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복음서 32. 두 소경의 행함이 있는 믿음

성경인물탐구/복음서인물 2015. 11. 4. 13:51

 

 

현 위의 인생 (1991) 邊走邊唱 Life on a String


(마 9:27-31) 『[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

(마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 이야기 배경 :

-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 성경에서 소경이란? 1. 육체적 장애인, 2. 진리를 못보는 영적 장애인

→ 이들은


-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 소경은 그들의 삶의 자리, 그러나 

Q. 우리는 지금 나의 자리에서 무엇을 바라보는가? = 믿고 있는가?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히브리서 11장 믿음의 자리. 믿음으로 아무개는 ...

(히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언이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믿는다면 그 다음은? 확신만? 아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 믿는다면 행동으로 나와야 한다. 믿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 ex 선행과 실천의 차이, 신앙은 개혁이라는 개신교신앙의 전통

→ 행함이 있는 믿음에 대해 (약 2:17-27)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cf. 당시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종교지도자들은 박학한 지식과 건강한 시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알지 못했다. 즉 그들은 영적 소경이었다. 반대로 두 소경은 눈은 보이지 않고 박학한 지식은 없으나 영적 안목이 있었다.

→ 믿는다고 하면서 그룹이 원하는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은 ...

Q.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무엇에 가려서 못보고 있는가?


(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Q. 왜 바로 고치지 않고 계속 따라오도록 하셨을까? 우리가 기도할 때 바로 응답되기를 원하지만 응답의 때까지 기간이 있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 동사의 위치가 문장에서 앞에 있다. 즉 ‘내가 이 일을 할 줄을’이 아니라 ‘네가 믿느냐?’가 강조점이다. 

cf. 우리의 관심은 예수께서 그것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하지만 질문의 강조는 ‘믿느냐’이다.


-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 그들의 대답도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아니라 ‘믿느냐’에 대한 대답이다.


ex 총리의 믿음?


(마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 말씀만으로도 능히 고치실 수 있고(눅 7:7-10), 부위를 어루만지셔서 사랑을 표현하실 수 있고, 만지기만 하여도 고칠 수 있으나,

-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 말씀을 통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신다. ‘믿음대로’ κατά́ τή́ν πί́στιν(카타 텐 피스틴), κατα는 ‘~에 부합하게, ~아래에’, 즉 예수의 말씀은 그들이 눈을 떠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었기에 눈이 떠졌다는 의미가 된다.


[정리]

소경의 상황은 답답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가 불행하다고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행하실 줄을 믿고 나아간다. 자신의 아픔을 가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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