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6. 야곱 - 하나님과 함께 고향으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 28. 11:30

[야곱의 반복된 선택과 하나님의 도우심]

바르지 않은 선택으로 타지에서 살게된 야곱은 가정을 세우고 하나님의 지켜주심으로 재산도 모으게 되었다. 그러나 더 이상 처가에 있을 수 없게 된 야곱에게 하나님은 일어나 떠나라 하시고 아내들도 이에 동의한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떠나는가?하는 시기와 방법이다. 그리고 야곱은 어떤 감정의 영향을 받으며 선택하는가?


* 야곱의 상황

① 계약기간이 끝났다. → 더 이상 라반이 변경할 것이 없다.

② 가족을 세우고 빈손이 아닌 재산이 많아졌다. → 정직과 성실의 노력과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있었다.

③ 라반과도 아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다. → 시기의 표현을 보고 들어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었다.

④ 아내가 동조해 준다. → 아버지에 대한 반감까지 있다.

⑤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셨음을 깨닫는다.

⑥ 하나님의 명령 →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 하신다.

⇒ 모든 것이 야곱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Q. 이제 정식으로 인사하고 떠나면 어떻게 될까? 라반이 순수히 보내줄까, 아니면 요셉이 태어날 때처럼(30:25-) 계약조건을 제시할까? 계속 붙잡으려는 라반에 대해 하나님은 어떻게 야곱을 인도하실까? 정직을 배워가는 야곱에게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31:13)하신 뜻은 라반에게 말하지 말고 떠나라는 뜻일까? 아니면 라반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는 단호함의 표현일까? 야곱이 정직을 선택했다면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벧엘의 약속 안에서 어떻게 이루실까?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cf. 리브가의 결혼때 아브라함의 종도 리브가도 지체하지 않겠다고 했었고 잠시 머물기를 원했던 라반은 막지 못했다. 지금 야곱도 딸들도(리브가를 닮은 라헬) 당당하게 말했다면 붙잡지 못하지 않았을까?


* 야곱은 어떻게 하는가?

(창 31:17-18) 『[17]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창 31:17-18) 『[17] 야곱이 서둘러서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나누어 태우고, [18] 그가 얻은 모든 짐승과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 인사없이 야곱은 자식과 아내들과 떠날 준비부터 마치고 가나안땅으로 출발한다. 목적지는 가나안땅 아버지 이삭에게 가려 한다.


* 시기와 방법은 무엇인가?

(창 31:19-20) 『[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창 31:19-20) 『[19] 라헬은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나간 틈을 타서 친정집 수호신의 신상들인 드라빔을 훔쳐 냈다. [20] 그뿐만 아니라, 야곱은 도망칠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아람 사람 라반을 속이고 있다가,』

→ 언제 :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을 때 - 며칠동안 계속되는 양털깎는 일은 연례행사로 친구를 초청하여 잔치를 연다. 이같은 상황은 라반의 감시가 소홀해지는 시기임을 야곱은 알고 있었다.

→ 방법 : 아무도 모르게 도망칠 낌새도 보이지 않다가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cf. 라헬은 왜 드라빔을 훔쳤을까? 그들을 추격한 라반에게 하나님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하지만 라헬의 욕심으로 인해 라반은 야곱의 귀향을 막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막을 수 있는 위험한 빌미를 주었다.


(창 31:21)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창 31:21) 『모든 재산을 거두어 가지고 도망하였다. 그는 a강을 건너서 길르앗 산간지방 쪽으로 갔다. (a. 유프라테스 강)』

→ 밧단아람에서 길르앗 산까지 480km로 열흘이 걸린다. 이는 하루 평균 48km로 가축을 몰면서 갈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는 야곱의 마음은 라반이 쫓아올 것이라는 불안이 가득했을 것이다.


* 그럼 라반의 반응은?

(창 31:22-23) 『[22]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23]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창 31:22-23) 『[22]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지 사흘 만에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23] 라반은 친족을 이끌고 이렛길을 쫓아가서 길르앗 산간지방에서 야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 3일 뒤 야곱의 도주소식을 듣고 자기 형제들을 데리고 7일을 쫓아 붙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밧단아람에서 길르앗 산까지 480km로 야곱의 평균 48km에 비해 라반의 7일간 추격은 약 70km 씩으로 아주 빠르게 추격하였다.

→ 야곱의 도주는 라반을 분노하게 한다. 또한 야곱을 붙잡을 명분이 없는 라반에게 다시 억지를 부릴 수 있게 한다. 7일간 오로지 야곱을 붙잡을 분노로 가득해졌을 라반은 추격을 하면서 명분을 세웠을 것이다.(26-30)


* 이런 라반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창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창 31:24) 『그 날 밤에 아람 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 라반은 바로 앞까지 추격하였다. 내일이면 무방비상태의 야곱을 공격할 것이다. 이를 위해 달려온 라반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 하나님은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개입하신다. 지금까지 상대의 표현을 빌어 입으로만 표현하던 라반은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다. 야곱을 지키시겠다는 약속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이다.

-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 ‘선으로부터 악까지’ 모든 것을 말하지 말라.

→ 하나님은 야곱과 관련된 어떤 것도 옳고 그름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거나 시비를 가리지 말라 하신다. 돌아가자는 말이나 책망의 말도 하지 말라 한다.

→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라반의 마음은 어땠을까? 분노로 가득한 라반은 모두 해할 기세였다. 그런데 꿈에서 절대명령을 받은 라반은 두려움이 생겼다. 그 하나님이 야곱을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cf. 죽음같은 다른 극단적이면서 간단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꿈을 통해 라반을 막으신다. 만약 죽음으로 해결하려 했다면 라반만 죽어서는 안된다. 라반의 아들과 형제들까지 그 공동체까지 죽음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꿈에 나타나 라반에게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막으신다. 야곱을 해할 수도 있는 라반을 막으셨다.

(창 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창 31:29)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 야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창 31:25)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창 31:25)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았을 때에 야곱이 길르앗 산간지방에다 이미 장막을 쳐 놓았으므로 라반도 자기 친족과 함께 거기에 장막을 쳤다.』

→ 라반이 도착하여 보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쳤다. 장막은 이동할 때 운반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이동식주거지이다. 여기서 ‘쳤다’는 말은 땅에 고정시켰다는 의미이다. 어느정도 라반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안심한 야곱은 지친 가족들과 가축들을 쉬게 하였다.


→ 이때 안심하고 있는 야곱에게 들이닥친다. 분노로만 가득했다면 해하였을 라반이 꿈에서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받았지만 야곱에게 자신이 할 말은 한다.

* 라반의 논조와 억지

(창 31:26-30) 『[2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창 31:26-30) 『[26]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속이고 나의 딸들을 전쟁 포로 잡아가듯 하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27] 어찌하여 자네는 나를 속이고, 이렇게 몰래 도망쳐 나오는가? 어찌하여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간다고 말하였으면 북과 수금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며 자네를 기쁘게 떠나 보내지 않았겠는가? [28] 자네는 내가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 입을 맞출 시간도 주지 않았네. 자네가 한 일이 어리석기 짝이 없네. [29]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30] 자네가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찌하여 나의 수호신을 훔쳤는가?"』

① 네가 나를 속이고(26) - 알리지 않았음을 책망한다. 자신이 막았을 것은 들어내지 않는다.

②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26) → 딸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하나, 딸들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스스로 야곱을 따라 갔다.

③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27) → 관례적인 멋진 환송식을 했을 것이라 하나 계속해서 야곱을 속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동원했을 것이다.

④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27) → 속이고 도망하였다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든 머물게 하려 했을 것이다.

⑤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28) → 자연스러운 혈육의 정을 막았다 하며 자신을 정이 많고 손자들을 아낀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14-16에서 보듯이 라헬과 레아는 자신과 자식에게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라반이 취하셨다고 한다.

⑥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28) → 혈육과 작별의 정조차 나누지 못하게 한 야곱의 행위가 우둔하고 어리석다고 강하게 질책하며 자신의 불만을 부각시키고 있으나 야곱은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라반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은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⑦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29) → ‘너를’은 복수형으로 ‘너희들에게’이며 해를 가할 대상은 야곱뿐 아니라 모든 일행들이었다. 고로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야곱은 그대로 위험에 처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이렇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야곱에게만 철저히 잘못이 있음을 덮으려는 라반이었다. 그렇게 야곱은 생명까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⑧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였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명령이 아닌 절대 그대로 지켜야하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라반은 자신의 논조와 억지를 모두 말한다.(26-30)

⑨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 직역 “네가 네 아비 집을 정말 사모하기 때문에 네가 정말 떠났다”

→ ‘옳거니와’ - 라반은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거나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야곱의 행위는 야곱의 목숨을 해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하나님이 말하지 말라 하여 더 이상은 막지는 않겠는 의미이다. 그러나 따질 이야기는 모두 다 했고 마지막으로 하나더 물어본다.

⑩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 복수형으로 여러개의 드라빔을 말한다.

→ 드라빔은 조상대대로의 가정수호신이자 재산상속의 합법성을 보장해 주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말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지만 드라빔이 발견되면 하나님의 말씀도 다시 번벅할 수 있기에 끝까지 말한다. 언제나 번벅하는 라반의 특징이다.


* 야곱의 두려움

(창 31:31-32)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창 31:31-32)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였다. "장인께서 저의 처들을 강제로 빼앗으실까 보아 두려웠습니다. [32] 그러나 장인 댁 수호신상들을 훔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장인의 물건 가운데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저에게 있는지, 우리의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보시고 있거든 가져 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 수호신상들을 훔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 야곱은 두려웠다고 한다. 해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을 고백한다.

-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 생명의 생사결정은 하나님께 있음에도 두려운 마음으로 라반에게 넘긴다. 몰랐다고 하기에는 가족을 보호할 마음이 약하다.

cf. 아브라함도 이삭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 두려움은 얍복나루에서 그대로 나온다.

→ 야곱은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말한다. 또한 자신의 정직을 강조한다.


* 라반이 집착

Q. 해할 능력과 권한이 있는 라반..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면 아무말도 하지 말고 인사만 하고 가야하지만 가족신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딸들의 장막을 뒤진다. 만약 드라빔이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창 31: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창 31:33) 『라반은 먼저 야곱의 장막을 뒤졌다. 다음에는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의 장막까지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레아의 장막에서 나온 라반은 라헬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 순서 : 야곱-레아-두 여종-라헬 순이다.

→ 상대의 허락없이, 예의없이, 수색영장도 없이, 권리도 없이 오로지 드라빔을 찾기 위해 뒤진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은 상관없이 자기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집착하는지 보여준다.

Q. 라반의 기준은 무엇일까? 왜 레아를 야곱 다음으로 확인했을까? 만약 장막을 치지 않았다면 라헬이 연기할 수 있었을까?


(창 31:34-35)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 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창 31:34-35) 『[34] 라헬은 그 수호신상들을 낙타 안장 밑에 감추고서 그 위에 올라타 앉아 있었다. 라반은 장막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35] 라헬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월경중이므로 내려서 아버지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라반은 두루 찾아보았으나 끝내 그 수호신상을 찾지 못하였다.』

→ 근동에서 월경중의 여인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로 종교의식이나 외부와의 접촉도 금기이다.

→ 라반이 라헬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관습으로 자신이 부정해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 라헬의 말을 믿는 것은 부정한 상황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드라빔을 깔고 앉았으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할말있는 야곱과 하나님의 반전

(창 31:36-42) 『[36] 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 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 31:36-42) 『[36] 야곱은 화를 내며 라반에게 따졌다. 야곱이 라반에게 물었다. "나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불길처럼 달려들어서 저를 따라오신 것입니까? [37] 장인께서 저의 물건을 다 뒤져 보셨는데 장인의 물건을 하나라도 찾으셨읍니까? 장인의 친족과 저의 친족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내놓아 보십시오. 그리고 장인 어른과 저 사이에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이 사람들이 판단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38] 제가 무려 스무 해를 장인 어른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동안 장인 어른의 양 떼와 염소 떼가 한 번도 낙태한 일이 없고,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에서 숫양 한 마리도 잡아다가 먹은 일이 없습니다. [39] 들짐승에게 찢긴 놈은 제가 장인에게 가져가지 않고, 제것으로 그것을 보충하여 드렸습니다. 낮에 도적을 맞든지 밤에 도적을 맞든지 하면, 장인께서는 저더러 물어내라고 하셨습니다. [40] 낮에는 더위에 시달리고,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낸 것, 이것이 바로 저의 형편이었습니다. [41] 저는 장인 어른의 집에서 스무 해를 한결같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두 따님을 저의 처로 삼느라고, 십 년 하고도 사 년을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렸고 지난 여섯 해 동안은 장인 어른의 일을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장인께서는 저에게 주셔야 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셨습니다. [42] 나의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이시며 이삭을 지켜 주신 두려운 분께서 저와 함께 계시지 않으셨으면 장인께서는 저를 틀림없이 빈 손으로 돌려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가 겪은 고난과 제가 한 수고를 몸소 살피시고 어젯밤에 장인 어른을 꾸짖으셨습니다."』

→ 야곱의 감정 : 화가 나다. 그 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명분이 있느냐 친족앞에서 말하라→20년간 정직하게 최선을 다했다→그러나 당신은 열 번이나 변경했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셨다.

→ 광경 : 야곱은 따지고 라반은 들어야만 한다. 라반과 같이 온 사람들도 들어야 한다.

⇒ 같이 야곱을 잡으려 온 라반의 형제들 앞에서 라반이 부끄럽게 되었다. 라반을 죽이는 것보다 더큰 효과를 거둔다. 불가침 조약을 맺게 한다. 이것은 야곱에게도 더 이상 뒤를 볼 수 없게 한다.


Q. 야곱은 왜 도주하여야 했을까?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현재 라반에게는 야곱을 붙잡을 수 있는 명분이 없다. 오히려 도주함으로 명분을 주었다. 속이는 라반에 대해 야곱이 훈련받은 것은 정직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정직을 선택하지 않고 도주라는 속임을 선택한다.


▶ 그럼, 무엇이 야곱을 끝까지 정직과 최선을 선택하지 못하게 했을까?

→ 불안과 두려움

(창 31: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창 31: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였다. "장인께서 저의 처들을 강제로 빼앗으실까 보아 두려웠습니다.』

→ 야곱이 몰래 도주한 결정적인 이유는 라반의 자식들의 시기와 라반의 태도 속에서 가족을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 불안과 두려움은 바르지 않은 선택을 하게 한다. 위급한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회피 또는 공격을 선택한다.


▶ 야곱은 왜 두려움이 있을까?

① 홀로 되는 두려움 - 집에서 나올때 모든 것이 자신의 것임에도 모든 것을 놓고 와야하고 홀로 였다는 것이다.

② 익숙한 두려움? - 도주할 시기에 다시 발동하게 된 감정. 에서를 피해 도망할 때 느낀 감정을 라반을 피해 도주해야하는 상황에서 떠올랐을까? 이어지는 에서와의 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 야곱에게 회피는 무엇인가?

① 익숙한 방법 : 한번 해보았고 그것으로 안전해졌었다. 에서 몰래 도망하듯 라반 몰래 도주한다.

② 부모가 가르쳐준 방법 : 부모는 에서와의 상황에서 피하라 한 것이지 모든 것에 적용하라 한 것은 아니다.

→ 그러나 자녀는 부모의 메시지를 무의식중에 적용한다.


▶ 같은 결과인가? 아니다.

① 에서는 쫓아오지 않았지만 라반은 쫓아왔다.

② 에서는 부모가 막았지만 라반은 막을 사람이 없었다.

→ 그런데 하나님이 막으셨다.

⇒ ∴이는 에서를 막으신 것도 라반을 막으신 것도, 즉 야곱을 보호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말한다.


[정리]

① 불안과 두려움은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한다.

② 상황에 따라 주관적인 감정이 흐른다.(불안-안심, 긴장-당당)

③ 야곱의 삶에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다면 많이 어려웠을 것이다.

④ 야곱의 시각은 제한적이지만, 하나님은 전체적으로 보신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만나다]

지난 주 나눈 것은 하나님이 야곱을 정직으로 인도하시는데 야곱은 왜 도망이란 반복을 행할까?였다. 그의 불안은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 제한된 시각의 야곱을 위해 하나님은 라반을 막아주시고 반전을 이루시면서 야곱의 속마음을 말하게 하셨다. 이제 처지가 달라졌다. 추격해온 라반은 명분이 없어졌고, 야곱은 더 당당해졌다.


* 라반의 생색과 억지

(창 31:43-44)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창 31:43-44)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나의 딸이요, 이 아이들은 다 나의 손자 손녀요, 이 가축 떼도 다 내 것일세. 자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있는 나의 딸들과 그들이 낳은 나의 손자 손녀를, 이제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44] 이리와서 자네와 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이 우리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세."』

→ 딸들과 자식과 양떼가 자기 것이라 하지만 모든 것은 야곱의 정당한 노동의 댓가였다.

→ 할말없게 된 라반이 제안한 것은 다시 계약을 맺자는 것. 마치 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항상 내기꺼리를 찾듯이 이 상황에서도 라반이 선택하는 것은 계약을 맺자한다. 왜? 계약만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약을 제안하지 않았을 것이다.

→ 명분없는 라반의 생색 : 모두 내것이지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이렇게 말하는 라반의 목적 : 반전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고

-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① 이제 라반은 야곱과 계약을 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복금지명령에도 보복하려 했는데 끝까지 야곱을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야곱이 분노를 폭발하였다.

② 훗날 드라빔을 발견한 야곱이 ‘재산상속권’을 요구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③ 점점 강성해지는 야곱이 더욱 강성하여 자신에게 복수하러 올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④ 야곱이 도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합법적으로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야곱을 박대하여 도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창 31:45-46)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창 31:45-46) 『[45] 그래서 야곱이 돌을 가져 와서 그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46] 또 친족들에게도 돌을 모으게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 와서 돌무더기를 만들고 그 돌무더기 옆에서 잔치를 벌이고, 함께 먹었다.』

→ 주체 : 계약은 라반이 하고 돌은 야곱이 가져온다. 야곱의 적극적 반응이다. 야곱은 돌을 가져 기둥을 세우고 그 형제들도 돌을 모으게 했다.


(창 31:47-48)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창 31:47-48) 『[47]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b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하였다. (b. 증거의 무더기를 아람어로는 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갈르엣이라 함) [48] 라반이 말하였다. "이 돌무더기가 오늘 자네와 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일세." 갈르엣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 증거의 무더기 :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

→ 라반이 아람어로 이름을 붙였음에도 굳이 히브리어로 다시 붙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갖는 행위이다.

⇒ 야곱은 점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을 분노케 한 라반에게 평화적으로 행동하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자기주장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한다.


(창 31: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창 31:49) 『이 돌무더기를 달리 a미스바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라반이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주께서 자네와 나를 감시하시기 바라네"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a. 망루)』

→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 그분께서 야곱과 자기 사이를 살펴주시기를 바라는 라반의 기원과 소망이 담겨진 말처럼 표현한다. 변하지 않는 라반의 스타일이다.

⇒ 예전에는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 상대의 신을 불렀다면 지금은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여전히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지만 방법은 자기방식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다.


* 라반의 조건

(창 31:50-53)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창 31:50-53) 『[50] "자네가 나의 딸들을 박대하거나, 나의 딸들을 두고서 달리 아내들을 얻으면 자네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네와 나 사이에 증인으로 계시다는 것을 명심하게. " [51] 라반은 야곱에게 또 다짐하였다. "이 돌무더기를 보게. 그리고 내가 자네와 나 사이에다 세운 이 돌기둥을 보게. [52] 이 돌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돌기둥이 증거가 될 것이네. 내가 이 돌무더기를 넘어 자네 쪽으로 가서 자네를 치지 않을 것이니, 자네도 또한 이 돌무더기와 이 돌기둥을 넘어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나를 치지 말게.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 사이를 판가름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 그러자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을 지켜 주신 두려운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 딸에 대해 굉장히 걱정하는 것같이 들린다. 그러나 과거에 중혼을 강요한 것은 라반 먼저였다. 즉 ‘내 말대로만 하고 내가 행한대로는 하지 말라’는 식이다. 라반의 언행불일치의 모습이고, 딸들도 그런 아빠의 모습을 알고 있다.

→ 라반은 절대금지를 표현함으로 자신의 바램을 드러낸다. 라반은 더욱 강해질 야곱과 그렇게 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① 라반은 다신론적 관점-라반 자신의 조상의 신과 연결하여 말한다. 아브라함의 신을 그 위의 신과 연결시킨다.

② 라반은 더 많은 신을 야곱과의 계약에 개입시킴으로 야곱이 그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리라 생각한다. 야곱도 자신과 같은 신관을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③ 자신의 드라빔이 없어진 상황에서 라반의 두려움은 너무나 크다.

⇔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

① 야곱에게 신관은 유일신관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에서 위가 아닌 아래로 내려오며 이삭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② 라반은 여러신들에게 ‘판단하소서’하였지만 야곱은 ‘경외하는’ 한분에게만 맹세한다.

③ 불안한 라반과 달리 야곱은 흔들림이 없다.


(창 31: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창 31:54) 『야곱은 거기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친족들을 식탁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산에서 제사 음식을 함께 먹고 거기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 제사를 드리고 : 제물을 잡아 드리는 희생제사였다.

→ 당시 중근동 지방에서 언약이나 동맹관계를 위한 계약을 맺고 나서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뜻으로 희생제사를 드리고 남은 음식을 함께 먹던 관습이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계약을 맺은 당사자간의 화해와 우정을 다지고 계약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계약의 내용에 동의함을 확인하였다.

-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 라반의 형제들로 좀 떨어져 있던 그들을 가까이 불러들여 무더기처럼 계약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함께 식사를 나눈다.

→ 제대로 계약식을 행하고, 증인들과 음식도 나눈다.

cf. 만약 하나님이 라반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하지 않고 라반에게 죽음이나 다른 방법으로 이곳에 없게 되었다면 이 제사도 없고 같이 데려온 사람들이 증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 라반의 자손들과도 관계가 좋지 않았을 것이다.

⇒ 이삭과 야곱의 부인이 신앙과 종족을 지키기 위해 라반에게 갔었지만, 이후 라반과의 관계는 없다.


* 라반의 작별인사

(창 31: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창 31:55) 『라반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손자 손녀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축복하고, 길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 입맞추며, 축복하고 : 라반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딸과 손자에게 적극적으로 축복한다.


※ 고향으로 돌아갔더라(31:55) vs 길을 가는데(32:1)

→ 라반은 라반대로, 야곱은 야곱대로 길을 간다. 이 둘은 더 이상 뒤돌아갈 수도 영향을 줄수도 없게 되었다.

Q. 모든 과정을 보던 야곱은 자신의 길을 가면서 어떤 마음일까? 안도와 불안이 함께 있지 않을까? 이런 과정 속에서 라반에 대해서는 자신이 한 것이 없고 하나님이 하신 것을 보면서 안도를, 앞으로 만날 에서를 생각하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하기에 불안이.. 이제는 뒤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만 가야한다.


* 마하나임

(창 32:1-2)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1]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났다. [2] 야곱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하면서 그 곳 이름을 b마하나임이라고 하였다. (b. 두 진지)』

- 하나님의 사자(창세기에 4번, 여호와의 사자 6번)

(창 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창 31: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① 하나님의 사자의 역할 :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② 만남의 주체 :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만난다.

③ 사자를 만나고 새로운 일이 있었다.

⇒ 요셉이 태어날 때 떠나려 했던 야곱이 붙잡혔지만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의 명을 받은 야곱은 출발한다. 에서를 만나야할 상황 앞에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다.


cf. 여호와의 사자

* 이스마엘의 출생예언

(창 16:7-11) 『[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 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 이삭-모리아산에서

(창 22: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22: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창 22: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이삭의 부인을 택하는 과정

(창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창 24:40)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비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 야곱에게 보인 하나님의 사자의 모습은 군대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에서와의 만남이 기다려지고 있다.

cf. 왜 하나님의 사자가 군대가 되었을까? 앞으로 다가올 불안의 대상이 군대일까?

(창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 32:6) 『심부름꾼들이 에서에게 갔다가 야곱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형님인 에서 어른께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지금 부하 사백명을 거느리고 주인 어른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군대는 평안함을 준다. 형 에서의 400명은 불안을 준다. 다시 야곱을 불안 속으로 넣는다.


[정리]

① 야곱은 라반과의 재계약에서 유일한 자기의 하나님을 고백한다.

② 야곱은 히브리적 정체성과 유일신관을 표현한다.

③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먼저 만난다.

④ 하나님의 사자는 여전히 불안한 야곱의 삶을 인도한다.

 - 추가하는 내용

① 라반에게 정직을 배운 야곱, 불안으로 옛방식을 사용하지만 라반에게 불안했음을 정직하게 말한다.

② 야곱과 라반이 만날때는 관계가 깨질 수밖에 없는데 기념비를 세우게 되면서 하나님은 둘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셨다. 서로에 대한 경계를 짓는 모습을 이루게 된다.


 

[야곱의 두려움과 자기 방식]

라반과의 원만한 결별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야곱은 계속 불안하지만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반전이 되고 기념비를 세움으로 서로에 대해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이 지어졌다. 이후 야곱은 계속 길을 가고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을 만난다.

* 질문

① 야곱은 서로 넘어갈 수 없음을 나타내는 기념비를 계속 좋아했을까?

② 하나님의 군대를 만남으로 무슨 생각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③ 우리라면 무엇을 먼저 할까? 가까이 있는 이삭에게 일까, 아니면 멀리 있는 에서에게 일까?

④ 아버지 이삭에게 갔다면 보호받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을까? 에서가 에돔에 있다는 것을 알 정도면 이삭의 생존소식도 알았을 것이다.

⑤ 형 에서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에서가 강하기 때문이고 이삭이 그의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 여겨서 일까?

⑥ 이삭의 하나님은 찾아도 이삭은 찾지 않는다? 가나안에 있으면서 사망전까지 이삭에게 가지 않는다. 어머니가 있었으면 갔을까?


* 이제 야곱은 고향으로 가기 전 형에게 소식을 전한다.

(창 32: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창 32:3) 『야곱이 에돔 벌 세일 땅에 사는 형 에서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을 보내면서』

→ 형 에서에 대해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 가까운 이삭보다 멀리있는 형에게 먼저 소식을 전한다.

Q. 에서가 에돔 땅에 사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이삭은 헤브론에 있고 에서는 분가했다.

cf. 이삭이 180세(야곱은 120세)에 사망할 때 헤브론에 있었다.

(창 35:27-29)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 심부름꾼을 보내며 단단히 이르다.

(창 32:4-5)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창 32:4-5) 『[4]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의 형님 에서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주인의 종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그 동안 라반에게 몸붙여 살며 최근까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5] 저에게는 소와 나귀, 양 떼와 염소 떼, 남종과 여종이 있습니다. 형님께 이렇게 소식을 전하여 드립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 그들에게 명령하여 : 명령하다(차와 הוצ)는 ‘단단히 이르다’는 의미

- 너희는 내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 에서는 ‘주’로, 자신은 ‘종’으로 표현한다. 장자권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형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형의 환심을 사서 노여움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함이다. 야곱의 불안과 일단을 해결하고 보자는 의도이다.

-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 오랜 시간 나그네로 살다가 이제야 돌아옴을 강조한다.

-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 타향살이의 성과를 보고 한다는 식이다.

-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 자신의 지난 잘못을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의미이다.

Q. 형의 것을 가로챘다는 미안함과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것이 마지막 기억인 에서에 대한 두려움?

Q 앞으로 부딪혀야 할 에서에 대해 야곱은 심부름꾼을 보내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불안과 초조함으로 잘되기를 얼마나 바랬을까? 우리라면 심부름꾼이 돌아올 때까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 이렇게 단단히 일러준 소식을 전한 심부름꾼은 무슨 소식을 받아왔는가?

(창 32: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 32:6) 『심부름꾼들이 에서에게 갔다가 야곱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형님인 에서 어른께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지금 부하 사백명을 거느리고 주인 어른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 주인을 만나려고 : 만나다(카라 ארק)는 우호적인 목적도 있지만 적대적인 목적도 가능하다.

→ 야곱의 소식을 전해들은 에서는 400명을 데리고 급하게 출발한다. 심부름꾼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는 호의적인지 적대적인지, 분노로 공격하기 위함인지 용서하며 환영하기 위함인지 알 수 없다. 표준새번역은 ‘치려고’로 번역.

→ 이미 불안한 야곱은 이것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Q.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도망을 한다면 어디로 갈까? 뒤로 간다면 기념비가 있어 갈 수 없고, 이삭에게 간다면 이미 어머니도 없고 기력이 없는 아버지 이삭이 에서의 편을 들어줄 것같고, 다른 곳으로 가자니 에서가 쫓아올 것이고.. → 좀전까지 고마운 기념비가 이제는 뒤로 도망갈 수 없는 담벼락이 되었다. 그것을 만들어준 하나님께 어떤 마음이 들까?


* 야곱의 두려움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창 32:7)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자기 일행과 양 떼와 소 떼와 낙타 떼를 두 패로 나누었다.』

-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 야곱의 감정이다.

①  두렵고(야레 ארי) ‘무서워하다, 놀라다’ - 야곱은 400여명이란 엄청난 숫자에 이미 기가 죽고, 이리로 오고 있다는 말에 더욱 놀란다.

cf. 라반에게 느낀 두려움을 다시 에서에게서 느낀다. 모두 가족을 칠까봐 두려워한다.

(창 31: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창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cf. 야곱에게 가족은 무엇인가? 장자권을 받고 집을 나가야 했고, 부모는 외가에서 아내를 맞으라 했고, 외가집에서 나오려 할때 자신의 집을 세우려 했고, 라반과 에서에게 받은 두려움은 그 가족을 칠까봐였다. 그런 야곱이 모두 보낸다. 곧 모든 것을 보내고 홀로 남아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결국 야곱의 두려움의 근본은 가족이 아니라 자신에 있었다. → 우리 자신에게 두려움의 근본은 무엇일까?

② 답답하여(야차르 רצי) ‘곤란하다, 좁아지다, 군급(窘急막히고 급하다)하다’ - 외부의 압박으로 인한 곤경이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내면의 감정적 반응을 나타낸다.

→ 형을 ‘주’라고, 자신은 ‘종’이라고 하여도 통하기는커녕 자신을 붙잡으러 온다고 느껴진다. 곧 야곱 안에 있는 두려움과 답답함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내적인 불안은 겉으로 나온다.


* 두려움에 대한 야곱의 행동

-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 야곱은 불안에 급해져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즉각적인 자기식의 반응을 취한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창 32: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창 32:8) 『에서가 와서 한 패를 치면 나머지 한 패라도 피하게 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 야곱의 두려움은 에서가 와서 자신을 칠 것으로 확신한다. 그것을 피하고 그간 힘들게 모은 재산을 조금이라도 보호하는 방법은 재산을 두떼로 나누어 보내고 에서가 한떼를 치는 동안 남은 한떼를 가지고 피하려 한다.

→ 야곱은 그 작전이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얼마전 라반도 쫓아왔음이 기억났을 것이다. 이때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반을 막아준 하나님이 기억났을까? 그래서 기 그가 하려던 것을 멈추고 선택한 것은 기도?

※ 야곱에게 익숙한 것은 도망이다. 에서에게서도, 라반에게서도 도망을 자동으로 선택했다. 이번에도 도망을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을 멈추고 기도로 간다. 기도후 야곱은 도망이 아닌 에서에게로 정면으로 나아간다.

cf. 우리라면 익숙한 자신의 방식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방식으로 전환하기 사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까? 우리의 삶은 자신의 방식에서 하나님의 방식으로 전환시키시는 삶일까? 이것을 우리가 할까, 하나님이 하실까? 우리가 할 것은 행위인가 고백인가?


* 야곱의 기도

(창 32:9-12)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 32:9-12) 『[9] 야곱은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10]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 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11] 부디, 저의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야곱의 기도순서

① 자신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하나님을 부른다.(9a)

②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기도한다.(9b)

③ 자신의 과거속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과 진실하심을 고백한다.(10)

④ 지금의 절박한 상황을 고백한다.(11a)

⑤ 자신의 감정과 그 이유를 고백한다.(11b)

⑥ 모든 기도의 근거가 말씀이었기에 다시 약속으로 기도한다.(12)

→ 야곱의 기도에는 자신의 두려움 vs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에 대해 고백이 있다.


* 기도후 야곱의 반응

(창 32: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창 32:13) 『그 날 밤에 야곱은 거기에서 묵었다. 야곱은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서 자기의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을 따로 골라 냈다.』

→ 기도후 야곱은 첫째로 거기서 밤을 지내고(그곳에서 묵는다) 둘째로 형에게 줄 예물을 택한다.

- 예물-선물을 넘어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조공의 의미이다.

→ 두렵고 답답하여 도망을 먼저 도망칠 생각부터 하고 행동도 두떼로 나누는 것부터 하던 야곱이 기도한다. 기도후 하나님은 어떤 응답을 주셨을까? 성경에는 그에 대한 응답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야곱의 행동이 바뀐다. 기도후 행동은 세때로 나누고 도망이 아닌 형을 향하여 적극성을 보인다. 무엇이 기도후에 이렇게 바뀌게 하였을까?

cf. (창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 선물내용

(창 32:14-15)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창 32:14-15) 『[14]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15] 젖을 빨리는 낙타 서른 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마흔 마리와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스무 마리와 새끼 나귀 열 마리였다.』

→ 총 580마리, 종류별로 골고루 준비한다.


(창 32:16-18)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창 32:16-18) 『[16] 야곱은 이것들을 몇 떼로 나누고, 자기의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보다 앞서서 가게 하고,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라고 일렀다. [17] 야곱은 맨 앞에 선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면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가는 이 짐승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18] 너는 그에게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 명령하여 이르되 : 차와(הוצ)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이번에는 종과 예물을 보내며 다시 단단히 이른다. 각 떼로 나누어 보내는 것은 에서의 마음을 녹이기 위함이다.


(창 32:19-20)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창 32:19-20) 『[19] 야곱은 둘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셋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나머지 떼를 몰고 떠나는 종들에게도 똑같은 말로 지시하였다. "너희는 에서 형님을 만나거든 그에게 똑같이 말하여야 한다. [20] 그리고 주인의 종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야곱이 이렇게 지시한 데는 자기가 미리 여러 차례 보낸 선물들이 그 형 에서의 분노를 서서히 풀어 주고, 마침내 서로 만날 때에는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 야곱의 아이디어

① 형에게 가려한다. cf.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② 선물을 골라낸다.

③ 몇 때로 나누고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보다 앞서서 가게 한다.

④ 떼와 떼 사이는 거리를 둔다.

⑤ 첫 종에게 당부한다 :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면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가는 이 짐승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18] 너는 그에게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⑥ 둘째 떼, 셋째 떼, 나머지 떼를 모는 종에게도 똑같은 말을 당부한다.

⑦ 여러차례의 선물들을 보면 그 형의 분노가 서서히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 기도 전에는 두떼로 나누어 도망칠 방법부터 생각했던 야곱이 기도후에는 선물을 통해 형의 분노를 풀어주고 형을 만나려고 한다. → 기도가 마음을 바꿨다.


Q. 선물을 보면 화가 풀릴 것이라는 판단은 기도의 응답인가, 자신의 계책인가? 도망이란 자기 방식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가는 과정이다. 선물은 자기 방식, 형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

- 나를 받으리라(20) : ‘그가 나의 얼굴을 들어 올릴 것이다’ 곧 용서하고 죄인의 위치에서 회복시킬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

Q.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추구하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인가? 선물이 자기 방식이라면 물질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결과로 선물은 전혀 영향이 없었다.

∴→ 야곱의 잘못된 방향 :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회개하려 하지 않고 에서의 마음만 덮으려 한다. 형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속을 못보게 한다.

∴→ 한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았다. 그때그때 단계별로 변해가는 야곱을 본다. 정말 자신을 보고 반성까지 가는 것은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일이고 그 만남이 최종 해결인 에서에게로 나가게 한다.


cf. 진영, 군대, 떼 = 마하네(הꗽꖖꗫ)는 ‘진을 치다, 에워싸다, 방어하다’의 ‘하나’(הנח)에 유래하였다. 복수는 마하노트(תוֹנꕟꗫ)

→ 1절에서 하나님의 군대(마하네)가 마하나임이 되고, 야곱이 나눈 것은 두떼(복수, 마하노트)가 되고, 에서는 400명이 오고 있다.

→ ‘하나님의 군대’를 보고 한걸음 나아가고, 에서의 400명 소식은 두떼(마하노트)로 나누고 도망가려 하고, 기도후 세떼 이상으로 나누어 형을 만나려 한다.

cf. 에서의 용서가 왜 필요한가?

→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출발로 돌아온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수 없다.

cf. 에서는 언제 용서하는가? → 에서는 이미 분가하기 전에 분노의 감정이 삭아졌다.

→ 에서는 이미 용서했고 이것을 모르는 야곱은 혼자서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출발하라고 했던 말씀을 야곱이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면서 해결하신다.

cf. 야곱이 풀어야할 것은 형의 감정인가? 자신의 감정인가?

(창 32: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을 못 푼 야곱은 자신이 중요시 하는 재물을 선물로 보내고, 기다리다가 불안한 야곱은 이번에는 가족도 얍복나루를 건너게 한다. 가족은 라반이나 기도에서도 칠까봐 두렵다고 했던 자신에게는 중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그의 두려움은 모든 것을 보내고 처음처럼 홀로 남는다. 집에서 나올때 혼자서 두려웠던 그가 이번에도 홀로 남아 형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 경험하고 있다.

(창 32:21-24)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홀로 남은 야곱은 만남으로 루스땅이 벧엘이 되었듯이, 홀로 남은 야곱을 만나주심으로 얍복나루가 브니엘이 된다.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30)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하면서 그 곳 이름을 c브니엘이라고 하였다. (c. 하나님의 얼굴)』


[정리]

① 야곱의 불안은 종들에게 단단히 당부함으로 형 에서가 감정을 풀기를 원한다.

② 종들이 가져온 소식은 더욱 야곱을 불안하게 하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③ 그의 두려움에 기도가 들어가고 도망에서 적극적 대면으로 바뀐다.

④ 자신의 방법을 버리지 않고 계속 붙잡으며 자신을 받아드릴 것을 바란다.

⑤ → 에서의 감정은 이미 하나님이 푸셨다.

⑥ 마하네의 확장

⑦ 야곱이 풀어야 할 것은 형이 아닌 자신의 감정이었다.

⑧ 다시 벧엘의 경험을 브니엘에서도 한다.


[얍복은 벧엘의 재경험과 계속된 훈련]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 있다. 우리 각자에게도 그러한 일들이 있고 기념할 만한 경험들이 있다. 나에게 가장 기억되는 큰 일, 전환의 경험은 무엇일까?

아브라함은 떠남과 아들 바치기, 이삭은 모리아의 경험, 야곱은 벧엘과 브니엘일 것이다. 야곱에게 브니엘의 경험은 무엇때문인가? 형때문이고 그로 인한 불안때문이다.

지난 시간 야곱의 불안은 형의 감정을 풀 방법을 간구한다. 도망가려 하던 그가 기도하면서 형을 대면하기로 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방법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형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다. 형의 분노보다 더 급한 것은 자신의 불안과 도망이었다.


(창 32:21-24)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4)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분이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 모든 재물을 보낸 야곱은 밤새 기다리지만 아무 소식을 듣지 못한다. 결국 아내들과 아들들을 얍복나루를 건너게 한다. 결국 그는 홀로 남는다. 홀로 남은 그는 여전히 불안하다.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 야곱의 외로움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 벧엘의 재경험 : 더 이상 써볼 방법도 없이 홀로 남은 야곱은 어떤 마음일까? 야곱은 홀로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족을 세우길 원했다. 그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에 큰 위로를 얻었다. 그런 그에게 지금은 아무도 없다. 홀로 남게 되었다. 외로움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벧엘의 재경험이다. 벧엘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고통을 느꼈던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다시 홀로 남는 경험을 하고 있다.

- 어떤 사람이 : 야곱은 이 사람에 대해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이어지는 내용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지만(29) 야곱의 이름을 개명하여 주고(28)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다고(30) 한다.

-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 씨름하다(아바크 קבא) ‘먼지에 쌓이다, 붙잡다’의 의미로 이는 땅에서 먼지가 일어나 쌓일 정도로 서로 붙잡고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서 ‘씨름하다, 맞붙어 싸우다’의 뜻이다.

→ 언제까지 씨름하는가? 야곱은 이 사람과 씨름하면서 날이 새도록 한다.

cf. 벧엘에서 야곱은 날이 새고 보니 꿈에서 깨게 된다. 밤새 홀로 있으면서 꿈을 통해 하나님의 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다.


(창 32: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창 32:25) 『그분은 도저히 야곱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야곱의 엉덩이뼈를 쳤다. 야곱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엉덩이뼈를 다쳤다.』

→ 그가 야곱에게 행하는 것은 ①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본다. ② 야곱의 허벅지 관절(환도뼈)을 친다. ③ 관절이 어긋나게 했다.

→ 밤새 붙잡고 있는 야곱의 약점,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만든다. 그럼에도 절박한 야곱은 붙잡는다.


(창 32: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 32:26) 『그분이 날이 새려고 하니 놓아 달라고 하였지만 야곱은 자기에게 축복을 해 주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 직역 ‘너는 나를 가게 하라. 왜냐하면 먼동이 떴기 때문이다.’

→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떠나려는 것은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그는 야곱을 뿌리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육신이 망가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야곱이 붙잡도록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야곱은 어려움이 생기면 회피와 도망을 선택했기에 이것은 야곱을 훈련시키는 모습이 된다.

-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야곱은 끝까지 붙잡는다. 힘이 빠지고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그는 붙잡는다.

⇒ 도망하는 사람이 붙잡는 사람이 된다. 원래 야곱은 이런 성격인가? 원래 이런 끈질김이 있었는가? 그가 부모로부터 배운 것도 그가 먼저 선택한 것도 회피였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은 더욱 절박한 상황임에도 회피가 아닌 붙잡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다.


(창 32: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창 32:27) 『그분이 야곱에게 물었다.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야곱입니다."』

- 네 이름이 무엇이냐? :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성이 뭐냐, 자신을 뭐라고 표현하겠는가?

→ 히브리인에게 ‘이름’은 단지 호칭이 아니라 그 이름을 갖는 존재로서의 환경적 요인과 자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소원과 예언적 의미까지 지닌다. 곧 이름이 무엇이냐 묻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의 모습을 나타난다.

- 야곱이니이다 : 야곱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발꿈치 잡는 자, 속이는 자라는 의미의 야곱은 과거의 삶과 현재가 이러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cf. 출생과 에서의 표현

(창 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이었더라』

(창 27:36) 『에서가 말하였다. "그 녀석의 이름이 왜 야곱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이 이번까지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 지난번에는 맏아들의 권리를 저에게서 빼앗았고 이번에는 제가 받을 복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 『a그 사람이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겼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겼으니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b이스라엘이다. " (a. 히, 그가 b. 하나님과 겨루다, 또는 하나님이 겨루시다)』

→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명 : 정체성의 변화. 속이는 자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로

-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 직역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과 겨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이겼다’

→ 야곱의 정체성 : 이제는 스스로 방법을 생각해 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바뀐다.

⇒ 야곱은 문제의 핵심을 형의 감정을 푸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정체성을 바꾸며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도록 한다.


(창 32: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창 32:29) 『야곱이 말하였다.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는 "어찌하여 나의 이름을 묻느냐?"하면서 그 자리에서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 야곱은 이름을 원한다. 그러나 그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야곱은 그가 하나님과 대면했음을 안다.(30) 이는 그가 누구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재차 확인하고 싶어서 였다.

→ 왜인가? ‘나는 너의 하나님이다’라고 듣고 싶은 것인가? 야곱은 ‘내 하나님’임을 알려고 한다. 이것은 무의식중에 급박한 상황임에도 인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함을 말한다.

cf. ① 벧엘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한다.

(창 28: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② 라반과의 대화에서 야곱의 고백

(창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창 31: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 아비 이삭의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③ 에서의 감정을 풀려고 할 때 선물을 보내면서

(창 32:9) 『야곱이 또 가로되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④ 야곱이 축복기도할 때

(창 48: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가로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30)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하면서 그 곳 이름을 c브니엘이라고 하였다. (c. 하나님의 얼굴)』

→ 과정 : 어떤 사람-이름을 고하소서-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하나님과 대면하였다

→ 그는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야곱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고 있다. 벧엘에서 하나님과 사자들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그가 야곱의 이름을 개명하듯이 야곱도 그곳의 이름을 개명하며 기념한다.

cf. (창 28:17-19)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창 32: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솟아올라서 그를 비추었다. 그는 엉덩이뼈가 어긋났으므로 절뚝거리며 걸었다.』

-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 직역 ‘그리고 그가 브니엘을 지나갈 때 그 해는 그의 위로 떠올랐다’

→ 야곱이 비록 절고 있지만 새로운 하루의 시작인 태양이 뜨고 새이름도 받아 나아가게 한다.

Q. 밤새 씨름한 야곱에게 새날의 시작인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창 32: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창 32:32) 『밤에 나타난 그분이 야곱의 엉덩이뼈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늘날까지 짐승의 엉덩이뼈의 큰 힘줄을 먹지 않는다.』

→ 자손들의 기념과 전통이 된다.


[정리]

① 브니엘은 벧엘의 재경험이다.

② 브니엘은 훈련의 장소이다

③ 브니엘은 새로운 시작이다.(개명과 새날)

 

[앞장서는 야곱과 하나님의 앞장]

얍복나루에서 훈련받은 야곱, 이름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었는데 그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두려움의 기본은 회피, 그런 그가 형에게로 나아가기로 했다. 과연 그는 두려움이 없어진 것일까? 두려움을 안고 가는 것일까? 또한 누구를 앞에다 세울까? 함께 가는 걸까?


(창 33:1)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

(창 33:1) 『야곱이 고개를 들어 보니, 에서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

→ 얍복에서 훈련을 마치고 새날을 맞이한 야곱은 강을 건너왔다. 가족들이 그곳에 있다. 야곱은 자신의 불안으로 먼저 보냈던 가족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 눈을 들어보니 → 야곱은 고개를 들었고 본다. 말로만 들었던, 그래서 두렵고 답답하게 했던 형과 400명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다. 이순간 야곱은 어떤 감정일까? 얍복의 훈련은 청각의 두려움이 시각의 담대함으로 바뀌게 하였을까?


(창 33:1-2) 『[1] ...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창 33:1-2) 『[1] ... 야곱은 아이들을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나누어서 맡기고, [2]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은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은 그 뒤에 세우고, 라헬과 요셉은 맨 뒤에 세워서 따라오게 하였다.』

- 두 여종과 그의 아들들을 맨 앞에, 다음 레아와 아들들, 맨 뒤에 라헬과 요셉

→ 에서가 오는 것을 보고 야곱은 가족들의 위치를 배치한다. 라헬과 요셉을 맨 뒤에 놓는 것은 얍복나루에서의 훈련으로 사람이 바뀌고 이스라엘로 개명이 되어도 편애의 습성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음을 보여준다.


(창 33: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창 33:3) 『야곱은 맨 앞으로 나가서 형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 지금까지 야곱은 종을 먼저 보내고 가족을 먼저 보냈다(32:16-23). 그런 그가 가족 뒤가 아닌 가족 앞에서 에서에게 나아간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정체성이 바뀌기 시작했다.

→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는 가족도 보냈던 그가 훈련이후 용기가 생겼을까? 가족 앞에 선다.

-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 지금까지 형의 감정만 풀려 했던 그가 일곱번 용서와 화해의 절을 한다. 그리고 형에게 가까이 간다.

Q. 두려움과 도망에 익숙한 그에게 무엇이 이렇게 가족 앞에 있게 하고, 형에게 가까이 가게 했을까? 정체성의 변화와 지지로..


* 에서의 환대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 33:4)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았다. 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둘은 함께 울었다.』

→ 에서가 본 것은 절하고 있는 야곱

→ 에서의 행동 : 달려간다, 끌어 안는다, 서로 목을 교차한다, 입을 맞춘다, 서로 운다. ⇒ 4개의 동사는 에서가 주도적으로, 마지막 하나는 서로 같이 한다.

→ 에서는 적극적으로 형제를 안는다. 여기에는 야곱이 걱정하던 분노를 볼 수 없다. 형의 용서는 함께 우는 것으로 분명해진다. 또한 400명은 공격이 아닌 환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창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창 33:5) 『에서가 고개를 들어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물었다. "네가 데리고 온 이 사람들은 누구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형님의 못난 아우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입니다."』

- 에서가 눈을 들어 : 함께 감정을 교류한 에서가 눈을 들어 본다. 그에게 보이는 것은 야곱의 가족들이다.

→ 에서의 행동 : 눈을 들다, 야곱의 가족을 본다, 묻는다.

cf. 야곱은 눈을 들어 에서를 보고 vs 에서는 눈을 들어 야곱의 가족을 본다.

→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 야곱의 두려움은 형이 가족을 보면 자신뿐아니라 가족까지 죽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에서의 반응은 용서의 반응이다.


* 가족들 절하기

(창 33:6-7)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창 33:6-7) 『[6] 그러자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7] 다음에는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셉과 라헬이 나와서 그들도 엎드려 절을 하였다.』

→ 이제 부인들과 자녀들이 인사한다.

Q. 만약 얍복이전대로 되었다면 에서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에서가 일단 보려는 사람은 야곱이었기에 급하게 달려온 것이다. 용서의 마음으로 환영하러 왔지만 선물 이후에 가족까지만 보고 강건너 야곱이 있음을 알았다면 그의 감정은 그대로 였을까? 야곱의 두려움은 현실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얍복의 훈련과 변화는 야곱에게는 고통이지만 가장 적절한 변화였다.


* 빚나간 야곱의 예상

- 어느정도 상황에서 감정이 정리된 후 에서가 묻는다.

(창 33:8-9)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8-9) 『[8] 에서가 물었다. "내가 오는 길에 만난 가축 떼는 모두 웬 것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 에서의 물음은 야곱의 짐승의 떼가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부를 모을 수가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cf. (창 32:17-18)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 야곱은 앞서 보낸 자들에게 명령했다. 예상되는 질문과 대답을 준비해주었다. 이것을 몇차례에 걸쳐서 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

① 에서는 선물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야곱이 오고 있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② 오는 도중 몇차례 만나는 선물을 보면서 야곱의 위치만 알 수 있었다.

③ 야곱은 형의 분노로 그것을 칠 동안 시간을 벌 것이라 예상했지만 형은 그냥 지나쳤다.

④ 종들은 에서보다 먼저 올 수 없기에 소식을 전해들을 수 없었다.

⇒ 야곱은 선물에 관심을 보이며 용서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에서는 야곱이 오는 것에만 관심을 보였다.

* 야곱의 의도

-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 "형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직역 ‘내 주의 눈들 안에서 은혜를 찾아 내려고 합니다’

→ 찾다(마차 )는 발견하다, 얻다), 눈(아인 )은 단순한 ‘눈’이 아닌 ‘마음’이라는 의미

cf. 고대 근동에서 눈은 단순히 보는 기능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여러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통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사회에서 예물은 주로 상호간의 우호 및 화해의 증표로 사용된다. 따라서 흔쾌히 받으면 화해 친선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거절하면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곧 야곱이 형에게 예물을 주는 것은 단순한 환심이 아니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화해관계를 맺으려는 계약같은 의도가 있다.


(창 33: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9) 『에서가 말하였다. "아우야, 나는 넉넉하다. 너의 것은 네가 가져라"』

- 족하다 : 라브() 증가하다, 늘어나다, 넘치다. → 야곱의 예물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자신의 재산은 충분하다는 의미

→ 지금까지 야곱은 에서의 것을 빼앗는 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것을 주려고 한다.

- 네 소유는 네게 두라 : 명령이 아닌 부탁의 의미, 곧 거절이 아닌 사양을 하지만 11절에 야곱의 강권에 받아들이게 된다.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창 33:10) 『야곱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형님, 형님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 합니다』

-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애원의 의미로 야곱은 극도로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는 에서에게 재차 부탁한다.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보았을 때 복수의 분노로 가득할 그의 얼굴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바뀐 것에 대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죽음의 얼굴이었을 그 얼굴을 보고도 살아났다는 기쁨과 감격을 고백한다.

-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 야곱이 느끼기에 에서는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했음을 보여준다.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형에게는 분노를 기쁨으로, 자신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을 살리는 해소로 보인 것이다.


(창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창 33:11)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므로 제가 가진 것도 이렇게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형님께 가지고 온 이 선물을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간곡히 권하므로 에서는 그 선물을 받았다.』

- 내 소유도 족하오니 → 에서도 자신의 재물이 풍족하다고 하지만 야곱도 자신의 소유가 풍족하다고 한다. 다만 풍족의 근거를 야곱은 하나님에게서 두고 에서는 그렇지 않다.

- 강권하매 : 파차르() 촉구하다, 재촉하다. → 야곱은 자신이 준비한 예물을 에서가 받도록


cf. ‘은혜’에 관하여 → 야곱의 관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① (헨) : 8절과 10절의 ‘은혜’는 형을 통한 은혜이고 11절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상황과 과정은 달라도 그 안에 핵심은 형을 통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같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심을 고백한다.

② 야곱이 라반과의 계약에서 라반이 범신적인 표현을 해도 야곱은 유일신적 표현을 한다.

(창 31: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③ 라반을 떠날 때 부인들에게 한말 vs 얍복 앞에서 야곱의 기도말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2: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 은혜 : 야타브()는 ‘기쁘다, 선대하다, 좋게 하다’

⇒ 야곱은 모든 상황에서 표현은 달라도 그 바탕에 하나님의 은혜에 관심을 보인다.


* 에서의 1차 호의와 야곱의 거절

- 에서는 야곱과 동행하려 한다. 분노하지 않는 에서는 야곱에게 호의를 베풀려 한다. 야곱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창 33:12)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창 33:12) 『[12] 에서가 말하였다. "자, 이제 갈 길을 서두르자. 내가 앞장을 서마."』

-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 직역 ‘그리고 나는 너의 앞에 갈 것이다’

cf. 불안한 야곱은 종도 가족도 앞에 가기를 원했다. 훈련된 야곱은 가족앞에 선다. 그런 야곱에게 에서가 앞장 선다고 한다.


(창 33:13-14)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창 33:13-14) 『[13]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 또 저는 새끼 딸린 양 떼와 소 떼를 돌봐야 합니다. 하루만이라도 지나치게 빨리 몰고 가면 다 죽습니다. [14] 형님께서는 이 아우보다 앞서서 떠나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는 앞에 가는 이 가축 떼와 아이들을 이끌고 그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께 나가겠습니다."』

→ 에서의 호의에 야곱은 지나치게 몰면 죽는다며 사양한다. 야곱에게 목적지는 고향으로 세일이 아닌 이삭이 있는 헤브론이다. 세일은 후에 방문하겠다고 한다.

(창 31: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창 31:18) 『그가 얻은 모든 짐승과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이다.』


* 에서의 2차호의와 야곱의 사양

(창 33: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창 33:15) 『에서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부하 몇을 너와 같이 가게 하겠다." 야곱이 말하였다.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맞아 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 여전히 동생을 보호하려는 에서의 마음이 있다.

-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 지금까지의 은혜로도 과분하다는 의미, 왜냐하면 지금 야곱은 옛날의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되었기 때문이다.

⇒ 지금까지 하나님이 지켜주심에 대한 고백 vs 형의 호의를 원하지 않기에 사양

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완벽한 화해와 용서가 있었기에 야곱은 계속해서 하나님이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② 아무래도 형의 호의를 한다고 하지만 같이 있다가 변심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다?

Q. 우리의 경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고백하면서도 사람의 호의가 있을 때 어떻게 할까?


(창 33:16-17)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 33:16-17) 『[16] 그 날로 에서는 길을 떠나 세일로 돌아갔고, [17] 야곱은 a숙곳으로 갔다. 거기에서 야곱은 자기들이 살 집과 짐승이 바람을 피할 우리를 지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이 숙곳이 되었다. (a. 초막)』

→ 세일로 가는 에서 :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길을 감으로 구속사에서 사라지는 뒷모습이다.

(수 24: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 숙곳 : 집을 짓고 우리를 지었다. 오랜 시간의 정착과 휴식의 시간이 되었다.


* 야곱의 정착

(창 33:18-20)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3:18-20) 『[18]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의 세겜 성에 무사히 이르러서 그 성 앞에다가 장막을 쳤다. [19] 야곱은 장막을 친 그 밭을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백 냥을 주고 샀다. [20] 야곱은 거기에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b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하였다. (b.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 밧단아람 : 라반의 집이 있는 메소포타미아 북서부 지방

- 평안히 : 세겜의 도착과정을 평안하다고 한다.

cf. 벧엘에서의 기도응답 - 평안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다.

(창 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 28:21)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 세겜 :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밭을 공식적으로 산다.

= 엘엘로헤이스라엘 : 야곱이 그곳에 희생제사를 드린 곳이며 동시에 아브라함이 처음 가나안에 들어와 단을 쌓은 곳이기도 하다.

(창 12:6-7) 『[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정리]

① 얍복에서의 훈련이후 뒤에 서려던 야곱이 앞에 선다.

② 눈을 들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형에게 절하며 다가간다.

③ 형을 통해 은혜로, 하나님을 통해 은혜로 간다.

④ 형의 앞장서는 것을 사양하고 하나님의 앞장을 바라본다.

⑤ 아브라함의 정착을 따라한다→아브라함의 앞장 선 하나님을 바라본다.

⑥ 하나님의 약속은 일관된다. 벧엘에서부터 같은 약속을 계속하신다.(함께하신다=이스라엘)

⑦ 야곱은 약속을 듣는 시기, 깨닫는 시기, 약속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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