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의 꿈'에 해당되는 글 1152건

  1. 2016.10.09 마태복음 10:40-11:1 영접하는 자를 상받게 하는 제자의 모습
  2. 2016.10.04 01.성령충만의 중요성 - 성령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3. 2016.10.02 마태복음 10:34-39 제자의 삶에 대한 오해
  4. 2016.09.28 성경인물 12제자 12. 제자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나?
  5. 2016.09.25 마태복음 10:24-33 두려워 말라. 그러나 두려워하라.

마태복음 10:40-11:1 영접하는 자를 상받게 하는 제자의 모습

신약강해설교/마태복음강해 2016. 10. 9. 13:18

(마 10:40-11:1)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民이 나라의 근본


전분 6등법(田分六等法) 연분 9등법(年分九等法)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고후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살전 4: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마 10:41-42)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 - 선지자의 상

의인의 이름으로 – 의인을 영접하는 자 - 의인의 상

제자의 이름으로 – 이 작은 자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 - 상


10:2-4 예수님의 다음준비 →

10:5-8 제자와 교회인 내가 할 일 →

10:9-15 메시야의 길을 가는 제자의 준비는?

10:16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10:17-20 그곳에 혼자 가나요? →

10:21-23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10:24-33 두려워 말라. 그러나 두려워하라. →

10:34-39 제자의 삶에 대한 오해


(마 11:1)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기를 마치시고 이에 그들의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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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성령충만의 중요성 - 성령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MTS 성경학교/MTS 성령학교 2016. 10. 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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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34-39 제자의 삶에 대한 오해

신약강해설교/마태복음강해 2016. 10. 2. 12:22

(마 10:34-39)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사람들이 원하는) 화평이 아니요 (너희들이 받게 될 핍박의)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5-36)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디카조(διχάζω) - 둘로 나누다


(미 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마 10:37-38)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14:26-27)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마 12:46-50)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누가 내 어머니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 10: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늙은 농부가 죽었는데 전운이 감돈다. 주검을 지키려는 이들과 빼앗으려는 자들 사이에 전선이 그어졌다. 그가 죽은 게 아니라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죽인 자들은 농부가 죽게 된 진짜 이유를 밝혀주겠다며 부검영장을 흔들어 댄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을까? 분이 치밀어 오르지만 저들의 체질과 본성을 감안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패륜이다. 그 옛날 예수가 죽던 날에도 군인들은 창을 들어 옆구리를 푹 찔렀다. 농부의 그곳도 가만 놔두지 않을 테지만 칼을 든 자들이여, 이번만은 조심할지어다. 예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는데, 농부의 옆구리에서 또 무엇이 쏟아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든 농부를 빼앗긴 자들은 그것을 양식 삼아 반격에 나설 것이다.

보성 사람 백남기.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를 닮는 것은 지당한 일이지만 그의 삶과 죽음은 예수님과 너무나 닮았다. 천주교인인 그의 본명(세례명)은 예수의 다른 이름이었던 ‘임마누엘’이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 그러니까 그는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과 다스리심을 드러내는 자. 임마누엘이 곁에 있으면 누구나 위안과 존중, 보호를 받는다. 예수는 “나를 본 사람은 곧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이라는 뜻밖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짝 웃고 있는 농부의 영정에서 우리는 시방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

예수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백남기는 명동 언덕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아예 머리에 물대포를 맞았다. 예수는 죽기 직전 “나를 먹고 나를 마셔라” 하면서 세상을 위한 밥이 되었다. 한평생 농민으로 살면서 세상이 먹을 밥을 짓던 선생은 밀밭에 한가득 씨앗을 뿌려놓고 최후의 순례를 떠났다.

두 분 모두 변방의 변두리 시골사람으로서 예수는 수도 예루살렘에 갔다가 못에 찔렸고, 백남기는 수도 서울에 올라갔다가 두개골이 깨졌다. 예수는 로마 총독 빌라도와 대사제 가야파의 미움을 사서, 백남기는 대통령과 치안책임자의 분노를 사서 죽었다. 아버지 헤로데가 잡다 놓친 예수를 결국 아들 헤로데가 잡았다. 청년 시절 백남기는 독재자 박정희에게 쫓기고 시달리며 살았는데 하필 그의 딸에게 붙들려 숨졌다.

예수가 죽자 그를 사랑하던 여자들이 대성통곡했고, 도망쳤던 남자들은 땅을 쳤다. 백남기의 사망에 온 나라의 ‘도라지와 민주화’들이 밤낮으로 울고 있다. 꼭 닮은 운명이 이 정도로 그치고 말까? 예수의 몸은 죽었어도 오랜 시간 빌라도의 소유물이었다가 나중에 돌려받았으니, 농부의 시신 또한 권력자의 손에 들려 너덜너덜해진 다음에야 사랑하는 이들의 품에 안길 것이다.

2000년 전 이스라엘의 통치세력은 자기들이 죽이려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 나라의 집권세력은 자신들의 손에 맞아죽은 농부가 어떤 존재인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나서서 그가 참으로 누구였는지 묻고 답할 수밖에.

농부는 누구인가? 닭이 달걀, 닭의 알을 낳듯 농부는 쌀알을 낳아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알을 꼭꼭 씹어 먹으면 놀랍게도 살이 된다. 쌀, 살, 알, 세 낱말이 엇비슷한 것은 이런 연유다. 자고로 농부란 겨레의 어머니시다. 농부가 낳아주시는 쌀알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우리는 새 기운을 얻는다. 농부, 이 어마어마한 이름을 예수는 하느님께 드렸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복음 15장 1절) 그러므로 그날 물대포가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타격했던 대상은 한낱 농사꾼이 아니었다. 우리를 모시고, 살리고, 키워주던 신적 존재였다.

성경은 예수가 죽던 날,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남기가 죽은 몸이나 다름없게 되자, 우리가 알지 못하던 지진이 줄곧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나간 충격의 여진인지 앞으로 닥칠 재앙의 전조인지 따지느라 전전긍긍한다마는, 그 전에 절대로 없어져서는 안될 사람들을 없애버린 저 잔혹한 범죄에 대한 하늘의 경고라는 점부터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던 순간, 하늘이 활짝 열렸다. 성경의 개천절이라고 부를 만한 그날, 하늘로부터 이런 소식이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코복음 1장 11절) 개천절은 우리 서로 이런 소리를 들려주는 기쁜 날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구보다 먼저 그런 인사를 받으셔야 할, 죽는 날까지 옆구리에서 쌀알을 쏟아주시던 농부는 싸늘한 시신으로 누워 있고, 제 혈육과 나눠먹지 않는 쌀은 산더미처럼 쌓인 채 몇 년째 썩어가고 있다. 하느님도, 하늘도 다 죽여놓고 이 나라는 이렇게 개천절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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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12. 제자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나?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9. 28. 13:08

 

▷ 상황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 그들이 :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들

→ 상황 :


(막 9: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이 예수를 발견하고 예수께 달려온다.

(눅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 예수께서 상황을 물으신다.


▷ 환자의 아버지의 간구

(마 17:14-16)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막 9:17-18)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눅 9:38-40)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 마태복음은 위의 상황이 나오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한 사람이 다급하게 등장하고 예수 앞에서 꿇어 엎드린다.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비슷하다.

→ 공통점은?


▷ 예수님의 책망과 아이를 부르심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막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 복음서가 동일하다. 동일한 지적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중심주제이다.


▷ 아버지의 설명과 대화

(막 9:20-24)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

→ 대화내용 :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아버지)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예수)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아버지)

→ 다시 강조되는 믿음. 아들을 고치기전 아버지의 믿음을 고친다. cf. 자녀변화의 핵심은 부모의 변화.


▷ 예수님의 꾸짖으심과 치료

(마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막 9:25-27)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눅 9:42-43a) 『[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

누가복음은 여기서 끝나고, 마태복음은 간단하게 결과를 말한다. 마가복음은 치료의 과정이..

1. 정확히 귀신의 정체(더러운 귀신,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를 밝히시고 나가라 명령하신다.

2. 아이가 고통스런 치료의 과정을 거친다. ⇔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에는 아이를 넘어지게 하는 경련과 달리 치료의 경련을 본다.

3. 많은 사람은 치료의 과정을 오해하고 ‘죽었다’고 함부로 잘못된 진단을 한다. ⇔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한 것같지는 않다.

4.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 치료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일으키심이다.


▷ 제자들의 질문

(마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Q. 제자들은 왜 못했을까? 우리는, 우리 아이는, 우리 상황은 왜 못할까?


▷ 예수님의 대답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은 제자의 질문을 강조한 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마가복음에 어울리는 대답이다.

→ 마가복음은 믿음을 강조하였음에도 결론은 ‘기도’라고 한다.

→ 이렇게 엇바뀌었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금식’이 서로 상관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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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0:24-33 두려워 말라. 그러나 두려워하라.

신약강해설교/마태복음강해 2016. 9. 25. 12:46

 

(마 10:24-33)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苦盡甘來


(마 10:24-25) 『[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0:25) 『..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마 12:24)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마 10:26-27)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롬 3:10-18)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10:29-31)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한 앗사리온=노동자의 품삯 한 데나리온의 16분의 1.


(마 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 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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