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0. 욥 - 고난의 산 증인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0. 1. 20. 21:30
욥기 1,2장의 욥의 모습

욥기 3장 낭독

0123


 

제 8과 욥 - 고난의 산 증인

[욥]

* 욥기는 경건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던 욥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처절한 고통을 당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1,2장) 그후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이 욥의 고난의 원인에 대해 욥과 격렬한 논쟁의 내용이 길게 다뤄지고 있다.


* 욥기의 구성

․ 1,2장 - 욥의 고난, 사단의 공격, 세친구도착

․ 3장 - 욥의 초기 독백

․ 4-27장 - 욥과 친구들 간의 총 3회의 변론

․ 28장 - 지혜에 대한 찬양

․ 29-31장 - 욥의 후기 독백

․ 32-37장 - 엘리후의 변론

․ 38장-42:6 - 욥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

․ 42:7-17 - 욥의 회복


욥기 1-2장, 42:7이하는 산문형식

욥기 3장-42:6 운문형식(시문)


산문부분 - 하나님을 여호와로

운문부분 - 하나님을 엘, 엘로하, 샤다이로 표기


시가서(詩歌書) -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지혜문헌 - 욥기 잠언 전도서


* 욥의 소개

(욥 1:1)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 1:1) 『우스라는 곳에 욥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흠이 없고 정직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었다.』

․ 우스 -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가나안 북동부의 ‘바산’이나 사해의 남동쪽 ‘에돔’이나 아라비아 사막북부지역 가운데 한곳으로 추정하며, 욥기에 나오는 풍습이나 어휘, 지리적 언급, 역사적 배경으로 볼때는 아라비아 사막 북부지역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 욥의 묘사 가운데 저자는 외형적 묘사는 없고 그의 내면적 묘사만 그리고 있다.

→ 인간에게 무엇이 중요한지와 하나님이 인간을 평가하시는 척도를 반영하는 것

․ 온전한(순전한) - ‘탐’(מת)은 ‘완수하다, 마치다’라는 동사 ‘타맘’(ממת)에서 유래한 ‘완전한, 온전한’의 의미

→ 도덕적으로 온전하다는 의미로,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고매한 인격, 도덕적 자질이 훌륭함을 강조하는 것.

→ 노아(창6:9), 아브라함(창17:1), 야곱(창25:27), 요셉(창47:18)과 같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힘쓴 고결한 사람들의 인품을 나타내는 데도 사용되었다.

․ 정직하여 - ‘야솨르’(רשׁי)는 ‘곧다, 바르다’에서 나온 말로 ‘휘어지지 않은, 일직선을 이루는’ 의미

→ 욥의 인품의 강직함을 표현한 말로 욥이 생활 속에서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었음을 강조한다.

․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

→ 온전함과 정직함은 인간과의 수평적 관계에 있어서 욥이 인격적으로 완전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즉 욥은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 모두에서 흠을 찾기 힘든 높은 덕성을 지닌 모범적인 인간의 전형이다.


(욥 1:2) 『그에게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태어나니라』

(욥 1:2) 『그에게는 아들 일곱과 딸 셋이 있고,』

→ 가족관계, 자녀의 수를 알려주는 동시에 완전한 수인 7과 3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낸다.


(욥 1:3) 『그의 소유물은 양이 칠천 마리요 낙타가 삼천 마리요 소가 오백 마리요 암나귀가 오백 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

(욥 1:3) 『양이 칠천 마리, 낙타가 삼천 마리, 겨릿소가 오백 쌍, 암나귀가 오백 마리나 있고, 종도 아주 많이 있었다. 그는 동방에서 으뜸가는 부자였다.』

→ 여기에도 나오는 7과 3은 하나님의 축복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 ‘겨리’는 두 마리의 소를 묶어 멍에를 메운 후 밭을 갈게 하던 고대근동의 풍습이다. 5는 피조물의 숫자인 4에서 하나님의 숫자인 1을 더한 숫자로 피조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한다.

→ ‘많다’ 앞에는 ‘매우’라는 말이 번역되지 않았다. 종들이 엄청나게 많았음을 강조한다.

․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 →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동쪽을 가리키고, 경제적으로만 아니라 내면의 인격적 위대함까지 포함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욥 1:4-5) 『[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 1:4-5) 『[4] 그의 아들들은 저마다 생일이 되면, 돌아가면서 저희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세 누이들도 오라고 해서 함께 음식을 먹곤 하였다. [5] 잔치가 끝나는 다음날이면, 욥은 으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려고, 자식의 수대로 일일이 번제를 드렸다. 자식 가운데서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잔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늘 그렇게 하였다. 욥은 모든 일에 늘 이렇게 신중하였다. 』

․ 욥의 경건함의 실례

→ 당시 근동의 지혜문학은 인과응보, 권선징악 등 개인의 행위와 도덕성, 책임과 결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나 욥기는 그것을 넘어 주변사람들에 대한 연대적인 책임을 지는 욥의 행동을 강조한다.

․ 욥의 행사가 항사 이러하였더라 - 한결같이 자신과 자녀들의 경건을 지켜왔음을 강조하다.


* 욥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과 사단간의 첫 번째 천상회의(1:6-12)

* 욥의 첫 번째 재앙과 승리(1:13-22)

◎ 탐구 I - 고난의 아픔

(욥 1:14-15) 『[14] 사환이 욥에게 와서 아뢰되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데 [15] 스바 사람이 갑자기 이르러 그것들을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4-15) 『[14] 일꾼 하나가 욥에게 달려와서, 다급하게 말하였다. "우리가 소를 몰아 밭을 갈고, 나귀들은 그 근처에서 풀을 뜯고 있는데, [15] 스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가축들을 빼앗아 가고, 종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욥 1:16)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6) 『이 일꾼이 아직 말을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하늘에서 하나님의 불이 떨어져서, 양 떼와 목동들을 살라 버렸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


(욥 1:17)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갈대아 사람이 세 무리를 지어 갑자기 낙타에게 달려들어 그것을 빼앗으며 칼로 종들을 죽였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욥 1:17)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갈대아 사람 세 무리가 갑자기 낙타 떼에게 달려들어서 모두 끌어가고, 종들이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욥 1:18-19) 『[18]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아뢰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들의 맏아들의 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거친 들에서 큰 바람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청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한지라』

(욥 1:18-19) 『[18] 이 사람도 아직 말을 다 마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서 말하였다. "주인 어른의 아드님과 따님들이 큰 아드님 댁에서 한창 음식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는데, [19] 갑자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와서, 그 집 네 모퉁이를 내리쳤고, 집이 무너졌습니다. 그 때에 젊은 사람들이 그 속에 깔려서, 모두 죽었습니다. 저 혼자만 겨우 살아 남아서, 주인 어른께 이렇게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

→ 첫 번째 재앙으로 소유와 자녀의 연속적인 망실


* 욥의 자세

(욥 1:20-22) 『[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 1:20-22) 『[20] 이 때에 욥은 일어나 슬퍼하며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민 다음에,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면서, [21] 이렇게 말하였다. "모태에서 빈 손으로 태어났으니, 죽을 때에도 빈 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요, 가져 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22]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죄를 짓지 않았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20절 : 슬퍼할 겨를도 없이 동시에 일어난 상황이다. 상황을 보고 받고 욥은 일어나 슬픔과 고통의 표현과 함께 경배한다. 재난을 당한 직후 취한 욥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에게 내려진 까닭모를 재앙이 견디기 힘든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있는 줄 알고 존중하려는 신앙고백적 행위로, 확실하게 하나님 중심적인 욥의 성숙한 신앙을 볼 수 있다.

21절 : 재난에 대한 욥의 ‘행동’에 이어 ‘심적 반응’ 즉 마음에서 우러나는 독백을 볼 수 있다. 욥은 인생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드리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는 성숙한 신앙고백이다.

22절 : 범죄하지 않다. - 욥은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모진 재난을 당하지만 결코 죄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간결하게 설명한다.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다. - ‘티플라’(הלפת) ‘어리석은 것, 불경건함, 경솔함’으로 도덕적으로 저속한 행위를 말한다. ‘원망하지’는 ‘나탄’(ןתנ)으로 ‘주다’로 부정어 ‘로’(אל)와 연결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결코 불경건함을 주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결코 저속한 행위를 드러내지 않았다’

→ 1절 욥의 소개와 8절 하나님의 소개의 진술이 분명한 사실임을 확증하는 내용


* 욥을 대상으로 한 하나님과 사단간의 두번째 천상회의(2:1-6)

* 욥의 두번째 재앙과 승리(2:7-10)

(욥 2:7-8) 『[7] 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욥 2:7-8) 『[7] 사탄은 주 앞에서 물러나 곧 욥을 쳐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에까지 악성 종기가 나서 고생하게 하였다. [8] 그래서 욥은 잿더미에 앉아서, 옹기 조각을 가지고 자기 몸을 긁고 있었다.』

․ 종기(악창) - 피부가 견딜 수 없이 가렵고(2:8), 가죽이 합창되었다가 터지고(7:5), 호흡할 때마다 악취가 나고(19:17), 몸이 극도로 수척해지며(19:20,30), 가죽은 검어져서 떨어지고 뼈는 열기로 인하여 타는 듯하고(30:30), 갈비가 거의 떨어질 듯하고(30:17,30), 잠조차 잘 수 없는 극도의 고통(7:4,13-15; 30:17)

․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 극심한 고통으로 괴로움

․ 격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문둥병은 아니고 종기나 궤양성 피부병으로 추정

․ 욥은 기와 조각으로 긁는다.- 병에 대한 욥의 반응

․ 욥이 재 가운데 앉았다. - 재 가운데 앉은 것은 비탄과 굴욕의 상징적 표현, 슬픔과 수치심, 자괴감으로 몸서리치는 욥의 상태


(욥 2:9-10) 『[9]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니라』

(욥 2:9-10) 『[9] 그러자 아내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래도 당신은 여전히 신실함을 지킬 겁니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0] 그러나 욥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당신까지도 어리석은 여자들처럼 말하는구려. 우리가 누리는 복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 어찌 재앙이라고 해서 못 받는다 하겠소?" 이렇게 하여, 욥은 이 모든 어려움을 당하고서도, 말로 죄를 짓지 않았다.』

․ 아내는 모든 재앙을 같이 보았다. 그러나 그는 욥과 달리 과격한 발언을 한다.

․ 첫째 재앙은 물리적 재난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고, 두 번째 재앙은 사회적 인간적 소외를 야기하는 재앙이기에 그 고난의 강도가 더욱 크게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욥의 아내의 탄식조의 말은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좌절감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 당시 근동사회에서 자식과 재산을 모두 잃게 한 자연재해나 몸에 심한 피부병이 발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이해하고 있었다. 곧 이런 자는 신앙과는 무관한 자로 여겨졌다. ‘당신이 하나님을 배신한 죄인임을 사람들 모두가 아는데 신앙을 지키겠다고 말하는 것은 쓸데 없는 고집에 불과하다’는 의미.

→ 두가지 명령 : 욕하라, 죽어라.  아내는 당시 보편적 사람과 같이 기계적 인과응보론을 가지고 있었고 신앙을 현세적 축복과 연관시켜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사단의 말에 동조하는 것

(욥 1: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 1:11) 『이제라도 주께서 손을 드셔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면, 그는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할 것입니다."』


(욥 2: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 2:5) 『이제라도 주께서 손을 들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시면, 그는 당장 주님 앞에서 주님을 저주하고 말 것입니다!"』

→ 곧 아내의 말은 모르는 중에 사단의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역할을 감당하는 듯하다.

cf. 아담도 아내의 말을 듣고, 아브람도 아내의 말을 듣는다.


10절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 어리석다 - ‘나발’(לבנ)은 지적으로 어리석음이 아니라 ‘도덕적이고 신앙적인 면에서 결핍상태’를 지적하는 단어. 곧 신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발언임을 지적한다.

→ 재난에 대해 체념하는 말이 아닌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고 다시금 회복케 하실 것을 구하는 욥의 소망이 담겨진 표현이다.

→ 욥은 단순히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경외하는 바른 도리가 무엇인지 보이며 유혹과 요구에도 이겨낸다.


[욥의 회복과 성장]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 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 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헤아려 본 슬픔』C S 루이스(46쪽)


* 인간고난의 유형 - 재산, 가족, 질병


* 욥기를 읽는데 어려운 부분들

1. 욥의 두가지 상반된 모습

- 1,2장은 끝까지 신실한 모습.

(욥 1: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 3장 이후는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부인하고, 자신의 고통의 문제로 하나님께 항변한다.

⇒ 욥이 제기한 인간의 고통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은 반문으로 대답하신다. 의인의 고통에 대해 언급은 없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조화와 섭리만 이야기한다. 그런데 욥은 그 말씀가운데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한다.


2. 하나님은 욥을 칭찬하는가 질책하는가?

하나님의 반문에는 꾸중하는 것같지만 모든 것을 마친 뒤에는 하나님이 더 정확히 말했다고 칭찬한다.


3. 욥의 논쟁은 필요한가? 독자들은 단순한 반복이나 인과응보에 대한 논쟁으로 보고 결론부분으로 가려한다. 그러나 욥은 논쟁과정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4. 28장의 지혜시는 이전과는 상반된 조용하고 깊은 묵상의 시로 자연스런 흐름을 방해한다. 엘리후의 갑작스런 등장은 무엇인가?


5. 욥기는 기존의 인과응보의 논리를 파한다. 인과응보는 우리의 실존의 모습과는 다름을 강조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의 모습은 다시 인과응보적 모습을 보인다.


* 욥기 해석의 걸림돌 이슈

1. 서로 다른 욥의 모습(1,2장 vs 3장)

2. 욥과 세 친구들 사이의 논쟁이 욥기 전체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3-29장)

   → 신앙의 성숙, 신학적 지식의 확대

3. 욥기 결론부분의 인과응보적인 결말


※ 욥이 다르다? 1,2장에서 순종하는 욥이 저항하는 욥으로 변하는가? 3장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정한다.

- 욥은 생일저주를 하며 항변하는 욥으로 바뀐다.

(욥 3:11-12) 『[11]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12]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욥 3:11-12) 『[11]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어머니 배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숨이 끊어지지 않았던가? [12] 어찌하여 나를 무릎으로 받았으며, 어찌하여 어머니가 나를 품에 안고 젖을 물렸던가?』

⇒ 욥의 서로 다른 모습은 욥의 고통에 대한 자연스러운 진행과정


* 사단의 욥고발의 핵심-울타리

1. 사단의 첫째 고발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욥 1: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울타리로 감싸 주시고, 그가 하는 일이면 무엇에나 복을 주셔서, 그의 소유를 온 땅에 넘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전치사 ‘브아드’(דעב) : ~을 대표하여, ~뒤에, ~둘레에

- 수크(ךושׂ) : 울타리를 둘러치다, ‘울타리’-비나 바람, 맹수로부터 가축이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담이다.

→ 보호대상 - 그 자신, 그 집(가족), 그의 소유

→ 욥의 재산과 가족이 외부의 위협에 노출된 상태임에도 안전을 유지하며 소유한 것은 하나님이 울타리를 쳐주고 보호한 덕분이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 사단은 이것에 해를 가함으로 욥을 곤경에 빠뜨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하려 한다.

⇒ 주께서 그의 주변에, 그의 집 주변에, 그의 모든 소유물 둘레에 울타리를 쳐 놓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이 보호장벽을 겹겹으로 하셨기에 하나님을 믿는 것 아닙니까?

⇒ 재산과 자녀를 치게 허락하시다.


2. 사단의 둘째 고발

(욥 2:4)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의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욥 2:4) 『사탄이 주께 아뢰었다. "가죽은 가죽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지키는 일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립니다.』

- 전치사 ‘브아드’(דעב) - 가죽 둘레에 가죽,

→ 하나님의 보호의 장막이 욥의 육체와 영을 두르고 있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까? 사람은 그것으로 다시 자신을 두르려 할것입니다.

⇒ 곧 욥은 점점 1) 물질과 가족의 울타리 파괴되고, 2) 자신의 생명의 울타리가 무너진다.


* 욥의 울타리

※ 곧 욥의 고통의 본질은 물질과 가족과 건강을 잃어서가 아니라 ‘정체성의 울타리를 잃어가면서’ 고통스러워한다, 자신의 경계를 무너지면서 그의 삶의 무질서와 혼돈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이 시작된다.

- 1,2장에서 욥은 최고의 삶이었다. 재산과 자녀와 사회적 지위 속에서 최고의 조화를 보인다. 그런데 점점 그 울타리가 무너진다.

- 욥의 신앙과 경건의 울타리- 1,2장이 끝나면서도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는 울타리이다. 그러나 3장에서 생일저주와 창조세계의 부정은 마지막 남은 신앙과 경건의 울타리도 무너지는 것이다.

- 더 이상 경건의 언어가 나오지 않고 탄식의 언어로 바뀌고, 창조세계의 부정은 혼돈의 폭풍에 휩싸인다.

- 3장은 어두움과 두려움을 말한다.

(욥 3:25)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욥 3:25) 『마침내 그렇게도 두려워하던 일이 밀어닥치고, 그렇게도 무서워하던 일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 3장에서 욥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것은?

(욥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 3:26)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온다!』

→ 두려움 ‘로게즈’(ונר) - 폭풍, 혼돈 → 남은 것은 오직 ‘혼돈’뿐


⇒ 울타리 파괴의 결과와 이후?

∵ 경계 파괴의 경험이 욥에게는 고통의 시작이지만 반대로 경계파괴는 새로운 경계와 넓은 지평으로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


※ 지루한 인과응보 교리의 반복?(3-29장)

- 지나치기 쉬운 친구와의 논쟁에는 과정을 통해 욥의 고통 속에서 성숙하는 모습을 본다.

- 논쟁의 1주기(4-14장) 2주기(15-21장) 3주기(22-27장) 지혜찬가(28장) 욥의 마지막독백(탄원, 29-31장)

- 세친구 -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

(욥 2:11)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 논쟁가운데 욥의 신앙의 성숙을 보여주는 3가지 측면

1) 죽음에 대한 욥의 탄식이 구원자와 생명에 대한 소망의 선포로 바뀜

- 죽음에 대한 바램(1주기)

․ 엘리바스와 대화 - 죽음이 그의 소원같다. (3장에서는 스올에 가고싶다고 했다)

(욥 6:8-10) 『[8] 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 6:8-10) 『[8] 누가 내 소망을 이루어 줄까? 하나님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면 , [9] 하나님이 나를 부수시고 손을 들어 나를 깨뜨려 주시면, [10] 그것이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고,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 속에서도 그것이 오히려 내게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


(욥 7:15-16) 『[15]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16]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욥 7:15-16) 『[15] 차라리 숨이라도 막혀 버리면 좋겠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살아 있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16] 나는 이제 사는 것이 지겹습니다. 영원히 살 것도 아닌데, 제발, 나를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 나날이 허무할 따름입니다.』


․  빌닷과의 대화에서 스올에 가기전 구원을 간구(욥의 언어가 변한다)

(욥 10:20-22)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욥 10:20-22) 『[20] 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를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게 남은 이 기간만이라도, 내가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21] 어둡고 캄캄한 땅으로 내려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로 가기 전에 잠시 쉬게 해 주십시오. [22] 그 땅은 흑암처럼 캄캄하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서 아무런 질서도 없고, 빛이 있다 해도 흑암과 같을 뿐입니다.』


2) 탄식과 항변 가운데서 소망의 외침

(욥 9:28)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욥 9:28) 『내가 겪는 이 모든 고통이 다만 두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를 죄 없다고 여기지 않으실 것임을 압니다.


(욥 9: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욥 9:34)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나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


3) 인과응보에 대한 욥의 견해도 달라진다.

- 엘리바스와 답변에서 욥은 인과응보설에 기원한 항변을 하고 있다.

(욥 6:5-7) 『[5]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욥 6:5-7) 『[5] 풀이 있는데 나귀가 울겠느냐? 꼴이 있는데 소가 울겠느냐? [6] 싱거운 음식을 양념도 치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느냐? [7] 그런 것들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냄새조차도 맡기가 싫다.』


(욥 7:20-21) 『[20]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 [21] 주께서 어찌하여 내 허물을 사하여 주지 아니하시며 내 죄악을 제거하여 버리지 아니하시나이까 내가 이제 흙에 누우리니 주께서 나를 애써 찾으실지라도 내가 남아 있지 아니하리이다』

(욥 7:20-21) 『[20] 사람을 살피시는 주님, 내가 죄를 지었다고 하여 주께서 무슨 해라도 입으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주의 과녁으로 삼으십니까? 어찌하여 나를 주의 짐으로 생각하십니까? [21] 어찌하여 주께서는 내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시고, 내 죄악을 용서해 주지 않으십니까? 이제 내가 숨져 흙 속에 누우면, 주께서 아무리 저를 찾으신다 해도, 나는 이미 없는 몸이 아닙니까?』


- 빌닷과의 답변에서는 이미 인과응보를 떠나서 하나님의 자유하심을 언급하기 시작한다.

(욥 9:5-13)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2]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하고 누가 물을 수 있으랴 [13]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지 아니하시나니 라합을 돕는 자들이 그 밑에 굴복하겠거든』

(욥 9:5-13)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을 옮기시며, 진노하셔서 산을 뒤집어엎기도 하신다. [6] 지진을 일으키시어 땅을 그 밑뿌리에서 흔드시고, 땅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을 흔드신다. [7] 해에게 명령하시어 뜨지 못하게도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어 빛을 내지 못하게도 하신다. [8] 어느 누구에게 도움을 받지도 않고 하늘을 펼치시며, 바다 괴물의 등을 짓밟으신다. [9] 북두칠성과 삼성을 만드시고,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시며, [10]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하시며,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11] 하나님이 내 곁을 지나가신다 해도 볼 수 없으며, 내 앞에서 걸으신다 해도 알 수 없다. [12] 그가 가져 가신다면 누가 도로 찾을 수 있으며, 누가 감히 그에게 왜 그러시느냐고 할 수 있겠느냐? [13] 하나님이 진노를 풀지 아니하시면 라합을 돕는 무리도 무릎을 끊는데,』


- 소발과의 답변에서는 욥의 살고자 하는 소망이 나온다.

(욥 14:13-17) 『[13]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16]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17]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욥 14:13-17) 『[13] 차라리 나를 스올에 감추어 두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숨겨 주시고, 기한을 정해 두셨다가 뒷날에 다시 기억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14] 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5] 그 때에 주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지금은 주께서 내 모든 걸음걸음을 세고 계시지만 그 때에는 내 죄를 살피지 않으실 것입니다. [17] 주께서는 내 허물을 자루에 넣어 봉하시고, 내 잘못을 덮어 주실 것입니다.』


4) 소망의 정도는 확대된다.

- 판결의 변호자를 요청한다.

(욥 9: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욥 9:34)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나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

- 하늘에 있는 증인을 바람

(욥 16: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욥 16:19) 『하늘에 내 증인이 계시고, 높은 곳에 내 변호인이 계신다!』

- 나의 보증과 서약자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

(욥 17: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욥 17:3) 『주님, 주님께서 친히 내 보증이 되어 주십시오. 내 보증이 되실 분은 주님 밖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 구원자에 대한 소망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욥 19:25) 『그러나 나는 확신한다. 내 구원자가 살아 계신다. 나를 돌보시는 그가 땅 위에 우뚝 서실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 논쟁의 걸림돌 이슈를 풀수 있는 열쇠

- 친구들의 하나님 이해가 관습적인 것에 매여 있는 반면 욥의 하나님에 대한 언어(신학, 고백)는 확장되고 심화되어 간다.

- 문제의 핵심 - 실상은 논쟁은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으며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는 것이 문제핵심이다.

- 하나님을 경외하기 - 엘리바스의 공격

(욥 15:4)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그만두어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욥 15:4) 『정말 너야말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내던져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뉘우치며 기도하는 일조차도 팽겨쳐 버리는구나.』

(욥 15:4공동번역) 『자네는 신앙심 같은 것은 아예 부숴 버릴 작정인가? 하느님 앞에서 반성하는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 기존종교관을 고수하려는 친구 vs 그것을 뿌리채 흔드는 욥의 고백 간의 논쟁

→ 기존의 인과응보로는 실존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강조한다. 기존의 신앙으로는 적절한 표현을 찾을 수 없어 새로운 이해와 표현을 욥은 찾고 있다. 기존의 것은 구역질나는 것이며, 나를 위로한다는 너희들은 언어는 구역질난다 라고 하는 것이다.

(욥 6:6-7) 『[6]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 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욥 6:6-7) 『[6] 싱거운 음식을 양념도 치지 않고 먹을 수 있겠느냐? [7] 그런 것들은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냄새조차도 맡기가 싫다.


- 친구들에 대한 원망 (6:14-23)

→ 친구들에게 새로운 언어를 요구(6:24-26)

(욥 6:24-26) 『[24]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25] 옳은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러운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 [26]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

(욥 6:24-26) 『[24] 어디, 알아듣게 말 좀 해 보아라. 내가 귀기울여 듣겠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25] 바른 말은 힘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너희는 정말 무엇을 책망하는 것이냐? [26] 너희는 남의 말 고뚜리나 잡으려는 것이 아니냐?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말이란, 바람과 같을 뿐이 아니냐?』

→ 자신의 순전함을 강조(6:30)

(욥 6:30)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속임을 분간하지 못하랴』

(욥 6:30) 『내가 혀를 놀려서, 옳지 않은 말을 한 일이라도 있느냐? 내가 입을 벌려서, 분별없이 떠든 일이라도 있느냐?』

→ 그러기에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욥 7:11) 『그런즉 내가 내 입을 금하지 아니하고 내 영혼의 아픔 때문에 말하며 내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불평하리이다』

(욥 7:11)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습니다. 분하고 괴로워서,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 법정소송으로 나아간다.

- 새로운 언어를 찾으려는 욥의 노력은 하나님과 법정소송을 원할 정도로 나아간다.

(욥 9:32-33) 『[32]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 내가 그에게 대답할 수 없으며 함께 들어가 재판을 할 수도 없고 [33]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욥 9:32-33) 『[32] 하나님이 나와 같은 사람이기만 하여도 내가 그분께 말을 할 수 있으련만, 함께 법정에 서서 이 논쟁을 끝낼 수 있으련만. [33] 우리 둘 사이를 중재할 사람이 없고, 하나님과 나 사이를 판결해 줄 이가 없구나!』

→ 막대기가 떠나고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내가 이렇게 심판을 받을 만큼 죄인이 아니란 것을 말하겠다.

(욥 9:34-35) 『[34] 주께서 그의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그의 위엄이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35]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니라』

(욥 9:34-35) 『[34] 내게 소원이 있다면, 내가 더 두려워 떨지 않도록, 하나님이 채찍을 거두시는 것, [35] 그렇게 되면 나는 두려움 없이 말하겠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그럴 수가 없는 줄을 알고 있다.』

→ 이후 10장에서는 하나님을 감히 피고로 제소하는 법정공방이 이어진다. 이제는 말하겠다고..

(욥 10: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욥 10:1) 『산다는 것이 이렇게 괴로우니, 나는 이제 원통함을 참지 않고 다 털어놓고, 내 영혼의 괴로움을 다 말하겠다.』

→ 하나님은 대답하소서..

(욥 13: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욥 13:22) 『하나님,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내가 먼저 말씀드리게 해 주시고, 주께서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욥 14: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 14:15) 『그 때에 주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 욥의 고통에 대한 변호장을 제시한다. 자신과 의인들이 왜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듣고 싶다.

(욥 31:35-37)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욥 31:35-37) 『[35] 내가 한 이 변명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까? 맹세코 나는 사실대로만 말하였다.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시는 대답을 듣고 싶다. [36] 내 원수가 나를 고발하면서, 뭐라고 말하였지? 내가 저지른 죄과를 기록한 소송장이라도 있어서, 내가 읽어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어깨에 메고 다니고, 그것을 왕관처럼 머리에 얹고 다니겠다. [37] 나는, 내가 한 모든 일을 그분께 낱낱이 말씀드리고 나서, 그분 앞에 떳떳이 서겠다.』


⇒ 후에 욥이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하나님의 언설(38-39장, 40-41장)을 다 듣고 나서 욥의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42:1-6) 특히 4절에서 법정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4)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내가 물을 터이니, 내게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 욥과 세 친구와의 논쟁은 필수적이었다.

⇒ 지루한 반복의 원인은 관습적 반복과 실존적 경험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친구들은 관습적 반복 인과응보적인 표현을 계속 되뇌이지만 욥은 자신의 모든 울타리가 허물어진 상황 속에서 실존적인 체험속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다. 곧 기존의 울타리 속에 갖혀 있는 친구들과 울타리가 무너지고 새로운 울타리를 찾는 욥은 서로 평행선일 수밖에 없다.


 

[욥의 삶을 향한 죽음의 의미, 탄식과 창조-구원]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 Rashi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받아들여라.”

Rashi - 프랑스의 유대계 성서주석학자


3장에 나오는 욥 발언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바람

1연 1-10절 : 태어난 날과 잉태된 밤에 대한 저주(~했더라면 15번)

2연 11-19절 :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한 묘사(어찌하여~)

3연 20-26절 :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


* 탄식

어찌하여(3:11-12) 히브리어 - 람마 마두아

언제까지 - 시편의 탄식 의미를 지닌 대표적인 언어

시편 150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개인탄식시

→ 우리 삶이 탄식과 고통이 많음을 드러낸다.

→ 탄식의 요소 : 자기 곤경에 대한 탄식, 구원에 대한 청원

시편에서 탄식은 멀리 있는 하나님을 부른다. vs 욥기에서 탄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고통을 말한다.

욥은 구원에 대한 청원이 아닌 죽음에 대한 청원이 나온다.

* 탄식적인 구절과 죽음을 통한 바람-고난의 종결과 고통없는 안식

(욥 3:26)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욥 3:26)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온다!』


* 창조

시편에서 창조는 찬양의 모티브 vs 욥기에서 창조는 탄식의 모티브

하나님의 힘 때문에 뭐를 말할 수 없다. 잠시 나를 떠나달라..

․ 욥-자기 태어난 날을 흑암이 되라 ↔ 하나님의 빛이 있으라..

․ 빛이 있음으로 질서가 잡히지만 욥은 그것을 반대가 되라고..

→ 우주적인 질서에 대한 도전

→ 욥의 발언에서는 창조의 주제가 탄식의 기초가 된다.


* 죽음에 대한 이해

․ 가장 인상적인 구절 : 종이 주인들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욥 3:19) 『거기서는 작은 자와 큰 자가 함께 있고 종이 상전에게서 놓이느니라

(욥 3:19) 『그 곳은 낮은 자와 높은 자의 구별이 없고, 종까지도 주인에게서 자유를 얻는 곳인데!』

→ 죽음으로부터 얻는 안식은 주인으로부터 종이 해방되는 것..

(욥 1: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 스올의 인식과정

․ 3장에서 스올은 안식의 처소

․ 10:18-20에서 스올은 가면 돌아오지 못할 땅, 죽음과 흑암의 그늘이 가득한 땅, 질서가 없고 빛이 비출지라도 밤과 같은 땅

․ 14:13-15 - 잠시 쉬었다 나오는 은익의 장소.

(욥 10:18-20)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욥 10:18-20) 『[18] 주께서 저를 이렇게 할 것이라면 왜 나를 모태에서 살아 나오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19] 생기지도 않은 사람처럼, 모태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내려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20] 내가 살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를 좀 혼자 있게 내버려 두십시오. 내게 남은 이 기간만이라도, 내가 잠시라도 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욥 14:13-15) 『[13]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14] 장정이라도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모든 고난의 날 동안을 참으면서 풀려나기를 기다리겠나이다 [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 14:13-15) 『[13] 차라리 나를 스올에 감추어 두실 수는 없으십니까? 주의 진노가 가실 때까지만이라도 나를 숨겨 주시고, 기한을 정해 두셨다가 뒷날에 다시 기억해 주실 수는 없습니까? [14] 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좋은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나가기까지 기다리겠습니다. [15] 그 때에 주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 이후 친구들간의 대화에서는?

․ 친구들과의 대화는 평행선을 긋는다. 친구들은 행위에 대한 결과를 통해 회개를 요구하고, 회개하면 미래를 약속한다. 회개하지 않은 악인의 저주를 강조하는 친구들과의 대화가 계속된다.

친구들과의 대화 이후에는

29장 - 욥이 과거의 회상

30장 - 현실묘사(탄식의 언어)

31장 - 자신이 죄가 없다는 ‘무죄맹세’

*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욥이 원하는 것은 욥의 발언의 수신자를 하나님이며 하나님께 질문하는 것이다. 욥의 바람은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을 원한다. 전능자에게 말한 것이다,

․ 10:2 하나님과 대면하며 왜 다투시는지?

(욥 10: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10:2) 『내가 하나님께 아뢰겠다. 나를 죄인 취급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로 나 같은 자와 다투시는지 알려주십시오.』

․ 13:4 친구들과는 소용없다.

(욥 13:4) 『너희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자요 다 쓸모 없는 의원이니라』

(욥 13:4) 『너희는 무식을 거짓말로 때우는 사람들이다. 너희는 모두가 돌팔이 의사나 다름없다.』

․ 13:22 부르면 대답하겠다.지금은 하나님을 불러도 대답지 않는다.

(욥 13:22)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내가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욥 13:22) 『하나님,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내가 먼저 말씀드리게 해 주시고, 주께서 내게 대답해 주십시오.』

→ 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대면이고 관계회복이다.

(욥 14:1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욥 14:15) 『그 때에 주께서 나를 불러 주시면, 내가 대답하겠습니다. 주께서도 손수 지으신 나를 보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욥 23:3-7) 『[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 [4] 어찌하면 그 앞에서 내가 호소하며 변론할 말을 내 입에 채우고 [5]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며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랴 [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 거기서는 정직한 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원히 벗어나리라』

(욥 23:3-7) 『[3]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4]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닿도록 변론하련만, [5] 그러면 그분은 무슨 말로 내게 대답하실까? 내게 어떻게 대답하실까? [6] 하나님이 힘으로 나를 억누르실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씀을 드릴 때에, 귀를 기울여 들어 주실 것이다. [7] 내게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하나님께 떳떳하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말을 다 들으시고 나서는, 단호하게 무죄를 선언하실 것이다.』


(욥 31:35-37) 『[35]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나를 고발하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고소장을 쓰게 하라 [36] 내가 그것을 어깨에 메기도 하고 왕관처럼 머리에 쓰기도 하리라 [37] 내 걸음의 수효를 그에게 알리고 왕족처럼 그를 가까이 하였으리라』

(욥 31:35-37) 『[35] 내가 한 이 변명을 들어줄 사람이 없을까? 맹세코 나는 사실대로만 말하였다. 이제는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시는 대답을 듣고 싶다. [36] 내 원수가 나를 고발하면서, 뭐라고 말하였지? 내가 저지른 죄과를 기록한 소송장이라도 있어서, 내가 읽어 볼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어깨에 메고 다니고, 그것을 왕관처럼 머리에 얹고 다니겠다. [37] 나는, 내가 한 모든 일을 그분께 낱낱이 말씀드리고 나서, 그분 앞에 떳떳이 서겠다.』


엘리후(32-37)의 고난의 목적 : 돌이키게 하고 하나님을 향하게 한다.


Q. 하나님에게 창조에 관한 대답은?

→ 욥의 구원이 선포되어야할 순서에 창조가 기록되어 있다. 욥은 구원의 위로도 약속도 받지 못한다. 고통에 대한 답변도 없다. 하나님의 질문만 받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질문을 통해 욥을 질책하거나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끌어내리지 않는다. 지금 욥은 육체적으로는 재위에 있으나 그의 눈에 펼쳐진 것은 창조의 모든 모습 파노라마를 보고 있다.


* 욥 38:1-42:6의 신학 - 창조에서 구원으로

․ 죽기만을 원하는 욥에게 하나님은 창조의 세계를 보이시고,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보이시면서 너를 지은 것처럼 이것들도 내가 지었다고 하신다. 새롭게 체험한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5)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 이제 자신은 새롭게 보게 된다. 자기의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고..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욥 42:6)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 기존의 구속사 시각에서 탈피해 있는 욥기는 오히려 창조적 지평 위에서 그 구원의 의미를 강화시키고 있다.


* 하나님의 응답의미

1) 말씀하셨다는 “사실”(that)

2) 말씀하신 “내용”(what)

→ 동문서답같다.

욥은 자신의 실존을 물으나 자연적 모습인 창조를 말한다.

욥은 윤리적인 질문을 하는데 하나님은 물리적인 대답을 하신다.


* 38장 발언 도입부<주께서 욥에게 대답하시다>

(욥 38: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욥 38:1) 『그 때에 주께서 욥에게,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서 대답하셨다.』


* 38장 도입부의 3가지 측면

1. 하나님의 출현이 하나님의 이름과 함께 언급된다.-여호와 야훼

야훼하나님의 신학적인 정체성이 인격적인 정체성 안에서 회복됨

→ 대화의 현장으로 들어오신다.

2. 욥에게 말씀하시기를 - 욥에게 직접 말씀하신다.

3.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신다. - 하나님을 직접 만났다는 의미

⇒ 욥의 발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과의 대면성취

⇒ 서막의 지상과 천상의 분리가 깨어진다.

⇒ 38장부터 욥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대화(발언)의 주체가 된다. 서로 실제적으로 대화하는 상대자가 된다.


* (욥 38: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욥 38:2)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지혜문학에서의 ‘계획 뜻’의 의미 - 자연과 인간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성이 있는 질서


(욥 38: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욥 38:3)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 이전까지 욥이 질문하고 대답을 요구했는데 반대가 되었다.


* 창조세계 발언에 대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사항(수사의문문)

1. 네가 이것을 ‘할 수 있느냐?’  ⇒ 아닙니다.

2. 네가 아느냐? ⇒ 모릅니다.

* 38장 - 첫 번째 발언의 전반부의 내용

1. 땅의 기초놓기와 바다의 경계정하기(38:4-11)

2. 아침과 아침노을(38:12-15)

3. 창조세계의 거대함(38:16-21)

4. 하늘의 현상들 : 기후와 천제(38:22-38)


* 하나님의 언설(노만 하벨)

․ 창조 세계에 대한 이해 - 첫 번째 신언설-욥 38:1-40:5

․ 세상 섭리에 대한 이해 - 두 번째 신언설 욥 40:6-42:6

→ 두 번째 신언설(40:7-41:34)

   A. 서론(40:7-8)      B. 도전(40:9-14)

   C. 베헤못(40:15-24)  D. 리워야단(41:1-34)

→ 욥의 두 번째 응답(42:1-42:6)

   A. 서론(42:1)  B. 깨달음(42:2-6)


* 하나님의 첫 번째 발언(전반부 38:1-38, 후반부 38:39-39:30)

․ 동물 다섯 쌍(38:39-39:30)

1) 사자와 까마귀 2) 산염소와 암사슴 3) 들나귀와 야생황소 4) 타조와 전쟁말 5) 매와 독수리

→ 고대사상에서 공통점 - 고대사회,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왕의 사냥동물이다. 이것은 왕이 이 동물을 잡음으로 왕의 권능을 드러내는 제의적 의미가 있었다. 곧 동물의 주인이라는 것.. 동물을 억제할 수 있는 위력이 있는 자라는 의미..

→ 왕이 동물의 주로서 나타난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와 반대되는 곳에 살아가는 존재이며, 이 동물들을 보호하시고 돌보시고 길들이시는 분임을 알게 한다.

→ 하나님의 손길은 인간만의 세계를 넘어 사람이 없는 세계도 돌보신다는 의미

* 베헤못과 리워야단

․ 베헤못은 실재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피조물중에 으뜸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상징이다. 실제 세상에서 가장 으뜸의 창조는 인간이다.

․ 베헤못이 육상동물의 으뜸가는 존재로 묘사되었다면.. 리워야단은 해상동물의 으뜸가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 리워야단은 구약에서 부정적인 존재로 등장한다.(시74:14. 사27:1, 욥 3:8)

․ 이런 강력한 존재도 하나님의 아래 창조되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보이신 것은 욥을 향한 시청각교재였다.


* 첫 신언설에 대한 욥의 답변

(욥 40:4-5) 『[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욥 40:4-5) 『[4] 저는 비천한 사람입니다. 감히 주님께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손으로 입을 막을 뿐입니다. [5] 이미 말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더 할 말이 없습니다.』

* 둘째 신언설에 욥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큰 그림에 자신은 작은 부분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첫신언설의 답변에도 하나님은 둘째 신언설로 이어간다.


[정리]

인과응보-행위화복 → 결과를 보고 그 사람의 삶을 판단한다.

욥의 희망은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서만 온다.


구약성서의 구원론에 기반이 되는 창조론을 발견할 때에 구약의 가르침이 분명해진다.

욥의 구원은 창조세계를 발견하였기 가능하다.

구약성서의 궁극적 핵심은 하나님의 창조세계 내에서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활약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도 구원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로 향하여 있었다.


* 욥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떠나심과 그로 인해 얻기 원하는 안식이다.

․ 죽음에 대한 갈망은 하나님에 대한 탄식의 변형으로 하나님에게 자신의 탄식에 대해 응답을 요구하고 있다.

․ 욥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전에 회복시켜달라는 요구..

→ 죽음을 가까이서 삶을, 절망의 상황 속에서 희망을..

→ 죽음과 절망을 말하는 것은 역설이 있다. 삶에 대한 욕구와 희망이 있다.

→ 죽음은 자신의 현실에 대한 묘사이지 바람은 아니다.

→ 죽음의 진술만큼 살기를 원한다.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느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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