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7. 하갈 - 이집트 여인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09. 12. 29. 07:55



 

* 아브라함의 축첩

- 세상의 관습이고 당연함으로 여겨지는 방법

- 근본적인 불신보다는 전적인 신뢰가 부족하다.

- 기다림에 지친 아브람의 고뇌가 보인다.

- 그 속에 빠진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인지를 묻지 않는 연약함을 보인다.

- 아브람과 사라의 잘못은 언약의 불신보다는 언약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인식부족이라 할 수 있다.

- 직접 그리고 분명 이루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조급함을 보인다.


16:1-6 하갈이 이스마엘을 잉태하는 배경과 과정

16:7-16 임신한 채로 도주하나 귀가한 후 출산하는 과정


(창 16:1)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창 16:1) 『<하갈과 이스마엘>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 10년이 되어간다. 그들은 지켜간다. 사라는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자로만 소개된다.

- 여종 : 개인의 하녀


(창 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 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 16:2)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 하나님이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않으니 → 사라의 마음은 절박함, 원망, 남탓

- 원하건대 → 아기를 갖지 못하는 여자의 책임, 수치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듣다 → 경청하는 아브람


(창 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십 년 후였더라』

(창 16:3)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 첩 : ‘잇솨’(השׁא) - 여자, 처. cf. ‘아내 사라’(1절)과 동일하며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


(창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 동침하다 - ‘뽀’(אוב) : ‘들어가다’는 의미로 단순한 잠이 아닌 생활을 같이 했다는 의미

-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다

- 여주인 : ‘께베레트’(תרבג)는 원래 ‘강하다, 무겁다’는 뜻의 ‘까바르’(רבג)에서 나온 말

- 멸시하다 : ‘칼랄’(ללק)은 가볍게 하다는 의미

⇒ 비중있는 여주인을 가볍게 여기다→ 자기가 높아졌다고 우월한 위치라고 여긴다.

→ 하갈의 착각 : 아브람이 자신에게 기울어졌다고 생각하고 교만해지고 멸시하기 시작한다.


(창 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창 16:5)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 그것을 당하는 사라의 마음은 어떨까?

→ 자기의 잘못된 판단으로 오게된 고통을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 남탓하는 사라, 하갈의 행위는 남편의 책임이라며, 반성대신에 하나님도 들먹인다.


(창 16:6)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 16:6)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 아브람의 회피는 하갈의 남편으로서의 형평성을 잃었다.

- 하갈의 도망 →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으로 모면하려 한다.


(창 16:7)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창 16:7) 『주의 천사가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은 술로 가는 길 옆에 있다.』

- 계속 꼬여만 가는 인간적 갈등을 천사가 나타나서 원만하게 해결하는 시발점이 된다.

- 술 길 샘 곁에서 - 슈르는 팔레스틴의 서남쪽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지름길로 대상(隊商)들의 이동경로였고, 하갈은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이 길을 택했다. 하갈은 사라로부터 받은 심한 학대를 원통한 마음에 품은채로 내려가는 중 잘 알려진 샘에 도착했고 목을 축이고 있었다.


(창 16:8)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

(창 16:8)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 사래의 여종 하갈아 - 하갈은 여종의 신분이 싫어서 도망쳤지만 여전히 그는 여종이며, 그 신분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도망이 아니라 주인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다.

- 네가 어디서 왔느냐? - 하갈의 과거에 대한 질문

- 네가 어디로 가느냐? - 하갈의 미래에 대한 질문

→ 현재에 급급하다보니 과거를 잊고 미래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던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한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자기의 현실의 처지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창 16: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창 16:9) 『주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 관계단절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한다.

→ 돌아온 하갈을 사라가 다시 괴롭혔는지는 모르나 하갈에게 스스로를 다시 내세우지 말라는 엄격한 명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 수하에 : 사라를 여주인으로 인정하고 그의 세력 아래서 그가 시키는 일에 충실할 것을 명령한 것


(창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 16:10) 『주의 천사가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 아들 이스마엘은 12아들을 낳으며 오늘날 아랍족과 터어키 족의 조상이 된다. 육적 자손의 번성은 약속받으나 영적 축복은 받지 못한다.

cf. 노아의 홍수 이후의 약속을 허락한다.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cf. 아담에게 주신 ‘정복, 다스림’의 복은 없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6:11)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 16:11) 『주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니, 그의 이름을 a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a. 하나님께서 들으심)』

- 힌나크(ꗗꘅꕙ) ‘너 자신을 보라’가 번역에서 생략

→ 도망하기에 급급한 하갈에게 잉태한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쓴 표현

→ 하갈이 돌아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

→ 현실을 바로 보게 하고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 왜냐하면 근동에서 ‘아들’을 낳는 것은 그 가문이 계속 이어지는 것으로 낳은 자에게는 큰 영예를 얻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 “그렇지 난 아기를 가졌지”라는 자각의 의미

- 이스마엘 :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하나님에게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 하나님이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

→ 하갈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우신 것은 하나님이다.

→ 들음의 주체는 하나님이고, ‘듣고 응답하다’는 ‘반응’에 더 큰 강조점을 둔다.


(창 16: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와 대항해서 살리라 하니라』

(창 16:12)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척을 떠나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창 16:13)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 16:13)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를 b)"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지어서 불렀다. (b. 히, 엘 로이)』

- 하갈은 자신에게 말씀해주신 것에 감격하고 놀라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 감찰하시는 하나님 : 보고 계시는 하나님, 하갈이 만난 하나님은 매우 실제적인 하나님이다.

- 하갈이 지켜 있는 자신을 돌아보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에 감격한다.


(창 16:14) 『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은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

(창 16:14) 『그래서 그 샘 이름도 c브엘라해로이라고 지어서 부르게 되었다. 그 샘은 지금도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그대로 있다. (c. 나를 보시는 살아 계시는 분의 샘)』


(창 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창 16:15)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여나니, 아브람은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었다.』

- 하갈은 돌아왔고, 아브라함 집안의 인간적인 분쟁은 하나님의 개입, 하나님이 들으심으로 해결되었다.


(창 16:16)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창 16:16) 『하갈과 아브람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여날 때에, 아브람의 나이는 여든 여섯이었다.』

- 그러나 아브람의 나이로 보아 이스마엘의 출생은 하나님의 언약에 의미가 없다.


17장 아브람이 99세 때, 아브람과 사래의 개명과 언약과 할례

- 전적인 신뢰의 부족과 이스마엘에 대해 안착한 아브라함

(창 17:17-21)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창 17:17-21) 『[17] 아브라함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웃으면서 혼잣말을 하였다. 나이 백 살된 남자가 아들을 낳은다고? 또 아흔 살이나 되는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18]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아뢰었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19]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다. 너의 아내 사라가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이다. 아이를 낳가든, 이름을 a이삭이라고 하여라. 내가 그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그 언약은, 그의 뒤에 오는 자손에게도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다. (a. 그가 웃다.) [20] 내가 너의 말을 들었으니 내가 반드시 이스마엘에게 복을 주어서, 그가 자식을 많이 낳게 하고, 그 자손이 크게 불어나게 할 것이다. 그에게서 열두 명의 영도자가 나오게 하고, 그가 큰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 [21] 그러나 나는 내년 이맘 때에 사라가 너에게 낳아 줄 아들 이삭과 언약을 세우겠다."』


- 아브라함 가족의 할례, 이스마엘도 같이 받다.

(창 17:23-27)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창 17:23-27) 『[23] 바로 그 날에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여난 모든 종과, 돈을 주고 사온 모든 종, 곧 자기 집안의 모든 남자와 함께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양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았다. [24] 아브라함이 양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은 것은 그의 나이 아흔 아홉살 때이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양피를 베어서 할례를 받은 것은 이스마엘의 나이 열세 살 때이다. [26]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같은 날, 할례를 받았다. [27] 집에서 내여난 종과, 외국인에게서 돈을 주고 사온 종과, 아브라함 집안의 모든 남자가 아브라함과 함께 할례를 받았다.』


* 이삭의 출생이후

(창 21: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창 21:8)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게 되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벌였다.』

- 젖을 떼고 - 3,4세때 이루어지며 유아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 큰 잔치 - ‘까돌’(לוֹꕌꔷ) ‘크다, 존귀하다, 부하다, 요란하다’

          - ‘미쉬테’(הꚟꚉꗬ) 결혼잔치나 높은 사람과 하는 만찬

→ 당시 아브라함이 베푼 잔치는 굉장히 요란하고 풍성하였다는 표현

→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로 인한 기쁨을 이웃과 나누기 위함과 동시에 자신의 부유함과 건재함을 주변 이방인에게 널리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창 21: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창 21:9) 『그런데 사라가 보니 이집트 여인 하갈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이삭을 놀리고 있었다.』

→ 큰 잔치날에 주인공인 3살정도의 이삭에게 17살 정도의 이스마엘이 어떤 행동을 했다.

- 사라가 본즉 ? → 뭘 봤을까?

- 놀리는지라 - ‘메차헤크’(קꕚ꘽ꗱ)는 ‘차하크’(קחצ)로 ‘놀다, 장난치다, 조롱하다’

Q. 사라의 눈에는 이스마엘의 행동이 놀린다고 느껴졌다? 이삭을 놀리는 이스마엘의 행동을 보며 사라는 하갈이 자신에게 했던 멸시가 떠올랐을까?

⇒ 이삭이 유아기가 지나면서 안전해지자 그동안 잠잠했던 갈등구조가 다시 사라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겉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 사라가 본 것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라 자신과 하갈의 싸움처럼 이삭과 이스마엘의 상속싸움을 걱정했을 것이다.


(창 21: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창 21:10)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저 여종과 그 아들을 내보내십시오. 저 여종의 아들은 나의 아들 이삭과 유산을 나누어 가질 수 없습니다."』

→ 하갈의 멸시에 맞대응했던, 너무 힘들어 도망치게까지 했던 사라가 노골적으로 내쫓으라 한다.

→ 책임을 아브라함에게 떠맡긴다.

- 내쫓으라. → ‘추방하다, 인연을 끊다’는 뜻으로 법적 절차를 밟아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법적 상속권리까지도 제거하라고 한다.

-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 한번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상속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Q. 모든 일에는 사람의 감정이 사용된다. 하갈과 그 아들에 대한 사라의 감정은 완고했다. 만약 이렇지 않았다면 성장할수록 상속갈등은 커질 것이고 겉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라의 눈에 이스마엘의 놀림은 그것을 미리 보게 되었고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미리 드러낸다. 작게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크게는 구속사 안에서 이삭을 세우는 도구가 되었다.


(창 21: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창 21:11)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아들도 자기 아들이므로 이 일로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 하갈을 맞이할 때는 고민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런데 이 일로 아브라함은 고민하게 된다. 그의 마음은 두 아들과 같이 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본 사라가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다.

→ 아브라함의 고민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다시 반복된 갈등관계를 해결할 의지나 힘은 없었다. 그때 역시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창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 21:12)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인 여종의 일로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니, 사라가 너에게 말한 대로 다 들어 주어라.』

→ 하나님의 개입은 아브라함의 판단에 도움을 주신다. 첫째는 하갈과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강조하신다. 둘째는 이삭에게 집중하도록 하신다. 자손에 집착하는 아브라함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놓도록 하신다.

cf. 하나님은 사라의 마음도 잘 아신다. 이삭을 통해 뜻을 이루실 하나님은 사라의 아들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사용하신다.


(창 21: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창 21:13) 『그러나 여종에게서 난 아들도 너의 씨니, 그 아들은 그 아들대로, 내가 한 민족이 되게 하겠다."』

→ 하갈에게 하신 약속을 다시 아브라함에게 하신다. 육체적 자손인 이스마엘에 대해서는 약속을 지키시려고 하신다.

cf. (창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 21: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창 21:14) 『다음날 아침에 일찍 아브라함은 먹을거리 얼마와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에게 주었다. 그는 먹을거리와 마실 물을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서, 그를 아이와 함께 내보냈다. 하갈은 길을 나서서, 브엘세바 빈 들에서 정처없이 헤매고 다녔다.』

→ 하갈은 집에서 나간다. 어떤 마음일까? 전에는 자기가 도망쳤는데 지금은 쫓겨난다. 전에는 이집트로 가려 했는데 지금은 방황을 한다.

- 데리고 가게 하니 → 내쫓는 의미가 아니라 ‘솰라흐’(חלשׁ)로 ‘사명을 주어 내보내다’는 의미.

→ 아브라함은 말씀을 받고 아침 일찍 그들을 내보낸다. 사라는 단절을 원했으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인다.


(창 21:15) 『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창 21:15) 『가죽부대에 담아 온 물이 다 떨어지니, 하갈은 아이를 덤불 아래에 뉘어 놓고서』

- 그러나 준비된 것은 이미 떨어지고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


(창 21:16) 『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창 21:16)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차마 볼 수가 없구나!" 하면서 화살 한 바탕 거리만큼 떨어져서, 주저 앉았다. 그 여인은 아이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 소리를 내어 울었다.』

- 죽어가는 아들을 못보겠다며 떨어져서 소리내어 운다. 슬퍼서라기 보다는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는 비통함때문이다. 여기에는 행복했던 환경에서 쫓겨난 설움과 갈증에 의한 죽음의 공포가 동시에 있었다.


(창 21:17)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창 21:17) 『하나님이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으셨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을 부르며 말하였다. "하갈아, 어찌 된 일이냐?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이가 저기에 누워서 우는 저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

→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신다. 아마 이스마엘도 울었나보다.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신다. 솨마(עמשׁ)-경청하시고 이해하시고 응답하신다.

- ‘두려워하지 말라’ →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 하나님의 마음


(창 21: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창 21:18) 『아이를 안아 일으키고, 달래어라. 내가 저 아이에게서 큰 민족이 나오게 하겠다."』

- 전혀 해결의 상황이 보이지 않음에도 하나님은 계속 약속을 하신다.

cf. (창 25:18) 『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주하였더라』

  (창 25:18) 『그의 자손은 모두 하윌라로부터 술 지방에 이르는 그 일대에 흩어져서 살았다. 술은 이집트의 동북쪽 경계 부근 앗시리아로 가는 길에 있다.』


(창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창 21: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니, 하갈이 샘을 발견하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담아다가 아이에게 먹였다.』

-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 현실의 상황에 아무것도 못보는 하갈의 눈을 밝히신다. 동일한 눈일지라도 어떤 안목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새롭게 다가온다.

- 샘물을 보고 → 사막이니까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옆에는 샘물이 있었고 그것을 보게 되었다.

- 샘물 - ‘물이 솟아나는 웅덩이’란 뜻

→ 당시 사막에서는 물의 증발을 막기 위해 이 웅덩이들을 덮개로 덮어놓았고 그 위에 표시를 해두어 여행자들로 하여금 쉽게 찾을 수 있게 했다.


하갈이 두 번 반복한 것은 무엇인가?


(창 21:20-21)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창 21:20-21) 『[20]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에 하나님이 그 아이와 늘 함께 계시면서 돌보셨다. 그는 광야에 살면서, 활을 쏘는 사람이 되었다. [21] 그가 바란 광야에서 살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집트 땅에 사는 여인을 데려가서, 아내로 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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