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복음서 21. 사랑받지 못한 바리새인의 정죄 vs 사랑을 많이 받은 죄인의 표현

성경인물탐구/복음서인물 2015. 3. 25. 12:46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정서적 박탈’ -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결코 충족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거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눅 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 장소-바리새인의 집, 등장인물-바리새인과 예수

→ 예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신 이유는? 식사 초대를 받아서,

cf. 당시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런 예수께서 왜 바리새인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가?

(눅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cf. 마태 26:6-13, 마가 14:3-9, 요한 12:1-8 →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한 여인이 향유 한 옥합을 예수께 분다. 제자들은  분개하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장례를 위함이라 한다. 단, 요한복음은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마리아라고 말하고 내용은 같다.

→ 이 세 말씀은 예수의 죽음이 가까운 마지막 안식일에 유대 베다니에 있었던 일이라면, 오늘 말씀은 시간과 지역도 등장인물도 다르다. 갈릴리 전기 사역 중에 있었던 일이고 어느 한 여인의 헌신적인 태도와 죄인에 대한 예수의 사랑과 용서에 초점이 있다.

- 한 바리새인 → ‘많은 바리새인들 중에 한 사람’이란 의미로 당시 예수께 적대적이었던 다른 바리새인과 달리 자기 집에 식사초대를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다.


(눅 7:37)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 죄를 지은 한 여자 → 하마르타노(ἁμαρτά́νω) 과녁에서 빗나가다. ↠ 이 여인은 아마 ‘창녀’였을 것이다.

- 향유 담은 옥합 → 부유한 여인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구하기 어렵고 귀하며 한 번 개봉하면 모두 소모해야 하기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개봉하지 않았다.

→ 그런 향유를 붓기 위해 그 집에 들어오고 예수님의 뒤 발 곁에 선다.


(눅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38) 『예수의 등 뒤로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 여인의 4가지 행동

①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

②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

③ 자기 머리털로 닦고 →

④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cf. 미완료시제

※ 여인은 어떤 마음이었기에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 바리새인의 반응?

(눅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 바리새인이 본 여인의 모습은? 죄인.

-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 그러면서 동시에 예수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 예수의 반응? → 바리새인 시몬에게 어떻게 반응하시나?

(눅 7:4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 호칭의 차이, 예수께서는 “시몬아”, 바리새인은 “선생님”

cf. 지금 예수께서는 한 바리새인을 부드럽고 이름을 부르고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속으로는 선지자가 아니라고 단정을 내리면서도 겉으로는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여인과 완전히 다른 위선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눅 7:41-42) 『[41]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 탕감해주다(χαρί́ζομαι 카리조마이), 원래의 의미는 ‘즐거운 어떤 것을 행하다, 은혜를 베풀다’ 신약에서는 ‘용서하다’

→ 사랑하다(아가파오 ἀγαπά́ω) 이해타산으로 된 거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베풂과 보답

cf. ⇒ 무엇을 위해 죄인인지 아닌지 구분하는가? 바리새인은 죄인으로 정죄하고 끝내지만 예수께서는 죄인을 탕감과 아가페 사랑과 연결시켜 말한다.


(눅 7: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cf. 예수님의 대화법, 부드러우면서도 강요나 강제성이 없이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그런데 이 판단이 이미 갖고 있는 바리새인의 단정과 정죄를 넘어선다.


(눅 7:44-46) 『[44]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이르시되 → 중요하고 감동이 되는 부분이다. 예수의 시선이 시몬에게서 여인에게로 옮겨간다. 그리고 그 여인을 보면서 시몬에게 말하다.

→ 바리새인과 여인의 차이

바리새인

여인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눅 7:47-50) 『[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49]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 예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

→ 이유?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①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②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 Q. 이 여인은 누구일까? 어느정도 예수님에게 어떤 도우을 받았길래 귀한 향유를 드릴 수 있었을까?

cf. 요 8:1-11. 간음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과 용서

(요 8:9-11)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Q. 우리가 드릴 눈물과 향유는, 최고의 사랑은 무엇인가?


▷ 예수와 바리새인의 다름 → 바리새인이 보는 것과 예수께서 보신 것은 왜 이리 다를까?

① 바리새인은 예수를 초대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단정을 내리지만,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신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집에도 가신다.

② 바리새인이 본 여인의 행동과 눈물은 부정함과 다른 사람도 부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신 눈물은 사랑을 많이 받은 증거라고 하신다. 즉, 바리새인은 여인을 죄인으로 단정하지만, 예수께서는 용서와 사랑을 많이 받은 자라고 보신다. cf. 우리 아이가, 우리 가족이 어떻게 보이나?


▷ 바리새인과 여인의 다름

① 바리새인 자신은 올바름의 기준이 있고 그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고, 여인은 죄인으로 있으면서도 사랑을 많이 받은 자이고,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② 바리새인은 비교비유에서 이성적으로 많이 탕감받은 자라고 생각한다고 하고 속으로 정죄하고 단정내리면서 겉으로는 아닌척 하지만, 여인은 자신의 사랑을 그대로 예수께 눈물과 향유로 쏟아붓고 있다.

③ 바리새인에게 보이는 것은 ‘정서적 박탈’이다. 이는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결코 충족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거나 감정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나 여인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표현한다.


Q. 우리는 많이 사랑받은 사람인가? 그 사랑을 어떻게 받고 있고 표현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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