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설교/요한계시록강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4.28 요한계시록 1:4-5a 교회와 삼위하나님
  2. 2012.03.16 요한계시록 1:1-3 종, 증인, 삶
  3. 2012.02.04 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요한계시록 1:4-5a 교회와 삼위하나님

신약강해설교/요한계시록강해 2012. 4. 28. 09:36

정리 : 계시록은 묵시문학이고 예배시간에 읽도록 교회에 보낸 서신이다.

1:4-7절은 복음의 내용이다. 교회와 삼위 하나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적 내용이 나온다. 그중 4-5a부분으로 교회와 삼위하나님의 관계가 나온다. 이 관계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계시록을 읽는데 이 부분을 아는 것은 ‘누가, 왜,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계시록의 내용을 주었는가’를 아는 것이다.

 

(계 1:4a)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

(계 1:4a)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

- 편지-계시록의 형식은 서신임을 말한다. 발신자-요한, 수신자-일곱교회

- 교회(에클레시아 ἐκκλησί́αις), 부름을 받아 선택된 백성들

- 일곱교회에 대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두 문제가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요한계시록이 기록되었다. 이것은 ‘영적전투’로서 근본적으로는 사단에 의해서,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바로 로마 제국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초래된다. 이는 사단이 그 당시 악한 세력의 총체로서 로마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계시록은 독자들에게 죽기까지 순종하기를 도전하고 있다.

cf. 일곱은 거룩하고 충만함을 나타낸다. 수신자가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와 그 도시의 그리스도인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를 언급하는 것이다. 또한 일곱교회라는 제한된 대상에게 보낸 서신이란 점을 볼 때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삼위 하나님

(계 1:4b-5a) 『[4] ...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성부하나님)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성령하나님)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성자하나님)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1) 성부하나님 : 이제도 계시고(현재) 전에도 계셨고(과거) 장차 오실 이(미래)

→ ‘영원히 계실 이’라 하지 않고 ‘장차 오실 이’라고 한다. 단순히 미래에 계시다는 정적(靜的)인 표현이 아닌 영원히 계시는 그분이 현재에 역사한다는 역동적(力動的) 표현이다.

 

2) 성령하나님 :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

cf. 다양한 견해 vs 구약성경적 이해

1. 종교사적인 이해-바벨론의 혹성 신화(해 달 5행성)에 기원을 둔 의미가 페르시아를 거쳐 유대교로 전래되었다.

2.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동등한 반열에 속하는 일곱천사로 이해하는 경우

3. 대부분의 학자들은 (슥 4:1-14)에 근거한 성령의 상징적 표현

(슥 4:1-14) 『[1]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6]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cf. 일곱등잔 :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두 감람나무 :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 일곱 뿔, 일곱 눈, 일곱 영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서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두 증인, 두 촛대 (계 11:3-4)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 일곱영은 계 1:4, 4:5에 하나님 보좌앞에, 5:6에는 죽임당한 어린양과 함께 있다.

(계 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일곱영은 ‘온세상을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슥 14:10)이며,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계 5:6)이다. ⇒ 보냄을 받아 두루 다니며 품으시는 성령님?

 

3)성자하나님 :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 세표현 : 1충성된 증인, 2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자, 3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

1. 예수님은 죽으심을 통해 ‘충성된 증인’으로서 교회에게 본을 보이셨다.

→ 교회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죽기까지 증거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2.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신 자’로서 교회에게 부활소망의 근거가 되셨다.

→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부활에 이미 동참한 자가 되며 둘째 사망이 그들을 해할 수 없다.

3.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으로 이 세상을 통치하는 분이다.

→ 사단은 세상 왕을 미혹하여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 교회는 복음전도라는 방법으로 세상 모든 왕이 그리스도 앞에 와 무릎 꿇게 하신다.

(계 21: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정리]

⇒ 영원한 시간 가운데 현재를 역동적으로 임하시는 성부하나님, 어린양의 승리로 교회(두 증인)을 통해 우주적으로 선포할 성령하나님, 충성된 증인의 본이 되고 모든 왕의 왕이 되고 부활에 동참케 하는 성자하나님.

⇒∴ 서신의 인사말을 삼위 하나님에 대해 표현함으로 계시록의 내용을 요약한다.

⇒ 서신이라 의미는 그 시대에 누군가(일곱교회)가 그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 1:1-3 종, 증인, 삶

신약강해설교/요한계시록강해 2012. 3. 16. 21:48


▷ 우리는 왜 요한계시록을 보아야 하는가?

- 요한계시록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세상은 달라보이게 된다.(Richard Bauckham)

-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미래적 사건을 예견하는 책이 아니다.(이필찬)


▷ 요한계시록의 해석과정

- 초기기독교의 분파적 해석, 신비적 해석에 반대한 종교개혁자들의 무관심, 자의적 곡해된 해석으로 특수집단화(이단)

- 한국교회는 잘못해석에 대한 두려움으로 금기시와 몰이해


▷ 계시록은 어떻게 쓰여진 책인가?

- 저자 요한이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을 직접 보고 기록했다. 신비적이다.

-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을 오래 묵상하며 정리하고 기록했다.

⇒ 우리의 읽는 자세는? 지나치게 신비적 직관적으로 읽지 말고 이성적 분석적 자세를 가져야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 계시 : 아포칼륍시스(άποκαλυψις) = 아포(άπο, ‘~부터 떨어져’라는 분리의 의미의 전치사) + 칼륍토(καλύ́πτω, 덮다, 가리다, 숨다) 의 합성어.

→ 덮은 것을 벗기다, 드러나게 하다. :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는 행위와 그 내용 전반을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것, revelation 또는 apocalypse(묵시)

→ 요한계시록은 3가지 문서의 성격이 있다. : 묵시문학, 서신, 예언

→ 계시의 전달순서 : 하나님-그리스도-천사-저자(요한)-하나님의 종들.


▷ 묵시문학이란? BC 200경-AD 100까지 유대교에서 널리 퍼져 있던 문학형식.

- 계시록은 서사적 골격(a narrative framework)을 가진 계시적 문서의 장르

cf. ‘서사적골격’이란 일정한 전개과정을 가진 이야기형태(서론-문제발단-전개과정-절정-결론)

* 묵시문학[默示文學, apocalyptic literature]의 특징?

- 계시의 형태, 초월적 표현, 코드 암호로서 상징

cf 유대묵시문학 vs 그리스도교적 묵시로서 요한계시록 : 차이점들


* 요한은 왜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묵시적 환상을 사용했을까?

- 당시의 현실적인 상황인 로마제국의 악함을 깨닫고 열악한 교회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 기독교 예언으로서 계시록을 읽는다는 것은?

1. 로마의 통치 하에 있는 일곱교회들에게 공동으로 돌려보도록 주어진 서신의 형태를 가진 묵시적 예언이다.

2. 기독교선자자들은 보통 예배모임의 정황에서 사역했다. 특히 예배 모임에서 기록된 예언을 읽는 것은 선지자가 예배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신탁들을 전달하듯, 그 계시를 받았을 때 그것을 선포하였다.

3. 이 선포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감동 하에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형태를 가지며, 이러한 선포에서 ‘나’(=하나님,예수그리스도)는 선지자를 통해서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신적인 인격이다.

4. 그래서 교회에 주어진 일곱메시지는 교회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신탁들이다. 그리고 계시록 중간에 나오는 환상들에 대한 묘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선지적 신탁들이 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11, 17, 29, 3:6, 13,22)


▷ 그렇다면 계시록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방향은? → 주도적이지 못한 현대인의 삶에서 현대인은 요한계시록에서 교회의 방향과 현대인의 삶을 보아야 한다.


▷ 종(둘로스 δού́λος) : 구약에서는 대체로 선지자를 지칭하고, 신약에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 계시의 전달순서 : 하나님-그리스도-천사-저자(요한)-하나님의 종들.

1. 계시록에서 미래에 대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종들에게 전해진다.

2.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그의 일을 맡긴 자들이다.

3. 하나님은 그의 종과 예언자들에게 그의 뜻을 알리고 그들에게 그의 비밀을 계시하신다.

4. 하나님의 종은 예언자일(10:7, 11:18) 뿐만 아니라 성령을 받고 예언적인 약속의 성취를 경험했던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들을(2:20, 7:3, 19:2) 의미한다.  

(계 10: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계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 증거와 증언 - 증인의 삶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① 구약에서 백성들 앞에서 진술해야만 하는 증언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② 신약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것(수난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들이다.(행 10:39) 이들은 모든 세계에 부활하셨음을 증언하도록 부름을 받았다.(행1:8)3)

③ 증언의 의미는 법률적 경향과 진리에 대한 공적인 신앙고백을 의미한다.

④ 이 신앙고백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고 예수의 증거를 믿는 자들에게 필연적으로 박해가 다가온다.

→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더라』

→ 예수님을 증거하여 밧모섬에 갇힌 요한 (계 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다 죽음을 당한 영혼들 (계 6: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증인의 임무 (계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 안디바는 충성된 증인이다. 복음을 선포했고, 죽기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 2:13) 『네가 어디에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 예루살렘에서 1,260일동안 상복을 입고 회개를 선포한 두명의 설교가는 증인들이다. (계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음녀 바벨론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취한다. (계 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계 18:20,24) 『[20] 하늘과 성도들아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 이들의 증언은 계속된다. 이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그리스도를 뒤따른다.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이것은 그들의 상황이고 삶이다.


▷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 : 예배적 상황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 이 예언의 말씀 : 단순히 미래의 예언이나 즉흥적인 예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라는 제한을 나타냄으로서 계시록 전체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다.

- 읽는 자(아나기노스코 ά́ναγινώ́σκω 공중 앞에서 읽는 행위), 듣는 자(아쿠오 ά́κού́ω)

- 읽는 자는 복이 있다 - 교회는 유대인의 예배시 성서를 낭독하는 것을 전수받았다.

- 듣는 자들 복이 있다 - 낭독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축복송을 부른다.

cf 읽는 자는 단수, 듣는 자는 복수 : 예배적 상황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그리스도의 증거’를 공중예배시 낭독한다는 것.

-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 단순히 낭독으로 그치지 않고 순종해야 하는 권위가 있는 삶의 지침으로 강조되고 있다.


[정리]

· 요한계시록은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1세기 말의 로마제국에 속한 아시아지역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상황- 속에서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증거하고 있다.

· 요한이 묵시문학을 통해 계시록을 기록한 것은 ‘누가 세상의 주인인가’를 질문하기 위함이다.

· 말씀은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천사-요한-하나님의 종에게 이어진다.

· 예배에서 낭독되는 말씀을 듣고 삶에서 지켜지기를 소원하고 있다.




:

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신약강해설교/요한계시록강해 2012. 2. 4. 08:19



 

▷ 우리는 왜 요한계시록을 보아야 하는가?

- 요한계시록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제공해 준다.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때 세상은 달라보이게 된다.(Richard Bauckham)

-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미래적 사건을 예견하는 책이 아니다.(이필찬)


▷ 요한계시록의 해석과정

- 루터는 16,17세기 주석에서 계시록을 세계사적이고 교회사적으로 이해했다.

- 루터교인, 개혁교인, 영국교도들은 계시록의 환상들을 종교개혁과 그 이후 시대의 세계사적이고 교회사적인 사건들로 해석하였다. ex) 적그리스도=로마가톨릭과 추종자들로 동일시

- 가톨릭학자들은 계시록을 교회의 종말론적인 찬미로 해석하고, 당시의 교회가 유대교와 이방종교와의 싸움으로 해석했다.(고대로마와 관련된 해석은 배제)

- 18세기는 비평적-시대사적 해석 vs 교회사적-천년왕국적 해석

- 19세기는 세계사적-교회사적 주석 & 왕국사-종국사적 방법


* 계시록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

1. 칼빈은 유일하게 요한계시록만 주석을 쓰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요한계시록을 신비주의적으로 해석함으로 기독교인들을 우민화하는데 사용했다고 분노했다. 풍부한 바울서신의 신학적 논의와 달리 계시록에 대한 이해가 빈약했다.

2. 계시록의 여러 신비적 요소들은 이단적 분파의 곡해된 해석으로 이용되었고, 임의대로 자의적인 강조는 자기 지도자를 신격화하고 자기집단을 특수집단화 했다.

3. 한국교회는 이를 대처하기 보다는 잘못해석하다가는 이단에 동조하게 된다는 두려움에 갇혀 있었다.


* 그렇다면 계시록에 대한 현대적 이해와 방향은?

1. 하나님으로부터 만들어진 현대인의 삶은 주도적이지 못하다. 인간이 만든 문명에 오히려 끌려다니며 교회 역시 영향을 받는다. ex) 상업주의, 자본주의, 물질주의, 심리적 상황 등

2. 이는 마치 요한계시록 기록 당시 로마제국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초대교회와 같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일곱교회와 같다.

3. 이에 오늘날 교회는 초대교회와 동일하게 그러한 세력과 영적인 전투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4.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의 궁극적 성취, 그 성취의 배경에 있는 천상적 성전의 장엄한 환상, 그 성취로 말미암아 주어질 축복의 주인으로서 교회의 현재(now)와 미래(then), 여기(here)와 저기(there)에서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교회를 강한 군사로 무장시킨다.

⇒ 즉 현대인은 요한계시록에서 교회의 방향과 현대인의 삶을 보아야 한다.


▷ 계시록은 어떻게 쓰여진 책인가?

→ 계시록은 저자 요한이 하늘의 환상과 하나님의 직접적인 신탁을 직접 보고 기록했다. 겉으로는 신비적이다.

* 질문?

- 요한은 환상 가운데 본것을 기록했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것을 이성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 성령에 사로잡힌 특별한 사람만이 해석할 수 있을까?

- 요한은 환상을 보는 가운데 혹은 보자마자 기록했을까?

1. 환상을 통한 천상의 경험은 초기 유대기독교 문식문학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했다.

2. 헬라-로마시대에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다. → 당시 요한의 환상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3. 그러면서 요한계시록은 너무나 정교한 구조와 문학적인 표현기법이 있고 요한 특유의 문학적 특징이 있다.

* 이에 대한 정리

1. 요한이 환상을 본 것은 사실이다.

2. 그러나 환상을 보자마자 정리되지 않은 채 기록한 것은 아니다.

3. 오랫동안 묵상하고 정리해서 기록한 것이다.

⇒ 우리의 읽는 자세는? 지나치게 신비적 직관적으로 읽지 말고 이성적 분석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1) 『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한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들을 알려 주셨습니다.』

- 계시 : 아포칼륍시스(άποκαλυψις) = 아포(άπο, ‘~부터 떨어져’라는 분리의 의미의 전치사) + 칼륍토(καλύ́πτω, 덮다, 가리다, 숨다) 의 합성어.

→ 덮은 것을 벗기다, 드러나게 하다. :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 보이시는 행위와 그 내용 전반을 광범위하게 통칭하는 것, revelation 또는 apocalypse(묵시)

→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이다’라고 번역 가능하다.

→ 요한계시록은 3가지 문서의 성격이 있다. : 묵시문학, 서신, 예언

→ 계시의 전달순서 : 하나님-그리스도-천사-저자(요한)-하나님의 종들.


▷ 묵시문학이란?

- BC 200경-AD 100까지 유대교에서 널리 퍼져 있던 문학형식.

- 서사적 골격(a narrative framework)을 가진 계시적 문서의 장르. cf. ‘서사적골격’이란 일정한 전개과정을 가진 이야기형태(서론-문제발단-전개과정-절정-결론)와 시공간적 초월성에 관심을 갖는다.

- 서사적 골격에서 계시는 외부세계의 특별한 존재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 ex) 하나님→예수그리스도→천사→요한→하나님의 종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 이 과정에서 종말론적 구원을 말할 때는 시간적인 초월적 실재가, 초자연적인 세계를 말할 때는 공간적인 초월적 실재가 나온다.

⇒ 요한계시록에서 교회는 공간적 초월인 하늘에서 시간적 초월인 종말적 구원의 복을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관념적 추상적이지 않고 영적이고 실천적이다.


* 묵시문학[默示文學, apocalyptic literature]의 특징?

1) 계시의 형태를 갖는다. 예언문학은 신탁으로,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환상 환시가 있어도 주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묵시문학에서 환상환시는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다.(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사람만 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신비적인 요소들이 많다.

2) 상징을 사용한다. 천상에 올라간다는 것 자체가 초월적이다. 일반적인 대중적 관계와는 동떨어져 있다. 특이하고 역설적인 것이 들어나기도 한다. 왜 상징을 많이 사용하는가? 그 이유는 은밀성, 비밀성. 메시지가 갖고 있는 비밀은밀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또한 환상을 본 요한의 특권(권위)을 보인다. 이 환상을 본 사람은 아무나가 아닌 특별한 한 사람,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3) 상징은 코드, 암호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3가지 코드가 있다. 숫자, 동물, 칼라


* 유대묵시문학의 이야기골격

- 유대교의 경건한 그룹들에게 임박한 세계종말과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시작에 대한 기대가 있다.

- 예언의 소식을 새롭게 이야기하면서 구약의 예언자들의 유산을 보존하려 한다.

-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역사와 세계사의 과정과 종말을 조망한다.

- 이 세상은 혼돈된 재난으로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낙원의 영광이 도래한다.

- 이원론적 사고를 받아들여 이세상과 저세상이라는 두드러진 대조를 표현한다.

- 사단의 세력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이 세상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전쟁 고통 병으로 인간은 고난을 당하고, 이 땅은 열매맺지 않고, 우주의 질서는 혼돈에 빠진다.

- 이런 고난이 절정에 이르고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이 직접 관여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확정하신 순서에 따라 사건들이 전개되고, 죽은 자들은 무덤에서 일어나고,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과 메시야가 있는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 인간의 행위가 모두 기록된 책을 통해 심판 선언을 받게 되고 행위에 따라 영원한 구원과 징벌을 받게 된다.

- 심판후 하나님은 옛세계가 있는 곳에 새 세상을 만드시고 단지 복있는 자만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한다.

⇒ 구약예언을 유지하며, 이원론적 시각으로 신앙을 유지하며, 율법적 행위를 강조한다.


* 예언자와 묵시록저자의 차이

- 묵시록 저자는 신비로운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계획을 알린다. 꿈 황홀경 환상을 통해 미래에 일어나게 될 현상을 드러낸다.

- 구약의 예언자들은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소식을 받고 그것을 선포하였듯이, 묵시록 저자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전달하기 위해 해석이 요구되는 비유와 형상을 사용한다.

- 묵시록의 저자들은 문헌을 통해 전달한다.

- 그들은 선포 내용을 비밀스러운 베일에 감추어 과거의 경건한 자들의 이름을 빌어 드러낸다.

- 이러한 사건들은 풍부하고 다양한 환상을 통해 묘사된다. 마침내 이 세상은 사라지고 이 세상의 종말과 새로운 창조에 대한 묘사가 마지막에 기록된다.

- 묵시록저자는 이 소식을 통하여 어떠한 어려움과 외부의 위협이 있을지라도 견고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할 수 있도록 위로와 확신을 전달한다.


* 이러한 묵시문학을 교회에게 표현하는 이유?

→ 묵시문헌들은 이제 시련 속에 있는 교회를 위로하기 위해 교회에 전달한다. 교회는 다가올 종말과 약속된 영광을 안다. 이런 지식을 통해 교회는 믿음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임박한 그날까지 굳건히 설수 있게 된다.


▷ 그리스도교적 묵시로서 요한계시록

- 저자는 유대묵시록의 저자들의 꿈과 환상의 경험처럼 황홀경에 빠지고(1:10, 4:1), 신비로운 계시를 받기위해 무아경에 빠진다.(17:1-, 21:9-)

- 우주적인 사건들(사단, 악마적 세력들, 천사 등)과 연속적으로 드러나는 폭력들이 마지막을 향해 빠르게 진행되는 드라마처럼 등장한다.

- 요한은 단지 꿈만을 기록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교회의 신앙고백을 결합하여 말한다.

-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예언은 문헌을 통해 고난 속에 있는 교회들을 향한 위로와 경고를 주고 있다.

- 요한은 과거의 경건자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다. 이미 자신의 이름이 소아시아의 교회에 잘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 교회가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기록된 요한계시록은 봉인을 찢지 않은 채(22:10) 소아시아 교회에 전달된다.

- 묵시록은 교회의 신비로운 형상을 통한 과거사의 해석이 아닌 오히려 단지 마지막 때의 사건들만 기록하고 있다.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새하늘과 새땅의 창조에 이르기까지 진행된다.

- 저자는 대부분의 모든 문장에서 성서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술하고 있다. 히브리어식 언어를 통하여 구약성서에서 예언하고 성취되고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기록하였다.

- 이 책의 중심 내용은 말세에 관한 사변이 아닌 그리스도교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묵시적인 형상들과 표현들을 빌어 소아시아 일곱교회가 신앙가운데 확고히 세워지도록 권면하고 있고, 형태는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편지형식이다.


▷ 요한계시록 안에 묵시문학적 요소

- 환상의 상징적 요소 - 요한은 성령 안에서 시공간적 초월적 세계를 경험하고 환상가운데 실재적 요소를 그대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상징을 사용한다.

1.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인 면에서 요한이 몸소 입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일종의 예언과 흡사하다. 그러나 그것은 즉흥적인 예언보다는 훨씬 더 정교하고 각고의 노력을 통해 구성된 작품이다.

2. 환상적인 경험들과 그것을 오랫동안 사색하고 기록함으로 문학적인 변환이 되었다. 곧 구술적인 활동을 위하여 고안된 문학작품이다.


* 요한은 왜 초월성을 표현하기 위해 묵시적 환상을 사용했을까?

1. 당시 교회가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을 극복하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2. 묵시적 환상을 통해 보여진 초월적 세계는 여러 가지 내적 외적 문제에 대해 교회에게 강력한 내성을 만들어 주었다.

3. 묵시적 환상을 통해 본 천상의 세계는 그들이 처해 있는 현실적 상황인 로마제국의 악함을 깨닫게 해준다.


* 교회는 묵시적 환상(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로마제국의 무엇을 보는가?

1. 계시록의 독자들이 일상생활을 통해 보는 모든 것은 로마제국의 것들이다. 안주하면 편안하고 안정된다.

2. 문제는 그것이 그리스도가 있을 자리를 빼앗고 차지한 후 사람들을 통제하고 지배한다는 것이다.

3. 그렇다면 로마제국의 실체는 사단이고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조종받는 하수인이 된다.

4. 곧 독자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것이냐 사단의 지배를 받을 것이냐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cf. 우리는 어떤 현실인가? 돈과 성공과 중독적 상황.. 상업주의 자본주의 금권주의 등..

(마 22: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마 22:21)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5. 묵시적 환상 초월적 실재를 통해 독자의 희망은? 사단은 멸망될 것이고 이미 교회는 승리하였으며, 현재 하늘에서 그 승리를 축하하며 매일 다가오는 도전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기독교 예언으로서 계시록을 읽는 것은?

1.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통치 하에 있는 일곱교회들에게 공동으로 돌려보도록 주어진 서신의 형태를 가진 묵시적 예언이다.

2. 기독교선자자들은 보통 예배모임의 정황에서 사역했다. 특히 예배 모임에서 기록된 예언을 읽는 것은 선지자가 예배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신탁들을 전달하듯, 그 계시를 받았을 때 그것을 선포하였다.

3. 이 선포는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감동 하에 교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형태를 가지며, 이러한 선포에서 ‘나’(=하나님,예수그리스도)는 선지자를 통해서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신적인 인격이다.

4. 그래서 교회에 주어진 일곱메시지는 교회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신탁들이다. 그리고 계시록 중간에 나오는 환상들에 대한 묘사들 사이에 끼어 있는 선지적 신탁들이 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11, 17, 29, 3: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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