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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23 성경인물 12제자 15. 큰 자가 궁금한 제자의 질문 vs 어린아이를 영접하라는 예수님의 대답
  2. 2016.11.09 성경인물 12제자 14. 성전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3. 2016.10.19 성경인물 12제자 13. 예수의 예고와 제자들의 무지와 근심
  4. 2016.09.28 성경인물 12제자 12. 제자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나?
  5. 2016.08.24 성경인물 12제자 11.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일관된 예고

성경인물 12제자 15. 큰 자가 궁금한 제자의 질문 vs 어린아이를 영접하라는 예수님의 대답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11. 23. 11:01

 

 

(마 18:1-5)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막 9:33-37)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눅 9:46-48)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위 내용을 재구성하면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막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눅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 』




(막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막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눅 9:47) 『 ...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마 18:3-4)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눅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① 마태의 부분은 모두에서 나오는 부분으로 ‘어린아이 → 나’ 영접을

② 마가, 누가는 ‘어린아이 → 나 → 보내신 이’의 영접을

③ 누가는 여기에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고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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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14. 성전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11. 9. 11:18

 

(마 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Q. 왜 마태복음에만 이 이야기가 나올까? 마태복음만의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주려고 하는가?


(마 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 가버나움에 이르니 -


- 반세겔 받는 자들 -


→ 20-50세의 유대인 남자들은 매년 내야만 하는 성전세.

→ 반 세겔’이란 히브리어로 ‘쉐켈 하 코데쉬’ 즉 ‘거룩한 세겔’이라고 불리며 출애굽기 30장 13~16절에 근거하여 여자와 미성년자들을 제외한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모든 성인 남자들에게 부과되던 ‘성전세’였는데 그 대상에는 노예나 자유를 얻은 종들까지도 포함된다. 반 세겔은 성경의 도량형으로 20게라(1게라= 0.568g)였는데, 오늘날의 도량형으로 따진다면 은 11.36g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1 데나리온(Denarius)이 은 3.9g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약 4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써 백성들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구제(쯔다카)로 먹고 사는 거지라 하더라도 20세 이상 된 남자라면 자신의 옷을 팔아서라도 반드시 내야만 했고, 내더라도 나눠서 내면 안 되고 한 번에 내야만 했다. 용도는 성전의 유지와 보수비용으로 사용으로 로마의 강제적인 세금은 아니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내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자발적으로 내었다. 거부하는 자들은 도덕적으로 정죄를 받는다.

(출 30:13-16)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 17: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 “내신다.” →


-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Q. 예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당연히 여기는 베드로의 생각을 고치려 하는가?

-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 관세 : 국가가 일정한 지역의 경계선을 통과하는 상품에 부과하는 통과세와 상품에 대한 간접세, 국세 : 모든 국민에게 부과하는 정규의 조세.


(마 17: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 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cf. 여기서 놀라운 것은 물고기 입에서 돈이 나올 것을 알려주셨다는 것이고 필요 이상이 아닌 정확히 필요한 돈이 나왔다는 것이다.


Q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왜 성전세를 내시는가?

→ 죽음예고 이후 하나님의 아들임을 강조하기 위해?


→ 마태복음의 독자인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위해?


→ 예수는 성전세를 납부하는 충성스러운 유대인임을 알리기 위해?


→ 오해를 피하기 위해?


→ 물고기의 입에서 필요한 만큼의 성전세가 나올 것을 알려주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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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13. 예수의 예고와 제자들의 무지와 근심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10. 19. 11:03

 

(마 17:22-23)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막 9:30-32)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눅 9:43-45)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예수의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예고말씀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 제자들의 반응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마 17:22-23)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갈릴리에 모일 때에

→ 직역 ‘그리고 그들이 갈릴리에 모이게 되었을 때에’ 모이는 시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 ‘~에게 내어주다’로 소유권을 넘겨줌을 뜻할 뿐 아니라 믿는 자로부터 배신당함을 뜻한다.

-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게 될 것이나 하나님의 역사로 결국 삼일 만에 살아나게 될 것이다.

⇒ 예수께 예고에는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죽음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도받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제자들의 반응은 상반되다.


* 제자들의 반응

(마태)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근심’은 ‘슬픔, 고통, 비탄’을 뜻하며 이는 실망과 슬픔이 동반된 비탄한 심정을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제자들에게는 죽음에만 집중하고 부활에는 무지하다.

(마가)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제자들은 묻기를 두려워하는 심리상태를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들은 스승이 왜 그래야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고 당혹스러웠다.

(누가)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Q. 그들은 왜 묻기를 두려웠을까? 1차예고 때 베드로가 사단이라고 크게 책망받음을 기억하고 자신들도 같은 반복을 경험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또한 죽음을 더 강조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Q. 그들은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인간의 인식의 한계성과 그들의 그릇된 정치적 메시야상은 죽음이라는 고난보다 영광을 추구하였기에 예수님의 예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정확한 성경관과 메시야관과 자신의 갈 길을 바르게 알고 있다.

⇒ 나는 일관된 성경의 길을 가고 있는가?

제자들은 묻기도 두려울 정도로 정확히 알고 있지 않고 받아들이기도 원치 않았다.

⇒ 나에게서 어떤 부분은 이런 행동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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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12. 제자들은 왜 쫓아내지 못했나?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9. 28. 13:08

 

▷ 상황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 그들이 :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님과 세 제자들

→ 상황 :


(막 9: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던 무리들이 예수를 발견하고 예수께 달려온다.

(눅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막 9: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 예수께서 상황을 물으신다.


▷ 환자의 아버지의 간구

(마 17:14-16)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막 9:17-18)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눅 9:38-40)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 마태복음은 위의 상황이 나오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한 사람이 다급하게 등장하고 예수 앞에서 꿇어 엎드린다.

→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비슷하다.

→ 공통점은?


▷ 예수님의 책망과 아이를 부르심

(마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막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눅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 복음서가 동일하다. 동일한 지적은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 이야기의 중심주제이다.


▷ 아버지의 설명과 대화

(막 9:20-24)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

→ 대화내용 :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아버지)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예수)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아버지)

→ 다시 강조되는 믿음. 아들을 고치기전 아버지의 믿음을 고친다. cf. 자녀변화의 핵심은 부모의 변화.


▷ 예수님의 꾸짖으심과 치료

(마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막 9:25-27)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눅 9:42-43a) 『[42] 올 때에 귀신이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

누가복음은 여기서 끝나고, 마태복음은 간단하게 결과를 말한다. 마가복음은 치료의 과정이..

1. 정확히 귀신의 정체(더러운 귀신,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를 밝히시고 나가라 명령하신다.

2. 아이가 고통스런 치료의 과정을 거친다. ⇔ 그러나 아버지는 이전에는 아이를 넘어지게 하는 경련과 달리 치료의 경련을 본다.

3. 많은 사람은 치료의 과정을 오해하고 ‘죽었다’고 함부로 잘못된 진단을 한다. ⇔ 아버지는 다른 사람과 동일한 행동을 한 것같지는 않다.

4.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신다. → 치료의 마지막은 예수님의 일으키심이다.


▷ 제자들의 질문

(마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Q. 제자들은 왜 못했을까? 우리는, 우리 아이는, 우리 상황은 왜 못할까?


▷ 예수님의 대답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 마태복음은 제자의 질문을 강조한 후 ‘믿음’이라고 한다.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마가복음에 어울리는 대답이다.

→ 마가복음은 믿음을 강조하였음에도 결론은 ‘기도’라고 한다.

→ 이렇게 엇바뀌었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금식’이 서로 상관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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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11.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일관된 예고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8. 24. 12:45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 17: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막 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첫째로 ‘산에서 내려온다’

둘째로, 내려와도 그냥 아무곳으로 가지 않는다.

Q.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했을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후’에는 말해도 좋다는 제한적 허용을 했을까?

첫째, 사람들은 변화산의 초자연적인 사건을 정치적 메시야로만 제한하고 확산시킬 것이기 때문

둘째는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증거는 변화가 아니라 부활이기 때문

- 살아나기 전에는 : 직역 ‘그가 일으킴을 받을 때까지’, 즉 신적 수동태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직접 일으키심을 통하여 살아나게 될 것임을 예언한다. 또한 ‘부정과거 가정법’으로 여러번이 아닌 단회적 사건으로 강조하고 있다.


셋째,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질문하게 하신다. 첫째 질문은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막 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cf. 죽음에 대해 첫 번째 예고할 때 베드로가 강력히 거부한다.

(마 16:21-23)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cf. 죽음에 대한 두 번째 예고할 때는 두려워 한다.

(마 17:22-23)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막 9:30-32)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 예수님의 계속되는 일관된 죽음예고에 대해 제자들은 거부, 질문, 두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둘째 질문은 죽음과 관련없는 질문이다.

(마 17:10)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막 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 기존의 메시아에 관한 지식을 확인한다. 그들의 질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질문이 아니다.

(말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 4:4-6)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에 예수께서 대답한다. 그들의 질문이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그 질문에 대답하신다.

(마 17:11-13) 『[1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13]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막 9:12-13)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정리]

그들은 왜 질문하는가? 어떻게 질문하게 되었는가?

→ 계속되는 예수님의 죽음에 관한 예고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무지한 메시아관에 영향받지 않으시고 자신이 가야할 메시아의 길을 일관되게 가르치신다. 그의 일관된 예고는 환상이나 잘못된 메시아관이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성경적 예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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