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6. 야곱 - 벧엘에서, 하란에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11. 17. 16:24
 벧엘에서의 야곱의 전환 -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벧엘에서의 야곱의 전환 - 일반적인 것에서 특별한 것으로]

파리에 도착할 때 나를 긴장하게 한 것은 아무도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열흘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바라는 것이 있다. 곤란할 때 그것을 간단히 해결시킬 것을 바란다. 우리는 상상한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이것저것이 있으면 간단하다고..

그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반적인가, 특별한 것인가? 그것은 어디서 나오나? 내게서 오는가 하늘에서 특별하게 떨어지는가?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창 28: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800km, 루스(벧엘)는 90km 정도 거리.


 

Q. 야곱의 심정은 어떨까?

(창 28: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창 28: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를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 조금 전까지는 모든 것을 다 얻은 축복자였던 그가 한 순간 모든 것을 다 잃은 노숙자가 되었다.

Q. 야곱은 이제 노숙자로 끝인가 반전이 있는가?

Q. 야곱의 심정은 어떨까? 지금 그는 혼자다. 모두가 함께 할 것같고, 특히 믿었던 엄마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텐데 그 엄마가 자신을 보내고, 아빠가 보내고, 형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상황이다.

Q. 야곱은 혼자인 적이 있었을까? 지금까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걷다걷다 지쳐 주변의 돌을 주워 베개로 삼고 눕는다. 혼자인 적이 없는 야곱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혼자라는 두려움일까?

Q. 야곱은 무엇을 기대할까? 감정적으로 우울한 상태에서 야곱은 긍정적 미래보다 처량한 자신을 처지를 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 열쇠가 될 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Q.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감정적 상황에 그는 일어날 수 있을까? 끝없이 떨어져야 하는가, 아니면 바닥을 치고 일어나게 될까?

⇒ 과연 그는 무엇으로 일어나는가? 특별한 것 or 일반적인 것?

→ ‘꿈’ - 지친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누웠을 때 자연스럽게 잠을 자고 잠은 꿈으로 이어진다.

⇒ 그가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끝인데, 그는 자신에게 있는 것,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그때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꿈을 꾸게 된다. 마치 땅과 하늘을 잇는 ‘사다리’처럼 ‘꿈’은 자신의 상황과 미래를 연결한다. 자신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보고 그 하나님의 언약을 떠올린다. 그토록 자신이 갖고 싶었던 장자의 축복을 다시 만난다. 곧 자신에게는 아무도 없지만 그동안 그토록 바라본 축복의 하나님을 만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신 그분이 야곱의 하나님으로..

⇒ 여기서 나오는 놀라운 반전(은혜)은 일반적인 하나하나의 그것이 하나님이 안에서 특별한 것으로 재해석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야곱에게 너무나 일반적인 꿈을 통해서..

⇒ 그동안 야곱이 추구했던 하나의 대상(일반적인 장자의 축복)이 벧엘에서 자신을 설명하는 본질이 되었다. ex) 하나의 장남감이 특별한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어린시절의 기억물이 되게 한다.

* 11-19절 : 일반적인 것이 특별한 것으로 된다.(부정관사 a → 정관사 the)

(창 28:11-19)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 ‘한 곳’(11)이 ‘(바로) 그 곳’(19)이 된다.

- ‘한 돌’(11)이 ‘기름부은 돌기둥’(18)이 된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8)

- ‘하늘, 하나님의 사자’(12)가 ‘하늘의 문, 하나님의 전’(17)이 된다.

- ‘언약을 주시는 여호와’(13)가 ‘자신과 동행하는 여호와’(16)가 되신다.

- 그 사이에 언약이 있다.(13-15)

⇒ 야곱이 그동안 의식적으로 본 것은 상황이었으나, 실제로 야곱이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던 것은 땅에서 하늘로 세워지는 사다리의 끝에 계신 하나님이다.

Q. 혼자라서 두려워하고 있는 야곱이 듣고 싶었던 말은?

→ 약속의 주체인 여호와가 자신과 동행한다는 것에 안심, 즉 이제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cf. 13-14절은 하나님이 누구이고 자손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지를 말씀하고 있다. 특히 15절은 “야곱을 향한 약속”이다. - 동사를 중심으로 구분

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②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③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④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의의 변화]

① 야곱의 자각

(창 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브엘세바에만 계신줄 알았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빈들에도 있음을 놀란다.

→ 당시의 신개념 : 각 신들이 특정지역에만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여겨, 그 지역을 떠나면 그 신의 영역에서도 벗어난 것으로 여겼다. 그런 당시의 신개념을 넘어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알다(야다 עדי)는 지적이 깨달음을 넘어 감정적으로도 동조하고 아는 바를 실천하는 것까지 매우 포괄적인 의미이다. 이것이 부정어와 함께 쓰여 이순간을 기점으로 알지 못했던 이전과 이제는 알게된 이순간이 나뉘게 된다.


② 야곱의 두려움

(창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 28: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 두렵도다 :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 야레(ארי) ‘전율하다, 떨다’는 두려움과 함께 존경과 경외심으로 두려워함도 의미한다.

⇒ 그동안 몰랐던 하나님에 대해 알고(야다) 경외감으로 떨게(야레) 된다.

cf. 이후에도 나오는 야곱의 두려움

(창 31:31)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창 32: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창 32: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③ 야곱의 실천

(창 28:18-19)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창 28:18-19) 『[18]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a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a. 하나님의 집)』

- 동사 : 일어나 .. 가져다가 .. 세우고 .. 붓고 .. 이름을 벧엘이라 하다.

→ 일반적인 돌과 장소와 시간이 특별하게 되었다.


④ 야곱의 서원 및 결단

(창 28:20-22)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창 28:20-22) 『[20]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 15절에 대한 대답

① 내가 너와 함께 있어 →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②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③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④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⑤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정리]

①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② 일반적인 것이 특별한 것으로 바뀐다.

③ 지금까지 하나의 신을 추구했던 야곱에게 그 하나님으로 오셨다.

④ 한 신의 말씀이 야곱에게 특별한 하나님으로 자각과 두려움과 실천과 결단으로 이어진다.

⑤ 시선도 의미도 마음도 행동도 바뀐다.

⇒ 진주를 목걸이 되게 하신 하나님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다]

사람이 누구를 선택할 때 무엇으로 선택하는가?

자신에게 친숙한 기준에 의해 선택한다. 선택의 기준은 자기 중심적이다.


 

* 배경상황 설명 → 라헬을 만나기전 배경을 알려준다.

(창 29:1) 『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창 29:1) 『야곱이 줄곧 길을 걸어서 드디어 동방 사람들이 사는 땅에 이르렀다.』

- 길을 떠나 : 직역-두 발을 들다. → 곧장 생동감 있게 행동을 취하는 히브리적 표현이다. 집에서의 우울한 출발과 달리 루스가 벧엘이 된 후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고 힘있게 다시 출발한다. 그가 바라보고 느껴지는 미래가 달라졌다.

- 동방 사람의 땅 : 가나안의 브엘세바에서 메소포타미아의 하란까지 거리는 800km, 하루에 30-40km를 걸어도 20-27일정도 걸린다.


(창 29:2)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창 29:2) 『거기 들에 우물이 있는데 그 곁에 양 떼 세 무리가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곳은 목자들이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인데 그 우물 아귀는 큰 돌로 늘 덮여 있어서,』

- 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 야곱이 우물을 발견한다. 중동에서 우물은 다음 우물까지 필요한 물을 주는 곳이고, 이정표이기도 하다.

- 양과 목자들을 발견한다. 자신의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창 29:3) 『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창 29:3) 『양 떼가 다 모이면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그 돌을 굴려내어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 먹인 다음에 다시 돌을 굴려서 우물 아귀를 덮고는 하였다.』

→ 모두가 모여야 돌을 옮기는 그들의 규칙(전통?) 독점이 없는 공동소유로서 평화규칙


* 야곱과 목자들과의 대화

(창 29:4-8) 『[4]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 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창 29:4-8) 『[4] 야곱이 그 목자들에게 물었다. "여보십시오, 어디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하란에서 오는 길입니다." [5] 야곱이 그들에게 또 물었다. "나홀이라는 분의 손자인 라반이라는 분을 아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아, 예, 우리는 그를 잘 압니다." [6] 야곱이 또 그들에게 물었다. "그 분이 평안하게 지내십니까?" 그들이 대답하였다. "잘 삽니다. 아, 마침, 저기 그의 딸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옵니다." [7] 야곱이 말하였다. "아직 해가 한창인데 아직은 양떼가 모일 때가 아닌 것 같은데,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다시 풀을 뜯기러 나가야 하지 않습니까?" [8]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양 떼가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양 떼가 다 모이면 우물 아귀의 돌을 굴려내고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입니다."』

→ 우연히 만난 목자들을 통해 순탄하게 느껴지는 야곱의 여정을 본다.

→ 목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목자들의 공동규칙과 라헬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 야곱은 목자들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하지만 목자들은 자신들의 규칙을 강력하게 지키겠다고 한다.

Q. 목자들에게 우물의 규칙을 들었음에도 라헬이 왔을 때 돌을 옮긴다?

⇒ 1-8절 부분이 없다면 바로 라헬을 만나는 부분이 되고, 라헬의 양에게 물을 먹이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게 되며, 벧엘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약속한 후 얼마나 순탄하게 인도받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 라헬을 만나다.

(창 29:9-12) 『[9] 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창 29:9-12) 『[9] 야곱이 목자들과 말하고 있는 사이에 라헬이 아버지의 양 떼를 이끌고 왔다. 라헬은 양 떼를 치는 목동이었다. [10]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가 치는 양 떼를 보고는 우물 아귀에서 돌을 굴려내어 외삼촌의 양 떼에게 물을 먹였다. [11] 그러고 나서 야곱은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기쁜 나머지 큰소리로 울면서 [12] 라헬의 아버지가 자기의 외삼촌이라는 것과, 자기가 리브가의 아들이라는 것을 라헬에게 말하였다. 라헬이 달려가서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말하였다.』

- 야곱이 말하는 중에 라헬이 양과 함께 온다.

- 야곱을 그들을 보고 나아가 돌을 옮기고 양떼에 물을 먹인다.

cf. 여럿이 모여야 돌을 옮기는 독점방지의 평화적 규칙을 왜 야곱은 지키지 않았을까? 그런데 주변의 목자들과 라헬은 왜 그를 막지 않았을까? 오로지 라헬만을 위해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행위는 타인보다 자기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cf. 리브가가 낙타의 물을 먹이듯 야곱도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 과정은 무엇을 의미할까?

⇒ 1-8절의 배경상황설명-함께 돌을 옮기는 규칙-이 있었기에 지금 돌을 옮기고 물을 먹이는 야곱의 행동이 더욱 특별한 의미를 두게 된다.

Q. 돌을 혼자 옮겼을까, 다른 목자들과 함께 옮겼을까? → 돌은 혼자 들기는 어렵다. 그런점에서 야곱이 혼자 했는지 다른 목자들과 함께 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라헬 대신 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 야곱이 보는 라헬의 첫인상은 양을 몰고 오는 모습니다. 이 모습에서 야곱은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해준 분으로 라헬에서 그 모습을 발견한다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라헬에게는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 라헬이 보는 야곱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야곱은 한달을 홀로 여행한 상황이다.

→ 야곱은 부모의 당부가 있었기에 외삼촌에게 가는 것이 결혼과 연결되어 기대를 하게 되지만 라헬은 전혀 생각지 않은 상황이라 상당히 당황했을 것이다.

- 이후 야곱은 울면서 자신을 소개한다.

- 라헬은 아버지에게 달려가 알린다.

cf. 라헬의 적극성은 리브가의 모습과 같다.


* 라반을 만나다.

(창 29:13-14)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 29:13-14) 『[13] 라반은 누이의 아들 야곱이 왔다는 말을 듣고서 그를 만나러 곧장 달려와, 그를 보자 마자 껴안고서 입을 맞추고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야곱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라반에게 다 말하였다. [14] 말을 듣고 난 라반은 야곱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와 한 피붙이이다." 야곱이 한 달을 라반의 집에 머물러 있을 때에,』

- 라반의 반응 : 리브가 때처럼 달려와 맞이한다. 같은 혈족임을 강조한다.

- 야곱의 반응 : 자기의 모든 일을 말한다.(cf. 아브라함의 종도 그러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난다.


* 결혼을 위해 라헬을 선택하다.

(창 29: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 29:15)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의 조카이긴 하다만, 나의 일을 거저 할 수는 없지 않느냐? 너에게 어떻게 보수를 주면 좋을지 너의 말을 좀 들어 보자."』

→ 한달동안 야곱을 지켜본 라반은 야곱에게 근로계약을 제안한다. 라반의 의도는 그와 고용인과 근로자의 관계가 되고, 무임금 노동자를 확보하려 하며, 이후 그는 일방적인 계약파기가 계속된다.

※→ 그러나 지금 우리의 초점은 왜 야곱은 노동의 댓가를 라헬로 정하는가 이다. 그 순간 그만큼 야곱에게 필요한 대상은 물질보다 엄마라면 라헬은 그에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줄 존재가 된다.


(창 29:16-17)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6-17) 『[16] 라반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맏딸의 이름은 레아이고, 둘째 딸의 이름은 라헬이다. [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 야곱에게 보이는 것은 레아에게는 단점이고 라헬에게는 장점이다. 레아의 것이 단점이 되는 것은 이삭이 시력이 어두웠고 그것을 이용해서 장자의 축복을 탈취하였기에 다시 레아의 눈을 보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게 하는 것이 된다. 반면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라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곱은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기 보다는 그리운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을 것이다.


(창 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 29:18)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제가 칠년 동안 외삼촌 일을 해드릴 터이니, 그 때에 가서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과 결혼하게 해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 더 사랑하므로 : 야곱이 노동의 댓가로 라헬을 선택한 이유..

→ 야곱의 근로계약조건 : 지참금이 없는 야곱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7년이란 엄청난 댓가로 무보수 노동을 작정한다. 이렇게 상식 이상의 제안을 한 것은 라헬과 꼭 결혼하고픈 야곱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 근로고용계약체결

(창 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 29:19) 『그러자 라반이 말하였다. "그 아이를 다른 사람과 짝지어 주는 것보다, 너에게 짝지어 주는 것이 더 낫겠다. 그러면 여기서 나와 함께 살자."』

- 나으니(더 낫겠다) : 좋으니, 라반은 야곱의 너무나 후한 계약조건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 나와 함께 있으라 : 계약체결로 이제 야곱은 공식적으로 라반의 집에 있게 되었다. 라반은 결혼을 조건으로 고용계약을 맺는다.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20)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일을 하였지만 라헬을 사랑하기 때문에, 칠 년이라는 세월을 며칠같이 느꼈다.』

-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 불리한 조건에도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곱은 7년을 며칠같이 여겼다.


* 라헬을 얻기 위한 야곱의 행동

(창 29: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창 29:21) 『칠 년이 지난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약속한 기한이 다 되었습니다. 이제 장가를 들게 해주십시오. 라헬과 결혼하겠습니다."』

- 내 기한이 찼으니 : 근로고용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알린다.

-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 7년이 지났음에도 라반이 약속을 이행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자 능동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한다.


(창 29: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창 29:22) 『라반이 그 고장 사람들을 다 청해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

→ 라반이 계약을 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잔치를 통해 야곱과 레아의 결혼을 공식화시킨다.


(창 29: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창 29:23) 『밤이 되었을 때에, 라반은 큰 딸 레아를 데려다가 신방으로 들여보냈는데 야곱은 그것도 모르고 레아와 동침하였다.』

- 직역 : “그러자 그 저녁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그의 딸 레아를 잡았다. 그리고 그녀를 그에게 들어가게 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 라반은 자기 의도대로 순조롭게, 야곱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된다.

cf. 라반은 레아를 넣는다. 마치 리브가가 야곱을 넣듯이.. 그리고 라반은 속이는 결정을 신속히 한다. 리브가와 같다.


(창 29: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창 29:24) 『라반은 여종 실바를 자기 딸 레아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 라반은 실바를 레아의 여종으로 준다. 마치 이미 준비된 상태같다.


(창 29: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됨이니이까?”』

(창 29:25) 『아침이 되어서 야곱이 눈을 떠보니, 레아가 아닌가!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외삼촌께서 저에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라헬에게 장가를 들려고 외삼촌 일을 해 드린 것이 아닙니까? 외삼촌께서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야곱이 아침에야 안다. 라반에게 계약위반을 제기한다.

cf. 야곱은 자신의 방법으로 에서에게서 축복기도를 가로챘다. 이제 같은 방식으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이 했던 것처럼 치밀한 계획의 결과였다.


(창 29:26-27)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 29:26-27) 『[26] 라반이 대답하였다.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 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 [27] 그러니 이레 동안 초례 기간을 채우게. 그런 다음에 작은 아이도 자네에게 주겠네. 그 대신에 자네는 또 칠 년 동안 내가 맡기는 일을 해야 하네."』

→ 라반은 전혀 근거조항에 없던 이야기를 한다. 설득력이 없는 일방적인 강요이다.

-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 공개적인 결혼식기간인 일주일을 채우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도 무효이고 7년도 무효가 된다.

-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

→ 라반은 야곱에게 다시 칠년을 강요한다. 야곱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 하지만 라헬과 결혼하고픈 야곱은 아무런 힘이 없다. 라헬을 위해 다시 7년을 봉사하라 한다.

cf. 라헬을 위해 14년, 레아를 위해 0년..


(창 29:28-30)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창 29:28-30) 『[28] 야곱은 그렇게 하였다. 그가 레아와 이레 동안 지내고 나니, 라반은 자기 딸 라헬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29] 라반은 여종 빌하를 자기 딸 라헬에게 몸종으로 주었다. [30] 야곱이 라헬과 동침하였다. 야곱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그는 또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의 일을 하였다.』

→ 야곱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결혼기간이 지나고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는다.

→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7년을 봉사한다.


[정리-야곱을 중심으로]

① 창세기 29장은 야곱이 라헬을 만나고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② 이삭과 리브가의 당부를 야곱은 기억하고 실천한 것일까?(창 28:1-5)1) 그러나 29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라헬이 아름답게 보이다.

③ 야곱에게 레아에게는 약점(아빠의 외상?)이, 라헬은 장점(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이는 야곱이 과거를 직면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것이 아닐까?

④ 야곱은 라헬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마음을 그녀에 대하여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⑤ 야곱은 자신의 빈자리를 채우는데 라헬을 사랑함으로 라반의 제안에 7년의 무임금노동을 말할 정도로 라헬을 귀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⑥ 라헬을 사랑하는 야곱의 마음은 7년을 수일처럼 느낄정도이다.

⑦ 7년이 지나도 의사가 없는 라반에게 강력히 주장하여 결혼을 하게 된다. 빈자리를 채우고 싶은 강한 요구의 표현이다.


[정리-이스라엘을 중심으로]

①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야곱의 연애이야기가 목적이 아니다. 그 속에 이스라엘지파 신앙공동체를 어떻게 이루어지며 세워져 가는지 이스라엘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② 야곱이 개인적으로 라헬을 더 사랑하지만 이스라엘의 신앙은 레아의 소생에게 흘러간다.(레위, 유다를 중심으로)

③ 레아의 무덤은 가족묘 안에 있지만 라헬의 묘는 따로 있다.


(창 35:23) 『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창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창 35:24) 『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창 35: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창 35: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야곱의 외상과 레아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

① 그토록 원했던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은 더 이상 집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② 이삭과 리브가는 야곱에게 라반의 딸로 아내를 맞으라는 당부를 받는다.

③ 홀로 라반의 집으로 향하는 야곱은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함께 라반에게로 간다.

④ 야곱은 라헬을 만나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14년을 라헬을 위해 노동한다.

⑤ 야곱은 레아를 원하지 않았고 그녀를 위해 노동하지도 않았고, 라반에게 속은 것이 싫었다.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사랑받지 못함 : 키 세누아(האָוּנꙺ־יꗑ) ‘세누아’는 ‘가증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사네’(אנשׂ)의 분사수동태. 단순히 사랑받지 못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cf. 야곱이 레아를 싫어하는 이유?

① 자신은 라헬을 사랑하는데 원하지 않은 결혼을 하게 되어서..?

② 그렇게 자신을 속인 라반에 대해 반감을 표현하는 레아를 희생자로..?

③ 수일처럼 여긴 7년의 노동이 헛것이 되었다는 아까움에 대한 분노때문에..?

④ 레아의 시력이 약함(눈매가 부드러움)이 자신의 외상을 직면하게 되어..?

⇒ ①-③은 의식적인 부분이고 ④는 무의식적인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야곱은 레아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가해자가 된다. 

(창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 보시고 : 라아(האר)-(사물을 눈으로) 보다, 쳐다보다, (상대방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섬세하게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다, 알다.

→ 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레아의 처지와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이다.

- 그의 태를 여셨으나 : 직역 ‘그리고 그가 여셨다’,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의 막힌 레아의 삶을 풀어주신다. 약자가 된 레아를 보시고 그에게 행하신 것, 그래서 레아가 위로를 삼을 수 있는 것을 주신다.


cf. 하나님의 판단기준은? 사랑과 공의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사 11:1-4)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2] 주의 영이 그에게 내려 오신다.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권능의 영, 지식과 주를 경외하게 하는 영이 그에게 내려오시니, [3] 그는 주를 경외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재판하지 않으며,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결하지 않다. [4]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한다. 그가 하는 말은 몽둥이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가 내리는 선고는 사악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Q.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하나님의 뜻(섭리,관점) 안에서 대상을 보신다..?

Q. 하나님이 보신 것은 왜 가해자인 야곱보다 레아의 상처가 먼저였을까?

→ 야곱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레아를 싫어한다.

→ 야곱의 무의식적 행위는 외상으로 인한 가해임에도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 야곱은 아직 전혀 자신의 외상을 직면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 이런 상황에서 레아에게 아무것도 없다면, 남편이 자신에게 올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레아가 느낀다면 레아는 어찌될까? 그런 그에게 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은 레아에게 희망이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닐까?

→ ∴ 곧 하나님은 준비되지 않은 야곱보다 간절함이 있는 레아를 먼저 보시고 태의 문을 여신다.


Q. 그렇다면 직면하고 싶지 않은 야곱의 외상은 언제 치료되는가?

→ 130세때 이집트로 갈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다.

(창 46: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147세때 요셉의 아들에게 축복기도할 때, 자신이 기도받던 때와 똑같다.

(창 48: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비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Q. 시간이 흐를수록 레아는 야곱에게 어떤 존재가 되고 관계가 되는가?

→ 성경은 라헬의 죽음만 기록되어 있다. 라헬은 2차벧엘이후 베냐민을 출산중 사망한다.

(창 35:19-20)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 레아의 장례는 야곱의 회상을 통해 볼 때 이집트로 오기전에 있었을 것같다.(130세 이전)

(창 49:31)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 ① 야곱과 레아의 관계개선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

② 다만 레아는 죽음은 라헬보다 이후였고, 언제나 라헬이 우선이었던 야곱은 가족묘에 레아를 장사했다.

③ 야곱의 축복순서가 레아의 아들(4남과 2남)이 먼저이고, 빌하와 실바, 그리고 마지막 라헬의 아들 순이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cf. 31절은 17절과 반대-레아와 라헬의 상황이 달라진다.

(창 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 29:17) 『레아는 눈매가 부드러웠으며, 라헬은 몸매가 아름답고 용모가 예뻤다.』 

[야곱가정의 분위기-부인들과 12아들 1]

*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정에서 분위기는 어떤 영향을 주나? 서로 주고받는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정의 모양들..

- 야곱 : 눈에 대한 외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레아는 싫어하고 어머니를 닮은 라헬은 사랑한다.

- 레아 vs 라헬 : 자신을 싫어하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 vs 남편의 사랑은 받지만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라헬의 갈등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창 29:31)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창 29:31) 『주께서는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열어 주셨다. 라헬은 임신을 하지 못하였으나,』

- 사랑받지 못함 : 키 세누아(האָוּנꙺ־יꗑ) ‘세누아’는 ‘가증히 여기다, 싫어하다’는 ‘사네’(אנשׂ)의 분사수동태. 단순히 사랑받지 못함을 넘어 적극적으로 미움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 보시고 : 라아(האר)-(사물을 눈으로) 보다, 쳐다보다, (상대방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섬세하게 잘 알고 충분히) 이해하다, 알다.

→ 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야곱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레아의 처지와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이다.

- 그의 태를 여셨으나 : 직역 ‘그리고 그가 여셨다’,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의 막힌 레아의 삶을 풀어주신다. 약자가 된 레아를 보시고 그에게 행하신 것, 그래서 레아가 위로를 삼을 수 있는 것을 주신다.

-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레아의 4남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창 29:32) 『레아는 마침내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주께서 나의 고통을 살피시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 이제는 남편도 나를 사랑하겠지." 하면서 아기 이름을 a르우벤이라고 하였다. (a. 그가 나의 비참한 처지를 보셨다. 또는 보아라 아들이다!)』

- 르우벤(ןבנאר) : 보다(라아 האר) + 아들(뻰 ןב) → 보라! 아들이다.

→ 야곱에게 미움받는 자신의 억울함을 돌아보사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레아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창 29:33)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창 29:33)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주께서 내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하소연하는 소리를 b들으시고 이렇게 또 아들을 주셨구나."하면서 아이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하였다. (b. 히, 샤마)』

-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으셨으므로 : 레아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고 그것으로 괴로워했다.

- 시므온(ןוֹעꗱꚄ) : ‘듣다, 주의하다, 이해하다’는 ‘솨마’(עמשׁ)에서 유래한 이름

→ 하나님이 자신의 소리를 들으셨음을 체험한다고 고백한다.


(창 29:34)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창 29:34)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내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단단히 매이겠지." 하면서 아이 이름을 레위라고 하였다.』

- 레위(יꕱꗝ) : ‘밀착하다, 결합하다’는 ‘라와’(הול)의 단순재귀형.

→ 이질적인 것이 굳게 결합하여 상호간에 하나가 되는 것.

- 연합하리로다 : 레아는 부부로서 서로 사랑하고 긴밀한 관계가 지속될 것을 확신한다.

cf. 레위지파는 ‘연결하다, 연합하다’는 이름의 뜻대로 실제로 범죄한 이스라엘과 거룩한 하나님의 관계를 연결하는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게 된다.


(창 29:35) 『그가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가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창 29:35) 『그가 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속으로 "이제야말로 내가 주를 d찬양하겠다." 하면서 아이 이름을 유다라고 하였다. 레아의 출산이 그쳤다. (d. 히, 오다)』

- 유다(예후다 הꕇוּהꖾ) : ‘내던지다, 쏘다’는 ‘야다’(הדי)의 사역형으로 ‘감사와 찬양의 말을 발하게 하다’는 의미로 ‘찬송하다, 찬양하다, 감사하다’는 의미

→ 야곱에게서 줄곧 미움만 받던 레아는 야곱을 통해 네명의 아들을 얻게 되자 그 기쁨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유다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로 짓는다.

- 그의 출산이 멈추었더라 : ‘~까지 멈추다’는 의미로 ‘아마드’(דמע) 일정한 시점까지 중지되었다는 의미

∴⇒ 레아의 4남은 하나님이 보고 듣고 연합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레아의 고백이 들어간다.


* 라헬의 시기-부부싸움

→ 레아가 자녀를 낳음으로 라헬의 마음은 불편해지고, 라헬은 야곱을 괴롭게 한다. 레아의 가해자인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에게는 약자가 된다.(순환적)

(창 30: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창 30:1) 『라헬은 자기와 야곱 사이에 아이가 없으므로 언니를 시새우며, 야곱에게 말하였다. "나도 아이 좀 낳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죽어 버리겠어요."』

- 시기하여 : 카나(אנק) 마음 속의 질투심과 함께 흥분된 감정이 성을 내는 외적 표현까지 드러내는 아주 강렬한 표현이다. 이는 자신은 자녀가 없는 상황에서 언니 레아가 출산을 거듭함으로서 불쾌한 감정을 외부로 발산했음을 보여준다.

cf. 레아가 4남을 낳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안 라헬은 속에 있는 마음을 겉으로 표출하면서 빌하를 아내로 주게 되기까지 된다.

- 내가 죽겠노라 : 직역 ‘이미 죽었다. 바로 내가 그 죽은 여자다’

→ 자식낳기 경쟁에서 실패함으로 아내의 위치와 남편의 사랑도 빼앗길 것임을 나타내는 절박한 표현이다.


(창 30: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창 30:2) 『야곱이 라헬에게 화를 내면서 말하였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임신할 수 없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 성을 내어 : 하라(הרח) 콧숨을 거세게 몰아내듯 하는 극렬한 분노를 표현한다.

→ 야곱의 분노는 점점 겉으로 표출되는 라헬의 시기심에 계속 커가는 반응일 것이다.

-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너무나 화가 난 야곱은 부부싸움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넘기는 회피의 행위이다.


(창 30:3) 『라헬이 이르되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하고』

(창 30:3) 『라헬이 말하였다. "나에게 몸종 빌하가 있습니다. 빌하와 동침하셔요. 그가 아이를 낳아서 나에게 안겨 주면 빌하의 몸을 빌려서 나도 당신의 집안을 이어나가겠어요. "』

- 내 여종 빌하에게로 들어가라. : 직역 ‘보라, 빌하에게 들어가라’, 의역 ‘다른 말 할 것없이 내 여종 빌하에게 들어가라’

- 그가 아들을 낳아 내 무릎에 두리니 : 직역 ‘그리고 그녀는 나의 무릎들 위에 아이를 낳을 것이다’ - ‘자기 아들로 입양하여 들인다’는 의미.

- 그러면 나도 그로 말미암아 자식을 얻겠노라 : ‘세우다 건설하다’라는 ‘빠나’(הנב)는 ‘내가 세워지다’는 의미로 ‘나의 체면을 세우겠다’는 의미이다.

→ 라헬은 인간의 힘을 빌어서 명예를 회복하려고 하고, 그 인간적 수단을 맹신한다.

cf. 레아는 하나님이 열어주신 것이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요구하듯 라헬도 야곱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라헬에게서는 사라에게 보인 신앙적인 부분을 볼 수 없다.


(창 30:4) 『그의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아내로 주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창 30:4) 『라헬이 자기의 몸종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니, 야곱이 빌하와 동침하였다.』

→ 야곱은 아내의 불임에 기도했던 이삭과 달리 사라의 요구를 따랐던 아브라함과 같다.


* 질투의 4가지 형태

질투의 형태

매커니즘

연관된 생각

분노

좌절

지위훼손

이따 두고 보자

내게 어떻게 이럴수가!

자기가 뭔데?

두려움

실연에 대한 근심

만일 내 곁을 떠난다면 어떡하지?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슬픔

자아평가에 대한 훼손

버림받은 느낌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나.

어떻게 그 사람 마음을 붙잡아 둘수 있을까?

수치심

질투를 한다는 수치심

패자가 된다는 수치심

비루한 감정이다.

나는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 빌하의 2남

(창 30:5-6) 『[5] 빌하가 임신하여 야곱에게 아들을 낳은지라. [6]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호소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 30:5-6) 『[5] 마침내 빌하가 임신을 하여 야곱과 빌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다. [6] 라헬은 "하나님이 나의 호소를 들으시고 나의 억울함을 들어 주시려고, 나에게 아들을 주셨구나!"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a단이라고 하였다. (a. 그가 판단하였다)』

→ 빌하의 임신과 출산에 대해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록하지만 라헬은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려해 보려고 한다. 그 의미부여도 너무나 자기중심적이다.

-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 하나님이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시고 자신의 진실함을 알게 하셨다는 것이다. 즉 수치를 받지 않아야 할 자신에 아이를 주심으로 수치를 받지 않도록 즉시 행동하심으로 자신의 참된 모습을 사람들로 입증하여 주셨다는 것이다.

cf. 레아의 자기해석이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라헬의 자기해석은 ‘억울함’이다. 이 자기해석은 상황을 자기식으로 이해하고 풀어가는 열쇠가 된다. 이후 납달리의 출생 역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 내 호소를 들으사 : 라헬은 남편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이는 기도의 소리가 아닌 ‘억울한 소리’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들을 주심으로 야곱가정의 불화를 잠재우시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하셨다.

- 단(ןꕏ) : ‘정당성을 입증하다, 판단하다’의 띤(ןיד)에서 나온 말로 다른 사람이 ‘단’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라헬 자신이 진실하였음을 입증하려는, 그래서 자신의 수치가 벗어졌음을 기억케 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는 이름이다.


(창 30:7-8) 『[7] 라헬의 시녀 빌하가 다시 임신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창 30:7-8) 『[7] 라헬의 몸종인 빌하가 또 임신을 하여 야곱과의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을 낳았다. [8] 라헬은 "내가 언니와 크게 b겨루어서 마침내 이겼다.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납달리라고 하였다. (b. 히, 납달)』

- 다시 임신하여 : 왕성한 출산과 함께 여종을 통해 아들을 얻고자 하는 라헬의 계속되는 욕망을 보여준다.

- 내가 언니와 크게 경쟁하여 : 직역 ‘내가 내 언니와 함께 하나님의 경쟁을 경쟁하여’

→ 라헬은 자신의 경쟁자가 언니라고 할 정도로 극심하게 뒤틀린 감정과 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빌하를 통한 2번의 출산은 경쟁대상인 언니를 이겼고 이제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하면서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이겼다 : ‘압도하다, 승리자가 되다’는 야칼(לכי)

→ 숫자는 4:2이지만 감정적으로 상대를 이겼음을 강조한다. 이는 참된 승리를 모르는 인간의 어리석은 집착을 보여준다.

- 납달리(나프탈리 יꗜꚛ꘰ꗻ) : ‘경쟁하다’로 파탈(לתפ)의 수동형

⇒ 그동안 레아가 바라보는 대상은 남편이다. 그러나 라헬이 바라보는 대상은 언니이다. 그 언니에 대해 경쟁관계로만 보는 라헬의 표현은 자신이 이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싸움을 시작이다. 그동안 신앙으로 자신의 상황을 극복하던 레아를 이 싸움(경쟁)으로 들어오게 하여 자신도 여종을 야곱에게 주게 된다.


* 레아의 반응

(창 30: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더니』

(창 30:9) 『레아는 자기가 다시는 더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서 자기의 몸종 실바를 데려다가 야곱에게 주어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춤을 보고 : ‘그녀가 아이 낳는 것으로부터 가만히 서 있다’

→ 라헬이 여종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경쟁을 보면서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자신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저 서있을 뿐임을 본 것이다.

→ 이것은 그동안 신앙으로 상황을 고백하고 찬양하던 레아를 다시 불안하게 하고 무엇인가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한다.

- 그의 시녀 실바를 데려다가 : 동생 라헬의 성급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그대로 답습한다.

- 데려다가 : 취하여(라카흐 חקל)는 라헬은 계획된 행동인데 반해 레아는 질투의 반응으로 갑자기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에 자녀출산이란 경건하지 못한, 즉 인간적인 불안한 판단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출산으로 경쟁한다.

cf. 야곱은 두 자매간의 불화와 긴장을 잠재우기 보다는 오히려 방조하고 있다. 이는 사라와 하갈의 관계에서 보였던 아브라함의 모습과 같다.

cf.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적인 연약함 속에서도 야곱의 가정을 통해 12지파를 준비하신다.


* 실바의 2남

(창 30:10-11) 『[10] 레아의 시녀 실바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복되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창 30:10-11) 『[10]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 [11] 레아는 "내가 복을 받았구나"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c갓이라고 하였다. (c. 행운)』

- 갓(가드 דꔷ) : 행운, 복됨

→ 실바를 통해 새롭게 아이를 얻은 레아는 기쁘고 만족스러움을 표현한다.


(창 30:12-13) 『[12] 레아의 시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기쁘도다.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창 30:12-13) 『[12] 레아의 몸종 실바와 야곱 사이에서 두 번째로 아들이 태어났다. [13] 레아는 "행복하구나,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말하리라"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d아셀이라고 하였다.』

- 아셀(아쉐르 רꚅאָ) : 기쁨, 행복, 흡족함

→ 갓과 같이 레아의 감정이 계속 아들을 얻음으로 지극히 흥분되고 만족스러웠음을 보여준다.

-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 ‘왜냐하면 여인들이 나를 행복하다고 부를 것이기 때문에’

⇒ 라헬의 경쟁에 반응함으로 그 싸움(경쟁)에 들어간 레아는 자신이 세운 마음도 신앙고백도 모두 잊고 싸움에 빠져 들지만 라헬의 마음이 담겨진 경쟁의 이름과는 달리 레아는 평안의 이름을 짓는다.



[야곱가정의 분위기-부인들과 12아들 2]

*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정에서 분위기는 어떤 영향을 주나? 서로 주고받는 영향으로 만들어진 가정의 모양들..

- 야곱 : 눈에 대한 외상으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레아는 싫어하고 어머니를 닮은 라헬은 사랑한다.

- 레아 vs 라헬 : 자신을 싫어하는 남편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 vs 남편의 사랑은 받지만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라헬의 갈등


창세기 29:31-30:24 야곱의 부인과 아들들

 

모친명

연령순

축복순

르우벤

레아

보라! 아들이다.→

괴로움을 돌아보신다

1

1

시므온

들으신다

2

2,3

레위

더불어 연합한다

3

유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4

빌하

재판장

5

7

납달리

겨룸, 씨름

6

10

실바

복됨

7

8

아셀

기쁨

8

9

잇사갈

레아

값,보상

9

6

스불론

더불어 거함

10

5

요셉

라헬

더하다

11

11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

12

12


* 합환채(자귀나무)와 거래

(창 30: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창 30:14) 『보리를 거두어들일 때에, 르우벤이 들에 나갔다가, 자귀나무를 발견하여, 어머니 레아에게 가져다 주니, 라헬이 레아에게 말하였다.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조금만 나눠줘요."』

- 합환채 : 옛날 히브리인들은 이 식물을 최음제, 강장제, 임신촉진제로 믿고 있었다.

- 청구하노라 : ‘내게 좀 줘요’의 의미로, 언니의 것을 빼앗으려는 라헬의 얄미운 어리광의 모습

→ 임신을 원하는 라헬은 자신의 바램(욕구)을 채우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창 30: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창 30:15) 『레아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내 남편을 차지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냐? 그래서 내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까지 가져 가려는 것이냐?" 라헬이 말하였다. "좋아요. 그럼, 언니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나에게 주어요. 그 대신에 오늘 밤에는 그이가 언니하고 함께 자도록 하지요."』

-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 합환채를 달라는 동생의 모습은 자신의 것을 빼앗는 모습으로 보이고, 이는 라헬은 자신의 것(남편)을 빼앗았다는 깊은 속내가 담겨진 표현을 하게 된다. 또한 합환채(임신촉진제)를 통해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남편은 더욱 멀어질(빼앗길) 것이라는 불안이 레아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다.

- 합환채 대신에 오늘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도덕적인 수치나 거부감도 없이 부도덕하고 성결치 못한 매매를 하고 있다. 불안한 레아도 이에 동의하게 된다.

⇒ 라헬도 레아도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불안은 안정을 바라고 이것은 객관적인 ‘옳고 좋음’보다 주관적인 이익, 즉 자신에게 좋고 옳은 것을 선택한다.


(창 30: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창 30:16) 『그 날 저녁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올 때에 레아가 그를 맞으러 나가서 말하였다. "당신은 오늘 밤에는 나의 방으로 드셔야 합니다. 나의 아들이 가져온 자귀나무를 라헬에게 주고, 그 대신에 당신이 나의 방으로 드시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날 밤에 야곱은 레아와 함께 잤다.』

- 내게로 들어오라 : ‘당신은 내게로 들어와야만 한다’는 뜻으로 요청이라기보다 강한 명령조.

→ 야곱이 라헬보다 레아에게 남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 레아도 이것을 알기에 거래의 결과임을 강조한다.

-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 ‘내가 확실하게 당신을 샀기 때문이다’

→ 레아는 자신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만큼 오늘밤 남편과 동침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 야곱의 편애, 라헬의 경쟁시기심, 레아의 불안 등은 가정의 분위기를 부도덕적이고 성결치 못한 매매(거래)까지 행하게 한다.

Q. 야곱의 반응은 어땠을까?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 레아의 말을 들은 것인가, 라헬의 무언을 들은 것인가?

→ 라헬의 마음을 이해한 것인가, 화가 나서 역으로 행동한 것인가?

→ 라헬과 부부싸움한 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보아야할까? 빌하를 통해 아들을 낳았지만 실바를 통해 레아가 아들을 낳자 다시 라헬의 시기심을 보게 된 것일까?

→ 어머니에게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인가?


* 레아의 2남 1녀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창 30:17-18) 『[17] 하나님이 레아의 호소를 들어 주셔서, 레아가 임신을 하였고, 야곱과의 사이에서 다섯 번째 아들을 낳았다. [18] 레아는 "내가 나의 몸종을 나의 남편에게 준 e값을 하나님이 갚아 주셨구나.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잇사갈이라고 하였다. (e. 히, 사갈)』

-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하나님이 레아를 염려하여 듣다’

→ 레아는 자신이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다섯째 아들을 허락하셨다고 고백한다.

cf. 하나님은 라헬보다 레아에게 더 마음을 주시는가? 뒤에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신다. → 하나님의 뜻(시기와 방법과 과정 등)을 우리는 모른다.

- 잇사갈(잇사스카르 רꗇששּׂꖹ) : ‘있음,존재,있다’의 ‘예쉬’(שׁי) + ‘빌리다, 매수하다’의 사카르(רכשׂ) → ‘보상이 있다, 값이 있다’

→ 레아는 자신이 실바를 야곱에게 주고, 합환채로 거래함으로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함을 암시한다.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창 30:19-20) 『[19] 레아가 다시 임신을 하여서 야곱과의 사이에 여섯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 [20] 레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셨구나. 내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부터는 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 주겠지. "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스불론이라고 하였다.』

-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 후한 선물 -하나님편에서 선하고 충실하고 온전한 선물이고 레아에게는 기쁘고 형통하고 넉넉한 선물로 받아들여진다.

- 스불론(제불룬 ןוּלꔭꖅ) : ‘누구와 같이 거한다’의 ‘자발’(לבז), 이는 ‘경계를 만들다, 경계를 정하다’는 의미로 발전하여 ‘경계안에 함께 동거한다’ 즉 자신이 얻은 자녀로 기쁨과 함께 남편도 돈독해질 것을 기대하는 레아의 마음이 표현된다.


(창 30: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창 30:21) 『얼마 뒤에 레아가 딸을 낳고 그 아이 이름을 디나라고 하였다.』

- 디나(띠나 הꗺיꕑ) : ‘심판, 판단, 변호’라는 뜻의 ‘단’(ןד)

cf. 다른 딸들도 있었다? 디나를 기록한 것은 34장의 상황을 위해..

(창 37: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창 46: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처음 4남때와 달리 실바의 2남과 자신의 2남은 라헬의 경쟁모드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경쟁모드의 원인은 결국 야곱의 사랑을 원하는 레아의 마음에 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레아보다는 라헬로 향하고 있다.


* 라헬의 요셉출산

(창 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창 30:22) 『하나님은 라헬도 기억하셨다. 하나님이 라헬의 호소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 단순히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 아닌 하나님이 깊이 통촉하시고 친히 돌보신다는 의미이다. 아들이 없어 심히 번민하며 애통해 하는 라헬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이다.

→ 라헬은 분노표출과 경쟁시기심을 나타내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깊은 마음 속의 애통하는 마음을 보신 것이다.

-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 17절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 17절과 같은 표현으로 레아에 대해 염려하듯 라헬도 염려하신다. 레아와 라헬의 과정은 다르지만 그들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동일함을 보여준다.

-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 31절 ‘그의 태를 여셨으나’ 와 같은 표현, 파타흐(התפ) 열다, 풀다, 시작하다.

→ 주체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레아처럼 라헬도 태를 열어주신다.

cf. 31절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 아카르(רקע), 뿌리를 뽑다, 힘줄을 끊다

→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결실을 맺지 못함을 의미한다.


(창 30:23-24)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 30:23-24) 『[23] 그가 임신을 하여서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벗겨 주셨구나"하고 생각하였다. [24] 라헬은 그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에 주께서 나에게 또 다른 아들 하나를 더 주시면 좋겠다 하는 뜻으로 그 아이 이름을 g)요셉이라고 하였다. (g. 더하다)』

-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 자신의 부끄러움이 말끔하고 완벽하게 치워졌음을 강조한다. → 라헬은 지금까지 자신이 만들어낸 경쟁의 방법인 빌하나 합환채라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마음이 씻어짐을 확실히 드러낸다.

cf. 만약 빌하대신 자신이 출산을 했다면 그 아이의 이름이 요셉보다는 단이나 납달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라헬이 출산한 아들의 이름이 요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과정이 지나며 자신의 경쟁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라헬을 생각하신 결과가 아닐까?

- 요셉(요쎄프 ףꘐוֹי) : 첫째 의미, ‘씻다, 치워버리다’의 ‘아싸프’(ףסא)로 자신의 치욕을 말끔히 제거해 주셨음을 강조한 이름, 둘째 의미, ‘더하다’의 ‘야싸프’(ףסי)로 한 아들만 더 주셨으면 하는 라헬의 강한 집념과 요청이 담겨져 있다.


(창 35:16-18)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 베노니(뻰오니 יꗼוֹא־ןꔳ) : ‘아들, 자식’의 뻰(ןב) + ‘나의 불행, 슬픔’의 ‘오니’(ינוא) - 나의 불행의 자식, 나의 슬픔의 자식 → 난산으로 인해 죽음에 임박한 라헬이 슬픔가운데 지어준 이름

- 베냐민(비느야민 ןיꗬꖷꘁꔩ) : ‘아들,자식’의 ‘뻰’(ןב) + ‘오른손’이란 ‘야민’(ןימי) - ‘오른손의 아들’ → 고대근동사람들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았기에 야곱은 12번째 태어난 아들의 삶이 행복하고 능력있는 삶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쳐 지었다.


[정리]

① 야곱은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외삼촌 라반에게 온다. 거기서 두딸과 두 여종과 결혼하고 12아들을 낳는다.(그러나 부모의 당부에 대해서는 기억한다는 기록은 없다.)

② 레아는 남편사랑을 받지 못한다. 의식적인 상황과 무의식적인 외상으로 인해 야곱은 레아에게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으로 표현한다. 레아의 눈은 야곱의 무의식적 외상을 직면하게 하고, 아직 그것을 해결할 준비가 되지 않은 야곱은 자신도 모르게 직면을 거부하는 만큼 레아를 멀리하는 것같다.

③ 하나님은 야곱의 외상보다 먼저 레아의 마음을 보시고 들으시고 연합하게 하시고 찬양받으신다. 레아는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에게로 향하고 4남을 얻는다.

④ 라헬의 분노는 점점 커가고 야곱에게 화낸다. 부부갈등이 심해질 때 빌하를 보내 경쟁에서 이기려 한다. 라헬은 이것을 경쟁으로 본다. 라헬의 ‘시기’는 ‘분노, 두려움, 슬픔, 수치심’으로 표출된다.

⑤ 야곱은 엄마 닮아 좋은 라헬을 사랑하지만, 엄마처럼 쟁취하고자 하는 라헬로 힘들어한다.

⑥ 레아도 경쟁속으로 들어와 실바를 야곱에게 보낸다. 신앙으로 승화시켜도 눈에 보이는 상황은 다시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레아는 라헬보다 이름짓기에서 보듯 좀더 건강하고 신앙적이다.

⑦ 야곱은 부인들의 갈등에서 조정역할을 하지 못하지만 그들의 상처는 하나님이 풀어주신다.

⑧ 그 하나님이 레아와 라헬을 생각하시고 태를 열어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

 

[야곱의 최선과 하나님의 약속이행]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14년 이상이 지났다. 홀로 왔던 그가 이제 아내들과 자녀들이 생겼다.

30:25-36은 야곱과 라반의 품삯계약에 관한 이야기로 라반의 입장은 라반의 편에서 나누었다. 야곱은 점점 성실하고 정직해 가지만, 라반은 사위일지라도 더 치사해지고 더 거짓말을 잘하고, 자기 욕심을 선택했다.

오늘은 야곱의 입장에서 나눠보자. 진정 야곱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 30:25-36의 구조

귀향을 요구하는 야곱(25-26) ↔ 귀향을 만류하는 라반(27-28)

자신의 집을 세우려는 야곱(29-30) ↔ 방법을 찾는 라반(31)

품삯을 제안하는 야곱(31-33) ↔ 수락하고(34) 간교한 라반(35-36)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제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오. [26] 장인 어른의 일을 해 드리고 얻은 저의 처들과 자식들도, 제가 데리고 가게 허락하여 주십시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얼마나 많이 해 드렸는가 하는 것은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 라헬이 요셉을 낳은 후 야곱은 변화를 시도한다. 그가 있을 곳은 하란이 아닌 고향땅이기에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다. 혼자가 아닌 가족들과 함께 가려한다. 가족은 자신이 노동으로 얻었으며, 공식적인 계약종결을 요구한다. 또한 계속 품삯을 속이는 라반임을 알기에 자신이 어떻게 일했는지 알 것이라고 말한다. 야곱은 분명하게 귀향을 요구한다.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창 30:27-28) 『[27] 라반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네가 나를 좋아하면 여기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네. 주께서 자네를 보시고 나에게 복을 주신 것을 내가 점을 쳐 보고서 알았네" [28] 라반은 또 덧붙였다. "자네의 품삯은 자네가 정하게. 정하는 그대로 주겠네."』

⇒ 라반은 야곱의 요구를 만류한다. 야곱이 품삯을 따지는게 아니라 아예 떠나겠다고 하자 그를 붙잡을 방법으로 야곱으로 인해 복을 받았다며 환심을 사려하고 회유적으로 품삯을 정하자고 한다.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창 30:29-30) 『[29] 야곱이 그에게 말하였다. "제가 장인 어른의 일을 어떻게 해 드리고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얼마나 잘 보살폈는지는 장인께서 잘 아십니다. [30] 제가 여기 오기 전에는 장인 어른의 소유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제 때가 크게 불어났습니다. 주께서는 제가 하는 수고를 보시고서 장인 어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저의 살림을 챙겨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 야곱은 자신이 14년이 넘게 외삼촌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음을 아실 것이라,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온 이후 소유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은 언제 자기 집을 위해서 일할 수 있냐고 묻는다.

⇒ 부모의 권유로 외삼촌댁에 왔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았다. 14년의 공식계약기간 때문에 열심히 일했지만 뒤돌아 보니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은 가족뿐, 여전히 외삼촌을 위해서만 일하고 있는 자신을, 전혀 미래가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외삼촌은 번영했고 자신은 종일뿐이다.


(창 30: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

(창 30:31) 『라반이 물었다.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무엇을 주면 좋겠는가?" ...』

⇒ 무엇을 주면 되겠냐고 미끼를 던진다. 나중에 다시 뺏으면 된다. 급한 것은 붙잡는 것이다.


(창 30:31) 『 ...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창 30:31) 『 ... 야곱이 대답하였다. "무엇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한 가지 일만 허락하여 주시면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를 계속 먹이고 돌보겠습니다.』

⇒ 야곱은 다시 품삯을 제안한다. 다시 양떼를 돌보겠다고 한다. 공식계약이 끝났기에 그냥 간다고 해도 되는데 그 곳에 있겠다고 한다. 야곱은 라반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 처음 라반의 집은 피할 곳을 찾아 온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더 깊은 함정이 되었다. 야곱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그곳을 이용한다. 만약 그냥 그곳을 떠났다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야곱에게 라반은 그림자적인 곳이다. 하지만 그림자를 인정하자 그곳은 다시 야곱을 살리는 곳이 된다.


(창 30:32-33)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공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창 30:32-33) 『[32] 오늘 제가 장인 어른의 가축 떼 사이로 두루 다니면서, 모든 양 떼에서 얼룩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고, 염소 떼에서도 점이 있는 것들과 얼룩진 것을 가려낼 터이니, 그것들을 저에게 주십시오. [33] 제가 정직하다는 것은 훗날 장인께서 저에게 삯으로 주신 가축 떼를 확인하여 보실 때에 증명될 것입니다. 제가 가진 것 가운데서, 얼룩지지 않은 양이나, 점이 없는 양이 있든지, 검은 색이 아닌 새끼 양이 있으면 그것들은 모두 제가 훔친 것이 될 것입니다."』

⇒ 이것은 야곱이 생각한 계책이다. 양은 희고 염소는 검은색을 띠며 우성이다. 그런데 야곱은 태어날 확률이 적은 열성을 원한다. 그리고 후에 조사할 때 자신은 정직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35-36에서 보듯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된다.


(창 30: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창 30:34) 『라반이 말하였다. "그러세, 자네가 말한대로 하겠네"』

⇒ 야곱의 제안은 라반에게 있어 너무나 유리한 조건이다. 계속 거짓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Q. 이후 라반의 행동은?

(창 30:35-36)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창 30:35-36) 『[35] 그러나 라반은 이렇게 말해 놓고서도 바로 그 날로 숫염소 가운데서 줄무늬가 있는 것과 점이 있는 것을 가려내고 또 모든 암염소 가운데서도 희 바탕에 얼룩이 진 것과 점이 있는 것과 모든 검은 새끼 양을 가려내어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었다. [36] 그런 다음에 라반은 야곱이 있는 데서 사흘 길을 더 나가서 자기와 야곱 사이의 거리를 그만큼 뜨게 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나머지 양 떼를 쳤다.』

⇒ 라반은 계약체결이후 번벅할 수 없게 곧바로 신속히 움직인다. 사흘길의 거리를 둔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열성의 양과 염소가 나올 수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다시금 야곱에게 기회가 된다. 사흘길은 거리는 야곱을 홀로 있게 했지만 그 안에서 야곱은 움직인다.


* 야곱의 자신을 위한 노동[생명과학]


독일 베를린의 리히텐베르크 병원에서 피부색이 서로 다른 흑백 남자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 형제는 독일 출신의 백인 아버지와, 가나 출신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같이 이란성 흑백 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유전자가 특정한 방식으로 섞였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영국에서 태어난 이 쌍둥이는 백인여아와 흑인여아 쌍둥이. 특이한 것은 두 부모 모두 흑인웃어혼열이라는 점. 둘다 자신의 어머니는 백인, 아버지는 흑인혼열이라고..

 

영국에서는 피부색이 다른 흑백 쌍둥이가 2번 연속 태어났다. 흑인남편 딘 듀런트(33)와 백인 아내 앨리슨 스푸너(27) 부부는 지난 2001년 피부색이 다른 쌍둥이 헤일리와 로렌을 낳았고 2008년 11월 또 한번 흑백 쌍둥이인 레아와 미야를 낳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흑인과 백인 부모가 낳은 쌍둥이가 피부색이 다르게 나올 수 있는 확률은 100만분의 1. 여기에 연속으로 흑백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더욱 희박해 거의 '기적'으로 불리고 있다.


(창 30:37-43)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

은백양(銀白楊, 白楊) - 야곱이 아롱진 양 번식을 위해 사용한 버드나무 -

  

                                         가이샤라 빌립보의 은백양               텔단의 은백양


학명 : Populus alba L. (버드나뭇과 : Salicaceae)

영명 : White popular, White willow, Swallow tailed willow

히브리명 : לבנה(리브네), צפצפה מכסיפה(짜프짜파 마크시파)

원산지 : 유럽, 시베리아, 지중해 연안, 이란, 터키

개화기 : 4월

성경 : 창 30:37, 호 4:13


살구나무(아몬드나무, 파단행, 감복숭아, 루스)

-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같은 종류의 나무 -

                                                      네오트케두밈의 아몬드 나무   모딘의 아몬드 나무의  꽃


학명 : Amygdalus communis L.(장미과 : Rosaceae)

영명 : Almond

히브리명 : שקד(솨케드, 파수군)

셈어 : לוז(루즈, 루스)

원산지 : 지중해 연안, 페르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

개화기 : 12~3월

성경 : 창 28:19, 30:37, 35:6, 43:11, 48:3, 출 25:31~40, 민 17:8, 수 16:2, 18:13, 삿 1:23, 1:26, 전 12:5, 렘 1:11


신풍나무(버즘나무, 단풍나무, 플라타너스)

- 야곱이 아롱진 양(羊) 번식을 위해 사용한 나무 -


학명 : Platanus orientalis L. (버즘나뭇과 : Platanaceae)

영명 : Oriental plane tree, Plane tree

히브리명 : ערמון(아르몬), דולב מזרחי(돌레브 미즈라히)

원산지 : 지중해 연안

개화기 : 4~5월

성경 : 창 30:37, 겔 31:8


→ 당시 목자들간에 유행하던 가축수태방법(민간요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과학적임에도 야곱은 굉장히 열심히 일한다. 그럼에도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벧엘의 하나님이 약속을 함께 해서다.

→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민간요법을 선택하는 것. 라반을 믿을 수 없다. 만약 ‘무엇을 줄까’(30:31) 묻는 라반에게 얼마를 달라고 하면 역시 0이 되었을 것이다.

→ 야곱의 노력에도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 야곱의 고백 : (창 31:5,9)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cf. 빼앗아 내게 주셨다 - 하나님이 라반의 양을 빼앗아 야곱에게 준 것이 아니라 라반이 빼앗아 간 양, 즉 야곱이 응당받아야 할 보수를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 되돌려 받게 하셨다는 의미. 곧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의 손길에 대해 깨달은 야곱의 고백. 이 고백의 근거는 벧엘에서의 약속에 있다.


[정리]

① 요셉의 출생이후 야곱은 떠남의 결심을 한다.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가려 한다.

② 이제는 더 이상 라반이 아닌 가족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 하고, 열심히 일한다.

③ 라반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하나님에게로 간다.

④ 새로운 곳에서 시작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그림자적 상황을 받아들인다.

⑤ 당시의 민간요법을 사용하지만 그 바탕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야곱의 귀향결정과 하나님의 약속이행]

30:25-36 요셉이 태어나고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라반에게 말한다. 자신은 열심히 일했지만 자신의 집을 언제나 세울 수 있겠냐고 한다. 라반은 다시 계약을 제안하고 야곱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3일길을 뜨게 한다.

30:37-43 야곱은 열심히 일하고 라반의 것과 섞이지 않게 하면서 야곱의 것을 갖는다. 그리고 번창한다.

Q. 이렇게 겉에서는 야곱이 열심히 일한 댓가로 여겨지는 부가 실제로는 무엇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그의 삶을 움직이게 한 것은 무엇일까?


* 귀향결정의 배경

1. 아들들의 모함

(창 31:1)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창 31:1)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이 야곱에게 들렸다. "야곱은 우리 아버지의 재산을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재산으로 저처럼 큰 부자가 되었다."』

-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 이런 모함의 시기는? 야곱이 부자가 된 이후이다. 야곱이 아들들의 모함을 들었다.

-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 라반의 아들들의 생각은 야곱의 것을 라반의 것으로 생각한다. 라반의 것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반과의 계약을 통해 정한 규율대로 결과물을 취한 것이기에 지나친 피해의식을 보여준다.

cf. (창 30: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2. 라반의 표정이 달라졌다.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창 31:2)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자기를 대하는 라반의 태도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 라반은 예전처럼 우호적이지 않다. 빈손일때는 이용하려 했으나 거부가 되지 그렇게 할 수 없음을 야곱이 느낄 정도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것은 10번이나 계약을 변역하는데도 원하는대로 되지 않아 자기조절하기 힘든 라반의 모습을 보여준다.

⇒ 그러나 아들들도 라반도 말하지 못한다. 아마 야곱에게서 흠이 있었다면 이미 빼앗았을 것이다. 야곱의 정직에 라반의 속임도 어쩔 수 없었다. 라반의 말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창 31:8) 『장인께서 나더러 점 있는 것들이 자네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고 줄무늬 있는 것이 자네의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 1절은 듣는 ‘청각적 이미지’, 2절은 보는 ‘시각적 이미지’, 이것은 하나님은 말씀(청각)과 꿈(시각)으로 다시 보게 하신다.


3.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 31:3)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조상의 땅, 너의 친족에게로 돌아가거라.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 라반의 아들들의 모함은 야곱의 마음을 불안하게 분노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함께 하시겠다며 평안을 주시고, 어찌할지를 모르는 야곱에게 삶의 방향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다.

cf. 어머니가 보낸 사람도 없고, 어머니가 부르지도 않았다. (창 27:45) 『네 형의 분노가 풀려 네가 자기에게 행한 것을 잊어버리거든 내가 곧 사람을 보내어 너를 거기서 불러오리라 어찌 하루에 너희 둘을 잃으랴』


4. 아내들의 동의(4-16)

(창 31: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창 31:4)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심부름꾼을 보내어, 그들을 그의 가축 떼가 있는 들로 불러내서』

-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 하나님의 말씀이 있자 야곱은 자신이 집에 갈 때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을 보낸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신속한 순종을 보여준다.


* 라반의 악한 행위 vs 하나님의 사랑

(창 31:5-9)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 31:5-9) 『[5] 일렀다. "장인께서 나를 대하시는 것이 전과 같지 않소. 그러나 나의 조상의 하나님이 이제껏 나와 함께 계셨소. [6]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장인의 일을 해 드렸소. [7] 그러나 장인께서는 나에게 주실 품삯을 열 번이나 바꿔치시면서 지금까지 나를 속이셨소. 그런데 하나님은 장인 어른이 나를 해치지는 못하게 하셨소. [8] 장인께서 나더러 점 있는 것들이 자네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점 있는 새끼를 낳고 줄무늬 있는 것이 자네의 품삯이 될 걸세 하면 가축 떼가 모두 줄무늬 있는 새끼를 낳았소. [9] 하나님은 이렇게 장인의 가축 떼를 빼앗아서 나에게 주셨소.』

cf '30:25-36의 구조'처럼

귀향을 요구하는 야곱(25-26) ↔ 귀향을 만류하는 라반(27-28)

자신의 집을 세우려는 야곱(29-30) ↔ 방법을 찾는 라반(31)

품삯을 제안하는 야곱(31-33) ↔ 수락하고(34) 간교한 라반(35-36)


* 라반의 악한 행위 vs 하나님의 사랑

5절    야곱에 대해 안색이 변한 라반 vs 야곱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

6-7절 야곱을 속여 품삯을 변역한 라반 vs 야곱을 해치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

8-9절 야곱의 삯을 임의로 바꾸는 라반 vs 라반에게서 빼앗아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

→ 인간이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은 눈에 보이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임을 암시한다.

cf. 속이고 변하는 라반 vs 정직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 사실 야곱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런 그가 라반에게서 아버지의 정을 채우려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하란에 온 이유가 속임이었는데 부정을 느끼게 하는 라반에게서 오랜 세월 동안 속임을 받아야 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많은 속음과 시간이 들어갔다. 그러나 야곱은 사람에게서 찾으려던 부정을 변함없는 하나님에게서 찾게 된다. 하란을 떠나기전 하나님은 변함이 없는 분임을 고백하고 있다.


5절 ‘그대들의 아버지’ vs ‘내 아버지의 하나님’

6절 당신들은 내가 최선을 다해 일했음을 알거야.

7절 10번의 의미는 ‘거의 매번, 기회가 있을적마다’로 라반은 나를 속이지만 하나님이 막으셨다.

8절 라반은 계속해서 계약을 바꾸지만 그때마다 계약대로 되었다.

9절 이는 하나님이 응당 내가 받아야 댓가를 받도록 하신 것이다.


* 꿈이야기(10-13)-마음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

(창 31:10)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었더라』

(창 31:10) 『가축 떼가 새끼를 밸 때에, 한번은 내가 이런 꿈을 꾸었소.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암컷들과 교미하는 숫염소들도, 줄무늬있는 것이거나 점이 있는 것이거나, 얼룩진 것들이었소.』

- 그 양 떼가 새끼 밸 때에 → 꿈을 꾸는 시기는 새끼 밸 때에.. 야곱의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이다. 너무나 집중하면 꿈에서 나오기도 한다.

- 내가 꿈에 눈을 들어보니(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니)

→ 야곱이 꿈에서도 눈을 들어 자세히 살펴 본다. 야곱이 보는 것은 자신의 상황을 보고 있다.

cf 벧엘에서도 야곱의 꿈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벧엘에서의 경험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였을 것이다.

(창 28: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cf. 일반적으로 꿈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때까지 야곱은 꿈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지나고 꿈임을 알게 된다.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도 항상 양을 지키는 습관이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야곱의 꿈은 굉장히 현실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이어지게 한다.


(창 31:11)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 “야곱아” 하기로 내가 대답하기를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31:11) 『그 꿈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야곱아!"하고 부르시기에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하니,』

→ 그때 꿈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부른다.


(창 31:12) 『이르시되 “네 눈을 들어 보라. 양 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창 31:12) 『그 천사의 말이 가축 떼와 교미하는 숫염소가 모두 줄무늬 있는 것들이거나 점이 있는 것이거나, 얼룩진 것들이니, 고개를 들고 똑바로 보아라. 라반이 이제까지 너에게 어떻게 하였는지, 내가 다 보았다.』

- 네 눈을 들어 보라 → 지금까지 보고 있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양들이다. 10절에서 보는 양들과 12절에서 보는 양들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사자가 눈을 들어 보라고 한다. 의미가 달라진다. 10절의 양은 야곱이 지키는 양이지만 12절의 양은 하나님이 지켜 야곱에 준 양이다.

-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 벧엘에서 야곱과 함께 하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한 하나님이 라반에게서 양뿐만 아니라 야곱도 지켜주셨음을 말한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하나님은 야곱의 재물을 지키신다 하지 않고 야곱을 지켜주신다고 하셨다.


(창 31:13)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 31:13) 『나는 베델의 하나님이다. 네가 거기에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에서 나에게 맹세하였다. 이제 너는 곧 이 땅을 떠나서, 네가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소."』

-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 내가 바로 그 하나님이다는 의미. 오랜 세월이 지나도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 하나님이 야곱의 기둥과 서원을 기억하신다. cf. 인간은 잊어도 하나님은 그때의 고백을 기억하시고 이루신다.

-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 출발전 야곱을 결단케 하신다.

cf.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은 뒤에 야곱이 라반에게 말하였다. "제가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저를 보내 주십시오.』

→ 이때도 야곱은 가겠다고 했으나 라반의 만류로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후 계약은 수없이 변역되며 어려움을 당한다. 그럼에도 야곱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이 최선의 결과는 하나님이 이루셨다.


* 부인들의 대답(14-16)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15]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 31:14-16) 『[14]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얻을 분깃이나 유산이 더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15]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주 딴 나라 사람으로 여기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파실 뿐만 아니라, 우리 몫으로 돌아올 것까지 다 가지셨습니다. [16]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빼앗으신 것은 다 우리와 우리 자식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 근동지역의 관습에서 부모의 재산의 권리는 출가한 딸에게는 없다.

-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 야곱의 지참금에 해당하는 14년간의 노동력을 받아 결혼하였다. 당시 근동풍습은 지참금중 일부를 딸에게 주어 결혼밑천으로 사용하게 하는데 라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아버지에 대해 딸들도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가지게 되었다.

-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 자신들이 느끼는 아버지의 감정이다.

-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 라반의 아들들은 야곱이 빼앗았다고 하지만 딸들은 노동의 댓가이고 하나님이 취하신 것으로 자신의 것이라고 표현한다.

-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그러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신 대로 다 하십시오) → 아내들의 적극적인 동조를 표현한다.

cf. 만약 아내들이 동조해주지 않았다면 야곱은 어떻게 했을까? 결국 아내들의 마음도 야곱을 따르도록 인도하심이 있었다.


[정리]

① 속이고 변하는 라반 vs 정직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②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은 부정 vs 보이지 않음에도 함께 하는 부정

③ 현실적인 청각 시각적 이미지 vs 하나님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미지

④ 마음의 간절한 소망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

⑤ 야곱의 꿈은 굉장히 현실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으로 이어지게 한다.

⑥ 자신이 지키는 양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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