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탐구/12제자'에 해당되는 글 15건

  1. 2016.06.30 성경인물 12제자 10. 베드로와 초막 셋
  2. 2016.05.25 성경인물 12제자 09. & 복음서 48.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베드로
  3. 2016.02.03 성경인물 12제자 08. & 복음서 38. 베드로는 어떻게 물에 빠지나?
  4. 2016.01.27 성경인물 12제자 07. & 복음서 37. 제자들은 왜 “유령”이라며 놀라는가?
  5. 2016.01.20 성경인물 12제자 06. & 복음서 36. 오병이어(五餠二魚) -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다.

성경인물 12제자 10. 베드로와 초막 셋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6. 30. 14:47

변화산에서 베드로 - 거대자기와 현실자아

 

베드로가 본 광경과 예수님의 반응

베드로가 경험한 거대자기의 광경은?

① 예수님의 변형과 빛남을 본다.

(마 17:1-2)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막 9:2-3)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눅 9:28-29) 『[28]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 예수께서 3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가신다. 평상시라면 홀로 기도하시러 가셨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누가는 ‘기도하실 때에’라고 명시한다. 이때 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께서 ①변형되고 ②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③옷이 빛같이 희어졌다.

cf. 변형과 옷은 모두 말하지만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것은 마태만 말한다.

- 높은 산 : ① 갈릴리 남쪽의 다볼산(588m)?

            ②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인접한 헤르몬산(2,814m)?

            → 누가복음에서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를 볼 때 기도가 가능한 산을 말한다.

- 변형되사(마태, 마가) : μεταμορφό́ω(메타모르포오) = ~ 속에, ~와 더불어(전치사 μετά) + 형성하다, 모양을 만들다(모르포오 μορφό́ω) → ‘모양이 바뀌다’의 의미

→ ‘모르포오’의 명사형 ‘모르페’(μορφή́)는 내면으로부터 진행되는 영적인 변화와 함께 외적으로 나타나는 성질이 변화되는 것까지 나타낸다. cf. ‘스케마’(σχημα)는 단순히 외형적인 ‘모양’

-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마태) → 예수께로부터 나온 영광의 광채를 생생히 느낄 수 있게 묘사한다. 즉 ‘태양’과도 같은 강렬한 빛이 얼굴에서 빛나며 몸 전체에서 나옴으로 그 옷을 투과하여 감히 근접할 수 없는 거룩한 신성을 나타내셨다.

cf. 십계명을 받은 모세의 광채나는 얼굴 (출 34:29-35) 『[29]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30]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31] 모세가 그들을 부르매 아론과 회중의 모든 어른이 모세에게로 오고 모세가 그들과 말하니 [32] 그 후에야 온 이스라엘 자손이 가까이 오는지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그들에게 명령하고 [33]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태),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마가),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누가) → 예수님의 광채는 몸 자체에서 빛났던 영광의 광채로 두꺼운 겉옷을 투과할 정도로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희게 보이게 하였다.

⇒ 베드로가 본 예수님의 변형에 대해 저자들은 실제로 내면으로부터의 변화와 외적인 변화를 모두 말하고 있다.


②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하는 광경을 본다.

(마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막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 보이거늘 → 부정과거 직설법, 즉 분명히 체험한 사실을 강조하는 ‘역사적 부정과거’용법으로 제자들이 목격한 변화산에서의 모든 것이 직접 체험한 역사적 사건임을 나타낸다. 또한 수동형으로 되어 있다. ↠ 즉, 이 광경은 제자들의 주관적인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눈으로 확인되어 환상이 아닌 직접 체험했음을 강조되는 표현이다.


▷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모세와 엘리야의 공통점은?

(출 33: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히 베푸느리라.”』

(왕상 19: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2. 모세는 구약의 율법을, 엘리야는 구약의 예언을 대표하는 자들이다.

cf.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여 ‘모세’를 앞에, 마가는 로마인을 대상으로 ‘엘리야’를 앞에, 누가는 사건을 중시하여 ‘두사람’이라고 썼다.


(마 17: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막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 더불어 말하다(쉴랄레오 συλλαλέ́ω) : 중요한 의제를 놓고 신중히 상의했음을 의미한다.

→ 복음서 모두 내용보다 셋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Q. 무슨 말을 할까?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자인 엘리야와의 대화는 무엇일까?

(눅 9: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 마태와 마가에는 없는 대화내용이 누가에만 나온다.

특징 1. ‘장차 ~하실’(에멜렌 ἤμελλεν의 원형 멜로 μέ́λλω)은 ‘임박한 미래에 어떤 일이 확실히 일어날 것’을 가리키는 조동사역할을 한다. 즉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사건이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것임을 보여준다.

2. ‘~것’을 번역된 ‘플레룬’(πληρουν)의 원형 ‘플레로오’(πληρό́ω)는 원래 의미가 ‘~을 채우다’이고, 여기서는 부정사 현재능동태로 쓰였다. 즉 ‘계속적으로 채워짐을 통하여 성취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곧 예수의 별세는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약속된 미래를 향하여 계속적으로 나아감을 통하여 궁극적인 성취를 이룰 의지적 죽음임을 보여준다.

3. 별세(엑소돈 ἔξοδον의 원형 엑소도스 ἔξοδος)는 ‘~로부터 벗어남’을 의미하고 ‘이땅의 삶으로부터 벗어남’ 곧 ‘죽음’과 동시에 ‘출애굽’을 가리킨다. 이렇게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땅의 삶으로부터 벗어남’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사용함으로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한 안식처로서의 죽음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을 뜻하는 출애굽을 통한 인류의 구원을 보여준다.

↠ 누가는 이 세단어로 짧은 문장을 말함으로 대화의 핵심을 응축하고 있다.


Q. 이러한 광경을 베드로는 어떤 상태에서 보게 되는가?

(눅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 깊이 졸다가 ⇒ 온전히 깨어나 : 초막셋을 말하는 베드로의 상태를 알려준다. 이들은 깊이 졸고 있었고 잠에 짓누르음을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뜻밖의 상황에 대하여 맑은 정신으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막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눅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 베드로가 예수께 이야기한다. ‘여기 있는 것이 좋고,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의도는 그가 선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예수께서 베드로를 변화산에 함께 데려와 참여시킨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십자가의 고난없이 영광을 누리고자 하는 인간적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이다.


③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막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눅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마태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마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누가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 하늘의 음성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

(마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눅 9: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 하늘의 소리를 들은 제자들의 감정이 나온다. 두려움이다. 마치 모세가 빛이 나고 백성들이 두려워 했던 것처럼


▷ 거대한 일을 목격한 제자들을 대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마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시니』

→ 마태에만 나오는 이야기로 두려워하는 그들의 감정을 만지신다.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막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눅 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Q. 왜 예수 외에는 아무도 없을까? 모든 상황의 종결 뒤에 현실의 예수와 제자들에게 집중된다.


[정리]

복음서기자들은 변화산에서 일어난 광경들이 실제 였음을 강조한다.

베드로의 반응은 현실보다 환상을 보는 것같다.

제자들의 두려움에 대해 예수께서는 위로하시고 현실로 다가오게 하신다.

 

베드로의 3과 예수님의 교육

 

(눅 9:30)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눅 9:31)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눅 9:32)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눅 9:33) 『두 사람이 떠날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막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눅 9:34)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마 17: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시니』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막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눅 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 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 베드로는 3명의 특별한 제자중 하나이다.

- 변화산에서 →(마 17:1-2)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 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 (막 5: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눅 8: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 겟세마네 동산에서 → (막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cf. 특권의식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 그런 그가 초막 셋을 말한다.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cf. 오지랖이 넓은 베드로??

-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의 고백과 칭찬, 그러나 저지와 책망의 이야기가 나온다.

- 세족식에서 전부 씻어달라 함 (요 13:9-10)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 예수를 잡으려는 종의 귀를 자름 (요 18:10-11)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 초막셋도 의도나 계획없이..


▷ 세 번 부인의 예언과 결과, 그리고 세 번의 물으심

- 세 번 부인한다는 예언을 받음

(마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막 14: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눅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요 13: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 결국 세 번 부인함.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막 14: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눅 22: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 세 번 사랑을 물으심

(요 21:15-17)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cf. 이런 상황에 이어 세 번 사랑을 들은 후 다른 제자의 미래를 물음-마태 16장과 같음

(요 21:20-22)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행 10장, 고넬료와 베드로의 환상 → 하나님이 고넬료에게 환상중에 사자를 보내어 베드로를 청하라 한다. 다음날 하나님은 기도중인 베드로에게 환상중에 하늘에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게 하신다.

(행 10:10-16)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15]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행 12장, 베드로의 감옥과 환상

(행 12:6-9) 『[6]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7]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정리]

상담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되어야 하듯, 하나님의 치유하심도 한번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하나님의 치유를 받고 있는가?

:

성경인물 12제자 09. & 복음서 48.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베드로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5. 25. 11:03

마태복음 16장으로 보는 표적이야기

마 16:1-4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마 16:5-12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교훈에 대한 경고

마 16:13-20 하나님이 알려준 베드로의 고백

마 16:21-28 수난과 부활의 예고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이 때로부터 → 예수께서는 그동안 밝히지 않은, 자신에게 일어날 메시야의 고난과 부활을 이야기하신다.

Q.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마음이 들까?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붙들고 : 옆에(πρός) + 가지다 데려오다(λαμβάνω) = 옆으로 데려왔다.(προσλαμβάνω)

→ 베드로가 예수님을 자기 곁으로 이끌며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모습이다.

- 항변하여 : 책망하다, 꾸짖다, 경계하다(έπιτιμάω) + 시작하다(αρχομαι) = 꾸짖기 시작하였다.

→ 단순한 만류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막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직역 “당신에게 이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베드로는 거세게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cf.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는가? 우리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가?

cf.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나?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Q. 베드로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 누구를 위한 말과 행동인가?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사탄아 → 베드로의 행위는 하나님의 아들이 가야할 길을 막는 마귀의 일과 동일하다.

-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예수께서는 그의 행동이 생각에서 나왔음을 말씀하신다.

cf. 자녀교육의 기준은 무엇인가? 자기 생각인가? 사회적 가치관인가?

“바람의 빛깔” 가사 중 ‘얼마나 크게 될지 나무를 베면 알수가 없죠’


Q. 그럼 어떻게 극복하고 극복을 가르칠 것인가?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① 자기를 부인하라 ② 자기 십자가를 지라 ③ 나를 따르라

→ 무엇을 부인할 것인가? 지기 싫은 것은 무엇인가? 예수를 따르는 것과 따르는 줄 알았는데 예수를 넘어지게 하는 행위를 구분할 수 있는가?


(마 16:25-28)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정리]

하늘의 고백을 한 베드로도 잘못하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바르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상대를 넘어지게 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

성경인물 12제자 08. & 복음서 38. 베드로는 어떻게 물에 빠지나?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2. 3. 12:19

(막 6:51-52) 『[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Q.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하는 예수와 환경을 보면서 ,...

↳ 베드로는 자신을 불러달라고 한다. ‘물위로 오라’ 해달라고 한다.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 베드로는 의심한 것이 아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목격하면서 자신도 물위를 걸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Q. 우리라면 어떻게 반응할까? 허락할까, 아님 불허할까? 그런 베드로를 예수께서는 부르시고 베드로도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간다.

(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 “오라” → 모험할 수 있게 하신다.

→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 예수께 간다. 일시적으로 물위를 걷는 베드로의 기적체험은 특별한 것이다.


Q. 그런 베드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가는가?

(마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 아니다. 베드로는 바람을 본다. 그로 인해 무서워 하게 되면서 물에 빠지게 된다.

Q. 베드로를 빠뜨린 것은 바람인가, 무서움인가? →

↳ 환경과 마음은 서로 묶어가는 패키지가 아닌 별개여야 한다.

cf. 제목에 대한 고민. 베드로는 왜? 언제? 어떻게? → ‘왜’는 이유를 추궁하는 듯. ‘언제와 어떻게’는 과정을 말하는 듯..


(마 14:31-32) 『[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 베드로의 요청에 ‘오라’하신 예수께서 이제는 즉시 손을 내밀어 붙잡으신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일관된 행동임을 보여준다.

- 믿음이 작은 자여 → 문맥적으로는 ‘무서움에 빠짐’을 말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작다는 것이 아니라 무서움에 빼앗긴 마음은 ‘믿음이 적은 것’이란 의미가 된다. 바람(환경)을 보고 가질 것은 두려움이 아닌 믿음이라는 것이다. 즉 마음이라는 것이다.

- 왜 의심하였느냐? → 여기서 의심도 ‘무서움’과 연결된다. 의심하다는 ‘디스타조’(διστά́ζω)라고 하며, ‘디스’(δί́ς)는 ‘두번’이란 뜻으로 한결같지 못한 마음을 가리킨다. 즉 처음 생각이나 각오를 버리고 중간에 들어온 마음에 방향을 돌린 것을 뜻한다.


[정리]

베드로는 의욕적으로 시도를 하지만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지듯이, 우리도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하는데 바람 때문에 흔들리게 되기도 하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우리의 손을 잡아주시는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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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07. & 복음서 37. 제자들은 왜 “유령”이라며 놀라는가?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1. 27. 11:58

 

오병이어 이후 이야기다.

마태 14:22-27, 마가 6:45-50, 요한 6:15-21


(마 14:22-23) 『[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 예수께서 무리를 보내시다 &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다.

→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시다 & 해가 저물 때에 혼자 계시다.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마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마 14:24) 『제자들이 탄 배는, 그 사이에 이미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풍랑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거슬러서 불어왔기 때문이다.』

→ 배가 육지를 떠났으나 바람이 거슬러서 풍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마 14:25-27) 『[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마 14:25-27) 『[25] 이른 새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로 가셨다. [26] 제자들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였다. 그들은 무서워서 소리를 질렀다. [27]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안심하여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셨다.』

→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시다 vs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유령”이라 놀란다.


Q. 제자들은 왜 유령이라 하는가? 우리도 유령으로 보이는 것이 있는가?


⇒ 말씀에는 이들이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기전 감정이 나온다. ‘두렵고 놀라고 무섭다’고..

(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막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

(요 6:19-21) 『[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20]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신대 [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다르다. 우리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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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인물 12제자 06. & 복음서 36. 오병이어(五餠二魚) -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다.

성경인물탐구/12제자 2016. 1. 20. 11:03

 

 

(마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오병이어 마태 14:15-21, 마가 6:35-44, 누가 9:12-17, 요한 6:5-14


* 상황에 대한 제자들의 의견과 대안

(막 6:35-36)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 시간 : 때가 저물어가매(설명), 날도 저물어가니(제자)

→ 장소 : 여기는 빈 들이니

↳ 제자들이 보기에 저녁시간은 되어가고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 대안 : ① 무리를 보내어, ② 마을로 가게 해서, ③ 무엇을 사먹게 하라.

↳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말한다.

ex 우리의 생활속에 현실적인 인식은 무엇인가?


* 예수님의 대안

(막 6:37a)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

(마 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지금 제자들의 상황을 모르시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호히 말씀하신다.

Q. 제자들의 대안보다 더 좋은 것인가?

↳ 우리라면 어떨까?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 우리라면 이 말씀이후에 바로 나오길 바라는 것은?

(막 6:41-42)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 그러나 제자들의 실제 반응은?

(막 6:37b) 『...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 자신의 합리적 대안에 대해 빠른 계산을 한다.

cf.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할 것이라 말한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 결과는 5천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다.

(막 6:42-44)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 예수님의 행하심

1.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시다.

(막 6: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 예수님의 질문은 200데나리온어치의 음식이 아니라 ‘너희에게’ 떡이 몇 개 있는가 이다

Q. 우리가 아이들에게 묻는 질문은 어떤가?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Q. ‘이것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답을 들으며 어떤 마음을 가질까?

2. 작은 것을 품어주시다. 인정하시다.

(마 14: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여기로’라는 말이 빠졌다. “그것을 ‘여기로’ 내게 가져오라”

3. 구체적으로 지시하시다.

(막 6:39-41)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①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②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③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 ①무리를 앉게 하고 ②작은 것을 하늘로 축사하고 ③떡을 떼어 나누게 하신다.

4. 여기서 핵심. 예수께서는 제자에게 주라하셨고 실제로 제자로 하여금 주게 하신다.


Q. 예수님의 명령과 제자의 순종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가?

⇒ 제자들의 현실적 계산과 판단으로 이어질 것처럼 보이지 않으나 실제론 예수님의 특별함이 그것을 이루게 하였다. 제자의 것이 오병이어로 1%라면 5천명을 먹이고도 남게 하는 예수님의 말씀, 의도, 축사, 행동들은 99%의 특별함이었다. 제자의 오병이어는 1인 도시락으로 모두가 배고프나 예수님의 오병이어는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이었다. 그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가복음 6:34-44 너희 먹을 것을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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