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20. 요셉 - 아버지의 축복과 장례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3. 1. 9. 12:15

[야곱의 축복과 요셉의 반응]

 

48장의 줄거리는? (축복의 내용)


▷ 요셉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는 과정(창 48:1-7)

(창 48:1-2) 『[1]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2]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창 48:3-4) 『[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4]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 야곱이 요셉에게 말하는 전능한 하나님은 공감하시는 하나님이고 개인에서 세대까지 반복하여 약속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창 48:5-6) 『[5]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을 양자로 삼는다. 다른 형제와 동등한 자녀의 위치로 삼는다.

cf. 이들은 12지파에서 두지파를 이룬다. 레위지파는 제사장지파로서 토지소유의 몫을 받지 못한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두배를 주는 장자의 상속이다.


(창 48:7)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Q. 요셉의 아들을 자신의 두 아들로 삼는 이야기에서 라헬의 장례를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 야곱의 확인(48:8-11)

(창 48:8-9) 『[8]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9]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 이들은 누구냐? → 야곱의 첫번째 확인은 물어 확인하는 것이다.

-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 ‘주신’은 ‘맡기다, 위임하다’의 의미

cf. 요셉은 이집트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한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1:51-52) 『[51] 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 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 야곱은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는 것이다.


(창 48:10-11) 『[10] 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고 [11]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내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 야곱의 두번째 확인은 아버지 이삭과 달리 두 아들에게 입맞추고 그들을 안는 것이다. 무릎에 올려 놓는다.

cf. 이삭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더니 하나님이 내게 내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

→ 축복을 하기전 야곱의 벅찬 감정이다.

cf.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라는 요셉(9) vs ‘하나님이 내게 내 자손까지도 보게 하셨도다’라는 야곱(11) → 야곱과 요셉의 고백에는 하나님이 하셨음을 고백한다.


▷ 야곱의 축복(48:12-16)

(창 48:12-14) 『[12] 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 요셉은 자기 입장에서 장남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손 쪽에, 차남 에브라임을 야곱의 왼손쪽에 나아가게 한다. 그러나 야곱이 손을 엇바꾸어 놓는다.

cf. 이삭은 자신도 모른채 엇바꾸어 축복했다면 야곱은 이삭과 달리 확인한 후 의도적으로 엇바꾸어 두 아들을 축복한다.


(창 48:15-16)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축복의 내용 - 우리는 자녀에게 어떤 복이 있기를 원하는가?

1.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 직역 ‘ 그들이 스스로 좇았던 그 하나님’ ‘섬기는’의 ‘얄라크()’는 ‘가다 좇다 향하다’의 의미. 조상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따랐음을 말한다.

2.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 조상에 이어 이번에 자신의 삶에 대해 말한다. 그 하나님은 자신이 풀을 뜯고 방목하듯 목자가 되어주셨다는 의미이다.

3.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 환란은 단순한 어려움을 넘어 악한 상태의 모든 부정적인 상태를 포괄하는 의미로, 야곱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수많은 환란과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다시 사셨다는 고백이다. ‘건지신’은 ‘도로 사다, 속전하다’는 의미로 ‘구원하다’는 의미다.

4. 여호와의 사자께서 → ‘사자’는 ‘보냄을 받은 자, 전달자’의 의미이다. 이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 얍복강에서 씨름했던, 그만큼 자신의 삶과 생명에 영향을 주는 대상이다.

5.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 복의 주체가 ‘조상이 좇고, 자신을 키우고, 자신을 구원하고, 전달자’인데, 그런 분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기를 기도하고 있다.

6.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 ‘칭하게’는 ‘불러지게, 선언되게’이다. 이들에게 조상의 이름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 그 존재만이 가지는 성격(characte)과 내면의 성향까지도 나타내다. 즉 조상때부터 이어지는 인도와 언약이 그들에게도 이어지며 선언되기를 바란다.

7.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직역 ‘그들은 풍성히 번성하게 하옵소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을 언약으로 받은 야곱은 그것이 자손에게 이어지길 고백하고 있다.

⇒ 야곱의 축복은 단순히 복을 많이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조상때부터 이어지고 자신의 삶에서 고백되는 하나님이 자손과도 함께 그대로 고백되기를 축복하고 있다.

Q. 우리는 우리 자손에게 어떤 복을 받기를 원하는가? 내 삶과 연결된 하나님을 소개하는가? 우리는 아이들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 원하지 않는가?


▷ 요셉의 당황과 부탁(48:17-18)

(창 48:17-18)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 맏아들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요셉이다. 개인의 상황과 인도하심으로 인해 아직 야곱의 고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야곱은 조상때부터 이어오는 고백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고백하고 있고, 그래서 엇바꾸어 축복한다. ⇒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삶과 고백에 대해서 방해자가 될 수 있다.


▷ 야곱의 축복(48:19-22)

(창 48:19-20)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 허락하지 아니하며 → 맏아들 므낫세가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요셉은 야곱이 틀렸다고 생각하고 바르게 고치려 하지만 야곱은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 실제로 두 지파는 상당한 인구를 갖게 되고 북이스라엘은 에브라임을 중심으로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창 48:21-22) 『[21]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22]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1.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전까지 그에게 죽음은 외상이지만 지금은 은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2. 야곱은 자신의 죽음과 달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계속 후손들과 함께 하심을 강조한다.


[정리]

이전에 야곱의 죽음은 외상이었지만 임종전의 야곱은 하나님을 충분히 고백하고 있다.

야곱의 축복은 단순한 복이 아닌 조상과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자손들에게 이어지기를 고백하고 있다.

요셉의 경우처럼 자신의 삶에 너무 집중하면 다른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

 

[아버지의 축복]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한 야곱이 아들들을 부른다.

(창 49:1-2) 『[1]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2]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 육체적으로 죽음을 앞둔 야곱이 쇠약한 자이나 언약의 계승자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직무를 열심히 수행한다.

→ ‘후에 당할 일을’ 이라 한다. 아버지의 축복이 단순한 덕담이 아닌 자녀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보이시는 길이다.

cf. 나는 어떤 메시지를 자녀들에게 주고 있을까?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 너희는 모여 들으라 ...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 너희들은 스스로 모여라(자발적 모임을 강조), 들으라(듣고 깨닫고 준행하라는 명령형)

-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 장래의 일을 누구에게서 들으라 하는가? 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이름으로 언약의 계승자다.

cf. 자녀에게 이야기할 때, 우리의 어법은 이룬자의 강조가 아닌 이루지 못한 자로서 대신 이루어주길 바라는 강요의 경우가 있다.


▹축복의 순서 : 르우벤(3-4), 시므온과 레위(5-7), 유다(8-12), 스불론(13), 잇사갈(14-15), 단(16-18), 갓(19), 아셀(20), 납달리(21), 요셉(22-26), 베냐민(27)

→ 특징 : 유다와 요셉이 제일 길다. 두지파는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지파가 된다.


(창 49:22-26) 『[22]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3]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24]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25]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26]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 요셉 : ‘더하다, 첨가하다’의 ‘야샤프’로 ‘그가 더하실 것이다’는 뜻. 이름대로 다산과 풍요를 축복한다.

- 샘 곁의 : 물이 귀한 근동지방에서 ‘샘 곁’에 있다는 것은 큰 가뭄과 같은 재해에서 항상 변함없는 풍요를 누릴 것을 축복하는 것

- 무성한 가지 : 가지는 ‘뻰’이라는 ‘아들, 자손’이고, ‘무성한’은 ‘열매를 맺다, 번성하다’(파라)로서 ‘열매를 많이 맺는 가지, 번창하는 자손’이란 뜻.

-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그의 가지가 담 위로 올라갔도다’ 요셉의 후손들의 번성이 다른 지파들에게까지 혜택을 주게 될 것을 예언한다.

-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 요셉후손들의 지속적인 성장의 결과 많은 적대 세력들이 생길 것이며 그들이 괴롭히게 될 것을 예언

-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 ‘굳세며’는 ‘회복하다, 여전하다, 남아있다’의 뜻으로 요셉의 활이 대적을 향하여 거듭 당겨도 약하여지지 않고 ‘여전하다’는 뜻.

-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 ‘힘이 있으니’는 ‘유연하다, 가볍다, 민첩하다’로 요셉의 손과 팔이 적들을 향해 계속 활을 날려도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유연하고 민첩하게 화살을 뽑아 활을 걸고 당길 힘, 즉 아무리 강하고 많은 적들이 요셉의 자손들을 대적할지다로 능히 이겨낼 것이다.

-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 최고로 강하고 힘센 하나님의 손(능력)으로부터, 이스라엘 반석인 목자가 있는 곳으로부터‘이다. → 역사적으로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이스라엘 중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지파지만 그들이 북이스라엘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신들을 섬겼을 때는 하나님이 그들을 진멸하고 이방의 민족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왕하 17:5-18)

-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 야곱의 일생은 많은 대적들 앞에서 위기가 있었다. 자신을 쫓아오는 라반, 400인을 거느리고 야곱을 맞으러 나온 형 에서,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으로 가나안 족속의 공격위기 등. 이런 그의 인생에서 체험적으로 경험한 함께 하신 하나님을 도우심으로 요셉의 자손에게 고백하고 있다.

-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 위로 하늘의 복(적절한 시기에 내리는 적절한 양의 비, 일조량과 온도 등 자연의 혜택), 아래로 깊은 샘의 복(물이 부족한 근동지방에서 물을 소유한다는 것은 생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다산의 복과 건강하게 양육할 수 있는 복, 많은 자손은 노동력과 부와 사회적 권위이다)

-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 의미상 ‘네 아비가 주는 축복’으로 야곱은 어느 아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고 그에게 누구보다 더큰 축복을 주기를 원했다. 곧 야곱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으로 요셉을 축복하고 있다.

-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 ‘영원한 산’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산으로 요셉에게 주는 야곱의 축복의 범위는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을 때를 강조한다.

-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 ‘뛰어난 자’은 ‘구별하다, 어떤 일에서 떠나다’로 성별된 자, 구별된 자를 의미하며, ‘나실인’과 같은 듯이다.


[정리] 요셉을 향한 야곱의 축복, 아비로서 자신의 삶을 통해 축복하고 있다.

 

[야곱의 임종과 장례의 의미]

 

* 야곱의 당부

(창 49:29-32) 『[29]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 야곱의 임종과 약속의 성취

(창 49:33)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 야곱이 이집트로 오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면서 하신 약속의 성취 : 가나안으로 돌아오고 요셉의 손으로 눈을 감기리라. (창 46:1-4) 『[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 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을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도록 맹세케 한다.

(창 47:29-31) 『[29]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30]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cf. 50장의 이야기는 임종한 그가 어떻게 가나안으로 돌아오는지 과정과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 장례준비

(창 50:1-3) 『[1]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3]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

-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 귀중한 사람을 공경하는 의미에서 귀족을 미이라로 만드는 애굽의 풍속 + 야곱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먼 거리까지 운구하는 동안 부패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 40일 : 미이라를 만드는 시간과 정성

  70일 : 바로의 경우(72일)보다 조금 못한 애곡의 기간으로


* 야곱의 유해를 가나안으로 운구하다.

(창 50:4-5) 『[4]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5]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 야곱의 장사를 위해 가나안행을 바로에게 청하다.

(창 50:6)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 바로가 허락하다.

(창 50:7-9) 『[7]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 요셉에 대한 예우에 따라 가나안으로 성대하게 올라가는 장례행렬이다.


* 요셉이 야곱을 막벨라 굴에 장사하다.

(창 50:10)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 아닷 타작 마당 : ‘가시나무’라는 뜻의 ‘아닷’이란 사람의 타작마당에서 7일 동안 요셉이 애곡하다.

(창 50:11)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 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 그 모습을 보고 가나안 사람들이 감동한다. ‘애굽사람의 큰 애통’이란 의미로 그곳 이름을 ‘아벨 미스라임’이라 한다.


* 장례의 의미

(창 50:12-14) 『[12]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13]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14]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한다. 처음부터는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요셉에게, 아들들이 아버지의 명을 따라 그대로 행한다. 야곱은 믿음의 조상들이 장사된 가나안 땅(49:3)이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그 후손들에게 주어질 것을 믿었기에(35:12)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자신을 장사하도록 유언하였다.(49:29) 그리고 그의 아들들 역시 가나안을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언약의 땅으로 믿었기에 아버지의 유언대로 철저하게 순종했다.

※cf. 이것은 이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과 후대에 가나안땅으로 포로귀환하는 이스라엘과 이후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고백이다.


Q.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궁극적으로 바라보고 가야할 곳이 가나안 땅임을 강조하고 있다.

 

[형제의 익숙한 불안]

 

Q.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어떤 반응이야 할까?


* 형제들의 상황해석과 불안

(창 50: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창 50:15)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를 여의고 나서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그들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하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 상황 : 야곱이 130살에 이집트에 와서 147살에 임종하기까지 17년을 고센에서 살았다.

▹ 형제들의 삶 3단계

1.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며 편애받는 동생을 미워하고 시기했다.(37장 요셉의 꿈에 반응)1)

2. 요셉을 판뒤 우울에 빠진 아버지와 함께 23년을 지낸다.2) 동생을 판 것을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아버지의 사랑도 받지 못한채 불안해 하다 이후 요셉앞에서 서로 탓하기도 한다.

3. 요셉을 만나 즐거워하는 아버지와 함께 이집트에서 17년을 산다. 그들은 악을 선으로 바꿨다는 요셉의 고백과 상관없이 아버지 때문에 요셉이 복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cf. 야곱의 장례이후에 대해서는 표현이 없다. 다만 21절에 위로가 있다.

⇒ 공통점 : 안정감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 한다.


-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Q. 요셉의 형제들은 왜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을까? 그 죽음으로 무엇이 느껴지고 작용되고 해석될까?

1. 상황의 사실 - 단지 아버지의 죽음이다. 이 사실은 다음의 해석에 영향을 준다.

2. 상황의 느낌 - 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와 죽음 이후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3. 상황의 해석 - 요셉이 자신의 악을 갚을 것같다고 예상한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못하다가 죽은 뒤에는 갚을 것으로 예상한다.

4. 해석의 오류 - 요셉이 어떤 마음인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 형제들이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있는 요셉이 자신의 악을 기억하고 갚을것같다고 불안해 한다.

cf. 아버지의 죽음이 불안을 자극하나, 아니면 불안이 아버지의 죽음이란 상황의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게 하나? →

Q. 형제들의 불안은 어디서 나오나? 과거에서 자신들이 해오던 익숙한 해석과 행동이다.

-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형제들의 예상

1. 요셉이 우리를 미워할 것이다. → 처음에 요셉을 미워한 것은 형제들이다.

2. 자신의 악을 갚을 것이다. → 자신들이 행한 악을 기억하고 있다. 죄책감이 반성으로 이어지지 않고 불안으로 이어진다.

⇒ 형제들의 불안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해석하고 예상한다. 곧 요셉을 요셉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모습으로 요셉을 본다.

Q. 요셉이 믿는 것과 형제들이 믿은 것은?

→ 요셉은 악을 선으로 갚는 하나님을 믿는다. 그 하나님이 있어 요셉은 일관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형제들이 믿은 것은 야곱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죽었다. 자신을 보호할 방어막이 사라졌다.

⇒ 요셉이 믿은 대상은 영원한 대상이지만 형제들이 불안하여 믿은 대상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다면 다음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 불안한 형제들이 요셉에게 기댄다. → 중독의 모습


▹ 이러한 형제들의 익숙한 해석은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다.

(창 50:16-17)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형제들의 인간적 방법 vs 요셉의 건강하고 신앙적인 방법]

(창 50:15-17) 『[15]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 형제들의 익숙한 불안에 대한 잘못된 해석까지는 그럴 수 있다. 자동적 반응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행동으로 옮겨진다는 것이다. 다시 악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형제들의 건강하지 못한 방법

1. 형제들은 협의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한다.

2. 그들의 협의는 자신들이 원하는 ‘용서받기’를 위해 요셉의 약점을 찾는다. 이것은 바르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받기 위해 계획하는 것이다.

3.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 직접이 아닌 사람을 보내서 말한다. 요셉을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고 부담이다. 그들에게 요셉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4.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 요셉의 약점이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이라며 언급한다. 심지어 우리의 아버지가 아닌 ‘당신의 아버지’라 한다.

cf. 그러나 야곱의 모습은 종말에 일치된 건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모든 유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볼때 형제들의 이야기가 맞을지 의심된다.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5. 자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인 자신들의 행동이 ‘악’했으며 그것은 ‘허물과 죄’였음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자신들을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6.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 그러면서 아버지는 너의 아버지이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한다.

7.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 처음의 말은 사람을 보내 전달하였고, 두 번째는 요셉이 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와서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한다.

⇒ 불안한 사람은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관적인 이해와 해석을 하며 일치된 건강한 표현을 하지 않는다.


▷ 요셉의 건강하고 일치된 반응

(창 50:19-21)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1. [17]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 형제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요셉이 운다.

2. 두려워하지 마소서 → 요셉은 그들의 감정의 핵심을 알고 있다. 그들의 불안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용서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임을 안다.

3.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 자신의 일치된 고백.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자신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형제들을 심판할 수 없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4.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요셉은 형들과 달리 악을 선으로 바꾼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있다.

cf. 요셉은 그들이 바란 ‘용서한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용서는 인간적 연민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용서는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기에 인간이 대신할 수 없다.

5.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하나님의 목적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짐을 고백한다. cf.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요셉은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신이 할 일이 그들의 자녀를 키우는 것, 곧 자신이 여기에 있는 목적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일이 위로임을 안다.


[정리]

불안이 겉으로 드러나 그것을 없애려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려는 형제들

그들의 불안을 알고 그들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셨음을 말하는 요셉


(신 5:1-10) 『[1]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2]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나니 [3]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에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5] 그 때에 너희가 불을 두려워하여 산에 오르지 못하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중간에 서서 여호와의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6]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라 [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8]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밑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9]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요셉의 죽음과 일관된 고백]

* 요셉이 지내다.

(창 50:2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 야곱의 죽음 이후 수십년이 지났으나 그 사이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는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 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거주했다고 한다. 이는 형제들의 불안과 달리 자신이 고백을 그대로 지키며 살았음을 보여준다.

cf. (창 50: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이 맡기신 일, 이스라엘을 돌보는 일에도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 그의 생애가 110세이며 줄곧 일관됨을 보여준다.


* 요셉이 양육하다.

(창 50:23)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 : 요셉에게는 4대에 이르는 자손에게 축복이 계속 됨을 보여준다.

-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 대상 7장에 나오며 처와 첩의 자녀까지도 직접 보살펴 주었음을 보여준다.

cf. (삿 5:14)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들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들이요 베냐민은 백성들 중에서 너를 따르는 자들이요 마길에게서는 명령하는 자들이 내려왔고(마길에서는 지휘관들이 내려오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내려왔도다』-므낫세 지파 중에 ‘마길’은 능력있는 부족이 되었다.

-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 직역하면 ‘요셉의 무릎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요셉의 자상한 모습을 보여준다.

Q. 요셉의 양육이 직접적인 양육일까, 요셉의 보호 아래 있었다는 의미일까?


* 요셉이 고백하다.

(창 50:24)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나는 죽을 것이나 : 요셉은 자신이 타향에서 죽음을 맞는 상황을 표현한다.

-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 ‘돌본다’는 말은 ‘마음에 두다, 살피다’는 의미로 직역하면 ‘반드시 마음에 두고 살피실 것이다’ 요셉은 일관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고백한다.

cf. 요셉은 자신의 일관된 고백과 양육이 하나님의 일관된 모습과 신뢰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를 통해 인도하여 줄 것을 믿고 단호하게 고백한다.

cf. 창세기 기자는 요셉의 고백을 빌어 자신의 민족이 다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 안에서 살피시고 있고 누군가를 리더로 세워서 인도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역사적 당위성을 갖게 된다. 또한 독자들이 자신의 상황과 함께 요셉의 고백을 볼 때 자연스럽게 약속의 땅을 바라보게 된다.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 하나님의 약속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세 족장을 말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구체적이며 역사 속에서 세워지고 이뤄지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 요셉이 맹세하게 하다.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 하나님이 마음에 두시고 살피신다.

-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 대부분의 삶(17-110세)을 이집트에서 보낸 요셉이지만 뼈라도 약속의 땅에 묻히기 원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을 철저히 믿는 일관된 신앙의 모습이며(히 11:22), 실제로 약 360년후 출애굽할 때 같이 나가며 가나안 땅에 안치된다.(수 24:32)

→ 요셉의 일관된 고백과 행동은 오랜 시간의 그의 삶에서 계속 되었고, 죽음 이후에도 자손들에게 일관된 고백을 보이면서 맹세하게 한다.

(히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출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수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 요셉이 죽다.

(창 50:26)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정리]

요셉의 고백을 바탕으로 ‘요셉이 ~하다’는 방식으로 기록되었다.

창세기기자가 창세기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창세기를 읽는 독자에게 요셉의 고백과 신뢰를 통해 민족적인 하나님의 돌봄과 인도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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