의견에는 아버지 라반에 대한 매정함과 구두쇠의 모습을 비난한다.
③ 그러나 이것은 라헬의 의견으로 보이며 경쟁에 익숙한 라헬은 단절과 분리를 보인다.
④ 라헬은 그렇게 비난하는 아버지이지만 라반과 많이 닮았다.
[라헬과 레아의 결혼 생활과 죽음]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가정을 이끌어 갈 때,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 결혼에서 남자의 변화보다 아내와 엄마가 되는 여자의 변화는 더 클 것같다.
지금까지 라헬과 레아는 친정에 있었다. 때가 되어 야곱이 고향으로 가려할 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그들이 동행하도록 결정하게 했다. 실제 이후의 삶은 야곱과 요셉을 중심으로 쓰여지고 있기에 라헬과 레아가 어떠했는지는 알수 없다. 그저 그런 상황에서 이런 기분, 마음, 생각이었겠다고 추측만 가능할 것같다. 과연 그들의 결혼생활에는 어떤 일이 있고 그 삶은, 이들에게 펼쳐진 미래는 행복할까? 좋은 일보다 힘들게 하는 일, 위기의 연속이 아닐까? 출발부터 위기이다. 그것도 아버지에게
* 라반의 추격
31장 라헬은 야곱도 모르게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한다. 라반은 레아의 장막도 라헬의 장막도 들어가 찾는다. 라헬은 라반을 속여 위기를 모면한다.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고향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는 것은 훗날을 위함인가? 아무것도 주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복수인가? 아님 나름 잘 살아보려고 한 것인가?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cf. 야곱도 장자 축복권을 추구했고 이로 인해 형으로부터 죽음의 위협과 고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창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창 31:32-35) 『[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 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 이렇게 해서 라반과 야곱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고, 도둑질한 드라빔은 효력을 상실했다.
32장 마하나임(1-2).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하다.(3-12) 예물을 나누어 보내다.(13-23) 얍복나루에서의 씨름(23-32)
(창 32: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 야곱은 모든 예물을 먼저 보내고 마지막으로 가족들도 나루를 건너게 하고 홀로 남는다.
① 지금까지 사랑받기 위해 자매간에 갈등의 원인이었던 남편이, 결국 자신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감정은 어땠을까? 특히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반감으로 함께 남편만 바라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혼자만 남고 자기들에게 건너가라 했을 때 감정은 어땠을까? 실망일까 안타까움일까?
② 예물에 이어서 마지막 건널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야곱에 전달된 감정은 에서가 죽일 수 있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마음일까?
33장 야곱이 에서를 만나다.
(창 33:1)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 강건너 홀로 있던 야곱이 어느새 건너와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시 새로운 각오를 한 것처럼 보였을 남편을 보며 아내들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안정감을 가졌을까?
(창 33: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 야곱은 각각 순서를 정하고 자식들과 같이 세운다. 야곱의 행동을 보며 레아와 라헬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여전히 변함없는 야곱의 마음을 보면서 레아와 라헬은 각각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창 33:3-4)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 어제만해도 아내와 자식들 뒤에 있던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면서 그들 앞에 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아내들은 어떤 마음일까?
→ 야곱이 절하며 에서를 맞아 서로 안고 울고 있다. 형제간의 우는 모습을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두려워하는 야곱을 보며 안도감을 가졌을까?
(창 33:5-7)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 그동안 긴장하게 했던 에서가 자신을 보며 묻고 있다. 절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이후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향한다.
34장 레아의 딸 디나의 성폭행과 아들들의 복수
(창 34: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 세겜이 레아의 딸을 성폭행한 후 통혼을 하려 한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것을 반대하고 할례를 계략으로 그들을 진멸한다.
(창 34: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이일의 주도는 레아의 아들이고 디나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한다.
(창 34:30-31)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 야곱은 불안해 하고 두 아들은 분노를 표현한다.
→ 이것을 지켜보는 레아는 어떤 마음일까? 불안해 하는 야곱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아들들은 흥분해 있다. 만약 라헬이 자기 딸이었으면 어찌했을까?
* 35장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1-15), 라헬의 죽음(16-20) 야곱의 아들들(21-26) 이삭의 죽음(27-29)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처가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이 다시 야곱을 불러 벧엘로 가라 하신다.
(창 35:2-3)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 처가에서 아내들을 불렀던 것처럼 불러서 이야기한다.
(창 35:4-5)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라헬이 처가의 드라빔을 훔칠 때와는 반대로 우상을 정리한다. 오히려 지역민들은 야곱의 가족을 두려워한다.
→ 처가에서 나올 때처럼 새로운 결단하는 하는 라헬과 레아는 어떤 각오를 하였을까? 그동안 버리지 않은 이방신상에 대한 결단은 친정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는 것일까? 가족을 위한 그들의 결정에서 가족을 향한 마음은 무엇인가? 어떤 마음으로 벧엘로 올라갔을까?
(창 35:16-20)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라헬은 출산을 하던중 산고로 사망한다.
① 산파의 ‘두려워말라’는 당시 라헬의 마음이었을까?
② ‘또 득남하느니라’는 산고중에서도 라헬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③ 그러나 죽게 되어 마지막 순간 아들의 이름을 슬픔이란 의미로 ‘베노니’로 이름짓는 마음은 어떨까?
(창 35:19-20)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장사지내는 것을 보며 레아는 어떤 마음일까? 지금껏 경쟁과 갈등과 표현의 차이를 보였던 동생의 죽음, 여전한 삶의 상황 속에서 느끼는 레아의 마음은 어떨까?
36장은 에서의 자손, 세일의 자손, 에돔의 왕들
37장 요셉이야기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 요셉이 17세때 야곱은 다른 아들보다 더 사랑하여 채색옷을 입힌다.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 이어지는 요셉의 꿈이야기에 대해 야곱은 간직한다. 이때 라헬과 레아는 각각 어떤 마음일까? 여전히 사랑받고 꿈까지 꾸는 요셉을 바라보는 라헬의 마음과 여전히 자신의 아들들은 자신처럼 사랑을 받지 못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까?
(창 37: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 요셉이 팔려가는 이야기는 33장(세겜정착)과 34장(세겜진멸) 사이이다.
(창 37:34-35)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야곱이 죽었다는 소식에 야곱은 굉장히 슬퍼한다. 자신이 사랑한 만큼 슬퍼하는 것같다.
→ 그나마 아들 하나있는 라헬은 어떤 마음일까? 후에 아들의 죽음처럼 자신도 죽음으로 가고, 산고중에 낳은 아들도 소원대로 하나더 낳지만 자신은 죽고 태어나는 아들이라 그런지 베노니라고 한다.
→ 야곱이 죽겠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라헬이 죽었다.
→ 레아는 오랜시간 힘들어하는 라헬과 죽어가는 라헬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질까?
* 레아의 죽음
(창 49: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 죽음당시의 상황이 기록되지 않았다. 레아는 가족이 이집트로 가기전 가족묘에 묻힌 듯하다. 힘든 가족들의 상황들을 마지막으로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했을까?
38장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
39장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40장 요셉이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다
41장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다.
42장 야곱의 강요로 아들들이 애굽으로 가다.
43장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애곱으로 가다.
44장 요셉이 형들의 형제애를 보다.
45장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히다.
46장 야곱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가다.
47장 야곱 가족이 애굽에서 지내다.
48장 야곱의 요셉아들 축복기도
49장 야곱의유언과 죽음
50장 야곱의 장례와 요셉의 죽음
[정리]
① 주로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 중심의 내용이라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없다.
② 적극적이던 라헬도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고, 다만 베냐민의 출생과 자신의 죽음에 관해서만 있다.
③ 레아의 조용한 성향은 모든 삶을 지켜보아야 했을 것이다.
④ 이런 그들의 삶에서 하나님은 어떤 은혜를 그들에게 인도하셨을까?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