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읽기 - 서론

성경 읽기/사사기 읽기 2017. 3. 29. 11:17

제목 : 히브리성경의 ‘쇼페팀’에서 유래한 것으로, 쇼페팀은 여호수아 이후부터 사무엘시대까지 이스라엘의 군사, 사법권을 가진 비상시적, 비세습적 지도자들을 지칭하던 용어이다.

기록연대 : 왕정제도 설립 이후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여부스족속을 축출하기 전인 BC 1050-BC 1004년 사이에 기록되다.

수신자 : 왕정체제 초기의 이스라엘 백성 및 진정한 왕의 통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

내용 : 여호수아 사후부터 왕정체제 설립까지 약 350년에 걸친 범죄와 징계, 구원과 재법죄의 악순환의 패턴을 보이는 이스라엘 역사


사사기는 사사들과 그들의 시대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으로 이주할 때부터 왕정을 도입하여 국가 형태로 존재하기 시작할 때까지 살았던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BC 12-11세기)

여호수아의 죽음(BC 1390년) 이후부터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즉위(BC 1050년)에 이르기까지 약 350년간, 즉 이스라엘 12지파에 대한 중앙집권이 성립되지 않은 시기에, 이스라엘이 내외적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각 지파별 또는 일부 특정지역별로 등장한 이스라엘의 군사, 사법적 지도자들이다.

이스라엘의 지파들은 가나안 땅에서 서로 이웃하여 살면서 그리 긴밀하지 않은 연대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로는 이웃지파끼리 힘을 모아 함께 적들을 막아내고(4-5장, 6:35), 예외적인 경우에만 12지파 동맹 전체가 단합하여 행동했다.(20-21장)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지파들은 자기들이 정복한 땅을 여러 적으로부터 지켜야 했다. 동쪽에서는 약탈을 일삼는 베두인 족이 덮쳐왔고(6-7장), 영토확장을 꾀하는 이웃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의 나라가 이들을 괴롭혔다(3:12-30, 10:17-11:33). 서쪽으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의 우세한 전력을 느끼게 되었다.(10:7, 14-16장)

앞에 있는 ‘여호수아’에서는 가나안 정복이 끝난 것으로 묘사하였지만, ‘사사기’ 첫머리는 이스라엘이 아직 다른 주민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나누어 쓰고 있으며 자기들의 땅을 적들로부터 지켜야 했다는 점을 알아차리게 한다.(1장)

‘사사기’의 또다른 도입부(2:6-23)에서는 억압과 해방, 승리와 패배라는 상승과 하강을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이나 불순종의 결과로 풀이한다. 특히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 계명이자 근본 계명이다. 곧 어떤 다른 신도 섬기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풀려나게 하여 자신의 땅으로 이끌어들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라는 것이다.(10:6-16)

여기서 이스라엘 역사에 댄 잣대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라는 근본사상에 들어맞는데, 이는 ‘신명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상이다. 이러한 판단의 잣대를 통하여 ‘사사기’는 ‘신명기’에 뒤이어 나오는 ‘신명기 역사서’라 불리는 포괄적인 역사 기록의 일부를 들어낸다.

사사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상당히 다른 두 무리의 사람들을 ‘사사’라는 이름 아래 한데 묶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영에 의해 ‘일깨워져서’ 영에 이끌리는 지도자로 백성을 그들의 억압자들로부터 해방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있다. 다른 한쪽에는 말 그대로 ‘사사’들이 있는데, 그들은 모든 지파를 통괄하여 재판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함으로써 12지파 동맹의 통일성을 어느정도 나타내 보여준다. 그들에 대해서는 간단한 자료만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시기’에서 아주 폭넓게 다루는 ‘대사사’들과 구분하여 ‘소사사’라 한다.

대사사들 가운데는 기드온과 입다가 두드러지고(6-8장, 11장)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여사사 드보라인데, 그는 해방전쟁에 나서도록 바락을 독려했지만 아울러 사사라는 낱말이 본디 뜻하는 바와 같이 재판관의 직무도 수행하였다.(4-5장) 이와 비슷한 두가지 역할은 입다에게서도 볼 수 있는데, 입자는 대사사 가운데 한 사람인 동시에 ‘정규적인’ 소사사의 일도 맡아 했던 사람이다.

‘사사기’ 끝부분에서는 사사 시대의 전형적인 두가지 돌발 사건을 아주 자세히 묘사한다.(17-18장, 19-21장)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내부상황이다. 곧 종교적으로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붕괴를 소사사들의 활동으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로서 ‘사무엘상.하’에서 백성들이 왕정을 요구하는 까닭을 설명할 수 있는데, 그러한 요구는 이미 ‘사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8:22, 21:25)

용사 기드온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왕정이 그 어떤 인간의 왕정도 배제한다는 사실이 아직 확실하였다.(8:22-23)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금방 이보다 더 강하게 나타난 것은 ‘모든 나라와 같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곧 사람들은 그때그때 시급하게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행동보다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 왕정이라는 제도정치의 의한 지속적인 안전을 열망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아비멜렉의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경고의 본보기가 되는(9장) 이 사건이 이스라엘에게는 낯선 왕정제도의 뿌리를 드러내 보여주고 모든 관련 당사자들에게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한다.

여호수아에 뒤이은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서 정착하여 축복을 누리고 있는 밝은 광경이 아니라, 극도의 혼란과 부패 및 압제와 고통으로 점철된 음울한 광경을 제시하고 있다. 왜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었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린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배교에 그 이유가 있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 다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그들의 일부를 남겨 두었으며 곧이어 가나안 족속과 통혼하는 등 가나안인들의 문화와 생활에 동화되었고 급기야는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을 섬기는 배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사기는 이처럼 ‘왕이 없던 시대’에 이스라엘이 걸었던 배교의 길과 그 결과 찾아온 종교적 도덕적 타락, 무정부상태의 혼란을 제시함으로써 신앙적 신학적 메시지를 제시한다. 사사기 후반에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라는 반복구들이 있다.(17:6, 18:1, 19:1, 21:25)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외적으로부터의 압제, 공동체의 분열, 종교적 혼란과 도덕적 타락 등 모든 문제에 대한 이유를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다’는 진술에 농축시켜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다른 하나의 문장으로 말을 바꾸어 진술할 수 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필요하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왕정체제 초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상으로 한 메시지이다. 사사기의 기록은 왕정초기의 백성들에게 왕정 체제에 대한 배경을 제시하면서 다윗과 같은 의로운 왕의 통치를 소망하게 하는 역사적 목적이 있었다. 왕정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이미 신명기에서 게시하신 바 있다.(신 17:14-20)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통치제도로서 ‘신정적 군주제’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넓은 차원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왕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세대, 모든 인류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이 사사기의 보다 더 본질적인 메시지이다. 이스라엘 백성, 나아가 모든 인간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인간 왕의 통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이다. 사시기의 혼란과 부패상의 진정한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인간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왕이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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