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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17 성경인물 16. 야곱 - 벧엘에서, 하란에서
  2. 2010.09.15 성경인물 16. 야곱 - 출생에서 장자로서 길을 떠나기까지
  3. 2010.08.11 성경인물 15. 에서 - 감각적 가벼움의 선택과 하나님없는 안내자
  4. 2010.06.16 성경인물 14. 라반
  5. 2010.05.21 성경인물 13. 리브가

성경인물 16. 야곱 - 벧엘에서, 하란에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11. 17. 16:24
 벧엘에서의 야곱의 전환 -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벧엘에서의 야곱의 전환 -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파리에 도착할 때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아무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열흘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 곤란할 때 그것을 간단히 해결시킬 것을 바란다. 우리는 상상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이것저것이 있으면 간단하다고..

그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반적인가, 특별한 것인가? 그것은 어디서 나오나? 내게서 오는가 하늘에서 특별하게 떨어지는가?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800km, 루스(벧엘)는 90km 정도 거리.


 

Q. 야곱의 심정은 어떨까?

(창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를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 조금 전까지는 모든 것을 다 얻은 축복자였던 그가 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은 노숙자가 되었다.

Q. 야곱은 이제 노숙자로 끝인가 반전이 있는가?

Q. 야곱의 심정은 어떨까? 지금 그는 혼자다. 모두가 함께 할 것같고, 특히 믿었던 엄마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텐데 그 엄마가 자신을 보내고, 아빠가 보내고,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상황이다.

Q. 야곱은 혼자인 적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걷다걷다 지쳐 주변의 돌을 주워 베개로 삼고 눕는다. 혼자인 적이 없는 야곱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혼자라는 두려움일까?

Q. 야곱은 무엇을 기대할까? 감정적으로 우울한 상태에서 야곱은 긍정적 미래보다 처량한 자신을 처지를 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열쇠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Q.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감정적 상황에 그는 일어날 수 있을까? 끝없이 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바닥을 치고 일어나게 될까?

⇒ 과연 그는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특별한 것 or 일반적인 것?

→ ‘꿈’ - 지친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누웠을 때 자연스럽게 잠을 자고 잠은 꿈으로 이어진다.

⇒ 그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끝인데, 그는 자신에게 있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그때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꿈을 꾸게 된다. 마치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다리’처럼 ‘꿈’은 자신의 상황과 미래를 연결한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린다. 그토록 자신이 갖고 싶었던 장자의 축복을 다시 만난다. 곧 자신에게는 아무도 없지만 그동안 그토록 바라본 축복의 하나님을 만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신 그분이 야곱의 하나님으로..

⇒ 여기서 나오는 놀라운 반전(은혜)은 일반적인 하나하나의 그것이 하나님이 안에서 특별한 것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야곱에게 너무나 일반적인 꿈을 통해서..

⇒ 그동안 야곱이 추구했던 하나의 대상(일반적인 장자의 축복)이 벧엘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본질이 되었다. ex) 하나의 장남감이 특별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어린시절의 기억물이 되게 한다.

* 11-19절 : 일반적인 것이 특별한 것으로 된다.(부정관사 a → 정관사 the)

(창 28:11-19)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 ‘한 곳’(11)이 ‘(바로) 그 곳’(19)이 된다.

- ‘한 돌’(11)이 ‘기름부은 돌기둥’(18)이 된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8)

- ‘하늘, 하나님의 사자’(12)가 ‘하늘의 문, 하나님의 전’(17)이 된다.

- ‘언약을 주시는 여호와’(13)가 ‘자신과 동행하는 여호와’(16)가 되신다.

- 그 사이에 언약이 있다.(13-15)

⇒ 야곱이 그동안 의식적으로 본 것은 상황이었으나, 실제로 야곱이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던 것은 땅에서 하늘로 세워지는 사다리의 끝에 계신 하나님이다.

Q. 혼자라서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이 듣고 싶었던 말은?

→ 약속의 주체인 여호와가 자신과 동행한다는 것에 안심, 즉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cf. 13-14절은 하나님이 누구이고 자손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지를 말씀하고 있다. 특히 15절은 “야곱을 향한 약속”이다. - 동사를 중심으로 구분

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②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③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④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의의 변화]

① 야곱의 자각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브엘세바에만 계신줄 알았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빈들에도 있음을 놀란다.

→ 당시의 신개념 : 각 신들이 특정지역에만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 그 지역을 떠나면 그 신의 영역에서도 벗어난 것으로 여겼다. 그런 당시의 신개념을 넘어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알다(야다 עדי)는 지적이 깨달음을 넘어 감정적으로도 동조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는 것까지 매우 포괄적인 의미이다. 이것이 부정어와 함께 쓰여 이순간을 기점으로 알지 못했던 이전과 이제는 알게된 이순간이 나뉘게 된다.


② 야곱의 두려움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 두렵도다 :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 야레(ארי) ‘전율하다, 떨다’는 두려움과 함께 존경과 경외심으로 두려워함도 의미한다.

⇒ 그동안 몰랐던 하나님에 대해 알고(야다) 경외감으로 떨게(야레) 된다.

cf. 이후에도 나오는 야곱의 두려움

(창 31: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창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③ 야곱의 실천

(창 28:18-19)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 28:18-19)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a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a. 하나님의 집)』

- 동사 : 일어나 .. 가져다가 .. 세우고 .. 붓고 .. 이름을 벧엘이라 하다.

→ 일반적인 돌과 장소와 시간이 특별하게 되었다.


④ 야곱의 서원 및 결단

(창 28:20-22)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0-22) 『[20]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 15절에 대한 대답

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②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③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④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정리]

①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② 일반적인 것이 특별한 것으로 바뀐다.

③ 지금까지 하나의 신을 추구했던 야곱에게 그 하나님으로 오셨다.

④ 한 신의 말씀이 야곱에게 특별한 하나님으로 자각과 두려움과 실천과 결단으로 이어진다.

⑤ 시선도 의미도 마음도 행동도 바뀐다.

⇒ 진주를 목걸이 되게 하신 하나님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다]

사람이 누구를 선택할 때 무엇으로 선택하는가?

자신에게 친숙한 기준에 의해 선택한다. 선택의 기준은 자기 중심적이다.


 

* 배경상황 설명 → 라헬을 만나기전 배경을 알려준다.

(창 29: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창 29:1) 『야곱이 줄곧 길을 걸어서 드디어 동방 사람들이 사는 땅에 이르렀다.』

- 길을 떠나 : 직역-두 발을 들다. → 곧장 생동감 있게 행동을 취하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집에서의 우울한 출발과 달리 루스가 벧엘이 된 후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힘있게 다시 출발한다. 그가 바라보고 느껴지는 미래가 달라졌다.

- 동방 사람의 땅 : 가나안의 브엘세바에서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거리는 800km, 하루에 30-40km를 걸어도 20-27일정도 걸린다.


(창 29: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창 29:2) 『거기 들에 우물이 있는데 그 곁에 양 떼 세 무리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곳은 목자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인데 그 우물 아귀는 큰 돌로 늘 덮여 있어서,』

-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 야곱이 우물을 발견한다. 중동에서 우물은 다음 우물까지 필요한 물을 주는 곳이고, 이정표이기도 하다.

- 양과 목자들을 발견한다. 자신의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창 29: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창 29:3) 『양 떼가 다 모이면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그 돌을 굴려내어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 먹인 다음에 다시 돌을 굴려서 우물 아귀를 덮고는 하였다.』

→ 모두가 모여야 돌을 옮기는 그들의 규칙(전통?) 독점이 없는 공동소유로서 평화규칙


* 야곱과 목자들과의 대화

(창 29:4-8)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창 29:4-8) 『[4] 야곱이 그 목자들에게 물었다. "여보십시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란에서 오는 길입니다." [5] 야곱이 그들에게 또 물었다. "나홀이라는 분의 손자인 라반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예, 우리는 그를 잘 압니다." [6] 야곱이 또 그들에게 물었다. "그 분이 평안하게 지내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잘 삽니다. 아, 마침, 저기 그의 딸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옵니다." [7] 야곱이 말하였다. "아직 해가 한창인데 아직은 양떼가 모일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풀을 뜯기러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8]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양 떼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 떼가 다 모이면 우물 아귀의 돌을 굴려내고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입니다."』

→ 우연히 만난 목자들을 통해 순탄하게 느껴지는 야곱의 여정을 본다.

→ 목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목자들의 공동규칙과 라헬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 야곱은 목자들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하지만 목자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강력하게 지키겠다고 한다.

Q. 목자들에게 우물의 규칙을 들었음에도 라헬이 왔을 때 돌을 옮긴다?

⇒ 1-8절 부분이 없다면 바로 라헬을 만나는 부분이 되고, 라헬의 양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게 되며, 벧엘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약속한 후 얼마나 순탄하게 인도받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 라헬을 만나다.

(창 29:9-12)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창 29:9-12) 『[9]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고 있는 사이에 라헬이 아버지의 양 떼를 이끌고 왔다. 라헬은 양 떼를 치는 목동이었다. [10]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가 치는 양 떼를 보고는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어 외삼촌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11] 그러고 나서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기쁜 나머지 큰소리로 울면서 [12] 라헬의 아버지가 자기의 외삼촌이라는 것과, 자기가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라헬에게 말하였다. 라헬이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다.』

- 야곱이 말하는 중에 라헬이 양과 함께 온다.

- 야곱을 그들을 보고 나아가 돌을 옮기고 양떼에 물을 먹인다.

cf. 여럿이 모여야 돌을 옮기는 독점방지의 평화적 규칙을 왜 야곱은 지키지 않았을까? 그런데 주변의 목자들과 라헬은 왜 그를 막지 않았을까? 오로지 라헬만을 위해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행위는 타인보다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cf. 리브가가 낙타의 물을 먹이듯 야곱도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과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 1-8절의 배경상황설명-함께 돌을 옮기는 규칙-이 있었기에 지금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야곱의 행동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된다.

Q. 돌을 혼자 옮겼을까, 다른 목자들과 함께 옮겼을까? → 돌은 혼자 들기는 어렵다. 그런점에서 야곱이 혼자 했는지 다른 목자들과 함께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라헬 대신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 야곱이 보는 라헬의 첫인상은 양을 몰고 오는 모습니다. 이 모습에서 야곱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해준 분으로 라헬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다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라헬에게는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 라헬이 보는 야곱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야곱은 한달을 홀로 여행한 상황이다.

→ 야곱은 부모의 당부가 있었기에 외삼촌에게 가는 것이 결혼과 연결되어 기대를 하게 되지만 라헬은 전혀 생각지 않은 상황이라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 이후 야곱은 울면서 자신을 소개한다.

- 라헬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알린다.

cf. 라헬의 적극성은 리브가의 모습과 같다.


* 라반을 만나다.

(창 29:13-14)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 29:13-14) 『[13] 라반은 누이의 아들 야곱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그를 만나러 곧장 달려와, 그를 보자 마자 껴안고서 입을 맞추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야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라반에게 다 말하였다. [14] 말을 듣고 난 라반은 야곱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와 한 피붙이이다." 야곱이 한 달을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 라반의 반응 : 리브가 때처럼 달려와 맞이한다. 같은 혈족임을 강조한다.

- 야곱의 반응 : 자기의 모든 일을 말한다.(cf. 아브라함의 종도 그러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다.


* 결혼을 위해 라헬을 선택하다.

(창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 29:15)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

→ 한달동안 야곱을 지켜본 라반은 야곱에게 근로계약을 제안한다. 라반의 의도는 그와 고용인과 근로자의 관계가 되고, 무임금 노동자를 확보하려 하며, 이후 그는 일방적인 계약파기가 계속된다.

※→ 그러나 지금 우리의 초점은 왜 야곱은 노동의 댓가를 라헬로 정하는가 이다. 그 순간 그만큼 야곱에게 필요한 대상은 물질보다 엄마라면 라헬은 그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존재가 된다.


(창 29:16-17)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6-17) 『[16]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맏딸의 이름은 레아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라헬이다. [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 야곱에게 보이는 것은 레아에게는 단점이고 라헬에게는 장점이다. 레아의 것이 단점이 되는 것은 이삭이 시력이 어두웠고 그것을 이용해서 장자의 축복을 탈취하였기에 다시 레아의 눈을 보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게 하는 것이 된다. 반면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라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기 보다는 그리운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창 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 29:18)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가 칠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그 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 더 사랑하므로 : 야곱이 노동의 댓가로 라헬을 선택한 이유..

→ 야곱의 근로계약조건 : 지참금이 없는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7년이란 엄청난 댓가로 무보수 노동을 작정한다. 이렇게 상식 이상의 제안을 한 것은 라헬과 꼭 결혼하고픈 야곱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근로고용계약체결

(창 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 29:19) 『그러자 라반이 말하였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는 것보다, 너에게 짝지어 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 나으니(더 낫겠다) : 좋으니, 라반은 야곱의 너무나 후한 계약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 나와 함께 있으라 : 계약체결로 이제 야곱은 공식적으로 라반의 집에 있게 되었다. 라반은 결혼을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는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며칠같이 느꼈다.』

-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불리한 조건에도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곱은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


* 라헬을 얻기 위한 야곱의 행동

(창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 29:21) 『칠 년이 지난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

- 내 기한이 찼으니 : 근로고용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알린다.

-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 7년이 지났음에도 라반이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능동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창 29: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창 29:22) 『라반이 그 고장 사람들을 다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 라반이 계약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잔치를 통해 야곱과 레아의 결혼을 공식화시킨다.


(창 29: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 29:23) 『밤이 되었을 때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데려다가 신방으로 들여보냈는데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레아와 동침하였다.』

- 직역 : “그러자 그 저녁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딸 레아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그에게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 라반은 자기 의도대로 순조롭게, 야곱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다.

cf. 라반은 레아를 넣는다. 마치 리브가가 야곱을 넣듯이.. 그리고 라반은 속이는 결정을 신속히 한다. 리브가와 같다.


(창 29: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창 29:24) 『라반은 여종 실바를 자기 딸 레아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 라반은 실바를 레아의 여종으로 준다. 마치 이미 준비된 상태같다.


(창 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 29:25)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야곱이 아침에야 안다. 라반에게 계약위반을 제기한다.

cf. 야곱은 자신의 방법으로 에서에게서 축복기도를 가로챘다. 이제 같은 방식으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했던 것처럼 치밀한 계획의 결과였다.


(창 29:26-27)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26] 라반이 대답하였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 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27] 그러니 이레 동안 초례 기간을 채우게. 그런 다음에 작은 아이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에 자네는 또 칠 년 동안 내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네."』

→ 라반은 전혀 근거조항에 없던 이야기를 한다. 설득력이 없는 일방적인 강요이다.

-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 공개적인 결혼식기간인 일주일을 채우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도 무효이고 7년도 무효가 된다.

-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

→ 라반은 야곱에게 다시 칠년을 강요한다. 야곱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 하지만 라헬과 결혼하고픈 야곱은 아무런 힘이 없다. 라헬을 위해 다시 7년을 봉사하라 한다.

cf. 라헬을 위해 14년, 레아를 위해 0년..


(창 29:28-30)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28-30) 『[28] 야곱은 그렇게 하였다. 그가 레아와 이레 동안 지내고 나니, 라반은 자기 딸 라헬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29] 라반은 여종 빌하를 자기 딸 라헬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는 또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 야곱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결혼기간이 지나고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는다.

→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7년을 봉사한다.


[정리-야곱을 중심으로]

① 창세기 29장은 야곱이 라헬을 만나고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② 이삭과 리브가의 당부를 야곱은 기억하고 실천한 것일까?(창 28:1-5)1) 그러나 29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라헬이 아름답게 보이다.

③ 야곱에게 레아에게는 약점(아빠의 외상?)이, 라헬은 장점(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는 야곱이 과거를 직면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것이 아닐까?

④ 야곱은 라헬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마음을 그녀에 대하여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⑤ 야곱은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라헬을 사랑함으로 라반의 제안에 7년의 무임금노동을 말할 정도로 라헬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⑥ 라헬을 사랑하는 야곱의 마음은 7년을 수일처럼 느낄정도이다.

⑦ 7년이 지나도 의사가 없는 라반에게 강력히 주장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강한 요구의 표현이다.


[정리-이스라엘을 중심으로]

①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야곱의 연애이야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 속에 이스라엘지파 신앙공동체를 어떻게 이루어지며 세워져 가는지 이스라엘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② 야곱이 개인적으로 라헬을 더 사랑하지만 이스라엘의 신앙은 레아의 소생에게 흘러간다.(레위, 유다를 중심으로)

③ 레아의 무덤은 가족묘 안에 있지만 라헬의 묘는 따로 있다.


(창 35:23)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창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창 35:24)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창 35: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창 35: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야곱의 외상과 레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① 그토록 원했던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②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에게 라반의 딸로 아내를 맞으라는 당부를 받는다.

③ 홀로 라반의 집으로 향하는 야곱은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함께 라반에게로 간다.

④ 야곱은 라헬을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14년을 라헬을 위해 노동한다.

⑤ 야곱은 레아를 원하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노동하지도 않았고, 라반에게 속은 것이 싫었다.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사랑받지 못함 : 키 세누아(האָוּנꙺ־יꗑ) ‘세누아’는 ‘가증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사네’(אנשׂ)의 분사수동태. 단순히 사랑받지 못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cf. 야곱이 레아를 싫어하는 이유?

① 자신은 라헬을 사랑하는데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어서..?

② 그렇게 자신을 속인 라반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는 레아를 희생자로..?

③ 수일처럼 여긴 7년의 노동이 헛것이 되었다는 아까움에 대한 분노때문에..?

④ 레아의 시력이 약함(눈매가 부드러움)이 자신의 외상을 직면하게 되어..?

⇒ ①-③은 의식적인 부분이고 ④는 무의식적인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레아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가해자가 된다. 

(창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 보시고 : 라아(האר)-(사물을 눈으로) 보다, 쳐다보다, (상대방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섬세하게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다, 알다.

→ 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레아의 처지와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이다.

- 그의 태를 여셨으나 : 직역 ‘그리고 그가 여셨다’,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의 막힌 레아의 삶을 풀어주신다. 약자가 된 레아를 보시고 그에게 행하신 것, 그래서 레아가 위로를 삼을 수 있는 것을 주신다.


cf. 하나님의 판단기준은? 사랑과 공의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2] 주의 영이 그에게 내려 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3] 그는 주를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다. [4]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Q.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섭리,관점) 안에서 대상을 보신다..?

Q. 하나님이 보신 것은 왜 가해자인 야곱보다 레아의 상처가 먼저였을까?

→ 야곱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레아를 싫어한다.

→ 야곱의 무의식적 행위는 외상으로 인한 가해임에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 야곱은 아직 전혀 자신의 외상을 직면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이런 상황에서 레아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남편이 자신에게 올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레아가 느낀다면 레아는 어찌될까? 그런 그에게 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레아에게 희망이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 ∴ 곧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야곱보다 간절함이 있는 레아를 먼저 보시고 태의 문을 여신다.


Q. 그렇다면 직면하고 싶지 않은 야곱의 외상은 언제 치료되는가?

→ 130세때 이집트로 갈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창 46: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147세때 요셉의 아들에게 축복기도할 때, 자신이 기도받던 때와 똑같다.

(창 48: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Q. 시간이 흐를수록 레아는 야곱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관계가 되는가?

→ 성경은 라헬의 죽음만 기록되어 있다. 라헬은 2차벧엘이후 베냐민을 출산중 사망한다.

(창 35:19-20)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레아의 장례는 야곱의 회상을 통해 볼 때 이집트로 오기전에 있었을 것같다.(130세 이전)

(창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 ① 야곱과 레아의 관계개선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② 다만 레아는 죽음은 라헬보다 이후였고, 언제나 라헬이 우선이었던 야곱은 가족묘에 레아를 장사했다.

③ 야곱의 축복순서가 레아의 아들(4남과 2남)이 먼저이고, 빌하와 실바, 그리고 마지막 라헬의 아들 순이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cf. 31절은 17절과 반대-레아와 라헬의 상황이 달라진다.

(창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야곱가정의 분위기-부인들과 12아들 1]

*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정에서 분위기는 어떤 영향을 주나? 서로 주고받는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정의 모양들..

- 야곱 : 눈에 대한 외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레아는 싫어하고 어머니를 닮은 라헬은 사랑한다.

- 레아 vs 라헬 : 자신을 싫어하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 vs 남편의 사랑은 받지만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라헬의 갈등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사랑받지 못함 : 키 세누아(האָוּנꙺ־יꗑ) ‘세누아’는 ‘가증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사네’(אנשׂ)의 분사수동태. 단순히 사랑받지 못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 보시고 : 라아(האר)-(사물을 눈으로) 보다, 쳐다보다, (상대방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섬세하게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다, 알다.

→ 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레아의 처지와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이다.

- 그의 태를 여셨으나 : 직역 ‘그리고 그가 여셨다’,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의 막힌 레아의 삶을 풀어주신다. 약자가 된 레아를 보시고 그에게 행하신 것, 그래서 레아가 위로를 삼을 수 있는 것을 주신다.

-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레아의 4남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 29:32) 『레아는 마침내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주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이제는 남편도 나를 사랑하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a르우벤이라고 하였다. (a. 그가 나의 비참한 처지를 보셨다. 또는 보아라 아들이다!)』

- 르우벤(ןבנאר) : 보다(라아 האר) + 아들(뻰 ןב) → 보라! 아들이다.

→ 야곱에게 미움받는 자신의 억울함을 돌아보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레아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창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 29:33)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주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소연하는 소리를 b들으시고 이렇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하면서 아이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하였다. (b. 히, 샤마)』

-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 레아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괴로워했다.

- 시므온(ןוֹעꗱꚄ) : ‘듣다, 주의하다, 이해하다’는 ‘솨마’(עמשׁ)에서 유래한 이름

→ 하나님이 자신의 소리를 들으셨음을 체험한다고 고백한다.


(창 29: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 29:34)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 하면서 아이 이름을 레위라고 하였다.』

- 레위(יꕱꗝ) : ‘밀착하다, 결합하다’는 ‘라와’(הול)의 단순재귀형.

→ 이질적인 것이 굳게 결합하여 상호간에 하나가 되는 것.

- 연합하리로다 : 레아는 부부로서 서로 사랑하고 긴밀한 관계가 지속될 것을 확신한다.

cf. 레위지파는 ‘연결하다, 연합하다’는 이름의 뜻대로 실제로 범죄한 이스라엘과 거룩한 하나님의 관계를 연결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다.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 29:35)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이제야말로 내가 주를 d찬양하겠다." 하면서 아이 이름을 유다라고 하였다. 레아의 출산이 그쳤다. (d. 히, 오다)』

- 유다(예후다 הꕇוּהꖾ) : ‘내던지다, 쏘다’는 ‘야다’(הדי)의 사역형으로 ‘감사와 찬양의 말을 발하게 하다’는 의미로 ‘찬송하다, 찬양하다, 감사하다’는 의미

→ 야곱에게서 줄곧 미움만 받던 레아는 야곱을 통해 네명의 아들을 얻게 되자 그 기쁨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유다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로 짓는다.

-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까지 멈추다’는 의미로 ‘아마드’(דמע) 일정한 시점까지 중지되었다는 의미

∴⇒ 레아의 4남은 하나님이 보고 듣고 연합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레아의 고백이 들어간다.


* 라헬의 시기-부부싸움

→ 레아가 자녀를 낳음으로 라헬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라헬은 야곱을 괴롭게 한다. 레아의 가해자인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에게는 약자가 된다.(순환적)

(창 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 30:1) 『라헬은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

- 시기하여 : 카나(אנק) 마음 속의 질투심과 함께 흥분된 감정이 성을 내는 외적 표현까지 드러내는 아주 강렬한 표현이다. 이는 자신은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언니 레아가 출산을 거듭함으로서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 발산했음을 보여준다.

cf. 레아가 4남을 낳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라헬은 속에 있는 마음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빌하를 아내로 주게 되기까지 된다.

- 내가 죽겠노라 : 직역 ‘이미 죽었다. 바로 내가 그 죽은 여자다’

→ 자식낳기 경쟁에서 실패함으로 아내의 위치와 남편의 사랑도 빼앗길 것임을 나타내는 절박한 표현이다.


(창 30: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 30:2)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임신할 수 없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 성을 내어 : 하라(הרח) 콧숨을 거세게 몰아내듯 하는 극렬한 분노를 표현한다.

→ 야곱의 분노는 점점 겉으로 표출되는 라헬의 시기심에 계속 커가는 반응일 것이다.

-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너무나 화가 난 야곱은 부부싸움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넘기는 회피의 행위이다.


(창 30: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창 30:3) 『라헬이 말하였다. "나에게 몸종 빌하가 있습니다. 빌하와 동침하셔요. 그가 아이를 낳아서 나에게 안겨 주면 빌하의 몸을 빌려서 나도 당신의 집안을 이어나가겠어요. "』

-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 직역 ‘보라, 빌하에게 들어가라’, 의역 ‘다른 말 할 것없이 내 여종 빌하에게 들어가라’

-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 직역 ‘그리고 그녀는 나의 무릎들 위에 아이를 낳을 것이다’ - ‘자기 아들로 입양하여 들인다’는 의미.

-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 ‘세우다 건설하다’라는 ‘빠나’(הנב)는 ‘내가 세워지다’는 의미로 ‘나의 체면을 세우겠다’는 의미이다.

→ 라헬은 인간의 힘을 빌어서 명예를 회복하려고 하고, 그 인간적 수단을 맹신한다.

cf. 레아는 하나님이 열어주신 것이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듯 라헬도 야곱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라헬에게서는 사라에게 보인 신앙적인 부분을 볼 수 없다.


(창 30: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창 30:4) 『라헬이 자기의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니, 야곱이 빌하와 동침하였다.』

→ 야곱은 아내의 불임에 기도했던 이삭과 달리 사라의 요구를 따랐던 아브라함과 같다.


* 질투의 4가지 형태

질투의 형태

매커니즘

연관된 생각

분노

좌절

지위훼손

이따 두고 보자

내게 어떻게 이럴수가!

자기가 뭔데?

두려움

실연에 대한 근심

만일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떡하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슬픔

자아평가에 대한 훼손

버림받은 느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나.

어떻게 그 사람 마음을 붙잡아 둘수 있을까?

수치심

질투를 한다는 수치심

패자가 된다는 수치심

비루한 감정이다.

나는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빌하의 2남

(창 30:5-6)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 30:5-6) 『[5] 마침내 빌하가 임신을 하여 야곱과 빌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6] 라헬은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려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a단이라고 하였다. (a. 그가 판단하였다)』

→ 빌하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록하지만 라헬은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려해 보려고 한다. 그 의미부여도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 하나님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시고 자신의 진실함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즉 수치를 받지 않아야 할 자신에 아이를 주심으로 수치를 받지 않도록 즉시 행동하심으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사람들로 입증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cf. 레아의 자기해석이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라헬의 자기해석은 ‘억울함’이다. 이 자기해석은 상황을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풀어가는 열쇠가 된다. 이후 납달리의 출생 역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 내 호소를 들으사 : 라헬은 남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이는 기도의 소리가 아닌 ‘억울한 소리’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들을 주심으로 야곱가정의 불화를 잠재우시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하셨다.

- 단(ןꕏ) : ‘정당성을 입증하다, 판단하다’의 띤(ןיד)에서 나온 말로 다른 사람이 ‘단’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라헬 자신이 진실하였음을 입증하려는, 그래서 자신의 수치가 벗어졌음을 기억케 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창 30:7-8)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 30:7-8) 『[7] 라헬의 몸종인 빌하가 또 임신을 하여 야곱과의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8] 라헬은 "내가 언니와 크게 b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다. (b. 히, 납달)』

- 다시 임신하여 : 왕성한 출산과 함께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고자 하는 라헬의 계속되는 욕망을 보여준다.

-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 직역 ‘내가 내 언니와 함께 하나님의 경쟁을 경쟁하여’

→ 라헬은 자신의 경쟁자가 언니라고 할 정도로 극심하게 뒤틀린 감정과 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하를 통한 2번의 출산은 경쟁대상인 언니를 이겼고 이제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이겼다 : ‘압도하다, 승리자가 되다’는 야칼(לכי)

→ 숫자는 4:2이지만 감정적으로 상대를 이겼음을 강조한다. 이는 참된 승리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은 집착을 보여준다.

- 납달리(나프탈리 יꗜꚛ꘰ꗻ) : ‘경쟁하다’로 파탈(לתפ)의 수동형

⇒ 그동안 레아가 바라보는 대상은 남편이다. 그러나 라헬이 바라보는 대상은 언니이다. 그 언니에 대해 경쟁관계로만 보는 라헬의 표현은 자신이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싸움을 시작이다. 그동안 신앙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던 레아를 이 싸움(경쟁)으로 들어오게 하여 자신도 여종을 야곱에게 주게 된다.


* 레아의 반응

(창 30: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창 30:9) 『레아는 자기가 다시는 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 ‘그녀가 아이 낳는 것으로부터 가만히 서 있다’

→ 라헬이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경쟁을 보면서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서있을 뿐임을 본 것이다.

→ 이것은 그동안 신앙으로 상황을 고백하고 찬양하던 레아를 다시 불안하게 하고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한다.

-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 동생 라헬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 데려다가 : 취하여(라카흐 חקל)는 라헬은 계획된 행동인데 반해 레아는 질투의 반응으로 갑자기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에 자녀출산이란 경건하지 못한, 즉 인간적인 불안한 판단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출산으로 경쟁한다.

cf. 야곱은 두 자매간의 불화와 긴장을 잠재우기 보다는 오히려 방조하고 있다. 이는 사라와 하갈의 관계에서 보였던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다.

cf.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연약함 속에서도 야곱의 가정을 통해 12지파를 준비하신다.


* 실바의 2남

(창 30:10-11)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창 30:10-11) 『[10]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11] 레아는 "내가 복을 받았구나"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c갓이라고 하였다. (c. 행운)』

- 갓(가드 דꔷ) : 행운, 복됨

→ 실바를 통해 새롭게 아이를 얻은 레아는 기쁘고 만족스러움을 표현한다.


(창 30:12-13)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창 30:12-13) 『[12]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이 태어났다. [13] 레아는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d아셀이라고 하였다.』

- 아셀(아쉐르 רꚅאָ) : 기쁨, 행복, 흡족함

→ 갓과 같이 레아의 감정이 계속 아들을 얻음으로 지극히 흥분되고 만족스러웠음을 보여준다.

-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 ‘왜냐하면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부를 것이기 때문에’

⇒ 라헬의 경쟁에 반응함으로 그 싸움(경쟁)에 들어간 레아는 자신이 세운 마음도 신앙고백도 모두 잊고 싸움에 빠져 들지만 라헬의 마음이 담겨진 경쟁의 이름과는 달리 레아는 평안의 이름을 짓는다.



[야곱가정의 분위기-부인들과 12아들 2]

*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정에서 분위기는 어떤 영향을 주나? 서로 주고받는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정의 모양들..

- 야곱 : 눈에 대한 외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레아는 싫어하고 어머니를 닮은 라헬은 사랑한다.

- 레아 vs 라헬 : 자신을 싫어하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 vs 남편의 사랑은 받지만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라헬의 갈등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합환채(자귀나무)와 거래

(창 30: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보리를 거두어들일 때에,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주니,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였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조금만 나눠줘요."』

- 합환채 : 옛날 히브리인들은 이 식물을 최음제, 강장제, 임신촉진제로 믿고 있었다.

- 청구하노라 : ‘내게 좀 줘요’의 의미로, 언니의 것을 빼앗으려는 라헬의 얄미운 어리광의 모습

→ 임신을 원하는 라헬은 자신의 바램(욕구)을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창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창 30:15) 『레아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내 남편을 차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냐? 그래서 내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까지 가져 가려는 것이냐?" 라헬이 말하였다. "좋아요. 그럼,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나에게 주어요. 그 대신에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하고 함께 자도록 하지요."』

-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환채를 달라는 동생의 모습은 자신의 것을 빼앗는 모습으로 보이고, 이는 라헬은 자신의 것(남편)을 빼앗았다는 깊은 속내가 담겨진 표현을 하게 된다. 또한 합환채(임신촉진제)를 통해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남편은 더욱 멀어질(빼앗길) 것이라는 불안이 레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도덕적인 수치나 거부감도 없이 부도덕하고 성결치 못한 매매를 하고 있다. 불안한 레아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 라헬도 레아도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불안은 안정을 바라고 이것은 객관적인 ‘옳고 좋음’보다 주관적인 이익, 즉 자신에게 좋고 옳은 것을 선택한다.


(창 30: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 30:16) 『그 날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레아가 그를 맞으러 나가서 말하였다. "당신은 오늘 밤에는 나의 방으로 드셔야 합니다. 나의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라헬에게 주고, 그 대신에 당신이 나의 방으로 드시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날 밤에 야곱은 레아와 함께 잤다.』

- 내게로 들어오라 : ‘당신은 내게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뜻으로 요청이라기보다 강한 명령조.

→ 야곱이 라헬보다 레아에게 남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레아도 이것을 알기에 거래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 ‘내가 확실하게 당신을 샀기 때문이다’

→ 레아는 자신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만큼 오늘밤 남편과 동침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 야곱의 편애, 라헬의 경쟁시기심, 레아의 불안 등은 가정의 분위기를 부도덕적이고 성결치 못한 매매(거래)까지 행하게 한다.

Q. 야곱의 반응은 어땠을까?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 레아의 말을 들은 것인가, 라헬의 무언을 들은 것인가?

→ 라헬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가, 화가 나서 역으로 행동한 것인가?

→ 라헬과 부부싸움한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아야할까? 빌하를 통해 아들을 낳았지만 실바를 통해 레아가 아들을 낳자 다시 라헬의 시기심을 보게 된 것일까?

→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인가?


* 레아의 2남 1녀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호소를 들어 주셔서, 레아가 임신을 하였고, 야곱과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다. [18] 레아는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e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e. 히, 사갈)』

-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하나님이 레아를 염려하여 듣다’

→ 레아는 자신이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다섯째 아들을 허락하셨다고 고백한다.

cf. 하나님은 라헬보다 레아에게 더 마음을 주시는가? 뒤에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신다. → 하나님의 뜻(시기와 방법과 과정 등)을 우리는 모른다.

- 잇사갈(잇사스카르 רꗇששּׂꖹ) : ‘있음,존재,있다’의 ‘예쉬’(שׁי) + ‘빌리다, 매수하다’의 사카르(רכשׂ) → ‘보상이 있다, 값이 있다’

→ 레아는 자신이 실바를 야곱에게 주고, 합환채로 거래함으로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함을 암시한다.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을 하여서 야곱과의 사이에 여섯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20] 레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 주겠지.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하였다.』

-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 후한 선물 -하나님편에서 선하고 충실하고 온전한 선물이고 레아에게는 기쁘고 형통하고 넉넉한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 스불론(제불룬 ןוּלꔭꖅ) : ‘누구와 같이 거한다’의 ‘자발’(לבז), 이는 ‘경계를 만들다, 경계를 정하다’는 의미로 발전하여 ‘경계안에 함께 동거한다’ 즉 자신이 얻은 자녀로 기쁨과 함께 남편도 돈독해질 것을 기대하는 레아의 마음이 표현된다.


(창 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창 30:21) 『얼마 뒤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아이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다.』

- 디나(띠나 הꗺיꕑ) : ‘심판, 판단, 변호’라는 뜻의 ‘단’(ןד)

cf. 다른 딸들도 있었다? 디나를 기록한 것은 34장의 상황을 위해..

(창 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 46: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처음 4남때와 달리 실바의 2남과 자신의 2남은 라헬의 경쟁모드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경쟁모드의 원인은 결국 야곱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의 마음에 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레아보다는 라헬로 향하고 있다.


* 라헬의 요셉출산

(창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 30:22)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 단순히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이 깊이 통촉하시고 친히 돌보신다는 의미이다. 아들이 없어 심히 번민하며 애통해 하는 라헬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이다.

→ 라헬은 분노표출과 경쟁시기심을 나타내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깊은 마음 속의 애통하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 17절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17절과 같은 표현으로 레아에 대해 염려하듯 라헬도 염려하신다. 레아와 라헬의 과정은 다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동일함을 보여준다.

-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 31절 ‘그의 태를 여셨으나’ 와 같은 표현,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처럼 라헬도 태를 열어주신다.

cf. 31절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창 30:23-24)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30:23-24) 『[23] 그가 임신을 하여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하고 생각하였다. [24]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에 주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g)요셉이라고 하였다. (g. 더하다)』

-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 자신의 부끄러움이 말끔하고 완벽하게 치워졌음을 강조한다. → 라헬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경쟁의 방법인 빌하나 합환채라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마음이 씻어짐을 확실히 드러낸다.

cf. 만약 빌하대신 자신이 출산을 했다면 그 아이의 이름이 요셉보다는 단이나 납달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헬이 출산한 아들의 이름이 요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과정이 지나며 자신의 경쟁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 결과가 아닐까?

- 요셉(요쎄프 ףꘐוֹי) : 첫째 의미, ‘씻다, 치워버리다’의 ‘아싸프’(ףסא)로 자신의 치욕을 말끔히 제거해 주셨음을 강조한 이름, 둘째 의미, ‘더하다’의 ‘야싸프’(ףסי)로 한 아들만 더 주셨으면 하는 라헬의 강한 집념과 요청이 담겨져 있다.


(창 35:16-18)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베노니(뻰오니 יꗼוֹא־ןꔳ) : ‘아들, 자식’의 뻰(ןב) + ‘나의 불행, 슬픔’의 ‘오니’(ינוא) - 나의 불행의 자식, 나의 슬픔의 자식 → 난산으로 인해 죽음에 임박한 라헬이 슬픔가운데 지어준 이름

- 베냐민(비느야민 ןיꗬꖷꘁꔩ) : ‘아들,자식’의 ‘뻰’(ןב) + ‘오른손’이란 ‘야민’(ןימי) - ‘오른손의 아들’ → 고대근동사람들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에 야곱은 12번째 태어난 아들의 삶이 행복하고 능력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쳐 지었다.


[정리]

①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외삼촌 라반에게 온다. 거기서 두딸과 두 여종과 결혼하고 12아들을 낳는다.(그러나 부모의 당부에 대해서는 기억한다는 기록은 없다.)

② 레아는 남편사랑을 받지 못한다. 의식적인 상황과 무의식적인 외상으로 인해 야곱은 레아에게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으로 표현한다. 레아의 눈은 야곱의 무의식적 외상을 직면하게 하고, 아직 그것을 해결할 준비가 되지 않은 야곱은 자신도 모르게 직면을 거부하는 만큼 레아를 멀리하는 것같다.

③ 하나님은 야곱의 외상보다 먼저 레아의 마음을 보시고 들으시고 연합하게 하시고 찬양받으신다. 레아는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4남을 얻는다.

④ 라헬의 분노는 점점 커가고 야곱에게 화낸다. 부부갈등이 심해질 때 빌하를 보내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라헬은 이것을 경쟁으로 본다. 라헬의 ‘시기’는 ‘분노, 두려움, 슬픔, 수치심’으로 표출된다.

⑤ 야곱은 엄마 닮아 좋은 라헬을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쟁취하고자 하는 라헬로 힘들어한다.

⑥ 레아도 경쟁속으로 들어와 실바를 야곱에게 보낸다. 신앙으로 승화시켜도 눈에 보이는 상황은 다시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레아는 라헬보다 이름짓기에서 보듯 좀더 건강하고 신앙적이다.

⑦ 야곱은 부인들의 갈등에서 조정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상처는 하나님이 풀어주신다.

⑧ 그 하나님이 레아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

 

[야곱의 최선과 하나님의 약속이행]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14년 이상이 지났다. 홀로 왔던 그가 이제 아내들과 자녀들이 생겼다.

30:25-36은 야곱과 라반의 품삯계약에 관한 이야기로 라반의 입장은 라반의 편에서 나누었다. 야곱은 점점 성실하고 정직해 가지만, 라반은 사위일지라도 더 치사해지고 더 거짓말을 잘하고, 자기 욕심을 선택했다.

오늘은 야곱의 입장에서 나눠보자. 진정 야곱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30:25-36의 구조

귀향을 요구하는 야곱(25-26) ↔ 귀향을 만류하는 라반(27-28)

자신의 집을 세우려는 야곱(29-30) ↔ 방법을 찾는 라반(31)

품삯을 제안하는 야곱(31-33) ↔ 수락하고(34) 간교한 라반(35-36)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제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오. [26]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리고 얻은 저의 처들과 자식들도, 제가 데리고 가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얼마나 많이 해 드렸는가 하는 것은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야곱은 변화를 시도한다. 그가 있을 곳은 하란이 아닌 고향땅이기에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혼자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가려한다. 가족은 자신이 노동으로 얻었으며, 공식적인 계약종결을 요구한다. 또한 계속 품삯을 속이는 라반임을 알기에 자신이 어떻게 일했는지 알 것이라고 말한다. 야곱은 분명하게 귀향을 요구한다.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좋아하면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네. 주께서 자네를 보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점을 쳐 보고서 알았네" [28] 라반은 또 덧붙였다. "자네의 품삯은 자네가 정하게. 정하는 그대로 주겠네."』

⇒ 라반은 야곱의 요구를 만류한다. 야곱이 품삯을 따지는게 아니라 아예 떠나겠다고 하자 그를 붙잡을 방법으로 야곱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며 환심을 사려하고 회유적으로 품삯을 정하자고 한다.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어떻게 해 드리고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얼마나 잘 보살폈는지는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30] 제가 여기 오기 전에는 장인 어른의 소유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제 때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제가 하는 수고를 보시고서 장인 어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저의 살림을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 야곱은 자신이 14년이 넘게 외삼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을 아실 것이라,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온 이후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언제 자기 집을 위해서 일할 수 있냐고 묻는다.

⇒ 부모의 권유로 외삼촌댁에 왔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 14년의 공식계약기간 때문에 열심히 일했지만 뒤돌아 보니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가족뿐, 여전히 외삼촌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는 자신을, 전혀 미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외삼촌은 번영했고 자신은 종일뿐이다.


(창 30: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

(창 30:31) 『라반이 물었다.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는가?" ...』

⇒ 무엇을 주면 되겠냐고 미끼를 던진다. 나중에 다시 뺏으면 된다. 급한 것은 붙잡는 것이다.


(창 30:31) 『 ...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창 30:31) 『 ... 야곱이 대답하였다.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한 가지 일만 허락하여 주시면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계속 먹이고 돌보겠습니다.』

⇒ 야곱은 다시 품삯을 제안한다. 다시 양떼를 돌보겠다고 한다. 공식계약이 끝났기에 그냥 간다고 해도 되는데 그 곳에 있겠다고 한다. 야곱은 라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 처음 라반의 집은 피할 곳을 찾아 온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더 깊은 함정이 되었다. 야곱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그곳을 이용한다. 만약 그냥 그곳을 떠났다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야곱에게 라반은 그림자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인정하자 그곳은 다시 야곱을 살리는 곳이 된다.


(창 30:32-33)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창 30:32-33) 『[32] 오늘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 사이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양 떼에서 얼룩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고, 염소 떼에서도 점이 있는 것들과 얼룩진 것을 가려낼 터이니, 그것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33]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훗날 장인께서 저에게 삯으로 주신 가축 떼를 확인하여 보실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가운데서, 얼룩지지 않은 양이나, 점이 없는 양이 있든지, 검은 색이 아닌 새끼 양이 있으면 그것들은 모두 제가 훔친 것이 될 것입니다."』

⇒ 이것은 야곱이 생각한 계책이다. 양은 희고 염소는 검은색을 띠며 우성이다. 그런데 야곱은 태어날 확률이 적은 열성을 원한다. 그리고 후에 조사할 때 자신은 정직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35-36에서 보듯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된다.


(창 30: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창 30:34) 『라반이 말하였다. "그러세, 자네가 말한대로 하겠네"』

⇒ 야곱의 제안은 라반에게 있어 너무나 유리한 조건이다. 계속 거짓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Q. 이후 라반의 행동은?

(창 30:35-36)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창 30:35-36) 『[35] 그러나 라반은 이렇게 말해 놓고서도 바로 그 날로 숫염소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내고 또 모든 암염소 가운데서도 희 바탕에 얼룩이 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어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36] 그런 다음에 라반은 야곱이 있는 데서 사흘 길을 더 나가서 자기와 야곱 사이의 거리를 그만큼 뜨게 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나머지 양 떼를 쳤다.』

⇒ 라반은 계약체결이후 번벅할 수 없게 곧바로 신속히 움직인다. 사흘길의 거리를 둔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열성의 양과 염소가 나올 수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금 야곱에게 기회가 된다. 사흘길은 거리는 야곱을 홀로 있게 했지만 그 안에서 야곱은 움직인다.


* 야곱의 자신을 위한 노동[생명과학]


독일 베를린의 리히텐베르크 병원에서 피부색이 서로 다른 흑백 남자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 형제는 독일 출신의 백인 아버지와, 가나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같이 이란성 흑백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유전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섞였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이 쌍둥이는 백인여아와 흑인여아 쌍둥이. 특이한 것은 두 부모 모두 흑인웃어혼열이라는 점. 둘다 자신의 어머니는 백인, 아버지는 흑인혼열이라고..

 

영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흑백 쌍둥이가 2번 연속 태어났다. 흑인남편 딘 듀런트(33)와 백인 아내 앨리슨 스푸너(27) 부부는 지난 2001년 피부색이 다른 쌍둥이 헤일리와 로렌을 낳았고 2008년 11월 또 한번 흑백 쌍둥이인 레아와 미야를 낳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 부모가 낳은 쌍둥이가 피부색이 다르게 나올 수 있는 확률은 100만분의 1. 여기에 연속으로 흑백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더욱 희박해 거의 '기적'으로 불리고 있다.


(창 30:37-43)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

은백양(銀白楊, 白楊) - 야곱이 아롱진 양 번식을 위해 사용한 버드나무 -

  

                                         가이샤라 빌립보의 은백양               텔단의 은백양


학명 : Populus alba L. (버드나뭇과 : Salicaceae)

영명 : White popular, White willow, Swallow tailed willow

히브리명 : לבנה(리브네), צפצפה מכסיפה(짜프짜파 마크시파)

원산지 : 유럽, 시베리아, 지중해 연안, 이란, 터키

개화기 : 4월

성경 : 창 30:37, 호 4:13


살구나무(아몬드나무, 파단행, 감복숭아, 루스)

-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같은 종류의 나무 -

                                                      네오트케두밈의 아몬드 나무   모딘의 아몬드 나무의  꽃


학명 : Amygdalus communis L.(장미과 : Rosaceae)

영명 : Almond

히브리명 : שקד(솨케드, 파수군)

셈어 : לוז(루즈, 루스)

원산지 : 지중해 연안, 페르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개화기 : 12~3월

성경 : 창 28:19, 30:37, 35:6, 43:11, 48:3, 출 25:31~40, 민 17:8, 수 16:2, 18:13, 삿 1:23, 1:26, 전 12:5, 렘 1:11


신풍나무(버즘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 야곱이 아롱진 양(羊) 번식을 위해 사용한 나무 -


학명 : Platanus orientalis L. (버즘나뭇과 : Platanaceae)

영명 : Oriental plane tree, Plane tree

히브리명 : ערמון(아르몬), דולב מזרחי(돌레브 미즈라히)

원산지 : 지중해 연안

개화기 : 4~5월

성경 : 창 30:37, 겔 31:8


→ 당시 목자들간에 유행하던 가축수태방법(민간요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과학적임에도 야곱은 굉장히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벧엘의 하나님이 약속을 함께 해서다.

→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민간요법을 선택하는 것. 라반을 믿을 수 없다. 만약 ‘무엇을 줄까’(30:31) 묻는 라반에게 얼마를 달라고 하면 역시 0이 되었을 것이다.

→ 야곱의 노력에도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 야곱의 고백 : (창 31:5,9)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cf. 빼앗아 내게 주셨다 - 하나님이 라반의 양을 빼앗아 야곱에게 준 것이 아니라 라반이 빼앗아 간 양, 즉 야곱이 응당받아야 할 보수를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되돌려 받게 하셨다는 의미. 곧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에 대해 깨달은 야곱의 고백. 이 고백의 근거는 벧엘에서의 약속에 있다.


[정리]

① 요셉의 출생이후 야곱은 떠남의 결심을 한다.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가려 한다.

② 이제는 더 이상 라반이 아닌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하고, 열심히 일한다.

③ 라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하나님에게로 간다.

④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림자적 상황을 받아들인다.

⑤ 당시의 민간요법을 사용하지만 그 바탕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야곱의 귀향결정과 하나님의 약속이행]

30:25-36 요셉이 태어나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라반에게 말한다. 자신은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의 집을 언제나 세울 수 있겠냐고 한다. 라반은 다시 계약을 제안하고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3일길을 뜨게 한다.

30:37-43 야곱은 열심히 일하고 라반의 것과 섞이지 않게 하면서 야곱의 것을 갖는다. 그리고 번창한다.

Q. 이렇게 겉에서는 야곱이 열심히 일한 댓가로 여겨지는 부가 실제로는 무엇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그의 삶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 귀향결정의 배경

1. 아들들의 모함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 31:1)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 이런 모함의 시기는? 야곱이 부자가 된 이후이다. 야곱이 아들들의 모함을 들었다.

-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 라반의 아들들의 생각은 야곱의 것을 라반의 것으로 생각한다. 라반의 것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과의 계약을 통해 정한 규율대로 결과물을 취한 것이기에 지나친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cf. (창 30: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2. 라반의 표정이 달라졌다.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 라반은 예전처럼 우호적이지 않다. 빈손일때는 이용하려 했으나 거부가 되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야곱이 느낄 정도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10번이나 계약을 변역하는데도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 자기조절하기 힘든 라반의 모습을 보여준다.

⇒ 그러나 아들들도 라반도 말하지 못한다. 아마 야곱에게서 흠이 있었다면 이미 빼앗았을 것이다. 야곱의 정직에 라반의 속임도 어쩔 수 없었다. 라반의 말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창 31:8) 『장인께서 나더러 점 있는 것들이 자네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고 줄무늬 있는 것이 자네의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 1절은 듣는 ‘청각적 이미지’, 2절은 보는 ‘시각적 이미지’, 이것은 하나님은 말씀(청각)과 꿈(시각)으로 다시 보게 하신다.


3.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1: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라반의 아들들의 모함은 야곱의 마음을 불안하게 분노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함께 하시겠다며 평안을 주시고, 어찌할지를 모르는 야곱에게 삶의 방향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cf. 어머니가 보낸 사람도 없고, 어머니가 부르지도 않았다. (창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 아내들의 동의(4-16)

(창 31: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 31:4)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들을 그의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서』

-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야곱은 자신이 집에 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을 보낸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신속한 순종을 보여준다.


* 라반의 악한 행위 vs 하나님의 사랑

(창 31:5-9)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 31:5-9) 『[5] 일렀다. "장인께서 나를 대하시는 것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소. [6]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장인의 일을 해 드렸소. [7] 그러나 장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시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셨소. 그런데 하나님은 장인 어른이 나를 해치지는 못하게 하셨소. [8] 장인께서 나더러 점 있는 것들이 자네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고 줄무늬 있는 것이 자네의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9] 하나님은 이렇게 장인의 가축 떼를 빼앗아서 나에게 주셨소.』

cf '30:25-36의 구조'처럼

귀향을 요구하는 야곱(25-26) ↔ 귀향을 만류하는 라반(27-28)

자신의 집을 세우려는 야곱(29-30) ↔ 방법을 찾는 라반(31)

품삯을 제안하는 야곱(31-33) ↔ 수락하고(34) 간교한 라반(35-36)


* 라반의 악한 행위 vs 하나님의 사랑

5절    야곱에 대해 안색이 변한 라반 vs 야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6-7절 야곱을 속여 품삯을 변역한 라반 vs 야곱을 해치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

8-9절 야곱의 삯을 임의로 바꾸는 라반 vs 라반에게서 빼앗아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

→ 인간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임을 암시한다.

cf. 속이고 변하는 라반 vs 정직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 사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라반에게서 아버지의 정을 채우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하란에 온 이유가 속임이었는데 부정을 느끼게 하는 라반에게서 오랜 세월 동안 속임을 받아야 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속음과 시간이 들어갔다. 그러나 야곱은 사람에게서 찾으려던 부정을 변함없는 하나님에게서 찾게 된다. 하란을 떠나기전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5절 ‘그대들의 아버지’ vs ‘내 아버지의 하나님’

6절 당신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 일했음을 알거야.

7절 10번의 의미는 ‘거의 매번, 기회가 있을적마다’로 라반은 나를 속이지만 하나님이 막으셨다.

8절 라반은 계속해서 계약을 바꾸지만 그때마다 계약대로 되었다.

9절 이는 하나님이 응당 내가 받아야 댓가를 받도록 하신 것이다.


* 꿈이야기(10-13)-마음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

(창 31: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창 31:10) 『가축 떼가 새끼를 밸 때에, 한번은 내가 이런 꿈을 꾸었소.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암컷들과 교미하는 숫염소들도, 줄무늬있는 것이거나 점이 있는 것이거나, 얼룩진 것들이었소.』

-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 꿈을 꾸는 시기는 새끼 밸 때에.. 야곱의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이다. 너무나 집중하면 꿈에서 나오기도 한다.

-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 야곱이 꿈에서도 눈을 들어 자세히 살펴 본다. 야곱이 보는 것은 자신의 상황을 보고 있다.

cf 벧엘에서도 야곱의 꿈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벧엘에서의 경험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였을 것이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cf. 일반적으로 꿈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때까지 야곱은 꿈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지나고 꿈임을 알게 된다.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도 항상 양을 지키는 습관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야곱의 꿈은 굉장히 현실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이어지게 한다.


(창 31: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31:11) 『그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아!"하고 부르시기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니,』

→ 그때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부른다.


(창 31: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 31:12) 『그 천사의 말이 가축 떼와 교미하는 숫염소가 모두 줄무늬 있는 것들이거나 점이 있는 것이거나, 얼룩진 것들이니, 고개를 들고 똑바로 보아라. 라반이 이제까지 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내가 다 보았다.』

- 네 눈을 들어 보라 → 지금까지 보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양들이다. 10절에서 보는 양들과 12절에서 보는 양들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자가 눈을 들어 보라고 한다. 의미가 달라진다. 10절의 양은 야곱이 지키는 양이지만 12절의 양은 하나님이 지켜 야곱에 준 양이다.

-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벧엘에서 야곱과 함께 하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이 라반에게서 양뿐만 아니라 야곱도 지켜주셨음을 말한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하나님은 야곱의 재물을 지키신다 하지 않고 야곱을 지켜주신다고 하셨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 31:13)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에서 나에게 맹세하였다. 이제 너는 곧 이 땅을 떠나서,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소."』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이다는 의미.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 하나님이 야곱의 기둥과 서원을 기억하신다. cf. 인간은 잊어도 하나님은 그때의 고백을 기억하시고 이루신다.

-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 출발전 야곱을 결단케 하신다.

cf.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제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오.』

→ 이때도 야곱은 가겠다고 했으나 라반의 만류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후 계약은 수없이 변역되며 어려움을 당한다. 그럼에도 야곱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이 최선의 결과는 하나님이 이루셨다.


* 부인들의 대답(14-16)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5]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 근동지역의 관습에서 부모의 재산의 권리는 출가한 딸에게는 없다.

-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 야곱의 지참금에 해당하는 14년간의 노동력을 받아 결혼하였다. 당시 근동풍습은 지참금중 일부를 딸에게 주어 결혼밑천으로 사용하게 하는데 라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딸들도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게 되었다.

-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 자신들이 느끼는 아버지의 감정이다.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빼앗았다고 하지만 딸들은 노동의 댓가이고 하나님이 취하신 것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표현한다.

-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아내들의 적극적인 동조를 표현한다.

cf. 만약 아내들이 동조해주지 않았다면 야곱은 어떻게 했을까? 결국 아내들의 마음도 야곱을 따르도록 인도하심이 있었다.


[정리]

① 속이고 변하는 라반 vs 정직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②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은 부정 vs 보이지 않음에도 함께 하는 부정

③ 현실적인 청각 시각적 이미지 vs 하나님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미지

④ 마음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

⑤ 야곱의 꿈은 굉장히 현실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이어지게 한다.

⑥ 자신이 지키는 양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양


:

성경인물 16. 야곱 - 출생에서 장자로서 길을 떠나기까지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9. 15. 20:32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과정으로 본 야곱의 생애

 쌍둥이-원수형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까?


 이삭의 축복과 야곱의 의도된 거짓말


길 떠나야 하는 야곱

 

야곱 - 경쟁자의 삶

* 야곱의 생애

창 25:19-26 경쟁자 쌍둥이 야곱의 출생(이삭 60세)

창 25:27 에서와 야곱의 성격과 장소-익숙한 사냥꾼이라 들사람 vs 조용한 사람이라 장막

창 25:28 편애 - 이삭은 에서를 vs 리브가는 야곱을

창 25:29-34 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다.

창 27:1-30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다.

창 28:10-22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

창 29-30장 야곱의 결혼생활과 재산(밧단아람)

창 31:1-55 고향으로 가는 야곱, 라반과의 불가침계약

창 32:1-32 에서를 만날 준비, 이스라엘이 되다.

창 33:1-15 에서와 화해하다

창 35:1-29 벧엘로 돌아가자, 이후의 사건들

창 36:1-43 에서의 분리와 족보

창 37:1-36 요셉의 꿈, 심부름, 팔리는 요셉

창 38:1-30 유다가문의 불행, 다말과 동침

창 39:1-41:57 요셉의 이집트 생활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과 야곱의 생애]

* Erikson의 생애

Erik H. Erikson(1902~1994)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하였다. 부모는 덴마크 사람들(어머니는 유태인)이었으나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이혼했고, 그의 어머니는 Erikson이 세 살 때 소아과 의사와 재혼했다. 어머니와 의부는 모두 유태인이었으나 Erikson은 키가 크고 눈이 푸르며 금발이어서 덴마크인을 닮은 용모를 지녔다. 이렇게 주위의 유태계 사람들과 구별되는 용모 때문에 Erikson은 정체감(identity)의 문제를 심하게 겪었고, 훗날 그의 이론에서 정체감이 중심이 되는 이론을 수립하였다.

소년 시절의 Erikson은 평범한 학생으로 고대사와 미술에서는 뛰어났지만 형식적인 학교 분위기를 싫어했다. Erikson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유럽을 떠돌며 방황하였다. 한때 미술을 공부하기도 하였으나 곧 포기하였다. 이 시기를 그는 후에 유예기(moratorium)라고 불렀다. Erikson은 25세에 Anna Freud와 Dorothy Burlingham이 세운 빈의 신설 학교에서 아동들을 가르치는 일을 맡으면서 마침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했다. 이 학교에서 Erikson은 수업이 없을 때 Anna Freud와 함께 아동 정신분석을 연구했고 또 Anna에게 분석을 받기도 하였다.

Erikson은 히틀러의 출현으로 1933년에 유럽을 떠나 미국 보스톤에 정착하여 그 도시 최초의 아동 분석가가 되었다. 그 후 Yale, California, Harvard 대학 등에서 근무했으며, 인디언들과 함께 살면서 인디언에 대한 연구도 하였다. Erikson은 프로이드가 손대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을 연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상이한 문화적 여건에서 자라는 아동들의 삶과 정상 아동들의 삶에 관한 것이었다. California 대학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대학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 서약을 강요하자 이를 거부하고 사임하기도 하였다. Erikson은 뛰어난 문장가로 많은 명저를 남겼다. 그의 중요한 저서들로는 'Childhood and Society(1950)', 'Young Man Luther: A Study in Psychoanalysis and History(1958)', 'Identity: Youth and Crisis(1968)' 등이 있다. 인도의 무저항주의자 Gandhi의 심리전기적 연구서인 'Gandhi's Truth(1969)'로 퓰리처 상과 저술상을 수상하였다. 


1) 심리사회적 발달이론

시기

심리성적 단계

심리사회적 주제

관련 덕성

I. 영아기(0-1)

구강기

기본적 신뢰 대 불신

희망

II. 유아기(2-3)

항문기

자율성 대 수치,회의

의지

III. 어린 아동기(4-5)

외디푸스기

주도성 대 죄책감

목표

IV. 아동기(6-11)

잠복기

근면성 대 열등감

유능

V. 청소년기(12-20)

성기기

정체감 대 역할 혼미

충실

VI. 초기 성인기(20-30)

 

친밀감 대 고립감

사랑

VII. 성인기(30-65)

생산성 대 침체

배려

VIII. 노년기(65+)

 

통합 대 절망

지혜


2)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의 특징

Freud의 심리성적 발달단계가 5개인데 비해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는 모두 8개로서, 전자의 '성기기genital stage'가 후자에서는 사춘기에서 노년기로 이어지는 네 단계로 분화된다. 각 단계에는 중심적 과제가 있고, 이를 잘 해결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잘못 해결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자아특질로 남는다. 각 심리사회적 위기의 결과는 긍정적 특질과 부정적 특질로 대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양쪽이 다 섞이게 된다.

Erikson은 우리 신체가 정해진 순서로 발달하듯이 우리의 심리적 특징들도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청사진에 따라 발달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잠재적 가능성들이 어떻게 나타나느냐 하는 것은 내적인 힘들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 문화의 영향력을 Freud보다 많이 강조하였다.

 

1단계: 기본적 신뢰(basic trust) vs 불신(mistrust) 희망

태어나서 약 1년 동안 아기는 주로 먹고 자고 배설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일들이 평화스럽게, 긴장없이 이루어질 때 자신에 대한, 타인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생겨난다. 엄마의 행동이 예측가능할 때 아기는 타인이 안전과 충족을 준다고 믿게 되고, 엄마가 잠시 안보여도 겁에 질리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젖을 떼야 하듯이 엄마와의 분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기본적 불신의 원형이 된다. 부모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아이는 <희망>이라는 덕성을 배우는 것이 된다. 반면, 부모가 아이의 욕구에 민감하고 일관성있게 반응하지 않아 기본적 불신이 우세한 채 인생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후에도 어려움이 생길 때 뒤로 물러나고 비관론자가 된다.

→ 태중에서부터 장자권을 붙잡으려 하고, 에서는 들로 야곱은 장막에 있으면서,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다.


2단계: 자율성(autonomy) vs 수치  회의(shame and doubt) 의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말을 배우게 되면서 아이는 무엇은 해도 좋고 무엇은 하면 안되는지를 배워야 한다. '항문기'는 아이와 부모의 의지가 충돌하는 시기이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으면 이 시기의 발달 과제를 더 잘 넘길 수 있다. 변가리기 훈련에서 아이는 '내놓기'와 '지니고 있기' 둘 다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면 아이는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부모가 아예 무관심하거나 너무 엄하게 과잉통제를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다 들어주면 아이는 자기통제를 배우지 못하고 수치와 의심이 생겨난다. 부모가 기대하는 자기통제를 해 보일 수 없다는 창피함은 후에 독립과 자율의 문제들을 가져온다. 자기통제를 노력하는 과정에서 <의지>라는 덕목이 발달된다.

→ 팥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에서는 놓고 야곱은 잡는다.


3단계: 주도성(initiative) vs 죄책감(guilt) 목표

이제 자아가 상당히 발달한 아이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왕성하고 정복과 경쟁도 즐긴다. 아이는 자기를 주장하고 경쟁과 승리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 성적 공상들도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거니와, 도덕적 책임감(초자아)이 발달하면서 내적 충동들에도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 시기 아이들의 주된 활동은 놀이이다. 어려운 상황과 과제들을 되풀이함으로써 놀이에서 현실을 다루기를 배우며, 처벌이나 죄책감을 겁내지 않고 목표를 추구하는 용기인 <목적성>(purpose) 덕목이 놀이를 통해서 발달한다.

→ 속임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가로채는 야곱


4단계: 근면(industry) vs 열등감(inferiority) 유능

아이는 가족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학교에 들어가며 자신이 살아갈 사회에서 중시하는 여러가지 기술들을 배운다. 즉, '사회화'가 되는 것이다. 이에는 물론 어른들과, 같은 또래들과 어울리고 협동하는 사회적 기술 및 지식도 포함된다. 아이는 성취의 즐거움을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검증, 평가하기를 배워야 한다. 성공 경험들은 자신감, 성취동기, 창의력 등을 가져오지만 실패 경험은 열등감을 만들어 낸다. 배움에 열심일 때 <유능>(competence)이라는 덕목이 발달한다. 

→ 집을 떠나 외가집으로 가서 고생한다.


5단계: 정체감(identity) vs 역할 혼미(role confusion) 충실

사춘기를 겪으면서 아이는 어른으로서 사는 준비를 시작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그 기초는 자아정체감(ego identity)으로서, 이는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와 연속되고 내가 보는 '나'와 남들이 보는 '나'가 일치한다는 감각을 말한다. 그러한 정체감이 있을 때 비로서 '나는 누구인가' '이 사회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를 찾을 수 있지만, 이는 많은 방황과 실험을 요구한다. 이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려면 남자/여자, 직업, 시민, 부모 등 여러가지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마치 옷을 사기 전에 이것저것 입어보듯이 사춘기와 청년기에는 다양한 역할들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

방황과 실험의 자유가 허용되고 또 동일시할 모델들이 주어질 때에는 성정체감, 직업정체감 등을 확립하기가 비교적 쉽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역할 혼미가 생긴다. 자기가 누구인지 내적으로 혼란스럽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적응하며 동일시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이 시기의 젊은이들을 입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하면서 정체감 확립에 필요한 방황과 실험을 제도적으로 막는다. 교육, 정치, 사회,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진정한 권위를 지니며 동일시할만한 어른이 부족한 것도 정체감 형성에 어려움을 더한다. 정체감 형성은 이 시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이어지는 과제이지만 이 시기에서 보편적으로 가장 큰 과제가 된다.

→ 외가집에서의 결혼-축복-떠남-얍복나루로 이어지는 야곱은 이스라엘이 된다.


* Marcia의 정체감 지위(identity status)

자아정체감은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서 가장 연구가 많이 된 개념이다. Marcia는 정체감 형성 결과를 다음의 네가지로 구분함으로써 Erikson의 이론을 확장하였다.

정체감 성취(identity achievement)

탐색과 실험 후 정체감을 확립한 경우. 선택도 했고 확신도 있는 경우.

정체감 유예(identity moratorium)

계속 탐색은 하나 확실한 선택은 못하는 상태이다. 혼란과 우울을 겪지만 새로운 경험들에 열려있고 다양한 생각과 생활양식들을 능동적으로 탐색한다

정체감 조기종결(identity foreclosure)

충분한 탐색 과정을 겪지 않고 (주로 부모가 정해 준) 정체감을 선택해버린('미리 닫은') 상태. 정체감 유실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 또래보다 일찍 성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선택은 시기상조이며 부모의 가치와 목표에 추종하려는 과도한 욕구나 탐색에 수반된 불확실성에 대한 과도한 불안 때문에 일어난다. 조기종결은 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정체감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정체감 혼미(identity diffusion)

정체감을 확립하지도 않았고 또 능동적으로 찾지도 않는 경우. 방향 감각이 결여되어 있으며 유예와 달리 정체감을 성취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없는 상태를 지칭한다. 성인 생활의 책임과 결정을 가능한 한 미루는 '영원한 소년'에 가까우며 넷 중 가장 부적응적, 병적일 수 있다.


6단계: 친밀감(intimacy) vs 고립(isolation) 사랑

대략 20대에 들어오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타인들의 존재와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친밀이란 자신의 정체감을 잃지 않으면서 관계(연인, 친구, 동료 등)에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체감이 확실하지 않으면 '나'가 아주 없어질까 봐 두렵기 때문에 타인과 안정된 가까운 관계를 맺기가 힘들고, 그 결과는 피상적 관계 그리고 고립과 고독이다. 자기의 정체감과 삶의 목표를 확실하게 정할 수 있을 때 이 단계의 덕목인 <사랑>이 생긴다. 사랑이란 성격, 경험,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적대를 극복하는 '상호적 헌신'이다.

→ 얍복나루로 가는 과정과 이후 형을 만나는 과정은 상호적 헌신을 통한 사랑으로 나아간다.


7단계: 생산성(productivity) vs 침체(stagnation) 배려

성숙한 어른은 남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줄 알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젊은 사람들을 보살피고 키우고 싶어 한다. 이 '생성' 욕구는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키우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다른 영역들에서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생산, 창조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생성을 체험하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가 쓸모없고 인간관계가 무의미하고 메마르다는 느낌이 생겨난다. 고인 물(정체)는 생명을 키우지 못하고 썩는다. 남들을 보살피고 가르치고 싶은 욕구에서 <배려>의 덕목이 생긴다. 남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는 우리가 남들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고 동시에 우리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심갖는(자기도취) 일도 피한다.

→ 야곱의 정착이후 세겜에서 자녀들로 어려움을 겪는다. 벧엘로 올라가자 한다.


8단계: 자아 통합(ego integration) vs 절망(disparity) 지혜

앞 단계들을 잘 넘긴 사람은 노년에 들어와 지나온 삶을 긍정하고 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사람은 인류가 좋은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으며 자신이 이 삶의 흐름에서 작은 기여나마 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물론 실패와 실수들에 대한 후회도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절망도 한다. 절망이 더 큰 사람은 자신을 증오하고 세상과 타인들을 원망하며 헛살았다고 한탄하는 반면, 통합이 절망보다 클 때 <지혜>의 덕목을 얻는다. 젊은이들이 무력감을 느낄 때 지혜로운 노인들을 보면 삶이 완성되고 결국에는 평화가 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 요셉을 통해 바로 앞에서 야곱은 나그네 인생 130년이라 한다.


[쌍둥이-원수형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일까?]

Q. 형제는 화목할까, 원수일까?


 

* 쌍둥이자리(Gemini [ˈɡɛmɪnaɪ], 기호: ♊)는 오리온자리의 북서쪽에 있는 별자리로, 황도12궁의 하나이다. 겨울의 저녁 하늘에 잘 보인다.

* 쌍둥이자리, 이탈리아 기도서에 있는 그림(1475경), 미국 뉴욕에 있는 피어폰트 모르간 도서관 소장


* 쌍둥이자리 유래

쌍둥이자리는 카스트로와 폴록스 형제의 헌신적인 우애를 간직하고 있는 별자리다. 플록스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여 낳은 아들이고, 카스트로는 왕과 왕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이 형제는 둘의 사이가 좋은 것 이외에도 아버지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외모가 아주 많이 닮아서 사람들은 이들을 쌍둥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 왕비에게는 이들 이외에도 아들이 많았지만 그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어느 날 그 나라에 산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난동을 부렸다. 여러 왕자가 서로 공을 세우기 위해 자기들끼리 다투다가 카스트로가 죽고 말았다. 카스트로와 남달리 우애가 깊었던 폴록스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던 동생이 죽자 그 슬픔을 감당하지 못해 그도 죽으려고 했지만 불사신의 몸인 그는 죽을 수도 없었다. 결국 폴록스는 하늘로 올라가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부탁했다. 폴록스의 부탁을 들은 제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동생은 그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언젠가는 죽고 말지. 다시 살리고 싶다면 너의 남은 생명의 절반을 동생에게 나눠주어야 할 것이다.." 성품이 착하고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던 폴록스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장 승낙했다. 제우스는 이들 형제의 우애에 감동하여 하루의 반은 지하세계에서 하루의 반은 지상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허락했다. 그리고 이들 형제의 우애를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이들의 영혼을 하늘에 올려 나란히 두 개의 밝은 별로 만들어 주었다.


* 쌍둥이에 대해..

-몽골에서 쌍둥이 낙타는 길조이지만 말은 흉조라고 여겨 한 마리의 새끼를 죽여버린다고 한다. 몽고에서는 뒤에 나오는 쌍둥이가 형이 된다.

- 우리속담 : 쌍율(雙栗)을 먹으면 쌍둥이를 낳는다. 雙 두 쌍/쌍 쌍, 栗 밤 율(률)/두려워할 율(률), 찢을 열(렬)

- 신화속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곧 어머니와 함께 박해를 받는다든가, 부(富)와 풍요(豊饒)를 준다는 등 공통점이 많다. 이것은 비정상적인 쌍둥이 탄생에 초자연적인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그들을 신의 아들들로 숭상하거나, 악령의 씨앗이라고 보고 그들을 두려워하는 등 고대 미개문화의 공통된 신앙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 우리는 형제관계를 다정한 결합이라고 상상하지만 신화적, 문화적, 역사적 예들은 거의 모두 갈등관계이다. 그리고 이것은 폭력적이다.

- 신화의 본질적인 테마, 즉 ‘원수형제’테마를 쌍둥이 공포증과 모든 형제의 유사성과 비교해야할 것이다. 클라이드 클루콘(Clyde Kluckhohn)은 신화 속에서 형제의 갈등보다 더 자주 나타나는 갈등은 없다고 단언한다. 이 갈등은 일반적으로 형제살해로 귀결된다. 흑인 아프리카 여러 지역의 신화에 나타나는 경쟁의 주역들은 언제나 하나 뒤에 곧바로 다른 하나가 태어난, 즉 ‘연달아 태어난’ 형제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정의는 쌍둥이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쌍둥이의 테마와 일반적인 형제 모티브 사이의 연속성은 트로브리앙 군도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클라이드 클루콘의 ‘신화와 신화창조의 흔한 테마들’『신화와 신화창조』p.52, 르네 지라르 『폭력과 성스러움』pp.93-94)

- 성경의 예 : 가인과 아벨,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요셉과 형제들 등..

→ 공통점 : 형제간의 폭력과 쫓겨남(희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모습. 그 뒤와 해결은?


(창 25:19-34)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 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야곱의 생애

창 25:19-26 경쟁자 쌍둥이 야곱의 출생(이삭 60세)

창 25:27 에서와 야곱의 성격과 장소-익숙한 사냥꾼이라 들사람 vs 조용한 사람이라 장막

창 25:28 편애 - 이삭은 에서를 vs 리브가는 야곱을

창 25:29-34 죽으로 장자의 명분을 사다.

창 27:1-30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다.

창 28:1-5 이삭의 축복을 받으며 라반에게 가다


창 25:19-26 경쟁자 쌍둥이 야곱의 출생(이삭 60세)

- 이스마엘의 후손(25:12-18) 이후 소개, 이삭 vs 이스마엘 → 야곱 vs 에서

- 20절 이삭의 결혼(40세)

- 21절 이삭의 기도와 하나님의 들으심과 리브가의 잉태

- 22절 태중에 싸움, 당황하여 기도하는 리브가

- 23절 하나님의 예언

- 24절 쌍둥이 출생

- 25절 에서라는 이름이유 - 붉고 전신이 털옷같아서

- 26절 야곱이라는 이름이유 - 형의 발꿈치를 잡아서, 이삭이 60세

창 25:27 에서와 야곱의 성격과 장소-익숙한 사냥꾼이라 들사람 vs 조용한 사람이라 장막

창 25:28 편애 - 이삭은 에서를 vs 리브가는 야곱을

창 25:29-34 야곱의 경쟁?

- 29절 야곱은 왜 죽을 쑤는가? 본인이 직접 했는가? 어머니의 편애를 받으며 가정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배운 것인가? 어머니가 도와주었을까? 에서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한 것인가, 우연인가?

- 29절 들사람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 배고파 한다.

- 30절 배고프다고 붉은 것을 달라고 한다. 태어날 때 붉은 에서가 붉은 것을 먹기 원하며 이것이 이후 에돔이란 불리는 이유가 된다.

- 31절 야곱의 요구 - 당시 관행을 넘는 요구, 구두계약을 강조

- 32절 배고픔을 더 우선시 여기는 에서

- 33절 야곱의 요구와 에서의 맹세

- 34절 에서에 대한 평가 : 죽을 먹고 간 에서는 장자권을 가볍게 여긴다고

창 26장 이삭의 삶-그랄과 브엘세바

창 27:1-30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다.

- 1-4 이삭이 축복하기로 하다

- 5-10 리브가가 야곱에게 권하다

- 11-12 야곱의 불안

- 13 저주는 자신이 받겠다며 목적만 이루려는 리브가의 잘못된 사랑

- 14-17 별미와 변장

- 18-26 이삭의 의심

- 27-29 축복기도받다

- 30-40 기도받는 에서

- 41 에서의 분노와 결심

- 42-45 리브가의 권유

- 46 리브가가 이삭을 설득하다

창 28:1-5 이삭의 축복을 받으며 라반에게 가다

cf. 야곱의 기도에 이미 벧엘의 약속이 있다.


(창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 25:22) 『그런데 리브가가 쌍둥이를 베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 태속에서부터 싸우는 에서와 야곱, 이는 계속되는 다툼과 이스라엘과 에돔 두 민족간에 치열하고 끊임없는 다툼이 있을 것임을 예시하는 것.

⇒ 쌍둥이, 원수형제로서의 모습, 폭력적이다. 이것의 자연스러운 결과는?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 복중신탁문(神託文 pre-natal oracle)

⇒ 언약가문의 계승권이 장남이 아니라 차남에게 넘어갈 것을 보여주는 것

Q 쌍둥이에 대한 편견(형제간의 갈등)에서 볼때 이런 신탁이 없었다면 야곱은 어떻게 되었을까?


(창 25: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창 25:24) 『달이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한 역사적 순간이 이르렀다.

→ 일반 편견과 달리 전혀 다른 흐름으로


* 출생의 모습

(창 25:25-26)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 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창 25:25-26) 『[25]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26]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 먼저 나온 자 vs 후에 나온 아우

- 야곱 : 야아코브(בקעי) 뒤에 있다, 뒤에서 오다, 배후, 맨 끝부분의 뜻인 ‘아카브’(בקע)에서 유래한 이름으로서 ‘뒤를 좇는 자, 발꿈치를 잡는 자’란 의미이다.

→ 성경에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다는 것으로 야곱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강한 경쟁의식을 보인다.

→ 일반적인 편견과 순리에 어긋난 모습, 그러나 복중신탁이 있다.

⇒ 에서는 나쁘고 결론적으로 야곱이 맞다는 이미지가 있으나, 형제간의 싸움은 서로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된다.

ex) 오이디푸스에 대한 신탁, 아버지 라이오스, 어머니 이오카스테

* 형제간의 대조적인 모습-갈등암시

(창 25:27-28)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7-28) 『[27] 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이더니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 활동반경이 들이며 사냥꾼으로 피를 보며 생명을 죽이는 에서 vs 활동반경이 집인 야곱

- 애착관계도 충분하지 않는 절반이다.


* 야곱의 적극적인 경쟁성

(창 25:29-34)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야곱은 에서의 장자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빼앗는다.

→ 술수를 행하는 조급한 야곱 vs 가볍게 여기는 에서

⇒ 태중에서부터 형의 발꿈치를 잡는 야곱은 현실감각적인 형의 성향을 이용하여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고, 더 나아가 속임으로 축복기도도 가로챈다. 그러나 결과는 형의 분노와 부모들의 긴장과 야곱의 피난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 바뀌게 된다. 곧 폭력은 상호적이며 비극적 모습으로 이어진다.


[정리] 가해자와 피해자, 비극의 원수형제의 모습, 하나님의 개입

- 성경의 예 : 가인과 아벨, 이삭과 이스마엘, 야곱과 에서, 요셉과 형제들 등..

→ 공통점 : 형제간의 폭력과 들로 쫓겨남(희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모습,

⇒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이 있다.

① 가인은 피해자라는 의식으로 동생살해라는 가해자가 된다. 아벨은 형에게 죽어 피해자(희생자)가 되고 그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하나님께 호소한다. 아벨(가해자)의 호소를 들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가셔서 피해자의 마음을 꺼내고 두려워할 때 표를 주어 보호하신다. 그러나 가인은 계속 가해자로 산다.

② 이삭을 학대하는 가해자 이스마엘이 사라로 인해 쫓겨나야할 피해자가 되는 상황에 이를 걱정하는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심으로 실제로 아브라함은 가해자로, 이스마엘과 하갈은 피해자가 되어 들로 나가지만 거기서 하나님이 그들을 맞이하신다.

③ 순리와 신탁의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야곱은 에서에게 태중부터 가해자가 되고 에서는 피해자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위치가 서로 바뀔 때 야곱은 피해자가 되어 들로 나가게 되고 야곱은 피난(희생) 중에 들(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④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요셉은 다른 형제들에게 갈등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다. 이후 이 모습은 서로 바뀌게 되고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게 된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하나님을 만난 요셉은 다시 형제를 만났을 때 가해자가 아닌 하나님처럼 그들을 품어준다. 피해자가 될 것을 긴장하는 형제들을 품어주는 사람이 된다.


[이삭의 축복과 야곱의 의도된 거짓말]

-야곱은 왜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축복기도를 받으려 하는가?


* 요즘 거짓말에 대한 사회이슈-군면제, 학력위조, 지도자의 정직성..

* 거짓말에 대한 영향 - 누가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두 유대인이 거리에서 만났다. 한 사람이 묻는다. “어디 가니?” 다른 사람이 대답한다. “크라코비아.” 그러자 질문한 사람이 버럭 화를 낸다. “이런 거짓말쟁이! 너는 지금 크라코비아에 가면서 나로 하여금 람부르크에 간다고 믿게 하기 위해서 크라코비아에 간다고 하는구나. 왜 그런 거짓말을 하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남들도 자신처럼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

* 엄마는 아이에게 왜 거짓말을 할까?

-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아이와 떨어져야 하는 상황, 외출이나 유치원을 보낼 때, 거짓말, 은근한 협박, 달콤한 회유책 등, 아이는 엄마의 마음과 달리 분리불안

-반대급부의 효과를 위해-‘~하면 ~해줄께’라는 보상에 대한 거짓말. 이것을 반복하면 보상을 받지 못해 피해의식이 생기게 하고 점점 수동적이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러다가 폭력적으로 되기도 한다.


* 생활속에서 쉽게 하는 것 - 거짓말

① 아동의 거짓말은 거짓말, 속임, 정직행동의 측면에서 도덕성의 하위요소로 간주된다.

② 거짓말을 시작할 수 있는 연령을 알아보기 위해 실험할 때 3세의 유아들이 22.2%가 거짓말을 하였다. 곧 3세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속임행위를 보인다.

③ 거짓말은 연령이 높을수록 더 많이 하고 가능성이 증가한다. 이는 연령에 따라 거짓말이 증가하는 것은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거짓말을 '의도와 배경정보‘를 고려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정교해지고 같은 상황일지라도 거짓이라고 덜 분류하거나 거짓말에 대해 관대해지는 점에 기인한다.

④ 도덕발달 초기에 유아가 행위의 옳고 그름을 외적인 준거와 행위의 결과로 판단하다가 행위의 결과와 의도를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Piaget의 이론에 기초를 둔다. 그에 따르면 도덕발달 초기의 유아는 행위의 의도보다 결과에 근거한 판단을 하고, 규칙을 어겼을 경우 어떤 방법으로든 벌이 따르게 되며 규칙이란 절대적이고 불변의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지적 성숙과 더불어 사회적 경험이 쌓이면서 유아는 도덕적 판단시 행위의 상황적 요인을 고려하는 융통성을 보이고 규칙은 사람이 만든 것이며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임의적 합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⑤ 어머니의 언어통제유형이 유아의 거짓말에 미치는 영향의 결과는 가장 높은 영향력을 가진 변인은 어머니의 언어통제유형 중 명령적 통제였다. 즉 어머니가 명령적 언어통제를 할수록 유아는 거짓말을 더 많이 하였다. 이 결과 어머니가 명령적 언어통제를 할수록 유아의 도덕위반행동은 높아지고 도덕판단능력은 낮아지는 연구결과가 있다. 어머니가 명령적 언어통제를 한다는 것은 역할재량권을 유아에게 거의 주지 않으며, 단순하고 감정적인 제한된 어법으로 아동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어머니의 언어표현에서 의사결정과정이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특한 개인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고 어머니의 판단을 유아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처럼 어머니가 유아의 행동을 체벌 및 언어적인 벌과 명령을 사용하여 유아의 의도와 요구는 무시한 채 복종하도록 요구하는 양육방식을 보일 때, 유아는 도덕성이 낮고 자발성이 부족한 부정적 특성을 나타내기 쉽다. 이는 어머니가 명령적 언어통제를 하게 되면 판단에 대한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게 되므로 유아는 좀더 수동적인 입장에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는 행동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사와 이야기 속에서 거짓말

①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이탈리아 소설가)는 기호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사람들이 거짓말을 위해 사용하는 모든 것”이라고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② 고대 그리스에서 있었던 거짓말에 대한 칭송의 사례 : 고대 그리스에서는 거짓말에 대해 칭송이 많다. 심지어 플라톤도 종종 거짓말하는 기술을 일컬어 “영리한 사람들의 능력”이라고 칭송하면서, 정직하면서 순진한 사람보다 거짓말을 하면서 영리한 사람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다.

③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 Odyssey>의 주인공 ‘오디세이아’는 교활함을 향한 찬가로 보인다. ‘트로이의 목마’로 지루한 전쟁을 끝내버린 영리한 오디세우스는 온갖 꾀를 동원해 살아남는다. “당신은 그렇게 거짓말을 할 때 스스로 야비하다고 생각하지 않소?”란 질문에 오디세우스는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 응수한다.

④ 르네상스 시대에 거짓말은 다시 주목을 받는다. 에라스무스는 진실성을 바보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마키아벨리는 거짓말을 군주의 통치 기술의 자리에 올려놓는다. 발다사르 카스틸리오네의 『호프만의 책』에서는 ‘~인 체 하는 것’을 정중한 태도를 위한 의무로 여기고 있다. 토르쿠아토 아세토가 1641년에 펴낸 『고귀한 은폐』에서는 삶의 비극적인 진실을 덮어줄 “고귀한 암흑의 장막”을 권하고 있는데, 여기서 모든 아름다움은 죽음과 함께 썩어버릴 삶을 덮고 있는 “고귀한 은폐”로 묘사된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등장과 함께 가장과 은폐에 대한 칭송은 종국을 맞는다. 칸트에게서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는 응급 상황에서의 거짓말조차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는 만약 어떤 경우에라도 거짓말을 허용하게 되면, 윤리의 토대 자체가 위험에 빠질 것으로 생각했다. 칸트는 “거짓말쟁이는 사회를 해체한다”고 말했다.

⑤ 16세기 후반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던 부지런한 위조범들은 동정녀 마리아가 가지고 있던 수건 및 마리아와 베드로, 야고보 등이 했던 말을 담은 책 22권을 동굴에서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교회가 이 유물이 가짜라고 증명한 건 100년 후의 일. 이 사이 그 지역에서는 기독교가 굳건히 뿌리를 내려버렸다. 성스러운 유물이 사실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어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이 교활한 위조범들은 수많은 대중을 전도하는 혁혁한 공(?)을 세운 자들이다.

⑥ 나바호 인디언의 어떤 설화에는 코요테가 등장한다. 코요테는 스컹크의 도움을 받아 일용할 양식을 장만하기로 작정한다. 코요테는 죽은 척하고, 스컹크는 코요테가 죽었으니 잔치를 벌이자며 동물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스컹크는 허공에 오줌발을 갈긴다. 동물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오줌방울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하는 사이, 코요테는 벌떡 일어나 동물들을 모두 때려잡는다. 하지만 과욕을 부린 코요테는 자신과 스컹크 중 누가 고기를 차지할지 결정하기 위해 경주를 하자고 제안한다. 코요테보다 영리한 스컹크는 달리다가 도중에 풀밭에 숨어 고기를 가로챈다. 따지고 보면 우리 별주부전도 교활한 토끼가 우둔한 거북이를 상대로 벌이는 사기행각이다.

⑦ 진실을 진실로 숭배한다면 아이들이 거짓말을 못하게 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로 위협한 예는 ‘피노키오의 코’처럼 코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⑧ 거짓말 - 진실의 반대말? 오히려 거짓말은 진실과 함께 공생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거짓말이 제대로 통용되고 번성할 수 있으려면 일정한 환경이 필요하다. 만일 거짓말이 지나치게 과잉된다면, 거짓말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다. 거짓말이 성공하게 되는 전제인, 말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한다는 사회적인 약속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활하면서도 지능적인 악의 화신인 셰익스피어의 이아고도 그가 거짓을 말할 때 진실의 요소로 적절하게 은폐를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순진하게 사실만을 믿으려고 하는 오델로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음험한 모략에 걸려들고 만다.

⇒ 피노키오의 코같은 거짓말, 어린아이부터 모든 사람, 정직과 융통성의 사이, 진실과 지혜로움의 사이, 고대이야기에서 설화와 이야기까지,

⇒ 우리 생활 속에 어디부터 어디까지, 누구의 말이 거짓말이고 진실인지 알 수 없다.


※ 야곱에게 거짓말은 무엇인가?

→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데 옳고 그름의 판단은, 주저함과 진행함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일까?

→ 야곱안에 있는 거짓에 대한 민감함이 떨어진다. 그의 심리도식이 움직인다.


* 팥죽사건이후

창 26:1-33 이삭이 그랄 땅에서 있었던 기록되었다.

창 26:34-35 에서의 가나안여인과 결혼


창 27:1-4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하려 하다

창 27:5-29 리브가의 엿듣기, 야곱이 축복기도 받다

창 27:30-41 에서의 분노와 살의

창 27:42-28:5 부모의 명을 따라 떠나는 야곱

창 28:6-9 에서가 이스마엘 딸과 결혼하다.


* 상황-장막 안과 밖에서(창 27:1-17)

(창 27:1-4)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① 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둡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해주어야겠다고 결정하고 에서를 불러 사냥하여 잡은 동물로 별미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기다린다.(1-4)


(창 27:5-10)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② 에서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사냥하기 위해 들로 나간다.(5)

③ 어머니 리브가는 이삭의 말을 엿듣고 에서가 들에 나간 틈에(5) 야곱을 불러 과정을 설명한다.(6-7) 그리고 계획을 이야기한다.(8) 염소의 좋은 새끼를 골라오면 자신이 별미를 만들고(9) 야곱은 아버지에게 드리고 잡수시게 하라(10)한다. cf. 리브가의 의도는 ‘그로 죽으시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라고 한다.


(창 27:11-12)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④ 야곱은 위험요소를 말한다. 에서는 털사람이고 자신은 매끈하여(11) 아버지가 만지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12). cf. 야곱은 아버지가 자신을 만질 것을 예상했고 적중했다. 야곱의 의도는 정직이 아닌 축복기도를 받는 것이다.


(창 27: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⑤ 어미는 저주는 자신이 받는다 하며 자기 말을 따르고 가져오라 한다.(13)


(창 27: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⑥ 야곱은 염소새끼를 가져오고 어미는 별미를 만든다.(14) cf. 계획을 실천하다.


(창 27:15-17) 『[15] 리브가가 집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⑦ 리브가는 에서의 좋은 의복을 야곱에게 입히고(15) 염소새끼의 가죽으로 손과 목의 매끈한 부분에 분장을 시키고(16), 야곱에게 별미와 떡을 쥐어준다.(17) cf. 염소새끼의 고기는 별미로, 가죽은 분장으로 사용한다.


창 27:18-26 야곱의 거짓연기와 이삭의 속음

창 27:27-29 야곱에게 축복기도하는 이삭


(창 27:18)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창 27:18) 『야곱이 아버지에게 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그러자 이삭이 "나 여기 있다. 아들아, 너는 누구냐?"하고 물었다.』

- 야곱이 .. 나아가서 .. 부르니 .. 이르되

→ 드디어 야곱은 이삭의 장막으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기 위해 들어간다. 구체적인 행동에서 야곱의 적극적인 의지가 보인다.


(창 27: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창 27:19) 『야곱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하였습니다. 이제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하여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마음껏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별미 이야기는 이삭과 에서 둘만의 이야기로 알고 있을 것이다.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도 에서에게 했던 말들이다.

-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 아버지의 맏아들(뻬코레카) -원형 뻬코르(רוכב)은 ‘태를 열다’는 빠카르(רכב)에서 유래한 ‘초태생’이란 의미. 태 속에서부터 원했던 장자의 권리.

→ ‘맏아들’이라 하지 않으면 도저히 받을 수 없는 기도이다. 그토록 되고 싶었던 맏아들이라 표현한다. cf ‘맏아들’이라 말할 때 어떤 마음일까? 장자권을 샀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했을까?

→ ‘에서’ : 자신의 이름이 야곱임에도 ‘에서’라고 할 때는 어떤 마음일까? 에서의 흉내를 낼 것이에 자신있게 했다면 축복기도를 받기 위한 야곱의 감정은 어떨까?

⇒ 반쪽 거짓말?


(창 27:20)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창 27:20)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어떻게 그렇게 빨리 사냥거리를 찾았느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아버지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이 일이 잘되게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 눈이 멀고 죽음에 임박했다던 이삭은 상황을 빨리 구분할 정도로 분별력이 있다. cf. 결국 그 분별력은 확인하지 못하지만..

-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 야곱의 거짓말의 합리화 단계

1. 자신의 능력으로 사냥한 것처럼 말한다.(19)

2.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고 모독하면서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한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하여 아버지 이름까지 더럽히고 있다.

3. 자신의 목적이 하나님인데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서슴없이 도구로 삼는다.

⇒ 거짓말은 그 의도된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 이삭의 의심과 확인작업

(창 27:21)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창 27:21) 『이삭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얘야, 내가 너를 좀 만져 볼 수 있게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인지, 좀 알아보아야겠다."』

→ 이삭의 의심과 확인 : 노쇠하여 시력을 상실한 이삭은 청각보다 촉각을 의지하여 아들의 신원을 확인하려 한다.

→ 점점 거짓말을 하게 된 야곱은 자신의 예상대로 만져보겠다는 이삭의 말을 들을 때 어떤 마음일까? 그러나 더욱 긴장되는 상황이나 그 자리를 피하지는 않는다.


(창 27:22-23) 『[22]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23]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창 27:22-23) 『[22]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아들을 만져 보고서, 중얼거렸다.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로구나." [23] 이삭은 야곱의 두 손이 저의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나 있으므로, 그가 야곱인 줄을 모르고 그에게 축복하여 주기로 하였다.』

- 만지며 - 이삭은 자신에게 나아온 자를 의심하여 야곱의 분장한 손을 만지지만 건성으로 확인한다.

- 분별하지 못하고 - 철저하고 세밀하게 어떤 사실을 알아가지 않았다.

→ 야곱의 음성을 구분한다. cf. 에서와 야곱의 체형은 서로 다를텐데 목소리는 어땠을까?


(창 27:24) 『이삭이 이르되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 그가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창 27:24) 『이삭은 다짐하였다. "네가 정말로 나의 아들 에서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 신원을 확인하는 아버지의 물음에 긴말보다 간단하게 대답함으로 아버지를 철저하게 속이는 야곱의 대답함이 보인다. cf. 훗날 야곱은 자식들로부터 요셉이 죽었다는 속임을 당한다.


(창 27:25) 『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창 27:25) 『이삭이 말하였다. "나의 아들아, 네가 사냥하여 온 것을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서, 너에게 마음껏 복을 빌어 주겠다."』

- 가져가매 .. 먹고 .. 가져가매 .. 마시고

→ 이삭은 지체하지 않고 신속하게 먹고 마시고, 야곱은 이삭의 식사에 열심히 시중들다.

→ 긍정적 표현 : 고대근동사회에서 부족간에 계약을 하거나 후계자를 세울 때 큰 잔치를 베풀었다.

→ 부정적 표현 : 겉모양은 있으나 속이 비었다? 아버지도 아들도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는데 하나님 앞에 있는가?


(창 27: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창 27:26)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아, 이리 와서 나에게 입을 맞추어 다오."』

→ 이삭은 강요없이 부드럽게 권유하며 최대한 친밀함을 표현한다. 에서라고 확신한다.


* 이삭의 축복기도

(창 27:27-29) 『[27]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창 27:27-29) 『[27] 야곱이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삭이 야곱의 옷에서 나는 냄새를 맡고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나의 아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께 복받은 밭의 냄새로구나. [28]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29]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것이다."』

①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바로 그 밭의 냄새, 그 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하신 바로 가나안 땅이다.(12:1-3) 단순한 장자의 축복을 넘어 하늘의 축복을 계승하는 ’언약의 계승권‘으로 그동안 야곱이 그렇게 받고 싶었던 것이다.

② 하나님은 ...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 직역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이 네게 주시리라’

→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바로 그 하나님과 바로 그 분이 계속해서 이어서 주신다는 확신

  - 하늘의 이슬 : 메마르고 건조한 팔레스틴에서 우기를 뺀 건기에는 비가 없다. 이때 내리는 이슬은 농작물을 자라게 한다. 일교차가 큰 팔레스틴에 밤중에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습기를 담은 서풍은 대륙의 차고 건조한 북풍과 만나 아침에 이슬로 내렸다.(일년중 거의 250일정도)

③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 너를 섬기고 굴복한다. : 하나님의 축복으로 만들어진 환경 (시 144: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축복하는 자는 축복을 : 언약의 자손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 언약의 자녀를 축복하는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축복하고 환경과 상황을 축복하신다.


[정리]

① 야곱은 자신이 태중에서부터 바라던 것을 얻었다. 그러나 기다림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기의 때와 방식으로 실행한다.

② 야곱은 리브가의 도움을 받는다. 선도 도움이 있으나 악도 도움이 있다. 그 선택은 본인에게 있다. 그러나 축복기도를 너무나 바라는 야곱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려는 것을 선택한다.

③ 결론까지는 과정이 있다. 과정을 통해 결론을 만든다. 야곱은 계속되는 과정의 선택을 통해 결론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자신의 의도된 목적이 과정의 악함을 못본다. 이삭은 눈이 멀어 볼 수 없지만 야곱은 자신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못본다.

④ 거짓말-속임-속음-가로챔, 자격없는 야곱이 장자의 모습으로 이삭에게 나아가고 이삭은 그에게 저주대신 축복을 한다.

⑤ 그러나 이것은 끝이 아니다. 다시 다음을 위한 과정이고 선택을 하게 된다.

⑥ 왜 거짓말하는가?라는 질문보다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거짓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눈이 가려진다.


[길 떠나야 하는 야곱]

- 야곱은 왜 길을 떠나야 하는가?


창 27:27-29 야곱을 향한 이삭의 축복기도

창 27:30-38 이삭과 에서의 대화(분노, 비난, 다급해진 에서)

창 27:39-40 에서를 향한 이삭의 기도

창 27:41 에서의 복수결심 vs 아버지에 대한 사랑

창 27:42-45 에서의 말을 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라반에게 보내려 한다.

창 27:46 리브가가 에서의 결혼으로 겪는 어려움으로 이삭을 설득한다.

창 28:1-5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라반에게 보내다.

창 28:6-9 에서의 결혼

창 28:10-22 벧엘에서의 야곱


* 에서는 왜 복수를 결심하는가?

(창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 27:41)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다.』

→ 야곱을 미워하고 그에게 복수할 마음을 갖는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으로 그 복수시점을 잡는다. 그러나 이삭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고 180세에 죽는다. 이 상황이 적게는 100세라면 80년이, 많게는 137세라면 43년이 걸릴 것이다.

→ 분노로 표현되는 에서의 상처 : 야곱의 열등감 & 우월감

⇒ 야곱은 태아때부터 장자가 되려 한다. 자신에게 열등감은 경쟁을 통해 우월감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건강하지 못한 야곱의 우월은 타인도 자신도 죽게 한다.


* 리브가의 반응

(창 27:42-45)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창 27:42-45) 『[42]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하고 다니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아들을 불러다 놓고서 말하였다. "너의 형 에서가 너를 죽여서 한을 풀려고 한다. [43]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44]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 [45]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너의 형이 잊으면 거기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내마. 내가 어찌 하루에 자식 둘을 다 잃겠느냐!"』

① 리브가의 습관 : 엿듣기 - 이삭을 이어 에서의 말을 엿듣는다.

② 리브가의 불안 :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 야곱의 죽음을 상상한 리브가는 걱정과 불안이 생긴다.

③ 리브가의 주도적 반응 : 대안을 생각해낸다 - 야곱을 라반에게 보내기

④ 리브가의 빗나간 예상 : 얼마간 지나면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⑤ 리브가의 책임전가 :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 자신이 저주를 받겠다던 리브가가 상황적으로 어쩔 수 없고 최선이라 하지만 고생은 야곱이 하게 한다.

⑥ 리브가의 계획 : 잊으면 불러오리라 →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⑦ 리브가의 이유 : 둘다 잃을 수 없다

⇒ 이러한 어머니 리브가의 불안은 야곱을 조정하고 결정한다. 엄마에게 의존적인 야곱은 자신의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 과연 간섭과 조정이 많은 리브가와 계속 함께 있다면 야곱은 자율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


* 리브가의 새로운 임무부여-결혼

① 이삭을 설득하다. 이삭의 편애의 결과가 에서가 이방여인과 결혼한 것을 약점으로 마마보이적 이삭을 조정한다. 리브가는 반성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야곱을 살리는 것으로 여긴다.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였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② 이삭이 야곱을 보내게 한다.

(창 28:1-5)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창 28:1-5) 『[1]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2] 이제 곧 밧단아람에 계시는 브두엘 외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거기에서 네 아내가 될 사람을 찾아서 결혼하여라. [3] a전능하신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셔서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고, 마침내 네가 여러 민족을 낳게 하실 것이다. (a. 엘 샤다이) [4]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도 주셔서 네가 지금 나그네살이를 하고 있는 이 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유산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란다." [5] 이렇게 복을 빌어 준 뒤에 이삭은 야곱을 보냈다.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다.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며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인 리브가의 오라버니이다.』

→ 1절 이삭은 에서에게는 권하지 못한 것을 야곱에게 권한다 - 신앙과 순수한 혈통을 계승하라고..

→ 2절 라반에게 가라는 권유는 야곱에게 있어 리브가도 한 이야기다.

→ 3-4절 이삭은 야곱이 그토록 갖고 싶은 장자의 축복을 가지고 권한다.

⇒ 축복기도후 이삭과 리브가가 이러한 결정과 의견을 줄때 야곱의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 이제는 속이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축복기도를 받는다. 그러나 상황은 떠나야 한다.


Q1. 야곱을 라반에게 가게 한 이는 누구인가?

① 두 아들을 잃을 수 없어 이삭을 통해 재차 말한 어머니 리브가?

② 축복기도를 잘못 준 책임을 덮고 다시 야곱을 축복함으로 정당화함과 신앙과 혈통을 순수성을 강조한 아버지 이삭?

③ 야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분노와 비난으로 가득한 형 에서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④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Q2. 야곱에게 떠남은 무엇인가? - 야곱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①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떠나길 원한다?

② 장자의 축복을 원하다가, 더 많이 가지려다가 빈털터리가 되었다?

③ 원하지 않는 출발이기에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있을까? 여전히 마음은 고향에..

④ 전혀 알 수는 없으나 성장을 기대?

⑤ 직접적인 아버지의 축복으로 하나님만 바라본다?

→ ①-③은 두려움 속에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예상되나 야곱이 ④-⑤을 원할까?


* 어린아이에서 떠남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1) 『내가 어릴 때에는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 야곱은 어린아이의 도식 안에 있었다.

① 초기 부적응 도식(Early Maladaptive Schema)은 생애초기에 형성되고, 이후로 지속적으로 정교해지면서 생애후기의 경험들에 중첩되며, 심지어 더 이상 기존의 도식을 적용할 수 없을 때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② 심리도식은 핵심적 정서욕구의 좌절로 인해 발달한다. 또한 생애초기의 양육환경과 정서적 기질도 심리도식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충족되지 못한 정서욕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심리도식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다.

③ 일반적으로, 가장 초기에 발달하면서 가장 핵심에 자리잡은 심리도식들이 자기 및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인데 반해, 후기에 발달하는 심리도식들은 ‘조건적’이다. 조건적 심리도식은 종종 무조건적 심리도식 때문에 생기는 고통을 감소시키기 위해 발달된다.

④ 예를 들어

→ 결함/수치심 도식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을 불완전하고, 결점이 있고, 열등하고, 나쁘고, 무가치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로 생각한다. 치료의 기본목표는 내담자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치료자의 수용적이고도 무비판적인 태도가 매우 중요하며, 치료자 스스로 자신의 인간적인 결점을 수용하는 모습을 내담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내담자가 신뢰하는 중요한 타인에게 자신을 더욱 많이 공개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 유기/불안정 도식을 지닌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생각하므로, 상당한 공포/우울/분노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고, 다른 믿을만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정된 근간이 되어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매달리며 화를 내거나 통제를 시도하는 식으로 상대를 멀리 밀쳐내는 것을 그만두고, 점차 홀로 있는 것을 견디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 의존/무능감 도식을 지닌 사람들은 스스로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고 느끼며, 자신은 대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약한 존재’로 지각하고, 타인을 ‘호의적이고 강한 존재’로 지각할 때, 의존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 이 도식의 치료과정에서, 치료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를 항상 유념해야 한다.

→ 자기희생 도식을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희생하여 타인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지나치게 집중한다. 속으로는 깊은 정서적 결핍감/박탈감을 느끼며, 때때로 자기희생의 대상에게 분노감/원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건강하게 자신의 욕구 충족을 주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치료의 목표다.

⑤ 야곱의 어린아이의 도식은? 예를 들어..

- 열등감을 경쟁을 통해 우월감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다.

- 어머니에게 의존적이고 영향을 받는다.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어머니에게 의사에 희생한다.

- 자신의 장자의 욕구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

⑥→ 이것의 결과는 모두가 분노의 대상이 되고 자신은 우울하게 된다.

⑦ 결국 야곱에게 주어진 길은 떠남을 제안받는다. 집을 떠난다는 것은 야곱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건강한 축복자로 살아가려면 오히려 그곳에서 떠나야 한다. 그것이 자신이 살수 있는 길이다. 어린아이로 머물지 않고 청소년과 청년으로 떠나는 것이 그에게 고통이나 살길이다.

⇒ 그걸 누가 하는가? 모르고 떠나는 그길에 무엇이 준비되고 누가 그것을 하는가?


[정리]

① 모두가 야곱을 떠나라 한다. 야곱에게는 선택권도 결정권도 힘도 없다.

② 겉은 축복받은 자로서 떠나지만 속은 비어 있다.

③ 벧엘에서의 꿈은 다른 시선, 자신에서 하나님으로 바뀌게 한다.

④ 자신은 알 수 없는 성장으로 인도한다.

:

성경인물 15. 에서 - 감각적 가벼움의 선택과 하나님없는 안내자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8. 11. 16:08
에서의 출생과 성장기

에서의 삶의 잘못잡은 포인트

 에서는 왜 언제부터 야곱을 용서했나? 1
 -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출발


 에서는 왜 언제부터 야곱을 용서했나? 2
 - 하나님의 맞춤작업


에서 - 하나님없는 안내자



* 에서의 생애

창 25:19-26 에서와 야곱의 출생(이삭 60세)

창 25:27 에서와 야곱의 성격-익숙한 사냥꾼 vs 조용한 사람

창 25:28-34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기다

창 26장 이삭의 삶-그랄과 브엘세바

창 26:34-35 에서의 결혼과 부모의 근심(40세)

창 27:1-4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하려 하다

창 27:5-29 리브가의 엿듣기, 야곱이 축복기도 받다

창 27:30-41 에서의 분노와 살의

창 27:42-28:5 부모의 명을 따라 떠나는 야곱

창 28:6-9 이스마엘 딸과 결혼하다.

창 28:10-32:2 야곱의 이야기

창 32:3-32 돌아오는 야곱의 두려움과 행동, 대답없는 형, 얍복나루와 기도

창 33:1-3 야곱의 눈에 에서와 4백인이 보인다.

창 33:4-17 에서는 환영한다.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숙곳으로

창 35:29 이삭의 죽음과 에서와 야곱의 장사지내다.

창 36:1-43 에서의 족보와 에돔의 왕들의 계보


* 에서의 생애의 특징

① 왜 에서가 아닌 야곱인가? 하나님은 왜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는가?

→ 성경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다. 후대 이스라엘이 바라본 야곱의 선택과정이다.

② 장자권에 대한 가벼움 vs 하나님을 부르거나 만난 이야기가 없다

③ 눈 앞에 보이는 감각적인 욕구 vs 야곱의 장자의 축복욕구

④ 사냥하며 돌아다니던 모습 vs 멀리 떠나지 않는 모습(cf. 눅 15장)

⑤ 야곱을 죽이겠다는 모습 vs 야곱을 맞아주는 모습(밑에서 얍복까지 멀리 마중 나온다.)

⑥ 오히려 야곱을 위해 세일산으로 피해준다


[에서의 출생과 성장기]

[에서의 출생과 복중신탁]

(창 25: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창 25:20) 『이삭은 마흔 살때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사람인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인 라반의 누이이다.』

→ 리브가의 혈통을 자세히 소개한다. 장소, 족속, 부친과 오빠까지 밝힌다. 이는 그녀가 언약의 가문을 이을 여인으로서 혈통과 신앙적 뿌리가 어떠한지 보여주기 위함이다.

cf. 에서의 결혼은 부모의 근심이 된다.(창 26:34-35)


(창 25: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 25:21)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였다. 주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 이삭이 기도하고 하나님이 들으심으로 리브가가 임신한다.


(창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 25:22) 『그런데 리브가가 쌍둥이를 베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 태속에서부터 싸우는 에서와 야곱, 이는 계속되는 다툼과 이스라엘과 에돔 두 민족간에 치열하고 끊임없는 다툼이 있을 것임을 예시하는 것.

→ 리브가는 힘들어하며 하나님께 묻는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 복중신탁문(神託文 pre-natal oracle)

- 나누이리라 : 파라드(דרפ) 나누이다, 끊어지다, 흩어지다, → 단순재귀 미완료형으로 앞으로 서로 끊어져서 흩어질 것을 보여준다.

- 강하겠고 - 아마츠(ץמא) 힘이 세다, 이기다 → 미완료형 시제로 미래 사건이나 반복되는 사건을 기술한다.

- 섬기리라 - 아바드(דבע) 일하다, 노동하다, 봉사하다.

⇒ 언약가문의 계승권이 장남이 아니라 차남에게 넘어갈 것을 보여주는 것


(창 25: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창 25:24) 『달이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한 역사적 순간이 이르렀다.


(창 25: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 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창 25:25)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a에서라고 하였다. (a. 붉은)』

→ 태어난 아이는 몸전체가 붉은 빛깔을 띠고 있고 털옷을 입은 것같게 보인다.

cf. 털(세아르)이란 말이 나중에 에서가 지낼 ‘세일’과 어근이 같다.

-에서 : 털이 많은이라는 뜻, 에서라는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어 에사브(털이 많음)와 히브리어 크아데렛 세아르(전신이 털옷 같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창 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창 25:26)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 의학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 그럼에도 성경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다는 것으로 야곱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강한 경쟁의식을 보인다.

- 야곱 : 야아코브(בקעי) 뒤에 있다, 뒤에서 오다, 배후, 맨 끝부분의 뜻인 ‘아카브’(בקע)에서 유래한 이름으로서 ‘뒤를 좇는 자, 발꿈치를 잡는 자’란 의미이다.

cf. 이런 교활하고 집요한 경쟁심을 이후 야곱에게서 볼 수 있는가? 축복기도를 받고 출가이후에는 없다?

Q. 처음부터 야곱을 형으로 태어나면 쉬울텐데 동생으로 태어나고 장자가 되고 떠도는 인생으로 가는가?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개명된다. 후대에 자손들이 포로의 시기나 떠돎의 시기를 보낼때 야곱의 모습은 이스라엘의 모습이고 자신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 연결성구

(롬 9:11-13)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롬 9:11-13) 『[11]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택하심을 따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이 지속되게 하시며 [12] 하나님의 이러한 일이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음을 나타내시려고 리브가에게 e"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e. 창25:23) [13] 그것은 기록된 바 f"내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였다"한 것과 같습니다. (f. 말1:2, 3)』


(말 1:2-3)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 1:2-3) 『[2]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나 주가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나 주가 말한다. 그런데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3] 에서는 미워하였다. 에서가 사는 언덕은 벌거숭이로 만들고, 그가 물려받은 땅은 들짐승에게 넘겨 주었다.』


[에서와 야곱의 성격과 편애 그리고 암시]

(창 25: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창 25:27) 『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

- 장성하매 : ‘그러면서 그들은 자라났다’ 쌍둥이형제로서 서로 다른 성품과 대립양상은 성장하면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 익숙한 : 알다(עדי)의 분사형. 사냥,학문,항해,연주 등 경험을 통해 능숙함을 표현한다.

cf. 이후 에돔인들에게 사냥은 일상적이고, 그들 사회에서 능숙한 사냥꾼은 환영받았다. 반면 이스라엘인들에게 사냥꾼에 대한 호감이나 영웅시하는 것은 드물다.

Q. 이런 에서를 사랑하는 이삭의 편애는 이스라엘의 관점에서는 그리 반갑지 않다?

- 들사람 : 농사꾼이 아닌 넓은 들판을 다니며 짐승을 사냥하는 직업을 가졌다. 이는 필요이상의 피를 보며 생명을 죽여야 하는 것.

- 조용한 사람 : 탐(םת) 온전한, 올바른, 온건한, 책망할 데가 없는 → 에서와 상반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단어

- 장막에 거주하니 : 야곱의 활동반경이 형과는 달리 집안이었음을 보여준다.


(창 25: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이더니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 직역 ‘그리고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입 안에 사냥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cf. 이삭은 언약의 아들임에도 야곱에 대한 약속은 리브가가 받았다.

cf. 이삭의 에서 편애는 에서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을 위한 것 → 교육의 부재와 교육이 안된다.

반면 목표지향적인 리브가의 야곱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예언(신탁)을 근거로 교육되었을 것이다.


[에서와 야곱의 성장기]

→ 눈에 보이는 감각적 욕구와 가볍게 여기는 장자권

(창 25: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창 25:29) 『한 번은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는데 에서가 허기진 채 들에서 돌아와서,』

- 죽 : 나지드(דיןנ), ‘들끊다, 흘러넘치다, 부풀어오르다’는 의미로 삶고 끓인 음식. 근동사람들은 중근동지역에 흔히 나는 적갈색 콩에 밀과 보리같은 곡류와 양파, 감람유 등을 섞어 끓인 죽을 별미로 먹었다.

- 심히 피곤하여 : 사냥을 다녀온 후 허기짐을 표현한다.


(창 25: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창 25:30) 『야곱에게 말하였다. "그 붉은 죽을 좀 빨리 먹자. 배가 고파 죽겠다" 에서가 붉은 죽을 먹고 싶어 하였다고 해서 에서를 b에돔이라고 한다. (b. 붉은)』

- 붉은 것 : 하아돔(םꕌאָꕗ, 그 붉은 것) 죽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색깔만 말할 정도로 허기지고 지친 상태를 보여준다.

- 에돔 : 에돔(םוֹדꔤ) ‘붉은 사람’ 원래 신체도 불그스레한 것과 관련있는 에서의 별명,

cf. 이번 죽 사건으로 조소적인 별명이 되었다. 반면 야곱이 이스라엘을 되는 것은 하나님이 불러주신 이름이다.


(창 25: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창 25:31)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은 먼저 형이 가진 맏아들의 권리를 나에게 파시오."』

- 장자의 명분 : 첫 열매, 첫 소생으로 ‘처음 난 것’의 의미이다.

cf. (신 14:23)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cf. 장자권 : 아비의 권위를 공식승계받고 사회적으로 한 가문의 대표자로 인정받고, 다른 형제보다 유산도 2배받는다.

(신 21:15-17)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 야곱이 에서가 배가 고플 것인 사실을 알고 준비하였는지는 모른다. 그럼에서 마치 준비한 듯 야곱은 외형적으로는 장난스럽고 부당하게 장자권을 양도하라고 강요한다. 불합리한 제안을 내놓음으로써 마음 속에 감추고 있었던 장자권에 대한 관심을 노출시킨다.


(창 25: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창 25:32) 『에서가 말하였다. "이것 봐라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이다. 지금 나에게 맏아들의 권리가 뭐 그리 대단한거냐?"』

→ 에서의 어리석음과 가벼움 : 에서는 배가 고팠지만 장자권을 이렇게 간단하게 매매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축복은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임으로 야곱의 제안에 대해 그다지 비중을 두지 않았다. 즉 죽 한그릇에 장자권이 양도되는 것이 아님으로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고 실제로 이 거래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이는 그의 성격이 신중하지 못하고 장자권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약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후 속임수로 야곱이 기도를 가로챘을때 그의 분노는 동생을 죽이려 했다. 자신의 안일함을 남탓한다.

(히 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 12:16)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창 25: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창 25:33) 『야곱이 말하였다. "나에게 맹세부터 하시오." 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맏아들의 권리를 판다고 맹세하였다.』

- 맹세하라 : 하나님의 계획을 인간의 방법 술수로 얻어내려는 불신앙의 모습이다. 이러한 인간의 조급함과 간교함은 야곱이 멀리 떠나야 하는 운명을 암시한다.

→ 인간은 판을 깨고 하나님은 섭리대로 수숩한다.


(창 25: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창 25:34) 『야곱이 빵과 팥죽 얼마를 에서에게 주니, 에서가 먹고 마시고 일어나서 나갔다. 에서는 이와 같이 맏아들의 권리를 가볍게 여겼다.』

- 가볍게 여김 : 신중하게 준비한 야곱과 달리 에서의 욕구는 눈에 보인 감각적 욕구를 선택한다.


[에서의 결혼]

(창 26:34-35)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4-35) 『[34] 에서는 마흔 살이 되는 해에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다. [35] 이 두 여자가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된다.』

- 에서는 아비 이삭처럼 40에 결혼한다. 그러나 그의 결혼은 가나안의 이방인과의 결혼으로 부모의 근심을 준다. 이는 세속적이고 비신앙적이다. 이후 이스마엘 딸과의 결혼 역시 신앙적 관점보다는 현실적으로 부모의 마음을 열기위해 생각해낸 방법이다.


[정리]

① 사냥한 음식이 좋아서 에서를 편애하던 이삭처럼 에서도 배고픔에 대해 집착한다.

② 이삭의 교육부재로 에서의 현실과 감각적 욕구에 집착한다.

③ 리브가의 교육부재로 목표를 갖지 못한다.

④ 에서의 결혼이 현실적이고 부모에게 근심을 주듯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다.

⑤ 에서의 욕구는 현실적이고 감각적으로 부모에게 근심이 되듯 자기 중심적이다.

⑥ 가정의 신앙에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가볍게 여긴다.


 

[에서의 삶의 잘못잡은 포인트]

인생은 운명인가 선택인가?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나?

Q. 에서에 대한 우리의 생각(선입견)?

- 성격 : 가만히 있지 못하는 들사람, 분노가 많다. 복수의 칼을 간다. 무자비할 것같다.

- 장자권 : 가볍게 여긴다. 신앙적이지 못하다. 하나님이 미워한다.


창 27:1-4 이삭이 에서에게 축복기도하려 하다

창 27:5-29 리브가의 엿듣기, 야곱이 축복기도 받다

창 27:30-41 에서의 분노와 살의

창 27:42-28:5 부모의 명을 따라 떠나는 야곱

창 28:6-9 이스마엘 딸과 결혼하다.


[에서에게 축복기도하려는 이삭]

(창 27:1-4)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1-4) 『[1]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어느 날, 맏아들 에서를 불렀다. "나의 아들아." 에서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이삭이 말하였다. "얘야, 보아라, 너의 아버지가 이제는 이제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3] 그러니, 이제 너는 나를 생각해서 사냥할 때에 쓰는 기구들, 곧 화살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서 사냥을 해다가 [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서,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음껏 축복하겠다."』

① 이삭이 나이가 많아 : 야곱의 40세 이후 77세 이전으로, 이삭에게는 100세에서 137세에 일어난 일. 이삭은 26장에서 죽음의 두려움에도 하나님을 만나고 약속을 확인한다. 그러나 27장에서 이삭은 자신이 나이가 많아지고 눈이 어두워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이 생기자 하나님에게 묻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에서편애)대로 에서에게 축복기도를 하려 한다.

②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 에서에게 축복하기 전 ‘자기를 위해’ 사냥을 부탁한다. 그가 아내에게서 야곱이 후계자이고 언약의 계승자가 될 것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축복기도를 하는데 있어 어떤 신앙적 행위나 표현이 나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눈이 어두워지듯 영적인 안목도 희미해지는 듯하다.

③ 이삭의 편애 “내 마음껏” : ‘내 영혼’(나프쉬 יꚄ꘰ꗻ), 영혼 생명 목숨 몸 등.. 에서에 대한 이삭의 편애는 모든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베풀고 싶었다. cf. 야곱에게 모든 축복을 주자 에서에게는 줄 것이 없었다.

④ 에서에게 자격이 있을까? 하나님의 축복대상은 야곱이다,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팔정도로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가볍게 여기고 안일하다. 하나님은 이방여인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

cf. 운명인가, 섭리인가, 선택인가?

장남으로 태어난 것은 운명, 장자권이 동생에게 가는 것은 섭리, 그러한 흐름으로의 선택?


(창 27: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창 27:5) 『이삭이 자기 아들 에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엿들었다. 에서가 무엇인가를 잡아오려고 들로 사냥을 나가자』

→ 이삭의 이야기를 들은 에서는 사냥하러 나간다. 에서의 눈에는 하나님이 아닌 이삭이 보였다.

⇒ 신앙이야기도, 신앙을 표현하는 삶에도 하나님을 빼고 표현할 수 있다.


27:5-17 : 이삭이 에서를 편애하듯 리브가도 야곱을 편애한다. 약속을 이루기 위해 거짓의 방법을 사용한다.

27:18-26 야곱의 거짓연기와 이삭의 속음

27:27-29 야곱에게 축복기도하는 이삭


[에서가 축복받기를 간청하다]

*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창 27:30)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기를 마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 앞에서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하여 돌아온지라』

(창 27:30) 『이삭은 이렇게 야곱에게 축복하여 주었다. 야곱이 아버지 앞에서 막 물러나오는데 사냥하러 나갔던 그의 형 에서가 돌아왔다.』

- 야곱은 급하게 나가고 형에 사냥에서 돌아온다. → 야곱은 굉장히 다급했고, 이삭의 방에서 마주칠뻔한 긴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 별미를 만들어 이삭에게 들어가다

(창 27:31-32)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창 27:31-32) 『[31] 에서도 역시 별미를 만들어서 그것을 들고 자기 아버지 앞에 가서 말하였다. "아버지, 일어나셔서 이 아들이 사냥하여 온 고기를 잡수시고 저에게 마음껏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에서가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 여유롭게 아버지를 부르는 에서 vs 에서에게 축복기도해주었다고 생각하며 편하게 있다가 놀라는 이삭

→ 여기까지 에서의 기분은 좋았을 것이다.


* 다급해진 에서

(창 27:33-34)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창 27:33-34) 『[33] 이삭이 크게 충격을 받고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그렇다면 네가 오기 전에 나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 온 게 누구란 말이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그것을 이미 다 먹고 그에게 축복하였으니 바로 그가 복을 받을 것이다.” [34] 아버지의 말을 들은 에서는 소리치며 울면서, 아버지에게 애원하였다. "저에게 축복하여 주십시오. 아버지, 저에게도 똑같이 복을 빌어 주십시오."』

-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 이삭이 크게 충격을 받고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더듬거렸다.

→ 이삭은 축복을 받으러 온자를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그 결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에 크게 놀란다. 에서가 축복기도를 받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받았을지에 대한 두렵다.

-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 ‘비명에 비명을 지르다’ 차아크(קעצ)

→ 언제나 여유로왔던 에서.. 자신의 것이라 믿고 안일했던 에서.. 전혀 준비가 없었던 에서.. 그러나 모든 것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된 에서는 울며 소리치고 축복을 요구한다.

cf. 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지르지만 이미 하나님의 복은 되돌려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모습은 예수의 천국비유에서 어리석은 다섯처녀(마 25:1-13)를 연상시킨다. 하나님의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에서의 모습이다.

(히 12:15-17)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2:15-17) 『[15]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6] 또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넘긴 에서와 같은 속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7]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에서는 그 뒤에 축복을 상속받기를 원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눈물까지 흘리면서 구하였건만, c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c. 또는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어 놓을 기회를)』


* 야곱을 속이는 자라고 비난하다.

(창 27:35-36)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창 27:35-36) 『[35] 그러나 이삭이 말하였다. "너의 동생이 와서 나를 속이고 네가 받을 복을 가로챘구나." [36] 에서가 말하였다. "그 녀석의 이름이 왜 야곱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이 이번까지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 지난번에는 맏아들의 권리를 저에게서 빼앗았고 이번에는 제가 받을 복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습니까?"』

→ 이삭이 야곱의 속임을 말하자 에서는 야곱의 이름까지 말하며 야곱은 속이는 자로 표현한다. 장자의 명분은 자신이 죽한그릇에 판 것임에도 빼앗았다고 한다. 이번에는 자신의 복도 빼앗았다고 말한다. → 에서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비난의 공식(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남을 비난 → 그러나 스스로를 잘못을 나타낸다.)

① 자신의 안일함과 잘못을 야곱은 속이는 자라고 하며 넘기고 자신은 잘못이 없음을 표현한다.

② 빼앗은 것이기에 전에 것도 이번것도 무효라는 표현을 주장한다.

③ 그러나 결국은 장자의 명분도 축복기도도 이제는 자신에게 없음을 고백한다.

-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 남은 것이라도 없는지 구하지만 이삭은 ‘마음껏’ 축복하여 없다.


* 이삭의 선언과 에서의 다급해짐

(창 27:37-38)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너의 주로 세우고 그의 모든 형제를 내가 그에게 종으로 주었으며 곡식과 포도주를 그에게 주었으니,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38] 에서가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빌 복이 이 하나 뿐이리이까?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하고 소리를 높여 우니』

(창 27:37-38) 『[37] 이삭이 에서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그가 너를 다스리도록 하였고, 그의 모든 친척을 그에게 종으로 주었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느냐?" [38] 에서가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비실 수 있는 복이 어디 그 하나뿐입니까? 저에게도 복을 빌어 주십시오, 아버지!" 이 말을 하면서 에서는 큰 소리로 울었다.』

→ 이삭의 고백 : 하나님이 주신 절대권세로 야곱을 축복하였기에 에서의 ‘주’가 됨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임을 고백한다. “내 아들아, 내가 네게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자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어떤 방법으로도 에서를 축복할 수 없음을 최종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cf. 선포된 하나님의 축복

(롬 8:38-39)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8-39)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에서의 눈물 : 이삭의 선언을 듣고 에서는 크게 울지만 회개의 눈물이 아닌 억울함과 후회와 분노와 원망의 눈물이다.


* 에서를 향해 기도하다.

(창 27:39-40)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하였더라.』

(창 27:39-40) 『[39]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40]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① 에서를 향한 기도는 땅의 축복이 없다. 이 예언은 훗날 에서가 세일산에 가게 되고 그의 후손의 근거지가 되게 된다. 세일산은 팔레스타인 주변에서 가장 거칠고 메마른 땅이다.

② 칼 : 실제로 에서와 에돔족속은 세일산에 성곽을 쌓고 적의 공격을 대비하며, 밖으로는 침략과 약탈을 일삼았다. 이스라엘과 에돔과의 전쟁이야기도 여러번 나온다.(삼상, 삼하, 대하)

③ 실제로 에돔은 다윗에 의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고(삼상8), 솔로몬 말기(왕상11:14)와 유다왕 여호람 때(왕하8:20-22) 저항운동을 일으키기도 하고, 아하스 왕 때(왕하 16:6) 일시적 독립을 이룬 적도 있다. 하지만 에돔은 신구약 중간기 때 요한 힐카누스에 의해 완전히 합병되었고 할례를 강요받아 민족성까지 거의 말살되었다. 후에 예수님의 초림때 헤롯왕은 이처럼 할례를 받아 이스라엘에 병합된 에돔 혈통을 가진 사람이었다.


* 에서의 복수결심 vs 아버지에 대한 사랑

(창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 27:41)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다.』

→ 야곱을 미워하고 그에게 복수할 마음을 갖는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으로 그 복수시점을 잡는다. 그러나 이후로도 오랫동안 살고 180세에 죽는다. 이 상황이 적게는 100세라면 80년이, 많게는 137세라면 43년이 걸릴 것이다.

→ 분노로 표현되는 에서의 상처 : 상처의 기준은 잘잘못에 있지 않고 주관적이다.

-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 복수의 시기를 왜 아버지의 죽음이후로 생각하는가? 축복기도를 빼앗긴후 아버지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한다.

cf.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랐고 그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한다.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들들은 요셉과의 갈등에서 아버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선택한다.

Q. 만약 이삭의 죽음이 예상대로 빨랐다면? 야곱이 라반에게 있을때, 혹은 야곱이 돌아오기 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cf. 함께 장사를 지내다. (에서의 환대로 화해이후)

(창 35: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9) 『이삭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안장하였다.』


창 27:42-45 에서의 말을 들은 리브가는 야곱을 라반에게 보내려 한다.

창 27:46 리브가가 에서의 결혼으로 겪는 어려움으로 이삭을 설득한다.

창 28:1-5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라반에게 보내다.


[이스마엘 딸과 결혼하다]

(창 28:6-9)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창 28:6-9) 『[6]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에서 아내감을 찾게 하였다는 것을 알았다.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복을 빌어 주면서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감을 찾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하였다는 것과, [7] 야곱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여 밧단아람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8] 에서는 자기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사람의 딸들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9] 이미 결혼하여 아내들이 있는데도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 마할랏을 또다시 아내로 맞이하였다. 마할랏은 느바욧의 누이이며 아브라함의 손녀이다.』

- 에서가 본즉 : 지금까지 이삭과 야곱 사이에 되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자세히 관찰하며 보고 있다.

① 에서는 야곱의 속임에도 아버지 이삭이 다시 야곱을 축복하는 것을 본다.

② 이삭과 리브가의 표현들을 듣는다.(이삭의 축복, 리브가의 며느리 비난, 아내감을 찾으라)

③ 야곱이 길을 떠나는 것을 본다.(능히 할 수 있음에도 뒤쫓아 가지 않는다)

④ 가나안 딸들이 아버지에게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래서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한다.

Q. 에서가 ‘본즉’ 상황 속에서 무엇을 느끼는가? 동생에 대한 분노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지금까지 이삭은 에서에게 마음껏 축복하고자 하던 아버지였다. 그런 그가 야곱에게 축복하며 라반에게 보낸다. 에서가 더 원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고 그것마저 잃을까 불안하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얻기 위해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한다?


* 이후의 모습

- 아브라함과 함께 있는 이삭처럼 이삭과 함께 있게 되는 에서

-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이 풀리고 아버지 아브라함의 장례를 같이 하듯 이후 에서도 야곱도 갈등이 풀리고 이삭의 장례를 같이 한다.

(창 25:9)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창 35: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정리]

① 에서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준비가 없고 안일하게 대처하다가 다급해진다.

② 이러한 자신의 과오를 야곱에게 돌리며 상처받는다.

③ 복수의 시기를 이삭의 장례이후로 잡는다.

④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추구한다.

→ 그에게 참으로 불안한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 야곱에게 가는 것..

→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닌 눈에 보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추구한다.

결과 : 야곱은 떠나고 에서는 집에 남는다. cf. 탕자의 비유처럼


 

[에서는 왜 언제부터 야곱을 용서했나? 1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출발

* 에서의 특징 : 이야기를 나눌때 핵심을 못짚으면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핀잔을 듣게 된다. 에서는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핵심을 놓치고 있다. 부모는 야곱에게 라반에게 가서 그의 딸과 결혼을 하라고 했다. 자신의 것을 유지하려는 의지였다. 그러나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이라는 겉으로 보이는 혈연의 모습을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단지 혈연으로만 보면 더욱 가까운 곳이다. 하지만 그의 딸들은 이미 가나안 문화와 신앙을 따르는 자들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는 거리가 멀다. 계속해서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다보니 그 깊은 의미를 놓치고 있다.


[야곱의 자구책]

창 28:10-32:2 야곱의 이야기

창 31:21-55 길르앗산(31:21)에서 라반과의 상호불가침 조약으로 뒤가 위험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야곱에게 문제는 앞으로 만나야할 에서를 어떻게 해야할지...

(창 32:1-2)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1] 야곱이 길을 떠나서 가는데 하나님의 천사들이 야곱 앞에 나타났다. [2] 야곱이 그들을 알아보고 "이곳은 하나님의 진이구나!"하면서 그 곳 이름을 마하나임이라고 하였다.』

→ 야곱의 진행.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고 '마하나임'이라 부르다.

 

* 야곱은 상황판단을 위해 사자를 보내다.

(창 32:3-6)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 32:3-6) 『[3] 야곱이 에돔 벌 세일 땅에 사는 형 에서에게 자기보다 먼저 심부름꾼을 보내면서 [4] 지시하였다. "너희는 나의 형님 에서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여라. 주인의 종 야곱이 이렇게 아룁니다. 저는 그 동안 라반에게 몸붙여 살며 최근까지도 거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5] 저에게는 소와 나귀, 양 떼와 염소 떼, 남종과 여종이 있습니다. 형님께 이렇게 소식을 전하여 드립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6] 심부름꾼들이 에서에게 갔다가 야곱에게 돌아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형님인 에서 어른께 다녀왔습니다. 그분은 지금 부하 사백명을 거느리고 주인 어른을 치려고 이리로 오고 있습니다."』

→ 야곱이 세일 땅에 있는 에서에게 사자를 앞서 보내어 형이 자신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려 한다. 그러나 그가 들은 보고는 형이 4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주인을 치려고) 온다는 말을 듣는다.

Q. 에서는 왜 말을 듣자마자 400인을 거느리고 급하게 서둘러 출발하는가? 호의적인가 적대적인가? 용서했기에 환영하기 위해 vs 분노로 공격하기 위해?


* 야곱의 두려움

(창 32:7-8)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창 32:7-8) 『[7] 야곱은 너무나 두렵고 걱정이 되어서 자기 일행과 양 떼와 소 떼와 낙타 떼를 두 패로 나누었다. [8] 에서가 와서 한 패를 치면 나머지 한 패라도 피하게 해야겠다는 속셈이었다.』

→ 야곱의 두려움은 재산을 두떼로 나누어 보내고 에서가 한떼를 죽이면 자신을 용서하지 않은 것이므로 그 동안 도망칠 생각부터 하게 한다.

cf. 하나님이 야곱에게 돌아가라 했다. 수십년동안 야곱을 가장 부담스럽게 했던 형의 분노문제는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모든 것을 확인 해결하고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에서는 왜 언제부터 야곱을 용서했나? 2] - 하나님의 맞춤작업

* 에서의 용서가 왜 필요한가?

→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출발로 돌아온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할 수 없다.


* 에서는 언제 용서하는가?

① 이미 : 야곱이 나가고 상황이 종결된 뒤에, 눈에 보이지 않으니 감정도 잊는다.

② 분가 : 야곱이 돌아오기전 재산이 너무 많아 세일로 분가할 때부터 → 재산이 많아져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어서 cf. 배부르면 끝이란 식?

③ 소식 :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오래되어 감정을 잊었고 그냥 환대하러 간다. cf. 환대는 당시의 기본적인 예의이다. 동생의 귀환이라 더큰 환대를 위해 400명을 거느리고 급하게 가는 것뿐인데 이것을 보고들은 야곱은 두려워했다?

④ 선물 : 화가 나서 잡으러 가는데 중간중간 선물을 보고 설명도 들으면서 점점 감정이 식는다? cf. 자신의 것을 빼앗은 야곱이 자신에게 주기 때문에?

⑤ 상봉 : 확실하게 용서하지 않았지만 야곱의 절을 받고 서로 안고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해서..

⑥ 계약 : 선물을 받고 상호 계약을 하면서 생각이 나도 참는다? 그러나 에서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 에서는 이미 용서했고 이것을 모르는 야곱은 혼자서 두려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출발하라고 했던 말씀을 야곱이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면서 해결하신다.


* 야곱의 기도

(창 32:9-12)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창 32:9-12) 『[9] 야곱은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10]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 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11] 부디, 저의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 자신의 두려움 vs 하나님의 약속과 인도하심에 대해 기도한다.

→ 야곱의 기도에는 자신의 두려움의 감정을 고백한다.

-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창 31:3)

cf. 라반의 태도가 바뀐 것을 알았을 때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cf. 아내들에게 과정을 설명하면서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 기도후 자구책

Q. 두렵고 도망치려던 야곱이 기도한다. 기도후 하나님의 응답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야곱의 행동이 바뀐다. 도망이 아닌 형에게 향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기도후 아이디어는 에서의 마음을 바꾸게 하는가?

(창 32:13-20) 『[13]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4]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15]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6]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7]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18]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9]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20]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창 32:13-20) 『[13] 그 날 밤에 야곱은 거기에서 묵었다. 야곱은 자기가 가진 것 가운데서 자기의 형 에서에게 줄 선물을 따로 골라 냈다. [14] 암염소 이백 마리와 숫염소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암양 이백 마리와 숫양 스무 마리, [15] 젖을 빨리는 낙타 서른 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마흔 마리와 황소 열 마리, 암나귀 스무 마리와 새끼 나귀 열 마리였다. [16] 야곱은 이것들을 몇 떼로 나누고, 자기의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보다 앞서서 가게 하고, 떼와 떼 사이에 거리를 두게 하라고 일렀다. [17] 야곱은 맨 앞에 선 종에게 지시하였다.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면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가는 이 짐승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18] 너는 그에게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19] 야곱은 둘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셋째 떼를 몰고 떠나는 종과, 나머지 떼를 몰고 떠나는 종들에게도 똑같은 말로 지시하였다. "너희는 에서 형님을 만나거든 그에게 똑같이 말하여야 한다. [20] 그리고 주인의 종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야곱이 이렇게 지시한 데는 자기가 미리 여러 차례 보낸 선물들이 그 형 에서의 분노를 서서히 풀어 주고, 마침내 서로 만날 때에는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주리라는 생각을 하였다.』

* 야곱의 아이디어

① 형에게 가려한다. cf. 두려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② 선물을 골라낸다.

③ 몇 때로 나누고 종들에게 맡겨서 자기보다 앞서서 가게 한다.

④ 떼와 떼 사이는 거리를 둔다.

⑤ 첫 종에게 : 나의 형 에서가 너를 만나면 네가 뉘 집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 길이며, 네가 끌고가는 이 짐승들이 다 누구의 것이냐고 묻거든, [18] 너는 그에게 이것은 모두 주인의 종 야곱의 것인데 야곱이 그 형님 에서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 하고 말하여라.

⑥ 둘째 떼, 셋째 떼, 나머지 떼를 모는 종에게도 똑같은 말을 지시한다.

⑦ 여러차례의 선물들을 보면 그 형의 분노가 서서히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 특징 : 기도 전에는 떼로 나누어 도망칠 방법부터 생각했던 야곱이 기도후에는 선물을 통해 형의 분노를 풀어주고 형을 만나려고 한다. → 기도가 마음을 바꿨다.

Q. 선물을 보면 화가 풀릴 것이라는 판단은 기도의 응답인가, 자신의 계책인가?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더 추구하는 사람임을 강조하는 것인가?

- 나를 받으리라 : ‘그가 나의 얼굴을 들어 올릴 것이다’ 곧 용서하고 죄인의 위치에서 회복시킬 것을 기대한다는 의미

∴→ 야곱의 잘못된 방향 :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는 회개하려 하지 않고 에서의 마음만 덮으려 한다. 형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속을 못보게 한다.

∴→ 한번의 기도가 모든 것을 바꾸지 않았다. 그때그때 단계별로 변해가는 야곱을 본다. 정말 자신을 보고 반성까지 가는 것은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일이고 그 만남이 최종 해결인 에서에게로 나가게 한다.


* 야곱이 기다리는 것은? 에서의 변심인가 자신의 두려움 해결인가?

(창 32:21-24) 『[21]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 32:21-24) 『[21] 그래서 야곱은 선물을 실은 떼를 앞세워서 보내고, 자기는 그 날 밤에 장막에서 묵었다. [22] 그 밤에 야곱은 일어나서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데리고, 얍복 나루를 건넜다. [23] 야곱은 이렇게 식구들을 인도하여 개울을 건너 보내고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도 건너 보내고 난 다음에, [24]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분이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

→ 에서의 분노를 가라앉힐 목적으로 모든 것을 보내고 홀로 남는 야곱.

→ 만약 에서의 용서를 하다고 했다면 그 종들이 바로 보고했을텐데 밤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는다. 정황을 알 수 없는 그는 더욱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창 32:24-32 야곱의 밤샘 씨름, 야곱은 이스라엘로․그곳을 브니엘로 개명, 환도뼈로 인해 절다.

→ 얍복나루는 그 두려움에 가득한 야곱이 자신을 보고 천사와 씨름하고 자신에게 축복해 달라는 곳이다.


[야곱과 에서의 상봉]

(창 33:1-3) 『[1] 야곱이 눈을 들어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창 33:1-3) 『[1] 야곱이 고개를 들어 보니, 에서가 장정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다. 야곱은 아이들을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나누어서 맡기고, [2]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은 앞에 세우고,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은 그 뒤에 세우고, 라헬과 요셉은 맨 뒤에 세워서 따라오게 하였다. [3] 야곱은 맨 앞으로 나가서 형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 드디어 아침이다. 눈을 들어보니 야곱 앞에는 에서와 400명의 장정이 오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야곱은 결심을 했어도 다시 두렵고 도망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절고 있고 이제는 도망도 갈 수 없게 되었다.

→ 두 여종과 그의 아들들을 맨 앞에, 다음 레아와 아들들, 맨 뒤에 라헬과 요셉

⇒ cf. 얍복나루에서 축복을 받고 이스라엘로 개명이 되어도 편애의 습성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 야곱 자신은 가족들 앞에 나가서 형에게 가다.

⇒ cf. 두떼로 나누어 도망치려던 그가, 기도후 형에게 가려 하고, 얍복나루 이후 더욱 담대해진다.(하나님은 끊임없이 야곱과 함께 하고 그를 만난다.)

→ 형에게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한다.

⇒ 지금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고 덮으려던 야곱이 형에게 용서와 화해의 절을 한다.

(마 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다가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한 신도가 내게 죄를 지을 경우에,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22]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해야 한다.』

(눅 17: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1-4)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죄짓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죄짓게 하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2]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죄짓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다른 제자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 주어라. [4] 그가 네게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서 회개한다고 하면, 너는 용서해 주어야 한다."』


[에서의 환대]

(창 33: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창 33:4) 『그러자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았다. 에서는 두 팔을 벌려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서, 입을 맞추고 둘은 함께 울었다.』

→ 에서가 본 것은 절하고 있는 야곱

→ 에서의 행동 : 달려간다, 얼싸안는다, 서로 목을 교차한다, 입을 맞춘다, 서로 운다.

cf. 야곱도 울지만 에서도 울었다. 그가 느낀 감정은 이미 용서는 했으나 카타르시스를 통해 더욱 분명히 경험하는 것인가?

⇒ 4개의 동사는 에서가 주도적으로, 마지막 하나는 서로 같이

Q. 야곱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밤새 달려왔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급하게 달려 왔을까? 이미 용서하고 환대하기 위해 왔을까? 아니면 잡으러 오는데 야곱의 절을 보고 마음이 녹은 것인가?

Q. 라반과 에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라반에게 하나님은 아무말 말라는 말씀하셨다. 에서에게도 그러한 말씀을 주셨을까? 그러한 이야기는 에서에게서 들을 수 없다. 오로지 인간적인 환대의 반응만 있다. 라반도 하나님이 마음과 상황을 바꾸셨다면 에서도 역시 그렇다는 결론인가?

cf. 라반의 환대가 당시의 풍습이듯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을 듣고 급히 가는 것은 환대에 속한다. 이미 용서했다면 더욱 공격이 아닌 환대이다.


(창 33: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창 33:5) 『에서가 고개를 들어 여인들과 아이들을 보면서 물었다. "네가 데리고 온 이 사람들은 누구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이것들은 하나님이 형님의 못난 아우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입니다."』

→ 에서의 행동 : 눈을 들다, 야곱의 가족을 본다, 묻는다.

→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 야곱의 두려움은 가족까지 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에서의 반응은 용서의 반응이다.


* 가족들 절하기

(창 33:6-7)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창 33:6-7) 『[6] 그러자 두 여종과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7] 다음에는 레아와 그에게서 난 아이들이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 절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셉과 라헬이 나와서 그들도 엎드려 절을 하였다.』

→ 이제 부인들과 자녀들이 인사한다.


[정리]

① 야곱은 남의 것을 뺏으려 하는 자에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자로

② 에서는 자신의 것을 뺏기려 하지 않는 자에서 넉넉한 마음으로

③ 야곱은 점점 하나님을 만나가지만 에서는 전혀 하나님의 무관한 삶을 살았다.

④ 성경의 내용은 에서의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과점으로 기록되어 있다.

⑤ 에서의 용서의 마음과정은 없다. 다만 용서와 화해만 있을 뿐이다.


[에서-하나님없는 안내자]

* 도망가려던 야곱이 기도후 적극적으로 바뀌고, 얍복나루에서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하며 하나님과 만난다. 에서와 만나 절한 후 함께 눈물을 흘린다.

* 에서는 야곱의 귀환소식을 듣고 달려오고, 오면서 야곱의 떼를 본다. 야곱을 만나서는 다가가서 함께 울고 가족들의 절을 받는다.

→ 화해의 자리까지와 이후에도 야곱은 야곱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산다.

* 이제 에서는 야곱을 어떻게 하는가?


[에서의 반응과 야곱의 부탁]

- 어느정도 상황에서 감정이 정리된 후 에서가 묻는다.

(창 33:8-9)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창 33:8-9) 『[8] 에서가 물었다. "내가 오는 길에 만난 가축 떼는 모두 웬 것이냐?" 야곱이 대답하였다. "형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 에서의 물음은 야곱의 짐승의 떼가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부를 모을 수가 있었느냐’는 질문이다. cf. 여전히 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나?

-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 "형님께 은혜를 입고 싶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 직역 ‘내 주의 눈들 안에서 은혜를 찾아 내려고 합니다’

→ 찾다(마차(אצמ)는 발견하다, 얻다), 눈(아인(ןיע)은 단순한 ‘눈’이 아닌 ‘마음’이라는 의미)

→ 고대 근동에서 눈은 단순히 보는 기능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여러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통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 15:9)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신 15:9) 『너희는 삼가서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아라. 빚을 면제하여 주는 해인 일곱째 해가 가까이 왔다고 해서, a인색한 마음으로 가난한 친족을 냉대하며, 아무것도 꾸어 주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가 너희를 걸어 주께 호소하면 너희가 죄인이 될 것이다. (a. 히,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며)』

(잠 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잠 6:17) 『교만한 눈과 거짓말하는 혀와 무죄한 사람을 피 흘리게 하는 손과』

(시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시 18:28)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내 등불을 밝히십니다. 주 나의 하나님은 어둠을 밝히십니다.』

cf. 고대 근동사회에서 예물은 주로 상호간의 우호 및 화해의 증표로 사용된다. 따라서 흔쾌히 받으면 화해 친선관계가 형성되는 것이고, 거절하면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곧 야곱이 형에게 예물을 부는 것은 단순한 환심이 아니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화해관계를 맺으려는 의도가 있다. cf. 라반과의 상호불가침조약처럼


(창 33: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창 33:9) 『에서가 말하였다. "아우야, 나는 넉넉하다. 너의 것은 네가 가져라"』

- 족하다 : 라브(בר) 증가하다, 늘어나다, 넘치다. → 야곱의 예물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자신의 재산은 충분하다는 의미

cf. 지금까지 야곱은 에서의 것을 빼앗는 동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것을 주려고 한다.

cf. 에서는 자기 것을 빼앗아 간 것에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은 재물에 대해 초월한가? 자신의 것이 많기에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다는 것인가? 배고플 때는 다른 것이 필요없다며 팥죽만 요구했었다.

- 네 소유는 네게 두라 : 명령이 아닌 부탁의 의미, 곧 거절이 아닌 사양을 하지만 11절에 야곱의 강권에 받아들이게 된다.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창 33:10) 『야곱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형님, 형님께서 저를 좋게 보시면, 제가 드리는 이 선물을 받아 주십시오. 형님께서 저를 이렇게 너그럽게 맞아 주시니, 형님의 얼굴을 뵙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듯 합니다』

-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 ‘제발 그러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애원의 의미로 야곱은 극도로 겸손한 태도로 사양하는 에서에게 재차 부탁한다.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 야곱은 에서의 얼굴을 보았을 때 복수의 분노로 가득할 그의 얼굴에서 자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바뀐 것에 대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다. 죽음의 얼굴이었을 그 얼굴을 보고도 살아났다는 기쁨과 감격을 고백한다. 얍복나루에서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은 것처럼..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2:30)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하면서 그 곳 이름을 c브니엘이라고 하였다. (c. 하나님의 얼굴)』

-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 야곱이 느끼기에 에서는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기뻐했음을 보여준다. 곧 하나님의 감동으로 형에게는 분노를 기쁨으로, 자신에게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자신을 살리는 해소로 보인 것이다.


(창 33: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창 33:11) 『하나님이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므로 제가 가진 것도 이렇게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형님께 가지고 온 이 선물을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간곡히 권하므로 에서는 그 선물을 받았다.』

- 내 소유도 족하오니 → 에서도 자신의 재물이 풍족하다고 하지만 야곱도 자신의 소유가 풍족하다고 한다. 다만 풍족의 근거를 야곱은 하나님에게서 두고 에서는 그렇지 않다.

- 강권하매 : 파차르(רצפ) 촉구하다, 재촉하다. → 야곱은 자신이 준비한 예물을 에서가 받도록


cf. 은혜(헨 ןח) - 8절에 나오는 ‘은혜’와 10절에 나오는 ‘은혜’는 결과적으로 같은 하나님으로 인한 은혜가 된다. 11절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상황과 과정과 그 안에 핵심인 형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볼 정도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고백한다. 곧 야곱의 권유는 화해의 표시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한다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려는 것..

→ 성화적 표현인가 고백인가? 우리도 삶에서 은혜의 고백이 되는가? ex) 어린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라.


[에서는 세일로, 야곱은 세겜으로]

Q. 에서는 야곱과 동행하려 한다. 에서는 이미 분노가 사라졌고 호의를 베풀려 한다. 과연 그 호의는 야곱에게 필요한 것인가?

(창 33:12-14)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13]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도 아시거니와 자식들은 연약하고 내게 있는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은즉 하루만 지나치게 몰면 모든 떼가 죽으리니 [14] 청하건대 내 주는 종보다 앞서 가소서. 나는 앞에 가는 가축과 자식들의 걸음대로 천천히 인도하여 세일로 가서 내 주께 나아가리이다.”』

(창 33:12-14) 『[12] 에서가 말하였다. "자, 이제 갈 길을 서두르자. 내가 앞장을 서마. " [13]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형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아이들이 아직 어립니다. 또 저는 새끼 딸린 양 떼와 소 떼를 돌봐야 합니다. 하루만이라도 지나치게 빨리 몰고 가면 다 죽습니다. [14] 형님께서는 이 아우보다 앞서서 떠나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저는 앞에 가는 이 가축 떼와 아이들을 이끌고 그들의 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세일로 가서, 형님께 나가겠습니다."』

→ 에서는 세일로 함께 가기를 바란다. 400명의 군사로 호위하겠다고 한다.

① 무엇이 에서를 이렇게 바뀌게 했을까? 잠시 감정적으로 좋았다가 나중에 분노를 회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성경은 함께 이삭의 장례식을 하며 약속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② 야곱은 지나치게 몰면 죽는다며 사양한다. 왜? 그의 최종 목적지는 세일이 아닌 이삭이 사는 헤브론이다. 다만 세일로 가겠다고 말은 헤브론에 정착하고 세일에 방문하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후 만남은 장례식뿐.

(창 31: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창 31:18) 『그가 얻은 모든 짐승과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이다.』


개역(창 33:12) 『에서가 가로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의 앞잡이가 되리라』

ꃨ 너의 앞잡이(*, 레네게데카) - '...에게'를 뜻하는 전치사 '레'와 '...앞에'를 나타내는 '네게드'에 2인칭 접미어가 합쳐진 말로 '네 앞서'(KJV ; before you)란 뜻이다. 즉 에서는 야곱의 길 안내자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다. 그러나 미크(Meek) 같은 학자는 이를 '...의 곁에서'(alongside)로도 주장하였다. 이것은 격정의 순간이 지나고 이제 차분한 상태로 돌아오자 형 에서가 동생에게 호위와 인도를 친절히 제의한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정중히 이 호의를 사양하였는데 그 이유는 (1)에서의 훈련된 군대와 유약한 자기 일행의 진행 속도가 맞지 않았고 (2)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달랐으며 (3)인간적인 정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삶의 목표 및 자세에 있어서는 도저히 형의 방식을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곱은 형 에서와 사이좋고 평화롭게 헤어지기를 바란다.


 

Q. 에서는 언제 세일로 갔을까? 야곱이 귀향할 때 이삭은 여전히 헤브론에 있다.

(창 36:6-8)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창 36:6-8) 『[6] 에서는 아내들과 아들들과 딸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집짐승과 또 다른 짐승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모든 재산을 이끌고, 아우 야곱과는 좀 떨어진 다른 곳으로 갔다. [7] 두 사람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함께 살 수 없었다. 그들은 특히 집짐승이 많아서 거기에서 그대로 살 수 없었다. [8] 그래서 에서 곧 에돔은 세일 산에 자리를 잡았다.』

→ 부하게 된 에서는 야곱이 돌아오기전 세일로 떠난다.


(창 33:15)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 야곱이 이르되 “어찌하여 그리하리이까?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하매』

(창 33:15) 『에서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나의 부하 몇을 너와 같이 가게 하겠다." 야곱이 말하였다.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형님께서 저를 너그럽게 맞아 주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 여전히 동생을 보호하려는 에서의 마음이 있다.

- 나로 내 주께 은혜를 얻게 하소서 : 지금까지의 은혜로도 과분하다는 의미


(창 33:16-17) 『[16] 이 날에 에서는 세일로 돌아가고 [17]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창 33:16-17) 『[16] 그 날로 에서는 길을 떠나 세일로 돌아갔고, [17] 야곱은 a숙곳으로 갔다. 거기에서 야곱은 자기들이 살 집과 짐승이 바람을 피할 우리를 지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이 숙곳이 되었다. (a. 초막)』

→ 세일로 가는 에서 : 약속의 땅 가나안에 거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길을 감으로 구속사에서 사라지는 뒷모습이다.

(수 24:4)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를 주었고 에서에게는 세일 산을 소유로 주었으나 야곱과 그의 자손들은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이삭의 장례식]

(창 35:27-29)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7-29) 『[27]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이다. [28] 이삭의 나이는 백여든 살이었다. [29] 이삭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안장하였다.』


창 36:1-43 에서의 계보


[정리]

언약의 아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① 하나님이 없는 삶의 에서 vs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는 야곱

②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에서 vs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야곱

③ 인간적 호의를 베푸는 에서 vs 하나님이 가는 길을 가려는 야곱

→ 야곱에게 참 인도자(앞잡이)는 하나님이다.

④ 구속사에서 사라지는 에서 vs 야곱의 하나님을 따라 가는 야곱



:

성경인물 14. 라반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6. 16. 16:23

겉과 속이 다르다? 사람을 겉만 보고 알 수 있을까?


라반 : ןבל, 희다

창 24:28-60 리브가의 혼담

창 27:42-28:5 야곱의 도피와 라반에게 가는 이유

창 29:1-30 야곱의 도착과 결혼

창 30:25-43 야곱과 라반의 품삯계약과 야곱의 번성

창 31:1-55 야곱의 귀향과 라반의 추격과 계약


[리브가의 혼담에서 예의밝은 라반]

(창 24:28-29) 『[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29]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창 24:28-29) 『[28] 소녀가 달려가서 어머니 집 식구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29] 리브가에는 라반이라고 하는 오라버니가 있는데 그가 우물가에 있는 그 노인에게 급히 달려왔다.』

→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고 종이 친족에게 간다.(24:1-9), 종이 리브가를 만나다.(24:10-27)

→ 리브가는 이 과정을 어머니와 라반에게 알린다.

- 달려가서 : 루츠(ץור), 달음박질하다, 빠르다. →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서둘러 뛰다.

① 종 : 리브가를 발견하고 달려간다.

(창 24: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② 리브가 : 어머니에에게 달려간다.

③ 라반 : 우물가에 있는 종에게 달려간다.


Q. 라반은 왜 마을 밖 우물가에 있는 아브라함의 종을 향해 달려갔을까?

⇒ 보고 들었다.

(창 24:30)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고리를 보고 또 그의 누이 리브가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이같이 말하더라 함을 듣고 그 사람에게로 나아감이라. 그 때에 그가 우물가 낙타 곁에 서 있더라』

(창 24:30) 『그는 자기 동생이 코걸이와 팔찌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노인이 누이에게 한 말을 누이에게서 전해 듣고, 곧 바로 달려 나와서 우물가에 낙타와 함께 있는 노인을 만났다.』

→ 라반이 본 것은? 누이에게 있는 코걸이와 손목고리(근동 여성들의 주요 장식품)

(창 24:22) 『낙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 무게의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 라반이 들은 것은? 종이 누이에게 한 말들을 전해 듣다. (창 24:23-27)

[23] “네가 누구의 딸이냐? 청하건대 내게 말하라. 네 아버지의 집에 우리가 유숙할 곳이 있느냐?

[24]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25] “우리에게 짚과 사료가 족하며 유숙할 곳도 있나이다.”

[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 라반의 환대(31-33)

(창 24:31) 『라반이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 어찌 밖에 서 있나이까?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창 24:31)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서 들어가시지요. 할아버지는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어찌하여 여기 바깥에 서 계십니까? 방이 준비되어 있고, 낙타를 둘 곳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Q. 라반은 여호와신앙을 갖고 있었을까?

① 그에게는 가족신이 있었다.

(창 31: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② 다른 집안의 신을 인정해주었거나 이미 들었다?

③ 리브가의 이야기를 듣고서..

(창 24: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④ 예의가 있는 인사법을 위해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였다.

- 내가 방과 낙타의 처소를 준비하였나이다.

① 자신의 종들에게 준비시키고 자신은 급하게 마을 밖 우물가에 있는 아브라함의 종에게 간다.

② 당시 유목사회에서는 낯선 나그네라도 친절하게 접대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는 자기 가문의 위상을 과시하는 것이며 좋은 평판을 얻는 기회를 였다.

cf. 아브라함의 환대 : 18:1-21 세사람

③ 라반의 의도있는 초대 : 라반은 리브가가 받은 선물을 통해 이미 그 종이 혼담을 위해 왔음을 알고 있고, 리브가에게 준 선물을 보면서 아브라함의 재산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창세기에서 라반은 이렇게 물질에 반응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린다.)


(창 24:32-33) 『[32] 그 사람이 그 집으로 들어가매 라반이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사람의 발과 그의 동행자들의 발 씻을 물을 주고 [33]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그 사람이 이르되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창 24:32-33) 『[32] 노인은 그 집으로 들어갔다. 라반은 낙타의 짐을 부리고, 낙타에게 겨와 여물을 주고, 노인과 그의 동행자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었다. [33] 그런 다음에 노인에게 밥상을 차려 드렸다.』

- 그의 동행자들 : 아브라함의 종과 함께 수행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 발 씻을 물을 주고 : 먼지가 많고 건조한 중근동 지역은 샌달을 신었기에 나그네와 손님에게 발씻을 물을 제공하는 것은 손님대접의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다.

- 낙타의 짐을 부리고 짚과 사료를 낙타에게 주고, 그 앞에 음식을 베푸니 : 손님에 대한 대접함에 최선을 다한다.

cf. 라반의 예의적 행동을 보면 리브가의 예의(24:61-67)도 가족적 분위기로 이해된다.


* 예의를 강조하는 라반 vs 결례에도 자신의 일을 말하려는 종

- 내가 내 일을 진술하기 전에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

→ 먼길을 여행한 종에게 휴식은 필요하다. 휴식뒤에 혼담을 꺼내도 늦지 않다. 게다가 당시 중근동 지역에서 주인의 접대를 받기 전에 방문목적을 밝히기는 것은 결례였다. 종도 그것을 모를리 없었다. 하지만 종은 결례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하나님의 명령으로 주어진 거룩한 사역에 대해, 자기가 누구이며 왜 왔는지 먼저 밝히고자 했다.

- 라반이 이르되 “말하소서.”

∵→ 예의를 중요시 여기는 라반에게 종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왜 막지 않고 허락했을까?

→ 이후 라반의 환대는 계속된다. 야곱에게도 역시 환대한다.


* 창 24:34-49 종의 이야기, 종은 하나님이 예비하심을 확신하고, 기도와 응답에 대해서도 확신한다. 그러면서 결정을 촉구한다.

(창 24:48-49) 『[48] 내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의 주인의 동생의 딸을 그의 아들을 위하여 택하게 하셨으므로 내가 머리를 숙여 그에게 경배하고 찬송하였나이다. [49] 이제 당신들이 인자함과 진실함으로 내 주인을 대접하려거든 내게 알게 해 주시고 그렇지 아니할지라도 내게 알게 해 주셔서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


* 라반의 허락

(창 24:50-51)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1]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 24:50-51)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 [51] 여기에 리브가가 있으니 데리고 가서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주인 아들의 아내로 삼으십시오."』

-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 → 계속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한다.

- 가부를 : 종의 ‘내가 우로든지 좌로든지 행하게 하소서’는 요청에 대해 ‘좋고 나쁨, 선과 악’으로 대답한다.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  겉으로는 선택할 수 없다고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한다. → 계속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어서 나온다. 실제로는 허락한다.

cf. 라반의 대화 방법 :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말하고 라반도 그렇게 이야기함으로서 번벅할 수 없게 한다. 상대는 먼저 취소할 수 없다.

- 하나님의 명령 : 라반이 명령으로 받아들였기 보다는 자신의 허락을 상대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cf. 아내가 되게 하라 : 리브가의 동의없이 혼사가 결정된 것은 여자의 결혼문제는 집안이나 가문의 남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당시의 관습때문이다.


* 종의 반응

(창 24:52-54) 『[52]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여호와께 절하고 [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54]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창 24:52-54) 『[52]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 땅에 엎드려 주께 경배하고, [53] 금은 패물과 옷 가지들을 꺼내서 리브가에게 주었다. 그는 또 값나가는 선물을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주었다. [54] 종과 그 일행은 비로소 먹고 마시고, 그 날 밤을 거기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에 모두 일어났을 때에 아브라함의 종이 말하였다. "이제 주인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떠나게 해주십시오."』

→ 종은 바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패물을 리브가에게 보물은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 준다.

→ 혼담이 이루어지고서야 종은 식사와 휴식을 한다. 그러나 빨리 수행하고자 하는 그는 다음날 출발하려 한다.


* 라반의 지연

(창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창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저 애를 다만 며칠이라도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있다가 떠나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 동생과 이별의 시간을 요청한다.

cf. 라반의 특징인가? 야곱을 결혼을 통해 묶어두려 하고, 야곱이 떠날 때 쫓아간다.


* 종의 완고함

(창 24:56) 『그 사람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만류하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내게 형통한 길을 주셨으니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창 24:56) 『그러나 아브라함의 종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를 더 붙잡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미 저의 여행을 형통하게 하셨으니 제가 여기에서 떠나서 저의 주인에게로 갈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종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형통을 이야기한다. 라반은 상대의 표현을 사용하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으나 이부분은 자신의 의견과 반대이다.

Q. 이럴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 라반의 방법-자기가 결정하지 않는다.

(창 24:57)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소녀를 불러 그에게 물으리라” 하고』

(창 24:57) 『그들이 말하였다. "아이를 불러다가 물어 봅시다."』

→ 라반의 의도는 리브가가 며칠 있겠다고 하면 그 종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창 24: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 24: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 그런데 라반의 예상과는 달리 리브가는 떠나겠다 한다. 이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결과이다.


* 리브가의 결혼과 라반의 축복

(창 24:59-60)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창 24:59-60) 『[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cf. 야곱과의 비교

→ 이삭은 종이 대신하지만 야곱은 상황상 자신이 직접 간다.

(창 29:9-14)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 공통점 : 라헬과 우물가에서 만나다. 라헬이 아비에게 달려가서 알리다. 라반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다. 환대하며 집으로 인도한다. 야곱이 자기의 일을 말한다. 자기집에 머물게 하다.


* 정리-라반의 특징?

→ 리브가의 이야기를 들고 선물을 보자 급히 달려가는 라반, 예의를 강조하는 라반, 결례를 행하며 과정을 설명하는 종,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의 표현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라반, 아침 일찍 출발하려하며 통상적인 과정을 건너뛰는 종, 결정을 동생에게 맡기는 라반, 그러나 리브가는 떠나기로 결정한다.


① 예의에 대해 밝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② 머물게 하고 지연시킨다.-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③ 결정에 대해 상대의 표현을 사용한다. 자신이 결정권자임에도 결정적인 부분에서 자신의 결정을 접고, 자신의 결정대로 되지 않게 되어도 거기에 끌려간다.

④ ⇒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라반의 근로고용계약과 파기]


* 혼담속에서 라반은?

① 환대하는 예의를 보이지만 속(의도)을 드러내지 않는다.

② 머물게 하고 지연시킨다.

③ 결정함에 있어 상대의 표현을 사용한다.

④ 자신이 결정권자임에도 분명한 결정을 하지 않고 타인이 결정하게 한다.


라반 : ןבל, 희다

창 24:28-60 리브가의 혼담

창 27:42-28:5 야곱의 도피와 라반에게 가는 이유

창 29:1-30 야곱의 도착과 결혼

창 30:25-43 야곱과 라반의 품삯계약과 야곱의 번성

창 31:1-55 야곱의 귀향과 라반의 추격과 계약


* 야곱의 도피 배경과 과정

창 27:42-46 축복기도를 가로챈 후 리브가는 야곱을 라반에게 가게 한다.

창 28:1-5 이삭도 야곱을 불러 라반의 딸과 결혼하라 한다.

창 28:6-9 에서는 이스마엘의 딸과 결혼한다.

창 28:10-22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한다.

창 29:1-8 야곱이 도착하고, 사람들에게 라반에 대해 물어본다.

창 29:9-15 라헬을 만나고 라반의 집에 기거한다.

창 29:16-20 라헬과 연애하며 7년을 봉사한다.

창 29:21-30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다


[야곱의 도착과 라반의 환대]

(창 29: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창 29:9)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고 있는 사이에 라헬이 아버지의 양 떼를 이끌고 왔다. 라헬은 양 떼를 치는 목동이었다.』

→ 야곱이 지역목자들과 양에게 물을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라헬이 양을 몰고 온다.

cf. 리브가가 물을 뜨러 오다 아브라함의 종의 요청에 적극적으로 낙타들에게 물을 먹인다. 라헬도 양을 몰고와서 물을 먹이는 적극적인 활동성을 보인다. → 야곱이 라헬을 첫눈에 반하는 이유는 어머니 리브가를 닮아서 일까?


(창 29: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창 29:10)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가 치는 양 떼를 보고는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어 외삼촌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 야곱은 라헬을 보았고 우물의 뚜껑을 옮겨 물을 먹인다. cf. 리브가가 낙타에게 물을 먹이듯 야곱이 도와준다. 야곱의 적극적 행위는 무엇인가?

→ 야곱이 부인이 될 라헬을 만나고 라반에게로 갈 수 있는 과정이 수월했던 것같이 보인다. cf. 아브라함의 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수월하게 만난다. 둘다 먼길을 왔고 얼굴을 모른다.


(창 29: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창 29:11) 『그러고 나서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기쁜 나머지 큰소리로 울면서』

→ 야곱의 눈물 : 먼길을 온 뒤 친인척을 만나서 기뻐서, 이 과정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격해서..


(창 29: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창 29:12) 『라헬의 아버지가 자기의 외삼촌이라는 것과, 자기가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라헬에게 말하였다. 라헬이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다.』

→ 야곱이 라헬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한다.

→ 라헬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서 알린다. : 라반에게 가서 알리기까지는 다소 거리가 있었을 텐데 이는 라헬의 적극성이 보인다. cf. 어머니와 라반에게 알리던 리브가의 모습과 같다.


(창 29: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창 29:13) 『라반은 누이의 아들 야곱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그를 만나러 곧장 달려와, 그를 보자 마자 껴안고서 입을 맞추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야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라반에게 다 말하였다.』

→ 라반의 적극적인 환대 : 아직 라반은 야곱이 여동생 리브가의 아들인 것만 알고 있고, 자신의 익숙한 모습대로 손님을 달려와서 환대한다. cf. 아브라함의 종을 대하던 모습과 같다.

→ 집에 들어온 야곱은 ‘자신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한다. cf. 아브라함의 종도 모든 것을 말했다.

Q. 야곱은 어느 것까지 말했을까? 자신의 입장에서 말했으리라.

→ 야곱은 자신을 정답게 맞아주는 라반에게 경계의 자세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해 자세히 말함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했으리라. 리브가의 아들이란 사실과 축복기도 때문에 오게 되고, 라반의 딸에게서 아내를 얻는 이야기와, 800km의 먼거리를 홀로 와야 했던 과정까지 자기 입장에서 이야기함으로, 얼마간 그 집에 있어야 표현했으리라.


(창 29: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 29:14) 『말을 듣고 난 라반은 야곱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와 한 피붙이이다." 야곱이 한 달을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 야곱은 라반에게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키고자 열심으로 자신과 자기 가정을 소개했을 것이고,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여동생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한다.


[라반과 야곱의 근로고용계약]

(창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 29:15)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

→ 한달이 지나고 라반은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라반이 아는 유리한 조건은?

① 야곱이 쉽게 가지 않을 것을 안다. (에서의 흥분을 들었다.)

② 야곱은 갈 곳이 없다. (리브가가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

③ 야곱이 라헬을 좋아한다.

④ ⇒ 야곱은 계속 자신과 있어야하는 데릴사위이다.

-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① 라반의 의도 : 근로고용계약을 체결하려 한다.

② 관계재정립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 주인과 종의 관계로

③ 품삯방식을 정하라 한다. : 배려인것처럼 보이지만 라반의 대화방식이다.

④ ⇒ 라반의 제안은 호의적으로 보이나 정당한 임금을 주려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고 정당하면서도 파기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물질적 욕심이 앞선 제안이다.

⑤ ∴ 야곱은 라반에 대해 아직 모른다. 처음 맺는 계약으로 라반을 신뢰한다. 그러나 이후 일방적인 파기는 계속된다.

cf.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창 31:41) 『저는 장인 어른의 집에서 스무 해를 한결같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두 따님을 저의 처로 삼느라고, 십 년 하고도 사 년을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렸고 지난 여섯 해 동안은 장인 어른의 일을 양 떼를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장인께서는 저에게 주셔야 할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셨습니다.』

→ 20년 중에 14년 안에 1번, 남은 6년동안 9번.

Q. 라반은 부유한가? 라반은 고용댓가를 지불할 의도가 있는가?

→ 라헬이 양을 친다. 한달을 있으면서 야곱도 그를 도와준다. 노동력을 확보하려 한다.

→ 아브라함의 종이 왔을 때 예물을 보는 모습은 물질에 민감함이 있음을 보인다.

→ 이후 야곱을 통해 부유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 공식적으로 라반과 야곱은 고용인과 근로자 관계가 되고, 라반은 무임금 노동자를 확보하였고, 이후 일방적인 계약파기는 계속된다.


* 야곱이 원하는 댓가

(창 29:16-17)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6-17) 『[16]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맏딸의 이름은 레아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라헬이다. [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 레아는 라반의 맏딸로 집안의 온갖 힘든 가사를 도맡아 하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여성이었고, 라헬은 적극적으로 양을 치는 라반에게 노동력이 되었다.

-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 시력이 좋지 않다는 뜻이나 눈동자의 눈빛이 흐리다는 의미 → 레아의 외적 조건이 치명적인 약점이었음을 나타낸다.

cf. 야곱이 레아를 선택하지 않는 것이 시력이 약해서라고 한다. 야곱이 이곳에 오게된 것은 이삭의 시력이 어두워졌고 그로 인한 과정이 이삭에게 외상이 되었기 때문일까?

-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 야곱의 선택은 외적 아름다움에 있었음을 보인다.


(창 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 29:18)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가 칠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그 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 야곱의 근로계약조건 : 지참금이 없는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7년이란 엄청난 댓가로 무보수 노동을 작정한다. 이렇게 상식 이상의 제안을 한 것은 라헬과 꼭 결혼하고픈 야곱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근로고용계약체결

(창 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 29:19) 『그러자 라반이 말하였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는 것보다, 너에게 짝지어 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 나으니(더 낫겠다) : 좋으니, 라반은 야곱의 너무나 후한 계약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 나와 함께 있으라 : 계약체결로 이제 야곱은 공식적으로 라반의 집에 있게 되었다. 라반은 결혼을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는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며칠같이 느꼈다.』

-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불리한 조건에도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곱은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


[라반의 일방적인 계약파기]

(창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 29:21) 『칠 년이 지난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

- 내 기한이 찼으니 : 근로고용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알린다.

-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 7년이 지났음에도 라반이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능동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창 29: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창 29:22) 『라반이 그 고장 사람들을 다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 라반은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 사람들을 모으고 잔치를 연다. 하지만 겉과 달리 자신의 의도를 철저히 숨긴다. 라헬대신 레아를 들여보낸다.

-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 결혼에 사람을 부르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라반은 야곱이 레아와 공식적인 결혼을 한 것으로 만듦으로 야곱이 거부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이때까지 라반은 계약 파기에 대한 아무런 예고도 없다.

- 잔치 : 고대 중근동 사람들의 결혼잔치는 보통 1주간이며 이 경비는 대개 신랑측에서 부담한다.


(창 29: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 29:23) 『밤이 되었을 때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데려다가 신방으로 들여보냈는데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레아와 동침하였다.』

- 직역 : “그러자 그 저녁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딸 레아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그에게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 야곱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긴박감있게 표현하고 있고, 라반은 아무런 방해 없이 순조롭게 자신이 하려는 대로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 데려가매 : 라반이 주체로 이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야곱과의 약속을 어기고 신부를 바꾸어 신방에 들어가게 한다. 라반은 상대의 수고를 자신의 임의대로 헛수고로 만든다. 정식으로 말하기 보다는 엎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갈 곳이 없고 라헬을 사랑하는 야곱을 7년 더 부려먹으려 한다.

cf. 라반은 레아를 넣는다. 마치 리브가가 야곱을 넣듯이.. ex) 데카메론

Q. 라반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었을까? 처음부터 준비하지는 않았겠지만 7년이 지나면서 홀로 남는 레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언니를 먼저 보내야한다는 풍속을 빌미로 속여서 결혼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레아를 불행하게 한다. 자매간에 갈등을 만들어 낸다.

cf. 라반은 속이는 결정을 신속히 한다. 리브가와 같다.

Q. 야곱을 속이기 - 라반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때 가족들은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라헬도 그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게 된다. 처음부터 레아를 결혼식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낮에는 라헬이 모든 것을 담당했을 것이다. 아니 그때까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라반이 이야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라헬은 아버지의 뜻을 따른다. 나중에 라헬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가족신을 숨기고 생리라며 아버지를 속인다.

cf. 야곱은 속이고 이삭에게 들어가 축복기도를 가로챈다. vs 라반은 레아를 들여보냄으로 야곱의 수고를 헛수고로 만들고 7년을 더 노동하게 한다.


(창 29: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창 29:24) 『라반은 여종 실바를 자기 딸 레아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 라반은 실바를 레아의 여종으로 준다. 마치 이미 준비된 상태같다. 아니면 실바도 라헬의 여종으로 갈줄 알았을까?


(창 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 29:25)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야곱은 자신의 방법으로 에서에게서 축복기도를 가로챘다. 이제 같은 방식으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했던 것처럼 치밀한 계획의 결과였다.

Q. 야곱은 자신이 속음으로 훗날에라도 에서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까?

25 야곱이 아침에야 한다. 라반에게 계약위반을 제기한다.


(창 29:26-27)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26] 라반이 대답하였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 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27] 그러니 이레 동안 초례 기간을 채우게. 그런 다음에 작은 아이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에 자네는 또 칠 년 동안 내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네."』

→ 라반은 전혀 근거조항에 없던 이야기를 한다. 설득력이 없는 일방적인 강요이다.

-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 공개적인 결혼식기간인 일주일을 채우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도 무효이고 7년도 무효가 된다.

-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

→ 라반은 야곱에게 다시 칠년을 강요한다. 야곱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 하지만 라헬과 결혼하고픈 야곱은 아무런 힘이 없다. 라헬을 위해 다시 7년을 봉사하라 한다.

Q. 라헬을 위해 14년, 레아를 위해 0년..


(창 29:28-30)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28-30) 『[28] 야곱은 그렇게 하였다. 그가 레아와 이레 동안 지내고 나니, 라반은 자기 딸 라헬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29] 라반은 여종 빌하를 자기 딸 라헬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는 또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 야곱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결혼기간이 지나고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는다.

→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7년을 봉사한다.


[라반의 흥정과 야곱의 정직] 야곱과 라반의 품삯계약과 야곱의 번성

“항상 정확한 신체 사이즈를 유지하고 신체와 머리 모양에 변화가 있을 때는 즉시 알려야 한다.”

“기획하는 앨범에 대하여 (회사의) 기획의도를 따라야 하며 다른 조건을 제시할 수 없다.”

“계약기간 중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연예활동을 중지하거나 은퇴할 수 없다.”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인 연예인들이 소속사와 맺고 있는 전속계약서 조항의 일부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57개 중소 연예기획사 소속 연예인 291명의 전속계약 체결 실태를 조사해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불공정 계약 조항들을 수정토록 했다고 25일 밝혔다.

공정위가 꼽은 불공정 조항은 ▲‘연예인 사생활 조정권 및 소재지 항시통보 조항’ 등 과도한 사생활 침해와 ▲연예활동에 대한 의사결정의 과도한 침해 ▲기획사의 홍보활동에 강제 및 무상으로 출연 ▲사전동의 없이 계약당사자로서의 지위·권리 일방적 양도 ▲저작권·미발표곡 등에 대한 권리를 연예기획사에 귀속 등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소 기획사 소속이지만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연예인들이 많이 포함돼있다”며 “과도한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연예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없도록 한 ‘노예 계약’ 조항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연예기획사들의 시정조치 이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제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오. [26]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리고 얻은 저의 처들과 자식들도, 제가 데리고 가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얼마나 많이 해 드렸는가 하는 것은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 새로운 전환의 시기

- 보내어 : 솰라흐(חלשׁ), 단순히 보내다, 해고시키다, 석방하다.

→ 야곱의 요구는 지금껏 맺었던 고용계약을 종결하고, 일꾼의 위치에서 자유로운 신분으로 풀어달라는 의미.

- 내 고향 나의 땅으로 : 야곱은 자신이 있는 하란땅이 아무리 안전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어도 자신이 가야할 곳을 잊지 않았다.

-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 7년후 라헬을 달라고 하였듯이, 다시 7년후(?) 그는 고향으로 가겠다고 한다.

→ 라반의 공식적인 허락이 있어야 원칙적으로 계약이 종결된다.

-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라는 의미

→ 자신은 고용계약에 따라 성실히 이행해 왔음을 강조한다.

⇒ 야곱은 14년의 고용으로 얻은 처자를 데리고 떠나려 한다.


cf. 야곱이 원하는 것은 이것만이었을까?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좋아하면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네. 주께서 자네를 보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점을 쳐 보고서 알았네" [28] 라반은 또 덧붙였다. "자네의 품삯은 자네가 정하게. 정하는 그대로 주겠네."』

- 여호와께서 : 상대의 표현을 사용하는 라반의 대화방법

-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 라반은 자신의 물질적 풍요와 번성을 하나님께로 돌림으로 야곱의 환심을 사려 한다.

-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 직역 ‘만약 내가 너의 눈에 은혜를 발견했다면, 제발 ~’ ‘원하고 바라건대 만약 네가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한다면’

→ 라반의 간청 : 라반이 하고 싶은 말은 붙잡는 것. 야곱의 입장에서 표현하는 이유는 다시금 감언이설로 또다른 계약을 맺어 야곱을 묶어 둘 생각이다.

-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 이번에는 정확한 계산을 하겠다고 한다.

→ 새로운 고용계약을 맺지 않으면 떠날 판이다. 상황이 급하다. 임금을 줄 것처럼 말하면서 야곱에게 정하라 한다. 다시 야곱에게 결정케 함으로 붙잡는 수순을 밟는다.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어떻게 해 드리고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얼마나 잘 보살폈는지는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30] 제가 여기 오기 전에는 장인 어른의 소유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제 때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제가 하는 수고를 보시고서 장인 어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저의 살림을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

-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야곱은 자신이 형식적으로 봉사한 것이 아닌 최선을 다해 일했음을 강조한다. 이는 라반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 그렇기에 더욱 라반에게는 야곱을 붙잡고 싶었을 것이다.

-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 라반이 번성케 된 것은 하나님의 복이 야곱과 함께 함을 고백한다.

cf. 요셉의 형통

(창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 ‘나 야곱은 언제나 가서야 내 가정을 위해 일하며 살 수 있는 겁니까?’

→ 라반의 번영은 자신과 무관하며 여전히 자신은 처가살이를 하는 종에 불과할 뿐이란 의미다.


(창 30:31-33)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창 30:31-33) 『[31] 라반이 물었다.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는가?" 야곱이 대답하였다.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한 가지 일만 허락하여 주시면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계속 먹이고 돌보겠습니다. [32] 오늘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 사이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양 떼에서 얼룩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고, 염소 떼에서도 점이 있는 것들과 얼룩진 것을 가려낼 터이니, 그것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33]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훗날 장인께서 저에게 삯으로 주신 가축 떼를 확인하여 보실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가운데서, 얼룩지지 않은 양이나, 점이 없는 양이 있든지, 검은 색이 아닌 새끼 양이 있으면 그것들은 모두 제가 훔친 것이 될 것입니다."』

-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 라반은 다시 들어주는 척을 한다. 라반은 별도의 무언가를 원하다고 생각한다. 라반에게 재산을 떼어달라 하면 들어줄까?

-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 절대부정과 금지의 표현으로 야곱은 라반에게서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음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겪어온 라반의 신실성을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라반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 자신이 부요케 되는 방법은 다시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믿었던 신뢰의 대상을 바꾼다.

→ 그동안 믿었던 라반에서 자신에게로 바뀐다. 당시의 민간요법을 사용한다.

cf. 그러나 결과는 하나님이 하신다. 후에 야곱은 고백한다.

(창 31: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창 31:5) 『일렀다. "장인께서 나를 대하시는 것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소.』


- 32-33 : 확률적으로 희박한 것을 자신의 몫으로 요구하는 것은 욕심많은 라반을 안심시키고 자신의 요구조건을 수락하기 위함이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던 계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 자신을 속이려는 라반을 다시 속이려는 야곱의 자신만의 계책에 대한 확신한다.

- 후일 : 장래에 있을 어느날

-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 야곱은 라반이 충분히 그러할 것임을 알다.

-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 야곱은 자신의 정직함을 강조함으로, 라반을 안심키시고 동시에 라반에게 자신의 제안을 최종적으로 확신시키는 표현이다.

→ 야곱은 정직하기로 하다. 거짓을 이기는 방법은 정직뿐

cf. 거짓말로 여기에 오게된 야곱은 지금 정직을 말하고 있고, 이후에도 라반에 대해서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cf. 40절- 섞이지 않게 한다.

(창 30: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창 30: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창 30:34) 『라반이 말하였다. "그러세, 자네가 말한대로 하겠네"』

→ 라반은 상대의 의견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의지를 나타낸다.

→ 물질에 욕심이 많고 야곱을 붙잡기 원하는 라반은 누가 봐도 불공정한 계약을 체결한다.

→ 라반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계속해서 거짓을 선택한다.


Q. 라반은 이런 야곱의 계약조건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계속 붙잡고 있을 수 있다고 보았을까? 이후 라반의 행동은?

(창 30:35-36)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창 30:35-36) 『[35] 그러나 라반은 이렇게 말해 놓고서도 바로 그 날로 숫염소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내고 또 모든 암염소 가운데서도 희 바탕에 얼룩이 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어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36] 그런 다음에 라반은 야곱이 있는 데서 사흘 길을 더 나가서 자기와 야곱 사이의 거리를 그만큼 뜨게 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나머지 양 떼를 쳤다.』

→ 라반은 계약체결이후 곧바로 신속히 움직인다. 사흘길을 멀어진다. 라반은 철저히 예방하고자 했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 한다. 치사한 라반, 겉은 좋게 그러라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야비한 행동을 다 한다.


창 30:37-43 야곱은 자신의 제안을 실천한다. 당시의 민간요법, 그러나 기적은 하나님이 이루신다.

(창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 30:43) 『이렇게 하여 야곱은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은 가축 떼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정리]

① 야곱은 변한다. 성실해진다. 라반→자신→하나님

② 라반은 그대로다. 더 치사해진다. 거짓말에 더욱 신속해진다. 더욱 자신의 욕심을 선택한다.


[자녀들을 통해 본 라반]

1. 아들들을 통해 본 라반

- 거부가 된 야곱

(창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창 30:43) 『이렇게 하여 야곱은 아주 큰 부자가 되었다. 야곱은 가축 떼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 낙타와 나귀도 많이 가지게 되었다.』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 31:1)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 이야기를 듣는다. 여기에는 라반의 아들들의 해석이 들어있다.

① 야곱의 재산은 라반의 ‘소유를 다’ 빼앗은 것이다. 야곱의 성실함과 하나님의 축복에도 야곱이 불의한 방법으로 속인다고 생각한다. cf. 속임에 익숙한 라반의 모습을 야곱도 그러하다고 본다.

② 원래 라반의 것을 관리했음으로 야곱의 재산의 소유권은 라반에게 있는 것이라 본다.

③ 야곱의 노동과 댓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cf. 라반은 무임금으로 양을 관리하게 하려하며 계속해서 댓가지불 방법을 바꾼다.

④ 야곱의 재산이 라반의 것이어야 하는 이유? 야곱의 것이라 하면 상속되지 않으나 라반의 것이 되면 자신들에게 상속된다. 이것으로 재물에 대한 욕심을 보인다. cf. 아버지의 욕심과 같으며 동시에 일반적인 욕심이기도 하다.

∴→ 이 안에 라반의 생각은 어느정도가 있었을까? 전체가 아들들의 생각인가, 라반의 생각을 듣고 그들이 생각했을까? 알수는 없어도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란 점에서 아들들은 라반과 같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음이 예상된다.

→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야곱은 긴장하게 되고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음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되며, 이 사건을 계기로 야곱은 라반을 살피고 귀환을 결심한다.


⇒ 야곱의 움직임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 불안해진 야곱은 라반의 표정을 살핀다. 예전같이 라반의 태도나 인상이 우호적이지 않았다. 곧 야곱의 부유함은 라반과 그의 아들들의 시기심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1: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1절은 청각적 요소, 2절은 시각적 요소로 위기의 상황을 본다. 3절은 그 해결극복방법이다.


31:4-13 야곱이 라헬과 레아와 상의하다.

(창 31:4-13)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1. 야곱은 상황과 하나님의 명령으로 결심을 한다.

2. 아내들을 들로 불러내어 비밀리에 들키지 않도록 상의한다.

3. 내용 : 라반의 안색이 전과 같지 않다. 최선을 다해 섬겼지만 자신을 속이고 품삯을 10번이나 변경했다. 하나님이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신다.


2. 라헬과 레아가 본 라반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5]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 부모의 재산에 대해 출가한 딸은 전혀 권리가 없었다. 결국 자신들의 소망이나 기대는 라반이 아니라 야곱임을 강조하다.

-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 직역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팔았고 그리고 그가 또한 우리의 돈을 삼키고 삼켰기 때문이다’

→ 라반이 지참금에 해당하는 14년의 노동의 댓가를 내놓지 않았다. 당시 풍습은 지참금의 일부를 다시 딸에게 주어 결혼밑천으로 사용토록 해야했으나 라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옹색한 아버지였다.

→ 그간 있었던 아버지에 대한 불만, 즉 아버지의 물질에 대한 욕심에 대해 표현한다. cf. 딸들도 아버지처럼 관심은 물질에 있다.

-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 아버지와 딸의 거리감 : 딸들이 느끼는 아버지는 자신들을 딴나라 사람으로 여긴다고 한다.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 노동의 댓가는 우리와 자식의 것이다.

-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 그간 있었던 하나님에 대한 인도하심에 대해 신뢰를 보인다.

∴ 라헬과 레아가 본 아버지와 하나님의 차이

①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을 것이 없고, 아버지는 자신들을 멀리하는데, 야곱의 하나님은 신뢰할 수 있다.

② 속임에 능한 아버지와 달리 하나님을 통해 신뢰감을 받는다.

③ 예의상 상대의 표현을 사용하는 아버지와는 달리 야곱의 하나님을 따르라고 한다.

∴ 라반의 아들들과 딸들의 공통점(평가기준)

① 아버지처럼 물질로 판단한다. 아버지에 대한 자녀들의 불만이 느껴진다.

② 다른 사람을 속이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아들들은 야곱이 속여서 빼앗았다고 하고, 딸들은 아버지가 자기들을 속여서 줄 것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③ 아버지에 대한 지지나 만족감이 없다. 아버지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그것이 자녀들을 기쁘게 하지 않았다.

cf. 아버지의 방법을 배운다 - 드라빔을 훔치고 속이는 라헬의 모습


* 야곱의 귀향

(창 31:17-20) 『[17] 야곱이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들에게 태우고 [18] 그 모은 바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 곧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가축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가려 할새 [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창 31:17-20) 『[17] 야곱이 서둘러서 자식들과 아내들을 낙타에 나누어 태우고, [18] 그가 얻은 모든 짐승과 그가 밧단아람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다 가지고서,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19] 라헬은 라반이 양털을 깍으러 나간 틈을 타서 친정집 수호신의 신상들인 드라빔을 훔쳐 냈다. [20] 그뿐만 아니라, 야곱은 도망칠 낌새를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아람 사람 라반을 속이고 있다가,』

→ 야곱은 신속하게 가족과 모든 재산을 가지고 라반 몰래 출발한다.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라반의 허락없이 도주한다. 이에 라반이 추격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 마침 라반은 집에 없고 그틈에 라헬이 가정수호신상 드라빔을 훔쳤다.

⇒ 라헬의 욕심은 라반이 야곱의 귀향을 막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막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창 31:21-23) 『[21] 그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23] 라반이 그의 형제를 거느리고 칠 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 산에서 그에게 이르렀더니』

(창 31:21-23) 『[21] 모든 재산을 거두어 가지고 도망하였다. 그는 강을 건너서 길르앗 산간지방 쪽으로 갔다. [22] 라반은 야곱이 도망한 지 사흘 만에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23] 라반은 친족을 이끌고 이렛길을 쫓아가서 길르앗 산간지방에서 야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 야곱의 출발 3일후 라반은 듣고 바로 출발하여 7일뒤 야곱에게 이르게 된다.

→ 밧단아람에서 길르앗 산까지 480km로 열흘간 도주라면 하루에 48km이고, 라반의 7일간 추격은 약 70km 씩으로 아주 빠르게 추격하였다. 이는 라반의 분노를 느끼게 한다.


* 정리

① 라반은 사람을 머물게 한다. 이것은 들어온 것은 나가지 못하게 한다.

② 자녀들은 아버지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방식으로 판단한다.


 

[하나님의 명령과 라반의 억지]


 

[꿈에 나타난 하나님]

Q. 야곱이 몰래 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추격하는 라반은 어떤 마음일까?

Q. 라반에게 야곱은 어떤 존재였을까?

Q. 하나님이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하지 않았다면 그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Q. 하나님은 왜 출발 때 말하지 않고 추격을 마칠 때 감정이 격해 있었을 그때에 현몽하셨는가?

Q. 라반의 선택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따랐을까?

(창 31:24)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창 31:24) 『그 날 밤에 아람 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 라반은 바로 앞까지 추격하였다. 내일이면 무방비상태의 야곱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라반은 이것을 위해 이 거리를 급하게 달려왔다. 이 라반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 하나님은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개입하신다. 지금까지 상대의 표현을 빌어 입으로만 표현하던 라반은 하나님의 개입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민을 보호하시려 하신다.

cf. 죽음같은 다른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꿈을 통해 라반을 막으신다.

-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 ‘선으로부터 악까지’

→ 하나님은 야곱과 관련된 어떤 것도 옳고 그름을, 좋고 나쁨을 판단하거나 시비를 가리지 말라 하신다. 돌아가자는 말이나 책망의 말도 하지 말라 한다.

→ 라반이 원하는 것은 ‘재물과 무임금 노동력’이다. 따라오지 않으면 해할 능력도 있다.(29)

(창 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창 31:29)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야곱과 라반과의 논쟁]

(창 31:25) 『라반이 야곱을 뒤쫓아 이르렀으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친지라. 라반이 그 형제와 더불어 길르앗 산에 장막을 치고』

(창 31:25) 『라반이 야곱을 따라잡았을 때에 야곱이 길르앗 산간지방에다 이미 장막을 쳐 놓았으므로 라반도 자기 친족과 함께 거기에 장막을 쳤다.』

→ 라반이 도착하여 보니 야곱이 그 산에 장막을 쳤다. 장막은 이동할 때 운반하기 쉽도록 만들어진 이동식주거지이다. 여기서 ‘쳤다’는 말은 땅에 고정시켰다는 의미이다. 야곱은 어느정도 라반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고 지쳤을 가족들과 가축들을 쉬게 하려 하였다.


(창 31:26-30) 『[2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창 31:26-30) 『[26] 라반이 야곱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속이고 나의 딸들을 전쟁 포로 잡아가듯 하니,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27] 어찌하여 자네는 나를 속이고, 이렇게 몰래 도망쳐 나오는가? 어찌하여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간다고 말하였으면 북과 수금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며 자네를 기쁘게 떠나 보내지 않았겠는가? [28] 자네는 내가 나의 손자 손녀들에게 입을 맞출 시간도 주지 않았네. 자네가 한 일이 어리석기 짝이 없네. [29]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30] 자네가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찌하여 나의 수호신을 훔쳤는가?"』

* 라반의 논조와 억지

① 네가 나를 속이고(26) - 알리지 않았음을 책망한다. 자신이 막았을 것은 들어내지 않는다.

②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26) → 딸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 하나, 딸들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해 실망하고 스스로 야곱을 따라 갔다.

③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27) → 관례적인 멋진 환송식을 했을 것이라 하나 계속해서 야곱을 속이거나 물리적인 힘을 동원했을 것이다.

④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27) → 속이고 도망하였다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그는 어떻게 하든 머물게 하는데..

⑤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28) → 자연스러운 혈육의 정을 막았다 하며 자신을 정이 많고 손자들을 아낀다고 표현하고 있으나 14-16에서 보듯이 라헬과 레아는 자신과 자식에게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취하셨다고 한다.

⑥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28) → 혈육과 작별의 정조차 나누지 못하게 한 야곱의 행위가 우둔하고 어리석다고 강하게 질책하며 자신의 불만을 부각시키고 있으나 야곱은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라반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은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것을 막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⑦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29) → ‘너를’은 복수형으로 ‘너희들에게’이며 해를 가할 대상은 야곱뿐 아니라 모든 일행들이었다. 고로 자신을 지킬 힘이 없는 야곱은 그대로 위험에 처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이렇게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고 야곱에게만 철저히 잘못이 있음을 덮으려는 라반이었다. 그렇게 야곱은 생명까지도 위험한 상황이었다.

⑧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였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명령이 아닌 절대 그대로 지켜야하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라반은 자신의 논조와 억지를 모두 말한다.(26-30)

⑨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 직역 “네가 네 아비 집을 정말 사모하기 때문에 네가 정말 떠났다”

→ ‘옳거니와’ - 라반은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고 인정하거나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서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야곱의 행위는 여러 가지의 잘못이라 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말하지 말라 하여 더 이상은 막지는 않겠는 의미이다. 그러나 따질 이야기는 모두 다 했고 마지막으로 하나더 물어본다.

⑩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 복수형으로 여러개의 드라빔을 말한다.

→ 드라빔은 조상대대로의 가정수호신이자 재산상속의 합법성을 보장해 주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말하지 말아야 한다.

→ 그렇지만 드라빔이 발견되면 하나님의 말씀도 다시 번벅할 수 있기에 끝까지 말한다.


[야곱의 두려움]

(창 31:31-32)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창 31:31-32) 『[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였다. "장인께서 저의 처들을 강제로 빼앗으실까 보아 두려웠습니다. [32] 그러나 장인 댁 수호신상들을 훔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장인의 물건 가운데서, 무엇이든 하나라도 저에게 있는지, 우리의 친족들이 보는 앞에서 찾아보시고 있거든 가져 가십시오." 야곱은 라헬이  그 수호신상들을 훔쳤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다.』

→ 야곱은 두려웠다고 한다. 해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한다. 두려움의 대상이었음을 고백한다.

-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 생명의 생사결정은 하나님께 있음에도 두려운 마음으로 라반에게 넘긴다. 몰랐다고 하기에는 가족을 보호할 마음이 약하다.

cf. 아브라함도 이삭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이 두려움은 얍복나루에서 그대로 나온다.


[라반이 집착]

Q. 해할 능력과 권한이 있는 라반..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다면 아무말도 하지 말고 인사만 하고 가야하지만 가족신을 찾겠다는 생각으로 딸들의 장막을 뒤진다. 만약 드라빔이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창 31: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창 31:33) 『라반은 먼저 야곱의 장막을 뒤졌다. 다음에는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의 장막까지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레아의 장막에서 나온 라반은 라헬의 장막으로 들어갔다.』

→ 순서 : 야곱-레아-두 여종-라헬 순이다. 의심의 순서다. 야곱에게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없으면 레아라고 보았다. 즉 설마 라헬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 것.

→ 상대의 허락없이, 예의없이, 수색영장도 없이, 권리도 없이 오로지 드라빔을 찾기 위해 뒤진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은 상관없이 자기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집착하는지 보여준다.

cf. 만약 장막을 치지 않았다면 라헬이 연기할 수 있었을까?


(창 31:34-35)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 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창 31:34-35) 『[34] 라헬은 그 수호신상들을 낙타 안장 밑에 감추고서 그 위에 올라타 앉아 있었다. 라반은 장막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35] 라헬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월경중이므로 내려서 아버지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라반은 두루 찾아보았으나 끝내 그 수호신상을 찾지 못하였다.』

→ 근동에서 월경중의 여인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로 종교의식이나 외부와의 접촉도 금기이다.

→ 라반이 라헬을 조사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관습으로 자신이 부정해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 라헬의 말을 믿는 것은 부정한 상황에서 신으로 여겨지는 드라빔을 깔고 앉았으리라고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정리

① 라반의 논쟁의 논조는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강요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상대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

② 상대를 위해 말로만 하던 하나님을 경험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절대명령을 따르지 않고 자기식으로 할 말은 다 한다.

③ 자신의 생각과 집착에 빠진 라반은 다른 조언에 대해 전혀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라반과 야곱의 상호불가침계약]


리브가의 혼담에서 예의밝은 라반

라반의 근로고용계약과 파기

라반의 흥정과 야곱의 정직

자녀들을 통해 본 라반

하나님의 명령과 라반의 억지


31:25 라반이 야곱에게 들이닥치다.

31:26-30 라반의 억지

31:31-32 야곱의 두려움과 허락

31:33-35 라반의 뒤짐과 실패

31:36-42 야곱의 라반을 향한 분노폭발, 책망, 따짐

→ 그동안 참고 있던 모든 것을 쏟아낸다.

→ 20년간의 수고와 변상, 라반의 열 번의 품삯바꿈,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공수를 면했다.



(창 31:43-44)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창 31:43-44)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였다. "이 여자들은 나의 딸이요, 이 아이들은 다 나의 손자 손녀요, 이 가축 떼도 다 내 것일세. 자네의 눈 앞에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 있는 나의 딸들과 그들이 낳은 나의 손자 손녀를, 이제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44] 이리와서 자네와 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그 언약이 우리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하세."』

- 내 딸이요, 내 자식이요, 내 양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것이라.

→ 딸은 14년간의 노동의 댓가, 자식은 야곱의 자식들, 양떼는 야곱의 정당한 댓가

→ 이제는 라반에게 아무런 명분이 없음에도 끝까지 자기 것이라 억지를 부린다. 여전히 자기중심적 판단을 한다.

-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 명분없는 라반의 생색 : 모두 내것이지만 내가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 이렇게 말하는 라반의 목적 : 반전으로 인해 궁지에 몰리지 않으려고

-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① 이제 라반은 야곱과 계약을 세울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보복금지명령에도 보복하려 했는데 끝까지 야곱을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고,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야곱이 분노를 폭발하였다.

② 훗날 드라빔을 발견한 야곱이 ‘재산상속권’를 요구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③ 점점 강성해지는 야곱이 더욱 강성하여 자신에게 복수하러 올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④ 야곱이 도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합법적으로 보내 주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야곱을 박대하여 도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cf. 훗날 야곱이 벧엘로 올라갈 때 우상을 버리라 한다.

(창 35:2-3)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 직역 : ‘우리가 언약을 세우자. 너와 내가’

① ‘우리’가 아닌 ‘너와 나’라는 언약의 당사자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② 하나님과 사람과의 계약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계약’이다.

③ 불평등이 아닌 평등계약이며, 두 집안이나 두 국가 사이에 계약을 체결할 때는 돌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④ 특이한 점은 라반은 언약의 증인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인다.

⑤ 증거를 삼다 : ‘되풀이해서 말하다’는 의미로 ‘증인, 증언’의 뜻도 된다. 곧 증인은 언제든지 증언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한다.

⑥ 증인 : 고대근동에서 증인은 사람만으로 제한하지 않고 계약을 체결할 때 무생물도 증인이 될 수 있다. 돌기둥과 돌무더기(45절)


∴ 라반의 두려움 - 언약을 세우자

① 명분이 없는 라반이 제안을 한다. 계속 강한척을 한다.

② 가족신을 잃은 라반은 야곱의 신과 대적하기가 두려워졌다.

③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없어 포기를 선언한 것


(창 31:45-46)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창 31:45-46) 『[45] 그래서 야곱이 돌을 가져 와서 그것으로 기둥을 세우고, [46] 또 친족들에게도 돌을 모으게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 와서 돌무더기를 만들고 그 돌무더기 옆에서 잔치를 벌이고, 함께 먹었다.』

- 기둥 : 종교적인 목적이 아닌 단순한 계약의 증표이며, 둘 사이의 영토의 경계를 정하는 표시물로서 수직으로 세워진 ‘기둥’

- ‘무더기 : 둥글게 쌓아 올린 것, 둥근 모양의 무더기 - 돌기둥처럼 언약의 증표

→ 주체 : 야곱이 돌을 가져 기둥을 세우고 그 형제들도 돌을 모으게 했다.

→ 야곱도 라반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그 형제들도 같이 하게 한다.

∴ 야곱의 의도 : 명분이 없어져 두려워하는 라반을 공격할 의도가 없다.

⇒ 라반이 야곱만큼 분노하였다면 라반은 공격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인생에서 공격적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창 31:47-48)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창 31:47-49) 『[47] 라반은 그 돌무더기를 b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하였다. (b. 증거의 무더기를 아람어로는 여갈사하두다라고 하고, 히브리어로는 갈르엣이라 함) [48] 라반이 말하였다. "이 돌무더기가 오늘 자네와 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거일세. " 갈르엣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 증거의 무더기 : 라반은 아람어로 ‘여갈사하두다’, 야곱은 히브리어로 ‘갈르엣’

→ 라반이 아람어로 이름을 붙였음에도 굳이 히브리어로 다시 붙이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주체성을 갖는 행위이다.

⇒ 야곱은 점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을 분노케 한 라반에게 평화적으로 행동하면서도 그동안 제대로 자기주장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한다.


(창 31:49-50)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창 31:49-50) 『[49] 이 돌무더기를 달리 a미스바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라반이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주께서 자네와 나를 감시하시기 바라네"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a. 망루) [50] "자네가 나의 딸들을 박대하거나, 나의 딸들을 두고서 달리 아내들을 얻으면 자네와 나 사이에는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자네와 나 사이에 증인으로 계시다는 것을 명심하게."』

- 미스바 :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우리가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에, 주께서 자네와 나를 감시하시기 바라네"

→ 망루(watchtower) : 또다른 히브리식 이름으로 야곱과 라반이 헤어진 후 피차 맺은 계약을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는가를 하나님이 망대에서 살펴보는 파수군처럼 감찰해 주시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라반이 붙인 이름이다.

→ 여호와 하나님을 불러 그분께서 야곱과 자기 사이를 살펴주시기를 바라는 라반의 기원과 소망이 담겨진 말이다.

⇒ 예전에는 상대를 이용하기 위해 상대의 신을 불렀다면 지금은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여전히 자기 위주의 생각을 하지만 방법은 자기방식에서 야곱의 하나님으로 바뀌고 있다.

-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먼길을 가는 딸들에 대한 아버지로서 최소한의 애정표현

cf. 리브가를 떠나보낼 때 축복 (창 24: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 하나님이 증인이시다.

→ 라반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야곱에게 계약사항을 철저히 준수할 것을 당부한다. 불이행시 자신은 멀리 있어 알수없지만 하나님이 증인이 되어 증언해 주시길 바라는 소망이 담긴 말이다.

cf. 야곱은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을 때 묘에 비를 세우며 죽음을 애도하고(35:20), 레아가 죽었을 때는 막베라굴에 장사하여 첫부인으로서 예우를 하였다.(49:31)


(창 31:51-53)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창 31:51-53) 『[51] 라반은 야곱에게 또 다짐하였다. "이 돌무더기를 보게. 그리고 내가 자네와 나 사이에다 세운 이 돌기둥을 보게. [52] 이 돌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돌기둥이 증거가 될 것이네. 내가 이 돌무더기를 넘어 자네 쪽으로 가서 자네를 치지 않을 것이니, 자네도 또한 이 돌무더기와 이 돌기둥을 넘어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나를 치지 말게.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 우리 사이를 판가름하여 주시기를 바라네. " 그러자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을 지켜 주신 두려운 분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다.』

→ 라반은 기둥과 무더기를 보라하며 결코 계약을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

-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 라반은 절대금지를 표현함으로 자신의 바램을 드러낸다. 라반은 더욱 강해질 야곱과 그렇게 하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① 라반은 다신론적 관점

에서 자신의 조상의 신과 연결하여 말한다. 아브라함의 신을 그 위의 신과 연결시킨다.

② 라반은 더 많은 신을 야곱과의 계약에 개입시킴으로 야곱이 그 계약을 성실히 이행하리라 생각한다. 야곱도 자신과 같은 신관을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③ 자신의 드라빔이 없어진 상황에서 라반의 두려움은 너무나 크다.

⇔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

① 야곱에게 신관은 유일신관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에서 위가 아닌 아래로 내려오며 이삭의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② 라반은 여러신들에게 ‘판단하소서’하였지만 야곱은 ‘경외하는’ 한분에게만 맹세한다.

③ 불안한 라반과 달리 야곱은 흔들림이 없다.


(창 31:54-55)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창 31:54-55) 『[54] 야곱은 거기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친족들을 식탁에 초대하였다. 그들은 산에서 제사 음식을 함께 먹고 거기에서 그 날 밤을 보냈다. [55] 라반은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자기 손자 손녀들과 딸들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에게 축복하고, 길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 제사를 드리고 : 제물을 잡아 드리는 희생제사였다.

→ 당시 중근동 지방에서 언약이나 동맹관계를 위한 계약을 맺고 나서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뜻으로 희생제사를 드리고 남은 음식을 함께 먹던 관습이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계약을 맺은 당사자간의 화해와 우정을 다지고 계약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계약의 내용에 동의함을 확인하였다.

-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 라반의 형제들로 좀 떨어져 있던 그들을 가까이 불러들여 무더기처럼 계약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함께 식사를 나눈다.

-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 입맞추며, 축복하고 : 라반의 적극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딸과 손자에게 적극적으로 축복한다.

cf. 라반이 야곱에게 입맞춤을 한 사실은 소개되지 않는다. 이는 야곱이 처음 왔을 때와 전혀 다른 행동이다. 아마도 외형적으로는 화해했지만 속으로는 어쩔 수 없었음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리]

① 라반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 사고와 자신만을 위한 판단을 한다.

②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때는 자기 보호반응을 보인다.

③ 사람관리에 실패한다.


:

성경인물 13. 리브가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5. 21. 18:09

[리브가의 일생]

- 리브카(הקבר)-‘신속히 매다’는 ‘리바크’(קבר)에서 나온 단어로, ‘어린동물을 잡아맬 때 쓰는 고리로 된 줄’ 즉 ‘올가미, 고리’이다.

- 이삭(40세)과 결혼

- 20년뒤 쌍둥이 출산

- 에서(40세)의 결혼으로 가정불화

- 이삭의 축복기도를 가로챔

- 야곱을 떠나보낸 후 만나지 못함


24장 - 이삭과 리브라의 결혼

1-4 아브라함이 종에게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라 한다.

5-8 이삭을 데려가지는 말라 당부한다.

9 종이 맹세한다.

10-11 종이 출발하여 나홀성에 도착하다.

12-14 종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구하다.

15-25 종이 리브가를 만나다.

26-27 종이 하나님께 경배하다.

28-33 라반이 종을 영접하다.

34-48 종이 모든 과정을 진술하다.

50-53 혼담이 성사되다.

54-56 종이 급히 떠나려 하다.

57-58 가족들이 리브가의 의견을 물어보고 리브가는 결정하다.

59-60 리브가를 축복하며 전송하다.


* 특징

- 결혼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 하나님의 섭리에 맡긴다.

1. 아브라함의 맹세

(창 24: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2. 종의 기도

(창 24:12-14) 『[12]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13] 성 중 사람의 딸들이 물길으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서 있다가 [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 24:26-27) 『[26] 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27]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 ∴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결혼임을 보여준다.

1. 가나안여인이 아닌 친족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2. 언약의 자손으로서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3. 가나안의 이방종교에 동화되어 ‘신앙의 순수성을 더럽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 이방인과의 결혼은 우상숭배습성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리브가의 가계도]

리브가를 만난 종이 그녀의 집으로 혼담을 위해 들어간다.

 

* 아버지 : 브두엘(뻬투엘 לꔞוּתꔶ)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께 속한 자, 하나님이 거하시는 자

- 역할이 미미하다. 어머니와 오빠 라반의 활동만 보인다.

- 종이 초대받고 과정을 설명할 때(33-49) 듣고 대답한다. 그러나 아들 뒤에 나온다.

(창 24:50-51)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51] 리브가가 당신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를 당신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창 24:50-51) 『[50]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였다. "이 일은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말할 수가 없습니다. [51] 여기에 리브가가 있으니 데리고 가서 주님이 지시하신 대로 주인 아들의 아내로 삼으십시오."』

- 설명 : 1. 브두엘의 이름이 자주 생략되는 점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란 추측.

         2. 당시 누이의 결혼문제를 오라비가 중심이 되어 결정하는 것이 관습이라는 설명

         3. 소극적인 성격으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였기 때문이라는 설명

∴ 브두엘은 족보의 설명에만 나올 뿐, 리브가에게 아버지 브두엘의 역할은 없다.


* 어머니 : 리브가는 어머니의 장막에 들어가 아브라함의 종과 만난 사실을 알린다.

(창 24:28)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창 24:28) 『소녀가 달려가서 어머니 집 식구들에게 이 일을 알렸다.』

- 어머니의 집 : 당시 유목민들은 남자의 장막과 여자의 장막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한편 리브가가 아브람함의 종을 만난 사건을 가장 먼저 어머니에게 고한 것은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모계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 라반 : 뜻은 ‘희다’ 여동생의 결혼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유는 아버지가 연로했고 결혼주선을 오빠가 하는 것이 고대근동의 풍습이란 설명..

(창 24:29) 『리브가에게 오라버니가 있어 그의 이름은 라반이라 그가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창 24:29) 『리브가에는 라반이라고 하는 오라버니가 있는데 그가 우물가에 있는 그 노인에게 급히 달려왔다.』


* 라반 + 어머니 :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와 같이 움직인다.

(창 24:53)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창 24:53) 『금은 패물과 옷 가지들을 꺼내서 리브가에게 주었다. 그는 또 값나가는 선물을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에게도 주었다.』

(창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

(창 24:55) 『리브가의 오라버니와 어머니는 "저 애를 다만 며칠이라도 적어도 열흘만이라도 우리와 함께 더 있다가 떠나게 해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cf.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사라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이 주도적이었다.


[리브가의 성격]

* 리브가의 선택과 결단 - 이렇게 오빠 라반의 주도적인 모습 속에서도 리브가는 선택결단한다.

(창 24: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 24: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 인생의 중차대한 결혼문제를 한마디로 결정한다. 그녀의 단호함이 보인다.


Q. 이 단호한 결단 속에 하나님의 섭리는 함께 하는가?

(창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 24:8) 『그 여인이 너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으면 너는 나에게 한 이 맹세에서 풀려난다. 다만, 나의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가지만은 말아라."』

- 끝까지 종은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충실한다.

- 자신도 육신의 피로가 있을 것인데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려 다음날 떠나려 한다.

- 혼담이 완료한 듯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한다.


* 리브가의 근면성

(창 24:15)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창 24:15) 『기도를 미처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왔다. 그의 아버지는 브두엘이고, 할머니는 밀가이다. 밀가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로서 아브라함에게는 제수뻘이 되는 사람이다.』

- 말을 마치기도 전에 - 종의 기도후 바로 나타난다. 섭리가 이루어지는 신속한 하나님의 응답.

-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 물을 길러 나온 것을 볼때 그녀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여인이었다.


(창 24:16)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 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창 24:16) 『그 소녀는 매우 아리땁고, 지금까지 어떤 남자도 가까이하지 아니한 처녀였다. 그 소녀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동이에 물을 채워 가지고 올라올 때에,』

- 밧줄에 항아리나 가죽부대를 매달아 퍼올리는 우물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내려가서 물을 떠가지고 올라오는 커다란 형태로 보인다. 이후 약대 10마리 모두 먹이는 것은 매우 헌신적이면서 부지런한 여인임을 보여준다.

* 리브가의 성격-급함

(창 24:17-18) 『[17] 종이 마주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네 물동이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게 하라” [18] 그가 이르되 “내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동이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창 24:17-18) 『[17] 그 종이 달려나가서, 그 소녀를 마주 보고 말하였다. "이 물동이에 든 물을 좀 마시게 해주시오." [18] 그렇게 하니 리브가가 "할아버지, 드십시오"하면서 급히 물동이를 내려 손에 받쳐들고서 그 노인에게 마시게 하였다.』

- 급히 - 행동이 빠르다. 상대의 요청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상대는 먼길을 여행한 사람임을 알아보고 자기의 수고보다 상대의 어려움을 먼저 본다.


(창 24:19-20) 『[19] 마시게 하기를 다하고 이르되 “당신의 낙타를 위하여서도 물을 길어 그것들도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20] 급히 물동이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낙타를 위하여 긷는지라.』

(창 24:19-20) 『[19] 소녀는 이렇게 물을 마시게 하고 나서 "제가 물을 더 길어다가 낙타들에게도 실컷 마시게 하겠습니다."하고 말하면서 [20] 물동이에 남은 물을 곧 구유에 붓고 다시 우물로 달려가서, 더 많은 물을 길어 왔다. 그 처녀는 노인이 끌고 온 모든 낙타들에게 먹일 수 있을 만큼 물을 넉넉히 길어다 주었다.』


(창 24:58)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 24:58) 『그들이 리브가를 불러다 놓고서 물었다. "이 어른과 같이 가겠느냐?" 리브가가 대답하였다. "예, 가겠습니다."』


- 종의 기도가 응답된다. 물을 요청할 때 말하지 않은 약대에게도 물을 주기를 기도했다.

cf. 이 급함은 즉각적인 반응이 있지만 반대로 기다려야 할때는 너무나 힘들다.

Q. 이삭은 싸움을 피하고 온순하다. 남편에 대한 만족감은 높았을까?


[리브가의 꿈]

(창 24:59-60)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창 24:59-60) 『[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 천만인의 : ‘풍성함’을 의미.

- 원수의 성문 : ‘가증스럽게 여기는 사람들, 적대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사람들’, 강성한 민족을 이루라는 기원

cf. 결혼후 20년간 불임이다. 이삭은 싸우지 않는다.


* 리브가가 적극성을 띠고 이삭에게 간다.

(창 24:61)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창 24:61) 『리브가와 몸종들은 준비를 마치고 낙타에 올라 앉아서 종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데리고서 길을 떠날 수 있었다.』

cf. 하란에서 브엘세바까지는 800km이며 장거리 사막여행에서 나타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낙타는 보통 250-350kg의 짐을 싣고 시속 16km의 속도로 18시간을 쉬지 않고 갈 수 있다.

(16×18시간=288km, 800÷288=2.7일) (16×10시간=160km, 800÷160=5일)


(창 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창 24:63) 『어느 날 저녁에 이삭이 산책을 하려고 들로 나갔다가 고개를 들고 보니, 낙타 행렬이 한 떼 오고 있었다.』

- 저물때에 : 아침에 출발하여 먼 여행을 마쳤다는 문학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 묵상하다가 : 묵상하기 위해 들로 나갔다는 의미.

- 명상하다 : 수아흐(חושׂ)

- 눈을 들어보매 : 직역 ‘그러자 그는 그의 눈들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 낙타들이 오는지라 : 직역 ‘그리고 보라. 약대들이 오고 있었다.’

→ ‘힌네’ : ‘보라, 자’ 등처럼 주의를 촉구하거나 분위기를 전환할 때 사용하는 감탄사

→ 이삭은 들에 나가 고요히 묵상후 눈을 들어 보았을 때 그가 기다리던 약대행렬을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창 24: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창 24:64) 『리브가는 고개를 들어서 이삭을 보고 낙타에서 내려서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었다.』

- 눈을 들어 .. 바라보고 : 직역 ‘그리고 그녀는 눈을 들었다. 그때 그녀는 보았다’

→ 이삭처럼 리브가도 눈을 들어 멀리 있는 이삭을 보게 된다.

- 내려 : 나팔(לפנ) 떨어지다, 엎드리다, 내려오다

→ 리브가는 이삭을 발견하고 낙타에서 내려온다. 이것은 고대근동에서 여자가 나귀나 낙타를 타고 가다가 남자를 만나면 아래로 내려 서는 것이 예의요 관습이었다.


(창 24: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창 24:65) 『"저 들판에서 우리를 맞으러 오는 저 남자가 누굽니까?" 그 종이 대답하였다. "나의 주인입니다." 그러자 리브가는 너울을 꺼내서 얼굴을 가렸다.』

- 배회 : 잘못된 번역으로 정확히는 ‘들판을 지나서, 통과하여’

- 너울 : 차이프(ףיעצ) 얼굴을 포함하여 온 몸을 감싸는 커다란 천으로 결혼 적령기의 처녀임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는 의복이며 결혼예식을 통해 벗겨진다.

-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 상대방이 자신과 결혼하게 될 이삭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스스로 자신의 상체를 가리었음을 보여준다.

⇒ 리브가의 행위는 자신을 예의있고 정숙한 면모를 돋보이게 한다.


(창 24:66)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창 24:66) 『그 종이 이제까지의 모든 일을 이삭에게 다 말하였다.』

→ 24장에 있었던 모든 일을 보고한다.


(창 24:67)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 24:67) 『이삭은 리브가를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그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렇게 해서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가 되었으며, 이삭은 그를 사랑하였다. 이삭은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위로를 받았다.』

-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 당시 족장이나 부유층의 사람들은 여러개의 크고 작은 장막을 갖고 있어 가족의 신분에 따라 적당한 장막을 분배해 주었다. 따라서 족장의 부인인 사라가 생전에 기거하였던 장막은 아브라함 집의 소중한 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를 이곳으로 인도하였다 함은 이제 리브가가 실질적인 새 안주인으로서 아브라함 집의 모든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존귀한 위치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 아하브(בהא) 사랑하다, 연애하다, 사모하다, 부부간, 친구간 등 ‘사람 사이의 사랑’을 나타낼 때 주로 표현한다.

→ 당시는 일부다처주의인데 이삭은 이 풍습을 따르지 않는다.

-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 나함(םחנ) 위로받다, 위로를 얻다.

→ 학자들간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이삭이 3년 동안이나 사라를 위해 애도했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일 내지는 70일이었다(50:3;민 20:29;신 34:8).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이삭이 노년에 자신을 낳고 기뻐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각별히 자신을 사랑해 준 어머니의 정을 못 잊어 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


* 정리

-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이루어진다.

-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리브가와 가족의 마음을 움직인다.

- 중간 역할자를 충실한 종이 맡는다.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긴다.

- 리브가는 적극적이고 근면하며 결단이 강하다.

- 리브가의 가계도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보이지 않으며 오빠 라반의 역할이 강하다.

- 라반의 축복기도는 그녀에게 비젼이 되었을 것이다.

- 반면 그녀의 꿈과 결단은 남은 삶에서 단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리브가의 훈련과 꿈]

* 리브가에게 필요한 훈련은 무엇일까?

- 훈련은 변화를 요구한다. 이것은 변해야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변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바뀌기를 바란다.

* 리브가에게 훈련의 도구는 무엇일까?

- 훈련의 장소가 그의 ‘삶의 자리’이듯 도구 역시 그 삶속에 있는 것으로 사용된다.

* 리브가에게 자녀란?

- 부모에게 자녀는 또다른 자신이고 꿈이다.

→ 리브가는 그의 삶에서 가족과 자녀를 통해 훈련을 받는다.

(ex 조급함-기다림, 자기판단-바른판단)


[리브가의 가족-가계도]

(창 25:19-20)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창 25:19-20) 『[19] 다음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20] 이삭은 마흔 살때에 리브가와 결혼하였다. 리브가는 밧단아람의 아람 사람인 브두엘의 딸이며 아람 사람인 라반의 누이이다.』

- 이삭과 리브가의 가계도(족보) 설명


(창 25: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창 25:21) 『이삭은 자기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아내가 아이를 가지게 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였다. 주께서 이삭의 기도를 들어 주시니,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게 되었다.』

- 임신하지 못하다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황폐하다, 힘줄을 끊다.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아무런 결실을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Q. 기도를 통한 임신의 의미는?

1. 언약의 자손이 단순히 자연적인 생산과정을 통해서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보이기 위하여 ?

2. 하나님이 정한 때에 경륜을 이루시기 위해 ?

3. 이삭의 신앙의 과정과 성숙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되지 않은 이삭을 준비시키고 기도를 통해 자녀가 태어남으로 자신이 언약의 아들임을 다시 확인시키기 위하여

4. 조급한 리브가는 20년을 기다려야 했다. 조급의 반대인 기다림을 배우는 시기이다.

cf. 그러나 이삭의 축복기도에서는 기다리지 않는다.

-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 이삭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은 임신으로


(창 25: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창 25:22) 『그런데 리브가가 쌍둥이를 베었는데 그 둘이 태 안에서 서로 싸웠다. 그래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 그렇게 기다리던 아기들, 그러나 태중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쟁과 갈등이다.

cf. 두 민족간의 치열하고 끊임없는 관계를 보인 일종의 신호탄

(창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 27:41)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다.』

(민 20:18-20) 『[18] 에돔 왕이 대답하되 너는 우리 가운데로 지나가지 못하리라 내가 칼을 들고 나아가 너를 대적할까 하노라 [19]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우리가 큰길로만 지나가겠고 우리나 우리 짐승이 당신의 물을 마시면 그 값을 낼 것이라 우리가 도보로 지나갈 뿐인즉 아무 일도 없으리이다 하나 [20] 그는 이르되 너는 지나가지 못하리라 하고 에돔 왕이 많은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강한 손으로 막으니』

(민 20:18-20) 『[18] 그러나 에돔 왕은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회답하였다. "당신은 절대로 나의 땅을 지나가지 못할 것이오. 지나가려고 꾀한다면, 우리는 칼을 들고 당신을 맞아 싸우러 나갈 것이오. " [19] 이스라엘 자손은 다시 그에게 부탁하였다. "우리는 큰 길로만 지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 우리의 가축 떼가 임금님의 물을 마시면, 우리가 그 값을 치를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걸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랍니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 [20] 다시 그가 답변을 보내왔다. "당신은 지나가지 못하오. " 그런 다음에 에돔 왕은 많은 군대를 무장시켜서, 그들을 맞아 싸우러 나왔다.』

(삼상 14:17)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에게 이르되 우리에게서 누가 나갔는지 점호하여 보라 하여 점호한즉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어졌더라』

(삼상 14:17) 『그러자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는 군인들에게 명령하였다. "우리 가운데서 누가 빠져 나갔는지 조사하여 밝혀 내어라!" 사람들이 조사하여 보니,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드는 병사가 없었다.』

(삼하 8: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삼하 8:13) 『다윗은 돌아오는 길에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이름을 떨쳤다.』


-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이렇게 괴로워서야, 내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 리브가의 외마디에 가까운 당혹감, 그토록 기다린 아이들이 유산될 수 있는 불안감, 자신의 결단과 판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임을 고백. 이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하면서 이 일을 알아보려고 주께로 나아갔다.

→ 직역 ‘그러자 그녀는 여호와께 묻기 위하여 갔다’

→ 태중의 아기들이 싸우는 것을 한탄한 후 하나님께 나아간 리브가의 신앙의 모습

cf. 조급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가 먼저 하려 하고 해답을 내려한다. 그러나 여기서 리브가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해답도 내릴 수 없게 된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창 25:23) 『주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두 민족이 너의 태 안에 들어 있다. 너의 태 안에서 두 백성이 나뉠 것이다.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길 것이다."』

- 두 국민, 두 민족 : 리브가에게는 전혀 뜻밖이고 예상치 못한 말씀이다.

→ 장자의 계승에 대하여 리브가와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참다운 비젼은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cf. 오빠 라반의 축복

(창 24:59-60) 『[59] 그들이 그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와 아브라함의 종과 그 동행자들을 보내며 [60]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창 24:59-60) 『[59] 그래서 그들은 누이 리브가와 그의 유모를 아브라함의 종과 일행에게 딸려보내면서 [60] 리브가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 "우리의 누이야,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되어라. 너의 씨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 사람을 통해 비젼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확인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리브가는 자신의 본성을 다시 사용한다.


(창 25:24-26) 『[24]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 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창 25:24-26) 『[24] 달이 차서 몸을 풀 때가 되었다. 태 안에는 쌍둥이가 들어 있었다. [25] 먼저 나온 아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몸이 털투성이어서 이름을 에서라고 하였다. [26] 이어서 동생이 나오는데 그의 손이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있어서 이름을 야곱이라고 하였다. 리브가가 이 쌍둥이를 낳았을 때에 이삭의 나이는 예순 살이었다.』


[남편에 대한 실망]

(창 26:6-9) 『[6] 이삭이 그랄에 거주하였더니 [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8] 이삭이 거기 오래 거주하였더니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으로 내다본지라 [9] 이에 아비멜렉이 이삭을 불러 이르되 그가 분명히 네 아내거늘 어찌 네 누이라 하였느냐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생각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죽게 될까 두려워하였음이로라』

(창 26:6-9) 『[6]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7] 그 곳 사람들이 이삭의 아내를 보고서, 그에게 물었다. 그 여인이 누구요? 이삭이 대답하였다. 그는 나의 누이요. 이삭은 그는 나의 아내요 하고 말하기가 무서웠다. 이삭은 리브가가 예쁜 여자이므로 그 곳 사람들이 리브가를 빼앗으려고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8] 이삭이 그 곳에 자리를 잡고 산 지 꽤 오래 된 어느 날, 블러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이 그 아내 리브가를 애무하는 것을 우연히 창으로 보게 되었다. [9] 아비멜렉은 이삭을 불러들여서 나무랐다. "그는 틀림없이 너의 아내인데 어쩌려고 너는 그를 누이라고 말하였느냐?" 이삭이 대답하였다. "저 여자 때문에 제가 혹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cf. 부부는 리브가의 삶의 자리이다. 부부생활에서 또다른 어려움이 생긴다. 이삭의 행동에 대해 리브가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혹시 아버지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했던 것을 들었다면 리브가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더 단정을 내리게 하지 않을까?


[에서에 대한 실망]

(창 26:34-35)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4-35) 『[34] 에서는 마흔 살이 되는 해에 헷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았다. [35] 이 두 여자가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된다.』

→ 헷족속은 셈족계통이지만 여호와신앙이 없고 호전적이다. 오직 여호와 신앙만이 삶의 근간이 되어야할 언약의 가문에서 에서의 결혼은 무책임하고 경솔하다.

-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 : 근심(모라 הרמ)는 ‘쓰다, 가혹하다, 슬프다’의 ‘마라르’(ררמ)에서 나온 말로 에서와 며느리는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슬픔과 비통을 주는 대상이다.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였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 야곱이 기도받은후 에서가 분노로 야곱을 죽이려 함을 듣고서 야곱을 준비시키고 이삭을 설득한다. 반성이 없다..

- 내 삶이 싫어졌거늘 : 쿠츠(ץוק) 원망하다, 가증히 여기다, 근심하다. - 혐오스러운 동물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헷족속 며느리들이 얼마나 싫었는지 리브가의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cf. 이 표현은 하나님이 철저하게 진멸하다고 명령하실 때도 사용되었던 표현이다.

(레 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레 20:23)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낼 민족의 풍속을 따라 살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싫어하였다.』


Q. 과연 리브가는 에서를 바르게 키웠을까?

[리브가의 야곱 편애]

(창 25:27-28)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창 25:27-28) 『[27] <에서가 맏아들의 권리를 팔다> 두 아이가 자라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서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되어서, 주로 집에서 살았다.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에 맛을 들이더니 에서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 조급한 리브가를 위한 맞춤훈련

1. 20년을 기다리게 한다.

2. 태중의 싸움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한다.

3. 하나님에게서 약속을 받는다.

4. 그 약속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리브가의 오판과 결과]

(창 27:1-2)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창 27:1-2) 『[1] 이삭이 늙어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어느 날, 맏아들 에서를 불렀다. "나의 아들아." 에서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이삭이 말하였다. "얘야, 보아라, 너의 아버지가 이제는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진다.

→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은 자신의 역할(죽음전 축복기도)을 잊는다.


(창 27:3-4)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창 27:3-4) 『[3] 그러니, 이제 너는 나를 생각해서 사냥할 때에 쓰는 기구들, 곧 화살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서 사냥을 해다가 [4]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서, 나에게 가져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음껏 축복하겠다."』

→ 음식을 원한다. 자신의 비어있음을 채우고자 한다.


(창 27:5-7)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6] 리브가가 그의 아들 야곱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가 들으니 이르시기를 [7]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가져다가 별미를 만들어 내가 먹게 하여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네게 축복하게 하라’ 하셨으니』

(창 27:5-7) 『[5] 이삭이 자기 아들 에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리브가가 엿들었다. 에서가 무엇인가를 잡아오려고 들로 사냥을 나가자 [6] 리브가는 아들 야곱에게 말하였다. "얘야, 나 좀 보자. 너의 아버지가 너의 형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7] 사냥을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께 가져 오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잡수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주 앞에서 너의 형에게 축복하겠다고 하시더라.』

→ 리브가는 이삭의 이야기를 엿듣는다. 에서는 사냥을 하러 나간다.

→ 리브가는 야곱을 불러 상황을 설명한다. 왜 다음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이유로 삼는다.

- 솨마(עמשׁ) : 경청하여 듣는다.

Q. 리브가는 왜 엿들은 것일까?

- 우연히 듣다 vs 엿듣다 ?

- 이삭의 장막에서 이루어졌을 내용을 리브가는 밖에서 들었을 것이다. 상황적으로 우연히 들었다기 보다는 에서가 장막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고 그것을 이상히 여긴 리브가는 긴장하며 귀를 기울였을 것이다. 이삭은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했을 것이다. 곧 리브가는 우연히라고 변명하겠지만 엿듣는 것으로 연결된다.


Q. 리브가는 자신에게 주신 비젼을 남편에게 말했을까?

1. 말하지 않았다면?

- 분명하게 말하는 리브가가 왜 말하지 않았을까?

cf. 출가할 때 단호하게 말하고 출발했던 리브가다. 야곱을 라반에게 보낼 때 강력하게 자기주장적으로 말하고 자기생각대로 이끌어간다. 그런 리브가가 왜 이삭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 전통적 풍습을 따르는 리브가라서?

cf. 처음 본 아브라함의 종과 낙타에게 물을 주거나 이삭을 볼때 너울을 내린다.

2. 말했다면 ?

- 남편은 왜 아내의 말을 잊은 것인가?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인가 아님 가부장적 권위로 아내에게 주신 약속을 누른 것인가?

cf. 하나님은 기도한 이삭이 아닌 리브가에게 말씀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가부장적 권한은 이삭에게 있음에도 리브가에 주심으로 주도적 모습이 바뀌게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 대화와 관계성의 부족-결국 말을 했거나 하지 않았어도 서로가 대화하거나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입장을 고수하는 것.. → 점점 대화의 필요성이 없어진다.


(창 27:8-10) 『[8]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9]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10] 네가 그것을 네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서 그가 죽기 전에 네게 축복하기 위하여 잡수시게 하라.”』

(창 27:8-10) 『[8] 그러니 얘야, 네 어머니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여라. [9] 양 떼가 있는 데로 가서 어린 것으로 통통한 놈 두 마리만 나에게 끌고 오너라. 너의 아버지가 어떤 것을 좋아하시는지, 내가 잘 아니까 아버지가 잡수실 별미를 만들어 줄 터이니, [10] 너는 그것을 아버지께 가져다 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그것을 잠수시고서 돌아 가시기 전에 너에게 축복하여 주실 것이다."』

- 그런즉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 ‘내 말을 따라’ - 원형-솨마(עמשׁ), 명령형-쉐마(עꗫꚉ)

→ 여기서는 명령형(쉐마)으로 쓰여서 엄마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강력한 의미

- 내가 네게 명하는 대로

→ 신속하게 방법을 찾고 그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야곱에게 지시한다.

→ 리브가는 남편에게 바른 것을 말하고 멈추게 해야 했다. 그러나 아들에게 잘못된 방법을 지시한다. 리브가는 자신에게 익숙한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cf. 라반의 모습을 보면 셈이 빠르고 거짓말을 잘한다.


Q. 리브가가 이삭의 이야기를 엿들은 이유는 무엇인가?

- 우연히든 하나님이 듣게 하셨든간에 자신의 바램을 실현하는 기회로 받아들인다.

∵⇒ 리브가의 빠른 결단과 신속한 행동은 이삭의 실수를 막아야 했다.

→ 이삭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사람은 리브가였다. 리브가는 남편의 실수를 막아줄 수 있는 아내였다. 그런데 자신의 결단을 분명히 말하는 리브가임에도 남편의 실수에 대해서는 수정하려 하지 않는다.

cf. 이삭의 그랄에서의 잘못(26:6-11)에서도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며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말하지 않는다.

⇒ 오히려 ‘당신이 그런 식이면 나도 그렇게 할꺼야’하는 식이다. 여기서 리브가는 빠른 결단과 신속한 행동을 자신의 바램을 이루려는 기회로 삼는다.

→ 겉으로는 신앙의 내용이 있지만 속은 인본적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다.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게 하려 한다.

⇔ 잘못된 신앙적 확신은 자신의 잘못을 못보게 한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실행한다. 그러나 이럴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스스로 하실 일이 아닌 자신의 뜻이 된다. 겉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속은 자신의 바램을 자신이 이루어야 할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 염소 떼에 가서 거기서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를 내게로 가져오면

→ 아들을 행동하게 한다. ‘가라-골라라-가져와라’

→ 잘못된 길을 아들에게 지시하고, 행동하게 한다. 아들에게 고르게 하고 가져오게 한다. 공범을 만든다. 아버지를 속이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야곱의 마음을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도록, 자신의 바램을 이루도록 한다.

- 좋은 염소 새끼 두 마리

→ 보다 맛있는 부위를 택하기 위해, ‘마음껏’ 드시도록 양을 많이 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써서 새끼를 통해 연한 고기를 제공하기 위해, 염소는 야생고기와 흡사하므로

⇒ 치밀한 방법의 제시는 오로지 이삭을 어려움 없이 속이기 위하고 아들에게 축복기도를 받게 하려고, 즉 자신의 바램을 이루기 위해

cf.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를 위하여 그가 즐기시는 별미를 만들리니

→ 리브가는 남편의 입맛을 안다. 자신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남편의 기분을 최상으로 만드는 방법을 안다.

→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만큼 이삭의 축복기도를 가로채는데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 27:11-12) 『[11] 야곱이 그 어머니 리브가에게 이르되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매끈한 사람인즉 [12]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 27:11-12) 『[11]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하였다. "형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이렇게 피부가 매끈한 사람인데, [12] 아버지께서 만져 보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버지를 속인 죄로,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 것이 아닙니까?"』

→ 야곱은 두렵다. 두려운 부분을 말한다. 이것은 계획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게 한다.

⇒ 야곱은 바르지 않은 길을 보이는 엄마에게 바른 것을 말해야 했다. 그렇게 말했다면 두려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같은 마음이라 두려움을 보완하고자 한다.


(창 27:13)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따르고 가서 가져오라.”』

(창 27:13)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였다. "아들아, 저주는 이 어머니가 받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가서 양 두 마리를 끌고 오너라."』

→ 계속해서 아들에게 행동하게 한다. 틀린 방법임에도 축복을 야곱에게 주려는 엄마의 마음이다.

⇒ 자신의 비젼과 아들을 향한 모성애에 가리워져 자신이 저주를 받더라도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방법으로 성취하려고 하는 인간적 의지를 보인다.

cf. 이후 리브가는 더 이상 야곱을 볼수 없는 상황이 되며, 에서와 원하지 않는 며느리와 같은 집에서 살게 된다. 축복은 가로챘지만 누리지는 못한다.


(창 27:14-17) 『[14] 그가 가서 끌어다가 어머니에게로 가져왔더니 그의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더라. [15] 리브가가 집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16]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17]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창 27:14-17) 『[14] 그가 가서 양 두마리를 붙잡아서, 어머니에게 끌고 오니 그의 어머니가 그것으로 아버지의 입맛에 맛게 별미를 만들었다. [15] 그런 다음에 리브가는 자기가 집에 잘 간직하여 둔 맏아들 에서의 옷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꺼내어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혔다. [16] 리브가는 염소 새끼 가죽을 야곱의 매끈한 손과 목덜미에 둘러 주고 나서 [17] 자기가 마련한 별미와 빵을 아들 야곱에게 들려 주었다.』

→ 야곱은 엄마의 말대로 한다. 가서-고르고-가져온다.

→ 리브가는 별미를 만들고, 에서의 옷을 가져오고, 야곱에게 입히고, 분장을 시키고, 음식을 야곱의 손에 올려 놓는다.

⇒ 리브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만약 자신이 변장할 수 있었다면?

→ 잘못된 모성애를 보여준다.


창 27:18-29 - 야곱의 속임 vs 아버지의 속음

창 27:30-40 - 에서의 분노


(창 27:41) 『그의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한 그 축복으로 말미암아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심중에 이르기를 “아버지를 곡할 때가 가까웠은즉 내가 내 아우 야곱을 죽이리라.” 하였더니』

(창 27:41) 『에서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것 때문에 야곱에게 원한이 깊어갔다. 그는 혼자서 "아버지를 곡할 날이 머지 않았으니 그 때가 되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하고 마음을 먹었다.』

→ 에서는 결심한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야곱에게 복수하려 한다.

cf. 그러나 이삭은 이후에 180세에 사망한다. 곧 에서는 아버지를 사랑하여 복수의 날을 그 뒤로 잡는다. 그렇다면 야곱이 라반의 집에 갈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삭이 연로하여 금방 죽을 것이라 여겼다. → 불안은 조급한 행동을 하게 한다.


(창 27: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창 27:42)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하고 다니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 아들을 불러다 놓고서 말하였다. "너의 형 에서가 너를 죽여서 한을 풀려고 한다.』- 들리매 : 나가드(דגנ), ‘앞에 두다, 나타나다’ 여기서는 ‘선언하다, 고백하다’는 의미

→ 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동생을 죽이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음을 나타내고, 리브가는 야곱을 살리기 위해 대책을 세워야 했다.

-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 이부분은 리브가의 특징인 엿듣기는 아니지만 에서의 선언을 듣게 된다. 이것으로 리브가의 긴장은 계속된다.

-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 야곱을 죽여 복수함으로 마음에 쌓인 감정을 풀고 스스로 위안을 얻게 하려 한다.

⇒ 조급한 판단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죄를 짓게 한다.


(창 27: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창 27:43) 『그러니 나의 아들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이제 곧 하란에 계시는 라반 외삼촌에게로 가거라.』

- 내 말을 따라 - 원형-솨마(עמשׁ), 명령형-쉐마(עꗫꚉ)

→ 8절에서처럼 명령형으로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아들에게 강요한다.

⇒ 처음 잘못된 단추채우기는 계속 이어진다. 자신의 판단이 친정으로 보내니까 야곱에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야곱에게는 고난을 받으러 가는 곳이었다.

- 들으라-일어나라-피신하라


(창 27: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창 27:44)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너는 얼마동안 외삼촌 집에 머물러라.』

- 몇 날 동안 → 리브가의 오판, 리브가는 다혈질의 에서가 금방 풀릴 것이 예상한다. 그것은 그녀의 바램일 뿐이다.


(창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창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너의 형이 잊으면 거기를 떠나서 돌아오라고 전갈을 보내마. 내가 어찌 하루에 자식 둘을 다 잃겠느냐!"』

-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 계속 자신의 오판으로 아들에게 잘못된 희망을 준다.

-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 리브가의 불안

→ 당시의 통용되는 사회정의법은 에서가 야곱을 죽이면 무고한 자의 살인이 됨으로 다시 다른 혈족에 의해 피의 보복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이르되 “내가 헷 사람의 딸들로 말미암아 내 삶이 싫어졌거늘 야곱이 만일 이 땅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면 내 삶이 내게 무슨 재미가 있으리이까?”』

(창 27:46) 『리브가가 이삭에게 말하였다. "나는 헷 사람의 딸들 때문에 사는게 아주 넌더리가 납니다. 야곱이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딸들, 곧 헷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들인다고 하면 내가 살아 있다고는 하지만 나에게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습니까?"』

→ 리브가의 이삭설득 : 이삭의 에서의 결혼으로 근심했던 것을 이용한다.

(창 26: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창 26:35) 『이 두 여자가 나중에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가 된다.』

cf. 리브가는 이삭을 마음대로 조종한다. 그의 입맛을 알고 맞는 별미를 만들듯,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에서에 대한 아쉬움을 알고 있었다. 이어지는 이삭의 행동을 조정한다.

(창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창 28:1) 『이삭이 야곱을 불러서 그에게 복을 빌어 주고 당부하였다.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아라.』


* 정리

- 자신의 방법은 오판하게 되고, 원하지 않은 결과가 주어진다.

- 그러나 오판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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