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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7.12 사사기 읽기 8장
  2. 2017.06.28 사사기 읽기 7장
  3. 2017.06.21 사사기 읽기 6장
  4. 2017.06.14 사사기 읽기 5장
  5. 2017.06.07 사사기 읽기 4장

사사기 읽기 8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7. 12. 17:30

 

*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

(삿 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 미디안을 추격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삿 7:24-25) 『[24]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

- 오렙은 오렙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 오렙은 '갈가마귀' 뜻하고 스엡은 '늑대'를 뜻한다.

-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

⇒ 기드온의 전쟁은 하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뜻대로 싸우는 전쟁이면서도 전략과 전술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여 보다 완전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또한 이 전쟁은 300명만의 업적이 아니라 다른 지파와의 협력으로 승리를 함께 했다.


* 에브라임 지파의 불평과 기드온은 지혜로운 대응

(삿 8:1-3) 『[1]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2]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3]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 에브라임 지파의 불만

→ 기드온의 대응이다. 에브라임의 노를 풀어주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한다.

→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는 기드온의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 이것은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는 것처럼 상대의 자존심을 세워줌


* 숙곳과 브누엘의 냉대와 기드온의 대응

(삿 8:4-9) 『[4]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자 삼백 명이 요단 강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추격하며 [5]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청하건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하니 [6] 숙곳의 방백들이 이르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어찌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하는지라. [7] 기드온이 이르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8]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9]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 삼백명이 ... 피곤하나 → 그들의 충성심, 숙곳과 브누엘의 냉대함

- 나를 따르는 백성이 피곤하니 → 300용사들의 상태를 설명한다.

- 나는 미디안의 왕들인 세바와 살문나의 뒤를 추격하고 있노라 →

- 세바와 살문나의 손? →

-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거냐? → 일종의 조롱조의 말을 퍼부은 것

⇒ 우리는 눈에 보이는 300명으로 판단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300명으로 보이는가? 내가 보는 상황이나 가족이나 자녀를 볼 때 무엇이 보며 판단하는가?

cf. 우리는 왜 내눈에 보이는 것을 판단하는가? ①세상의 기준과 유행. ② 상담의 시각으로 자신의 트라우마나 상처에 얽매이는 것. ③ 성격유형의 차이의 해석. ⇒ 이런 속에서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려면???

-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넘겨 주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 기드온의 확신과 분노의 모습 ⇒ 우리는 무엇 때문에 분노하는가?

- 브누엘 → ‘브니엘’과 동일한 곳이며 지리적으로 숙곳에서 동쪽으로 9km지점

-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 경고 속에 하나님에 대한 확신, ‘샬롬’

→ 망대는?

⇒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보는 평안은 무엇인가? 내가 만들고 스스로 지키는 평안인가 하나님이 주실 평안인가?


*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다.

(삿 8:10-12) 『[10]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든 자 십이만 명이 죽었고 그 남은 만 오천 명 가량은 그들을 따라와서 거기에 있더라. [11]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12]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진영을 격파하니라.』

- 갈골에 있는데 → 갈골(카르코르)는 군사시설을 갖춘 요충지로 동부 길르앗에 위치한 지역이며 산지로 240km 떨어진 지금의 ‘카르카르’로 추정된다. ⇒ 사명을 완수하려는 최선의 노력

- 적군이 안심하고 있는 중에 → 미디안의 상태.

-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거주하는 자의 길로 올라가서 그 적진을 치니 → 일시적으로 거하는 천막으로 유목민이나 대상들의 길을 말한다.

→ 이에 놀라 도망치는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미디안은 격파한다.


* 숙곳과 브누엘에 대한 징벌

(삿 8:13-17)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14]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그를 심문하매 그가 숙곳의 방백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그에게 적어 준지라. [15] 기드온이 숙곳 사담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 안에 있다는 거냐? 어찌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들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16]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아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17]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 기드온은 유용한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숙곳의 한 청년을 붙잡아 그곳의 지도자들을 알아낸다.

- 너희가 전에 나를 희롱하여 → 기드온의 모욕과 수치가 느껴진다.

→ 숙곳의 징벌함과 브누엘의 망대이를 헐겠다는 기드온의 약속대로 된다. ⇒ 보이는 것을 판단한 그들의 결과는 그들이 생각한 결론과 달랐다. 세상의 흐름은 우리의 계획과 판단대로 되지 않는다.


* 세바와 살문나의 죽음

(삿 8:18-21) 『[18] 이에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하니라. [19] 그가 이르되 “그들은 내 형제들이며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니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20]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그의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21] 세바와 살문나가 이르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의 힘도 그러하니라.” 하니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사람들이더냐? → 기드온 의도는 징벌의 정당함을

- 그들이 너와 같아서 하나 같이 왕자들의 모습과 같더라. →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 역으로 죽였기 때문에

-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이르되 → 어린 소년에게 죽게 함으로 수치와 치욕을

- 그들의 낙타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서 가지니라. → 월신(月神)의 보호를 기원하는 이교도의 월신숭배의 부적

cf. 기드온은 왜 이 부적을 취했을까? 성경은 왜 기드온의 무너짐을 기록했을까?

(신 7:25)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삿 8: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 기드온은 그것이 어떻게 보였을까? 기드온은 성경은 올무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듣지 않았을까? 이것이 직접적인 올무가 되지는 않았을지라도 결국 그 단계까지 가게 된다.

⇒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기드온이지만 눈앞에 보이는 탐욕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기드온의 양면은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 기드온의 올무

(삿 8:22-28) 『[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 지라.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 주변국가들의 강력한 왕권체제. 이스라엘은 그들을 이끌어갈 왕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국가의 잦은 침략과 고통을 당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들이 보기에 기드온이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했다고 본다. ⇒ 그러나 실제로 성경은 그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이 상대를 들어 사용했다고 하고 기드온이 이겼다고 하지 않기 위해 135,000명을 싸울 군사를 32,000에서 300으로 줄인 것이다. 그들은 기드온이 하나님의 도구였음을 잊는다.

-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기드온은 강력하게 거부함, 하나님의 다스림을 강조

-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 기드온은 왜 탈취물을 요구하는 것인가? 이것으로 에봇을 만들고 올무가 된다.

-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 ‘에봇’은 구약에 대제사장이 입는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입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묻는 신탁의 도구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제사장만 특별히 가질 수 있는 에봇을 기드온은 금으로 만들어 자기 집에 둔다. 이는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물으러 실로로 가는 것을 방해하여 대제사장이 아닌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중개하는 사람인 것처럼 잘못되게 인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하나님께 향하도록 해야할 백성의 마음을 자기에게 향하도록 하는 왜곡된 결과를 초래했다.

-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 ‘행음하다’의 의미로 불륜의 성관계를 뜻한다. 이는 이방신을 숭배하는 행위도 가리키는데 금으로 만든 에봇을 우상숭배하듯 섬겼으며 이는 하나님을 떠난 영적 간음의 행위로 성경은 보고 있다.

-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 올무는 올가미나 덫이다. 이는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려 멸망하게 하는 도구란 의미다. 기드온의 초승달 장신구로부터 시작하여 에봇에 이른 행위는 ...

⇒ 구출자의 방심은 가해자가 되어 백성을 넘어지게 했다. 말로는 하나님이 다스리셔야 함을 말하면서도 자기를 중심으로 하게 한다. 이는 우상을 집에 두었던 경험이 ‘바알제단과 아세라 상’ 대신에 에봇을 집에 두는 동일한 행위와 연결된다. 겉으로는 신실하나 속은 옛것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준다. 우리는 어떤가?


* 기드온의 축첩과 죽음

(삿 8:29-32) 『[29]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주하였는데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32]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가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

→ 기드온의 생활은 왕과 같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음을..

→ 그 중에 세겜의 아비멜렉을 소개하는 것은 9장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 기드온의 죽음 이후의 상황

(삿 8:33-35) 『[33]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가 음행하였으며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34] 이스라엘 자손이 주위의 모든 원수들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아니하며 [35]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하지도 아니하였더라.』

→ 바알브릿 : ‘언약의 바알’이란 의미로 가나안의 바알의 별칭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참된 언약을 잊으면서도 그것을 바알에게서 찾는 종교혼합적인 모습이다.

→ 이스라엘 자손은 1. 바알을 따라 음행하였고 2. 자기들을 건져내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고 3. 기드온의 업적을 잊었다.


[정리]

숙곳과 브누엘이 보는 것과 기드온이 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기드온은 장신구에서 에봇에 이르는 올무의 과정을 밟는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어려움을 왕이 없음으로 이해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도 기드온도 잊었다.

그들의 기억, 삶, 이해, 해석 등 모두에 하나님은 없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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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7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6. 28. 17:04

 

(삿 7: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 6장에서 소집된 군대는 미디안을 마주보도록 진을 쳤다.

-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 기드온을 따르는 모든 백성?


* 두려워 하는 자들을 보내다.

(삿 7:2-3)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 직역 ‘그들의 손에 내가 미디안을 주기에는 너와 함께 한 백성이 너무 많다’

⇒ 미디안은 13만 5천명, 하지만 이스라엘은 3만2천명, 1/4 정도가 많은가?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는 이어지는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과 연결되는가?

-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cf. (신 20: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갈까? ⇒ 그들의 수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보다 자신의 두려움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후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와는 무관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cf. ‘두려워 떠는 자’에서 ‘떨다’는 하라드()와 1절에서 이스라엘군대가 진을 친 ‘하롯 샘 곁’의 ‘하롯’은 하로드( 떨림)이다. 두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떠는 자들이 떠는 곳에서 마음이 보였거나 떠는 자들이 떠난 곳이라 후대에 떠는 곳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 우리 삶의 자리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지나? 우리는 무엇으로 하고 싶은가?


* 하나님의 선택

(삿 7:4-8)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 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어떤 생각일까? ⇒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까? 받아들여질까?

* 선택의 과정

1. 기드온에게 방향을 알려주시다. 그러나 미리 자세하게 알려주시진 않았다. →

2. 구체적인 행동을 알려주시다. 그러나 결과를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다. →

3. 선택의 결과를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과는 다르다. →

→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손바닥에 있는 물을 좌우를 살피면서 개처럼 핥아 먹는 자들’이다.

⇒ 두려움에 떠는 마음에만 집중한 2만2천명, 이들은 스스로 떠났다. 갈증의 욕구에만 집중한 9천 7백명, 이들은 하나님이 보냈다.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분별할 줄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300명, 이들은 하나님이 선택했다.

Q. 우리는 어디에 집중하는가? ⇒ 1차에 1%, 2차에 3%인 300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로 한 선택된 사람들이다.

-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 돌려보낼 때 기드온의 마음은 어떨까?

→ ‘머물게 하다’는 말은 ‘굳게 붙잡다’는 의미로 기드온은 300명을 붙잡으며 무엇을 붙잡은 것인가?


* 2만2천명과 9700명을 보낸 기드온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삿 7:9-12)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 그 밤에, 300명을 뽑은 그리고 9700명을 보낸 그 밤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불러 적 진영에 가라 하신다. 왜인가?

→ 두렵다면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기드온은 함께 간다. 여전히 기드온은 두려워하는가?

→ 그들의 말을 들으라 한다. 직역하면 ‘너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으라’ 두려워하는 적군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말은 기드온에게 확신을 준다. 자신의 두려움은 상대의 많음인데 그 속의 적군은 두려움이 가득함을 듣게 된다. ex 속이 빈 공기빵?? 겉은 튼튼한데..

→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보이는 것은 적들의 많음이고, 이것은 곧 자신의 적음이다.


* 기드온이 마주한 것은 무엇인가?

(삿 7:13-14)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 적진에 들어간 기드온은 꿈꾼자와 해몽을 듣는다. ⇒ 그럼, 반대로 우리의 이런 도구가 된 적은 없는가?

→ 꿈꾼자와 해몽자은 같은 마음이다. 프로이드 식으로 보면 집단적 두려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cf. 국민 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56위, 직장인행복지수는 57개국중 49위..

⇒ 기드온이 마주한 것은 덩치는 크지만 두려움에 가득한 상대를 보았다.


* 기드온의 확신과 비상식적인 전술

(삿 7:15-18)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해몽하는 → 해몽(쉐베르 רבשׂ)은 동사 솨바르(깨뜨리다)에서 나온 명사로 ‘깨뜨림, 멸망, 무너짐’의 의미다. 히브리어에서 해몽은 그 속에 감추어 있는 비밀을 깨뜨려서 참된 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cf. ‘항아리를 부수고’(20)의 ‘부수다’는 ‘솨바르’로 하나님이 주신 꿈과 그 해몽이 현실로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확인된다.

- 경배하며 ...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기드온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

-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

-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


* 미디안은 왜 자멸하는가?

(삿 7:19-23)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 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 이경 초 ...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 → 밤 10-11시 사이로 다소 산만해지는 시간대이다.

- 나팔을 불며 → 고대근동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출전의 신호와 더불어 승리의 선포이다.

-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

-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

⇒ 기드온의 두려움은 확신으로 갔으나 미디안의 두려움은 자멸로 갔다. 자멸은 자연적 흐름이나 확신은 인도하심의 은혜이다.


(삿 7:24-25) 『[24]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정리]

두려움이 많은 기드온에게 상대는 커다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속에 있는 두려움을 보게 하셨다.

스스로 떠난 2만2천과 하나님이 보낸 9700과 하나님이 선택한 300용사는 나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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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6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6. 21. 17:39
 

6-8장은 기드온의 이야기, 9장은 그의 아들 아비멜렉의 몰락

한사람이 세워지기 위해 그 사람의 핵심감정은 어떻게 다루어질까?


* 기드온의 배경

(삿 6:1-6) 『[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3]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4]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5] 이는 그들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 떼 같이 많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낙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6]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악을 행하자

-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

-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 7년간의 약탈은

-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 미디안을 주도로 아말렉과 동방사람들이 치러 올라왔다.

cf. 성경은 군사적으로 약한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약탈한 것에 대해 하나님의 도구임을 말한다. (신 28:15,33)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모세의 경고

- 이스라엘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궁핍함이 심한지라. →


* 하나님의 책망

(삿 6:7-10) 『[7]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 [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시니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9]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cf. 이전에는 부르짖음 뒤에 사사를 보내셨으나

→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이

-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 cf. 현실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려워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듣지 않음 중


* 기드온을 부르시다.

(삿 6:11-12)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 익명의 선지자는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기 위해 온다.

-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 큰 용사여 → 사자는 소심하고 나약해 보이는 기드온을 이렇게 부른다.

-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큰 용사가 된다.


* 기드온의 항변

(삿 6:13-14) 『[13]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14]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 오 나의 주여, → 한 말씀 드려도 되겠느냐는 의미

-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 함께 하시지 않았다는 반어적 표현. ⇒ 문제는

-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

- 이 너의 힘으로 → 하나님의 대답이다.

-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


* 기드온의 열등감

(삿 6:15-16)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1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삿 6:17-18) 『[17]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만일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18]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너의 돌아오기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

-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

- 내가 너의 돌아오기까지 머무르리라. →


* 표징을 보여주는 여호와의 사자

(삿 6:19-21) 『[19]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병을 가져다가 이 바위 위에 놓고 국을 부으라”하니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라. [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병에 대니 불이 바위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 기드온은 제사의 예물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표적을 보기 위해 예물을 가져왔다.


* 기드온의 두려움 발동

(삿 6:22-24) 『[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고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하니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리라 [2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 기드온은 표징에 대한 기쁨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

-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


* 소명과 헌신

(삿 6:25-27) 『[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 7년 된 둘째 수소?

-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

cf. 네 아버지에게 있는 → ‘네 아비의 집에 있는’의 의미가 아닌 ‘네 아비에게 속한’ 의미이다.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

-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

-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


* 사람들의 반응과 아버지의 변론

(삿 6:28-32) 『[28]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 성읍사람들은 아침에 보고 놀랜다. 부모의 양육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 요아스는 바알을 위하여 변호할 사람은 성읍사람이 아닌 바알자신으로 성읍사람이 기드온을 죽이지 않아도 바알이 신이라면 바알이 죽일 것이라 한다. 우상숭배에 앞장 섰던 요아스의 변론은 기드온의 행위를 정당화하게 되었다.

Q. 어떻게 우상숭배에 앞장 섰던 요아스는 기드온을 변호하게 되었을까?


* 미디안 연합군에 대항하여 기드온이 군사를 소집하다.

(삿 6:33-35) 『[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 이스르엘 골짜기→

-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

→ 사자를 보내어 모병 절차를 거쳐 모인 군사는 3만2천명으로


(삿 6:36-40)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

-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

-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 Q. 양털의 이슬을 짜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

- 그대로 된지라 ...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  Q. 우리는?

cf. 그러나 이런 응답에도 기드온의 두려움은 계속 되고, 하나님은 그것을 없애기 위해 미디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하신다.

(삿 7: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cf. 모집한 군대 중에도 두려워하는 자들은 보냈다.

(삿 7: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정리]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시고 표징을 보이시고 살려주시고 초자연적인 응답까지 주신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 이후로도 보이는 하나님의 활동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와 함께 하나님이 구원하신다’이심을 보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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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5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6. 14. 17:32

이스라엘의 경제적 시대적 상황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가장 복을 받는 여인 야엘 vs 시스라의 어머니

자연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기손강에 비를 내리심

하나님의 원수인 압제자를 쳐부수는 성스러운 사역

시스라 어머니의 압제자의 사고방식


- 5장의 시는 가장 오래된 이스라엘의 시이고 히브리성경에서 가장 초기의 본문이다.

- 시 속에는 주전 1200~1020년 이스라엘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 당시 신생 이스라엘은 더욱 강력한 가나안 도시국가 연합의 영향을 받으면서, 도시국가적 체계와 ‘계층체제’에 맞서 이스라엘의 평등주의 사회체제를 표방하고 있었다. 혈연적 가족과 확대적 가족들은 함께 일하고 가나안의 지배 가장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에게 삶은 투쟁이었다. 즉 충분한 곡식을 키우고 음식을 얻기 위한 투쟁이었고, 농업에 길들여진 이스라엘 소작농, 그리고 작은 마을 거주민들과 더욱 도시화되고 상업적인 가나안인들과의 투쟁이었다.


(삿 5:1-5) 『[1]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3]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4]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5]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 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 처음은 찬양드리는 형식으로 하나님을 부른다. 하나님은 본디 행동하시는 분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우주의 세력들조차 굴복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우시려고 시내산에 있는 그의 거처로부터 나오는 것을 묘사한다.

-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 시스라의 군대는 철병거 구백승의 중무장이지만 이스라엘은 창과 방패와 같은 무기로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전력상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믿음 안에서 죽을 각오로 하나님께 자신을 즐거이 드리는 마음으로 전쟁에 임했다.

-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을 노래하는 드보라의 영적 상태와 의지를 보여준다.

-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 기손강 전투에서 하나님이 비를 내리신 것을 강조하며 노래한다.


(삿 5:6-9) 『[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7]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9]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 사람들은 보통 다니는 좋은 길을 이용하거나 발을 갈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무기가 없고 양식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곤경에 빠졌고 새 도움으로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어 그들을 새롭게 돕는다.

→ 당시 상황은 가나안들이 이스라엘의 도로와 무역로를 장악했고 이를 기점으로 이스라엘의 영세농민을 착취하였으며 드보라가 세워지기전까지 계속되었다. 이는 가나안의 압제가 이스라엘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다.

-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을 선택했음을 말한다.

-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 하나님은 1만명을 명하셨다. 이는 납달리와 스불론지파에서 동원할 수 있는 대략적 수로 보인다.

-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 전쟁에 필요한 무기가 없다는 의미.

→ 2절과 9절처럼, 가나안의 위협에서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는’ 모든 백성들의 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함을 선포하고 있다. 이에 5장은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파들의 이름을 부르며 칭찬하고 있고(14-15절), 동참하지 않는 지파들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다.(15-17, 23절)

→ 당시에 지파들의 연합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체제에서 잘된 조직이나 지파연합이 없었고, 대신 사사들의 지도력으로 지역적이거나 임시적이었다.

→ 이에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된 드보라는 일종의 공공 법관의 지위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압제 상황에서 백성들이 죽음으로부터 실질적인 구원을 얻도록 드보라의 도움을 찾았다는 말이며, 드보라를 향해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제공하는 상태로의 회복과 정의를 찾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삿 5:10-12) 『[10] 흰 나귀를 탄 자들, 양탄자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전파할지어다. [11]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12]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가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

→ 고위층이나 길에 걸어다니는 평민들 모두 한 목소리로 승리의 환호를 지른다. 자기 백성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일을 찬양한다.

- 깰지어다. 깰지어다. 너는 노래할지어다. 일어날지어다. :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앞에서 영적으로 깨어 그의 의로우심과 영광을 노래할 것을 드보라는 스스로 촉구하며, 이 노래를 듣는 모든 백성들의 영적 각성을 촉구한다.


(삿 5:13-18) 『[13]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 [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6]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17]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 [18]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마길), 스불론, 잇사갈, 르우벤, 갓(길르앗), 단, 아셀, 납달리

→ 이스라엘의 군사를 모을 때 납달리지파와 스불론지파가 중심적 역할을 하였지만 다른 지파들에서도 사람들이 나왔다. 여섯지파가 소집에 응하고 다른 네 지파는 나오지 않았다. 유다와 시므온은 비난받지 않았다.


(삿 5:19-22) 『[19] 왕들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은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20]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22]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가 땅을 울리도다.』

→ 자연이 이스라엘의 편에서 싸운다. 하늘의 별과 기손강이 급류를 만든다.


(삿 5:23)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주민들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 놀라운 승리 가운데 메로스 성읍이 저주를 받는다. 참여하지 않은 지파들보다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 까닭은? 메로스는 가나안 성읍으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있었을 것이고 동맹국이 위기를 당할 때 약속을 깨드렸기 때문이다.


(삿 5:24-27) 『[24]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 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우유를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26]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일꾼들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의 머리를 뚫되 곧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도다. [27]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은 여인’이다.

→ 시스라는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이는 야엘이 막강한 군대장관 시스라를 무찔렀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시스라의 몰락을 표현한 것이다.


(삿 5:28-30) 『[28]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을 통하여 바라보며 창살을 통하여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그의 병거들의 걸음이 어찌하여 늦어지는가?’ 하매 [29] 그의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30]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 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쪽에 수 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 여인에 의해 몰락한 시스라의 모습이 그의 어머니를 통해 더 강조된다.

→ 이스라엘의 승리와 감격의 노래 뒤에, 시스라의 어미는 홀로 남아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노략물과 노예를 취하여 즐기고 있는지 묻는다. 그러나 현실은 지난 20년간의 약탈과 시스라 어미의 기대와 다르다.

cf.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 vs 시스라의 어미


(삿 5:31)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 드보라와 야엘은 하나님의 일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구원자’라는 칭호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참된 구원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 5장의 시는 찬양으로 시작하고, 하나님이 백성을 압제자로부터 구원하심을 서술하고, 다시 하나님을 찬양한다.

→ 억압을 당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하나님은 우주적인 요소들을 사용하여 이기신다. 즉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에 따라 완성됨을 강조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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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4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6. 7. 17:30

 

여성인 드보라와 야엘, 남성인 바락과 시스라의 대조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 드보라의 등장 이전의 상황

(삿 4:1-3) 『[1]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2]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았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3]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사사 에훗이 죽고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한다.

- 가나안 왕 야빈과 군대장관 시스라를 통해 20년간 학대받은 이스라엘은 기도한다.

⇒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드보라를 세우신다.


* 드보라의 대언

(삿 4:4-7)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자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6] 드보라가 사람을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7]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셨느니라.”』

- 이스라엘은 사사로 세워진 드보라에게 재판을 받는다.(재판은 사사의 역할)

- 드보라가 바락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납달리+스불론 1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며 시스라와 그의 병거를 기손강에서 이기게 하신다고 한다.

→ 납달리 스불론지파는 야빈과 시스라에게 가장 학대받는 지파였다.

→ 다볼산은 560m 정도의 산으로 스불론 납달리 잇사갈 지파의 지경이 만나는 경계점으로 군대를 집결하기 적합한 장소였다.

⇒ 과연 바락은 '거느리고 가라'는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당시 시스라의 철병거는 너무 강력한 무기였고 이스라엘은 겁을 먹고 출전하기를 주저했을 것이다. 사실상 8,9절에 보듯이 바락도 주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군사들을 독려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며 전쟁터로 나아가야 했다. 그런데 7절은 ‘내가(하나님) 시스라와 병거와 군대를 기손강으로 이끌어’라고 한다. 겁먹었을 이스라엘군대는 바락이 이끌고 자만했을 시스라의 군대는 하나님이 이끌어 바락의 손에 붙여준다 한다. 이렇게 드보라는 바락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전한다.

Q. 이런 상황이 우리에게 있을까? 하나님의 뜻으로 앞으로 나가야 함을 알지만 그 상황이 겁먹고 있는 적은 있는가? 그때 하나님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까? 거대한 시스라의 군대를 넘겨주시듯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까? 또한 우리는 바락처럼 약속을 받았나?

→ 하나님은 이스라엘은 승리로 인도하시고 대적은 패배로 인도하신다. 이것은 모두 3절의 기도후에 있는 응답이다.

cf. 기손강 - 건기는 마른 골짜기이고 우기에는 심한 급류가 생긴다. 이에 기손강 하류는 넓은 평원으로 철병거 배치가 적당한 지형이지만 비가 내려지면 철병거가 강바닥에 빠져 무력화된다.(5:4,21)


* 바락의 요청

(삿 4: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 하니』

→ 바락은 순종의 조건으로 드보라의 동행을 요청한다. 이는 눈으로 보이는 상황, 즉 열세한 상황에 대한 바락의 두려움과 주저함이다.

Q.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이렇게 보이는 현실에 두려움과 주저함을 보이고 다른 행동을 한 적이 있는가?


* 드보라의 대답

(삿 4:9)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 드보라는 바락의 요청에 대해 반드시 함께 갈 것을 말하며, 자신의 하나님의 승리의 확신을 보여줌으로 바락에게 자신감을 주려 한다.

→ 그러나 승리의 영광은 바락이 아닌 여인(야엘)의 손에 이루어질 것을 예언한다.


(삿 4:10)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 바락과 드보라가 함께 올라간다.


* 예언 성취를 위해

(삿 4: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 갑자기 내용과 관련없는 것이 나오는 것같다. 그러나 이것은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것이다. 겐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남방에서 북방지역으로 이동한다.

Q.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한 행동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한 준비가 되었던 경험이 있는가?


* 바락의 전쟁

(삿 4:12-13)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 바락은 다볼산으로 오르고 시스라는 그것을 듣는다. 그리고 병거와 군대를 기손강으로 모은다.

→ 20년간 학대에도 저항이 없던 이스라엘이 무기를 들고 자기들을 대적하러 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에 모든 군사력을 동원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저항세력을 완전히 섬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기손강에서 진멸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다.


(삿 4:14-16)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 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업었더라.』

→ 드보라의 확신 : 하나님이 너에 앞서 가신다.

→ 바락이 다볼산으로 가지만, 하나님이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에 빠지게 하시고 시스라는 도망한다. 폭우로 인한 강의 범람과 흙탕물과 수렁으로 무력화된다.

→ 추격하여 진멸하고 남은 자가 없을 정도로 승리하지만 예언대로 적장을 놓친다.


* 시스라의 최후

(삿 4:17)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는 화평이 있음이라.』

→ 시스라는 겐사람 헤벨의 집으로 도망한다. 이는 야빈과 헤벨이 우호관계였기 때문이다.

(삿 4:18-20) 『[18]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가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그를 덮으니라. [19]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매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으니 [20] 그가 또 이르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 야엘은 그를 영접하고 쉬게 한다. 도피중인 시스라는 그들에 대해 긴장을 풀고 대접을 받는다.

(삿 4:21) 『그가 깊이 잠드니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가지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그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 우호관계이고 호의를 베푸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호러물이 된다.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이는 행위는 참으로 잔혹한 행위로 보인다. 왜 야엘은 이렇게까지 했을까? 고대근동사회에서 ‘손님에 대한 호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위반행위는 야엘이 아닌 시스라가 했다는 점이다.

1. 그는 야엘의 장막이 아닌 헤벨에게 갔어야 했으나 야엘에게 간 시스라의 행동은 헤벨을 모욕하고 야엘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2. 모든 호의는 헤벨에게서 나와야 함에도 시스라는 야엘에게 여러 가지를 요구하였다. 마실 것과 함께 특히 장막입구에 서서 자신을 지키라며 거짓말을 요구했다. 이는 손님이 주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다.

3. 결국 호의를 베푸는 관습을 위반한 시스라의 행동은 야엘과 그녀의 가족의 명예와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이었다.

⇒ 그러므로 야엘의 행위는 잔인한 살인이 아닌 시스라의 위협에 대한 ‘자기방어’에 해당되며, 이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삿 4:22)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할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그에게 이르되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혔더라.』

→ 추격하던 바락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었고 예언대로 한 여인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 한 여인의 행동은 기득권층에 대한 모든 소외계층, 특히 여성층의 승리의 상징이며, 잔인한 폭력행위와 억압을 반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묘사되고 있다.


(삿 4:23-24) 『[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24]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 시스라와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실히 경험한 이스라엘 군대는 끝까지 진격해 나갔다. 4장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과 최후 승리를 함께 말하고 있다.


[정리]

4장은 여성 사사 드보라와 약자와 소외계층인 한 여인의 활동이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남성인 바락의 주저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함과 시스라의 위반행위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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