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20. 요셉 - 요셉 그리고 아버지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2. 10. 31. 15:18

[그리운 아버지를 만나다]

 

 

46:1-7 브엘세바에서 제사를 드린 야곱은 가족들을 태우고 이집트로 간다.

46:8-27 이집트로 함께 올라온 가족들의 명단이 나온다.

46:28-30 야곱을 만난 요셉

46:31-34 가족에게 바로를 만나게 될 것을 알려주는 요셉


* 야곱이 요셉에게 가다.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1. 야곱은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낸다. 2. 요셉에게 자신들을 고센으로 인도하도록

cf.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미 계획(있을 곳)을 말했다. (창 45: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 고센 1. 나일강 하류에 위치한 목초지가 풍부한 곳으로 유목민의 생업에 좋은 곳. 2. 국경지대로 후에 출애굽시 편리한 곳. 3. 이집트 본토에서 어느정도 격리되어 종교적 종족적으로 단일성을 유지하는데 수월한 곳.


* 요셉이 야곱에게 가다

(창 46: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 수레를 통해 왕의 특권을 보여줌으로 권위와 위엄을 갖추고, 이집트 사람들로 하여금 이방인인 자신의 가족들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얻는다.

-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 직역 ‘아버지 야곱을 만나기 위해’

→ 카라(קרא)는 귀한 손님을 맞으러 뛰어나가는 상황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단어.

-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


* 야곱의 기쁨

(창 46: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 죽음이 주는 슬픔보다 큰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Q. 요셉은 자신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고 있음에도 형들을 만났을 때 아버지를 오라하지 않고 동생을 오라했을까?

1. 과거에서

→ 어릴적 요셉은 아버지와 떨어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동생이 미운 형들은 임의대로 악한 행동을 한다. ⇒ 불안 두려움 분노등 다양한 감정

→ 요셉은 어떤 마음일까? 아버지에 대해 좋은 기억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도 그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그 과정을 억울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고백하게 된다. ⇒ 요셉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도 자연스럽게 과정을 본다.

Q. 무엇이 이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

1. 요셉의 고백-요셉은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보내심으로 된 것으로 이해하고 고백하고 있다.

(창 45:5,7) 『[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2. 요셉의 계획-계속되는 흉년과 함께 고센땅에 있도록

(창 45: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 아버지와 좋은 관계였던 요셉은 아버지의 요청을 잘 받아들였다. 그것으로 그는 칭찬을 받았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백하고 그의 인도하심에 맡기고 기다리며 고백할 줄 안다.

cf. 성경에서 좋은 부자관계의 예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의 관계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10:21) 『이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행 1: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마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정리]

형제들이 요셉을 노예로 판 것은 임의로 행동한 것이다.

요셉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기다린 것은 인도함에 맡긴 것이다.

cf. 우리의 상황도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으로 임의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요셉은 있는 그대로 봄으로 인도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고백 안에 준비하는 요셉]

 

46:31-34 예상질문과 대답을 준비한다.

47:1-12 바로를 만나다.


* 요셉의 사전준비

(창 46:31-34)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요셉의 이야기는 하나의 직접화법으로 된 문장이다.

31절 가족을 만나고 왔다고 바로에게 보고 할 것이다.

32절 그들은 목자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왔다고 말해 둘 것이다.

33절 바로가 형들에게 직업을 질문하면

34절 조상때부터 어릴때부터 목축을 해 왔다고 하라. 그래야 고센에서 살 수 있다.

cf. 당시 이집트는 신분에 따라서 직업이 결정되고 직업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였다.


* 바로에게 보고하다.

(창 47:1-2) 『[1]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2]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 요셉은 계획대로 바로에게 보고한다.

※ 요셉의 신중한 준비와 일하는 스타일

-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요셉은 바로에게 보고하면서 ‘고센땅에 있다’고 함으로 자연스럽게 바로가 고센땅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요셉은 이집트에서 5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형들중에 5명을 선택하여 바로앞에 세움으로 바로가 은연중에 존중받음을 느끼게 한다.

- 바로에게 보이니-굳이 보일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위치를 잘 활용한다. 이는 요셉이 바로에게 가족이 도착한 사실을 보고하면서 함께 바로 앞에 형제를 세운 것은 미리 준비해 놓은 것


* 바로의 예상질문과 형들의 준비된 대답

(창 47:3)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 예상대로 바로의 질문과 형들의 대답이다.

※ 요셉의 예상질문과 준비된 대답-정확한 분석과 예상적중

-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 예상질문인 ‘직업이 무엇이냐’은 직업으로 신분을 결정짓는 애굽의 관습대로 바로가 형제들을 보자마자 직업부터 물을 것을 알고 있었다. 요셉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집트인들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다.

-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 준비된 대답으로 자신들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조상의 직업까지 말함으로 가업임을 알림으로 낯선 이주민에 대한 바로의 경계를 낮춤


(창 47:4)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 형들은 바로에게 고센땅에서 목축업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 이주 목적 - 가나안 땅의 심한 기근과 목축을 할 곳이 없어서

-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바로의 허락이 필요하다. 나그네로서 낯선 지역에 있는 것은 안전을 보호받지 못한다.

⇒ 바로에게 고센땅이 적당한 곳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하고 예상질문과 준비된 대답으로 바로의 경계를 낮춤으로 고센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받을 가능성을 높인다.


* 바로의 허락

(창 47:5-6) 『[5]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6]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 바로는 요셉에게 위임한다. 이는 요셉에 대한 호의와 신임

- 땅의 좋은 곳에 ...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 요셉은 가족을 고센에 있게 하고 이에 대하여 바로의 공식적인 승인으로 확정하게 한다.

cf. (창 46: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 가업을 살려서 왕의 가축도 돌볼 수 있도록 공식적인 직책을 맡게 되어 이집트에서 입지를 확고하게 한다.


* 야곱과 바로와의 대화

(창 47:7-10) 『[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8]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 요셉은 바로 아버지를 바로와 만남을 주선함으로 속도감을 보여준다.


* 결론

(창 47:11-12) 『[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 바로의 명대로인가, 자신의 의도대로인가? 결국 왕의 명령에 의한 것임으로 분명한 효력이 있게 되었다.

⇒ 완전한 소유는 아니지만 그곳에 머물게 됨으로 가뭄을 피해 온 야곱의 가족들이 좋은 땅에서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Q. 이러한 철저하고 신중한 준비는 무엇에 근거하는가? 고백에 근거한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 가족을 도우면서도 하나님의 의도를 살리는 것


[정리] 요셉의 철저하고 신중한 준비-예상질문과 준비된 대답

       20여년간의 이집트 생활에서 나온 경험과 지혜,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


[요셉의 건강한 정책]

 

간디가 말하는 ‘7가지 악덕’ - 철학없는 정치, 도덕없는 경제, 노동없는 부(富), 인격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윤리없는 쾌락, 헌신없는 종교


(창 47:13-14) 『[13]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14]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 기근으로 너무나 힘들어진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 요셉은 정당한 곡식 거래를 통해 근동의 모든 돈을 바로의 창고에 쌓이게 한다. 여기서 요셉은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동하면서 사람들을 착취하거나 비정직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창 47:15-17) 『[15]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16]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17]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 백성들은 먹을 것을 요청하고 요셉은 가축으로 내게 한다.

→ 너무나 배고프면 가축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요셉이 그 가축을 식량으로 바꾸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는 식량정책을 애굽의 경제를 왕실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와 국가가 가축을 재산으로 관리함으로 가축의 노동력을 보호하려 한다.

→ 만약 이를 방치하여 가축을 먹게 되면 기근후에 농업에 필요한 가축의 노동력을 잃게 된다.


(창 47:18-20) 『[18]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19]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20]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 가축을 드린 백성들은 다시 자신의 몸과 토지를 팔겠다고 한다. 이정도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들의 몸은 지금 살아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으로 식량문제로 인한 극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 요셉의 정책과 결과로 모든 토지는 국유화가 되었다. 이는 국가경제의 기반이 되는 토지가 일부 귀족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구조적으로 개선함으로 후에 토지의 재분배를 통해 백성들에게 유익을 주려 한다.


(창 47:21-22) 『[21]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22]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 백성들을 이주시킴으로 식량을 구하려는 백성들의 이동거리를 줄이고 낭비를 줄이는 개혁정책의 일환이다.

→ 제사장의 토지를 그대로 두는 것은 기득권을 인정함으로 왕중심의 종교적 정치적 집중을 하게 한다.


(창 47:23-26) 『[23]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땅도 가축도 백성도 국가의 것이 되었다. 거래를 통해 이루어졌다.

→ 더 이상 농사지을 수 없는 그들에게 종자를 주고 농사를 짓게 한다.

→ 상납의 의미는 강제가 아닌 단순히 ‘주다’의 의미로 자발적 납세를 권고하고 있으며 정액세가 아닌 1/5이라는 정률세를 내게 함으로 목숨만이라도 부지하려는 백성에게 나머지를 갖게 했다.

→ 이집트 사람들은 요셉의 선정(善政)에 대해 감사했으며, 요셉은 자신이 종이었던 경험을 잘 적용하는 정책이었다.

→ 이집트에서 발견한 문서에도 왕과 제사장과 전사(戰士)들만 토지를 소유했다는 기록으로 볼때 요셉의 토지정책은 장기간 시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리]

요셉의 토지법개혁과 정책은 왕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백성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요셉은 그 개혁과 정책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정직하게 사용하였다.

요셉의 종되었던 경험이 백성들에 대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센에 있는 이스라엘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 정책이었다.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하나님에 대한 고백으로 정직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는 요셉의 모습은 이스라엘에게 모델이 될 것이다.

 

[부자의 고백]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짧고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 47:27)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

→ 앞의 47:13-26은 가뭄으로 여전히 힘든 이집트의 상황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가축, 토지, 사람 등)을 모두 왕에게 주고 생명을 유지한다.

→ 그런 상황과 달리 이스라엘은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고’ 있다. 인구가 증가하는 과정과 결과를 병행시켜 역동적인 느낌을 갖게 하는 히브리어적인 표현이다. 이는 곧 죽을 것같은 상황에서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보게 한다.


(창 47:28)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 야곱이 이집트에 거주한지 17년 = 요셉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

cf. 어릴적 요셉이 아버지와 함께 있었던 시간도 17년?


(창 47:29-30)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 야곱은 어떤 심정일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다.

-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 예전에는 그럴 수 없었던 요셉을 부르는 심정은 어떨까? 어떤 특별한 이유로 요셉을 부른 것일까?

- 너의 손을 나의 다리 사이에 넣고 → 고대의 약속의 방법, 당대를 넘어 후대에까지 이루어지길 바란다.

-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 야곱에게 아들 요셉은 어떻게 보일까? 야곱은 아들 요셉에게 하나님의 성품인 인애와 성실함으로 자신을 대해 줄 것을 요청한다. 야곱에게 요셉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자비롭고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함을 가지고 있기에 요구한다.

-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 야곱의 부탁이고 요셉을 부른 이유이다. 이집트가 아닌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는 것이다.

→ 씨족의 결합이 개개인의 죽음을 넘어 중요함을 말한다.

⇒ 그러므로 야곱의 부탁은 단순한 개인의 바람이 아니라 가족적 공동체적 신앙적 고백이다.

cf. 그런 이야기를 하는 야곱을 보는 요셉의 마음은 어떨까? 역시 아버지의 신앙을 본다.


(창 47: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창 47:31) 『야곱이 다짐하였다. "그러면 이제 나에게 맹세하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맡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 야곱은 요셉에게 맹세를 요청하고 요셉도 맹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의 경배의 모습을 요셉은 보고 있다. 이것은 요셉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고 신앙적인 삶을 선택하는데 구체적인 기억이 될 것이다.


cf. 요셉의 약속 이행

(창 50: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cf. 요셉의 부탁

(창 50:24-25) 『[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정리]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신앙을 보고, 아들도 아버지에게서 신앙적 고백을 본다.

여전히 언제나 힘들어 죽을 것같은 나 vs 그런 가운데도 여전히 살아 있는 나

그들은 삶을 통해 신앙과 고백의 자리에 왔다.


[요셉에게 보이는 야곱의 하나님은?]


(창 48: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 요셉은 아버지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연로하기에 쇠약하고 죽음에 임박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 임종의 소식을 들은 요셉은 두 아들과 함께 간다.


(창 48: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 아들이 왔다는 소식에 일어나 앉는 야곱의 모습.

cf. 1절 ‘병들었다’ vs 2절 ‘힘을 내어’ - 육신의 연약한 상황과 마음과 영적으로는 최선을 다하는 야곱의 의지가 분명하다.


(창 48:3-4)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요셉에게 이르되 : 야곱이 요셉에게 이야기하고 요셉은 듣는다. 단순히 야곱의 이야기가 아니라 야곱의 이야기를 요셉이 듣고 있다. → 육신은 약하나 힘을 내어 일어나는 의지를 보이는 야곱이 요셉에게 지난 과거의 삶을 이야기한다.

cf. 죽음에 임박한 야곱이 과연 요셉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그것은 야곱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지금의 자신을 있게한 사건을 말한다.

Q. 같은 상황도 같은 상대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기억한다. 그럼, 야곱은 상황과 하나님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  야곱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리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한 때는? 루스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때가 야곱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음에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 그럼 그때를 야곱은 어떻게 기억하는가?

-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 야곱의 상황, 야곱이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

-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 직역 ‘그는 스스로를 나타내셨다’

a. 야곱에게 자신을 보이신 하나님은 그가 절대로 부인하지 못하게 확실히 알 수 있도록 그에게 보이셨다.

b. 야곱이 하나님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스스로를 나타내셨다. 그에게 복을 주시기로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야곱은 경험한다.

c. ‘전능하신 하나님’ - 야곱은 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다른 피조물과 구분되는 절대적인 힘을 지니신 하나님이다.

- 내게 이르시되 : 확실히 스스로를 보이신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신다.

→ 약속의 내용 :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 이 약속의 특징? 야곱이 원하는 것

Q. 하나님은 왜 야곱이 원하는 그것을 주셨을까?

여기서 엄마에게 느끼는 아이의 마음은 어떨까?

1.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엄마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 몰입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

3. 만족과 성취감을 취한 경험을 잃어버린다.

결국 ‘부모는 자녀에게 지시 훈계 지적을 삼가해야 한다.’

* 병리란? 자신에 대하여 진정으로 경험하는 것과 다른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고 느끼는 것

*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것?’ 누군가 자기의 세계를 알아주는 것, 몰입을 인정하는 것, 그 마음의 세계에 따라가는 것이다. 이것을 ‘공감’이라 한다.


* 이에 대한 야곱의 반응

1. 당시에는? (창 28:16-17)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2. 지금은? 48:3-4을 통해 야곱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을 아들 요셉에게 말해주고 있다. 힘을 내어 앉아서 말해주고 있다.

3. 요셉은 그 하나님을 듣고 있다. 아버지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에 만난 하나님을 듣고 있다.


cf. 야곱의 약속에 대한 고백과 기억은 조상의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

1. 루스에서 야곱에게 하신 약속 (창 28:13-15)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2. 야곱이 회상하면서 고백하는 약속 (창 48: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3. 아브라함이 99세에 새로운 이름과 언약의 표징인 할례에 대해 받으면서 (창 17:6-8)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야곱이 회상하는 약속은 루스땅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

-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정리]

야곱의 고백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공감의 하나님’이시다.

야곱은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인생의 최고의 순간으로 고백하고 있다.

야곱의 약속에 대한 기억과 고백은 조상과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다.

그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이 순간 아버지의 모습은 요셉에게 역시 공감의 하나님과 같을 것이다.

 

[아버지의 반복된 삶에서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보다]  

1. 공감하시는 하나님은 야곱에게 죽음의 두려움이 반복될때 오셨다.

2. 공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개인적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세대로 이어지는 약속이었다.


(창 48:3-4)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이 고백은 순전히 개인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대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 약속이 공통되게 나타나는 경우를 보자. 이 상황은 임종 전의 상황이다.


1. 야곱의 처음의 경험은 순전히 개인적으로 보인다.

(창 28:13-15)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 그러나 이 약속은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세대를 위한 약속이다. 15절의 개인적인 약속으로 끝나는 이 약속은 그 근거가 13절에서 보듯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으로 그들에게 약속한 것을 다시 반복하고 있으며 14절에서 보듯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2. 그런 야곱에게 다시 약속이 주어진 것은 수십년이 지나서 였다. 하나님은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셨다. 당시 야곱의 상황은 딸의 성폭행을 당하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들들이 그 성을 기습하여 모든 남자를 죽이게 되었을 때 가나안 사람들에게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창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cf. 처음 루스에 갈때는 형에 의해 죽음의 두려움이 있었고, 다시 벧엘로 갈 때는 가나안 사람들에 의해 죽음의 두려움이 있었다. 이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하신다. 결국 공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과거에 있었던 죽음의 두려움이 계기가 되어 다시 그 하나님의 약속을 받게 한다.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 그렇게 올라간 벧엘에서 하나님은 창 48:3-4의 약속과 동일한 약속을 하신다.

(창 35:9-12)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cf. 그렇다면 야곱이 48장에서 요셉에게 들려준 고백 속에 있는 약속은 28장인가, 35장인가?


3. 그런데 이것은 세대로 이어지는 아브라함때부터 이어지는 약속과 동일하다.

(창 17:4-8)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이러한 야곱의 고백은 세대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즉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는 것이다. 이때 요셉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창 48:5-6)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정리] 야곱은 28장의 죽음의 두려움을 주는 상황에서 자신을 만나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야곱은 35장의 다시 죽음의 두려움을 주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야곱은 48장에서 실제로 임종을 준비하면서 두려움이 아닌 평안함으로 그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다.

야곱의 고백은 개인적이면서 세대적이다. 그 고백을 요셉에게 들려주고 있다.

Q. 나의 삶은 어떤 반복이 있는가? 클릭하고 싶은 괴로운 반복은 무엇인가? 그런 나에게 오셔서 반복되게 말씀하시고 공감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약속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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