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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17.08.30 사사기 읽기 9장

사사기 읽기 13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8. 10. 17. 16:50

 

 

삼손이야기 13-16장

사사시대의 악순환적 사이클 : 범죄→징계→회개→구원→망각→재범죄

13장 삼손의 출생과 하나님의 사자의 예고

14장 삼손의 결혼이야기, 나실인이지만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섭리로 사용하신다.

15장 삼손의 본격적인 활약상. 결혼식, 블레셋인들에게 보복, 파경, 나귀의 새턱뼈로 블레셋 천명

16장 들릴라의 유혹, 최후


(삿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주시니라』

(삿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께서는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8)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딤후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딤후 1: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삿 13: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 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삿 13:2) 『그 때에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 소라 : 예루살렘 서쪽 27km 단지파와 유다지파의 경계

- 임신하지 못하므로 : 아카르(עקר) ‘뽑아내다, 뿌리채 뽑다’의 의미로 임신하지 못한다는 말. 단어로 볼 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근원이 완전히 말라 그 뿌리가 제거된 것과 같은 절망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 본문에는 마노아의 아내가 늙었다는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불임여성으로 보인다.

- 출산하지 못하더니: 얄라드(ילד) 아이 낳는 여자의 행동을 묘사한 동사 + 로(לא) 강한 부정어. 결과적으로 결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 있음을 묘사

→ 두 동사를 통해 마노아 부부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저자는 두 단어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으로서의 후손이 끊어진 절망적인 상황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그들이 큰 절망과 슬픔 가운데 자식 얻기를 간절히 소원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삿 13: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삿 13:3) 『주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 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다는 라아(האר)를 써서 사자가 환상이 아닌 육안으로 분명히 볼 수 있게 나타나셨음을 보여준다.

-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 사자는 실제적인 팩트체크를 한다. 현실을 말하는 것은 뒤에 있을 희망을 예고한다.

- 이제 임신하여 → 임신하다(하라 הרה)는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출생과정이 시작되었음을 묘사한다. 구약에서 임신사실을 생략하고 아이를 낳는 것만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으나 여기서는 특별히 임신사실까지 언급하는 것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아들을 낳으리니 → 위의 ‘얄라드(דלי)’를 사용함으로 사자가 전하는 예언은 임신의 근원이 완전히 뿌리채 뽑힌 절망적 상태를 뒤집고 정상적인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 위의 ‘얄라드(דלי)’를 다시 사용함으로 아카르(רקע)의 원인과 얄라드(ילד) 못하는 결과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하라 הרה’의 원인과 얄라드(דלי)의 결과를 말한다.

Q. 우리 삶에 이런 일이 있는가?


(삿 13: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삿 13:4) 『그러므로 이제부터 조심하여,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라.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 사자는 태어날 아이가 구별된 나실인임(5)을 말하기 전, 엄마 자신은 나실인이 아니어도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나실인이 지켜야할 모든 규례와 의무(민6:2-21)을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를 요구받는다.

ex 거울부모 부모의 자비..

cf. 나실인의 삶은 삼손의 엄마에게는 출산때까지였고, 삼손은 평생이었다.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삿 13: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머리에 a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a. 삭도를)』

-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 ‘그 태로부터’의 의미로 임신순간부터 구별되고 바쳐진 나실인이다.

cf. 하나님은 자궁에서부터 생명이 되는 순간부터 그 생명을 보호하시고 감독하시는 분이시다. (시 71: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 나실인 → 나자르(רזנ, 구별하다 바치다 신성하게 하다)에서 나온 명사로 ‘성별된 사람’을 의미한다. 즉 나실인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특별한 서원을 한 사람이다. 따라서 특별히 하나님께 헌신한 나실인에게는 그 삶이 보통사람들과 다른 구별된 그 무엇이 요구되었고 나실인만의 규례가 있었다.(민 6:1-21) 이는 구속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과 구별된 언약의 백성의 규례와 연결된다. 즉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 헌신으로 봉사하도록 예수 안에서 가능케 하신 것이다.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 야솨(עשׁי 구원받다)는 구약의 군사적 정치적 측면부터 궁극적으로 신약의 영적인 측면까지 구속사의 맥을 형성하는 의미를 갖는 중요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야솨’는 차라르(ררצ, 제한하다 고통을 야기하다)와는 대조된다. 구약에서 고통은 주로 군사적 정치적 개인의 대적자, 자연재해 등부터 왔다. 이런 고통가운데 구원받는다(야솨)는 것은 고통받는 자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이외의 다른 외부의 힘의 도움을 받아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모든 고통의 삶의 자리에서 인간을 온전히 구원해 주시는 궁극적인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에 구약의 이스라엘을 향한 외적이며 육체적인 구원이 신약에서 영적인 구원의 개념으로 확대 발전하게 되는데, 주로 죄의 용서와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 즉 구약의 정치적 육체적 고통에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그 구원의 궁극적 관심은 결국 죄의 용서와 해방이다.

(롬 8:1-2)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시작하리라. → 삼손의 탄생 자체가 블레셋으로부터 구원의 시작과 단초가 될 것을 의미한다.

 

⇒ 위의 ‘얄라드(דלי)’를 다시 사용함으로 아카르(רקע)의 원인과 얄라드(דלי) 못하는 결과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하라 הרה’의 원인과 얄라드(דלי)의 결과를 말한다.

⇒ 엄마는 삼손의 출산 때까지 나실인으로..

Q 부부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


(삿 13:6-7)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

-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

- 어디서부터 온 것을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

→ 다시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에게 마노아가 묻는다. (삿 13:17-18)1)

7절,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3-5)를 전한다. 자신은 출산때까지, 삼손은 평생을 바친 나실인으로 살 것을 말한다.

Q.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삶에 함께 하시고 안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느껴지는가?


* 마노아의 기도

(삿 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 마노아는 자식이 없는 자신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에 놀랬을 것이다.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 자녀 교육에 대해서는 모두가 고민이다. 1. 마노아의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기준과 경계를 정하는 것이다. 2. ‘우리가 행할 것은 무엇인가?’를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를 의지하려는 것이다.


* 다시 나타난 사자

(삿 13:9-10) 『[9]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10]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그의 남편에게 알리어 이르되 “보소서. 전일에 내게 오셨던 그 사람이 내게 나타났나이다.” 하매』

→ 하나님이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셨다. ‘솨마’(שׁמע)

- 여인이 급히 달려가서 →


* 마노아의 확인과 질문

(삿 13:11-12) 『[11] 마노아가 일어나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에게 묻되 “당신이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그 사람이니이까?” 하니 이르되 “내가 그로다.” 하니라. [12] 마노아가 이르되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 그 사람이니이까? → 마노아도 그를 아직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다.

1. 이제 당신의 말씀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2. 이 아이를 어떻게 기르며 → 직역 ‘그 아이의 규례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3.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행하리이까? → 이는 율법이 규정하는 바의 행위 이외에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쳐야 할 아이의 행동지침을 묻는 것이다. 어떻게 부모역할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 하나님은 하나님없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 시대에 왜 마노아의 가정을 택하셨을까?

cf. 이 모든 질문은 지금 임신을 확인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 사자의 예고 이후에 있는 것이다.


* 사자의 대답

(삿 13:13-14) 『[13]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14]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하니라.』

- 내가 여인에게 말한 것들을 그가 다 삼가서 → ‘삼가서’는 부모가 유의하여 준수해야할 사항을.. 직역하면 ‘그녀가 지킬지어다’ (살전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처럼..

- 포도나무의 소산을 먹지 말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고 내가 그에게 명령한 것은 다 지킬 것이니라 → 원어의 동사는 모두 여성3인칭단수형이다.

⇒ 여호와의 사자는 나실인으로 태어날 자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를 자세히 묻는 마노아의 질문에 대해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동안 아이의 어머니가 지켜야 할 사항을 알려주고 있다.


* 대접하려는 마노아, 놀래는 마노아

(삿 13:15-20) 『[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17] 마노아가 또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니이까?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에 우리가 당신을 존귀히 여기리이다.” 하니 [18]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내 이름은 기묘자라.” 하니라 [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퀴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기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 마노아는 계속해서 그가 하나님의 사자인줄 모르고 있다.

→ 사자는 자녀를 허락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고 모든 영광과 감사를 그분께 돌리게

-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퀴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기적이 일어난지라. →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예배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Q. 우리 삶에 있는 모르는 중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가?


* 마노아의 두려움

(삿 13:21-22) 『[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22] 그의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하니』


* 아내의 지혜로움

(삿 13:23)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우리를 죽이려 하셨더라면 우리 손에서 번제와 소제를 받지 아니하셨을 것이요 이 모든 일을 보이지 아니하셨을 것이며 이제 이런 말씀도 우리에게 이르지 아니하셨으리이다.” 하였더라.』

→ 남편의 두려움에 아내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인다. 처음 사자가 나타날 때 아내도 두려웠다.(6) 그러나 지금은 3가지 이유를 들어 약속의 말씀을 확인한다. 제물을 받으셨고, 이적을 보이셨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아들을 주시겠다 약속하셨다.

⇒ 상호 보완하는 부부의 모습이다.


(삿 13:24-25) 『[24]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 [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

→ 삼손의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준다. 의미는 ‘작은 태양, 태양같은’이다. 이는 아이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신앙이다.

→ 직역 ‘여호와의 신이 그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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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12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8. 10. 4. 17:08

 

 

(삿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

-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


(삿 12:2-3)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 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 내가 너희를 부르되 → ‘자아크’


-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

- 나는 너희가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

-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

- 너희가 어찌 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


(삿 12: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

-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

Q 에브라임은 전쟁에서 진다. 싸움이 안되는데 왜 시비를 걸었을까?


(삿 12:5-6)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

- 쉽볼렛 ↔ 십볼렛 → 요단 서편에 사는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와 ‘ㅆ’를 구별하지 못하여 ‘ㅅ’가 된다.

-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 광야에서 2차 인구조사 때 에브라임 지파는 32000(민26:37)명이었다.

⇒ 입다는 분노를 조절해야 했다.


(삿 12:7)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 그의 성읍에 → 둘라(사밀), 야일(가몬), 입산(베들레헴), 엘른(아얄론), 압돈(비라돈)


* 사사 입산, 엘론, 압돈 → 스불론 출신

사사 입산, 자녀의 결혼이야기가 나온다.

(삿 12:8-10) 『[8] 그 뒤를 이어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9] 그가 아들 삼십 명과 딸 삼십 명을 두었더니 그가 딸들을 밖으로 시집 보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칠 년이라. [10]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 베들레헴 → 유다지파의 베들레헴? 갈릴리 지역의 스불론 땅에 있는 베들레헴(수 19:15)?

- 밖으로 시집 보냈고 ... 밖에서 여자 삼십 명을 데려왔더라. →


사사 엘론. 그는 무슨 업적이 있는가?

(삿 12:11-12) 『[11] 그 뒤를 이어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12]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 이스라엘을 위해 행한 일이 기억될 만한 것이 없다. 아예 부정적인 언급도 없다.


사사 압돈, 70명의 자녀와 나귀 70마리??

(삿 12:13-15) 『[13] 그 뒤를 이어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더라. [14] 그에게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팔 년이라. [15]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 ‘비라돈’은 지도자를 의미하는 ‘파르아’에서 유래한 지명, ‘압돈’은 노동하다의 ‘아바드’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노예, 종’이란 의미를 갖는다. ‘지도자’라는 의미의 땅에서 ‘노예’라는 의미의 사사가 나왔다??

-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 →

- 어린 나귀 칠십 마리 →

⇒ 8년의 사사를 통해 바리돈에서 왕조 재벌 등의 영향력있는 3대를 이어지게 했다.


⇛ 12장에는 사사는 있으나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있으나 하나님을 부르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어떤가?

:

사사기 읽기 11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8. 7. 4. 16:39

(사사기 11:1-3)

입다는 출신 성분이 낮고 집에서 쫓겨난 사람이며 정상적인 입지에 있지 못했다.

입다에게는 군사적 능력이 있으며 후에 이스라엘을 돕는다.

이정도면 사회적 분노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약탈했을 듯한데 입다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이것이 훗날 입다가 길르앗의 지도자가 되게 했다.

입다에게는 잡류가 모일 정도로 선한 리더쉽이 있었고, 그 리더쉽은 민족을 위하였고 잡류들도 동참하였다.

입다의 아버지의 역할은? 입다가 아버지의 사후에 쫓겨난 것으로 보아 아버지의 보호와 사랑을 받았을 것이고, 좋은 아버지 상은 이후에도 이스라엘을 돕는 자가 된다.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는 것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

이복형제들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입다를 쫓아내지만 어려움 앞에서는 길르앗 족속의 이름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사기 11:4-11)

현실적 장관 머리의 자리보다 내 아버지의 집을 더 원하는 입다의 마음

자신의 고백으로 장로의 고백을 이끌어낸 입다의 신앙

하나님 앞에 있음을 고백하며 모든 것을 맡기는 입다의 예배자세.

 

(사사기 11:12-28)

입다는

외교적 협상을 먼저 시도한다. 이는 그가 지도자로서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집에서 쫓겨나고 잡류들과 함께 했음에도 그가 분노적 모습이나 파괴적인 성향을 보이지 않고 우선적으로 외교적 협상을 시도한 것은 그의 성품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을 걸어오는 암몬의 명분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반박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과거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과 하나님의 구속사를 현재 자신의 상황과 연결할 수 있는 바른 역사관과 신앙관을 보여준다.

그는 전쟁에 담대하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이 하나님이 주신 땅이라는 인식에 기초하며,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켜야 한다는 거룩한 의무감, 절대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고백, 가나안 땅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가나안 땅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의 선물인 것이다.

판단을 심판자 하나님에게 맡긴다. 이는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관이시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과 도우심을 호소하는 것이다.

 

(사사기 11: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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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10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8. 5. 24. 13:41

(삿 10:) 『[1] 아비멜렉의 뒤를 이어서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주하면서 [2]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이십 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3]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4] 그에게 아들 삼십 명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그 성읍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부르더라 [5]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6]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7]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그들을 파시매 [8] 그 해에 그들이 요단 강 저쪽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땅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쳤으며 열여덟 해 동안 억압하였더라 [9]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과 싸우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10]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12] 또 시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마온 사람이 너희를 압제할 때에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므로 내가 너희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였거늘 [13]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14]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신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16]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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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읽기 9장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8. 30. 18:48

 

(삿 9:1-2)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Q.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 성경은 왜 ‘기드온’이라는 본명이 있음에도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으로 아비멜렉을 설명하는 것인가?

1. ‘여룹바알’은 ‘싸우다, 변론하다’의 리브와 ‘주인 바알’의 ‘바알’의 합성어로 ‘바알이 싸울 것이다, 바알과 더불어 쟁론할 것이다’의 의미를 갖는다.

2. 여룹바알(6:32)은 기드온이 바알과 아세라 상을 무너뜨리고 나서 아버지 요아스가 붙여준 별명이다. 바알이 신이라면 기드온과 싸울 것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주었다. 그런데 바알은 어떤 모습으로 기드온에게 대항한 적이 없다.

3. 오히려 ‘기드온이 사는 사십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8:28)에서 보듯 바알의 세력은 기드온과 하나님의 백성에게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못했다. 또한 기드온의 마지막을 ‘나이가 많아 죽으매’(8:32)라고 한 것으로 보아 그의 사망이 질병이나 저주 등이 아닌 자연사였음을 드러낸다. 즉 ‘바알이 그와 싸울 것이라’는 별명의 기드온의 전 생애에 바알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4. 성경이 이런 의미의 여룹바알의 이름을 아비멜렉을 소개하는데 사용했다는 것은 바알종교로 돌아간 세겜 사람들과 이것을 이용해 왕권을 잡은 아비멜렉의 잘못된 계략을 고발하는 의미가 있다. 즉 역설적인 의미를 가진 이 이름을 통해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죽은 신이란 걸 증명하는 ‘여룹바알’의 이름에서 보듯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Q. ‘아비멜렉’은 왜 왕이 되려 하는가?

1. 이름의 의미는 ‘아버지는 왕이시다’이다. 그에 대해서는 8장 기드온의 아들에 대해 말할 때 70명의 아들과 함께 언급되었다. (삿 8:30-31) 『[30]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그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명이었고 [31] 세겜에 있는 그의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2. 기드온이 그의 이름을 ‘아비멜렉’으로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드온은 자기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이스라엘의 강력한 요청을 거부했다.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가리키며 그 이름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삿 8: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3. 그런데 아비멜렉은 자기의 이름을 자의대로 해석하여 자신은 왕의 아들이고 아버지가 죽은 뒤에 권력을 이어받아 왕정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야망을 보인다. 물론 기드온은 왕이 되지도 않았고 왕권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즉 자신의 야망은 아버지의 고백을 자의대로 변형한 것이다.

4. 이러한 아비멜렉이 왕이 되는 것에 대해 주변국처럼 왕을 원하는 이스라엘은 부러워했겠지만 진정한 왕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에는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에 결국 하나님의 다스림을 막는 아비멜렉의 잘못된 야망은 3년만에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삿 9:22, 54)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54] 아비멜렉이 자기의 무기를 든 청년을 급히 불러 ... 그 청년이 그를 찌르매 그가 죽은지라.』

5. 특히 그의 죽음은 스스로를 높이고 능력이 많고 강한 자로 여기며 ‘왕’이 되었지만,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죽게 되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머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머리를 맞아 죽게 된다.

6. 왕이 되고자 하는 아비멜렉에게 세겜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는 아버지 가문으로부터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하였기에 후원과 지지를 얻기 위해 세겜의 외가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는 기드온의 70아들을 죽이고 왕이 되지만, 3년뒤는 아버지의 지지가 없다고 그를 배반하는 자가 일어나기도 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악행을 갚으신다.

7. 9장은 ‘아비멜렉’이라는 이름과 그의 악행과 종말을 기록하면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부인하는 자, 스스로 교만하여 악행을 범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그들의 모든 악에 대해 철저하게 징계하신다는 엄정한 사실을 9장 전체에서 보고 깨닫게 하신다.

8. 특히 9장은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으로 시작하지만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으로 끝내는 구조를 보여준다. 모든 아들을 죽인 아비멜렉은 강해보이고 반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심산에서 아비멜렉의 범죄를 눈물로 고발하고 사라진 요담은 너무나도 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아비멜렉은 실패하고 요담이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즉 하나님의 편에서 진리를 위해 싸우는 자를 세우신다는 성경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

9. 9장의 정리 ⇒ (삿 9:56-57) 『[56] 아비멜렉이 그의 형제 칠십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행한 악행을 하나님이 이같이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그들의 머리에 갚으셨으니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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