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읽기 7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6. 28. 17:04

 

(삿 7: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 6장에서 소집된 군대는 미디안을 마주보도록 진을 쳤다.

-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 기드온을 따르는 모든 백성?


* 두려워 하는 자들을 보내다.

(삿 7:2-3)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 직역 ‘그들의 손에 내가 미디안을 주기에는 너와 함께 한 백성이 너무 많다’

⇒ 미디안은 13만 5천명, 하지만 이스라엘은 3만2천명, 1/4 정도가 많은가?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는 이어지는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과 연결되는가?

-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cf. (신 20: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갈까? ⇒ 그들의 수와 상관없이 분명한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보다 자신의 두려움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후 승리의 영광의 자리에와는 무관한 삶을 산다는 것이다.

cf. ‘두려워 떠는 자’에서 ‘떨다’는 하라드()와 1절에서 이스라엘군대가 진을 친 ‘하롯 샘 곁’의 ‘하롯’은 하로드( 떨림)이다. 두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떠는 자들이 떠는 곳에서 마음이 보였거나 떠는 자들이 떠난 곳이라 후대에 떠는 곳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 우리 삶의 자리의 이름은 무엇으로 지어지나? 우리는 무엇으로 하고 싶은가?


* 하나님의 선택

(삿 7:4-8)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 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 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어떤 생각일까? ⇒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면 어떤 생각과 마음이 들까? 받아들여질까?

* 선택의 과정

1. 기드온에게 방향을 알려주시다. 그러나 미리 자세하게 알려주시진 않았다. →

2. 구체적인 행동을 알려주시다. 그러나 결과를 먼저 말씀하시지 않았다. →

3. 선택의 결과를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판단과는 다르다. →

→ 300명은 ‘손으로 물을 떠서 손바닥에 있는 물을 좌우를 살피면서 개처럼 핥아 먹는 자들’이다.

⇒ 두려움에 떠는 마음에만 집중한 2만2천명, 이들은 스스로 떠났다. 갈증의 욕구에만 집중한 9천 7백명, 이들은 하나님이 보냈다. 자신의 마음과 상황을 분별할 줄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300명, 이들은 하나님이 선택했다.

Q. 우리는 어디에 집중하는가? ⇒ 1차에 1%, 2차에 3%인 300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로 한 선택된 사람들이다.

-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 돌려보낼 때 기드온의 마음은 어떨까?

→ ‘머물게 하다’는 말은 ‘굳게 붙잡다’는 의미로 기드온은 300명을 붙잡으며 무엇을 붙잡은 것인가?


* 2만2천명과 9700명을 보낸 기드온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삿 7:9-12)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 그 밤에, 300명을 뽑은 그리고 9700명을 보낸 그 밤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불러 적 진영에 가라 하신다. 왜인가?

→ 두렵다면 부하 부라를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기드온은 함께 간다. 여전히 기드온은 두려워하는가?

→ 그들의 말을 들으라 한다. 직역하면 ‘너는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으라’ 두려워하는 적군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말은 기드온에게 확신을 준다. 자신의 두려움은 상대의 많음인데 그 속의 적군은 두려움이 가득함을 듣게 된다. ex 속이 빈 공기빵?? 겉은 튼튼한데..

→ 그러나 여전히 그에게 보이는 것은 적들의 많음이고, 이것은 곧 자신의 적음이다.


* 기드온이 마주한 것은 무엇인가?

(삿 7:13-14)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 적진에 들어간 기드온은 꿈꾼자와 해몽을 듣는다. ⇒ 그럼, 반대로 우리의 이런 도구가 된 적은 없는가?

→ 꿈꾼자와 해몽자은 같은 마음이다. 프로이드 식으로 보면 집단적 두려움을 표현했을 것이다.

cf. 국민 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56위, 직장인행복지수는 57개국중 49위..

⇒ 기드온이 마주한 것은 덩치는 크지만 두려움에 가득한 상대를 보았다.


* 기드온의 확신과 비상식적인 전술

(삿 7:15-18)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 해몽하는 → 해몽(쉐베르 רבשׂ)은 동사 솨바르(깨뜨리다)에서 나온 명사로 ‘깨뜨림, 멸망, 무너짐’의 의미다. 히브리어에서 해몽은 그 속에 감추어 있는 비밀을 깨뜨려서 참된 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했다.

cf. ‘항아리를 부수고’(20)의 ‘부수다’는 ‘솨바르’로 하나님이 주신 꿈과 그 해몽이 현실로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확인된다.

- 경배하며 ...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두려움을 극복한 기드온의 하나님에 대한 확신

-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

-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


* 미디안은 왜 자멸하는가?

(삿 7:19-23)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 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 이경 초 ...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 → 밤 10-11시 사이로 다소 산만해지는 시간대이다.

- 나팔을 불며 → 고대근동에서 나팔을 부는 것은 출전의 신호와 더불어 승리의 선포이다.

-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

-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

⇒ 기드온의 두려움은 확신으로 갔으나 미디안의 두려움은 자멸로 갔다. 자멸은 자연적 흐름이나 확신은 인도하심의 은혜이다.


(삿 7:24-25) 『[24] 기드온이 사자들을 보내서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다니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 벧 바라와 요단 강에 이르는 수로를 점령하고 [25] 또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을 추격하였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더라.』


[정리]

두려움이 많은 기드온에게 상대는 커다란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속에 있는 두려움을 보게 하셨다.

스스로 떠난 2만2천과 하나님이 보낸 9700과 하나님이 선택한 300용사는 나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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