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20. 요셉 - 형제를 만나다. 그것은 준비된 은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2. 6. 13. 16:28

[요셉, 형제를 만나다. 그것은 준비된 은혜]

→ 37장-41장 요셉의 어린시절 꿈, 이집트에서의 노예와 죄수생활, 그리고 총리

→ 42장-45장 기근으로 음식을 찾아온 형제와의 만남과 과정

→ 42장(1차 여행), 43장(2차 여행), 44장(시험하기), 45장(자신을 밝히기)


* 41장의 내용요약

1-5 배경은 야곱의 집이고 식량을 사러간다.

6-8 요셉이 형제들을 알아본다.

9-16 어릴적 꾼 꿈이 생각난 요셉은 형제들을 정탐꾼이라며 진실함을 증명하라 몰아붙인다.

17   형제들을 3일간 감옥에 있게 한다.

18-20 막내를 데려오라고 제안한다.

21-23 요셉은 형제들의 후회를 듣는다.

24-28 시므온이 남고 형제들은 돈자루가 있는 것에 놀란다.

29-38 집에 돌아와 모든 과정을 야곱에게 말한다.


* 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Q. 요셉은 왜 총리가 되지마자 가족들을 부르지 않았을까?

Q. 요셉은 왜 형제들을 발견하였을 때 꿈을 생각했을까?

Q. 요셉은 왜 형제들을 정탐꾼이라 하며 동생을 데려오라 하였을까?

Q. 요셉은 왜 형제들을 3일간 감옥에 있게 했을까?

Q. 요셉은 왜 시므온을 결박했을까?

Q. 요셉은 왜 돈자루를 주었을까?

Q. 요셉은 왜 형제들을 그대로 돌려보냈을까?

Q. 요셉은 왜 그들의 이야기를 눈물로 들었을까?

Q. 요셉은 왜 동생을 데려오는 것으로 그들의 진실함을 확인하려 했을까?

→ 이 많은 질문은 ‘요셉은 왜’에서 ‘하나님은 왜’로 바꿀 수 있다.


* 야곱의 집에서 → 1-5절은 41장의 배경이고 발단이다.

배경1. 그들이 왜 이집트로 와야 하는가? 경제적인 이유

(창 42:1-2) 『[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창 42: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헤브론에서 이집트까지 400km는 약탈이나 침입의 위험한 상황임에도 가야하는 길이었다.

- 요셉의 형 열 사람 : 야곱의 아들 10인이라 하지 않고 요셉과 관련하여 표현한다.


배경2. 베냐민을 언급하며 앞으로 벌어질 일이 베냐민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창 42: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지 않은 것은 재난이 그에게 미칠것을 두려웠기 때문이다. 야곱이 생각한 재난은 가는 도중 요셉처럼 들짐승에게 잡혀 먹힐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 그러나 실제로 닥친 재난은 이집트총리가 베냐민을 오도록 요구하고 2차여행에서는 형제들의 진실함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베냐민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재난을 보게 된다.


(창 42: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창 42:5)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아들들도 곡식을 사러 가는 사람들 틈에 끼었다.』

→ 기근을 통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야곱의 아들들이 이집트로 향한다.


* 지금 우리의 상황도 그러하다. 현대는 무엇으로 물가가 오르는가?

국민고통지수=물가상승률+실업률  

물가상승이유 : 고환율, 통화량증가, 저금리

 

* 형제들, 요셉을 만나다.

(창 42: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창 42:6) 『그 때에 요셉은 나라의 총리가 되어서 세상의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파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요셉의 형들은 거기에 이르러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요셉에게 절을 하였다.』

Q. 어떻게 형제들은 요셉 앞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1.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이 직접 곡식을 팔거나 곡식을 사는 사람을 일일이 만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곡식판매는 여러지역의 실무자들이 담당했을 것이다.

2. 그러나 곡물매매의 최종 결재는 요셉의 관리하에 진행되었을 것이다. 특히 이집트사람이 아닌 외국인의 경우는 더욱 관리를 요구했을 것이다.

3. 그러한 관리의 책임이 있는 요셉은 근동지역이 풍년에 이어 흉년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족들도 곡식매매를 위해 올 것을 예상하고 준비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경수비대에 가나안의 사람이 오면 자신에게 데려오도록 실무자들에게 적절한 지시를 내려놓았을 것이다.

4. 이로 인해 형제들은 요셉 앞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둘은 곡식을 얻기 위해 절하는 자와 판매할지를 결정하는 자의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창 42:7-8)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창 42:7-8) 『[7] 요셉은 그들을 보자마자 곧바로 그들이 형들임을 알았다. 그러나 짐짓 모르는 체하고, 그들에게 엄하게 물었다. "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먹을거리를 사려고 가나안 땅에서 왔습니다." [8]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 엄한 소리로 : 카쉐() 호되고 거칠고 가혹한 언어를 사용했다.

Q. 20년만에 만난 형제들을 보고 요셉은 호된 표현을 사용하고 이어서는 정탐꾼이라고 한다. 이는 개인의 복수인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인가?


[정리]

준비된 은혜가 때가 되었다. 야곱이 아들들을 보내고 요셉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들을 만난다.


[기근, 만남의 조건이다.]

 

▷ 기근, 만남의 조건이다.

1. 온 지면, 온세상에서 가나안 땅으로 초점이 이동

(창 41:56-57) 『[56]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 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창 42: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 ‘넓은 지역’에서 ‘좁은 지역’으로 축소시킨다.

2. 기근은 그들을 움직이게 한다.

(창 42: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 기근이 없었다면 그들은 움직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기근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움직임이 그저 양식을 사러가는 자로서만 보일 뿐이다.

3. 기근은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게 한다.

→ 여기서 이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 이유는 자신이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느낄 때 다음이 열린다.

4. 기근 속에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가 있다.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 기근은 준비된 하나님의 하실 일이다. 그것으로 형제들은 자신의 부족을 느끼게 한다. 기근으로 부족한 사람이 손을 내민다. 누군가가 먼저 부족을 느끼고 손을 내밀어야 화해가 이루어진다. 한 자리에 서야 진정한 화해가 시작된다.

5. 누가 먼저 움직여야 하는가? 용서받을 사람 vs 용서할 사람(용서한 사람)

- 야곱 vs 에서의 경우,

(창 32: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창 33: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 요셉 vs 형제들의 경우, 용서받아야할 사람은 형제들이다.

cf.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할 사람을 만나야 한다. 곧 용서받을 사람은 용서받을 행동을 늦게라도 기회가 되면 해야 한다.

cf. 사람 vs 하나님의 경우는 어떨까? 용서받을 사람을 용서하신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 기근은 용서받을 사람이 용서한 사람을 찾아가도록 자신의 부족을 보게 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직면은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역효과를 얻을 수 있다.


▷ 알아보는 요셉 vs 알아보지 못하는 형제들

(창 42:7-8)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 알아보다(나카르) 주목하다, 알아보다. 세밀히 조사하다, 골똘히 쳐다보다, 인식하다, 알아채다,

→ 모른체하다(네케르) ‘이상한’ 어떤 것, 즉 예기치 않은 ‘재난’, 낯설은


-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 직역 ‘그리고 그는 알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들에게서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게 했다’

→ 요셉은 형들을 보고 알아보다. 왜? 기다렸으니까..

   형들은 요셉을 보고 알아보지 못한다. 왜?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으니까..

⇒ 요셉의 질문으로 그들이 이집트에 온 이유를 알게 된다. 기근으로 음식이 필요한, 즉 부족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다.

⇒ 용서는 곧 여유를 가진 자와 부족을 느끼는 자의 관계이다.

cf. 요셉의 다르게 행동함을 모른체함으로 보는 것은 형제들의 시각이다. 우리 역시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에게 모른체 한다고 말한다.

cf. 예수는 죽기까지 해서 우리를 용서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느끼는 부족을 채우고 소유하는 것이다.


Q. 요셉은 왜 형들을 모른체 할까? 이는 개인의 복수인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은혜인가?

cf.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그들이 변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면, 자신이 어떤 누구인지 알고 있는지 확인하려 했다면, 이 방법 외에 다른 것은 없었을까?

→ 요셉이 먼저 용서했다고 하면 그들은 참회할 기회를 잃어버린다. 처음에는 고맙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못보게 된다. 용서받을 준비를 주지 않는 용서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자유를 빼앗는 것이다.

→ 요셉이 먼저 형들을 용서한다고 하면 처음에만 놀라고 이후에는 기쁨을 느낄 수 없다. 자신이 감추려고 했던 것을 직면했다는 것을 상대가 모르기 때문이다. 깊은 무엇인가 그 안에 계속 있다. 형들이 자기가 입으로 토할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

1. 보고 들을 자유

2. 느끼고 표현할 자유

3. 생각하고 말할 자유

4. 원하고 바라고 선택할 자유

5. 모험하고 부르심대로 나아갈 자유

 

⇒ 결국 45장으로 가기전 42-44장의 과정은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이다.

⇒ 요셉도 그런 과정을 통해 형제들에게 42-44장의 과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요셉의 인생에는 형제에게 팔리고 주인에게 모함받는 억울함을 샬롬과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만나는 과정이 있었다.

⇒ 건강한 자는, 바르게 용서할 수 있는 자는 상대에게 자신을 볼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서는 안된다.

 

[너희 진실함을 증명하라]

▷ 오늘 보려는 주제는?

1. 요셉을 통해 제공되는 자유,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는 무엇일까?

2. 형들은 자신이 어떻게 정직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3. 요셉은 왜 그리고 무엇으로 그들에게 정직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가?

4.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으로 우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


* 형제를 만난 요셉은 모른체 하며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시작한다. 그것의 시작은 ‘꿈’이다.

(창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 생각하고 → 자카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다, 상기하다’의 의미

a. 요셉은 잊고 있던 꿈이 불현듯 생각난 것이 아니라 항상 마음에 새겨두었던 꿈이 생각났다.

b. 형들이 와서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마치 그가 꾼 꿈과 동일한 상황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창 37:7,9)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c. 요셉은 이 꿈이 확실히 성취되리라고 믿고 형들에게 이야기했으나 오히려 이 일로 인하여 형제들의 미움을 사게 되고 이집트의 노예로 팔리기까지 되었다.

d. 그런데 요셉의 꿈을 불신하고 방해하려 했던 형들이 지금은 오히려 요셉의 꿈이 성취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e. 곧 요셉은 과거의 꿈과 더불어 이러한 모든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a. 이집트는 지형학적으로 공격받을 수 있으며 실제로 늘 타민족들에게 침략을 당해 왔다. 그런 까닭에 당시 이집트인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나그네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다.

b. 더욱이 흉년으로 인해 곡식을 사러 온 외국인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모아둔 식량을 빼앗긴다.

c.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정탐꾼이라고 말한 것은 적국의 스파이로 그들의 목숨을 취하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 생명의 위협을 느낀 형들의 반응

(창 42:10-11)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 내 주여, 아니니이다.

a. 급박해진 상황에서 형들은 요셉에게 자세를 낮추고 ‘주님’이라고 부른다. 과거에 미워하고 잡어서 죽이려고까지 했던 요셉에게 극존칭을 사용하고 있다.

b. 요셉은 형들의 호칭으로 더욱 꿈과 일치됨과 상황이 역전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c. ‘아니니이다’는 강한 부정으로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a. 자신들이 이집트에 온 목적은 오직 곡물구입을 위함이며, 일행이 많더라도 정치적이나 군사적으로 탐지하려고 온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b. 자신의 목적을 분명히 말함으로 정탐이 아닌 생명유지를 위해 왔기에 무죄이고 정탐과는 상관이 없음을 강조한다.

cf. 동생을 상인에게 팔고 아버지에게는 거짓말을 할 때 자신들은 전혀 죄가 없음을 얼마나 강조했을까?

(창 37:31-33)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 옷에 피를 적시고-아버지에게 보이고-거짓을 확인하게 하고-아버지에게 거짓된 확신을 갖게 한다.

-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a. 확실한 자들 : 켄(), 본래의 의미는 ‘똑바로 세우다’ ‘정당한, 옳게, 확실히, 참된’

b. 형들은 자신들이 정탐꾼이 아니라고 속이는 것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스스로 정직하고 바르다고 말한다. 즉, 자신들은 심지가 굳고 청렴하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c. 그러나 이 말은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과거의 행위를 볼 때 진실한 사람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곧 자신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강조함으로 실제로는 그 자체가 거짓이다.

d. 지금까지 형제들이 정직해졌다고 할만한 것이 성경에는 나오지도, 자신을 직면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확실한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cf. 자신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사실(참)을 말함으로 다른 모든 것들도 사실(참)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반쪽정직과 반쪽 거짓이 있다.


* 요셉의 강조와 반복

(창 42: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 아니라. → 형들이 썼던 부정을 요셉이 다시 부정한다. 그리고 요셉은 9절의 표현을 다시 반복한다. ⇒ 이 강조는 형들을 더욱 자체 모순의 이야기를 하게 한다.


(창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a. 사실 - 12형제로서 한 사람의 아들들이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다.

   거짓 -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죽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문제가 된다.

b. 그들은 요셉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인들에게 팔았으며 아버지에게는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c. 이것으로 요셉의 형들은 스스로 자신들이 아직도 정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고, 과거의 자진한 행위에 대해서도 회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d. 그들은 총리에게 자신들의 가족사항을 자세히 말함으로 자신들이 정직하다고 말하고 단지 곡식을 사러온 자로서 정탐꾼이 아님을 나타내고자 하나, 오히려 자신들이 부정직함만 드러내고 있다.


* 요셉의 강조와 자신에게 중요한 삶의 자세

(창 42: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a. 이것 -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9,12절) → ‘너희는 거짓말하는 자들이다’라는 의미이다.

b. 요셉은 곡식을 사러온 형들을 보자 가장 먼저 자신이 꾸었던 과거의 꿈과 그 꿈과 관련된 괴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c. 요셉은 정직한 사람이다. 스스로 확실하다고 말하는 형들의 고백은 진짜 확실한 요셉을 자극한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지 증명하라 한다.

cf. 사람은 항상 하던 것을 한다. 익숙한 것을 한다. 자신의 잘못을 알기란 어렵다.

a. 요셉의 관점에서 정직은 요셉의 삶에 중요한 것이다. 요셉은 그런 눈으로 형들을 볼때 여전히 거짓을 말하고 있고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b. 성경의 관점에서 하나님이 거룩하다. 곧 요셉을 통해 형제들이 정직해지기를 원한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c. 독자의 관점에서 자신을 정직과 부정직을 보게 한다.

∴ 성경의 방향은 요셉을 통해 정직과 바름과 거룩을 이야기하며 형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모습도 보게 한다.


* 진실할 수 있는 구체적인 요셉의 제안

(창 42: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 직역 ‘이로써 너희는 증명받게 될 것이다’(you shall be proved, you will be tested)

→ 너희 진실함을 : 원문에는 나오지 않으나 16절과 연결하면 동일한 내용이 된다.

→ 빠한() 검사하다, 조사하다, 증명하다, 유혹하다, 시험하다(시험), ⇒ 여기서는 어떤 것의 특성이나 순도를 측정하기 위해 시험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며, 단순재귀형을 사용함으로 너희들이 정탐꾼이 아닌지는 시험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라는 뜻.

→ 막내를 데리고 오면 = 너희들은 증명될 것이다.

-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 당시의 흔한 맹세형태로서 이집트인들에게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인 파라오를 통해 맹세함으로 확실함을 강조한다.

-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a.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막내 베냐민에게 자신처럼 사랑을 쏟고 있음을 알게 된다.

b. 그런 아버지를 설득하여 베냐민을 데려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허락하지 않아 긴 시간이 지연되었다.

c. 동생 요셉을 돌보지 않은 형들에게 막내 베냐민을 돌보게 한다.

d. 돌보아야 할 동생을 데려오면 어찌 될지 모를 이집트로 데려와서 자신들이 정직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Q. 자신을 증명하는 것?

형들 : 자신들이 정직하다고 → 요셉이 없어졌다하여 거짓을 보인다

요셉 : ‘이것이다’ 말함으로 그들의 거짓을 드러낸다 → 스스로 증명되게 하라 한다.

적용 : 지금 내가 바른 신앙임을, 바른 마음임을, 바른 상태임을 증명되게 하라?


(창 42:16-17)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 형제중 한 사람을 보내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단호하게 명령한다. 그렇게 해야만 오해를 풀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 에메트() 확실하고 신실하고 옳고 분명하고 참됨의 의미

→ 형들이 자신들에게 진실이 있는지 증명해야할 것들

a.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동생을 미워하였다.

b. 그 동생을 죽이려다 상인에게 팔아버렸다.

c. 아버지에게는 거짓증거물을 가져와 요셉이 죽었음을 믿게 함으로 아버지의 기쁨을 빼앗았다.

d. 총리에게 자신들은 확실한 자들이라 하면서도 요셉이 없어졌다고 말함으로 자신들과는 무관함을 말한다.

⇒ 이렇게 그들은 반쪽거짓말로 상황과 위기를 모면하려다가 더큰 위기를 맞게 된다. 그들은 전혀 자신들의 약함(반쪽 거짓)을 꺼내고 싶지 않다. 그런데 그것을 꺼내야 한다.

-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 3일동안 갇혀 있음으로 형제들은 자신들을 직면하는 과정에 진입하게 된다.


▷ 오늘 보려는 주제는?

1. 요셉을 통해 제공되는 자유,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는 무엇일까? → 그

2. 형들은 자신이 어떻게 정직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3. 요셉은 왜 그리고 무엇으로 그들에게 정직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가? →

4. 우리는 우리 삶에서 무엇으로 우리를 증명할 수 있을까? →

 

[요셉은 왜 형제들을 정탐꾼(spy)이라 하는가?]

지난주 내용은 요셉의 형제들의 반쪽 거짓의 상황과 진실증명에 대해 나눴다.

1. 요셉을 통해 제공될 자유에 대해 그들은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다.

2. 형제들은 자신이 신분이 확실하며 정직하다고 하지만 말할수록 그들은 정직하지 않음이 들어날 뿐이다.

3. 특히 16절에서 요셉은 그들에게 진실함을 증명하라 하고 성경의 내용은 그렇게 되어간다.

4.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무엇이 진실함인지 증명할 수 있는지를 보게 한다.

⇒ 곧 형제들은 계속해서 반쪽 거짓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진실을 증명해야하는 하나님의 준비된 은혜를 받아들여야 했다.


Q 1. 요셉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이 있는 보이라.

(창 42: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Q 2. 그런 요셉이 왜 형제들을 정탐꾼(spy)이라 하는가?

Q 3. 형제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가?

목적 : 반쪽 거짓이 아닌 반쪽 진실을 온전한 진실로 발견하고 증명하려 한다.


▷ 요셉이 형제들을 정탐꾼이라 하는 이유?

1. 정탐꾼은 정직하지 않은 자의 구체적인 모습이다.

2. 요셉이 형제들을 정탐꾼으로 부른 것은 그들에게 거짓을 보았기 때문이다.

3. 이집트의 지정학적 특징이 위협을 받고 있기에 외국인은 특별관리대상으로 정탐꾼인지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표면적으로 무관할 것이다.

4. 요셉은 그들을 3번 정탐꾼이라고 한다.(9,12,14)

(창 42:9,12,14)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 ‘너희는 ~이다’라는 정체성에 대한 강조


▷ 형제들의 정체성 고백하기

- 요셉의 주장 1

(창 42: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 형제들의 고백

(창 42:10-11)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 아닙니다. → 총리의 주장을 부인한다.

2. 곡물을 사러 온 자들이다. → 이곳에 온 분명한 목적을 말한다.

3. 한 사람의 아들들이다. → 자신들의 출생의 근거에 대해 말한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정탐꾼이 아닙니다.


- 요셉의 주장 2

(창 42: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 형제들의 고백

(창 42: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 우리는 12형제이다.         2. 가나안 땅              3. 한 사람의 아들들이다.

4. 막내는 아버지와 다른 하나는 없다.

특징 - 첫 대답에 비해 더 자세하고 구체적이다.

1. 형제들은 처지가 같은 10명을 형제라 하지 않고 12명을 형제라 한다. → 이것은 이후에 생길 ‘이스라엘 12지파 공동체’이다.

2. 가나안 땅 출신임을 말한다.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정체성을 말한다.

3. 한 사람의 아들 - 11절에서도 나오지만 다시 그들이 한 혈육임을 강조한다.


- 요셉의 주장 3

(창 42:14-16)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 요셉의 주장의 목적은 그들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12명이라고 말한 것에 더욱 그것을 증명하라고 한다. 곧 그들의 입으로 말한 12지파 공동체에 대해 증명하라 한다.


⇒ 곧 요셉이 그들을 정탐꾼이라고 강조한 이유는? 정체성을 증명하라는 것..

cf. 지금 우리에게 ‘너희는 정탐꾼이냐’ 즉 다른 정체성을 강요한다면 상황에 맞는 정체성일 수 있으나 분명한 정체성은 아니다.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정리] 요셉의 강조는 반쪽 거짓만이 아니라 반쪽 진실을 말함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민족의 정체성으로 승화시킨다.

 

[요셉이 울다]

▷ 3일간의 감옥생활

(창 42:16-17)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 갇히어 있으라 :  아싸르() 감옥에 매다. 

- 가두다 : 아싸프() 모으다. 보호하다.

Q. 과연 형제들은 감옥에서 3일을 있는 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느꼈을까?

⇒ 분명한 것은 그들은 3일동안 같이 있으면서 그 상황의 심각성을 느꼈을 것이고, 불안, 긴장, 두려움의 3일이었을 것이다. cf. 요셉이 구덩이에서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 요셉의 제안수정과 배려

(창 42:18-20)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사흘만에 : 3일뒤 요셉이 그들에게 와서 제안을 수정한다. 한 명만 남으라 한다.

* 제안을 수정하는 이유?

1. 집안에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곡식을 가져가는 것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일 것이다.

2. 9명이 1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혼자서 구덩이에 있는 요셉을 생각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단, 구하고 싶은 마음 vs 죽이고 팔려는 마음

-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 야레()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 단순한 두려움이 아닌 예배하고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다.

-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

* 증명하기 위한 과정

1.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2.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3.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4.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 증명과 결과

-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


▷ 형제들의 후회와 동일시

(창 42: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

-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

-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

cf. 그들에게 괴로움은?


▷ 르우벤의 반응

(창 42: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인과응보

cf. (창 9: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 성경을 인용하지만 장남 르우벤의 모습은 리더십 부재의 모습이다.


▷ 요셉이 울다.

(창 42:23-25)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 그들의 진실을 증명하게 하기 위해 요셉은 끝까지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 요셉의 눈물은 그의 행동에 진정성을 보여준다. 형제들이 진실함을 증명하기까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고충을 보여준다.

* 요셉은 언제 울었나?

1. 베냐민을 보고 - (창 43:30)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2. 아버지를 보고 - (창 46: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 야곱의 장례에 - (창 50: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창 50: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4. 형들이 긴장할 때 - (창 50: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cf. 이스라엘 백성은 언제 울까? → 고기를 원하여 울며 불평하는 이스라엘

1. 이스라엘의 울며 불평 (민 11:4-6) 『[4] 그늘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6]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 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2. 모세의 기도 (민 11:13-14) 『[13]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14]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3. 하나님의 응답 - 70인 장로를 세우다(16-17), (민 11:18-20) 『[18]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19]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20]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4. 백성들의 의심 (민 11:21-22) 『[21]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 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22]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5. 하나님의 응답 (민 11:2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6. 메추라기 (민 11: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7. 울음의 원인 - 욕심 (민 11: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cf. 이외에도 성경에는 많은 눈물과 울음이 나온다.

- 삼손의 아내의 울음 (삿 14:16) 『삼손의 아내가 그의 앞에서 울며 이르되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민족에게 수수께끼를 말하고 그 뜻을 내게 알려 주지 아니 하도다” 하는지라.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것을 나의 부모에게도 알려 주지 아니하였거든 어찌 그대에게 알게 하리요” 하였으나』(삿 14:17) 『칠 일 동안 그들이 잔치할 때 그의 아내가 그 앞에서 울며 그에게 강요함으로 일곱째 날에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수수께끼를 알려 주매 그의 아내가 그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더라』

- 베냐민지파와의 전쟁에서 (삿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 룻기에서 (룻 1: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룻 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 한나의 눈물기도 (삼상 1: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 암소가 울다 (삼상 6:12)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 에스라와 백성들의 울음 (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 느헤미야의 울음 (느 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 이스라엘백성의 울음 (더 4:3) 『왕의 명령과 조서가 각 지방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 시편과 예언서에서의 울음

- 베드로의 울음 (마 26: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향유를 붓는 여인 (눅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스데반의 장사 (행 8: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 바울과 함께 울다 (행 20:36-38)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그 모든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니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38]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한 말로 말미암아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 예수의 울음, 예루살렘을 보시고 (눅 19: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에 오셔서 그 도시를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에 (요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cf.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가 돌아오기까지, 그들이 회개하고 진실함을 증명하기까지 그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요셉과 같을 것이다.

-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 요셉은 시므온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단단하게 묶는다. 이는 그들에게 요셉의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cf. 왜 시므온인가? 르우벤의 바로 밑 동생이기 때문이고, 세겜과의 살육에서 앞장서서 차갑고 냉혹한 성품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 곡물과 함께 그들의 돈까지 도로 넣게 한다. 이것은 이후 이집트로 돌아오는데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많은 갈등의 요소가 되게 한다.


[정리] 요셉은 왜 우는가?

1. 그들의 진실함을 보이게 하기 위해

2.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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