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16. 야곱 - 세겜에서 벧엘로 집으로

성경인물탐구/창세기인물 2011. 3. 16. 18:34


야곱과 아들들의 잘못된 선택 - 평안추구와 복수


하나님의 재약속과 재경험


라헬의 죽음과 이삭의 장례


 

[야곱과 아들들의 잘못된 선택 - 평안추구와 복수]

인생가운데 다양한 아픔이 있다. 아픔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부모로써 겪게 될 아픔은 자녀의 아픔을 보는 것이다. 자녀에게 어려움과 위험이 처해질 수도 있고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다시 부모의 마음과 삶에 상처가 된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신이 선택하고 가는 길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도망자가 되었고 하나님은 그의 회피를 하나씩 극복하여 주셨다. 그럼 그에게 주어진 자녀에 대한 아픔은 무엇인가? 디나의 상처와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Q. 34장은 왜 있을까? 35장 벧엘로 올라가게 된 원인이 34장인가?

Q. 여기서 느끼는 야곱의 감정은 무엇인가?


* 상황

- 야곱은 형과 헤어졌다. 수십년 쫓기는 삶을 살았던 야곱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쫓거나 힘들게 할 대상이 없어졌다. 더 이상 두렵거나 걱정하게 하는 대상이 없어졌다. 어릴 적 빼고 처음으로 마음이 평안하다.

- 오래 움직인 가축들이 쉬어야 한다. 잠시 쉬려고 했을까? 평안함을 누리고 싶었을까? 바르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된다. 세겜 밭을 산다.

- 벧엘로 가지 않는다. 벧엘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잊는다.


(창 33:18-20) 『[18]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19] 그가 장막을 친 밭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의 손에서 백 크시타에 샀으며 [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창 33:18-20) 『[18] 야곱이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의 세겜 성에 무사히 이르러서 그 성 앞에다가 장막을 쳤다. [19] 야곱은 장막을 친 그 밭을 세겜의 아버지인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백 냥을 주고 샀다. [20] 야곱은 거기에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b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고 하였다. (b.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 순서 : 세겜에 장막을 친다→밭을 세겜의 아비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산다→단을 쌓는다.

-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 평안히(솰렘) :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인도였기에 평안하다 할 수도 있다. 작게는 형과 헤어진 야곱은 세겜까지 평안하게 온다. 이 순간 야곱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일 것이다. 그러나 약속을 잊은 야곱에게 이후로도 세겜은 계속 평안하지 않다. 야곱이 가야할 곳은 벧엘(28:10-22)이었지만 야곱은 멈춘다.

→ 왜 세겜에서 제단을 쌓을까? 아브라함이 첫제사를 드린 곳으로 의미는 있지만 자신도 거기서 제단을 쌓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도 자신의 서원도 벧엘로 고향으로 가는 것이다. 그럼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아버지가 있는 헤브론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순간 평안함을 느낀 야곱은 모든 것을 잊고 계속 남고 싶었진 것인가?

Q. 우리라도 고생 뒤에 현재 느끼는 평안함을 계속 누리고 싶지 않을까?


(창 34: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창 34:1) 『레아와 야곱 사이에서 태어난 딸 디나가 그 지방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

→ 디나는 그 땅 여인들에게 갔다. 단순한 구경을 넘어 교제와 그들의 풍습을 배우는 의도가 있다. 이방인의 습성을 모르는 경솔함은 가족의 존속을 위협하는 결과까지 가게 된다.

cf. 사라(12:15, 20:2) 리브가(26:7)를 이방인들 마음대로 뺏길 위기가 있었다.

(창 12: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창 20: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창 26:7) 『그 곳 사람들이 그의 아내에 대하여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내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 곳 백성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내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


(창 34:2-4)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창 34:2-4) 『[2] 히위 사람 하몰에게서는 세겜이라는 아들이 있는데 세겜은 그 지역의 통치자였다. 세겜이 디나를 보자, 데리고 가서 욕을 보였다. [3] 그는 야곱의 딸 디나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디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디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4] 세겜은 자기 아버지 하몰에게 말하였다. "이 처녀를 아내로 삼게 해주십시오."』

-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 그 소녀를 사랑하여 ..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 가나안의 낮은 도덕관, 힘의 폭력.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자기가 좋다고 아내로 얻으려 한다. 죄에 대한 회개없이 욕망만 채우려다 종족이 몰살하게 된다.

cf. 율법은 사형(신22:24)『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 평안히 있을 줄 알았던 곳에서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


(창 34:5-6)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창 34:5-6) 『[5] 야곱이 자기의 딸 디나의 몸을 세겜이 더럽혔다는 말을 들을 때에 그의 아들들은 가축 떼와 함께 들에 있었다. 야곱은 아들들이 돌아 올 때까지, 이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이 청혼을 하려고 야곱을 만나러 왔다.』

- 더렵혔다 : 타메() 모독하다, 간음하다, 타락케하다, → 도덕적 불결함, 종교적 부정함

→ 야곱의 행동 : 디나의 소식을 듣는다-아들과 상의하기 위해 기다린다-잠잠한다

- 잠잠하다 : 하라쉬() 귀머거리가 되다, 아무행동도 취하지 않다. 야곱의 행동은 비통하고 신중하지만 하나님 앞에 다가가지는 않는다.

→ 하몰이 청혼을 하러 온다. 청혼은 가문의 대표가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과정에 대한 사과는 없이 결혼을 전하러 왔다. 당시 객지사람이지만 이삭과 에서의 배경을 가진 야곱과 그의 경제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행동이다.

→ 그 땅에서 평안히 있을 줄 알았던 야곱은 힘에 눌린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다.


(창 34: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창 34:7) 『와서 보니, 야곱의 아들들이 이미 디나에게 일어난 일을 듣고 들에서 돌아와 있었다. 세겜이 야곱의 딸을 욕보여서 이스라엘 사람에게 부끄러운 일, 곧 해서는 안 될일을 하였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은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 야곱의 아들들은 근심하고 분노한다. ‘이스라엘’이란 표현으로 민족적 차원, 선민으로서 자부심을 위협한 것으로 이해한다. 세겜과 하몰의 부끄러움(어리석음, 사악함)에 대한 표현은 기본적인 도덕률과 양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Q.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


(창 34:8-12)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창 34:8-12) 『[8] 하몰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아들 세겜이 댁의 따님에게 반했습니다. 댁의 따님과 나의 아들을 맺어 주시기 바랍니다. [9] 우리 사이에 서로 통혼할 것을 제의합니다. 따님들을 우리 쪽으로 시집보내어 주시고, 우리의 딸들도 며느리로 데려가시기 바랍니다. [10]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섞여서 여기에서 같이 살기를 바랍니다. 땅이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에서 장사도 하고, 여기에서 재산을 늘리십시오"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에게 간청하였다. "저를 너그러이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드리겠습니다. [12] 신부를 데려오는 데 치러야 할 값을 정해 주시고, 제가 가져 와야 할 예물의 값도 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많이 요구하셔도 요구하시는 만큼 제가 치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바라는 것은 디나를 저의 아내로 주시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 하몰과 세겜은 이 지역에 있으면서 통혼을 통해 섞여서 살자고 제안한다. 명령조로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를 무시한다.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을 이야기한다.

→ 그들은 도덕적인 잘못을 경제적인 논리, 물질적 배상으로 덮으려 한다. 혼인조건으로 정착권과 경제권을 제공한다고 한다.

→ 야곱에게 있어 이제 지역에 있으려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통혼이외에 방법이 없다.

cf. 수십년 타향살이를 했다가 그 땅에서 평안함을 경험한 야곱에게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10)는 유혹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잊고 있는 야곱에게 눈에 보이는 땅의 가치관을 제안한다.

→ 만약 야곱이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어찌되는가? 지금까지 하나님과 함께 했던 모든 야곱의 삶은 무의미하게 된다.


* 야곱의 아들들의 속임과 복수

(창 34:13)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속여 대답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

(창 34:13)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이 그들의 누이 디나를 욕보였으므로 세겜과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짐짓 속임수를 썼다.』

- 속임 : 미르마() ‘배반하다, 기대에 어긋나게 행동하다’는 ‘라마()’에 파생됨

cf. 야곱의 사기(27:35), 라반의 아내바꾸는 속임(29:25), 요셉을 팔고 죽었다고 속임(37:31-35)


(창 34:14-17) 『[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17]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창 34:14-17) 『[14] 그들은 세겜과 하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부끄러운 일입니다. [15]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들 쪽에서, 남자들이 우리처럼 모두 할례를 받겠다고 하면 그 청혼을 받아들이겠습니다. [16] 그렇게 하면 우리가 딸들을 당신들에게로 시집을 보내고, 당신네 딸들을 우리가 며느리로 삼으며, 당신들과 함께 여기에서 살고, 더불어 한 겨레가 되겠습니다. [17] 그러나 당신들 쪽에서 할례 받기를 거절하면 우리는 우리의 누이를 데리고 여기에서 떠나겠습니다."』

→ 속임을 하려면 언어적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악을 준비하는 것이다.

→ 그들이 원하는 하나가 되는 것이 되는 조건으로 할례를 제안한다. 야곱의 아들들은 속임수를 사용한다. 우발적인 것이 아닌 계획적인 복수이다. 언약의 징표를 악의 도구로 사용한다.


(창 34:18-24) 『[18] 그들의 말을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좋게 여기므로 [19] 이 소년이 그 일 행하기를 자체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야곱의 딸을 사랑함이며 그는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존귀하였더라. [20]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그들의 성읍 문에 이르러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21] “이 사람들은 우리와 친목하고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그들이 여기서 거주하며 매매하게 하고 우리가 그들의 딸들을 아내로 데려오고 우리 딸들도 그들에게 주자. [22] 그러나 우리 중의 모든 남자가 그들이 할례를 받음 같이 할례를 받아야 그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 되기를 허락할 것이라. [23] 그러면 그들의 가축과 재산과 그들의 모든 짐승이 우리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다만 그들의 말대로 하자 그러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거주하리라.” [24]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자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말을 듣고 성문으로 출입하는 그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으니라』

(창 34:18-24) 『[18]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이 내놓은 제안을 좋게 여겼다. [19] 그래서 그 젊은이는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그들이 제안한 것을 실천으로 옮겼다. 그만큼 그는 야곱의 딸을 좋아하였다. 세겜은 자기 아버지의 집안에서 가장 존귀한 인물이었다. [20]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성문께로 가서,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1]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우리 땅에서 살면서, 우리와 함께 물건을 서로 사고팔게 합시다. 이 땅은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넓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딸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은 우리의 딸들과 결혼할 수 있게 합시다. [22] 그러나 이 사람들이 기꺼이 우리와 한 겨레가 되어서 우리와 함께 사는 데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는 것처럼 우리쪽 남자들이 모두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3] 그렇게 하면 그들의 양 떼와 재산과 집짐승이 모두 우리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다만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대로 합시다. 우리가 그렇게 할례를 받으면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 것입니다." [24] 그 성읍의 모든 장정이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이 제안한 것을 좋게 여겼다. 그래서 그 장정들은 모두 할례를 받았다.』

→ 사랑에 눈먼 세겜이 자기 민족을 설득한다. 모든 사람을 눈멀게 한다. 모든 사람은 야곱의 재물에 눈 먼다. 제물에 대한 설득에 성주민들은 가볍게 할례를 받는다.

cf. 세겜의 강한 힘이 남을 누르기도 하지만 분별이 없을때 자신을 누르는 결과를 얻는다.

cf. 세겜은 환상에 빠져 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될 것이라 기대한다.


(창 34:25-29) 『[25] 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 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 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 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창 34:25-29) 『[25] 사흘 뒤에 장정 모두가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아파하고 있을 때에 야곱의 아들들 곧 디나의 친오라버니들인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들고 성읍으로 쳐들어가서 순식간에 남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26] 그들은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도 칼로 쳐서 죽이고, 세겜도 칼로 쳐서 죽이고, 세겜의 집에 있는 디나를 데려왔다. [27]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죽은 시체에 달려들어서 털고, 그들의 누이가 욕을 본 그 성읍을 약탈하였다. [28] 그들은 양과 소와 나귀와 성 안에 있는 것과 성 바깥 들에 있는 것과 [29] 모든 재산을 빼앗고, 어린 것들과 아낙네들을 사로잡고,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다 약탈하였다.』

- 시므온과 레위 : 레아의 아들이며, 디나의 오빠. 복수극의 주동자.

cf. 훗날 야곱은 임종시 이 일을 기억하고 그들의 잔인성을 지적한다.(49:5-7) 시므온과 레위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49:5)이며 그들의 분노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49:6) 야곱 중에 나뉘게 되고 이스라엘 중에 흩어질 것이(49:7)이라 저주한다.

-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27)

→ 두 아들을 주동으로 한 복수는 폭력을 더큰 폭력과 노략으로 갚는다. 정당한 명분을 넘어 인간적인 분노와 증오로 악을 저지른다.

cf. (레 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 아비의 불순종의 결과 자녀들의 문제해결방식에도 하나님이 없다.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가진다. 분노의 표출만 있다. 조절이나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다.


(창 34:30-31) 『[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31] 그들이 이르되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같이 대우함이 옳으니이까?”』

(창 34:30-31) 『[30] 일이 이쯤 되니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를 나무랐다. "너희는 나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이제 가나안 사람이나, 브리스 사람이나,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귀지도 못할 추한 인간이라고 여길 게 아니냐? 우리는 수가 적은데 그들이 합세해서 나를 치고 나를 죽이면 나와 나의 집안이 다 몰살당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31]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 다루듯이 하는 데도 그대로 두라는 말입니까?"』

→ 복수극은 성공한다. 하지만 야곱은 주변 가나안 민족 때문에 두려워지게 되었다. 야곱의 두려움이 자극되었다. 멸망할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을 하게 된다.

→ 아들들과 갈등을 보인다. 야곱은 아들들을 왜 막지 못했을까? 내심 허락하였다가 이정도까지 할지는 몰랐을까?

cf. 만약 라헬의 딸이었다면 어땠을까?


* 이후 야곱은 이땅을 떠난다. 떠날 수밖에 없다.

→ 세겜사건이후 그는 다시 도망자가 될 신세가 되었다. 그런 입장에서 다시 언약의 장소로 돌아가다. cf 야곱은 왜 자유로울 때 벧엘로 가지 못했을까?

→벧엘로 → 에브랏(베들레헴)에 간다.


[정리]

① 눈에 보이는 평안이 하나님의 약속을 멀리하게 한다.

② 분노가 앞을 가리면 거룩한 것도 악의 도구가 된다.

③ 영적 통찰력이 부족하고 인간적인 분노와 혈기만 앞세웠다.

④ 아버지의 속임이 아들에게 이어지고, 정직을 멈춘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 이상 모델이 되지 않는다.


야곱은 아버지의 부재로 아버지의 권위를 나타내지 않는다

건강한 해결책이 없다.

무섭고 두렵고 축나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재약속과 재경험]

파란만장한 야곱의 인생, 모든 것을 헤쳐나가야 했던 인생,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했던 야곱의 인생이 안정을 누릴 때 또다른 어려움이 생겼다. 자녀들로 인해 부딪히게 되었다. 세겜에서의 어려움, 아들의 살육은 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무엇인가 전환이 필요하다. 그는 무엇으로 전환하며 그 주체는 누구인가?


* 구조 (35:1-15)

- 35:1 벧엘로 올라가서 ... 단을 쌓으라

- 2-8 벧엘에 이르고.. 단을 쌓고

- 9-15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 하나님의 개입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베델로 올라가 거기에서 살아라. 네가 너의 형 에서 앞에서 피해 도망칠 때에 너에게 나타난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쳐라』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 야곱은 세겜과 아들들의 복수로 두렵게 되었다.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또다시 도망이었다. 이때 하나님이 오신다. 34장의 연속적인 결과이다.

→ 그의 이름은 ‘이스라엘’, 그러나 야곱이라 부른다. 도망치던 때의 이름이다. 얍복 이후의 삶도 이스라엘의 삶이 아니었다. cf. 아직도 돌아오는 과정이다.(9)

- 일어나 → 막막한 상황에서 야곱에게 가장 먼저 시킨 것은 ‘일어나기’. 하나님은 더 이상 세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리이동이란 결단을 명령하신다.

cf. 1절의 동사 : 일어나, 올라가서, 거주하며, 쌓으라

- 벧엘로 올라가서 : 구체적인 목적지를 알려준다. 세겜(해발 590m)에서 벧엘(895m)로

→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곳에서는 고난을 받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라 하신다.

-  거기 거주하며 : 야솨브() 머물다, 거주하다-시간의 제약 없이 머무는 의미

→ 실패의 땅 세겜에서 완전히 분리할 것을 명령한다.

cf. 우리는 우울의 장소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 하나님은 벧엘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확히 기억하신다. cf. 야곱은 형과의 재회이후 다른 곳으로 간다. 그 기억을 직면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 ‘네게 나타났던’ : 너를 보시다, 감찰하다, 주목하다. → 하나님이 야곱을 자세히 보셨다

-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 거기서 야곱이 할 것은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 야곱을 향한 근본목적은 단을 쌓으므로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

⇒ 다시 도망하게 된 야곱과 도망의 원인을 상기하고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한다.(재경험,재구조화)

cf.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는 내용과 구조가 같다.

(창 22:1-2)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cf. 요셉이 같이 있었을까?

야곱의 90-요셉의 출생, 재계약

야곱의 96-고향으로, 얍복에서 세겜으로

야곱의 108-요셉의 17세

야곱의 120-이삭의 죽음(180)

야곱의 130-이집트, 요셉이 39세

→ 요셉이 팔려간뒤 세겜에서의 살육이 있었을까?

⇒ 세겜에 머물면서 자녀로 인한 괴로움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

(창 37:12-13)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창 37:12-13) 『[12] 그의 형들은 아버지의 양 떼를 치려고 세겜 근처로 갔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가 알고 있듯이 너의 형들이 세겜 근처에서 양을 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너의 형들에게 좀 보내야겠다. " 요셉이 대답하였다. "다녀오겠습니다."』


Q. 벧엘로 올라가는 것은 야곱에게 무엇이고 어떤 심정일까? 진정으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뀌는 과정인가?

(창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 35:2) 『야곱은 자기의 가족과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명령하였다. "너희가 가지고 있는 이방 신상들을 다 버려라.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어라.』

- 자기 집과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 가족 모두에게 말함으로 순종하도록 한다.

-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 ‘낯선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만 향하기 위한 행위

-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 직역 ‘그리고 너희들은 너희 스스로 깨끗케 하라’ 신체적 제사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하라.

-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 더 좋은 것을 바꾸다, 새것과 바꾸다. 정결의 의미

⇒ 삶을 바꾸자는 야곱의 강력한 결단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3) 『이제 우리는 이 곳을 떠나서 베델로 올라간다. 거기에다 나는 내가 고생할 때에 나의 간구를 들어주시고, 내가 가는 길 어디에서나 나와 함께 다니면서 보살펴 주신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서 바치고자 한다. "』

-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 권유형, 벧엘로 올라가기를 재촉하고 있다.

cf. 급히 가려는 이유-세겜에서 있을 수 있는 목숨이 위험한 보복을 피하기(에서 때와 같다) 자신의 서원도 기억하신다.

-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 야곱이 예배하려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지 밝히고 있다. 응답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다.

→ 벧엘에서의 서원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기억한다.

-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 1절의 말씀의 반복, 예배의 결단은 하나님에게로

1절

3절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야곱이 가족에게 이르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cf. 전달자(중보자)의 역할-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족에게 전해주는 사람이다. 라반의 집을 떠날 때했다. 다른 인물들도 그렇게 한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다.

⇒ 삶을 바꾸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자는 야곱의 결단


* 2절의 실행

(창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묻고』

(창 35:4) 『그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귀에 걸고 있는 귀고리를 야곱에게 가져왔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밑에 묻었다.』

→ 특별한 고리나 장식품들은 해나 달 등의 형상이 새겨져 있고 흔히 부적처럼 미신적인 목적으로 차고 다녔다.

→ 이것을 세겜에서 묻고 출발했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묻었다.


* 3절의 실행

(창 35: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창 35:5) 『그런 다음에 그들은 길을 떠났다. 하나님이 사방에 있는 모든 성읍 사람을 두려워 떨게 하셨으므로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하였다.』

- 발행하다 : 나싸() 말뚝을 뽑다는 말로 ‘이사한다’, 즉, 생활도구를 챙겨 완전히 철수한다는 의미.

→ 야곱에게 세겜은 자신이 결정한 곳이면서도 실패의 장소가 되었다.

→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는 떠남의 결단을 보인다.

-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야곱이 두려운 것은 주변 고을의 공격이었다. 그들을 막은 것은 하나님이다. 벧엘로 올라가도록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도우신다. ex) 라반에게 나올때도 라반을 막으신 것도 하나님이셨다. 에서도 추격하지 않았다.


(창 35:6-7)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창 35:6-7) 『[6] 야곱과 그가 거느린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베델에 이르렀다. [7] 야곱이 거기에서 제단을 쌓은 뒤에 그가 형을 떠날 때에 베델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을 생각하고, 그 곳 이름을 a엘베델이라고 하였다. (a. 베델의 하나님)』

→ 가나안에 돌아왔음에도 벧엘로 올라오지 않고 세겜에 머물던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으로 벧엘로 오게 되었다.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오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

- 엘벧엘 : 야곱은 자신의 삶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기억하며 고백하기 위해 이렇게 불렀다. 이후 자손들은 ‘벧엘’이라 불렀다.


*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과 통곡

(창 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창 35: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어서 베델 아래쪽 상수리나무 밑에 묻히니 사람들이 그 나무 이름을 b알론바굿이라고 하였다. (b. 통곡의 상수리나무)』

→ 추측 : 야곱은 집을 떠나고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드보라의 죽음은 그 어머니를 회상하게 했을 것이다. 또한 이삭과의 관계가 좋아졌을 것이다. 야곱이 선택한 세겜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벧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이삭의 장례에 에서와 야곱이 함께 한 것은 벧엘이 가정의 평화까지 만들어준 사건임을 짐작케 한다.


*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재확증

(창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창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온 뒤에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복을 주셨다.』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 직역 ‘그가 밧단아람으로부터 왔을 때’

→ 하나님이 야곱에게 다시 나타난 시점과 복을 주신 이유

→ 밧단아람은 라반과 있었던 곳. 그곳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온 것은 이미 오래전임에도 이제야 돌아왔다고 한다.

-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 5번째 자신을 보이신다.

→ 집을 나갈 때(28:10-22 꿈), 라반의 집을 떠나라하실 때(31:11-13 꿈), 얍복에서(32:24-32), 벧엘로 올라가라 하실 때(35:1)

→ 이유는 ‘복을 주시기’ 위해


* 복의 내용

(창 35:10)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창 35:10)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이름이 야곱이었지만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다.』

→ 얍복의 경험이 다시 확인된다. 야곱에게 개인적인 약속의 재확인


(창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창 35:11)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c전능한 하나님이다. 너는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다. 한 민족과 많은 갈래의 민족이 너에게서 나오고, 너의 자손에게서 왕들이 나올 것이다. (c. 히, 엘 샤다이)』

-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cf. (창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생육하며 번성하라. → 창조의 하나님, 생육과 번성케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신다.


(창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창 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너에게 주고, 그 땅을 내가 너의 자손에게도 주겠다."』

→ 아브라함때부터 이어지는 약속의 계승→이후 민족에게로 이어진다.

⇒ 하나님의 약속은 우주적, 민족적, 개인적 약속이며, 이것을 야곱의 삶을 통해 이루실 것을 약속하신다.


(창 35: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

(창 35:13)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야곱과 말씀하시던 곳을 떠나서 올라가셨다.』

→ 하나님이 가시적으로 임하셨다가 올라가시는 모습은 아브라함과 언약갱신을 마치신 후의 모습과 같다. (창 17: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창 35:14) 『야곱이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창 35:14)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을 나누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부어 드리는 제물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다.』

-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 형을 피할 때 벧엘에서(28:18), 라반과의 계약때 길르앗에서(31:45), 다시 벧엘에 돌아와서(14), 라헬의 묘비(20)

(출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신 27: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수 4: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창 35: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창 35:15) 『야곱은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을 나누시던 곳의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 그와 말씀하시던 곳(13)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14,15) → 벧엘


[정리]

①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자녀를 통한 어려움으로 나타난다.

②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생긴다, 그가 선택할 것은 도망이다.

③ 도망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꾼다.

④ 야곱은 자신의 삶을 점검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⑤ 삶의 모습을 바꾸려는 결단을 보인다-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간다는 의미

⑥ 말씀의 전달자로 충실한 야곱의 모습

⑦ 하나님은 야곱에게 재약속을 하신다. 우주적 민족적 개인적 약속


[라헬의 죽음과 이삭의 장례]

야곱의 이야기는 다시 올라간 벧엘, 라헬의 죽음과 이삭의 죽음이 기록된 35장으로 끝난다. 이어지는 36장은 에서의 족보가 나오고 37장은 요셉이야기로 넘어간다. 결국 이어지는 야곱의 이야기는 요셉이야기 속에서, 이제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으로 나온다.


* 베냐민의 출생과 라헬의 죽음

(창 35:16-17)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창 35:16-17) 『[16] 그들이 베델을 떠나 에브랏에 아직 채 이르기 전에, 라헬이 몸을 풀게 되었는데 고통이 너무 심하였다. [17] 아이를 낳느라고 산고에 시달리는데 산파가 라헬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또 아들을 낳으셨어요.”』

→ 벧엘에서 에브랏의 사이에 있었던 일, 에브랏=베들레헴

→ 라헬의 난산, 산파의 이야기

cf. 베들레헴으로 가는 난산인 라헬 vs 예수의 출산을 앞둔채 베들레헴에 들어가는 마리아

   출산후 사망한 라헬 vs 출산후 마굿간에 있던 마리아


(창 35: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창 35:18) 『그러나 산모는 숨을 거두고 있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d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e베냐민이라고 하였다. (d. 내 슬픔의 아들 e. 오른손의 아들)』

→ 난산후 죽게 되면서 베노니(내 슬픔의 아들)라고 불렀다. 마지막 순간 라헬의 감정은 슬픔, 요셉을 잃은 슬픔 뒤에 낳은 아들이다.

(렘 31: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 31:15) 『<라헬의 탄식과 하나님의 위로>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라마에서 슬픈 소리가 들린다. 비통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다. 자식들이 없어졌으니, 위로를 받기조차 거절하는구나.』

(마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마 2:18) 『i"라마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 (i. 렘 31:15)』


cf. 요셉을 잃은 야곱의 슬픔

(창 37:31-35)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가져다가 숫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의 채색옷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발견하였으니 아버지 아들의 옷인가 보소서” 하매 [33] 아버지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요셉이 분명히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 오래도록 애통, 위로를 받지 않음, 스올로 가겠다고 함, 울다.

- ‘베냐민’(오른손의 아들),

→ 야곱에게 베냐민은 어떤 아들인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낳은 요셉은 어느날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편애하던 야곱의 마음은 너무나 힘들다. 이후 벧엘로 올라가고 난산으로 아내가 죽고, 아내가 지은 이름이 아닌 ‘오른손의 아들’이란 이름을 짓는다. 야곱의 마음은 슬픔에 빠지기 보다는 요셉을 대신하는 오른손과 같은 역할을 생각한다.

Q. 벧엘의 재경험이 더욱 그러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첫벧엘은 앞으로의 미래, 다음 벧엘은 지금까지의 삶을 확인하고 앞으로를 바라보는 이스라엘이 되는 장소였다.


(창 35:19-20)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창 35:19-20) 『[19] 라헬이 죽으니 사람들은 그를 에브랏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다가 묻었다. [20] 야곱이 라헬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비가 라헬의 무덤을 가리키고 있다.』

→ 라헬의 장례와 묘비

cf. (삼상 10:2) 『네가 오늘 나를 떠나가다가 베냐민 경계 셀사에 있는 라헬의 묘실 곁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니 그들이 네게 이르기를 네가 찾으러 갔던 암나귀들을 찾은지라 네 아버지가 암나귀들의 염려는 놓았으나 너희로 말미암아 걱정하여 이르되 내 아들을 위하여 어찌하리요 하더라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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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의 이동

(창 35: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창 35: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서 에델 망대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장막을 쳤다.』


* 역기능적 가족모습

(창 35: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창 35:22) 『이스라엘이 바로 그 지역에서 머물 때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였는데 이스라엘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다.』

- 르우벤-레아의 첫아들, 이일로 장자의 상속권을 상실한다.(창 49:4)

(창 49:4)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① 세겜 : 요셉을 잃고, 시므온과 레위의 살육

② 벧엘 : 약속의 재경험

③ 베들레헴 : 라헬의 죽음과 베냐민의 출생

④ 에델망대 : 르우벤의 죄. Q. 르우벤과 라헬의 종이었던 빌하는 왜 동침했을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아픔인가?

⑤ 기럇아르바의 마므레(27) :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 야곱의 12아들

(창 35:22b-26) 『[22] ..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 모계로 구분되는 12아들, 이후 12지파의 완성을 말한다.


* 이삭의 죽음과 장례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창 35:27) 『야곱이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다.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살던 헤브론이다.』

- 기럇아르바의 마므레 : 이제야 아브라함과 이삭이 머무는 헤브론에 왔다. 에서는 에돔으로 갔지만 장자가 된 야곱은 완전한 귀향을 이루게 되었다.


(창 35:28-29)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창 35:28-29) 『[28] 이삭의 나이는 백여든 살이었다. [29] 이삭은 늙고 나이가 들어서 목숨이 다하자 죽어서 조상들 곁으로 갔다.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안장하였다.』


* 야곱에게 아버지의 죽음이란?

① 먼길을 돌아오게 한 원인. (창 27:1-2)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② 회피의 삶을 선택하게 했던 원인. (창 27:42-44) 『[42] 맏아들 에서의 이 말이 리브가에게 들리매 이에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그 한을 풀려 하니 [43] 내 아들아 내 말을 따라 일어나 하란으로 가서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피신하여 [44] 네 형의 노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주하라.』

③ 이삭의 장례식 : 산자의 하나님과 함께 이스라엘로 그 자리에 있다.

④ 형과의 한자리 : 진정으로 화해의 결과 모습


* 야곱에게 아내의 죽음이란?

① 가장 외로울 때 만난 여인, 엄마 리브가를 닮아 엄마를 대신하게 한 아내

② 엄마에게는 따라야 했지만 아이를 낳게 하라는 라헬의 요구에는 화를 내었다.

③ 자신의 사랑과 관심은 라헬을 넘어 요셉과 베냐민에게까지 이어진다.

④ 이런 야곱이 라헬에게 묘비를 세워주지만 슬픔에 빠지기 보다는 베냐민을 통해 이겨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리]

① 형을 피해 도망하던 야곱을 다시 벧엘로 돌아오게 하겠다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

② 용기를 갖고 벧엘로 돌아오겠다는 야곱의 약속을 하나님이 이루신다.

③ 야곱이 주연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④ 벧엘로 돌아온 야곱은 아내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다. 시간의 흐름을 경험한다.

⑤ 그들의 죽음을 극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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