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20. 요셉 - 어린시절과 보디발의 집에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12. 14. 16:25

[야곱 속의 어린 요셉]

 

20번째 성경인물을 나누게 되었다. 꿈쟁이라고 익히 알고 있는 요셉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성장과정이 있었을까? 오늘은 어릴적 요셉은 어떤지 살펴 보고자 한다.


▷ 요셉의 출생

- 야곱의 80후반-90세경 출생했다.

① 요셉은 17세에 꿈을 꾸고 이후 형제들에 의해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간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② 30세에 이집트의 관리가 된다.

(창 41:46) 『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③ 7년의 풍년이 이어진다.

(창 41:48) 『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창 41:54) 『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④ 요셉이 40쯤일 때 야곱은 130세로 바로 앞에 선다.

(창 47:8-9)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 즉 야곱과 요셉의 차이는 약 90세이다.


▷ 야곱의 처가생활

① 쌍둥이 형 에서가 40세에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다.

(창 26: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② 야곱이 축복기도를 받은 것은 40세이후의 일이다. 야곱은 벧엘을 지나 하란 곧 밧단아람에 가서 지낸다.

③ 결혼지참금으로 처가에서 2번의 7년을 봉사한다.

④ 요셉이 태어날 때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려 시도한다.

(창 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⑤ 20년 중 6년의 봉사와 계약수정에 대해 야곱이 라반을 떠나고 추격해 오자 이야기한다.

(창 31:38) 『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창 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cf.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 요셉의 출생 이후의 일인가?


▷ 요셉이 태어날 즘 야곱의 상황과 정서

① 14년의 결혼지참금을 위한 처가생활

(창 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 전 7년은 며칠같이 여기고, 후 7년은 라헬을 사랑해서이다.

② 라헬과 레아의 갈등과 10 아들의 출생

cf. 야곱의 정서는 어떠했을까? (창 30:1-2) 『[1]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2]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 후 7년의 기간은 야곱에게 스트레스상황이다.

③ 요셉의 출생 → 이 기간이 끝나고 요셉이 태어났다.

(창 30:22-24)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④ 야곱의 반응-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보인다.

(창 30:25-2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 야곱에게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요셉이 태어난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① 이는 단지 후7년이 끝났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② 이는 야곱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그런 아들에게 편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것이다.

③ 요셉의 출생은 야곱을 다시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표출하게 한다.

④ 고향으로 가려는 의지는 이후 라반의 새로운 계약제시에 ‘자기 집을 세우려’ 하는 의지로 표현된다.

(창 30: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⑤ 이후 라반과의 새로운 계약을 맺고 자신의 재산을 위해 수고하고 부자가 된다. → 이전 14년은 라반을 위한 봉사라면 이어지는 6년은 자신의 집을 세우는 봉사였다.

(창 30: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⑥ 31장에서 고향으로 가려는 야곱의 적극적인 모습이 나온다. 천사의 명령과 아내들과의 상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온다.

⑦ 32장에서 얍복나루의 야곱의 모습은 라헬과 요셉을 챙기는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한다.


▷ 요셉과 10형제들간의 차이(아들들의 관점에서 본)

① 아버지 야곱은 라헬은 사랑하고 레아는 사랑하지 않는다. → 요셉은 자기 어머니가 사랑받고 있음을 보고, 10형제는 자기 어머니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며 자란다.

cf. 자신의 어머니가 사랑받고 아니면 그렇지 않음을 보며 자랄 때 아이들에게 무엇이 남겨질까?

② 야곱의 자식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동일하게 이어진다. → 요셉은 사랑받는 어머니 라헬을 이어 자신도 사랑받지만, 10형제는 사랑받지 않는 어머니를 이어 자신도 사랑받지 못함을 경험한다. 모든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지만 그 사랑은 요셉에게만 주어지고 이는 다른 형제에게 시기가 된다.

③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통해 삶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만 10형제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 요셉이 태어난 후 삶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감정과 표현은 요셉에게 표출되었을 것이고, 다른 아들과 달리 요셉은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다.

④ 이후 얍복나루에서의 야곱의 라헬과 요셉을 더 보호하는 행위는 다른 형제와 달리 요셉에게 보호의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cf. 베냐민에 대한 요셉의 반응?

※⇒ 10아들의 유아때 아버지 모습과 요셉의 유아때 아버지 모습은 과연 같은가? 레아와 10아들에게 야곱은 그저 후7년을 채우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요셉이 태어난 후 야곱의 모습은 굉장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다. 곧 10형제들과는 달리 요셉은 그런 야곱의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 요셉은 긍정적인 동일시의 과정을, 10형제들은 열등감의 과정을 걸었다.


<동일시(同一視)>

- 정신분석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자기가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의 태도, 가치관, 행동 등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의 행동과 말투, 사고방식과 닮게 된다.

- 어떤 주체가 다른 사람의 모습이나 특성이나 속성을 동화시켜,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 그 사람을 모델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심리과정. 인격은 일련의 동일시에 의해 구성되고 분화된다.

- 동일시라는 개념은 프로이트의 작품에서 점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여러 심리기제 중의 하나인 것을 넘어서서, 인간 주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작용이다. 그러한 발전은 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구조적 효과가 조명되면서 그것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과 상관이 있고, 그 뒤에는 심리 장치의 두 번째 이론이 가져온 수정-그것으로부터 분화된 심역들이 동일시에 의해 특수성을 갖게 되고 따라서 그 영역들은 동일시의 결과라는 사실-과 상관이 있다.

- 어떤 부류가 다른 부류와 닮았다고 동일하다고 인식하는 ‘동일시하는 행위’ 또는 사고나 사실의 차원에서 전체나 부수적으로 어떤 개인이 다른 사람과 ‘동일해지는 행위’

- ‘동화되다’는 의미에서 동일시는 - 예컨대, 모방, 감정이입, 공감, 정신적 전염, 투사 등 -을 관용적인 용법으로 통합하고 있다.


<열등감>

- 아들러(Adler)에게 열등감이란 실제 신체기관의 열등성에 기초를 둔 감정이다. 열등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개인은 많든 적든 적당히 자신의 결함을 채우려고 한다. 아들러는 그러한 기제에 모든 질병에 유효한 아주 일반적인 병인적 가치를 부여한다. “유아기의 체질적인 결함과 그와 유사한 다른 상태들은 열등감을 일으키고, 그 열등감은 인격의 고양이라는 방향의 보상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주체는 권력의지로 특징지어지는 순전히 허구적인 최종 목표, 즉 모든 심리적 힘을 그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 최종목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 프로이트에 따르면, 열등감이 오직 신체 기관의 열등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병인적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증상으로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 열등감은 어린아이가 겪을 수 있는, 현실적 내지는 환상적인 두가지 손실-사랑의 상실과 거세-에 대응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열등감을 느낀다. 그것은 성인에게서도 마찬가지이다.”

- 구조적으로 열등감은 자아와 그 자아를 비난하는 초자아 사이의 긴장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은 열등감과 죄책감의 인척관계를 강조함으로써, 그것들의 구별을 힘들게 만들어 버린다. 라가슈(D. Lagache)는 특별히 죄책감을 ‘초자아-자아 이상의 체계’와 연결시키고, 열등감을 이상적 자아와 연결시켰다.

- 임상적 관점에서, 죄책감과 열등감의 중요성이 돋보이는 곳은 여러 가지 형태의 우울증이다. 파슈(F. Pasche)는 오늘날 특히 빈번한 형태인 열등감 우울증을 따로 명시하고 있다.


[정리]

① 야곱은 요셉의 출생과 함께 적극적인 삶의 의지를 보인다.

② 이것은 요셉에게 사랑받으며 삶에 대한 자세를 보고 자라게 한다.


 

[37장이야기]

 

 

지난 시간에 함께 본 내용은 요셉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아빠 야곱의 모습은 요셉에게 굉장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37장을 중심으로 보자. 가나안에 들어온 야곱의 가족은 정착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때 야곱은 요셉을 사랑하고 그런 요셉을 형들은 미워한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형들의 미워함에 대해 어떻게 말하나요? 어디서 나온 것이라 할까요? 잠시후 보겠지만 형들의 옳지 않은 행동과 그것을 보고 정직하게 말한 요셉에 대한 그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린다. 형제간에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이 모든 일은 20여년 뒤에 모두 무엇이 거짓이었고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드러나게 된다.

그럼, 이런 일이 먼 옛날에만 있고, 옛날 이야기 속에만 있고 현재는 없을까요? 그렇지 않다. 형제간의 이익 때문에 생기는 갈등들, 거짓과 진실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들과 이로인한 갈등들.. 우리는 많이 겪고 있다.

그런데요, 이런 일이 작은 단위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큰 조직에서도 일어난다.

며칠전 서울 한복판에서 있었던 일도 꼭 이런 구조를 갖는다. 이틀전에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수감되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은 진실이 갇히지만 내일은 거짓이 갇힐 것이다’  이과정을 그는 ‘진실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지난 대선때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씨이고 그는 주가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점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가조작은 너무나 큰 거짓이고 죄악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지난 22일 대법원에서는 ‘허위사실유포’를 이유로 ‘공직선거법’위반으로 징역 1년이 선고하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사건은 아직도 수사중이고, 3년이 지나서 선고되었다는 것이고, 새로 임명된 대법관에 의해서 판결되었다는 것이다. 또 재미있는 것은 박근혜씨가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같은 주장을 했지만 그것은 ‘명예훼손’이고 별개의 것이라 보며 상대가 고발하지 않았기에 상관없다고 한다. 이 둘의 차이는 박근혜씨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정봉주 전의원은 계속 말해왔다는 것이다.

나는 정봉주 전 의원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조가 재미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 사람이 진실이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그를 감옥에 보냈다는 것.. 법의 힘으로, 정치의 힘으로, 모든 힘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1년을 수감하고 사면이 없다면 10년간 피선거권이 없게 되어, 사실상 정치를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보려는 요셉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하다. 즉 이런 일은 우리의 생활 속에 작고 크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 요셉이야기를 자세히 볼까요?


* 1-4절 : 37장의 배경과 근거설명이 된다. 요셉의 성격과 형제의 미움을 사는 이유가 나온다.

(창 37: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창 37:1)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몸붙여 살던 땅 곧 가나안 땅에서 살았다.』

→ 야곱은 가나안에 거주하게 되었다. 조상(아브라함, 이삭)이 지내고 원했던 땅이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창 37:2)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 열일곱 살 된 요셉이 아버지의 첩들인 빌하와 실바가 낳은 형들과 함께 양을 치는데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다.』

-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 족보뒤에 하나님의 구속사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 아직은 어린 아이임을 표현한다.

-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 요셉은 형제들과 함께 양을 돌보고, 형제들을 돌본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한다.

-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 야곱은 요셉을 레아의 아들과는 같이 있지 않게 했다. 모두 6명인 레아의 아들이 아닌 다른 부인의 아들과만 있게 했다. 이는 레아와 라헬의 경쟁관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cf. 이후 요셉은 레아의 아들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간다..

-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직역 ‘그리고 그는 그들의 나쁜 문제들을 가져왔다’ 여기서 ‘나쁜’은 도덕적으로 악하다는 뜻과 실제적으로 해롭다는 의미이다. ‘가져왔다’는 말은 미완료형으로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cf. 이것이 요셉에게 어떤 결과를 주었을까? 야곱은 요셉의 존재자체가 좋기에 이유불문하고 그의 행동에도 칭찬을 했을 것이다. 이 칭찬은 요셉으로 하여금 더욱 그러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도왔을 것이고 아빠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셉에게 익숙해진 것은?

1. 권위자를 거부저항하지 않고 즐거워하며 다가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후 보디발, 감옥생활, 파라오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2. 권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이후 아버지의 부탁으로 형들을 감시하기 위해 가기도 하고 이집트 삶에서 권위자가 원하는 일을 한다. 당시는 그것이 허락되는 세계관이지만 지금 시각으로 보면 7년풍년과 7년흉년은 자연히 모든 백성을 파라오의 노예가 되고 절대왕권강화의 과정이 된다. ex) 일중독, 인정중독?

cf. 이 일로 야곱은 다른 아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되었을까? 요셉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나쁜 것을 드러내는 것이었지만 야곱의 마음은 다른 아들들에 대해 더욱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cf. 요셉의 정직은 형제들의 그림자를 자극한다. 요셉의 행동은 더욱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을 꺼내게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원하는 아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그 골은 더욱 깊어지고 아들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는 요셉을 보게 될 것이다. 이후 요셉이 그들의 미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창 37: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3)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

→ 야곱은 쌍둥이로 태어나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고, 라헬만 편애하였으며, 자연스럽게 요셉만 편애하게 되었다.

- 채색옷 : 온 몸을 덮는 긴옷. 이 옷은 노동에 불편하며 관리자의 옷에 해당한다.


(창 37: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창 37:4)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

-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 아버지의 행동에 아들들은 그들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어 어린 요셉에게 쏟는다.

→ 점층적인 과정 - 그들은 야곱의 편애를 본다 → 요셉을 미워하게 된다 → 부드럽지 않는 말을 한다.


* 5-11절 꿈이야기

(창 37: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창 37:5)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서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있은 뒤로부터, 형들은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 꿈 이야기는 더욱 요셉을 미움의 대상으로 보게 했다. 꿈의 내용은 진짜 자신들의 관리자로 세워지기 때문이다.


- 첫 번째 꿈이야기

(창 37:6-7)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6-7) 『[6] 요셉이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한 번 들어 보셔요. [7] 우리가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의 단이 나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였어요."』

→ 요셉은 형들이 자신의 꿈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일지 전혀 모른다. 전혀 배려하지 않고 신나서 말한다.

- 절하더이다. : 솨하(שׁתה) 구푸리다-군주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인사하는 방법

cf. (창 43:28)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총리가 된 요셉에게 곡식을 구하러간 형제들은 동일한 표현으로 절을 함으로 꿈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 형들의 반응

(창 37: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창 37:8)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왕이라도 될 성싶으냐? 정말로, 네가 우리를 다스릴 참이냐?"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였다.』

→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다스리게 될 것을 원하지 않는다. 실제로 막내가 아닌 첫째였다 할지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자신들과는 달리 사랑하는 아들이 자신들의 왕이 되기를 수락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한 형제서열의 관계보다는 막내에게 채색옷을 입히시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담겨져 있다.


- 두 번째 꿈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창 37:9) 『얼마 뒤에 그는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들어보셔요. 또 꿈을 꾸었어요. 이번에는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절을 했어요.』

→ 첫 번째 꿈과 동일하게 전혀 배려가 없이 신나서 꿈이야기한다.


- 아버지의 반응

(창 37: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창 37:10) 『그가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할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었다. "네가 꾼 그 꿈이 무엇이냐? 그래, 나하고 너의 어머니하고 너의 형들이 함께 너에게로 가서 땅에 엎드려서 너에게 절을 할 것이란 말이냐?"』

-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 위계질서가 엄격한 근동사회에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요셉이 말하고 있다. 이에 야곱은 요셉을 책망하고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금지한다.

⇒ Q. 이것이 야곱의 본심일까? 자신은 채색옷을 주고 요셉은 말하지 못하게 한다? 진심일까?


(창 37: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간직해 두었더라』

(창 37:11) 『그의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다.』

→ 야곱이 금지함으로 형들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마음은 시기로 가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야곱은 요셉만 신경쓴다. 그의 말을 마음에 두는 것이다.


* 여전히 동일한 행동을 하는 야곱과 요셉

(창 37:12-14)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창 37:12-14) 『[12]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려고 세겜 근처로 갔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요셉이 대답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14]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너의 형들이 잘 있는지, 양들도 잘 있는지를 가서 살펴보고, 나에게 와서 소식을 전해 다오" 그의 아버지는 헤브론 골짜기에서 그를 떠나보냈다. 요셉이 세겜에 도착하였다.』

-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 야곱은 2절에서 행한 행동을 계속한다. (창 37: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 요셉도 동일한 행동을 한다.

-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 야곱이 원하는 것도 여전히 동일하다. 2절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왜 요셉이 고자질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요셉의 방황-요셉의 성격

Q. 성경은 왜 이부분을 기록하는가? 그냥 형제들에게 갔다고 해도 되는데.. 세겜이 아닌 도단이라서?

(창 37:15-17)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창 37:15-17) 『[15] 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가 요셉에게 물었다. "누구를 찾느냐?" [16] 요셉이 대답하였다. "형들을 찾습니다. 우리 형들이 어디에서 양을 치고 있는지, 나에게 일러 주시겠습니까?" [17] 그 사람이 대답하였다. "너의 형들은 여기에서 떠났다. 도단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 가서 도단 근처에서 형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어떤 사람이 보니, 요셉이 들에서 헤매고 있었다.)

→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한다. 어느정도 찾다가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요셉은 계속해서 찾고 있다. 이런 모습을 성경은 다른 사람이 본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 그리고 요셉을 본 그가 요셉에게 묻는다.

-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 아버지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 도단에 갔다는 정보를 들은 요셉은 결국에는 도단까지 가서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Q. 무엇이 요셉을 이렇게 끝까지 찾아가게 했을까? 위에서 말한 권위자를 향한 마음인가?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 열심이 그를 곤란에 빠지게 하고 살리게도 한다.


18-22절 : 자신들에게 오는 요셉을 보고 죽이자는 형제들과 생명은 해치지 말자는 르우벤의 보호

* 23-28절 : 형들의 행동(여섯가지)

(창 37: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창 37:23) 『요셉이 형들에게로 오자, 그들은 그의 옷, 곧 그가 입은 화려한 옷을 벗기고』

→ 형들의 첫행동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긴다. 그들에게 채색옷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창 37: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창 37:24) 『그를 들어서 구덩이에 던졌다. 그 구덩이는 비어 있고, 그 안에는 물이 없었다.』

→ 형들의 둘째 행동은 아무것도 없는 구덩이에 던진다. 구덩이는 물이 귀한 팔레스틴에서 빗물을 저장하기 위해 판 것으로 입구는 좁고 속은 넓고 벽면은 미끄러워 혼자힘으로 나올 수 없는 곳이다. 비록 물없는 구덩이에 요셉이 들어갔지만 계속 있다보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된다. 형들은 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cf. 형들은 자신들의 그림자 속에 가두었다. 이후로 형들은 아버지 앞에 있을 때도 거짓말을 하면서 여전히 요셉을 자신의 마음의 그림자에 가둬두게 된다.


(창 37: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창 37:25) 『그들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고개를 들고 보니, 마침 이스마엘 상인 한 떼가 길르앗으로부터 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낙타에다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 형들의 세 번째 행동은 음식을 먹고 있다. 그러나 요셉은 구덩이에서 고통 속에 있다. 형들은 그런 요셉의 고통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며 음식을 먹고 있다.

→ 형들의 네 번째 행동은 이스마엘 상인들을 본다. 이스마엘 사람들을 자세히 본다. 이것은 겉으로는 편하게 음식을 먹는 것같지만 긴장이 있음을 보여준다. 주변을 살피면서 동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같다.


(창 37:26-27)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들이 청종하였더라』

(창 37:26-27) 『[26]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해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27] 자,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넘기자. 아무래도 그 아이는 우리의 형제요, 우리의 피붙이이다." 형제들은 유다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 형들의 다섯 번째 행동으로 유다가 죽이지는 말고 팔자고 제안을 한다. 두려움 속에 있는 다른 형제들은 그의 말에 따르기로 한다.


(창 37: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창 37:28) 『그래서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갈 때에 형제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 스무 냥에 팔았다. 그들은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 형들의 여섯 번째 행동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 노예로 판다. 요셉은 이집트로 간다.

cf. 이후 모든 과정 뒤에 요셉은 자신을 이곳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29-35절 : 르우벤의 괴로움과 형제들의 거짓말과 야곱의 애통


(창 37: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창 37:36)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이집트에서 요셉을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팔았다. 그는 바로의 신하로서 경호대장으로 있는 사람이었다.』

→ 요셉에게 이집트노예생활은 또다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이집트 상류귀족의 생활을 보았고, 이후 특별한 감옥의 생활을 하게 되고 이집트총리가 되면서 자신이 여기에 있게 된 것을 하나님이 먼저 보내신 것으로 고백하게 된다.

⇒ 사람이 구덩이 속에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경험이지만 반대로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 되기도 한다. 홀로 자신을 다시 보고 구덩이(자궁)에서 다시 나올 때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정리]

① 야곱과 요셉의 관계가 훗날 요셉이 이집트생활에서 권위자의 관계를 만들어준다.

② 요셉의 정직과 꿈이야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③ 그러나 이는 이집트생활을 통해 다듬어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고백하는 사람이 된다.

④ 형제들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감추는 것에 급급하다.

⑤ 요셉의 구덩이는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이다.

 

[보디발의 집에서-보디발과 요셉]


 

37장에서 요셉은 아버지(권위자)에 향한 열심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형제들의 그림자를 자극하게 되며 구덩이에 빠지고 이집트에 팔려간다. 39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하나님과 보디발이라는 새로운 권위자와의 관계와 경계선을 배운다. 야곱에게서는 제한이 없다면, 보디발은 가족은 제외하였으며, 이후 감옥과 바로와의 관계에서 경계선을 배운다.


(창 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창 39:1)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갔다. 요셉을 이집트로 끌고 내려간 이스마엘 사람들은 바로의 신하인 경호대장 이집트 사람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다.』

-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 : 보디발에 대한 수식어가 '바로의 신하+친위대장+애굽 사람'이다. 이는 그가 바로의 궁중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임을 보여준다.

cf.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 37:36에서는 미디안사람이라 하였다. 실제로 요셉을 사고 판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마엘 사람’과 ‘미디안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창 37:36) 『그 미디안 사람들은 그를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더라』


* 요셉의 형통과 보디발의 목격

(창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3) 『[2]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앞길이 잘 열리도록 그를 돌보셨다. 요셉은 그 주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3]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1.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시다-앞의 상황과 다른 시각이다. 지금까지 요셉은 구덩이에 빠져 있었고 노예로 팔려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고 한다. 이후의 상황이 그것을 설명한다.

2. 그가 형통한 자가 된다-‘형통한’은 찰라흐()의 사역형으로 ‘번성하게 하다, 번영을 체험하다’의 의미로, 요셉 개인만의 형통이 아닌 주변도 그러하도록 한다.

3. 주인의 집에 있다-요셉이 일하게 된 곳은 보디발의 가정이고 그의 임무는 보디발의 가족들을 위한 봉사였다. 그가 밖이 아닌 집 안에서 일하게 됨으로 이후 보디발의 시각에 띠게 된다. 또한 집 밖의 중노동이 아닌 가사업무를 맡음으로 이집트의 귀족의 생활상을 익히게 되는 기회가 된다.

4. 주인은 두가지,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하는 것을 본다. 그가 어떻게 한낱 가사노동노예를 보게 되었을까?


(창 39:4-5)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창 39:4-5) 『[4] 주인은 요셉이 눈에 들어서 그를 심복으로 삼고, 집안 일과 재산을 모두 요셉에게 맡겨 관리하게 하였다.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안 일과 그 모든 재산을 맡겨서 관리하게 한 그 때부터 주께서 요셉을 보시고,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주께서 내리시는 복이, 주인의 집 안에 있는 것이든지, 밭에 있는 것이든지, 그 주인이 가진 모든 것에 미쳤다.』

-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 직역 ‘요셉이 그의 눈들 안에서 은혜를 발견했다’ 히브리적 관용구로 상대방의 눈에서 호의가 있음을 표현한다. 아마 보디발은 요셉의 성실성을 보았을 것이다.

- 섬기매 : 보디발의 호의에 대한 요셉의 성실한 행동이다. cf. 요셉은 아버지의 부탁에 끝까지 형들을 찾아 갔던 성실성이 있는 사람이다.

-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보디발은 요셉을 성실성을 보고 신뢰하여 모든 것을 맡긴다. 일을 맡김에 있어 그는 노예에 대한 편견이 없으며 신뢰하며 맡기는 모습을 보인다.


* 보디발의 경계선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 39:6) 『그래서 그 주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하고, 자기의 먹을거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요셉을 믿기 때문이다.

-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 이집트의 법에 외국인과 음식관리와 식사시 합석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cf. 요셉의 말 (창 39:8-9)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그는 원칙적인 기준으로 경계선을 세운다.


39:7-18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과 비방


(창 39: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창 39:19) 『주인은 자기 아내에게서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 같은 향패를 부렸어요." 하는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 보디발의 아내는 모든 과정을 남편에게 탓을 돌린다.

- 심히 노한지라 : ‘그러자 그의 얼굴이 뜨거워지다’ 아내의 말을 들은 그는 분노의 감정에 억제하지 못하고 표가 난다. 요셉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에 대해 감정이 분노의 감정으로 변하였다.


(창 39: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20)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 당시 간음죄는 사형이었다. 특히 이 상황은 사형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들은 후에 요셉을 투옥하는 것으로 그친다. 아마 보디발은 흥분이 가라앉은 후 사건의 정황과 그동안의 요셉의 성실함 등을 생각하고 아내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요셉의 처벌을 유보하였을 것이다.


* 보디발은 어떤 사람인가?

①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이다. 높은 신분과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② 전체를 보는 시각이 있다. 그는 한낱 노예를 유심히 보았고 요셉에게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보는 사람이었다.

③ 자상하고 호의가 있다. 보디발에 비친 노예에 대해 편견없이 바라보는 사람이다.

④ 가정총무 등 일을 분배하는 인사권을 볼때 신뢰성과 객관성이 있다.

⑤ 객관적인 경계선을 세운다. 

⑥ 아내의 모함은 신뢰의 감정이 배신감으로 분노로 바뀐다.

⑦ 요셉을 투옥하는 과정에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보디발의 집에서-보디발의 아내와 요셉]


 

지난주에 나눈 부분은 37장에서 철없고 경계선 없고 권위자인 아버지 중심으로 형제들에게 배려없던 요셉이 39장에서는 보디발집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가운데 전혀 다른 스타일의 권위자를 만나 경계선을 배우는 모습을 보았다. 보디발은 높은 신분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임에도 자상하고 편견없어 보이며 객관적인 경계선을 세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 요셉은 그런 건강한 경계선을 보이는 보디발의 집에서 잘 지내는가? 그렇지 않다. 보디발이 건강한 경계선을 보였다면 그의 아내는 반대로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이 때문에 요셉은 감옥에 투옥되게 된다. 오늘은 이러한 보디발의 아내의 모습을 성격장애의 모습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 성격장애(Personality disorder)

- 사람은 누구나 고유한 행동양식과 대인관계방식을 가지고 있다.

- 성격장애는 어린시절부터 점진적으로 형성되며 이러한 특성이 굳어져 성인기에 나타난다.

- DSM-IV 에서는 성격장애를 10가지 하위유형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크게 A, B, C의 3가지 군집으로 분류하고 있다.

cf.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은 미국 정신의학 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가 출판하는 서적으로, 정신질환의 진단에 있어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비슷한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책으로는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적 통계 분류(International Statistic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and Related Health Problems, ICD)가 있는데, DSM은 정신질환에 집중하는 반면 ICD는 모든 종류의 질병을 다룬다.

A군: 특징-사회적 고립, 기이한 성격

특성-이상하고 괴이하며 사회적으로 엉뚱하고 고립되어 있다.

종류-편집성(망상)/ 분열성(성격에 대한 것)/ 분열형

B군: 특징-정서적이고 극적 성격

특성-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특성

종류-반사회성/ 연극성/ 경계성/ 자기애성

C군: 특징-불안하고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성격

특성-쉽게 불안하고 근심이 많고 무서움을 잘 느끼는 특성

종류-강박성/ 의존성/ 회피성

*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진단기준

1. 실제 혹은 상상적인 거부, 배신을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

2. 이상화/평가절하의 양극단을 오고가는 인간관계

3. 일관된 자기상, 가치관 등의 부재

4. 충동적 행동(과소비, 약물남용 등) 자살, 자해행동

5. 정서적 불안정성, 만성적 공허감, 강렬한 분노

6. 스트레스와 관련된 편집증적 사고 혹은 해리증상


* 특징

얼핏 보면 괜찮은데 자세히 보면 이상한 사람으로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된다.

10대후반에서 시작, 정서적으로 안정이 안되고 20대-40대에 가장 심하다.

일반인의 3-5%, 신경정신과 입원환자중에 20%, 그중에 2/3는 여성이다.


* 정신분석적 이해

- 경계선성격장애는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계가 없다.

- 인격장애의 한 종류이다. 자신은 나쁜줄을 모른다.

- 따돌림에 민감하다.-어릴적부터 혼자있고, 상처의 경험이 많다.

- 버림받기를 원하지 않으며, 혼자 있기가 힘들다. 싸움이후에도 같이 있으려 한다.

- 버림받기 전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먼저 버린다.

- 만성적인 공허감에 시달린다.

- 자기 주체성도 계속 바뀌고 흔들린다.

- 인격의 통합기능이 없다. - 현재의 상황과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하고, 인격의 통합성이 있어 상황에 대한 책임성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ex) 카드를 긋는 사람도 갚는 사람도 자신이라는 인식의 연속성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조각적인 생각을 한다.

cf. 현대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조각으로 나누고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 인격이 분리된다. 어제와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격이 작동한다.

- 인격을 조절하는 '자율'기능이 약하다. ex) 상대가 3분 늦었다고 폭발한다. 이에 대한 반성은 없고 모든 책임은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다시 연락해서 싸운다. 그리고 분이 풀리지 않으면 자해한다. 이런 모습에 상대는 죽을 정도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몇 번 반복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정말 멀어지게 된다. 버림을 원치 않고 이에 불안하여 행했던 모든 행동은 더욱 상대가 자신을 버리도록 만든다.

ex) 내가 기분나쁜 일이 있다. 이것은 잊고 상대가 나를 기분 나빠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것에 화를 낸다. 또는 자신이 기분 좋으면 상대로 기분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투사동일시(타인의 태도나 감정 등이 나와 같은 것을 가졌다고 단정하려 드는 경향으로 타인의 목적이나 가치를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여 그것이 마치 자기의 가치나 목적인 것처럼 여김)

cf. 이런 사람이 간혹 히스테리를 하고 연극을 하는데도 매력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화끈한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것은 위험하다.


* 치료적 이해

- 초자아가 든든해야 한다. 현대에는 내적인 규범이나 가치관에 대한 준비가 없다. 현실검증 능력이 약하고 자기애적 경향이 강하다. 이들의 큰 문제는 충동적이다. 참고 기다림이란 기본을 못한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자기중심적이다.

ex) 왕자병 공주병-집에서만 제일인데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요구한다. 학교 등 집단생활에서 관계를 파괴한다. 스토커는 상대가 거절을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망상을 갖는다. 미래예측력과 자제력이 없다.

ex) 엄마가 자기 아이에 대해 계속 간섭을 한다. 핸드폰으로 계속 확인을 한다. 결국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고 끊어놓는다. 아이를 혼자 있게 하지 못하게 함으로 결과적으로 버림받거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다 어느순간 사소한 일로 폭발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를 두게 해야 한다. 부부도 애인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ex) '조용히 해, 엄마 신경질 나게 왜그래. 엄마가 창피하게..' 아이가 떠든다고 엄마가 폭발한다. 이것은 훈육이 없는 엄마의 단순한 신경질이지 교육이 아니다. 단지 조용하라고 하고 아이는 왜 그런지 모르며 엄마가 신경질 내니 조용해야겠다고 생각할 뿐 그 속에 불만이 가득하게 된다. 이는 아이에게 왜 자신이 조용해야하는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다. 이는 훗날 논리적 사고를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감정을 폭발하는 아이가 되고 그것만 배운다.


* 대처&치료방법

1.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대인관계에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

2. 극과 극으로 불안한 이들에게 안정을 주어야 한다.


* 정석환교수의 글(연세대학교 기독교상담, 출처:국민일보)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의 필수적 요소는 가족 구성원들의 사심 없는 사랑의 체험이다. 이 사랑을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듬뿍 받고 자랄 때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건강한 성격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심리적 산소’라 부른다. 이 심리적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거나 부모들의 잘못된 사랑으로 오염된 산소가 공급이 되면, 소위 발달결핍으로 인한 여러 가지 모습들의 성격장애로 평생을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며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신경증적 성격장애나 타인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정신증적 성격장애, 그리고 자신과 타인을 골고루 괴롭히며 살아가는 경계선적 성격장애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자신의 대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결혼생활과 자녀와의 관계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며 대대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유산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 건강한 성격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자녀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하는 결단과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흔히 사랑이란 훈련 없이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착각 때문에 사랑한다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갈등이 더 심각한 것이다. 우리들의 감정은 사랑이나 분노의 감정까지도 훈련을 거쳐 표현돼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의 시각으로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의 관계를 보자.

39:1-6 보디발과의 관계, 보디발의 경계선을 보았다.

39:7-20 보디발의 아내로 인한 상황과 사건이 나온다.


(창 39: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창 39:6) 『그래서 그 주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겨서 관리하게 하고, 자기의 먹을거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잘생긴 미남이었다.』

- 용모(토아르) ‘형상, 모양’으로 신체 자체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두고, 번역되지 않은 ‘보기에’(마르에)는 ‘보다’(라아 ראה)의 명사형으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 요셉의 성실함은 편견없이 성실함을 보는 보디발의 시각에 들어 가정총무의 일을 맡게 된다. 그러나 이와 달리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제한시킴으로 문학적 반전을 느끼게 한다. 이후 이어지는 여주인의 유혹의 근거를 설명하는 듯하다.


(창 39: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 39:7) 『일이 이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나하고 침실로 가요!" 하고 꾀었다.』

- 그 후에(일이 이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 주인 보디발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가정총무가 된 이후에

-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 전체적으로 보고 있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이제야 요셉이 보였다. 특히 유혹의 대상, 제한된 대상으로만 보았다.

- 눈짓하다가 : 직역 ‘그러자 그녀는 그녀의 눈들을 높이 올렸다’ →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게 관심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보냈다. 남편이 세운 경계선을 무시하고 임의대로 한다.

- 동침하기를 청하니 : 직역 ‘나와 함께 누워라’ → 이는 명령형으로 주인 아내의 동침요구는 동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유혹이나 간청이 아니라 주인의 횡포로서 이를 거절할 때 요셉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협적인 것이다.

⇒ 남편은 전체적으로 보고 경계선을 분명히 하고 권력을 남용하지 않으나, 아내는 자신의 쾌락을 위해 제한된 시각으로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


(창 39:8-9)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8-9) 『[8]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주인의 아내에게 말하였다. "주인께서는 가지신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셨으므로 [9] 이 집안에서는 나의 위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나의 주인께서 나의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마님입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이런 나쁜 일을 저질러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 요셉이 거절하며 → ‘마엔(מאן) 거절하다’의 강조형으로 요셉이 유혹을 완강하게 거절했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 ‘하타(הטא) 벗어나다, 빗나가다’의 의미로 바른 길에서 벗어남을 말한다.

⇒ 요셉의 거절은 단순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 건강한 경계선을 지키는 행위이며, 이것은 신앙적인 결단으로 이어지고 바른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결단이고 선택이다.

cf. 요셉의 거절은 여주인의 거절감, 불안감, 혼자있지 못함, 배반감 등을 자극하고 더욱 극단적으로 행동하게 했을까? 건강한 경계선이 있다면 멈췄을 것이다. ex) 홈쇼핑에서 화면을 보고 있으면 당장 사지 않으면 안된 것같은 불안감을 준다.


(창 39: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창 39:10) 『요셉이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주인의 아내는 날마다 끈질기게 요셉에게 요구해 왔다. 요셉은 그 여인과 함께 침실로 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여인과 함께 있지도 않았다.』

→ 날마다 계속되는 여인의 강하고 끈질긴 유혹에도 요셉은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거절과 설득을 보여준다. 또한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는 분명한 행동도 자신의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다.


(창 39: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창 39:11) 『하루는 요셉이 할 일이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 종들이 집 안에 하나도 없었다.』

→ 7-10절이 상황설명이라면 11절이하는 결정적인 계기(투옥과 이후의 사건)가 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Q. 왜 그 집에는 아무도 없었을까? 이것이 여주인의 계획이라면 이후까지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후 여주인의 모함에 증인이 없고 증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게 된다.


(창 39: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매』

(창 39:12) 『여인이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하고 침실로 가요!" 하고 졸랐다. 그러나 요셉은 붙잡힌 자기의 옷을 버려 둔 채, 뿌리치고 집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 ‘타파스’(תפשׁ) 손으로 물체나 사람을 잡다‘는 의미

→ 아무도 없는 집에서 기회라고 여긴 여주인은 강력하게 붙잡고 바램을 이루려는 집념을 보인다.

cf. 눈짓(7)-동침요구(7)-매일 동침요구(10)-옷을 붙잡으며 요구(12)

-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 두고 밖으로 나가매

→ 여주인의 극단적인 행위에도 요셉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신속하고 일관된 행동을 보인다.

cf. 거절(8)-이야기하다(8)-함께 있지 않다(10)-버리고 밖으로 나가다(12)


(창 39:13-15)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 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창 39:13-15) 『[13] 여인은 요셉이 그 옷을 자기의 손에 버려둔 채 집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14] 집에서 일하는 종들을 불러다가 말하였다. "이것 좀 보아라. 주인이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이 히브리 녀석을 데려다 놓았구나. 그가 나를 욕보이려고 달려들기에 내가 고함을 질렀더니, [15] 그는 내가 고함지르는 소리를 듣고 제 옷을 여기에 내버리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 여주인은 극에서 극으로 돌변한다. 요셉에 대한 욕정은 강한 분노와 수치심으로 변한다.

- 그 여인의 집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 거짓으로 사건을 말함으로 요셉을 궁지에 빠뜨리려 한다. 어느 누구도 여주인의 말에 반대할 수 없게 만든다.

- 히브리 사람을 → 주인은 편견이 없으나 여주인은 변심과 함께 편견을 도구로 삼고 자신을 변호하려 한다.

-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 결과와 목적의 관계를 설정한다. 즉, 주인이 히브리사람을 데려온 결과 희롱하게 되었음을 연결함으로 모든 책임을 주인에게로 돌리며 비난한다. 즉 주인의 노예에 대한 파격적인 대우와 가정총무로 세운 건강한 의도를 왜곡시켜 모든 비난을 남편에게 돌리고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cf. 투사적 동일시-자신의 잘못은 가리고 자신에게 있는 잘못을 상대에게 쏟아낸다..

- 우리에게.. 우리를 → 여주인은 이일의 피해자를 자기만이 아닌 모두에게 해당되는, 모두가 주인의 부당한 처사로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곧 여주인은 요셉과 자신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히브리인과 집안 모든 사람의 문제로 확대시키고 있다. 모든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

-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 남편이 들어오기 전에 모든 거짓말로 집안 사람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말한 것을 요셉이 말한 것으로 말한다.


(창 39: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창 39:16) 『이렇게 말하고 그 여인은 그 옷을 곁에 놓고,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 요셉의 순결의 증거는 음란의 증거로 왜곡 보관된다.

- 곁에 두고 ... 기다려 → 어떤 생각과 감정으로 있을까?

Q. 경계선 성격장애자의 경우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을까?


(창 39:17-18)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창 39:17-18) 『[17] 주인이 돌아오자 그에게 그에게 이렇게 일러바쳤다. "당신이 데려다 놓은 저 히브리 사람이 나를 농락하려고 나에게 달려들었어요. [18] 내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옷을 내 앞에 버려두고, 바깥으로 뛰어나갔어요."』

→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남편에게 말한다. 위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남편에게 말함으로 모든 것은 남편탓이며 자신과 모두가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창 39:19-20)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창 39:19-20) 『[19] 주인은 자기 아내에게서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 같은 향패를 부렸어요. " 하는 말을 듣고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20]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다. 그 곳은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었다.』

→ 보디발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심히 화가 나지만 이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옥에 가둔다.


* 보디발의 아내에게서 보이는 모습들 vs 경계선 성격장애의 진단기준

1. 실제 혹은 상상적인 거부, 배신을 피하려는 극도의 노력

2. 이상화/평가절하의 양극단을 오고가는 인간관계

3. 일관된 자기상, 가치관 등의 부재

4. 충동적 행동(과소비, 약물남용 등) 자살, 자해행동

5. 정서적 불안정성, 만성적 공허감, 강렬한 분노

6. 스트레스와 관련된 편집증적 사고 혹은 해리증상


* 보디발의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① 극으로 좋은 대상이 극으로 나쁜 대상이 된다. 극단적으로 행동한다.

② 자신도 타인도 괴롭힌다.

③ 건강한 경계선을 임의로 바꾼다.

④ 자신의 유혹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인격의 통합기능, 미래에 대한 예측기능, 조절하는 자율기능'이 없다.

⑤ 자신의 수치와 잘못을 타인에게 돌리고 자신에게서는 전혀 잘못을 느끼지 못한다.

⑥ 남편과 요셉의 건강한 경계선을 비난하고 악용한다.


* 요셉은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

① 요셉은 충분한 사랑으로 경계선을 만들게 된다.

② 요셉은 건강한 경계선을 만들면서 신앙적 경계선도 함께 만들어 간다.

③ 요셉의 건강한 경계선은 일관된 행동을 선택한다.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창 39:2-4, 21-23

 

* 창 39:2-4(보디발)과 39:21-23(간수장)의 공통점

(창 39:2-4)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21-23)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창 39:2-4(보디발)

창 39:21-23(간수장)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

그래서 형통한 자가 된다.

그에게 하나님의 인자가 더해진다.

보디발이 본다.(함께 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주인에게 은혜를 입는다.(눈에 들어)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는다.(눈에 들어)

가정총무가 되어 위탁받는다.

옥중 죄수와 제반사무를 맡긴다.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3) 『그 주인은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며, 요셉이 하는 일마다 잘 되도록 주께서 돌보신다는 것을 알았다.』


1. 이삭의 권면

(창 28: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2. 벧엘에서의 하나님 약속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3. 벧엘에서의 야곱의 서원

(창 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4. 라반의 집에서

(창 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5. 가족회의하며..

(창 31:4-5) 『[4] 야곱이 사람을 보내어 라헬과 레아를 자기 양 떼가 있는 들로 불러다가 [5]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 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 쫓아온 라반에게 고백

(창 31:42)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7. 얍복에서의 경험

(창 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8. 벧엘로 올라가자는 야곱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 아브라함

1.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창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2. 99세의 아브람을 부르셔서

(창 17:4-8)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3.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협약이 있을 때

(창 21:22)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 이삭

1. 이삭이 이집트로 가려 할때

(창 26:3)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2. 이삭이 아비멜렉과의 관계에서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3. 이후 아비멜렉과의 협약에서

(창 26:28)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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