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주도적 근면한 고백

시리즈설교 2018. 6. 20. 16:40

사도신경과 고백 1-내가 믿사오며 ... 아멘

(히 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언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1-3)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2] 실상 옛 조상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좋은 증언을 받았습니다. [3]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곧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생기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 내가 중요시 여기는 단어는?



* 사도신경의 시작 - 초대교회의 세례식에서부터 시작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3세기에 신앙고백의 핵심, 세례문답이 되었다.

4,5세기경에 확정이 되고 천주교에서 받아들여졌고, 종교개혁 때 루터와 칼빈의 신앙고백의 기준이 되었다.

Credo in Deum Patrem omnipotentem;

Credo = I believe


* 무엇을 믿는가?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이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에게 신앙과 신뢰를 고백한다.



* 고백을 통해 무엇을 얻는가?

안보이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것과 보이는 증거로 신뢰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 우리의 고백은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신앙의 확신을 갖고, 그분이 주시는 보이는 증거로 신뢰를 하게 될 때 우리의 고백은 ‘구원’과 연결되고, 회복과 성장으로 이어진다. 현실적으로 내 삶을 구원으로 ..

신앙의 장소는 ‘인식-앎’의 관계가 아니라 ‘신뢰-지속성’의 관계 안에 있다. 신앙은 객관적으로 서술되어진 의미에서의 ‘앎’이 아니고 사랑과 신뢰 안에서 인격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사 7: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누가 고백을 하는가?


 

사도신경과 고백 2-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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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존재하는 것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그 안에 우리(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전능한 하나님 → 내 아버지 ?  내 아버지 → 전능한 하나님 !

(내 아버지=전능한 하나님)


[아버지]

야훼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른 분은 예수님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것? 구원, 사랑


아람어 Abba    헬라어  πατερ

(막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우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 가부장적 권위적

*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


[전능함]

- 성경적이고, 예언자적이고, 사도적인 고백이고 관계이다.

(렘 32:21) 『주께서는 강한 손과 편 팔로, 적들이 무서워 떨게 하는 많은 징조와 기적들을 나타내시면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창조주]

성경적인 고백 - 우리가 만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다.


[하늘과 땅]

- 하늘 -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영역

-  땅  - 인간이 접근할 수 있는 가시적인 영역

-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피조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

(롬 8:38-40)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정리]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아버지로 우리 삶에 들어오신다.

우리 삶을 전능하심으로 인도하시고 구원과 사랑을 보이신다.

그 분에게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모습을 본다.

우리는 피조물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창조주 앞에 있다.

⇒ 결국 그 아버지이시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시고 만들어 가신다.

⇒ 곧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고백하는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만들어 가시는 분이다.

 

사도신경과 고백 3-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 복습 ]

- 사도신경은 근면한 고백이다.

- 사도신경은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성경적으로 아버지로 우리 삶에 들어오신다.

- 우리 삶을 전능하심으로 인도하시고 구원과 사랑을 보이신다.

- 그 분에게서 하늘과 땅의 창조주의 모습을 본다.

-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창조주 앞에 있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익투스(ἰχθύς) - '물고기'

 

Ἰ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ός Σωτήρ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주(主)는 나의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


[예수]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리스도]    기독교신앙-예수를 그리스도 고백하는 신앙

“기독교신앙의 출발점과 중심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오스카 쿨만,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주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출발점이고, 기독교운동의 중심점이고, 역사적인 근거이고, 교리적인 기초이다.

(행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 외아들]

신의 아들? 이집트 파라오는 태양신의 아들, 로마황제는 신의 아들, 헬라문화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

(출 4: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시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1.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선택


2.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와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요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3. 하나님의 아들은 외부로 향한다.

(빌 2:6-8) 『[6]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아들의사명과운명은우리의운명과 밀접한 연결이 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란 양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로서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으로 고백한다.


[우리 주]

헬레니즘 - 위대한 주 신들, 로마의 황제-주와 신

구약과 이스라엘의 개념 - 야훼를 주님으로

기독론의 핵심-‘예수가 주님이시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 부활한 예수를 바라보며 고백한다.

(요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행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2. 주님의 고백으로 그리스도의 현재와 그리스도인들의 현재가 규정된다.

“오소서. 주 예수여”


3. 개인과 교회의 영역을 넘어 인류와 모든 피조물을 위한 고백이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엡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정리]

- 예수라는 이름은 이름에 어울리는 구원자이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잘 표현하는 이름이다.

- 그리스도는 기독교신앙의 출발점이고 핵심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갖게 한다.

-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선택과 관계를 나타내고, 세상을 향하게 하고, 그의 사명과 운명은 우리와 연결된다.

- 우리주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내 삶에 오셔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와 동일하게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사도신경과 고백 4-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 복습 ]

- 사도신경은 근면한 고백이다.

-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예수라는 이름은 이름에 어울리는 구원자이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를 잘 표현하는 이름이다.

- 그리스도는 기독교신앙의 출발점이고 핵심이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정체성을 갖게 한다.

- 하나님의 아들은 신성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선택과 관계를 나타내고, 세상을 향하게 하고, 그의 사명과 운명은 우리와 연결된다.

- 우리주는 우리의 삶을 다스리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내 삶에 오셔서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와 동일하게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 성자 하나님이 어떻게 이땅에 오셨는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는가?

- 신화적으로 : 제우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 영지주의적으로 :

- 헬라문화로 : 로마와 황제

(마 1:18-23)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방법으로,

마리아를 통해 인간적인 방법으로

역사 속에 인간으로


(갈 4:4) 『그러나 기한이 찼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이고 전적으로 인간의 역사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 인간으로’ 왜 우리에게 오셨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왜 인간이 되었는가?


(눅 1:35-38)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46-53) 『[46] 그리하여 마리아가 노래하였다.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48] 주께서 이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49] 힘센 분이 내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은 거룩하고, [50]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51]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52]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53]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곧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은 은혜를 입은 인간의 고백이다.


[정리]

예수는 어떻게 우리에게 오시는가?

-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과 함께

예수는 왜 오시는가?

-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를 위해 구원하시기 위해

 

사도신경과 고백 5-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이다.

-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내 삶에 오신 하나님은 아버지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내 삶에 오신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닮아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 예수는 어떻게 우리에게 오시는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과 함께

- 예수는 왜 오시는가? - 하나님의 창조하신 자를 위해 구원하시기 위해

∴ 성령과 함께 하는 주도적이고 근면한 삶의 고백과 결단


* 당시 사람들은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오시고 인간으로 사셨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을까?

- 영향 : 영지주의, 신화, 헬라사상, 가현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예수의 인성을 믿지 않는 시대적 상황]


(고전 15:13-14)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빌라도의 위치]

* 빌라도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을 인정하지 않는 ‘대표자’

(행 3: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요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

* 빌라도의 위는?                      

* 예수님의 위는?


[고난을 받으사]

*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고난의 대표한다.

(요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정리]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 있음은 인성에 대하여 역사적이고 구체적인 증거이다.

빌라도는 세상의 모든 것의 대표자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모든 사람의 고난을 대표한다.

예수님은 근면함으로 거룩한 고난을, 모든 고난을 짊어지신다.

우리는 우리 고난을 대신 짊어지시는 그와 함께 한다.

 

사도신경과 고백 6-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이다.

- 사도신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내 삶에 오신 하나님은 아버지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내 삶에 오신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닮아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은 성령으로 참하나님으로,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으로 참인간으로 이땅에 오셨다.

∴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고난을 대표하며, 근면함으로 거룩한 고난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죽으시고 묻히시고]

* 영웅의 공통점 (조셉 캠벨 Joseph John Campbell 미국의 신화학자)

1. 영웅의 생애는 출발과 좌절-모험-귀환 : 미숙한 상태에서 완성된 경지로 발전하는 과정

2. 인간의 초인적 투쟁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보이려는 것


[세상과 성경의 아름다움의 차이]

(고전 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 예수의 전적인 자기희생의 사랑  vs 저주


(막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버려짐과 절망의 지옥행]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창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6: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요 8:24)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벧전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엡 4: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계 1:18) 『살아 있는 자다. 나는 한 번은 죽었으나, 보아라,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있어서,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루터-그리스도가 사탄과 그세력과죽음의 세계와 전투하고 승리했다..

칼빈-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보고 그곳에 내려갔다.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어디에? 우리는 어디에?


[유일한 희망 십자가]

‘유일한 희망 십자가를 바라보라’ Ave crux spes unica


[우리도 이웃과 함께]

* 우리의 관심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 십자가의 기억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눅 9:23)


[정리]

예수는 죽으시고 묻히시고 지옥에 내려가심으로 가장 밑까지 내려가셨다.

예수는 하나님이 부재한 곳까지 가셨다.

세상이 저주라는 십자가는 예수님의 거룩한 고난이고 우리를 위한 사랑이다.

하나님도 그 십자가에서 함께 고난을 당하신다.

우리도 예수와 함께 가고 있다.

 

사도신경과 고백 7-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내 삶에 오신 하나님은 아버지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내 삶에 오신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닮아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은 성령으로 참하나님으로,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으로 참인간으로 이땅에 오셨다.

∴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고난을 대표하며, 근면함으로 거룩한 고난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장사되고 지옥에까지 내려가시고, 하나님이 부재하는 곳까지 가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 2천년동안 내려온 고백으로 우리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1. 금요일 십자가 죽음 : 주일 부활

2. 분리가 아닌 연장곡선

3. 예수께서 지옥에 가신 것은?

(벧전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제자들의 부활신앙, 부활체험]

(고전 15:4-6) 『[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세상의 반대? 나의 반대!]

로마군병 vs 나 자신


[부활은 기독교의 시작]

1. 예수의 부활은 성육신의 증거이다.

2. 예수의 부활은 완전한 죽음 뒤에 있는 완전한 부활이다.

3. 예수의 부활은 구원과 사랑이다.


[삼일만에]

1. 예수님의 예언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눅 9: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 성경의 증거

(행 10:40)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고전 15: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3. 구약의 예언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1. 예수의 부활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이다.

2. 예수의 부활을 우리를 의롭게 하는 증거이다.

3. 기독교의 부활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생명의 신비로운 변화이다.

4. 예수의 부활은 종말에 발생할 ‘죽은 자의 보편적 부활’이 선취된 사건이다.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정리]

부활은 기독교신앙고백의 시작이며 성경적으로 3일만에 일어났다.

부활은 예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 일으키신 기적이듯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오셔서 일으키시는 기적이며 신령한 몸으로 부활이다.

부활은 우리 삶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의로움이고, 구원이다.

제자들은 지옥같은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고백하고 증인이 되었다. 우리의 부활고백은 주도적 근면한 고백이다.

 

사도신경과 고백 8-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내 삶에 오신 하나님은 아버지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내 삶에 오신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를 닮아 나를 만드시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 우리에게 오신 성육신은 성령으로 참하나님으로, 마리아의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으로 참인간으로 이땅에 오셨다.

∴ 그리스도의 고난은 모든 고난을 대표하며, 주도적이고 근면함으로 거룩한 고난을 짊어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지옥에까지 내려가시듯, 하나님이 부재하는 곳까지 가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 부활은 기독교신앙고백의 시작이고, 제자들이 지옥같은 삶 속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고백하고 증인이 되었듯이 우리 삶에도 하나님이 오셔서 일으키시는 기적이며 신령한 몸으로 부활이다.


오늘 이야기는 부활이후 승천과 하나님우편, 재림과 심판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이것을 어떻게 고백할까? 

 

(행 1:1-11)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하늘에 오르사-승천의 모습]


* 승천의 의미

승천은 새시대의 전환점이다.  성령과 교회의 시대이다.


[지옥에서 하늘로]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 하늘-땅-지옥의 삼층적인 세계상을 가진다.

* 시간적으로는 3등분-과거 현재 미래

과거-하늘에 오르사

현재-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미래-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승천은 증인으로]

(행 1:10-11)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의 승천은 실제적으로 사람들의 변화와 실천을 요구한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부활이 새로운 모습으로 ‘존재의 변화’라면 승천은 증인이라는 ‘실천의 변화’를 고백한다.


[하나님 우편]

'하나님 우편' - '직위와 기능'을 말한다.

(시 110:1)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행 7:55-56)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예수님은 우리와 멀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새로운 존재양식

예수의 역사는 믿음에서 우리의 현재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올리우셨다는 것은 우리의 운명, 구원받은 인간의 구체적인 운명

하늘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현재이고 미래이다. 그 미래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 인간의 본질로 들어온다.


[재림과 종말론]

‘저리로서’- ‘거기에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이것은 ‘미래의 표현’이다. 그는 있었고 있고 또한 있을 것이다. ‘그는 오신다’ 그래서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기독교교회의 가장 오래된 기도형태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행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기독교적 세계관은 종말론적인 구원관이다.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not Yet)

* 재림은 우리의 기도이고 구원이다.


[심판과 공의와 희망]

(히 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산자와 죽은자는 누구인가? 정말 살고 죽은자, 복음에 살고 죽은자, 고난에 살고 죽은자.. 결국 모든 사람들이다.


[정리]

승천은 새시대의 전환점으로 우리를 증인되게 하는 ‘실천의 변화’에 대한 고백이다.

재림은 우리의 기도이고 구원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이고 희망이다.

승천, 하나님 우편, 재림, 심판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과거 현재 미래이다.

 

사도신경과 고백 9-성령을 믿사오며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이고 근면한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내 삶에 오신 하나님은 아버지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내 삶에 오신 “그 외아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육신, 고난, 십자가,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 재림, 심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 승천은 새시대의 전환점으로 우리를 증인되게 한다.

  하나님 우편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현재이고 미래이다.

  재림은 우리의 기도이고 구원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공의이고 희망이다.


(내가) 성령을 믿사오며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I believe in God, ... and in Jesus Christ, ...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성령에 대한 이해? 오해?

1. 새로운 약속과 새로운 현실을 강조한다.

2. 새것은 일반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3. 새것은 옛것에 근거한다.

* 성령의 현재와 관계


[성령은 우리를 참여하게 한다]


[주는 영이시다]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내적인 경험과 외적 확대]

객관적으로 이루어진 구원의 사건이 주관적인 자기 안에서 자기 것이 되게 한다.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

(갈 5:19-21)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4-25)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교회와 선교]

교회의 시작은?

교회는?

교회의 넘침?


[성령의 중보]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정리]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성령은 우리를 참여하게 한다

주는 영이시다

내적인 경험과 외적 확대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교회와 선교, 중보로 이어진다.

곧 세계는 성령의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신화적인 고백이 아닌 초대교회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계한 성령에 대한 고백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현재 우리와 교회의 삶에 직접적인 현재가 되게 하고, 성령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주도적이고 근면하게 적극적이고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충만하게 한다.

 

사도신경과 고백 10-거룩한 공회와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인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성자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님이며, 그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주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묻히시고 장사되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기도와 희망으로 하나님우편과 재림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를 고백한다.

∴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참여하게 하며, 내적인 경험을 외적으로 확대한다.



거룩한 공회와,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I believe) the holy catholic Church,


[교회와 믿음?]

believe in  vs  believe

교회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활동으로 세워지게 된다는 것

교회는 성령의 활동과 진행과 방향

신약성서-교회는 위대한 약속을 받은 지상의 교회들로 이어졌다.

구약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신약적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

교회에 대한 오해 - 고정되고 제도적인 교회로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참된 교회는 보이지 않으며 성령의 독자적인 경륜 아래 있다.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

거룩한 공회와, I believe the holy catholic Church;

                        (sanctam ecclesiam catholicam)

‘공교회’(公敎會)

‘공’? catholic, 라틴어로 catholicam, 헬라어로 '카톨리코스'(우주적, 보편적, 공동적, 일반적, universal, general)

보편적(Universal Church)

*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첫째는 거룩하다   둘째는 보편적이다.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 거룩해진 특별한 부름을 받은 존재의 과제에 대한 인식을 강조한다. 부름받은 자가 그에게 주어진 과제를 인식하고 그 부름에 대해 반응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에 방향을 맞추어 나가는 것은 그의 삶을 거룩하게 하기 위한 모습이다.


[교회의 과제-예배]

“교회의 예배는 지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가장 절실한 것, 가장 영광스러운 것이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성령의 일이고 신앙의 행위이기 때문이다.”-칼 바르트

“교회는 복음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들의 모임이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희망한다면 우리는 비참한 교회에 확고히 머물 수 있다.”-바르트의 경고


[성령과 말씀과 교회]


[정리]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이다.

교회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로 구별된다.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바라본다.

교회의 과제는 예배이다. 예배는 성령의 일이고 신앙의 행위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를 희망한다.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다.

 

사도신경과 고백 11-성도가 서로 교통함과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인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성자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님이며, 그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주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묻히시고 장사되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기도와 희망으로 하나님우편과 재림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를 고백한다.

∴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참여하게 하며, 내적인 경험을 외적으로 확대한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바라보며, 예배는 성령의 일이고 신앙의 행위이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the communion of saints;


(마 5:22-24)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성령과 교회와 성도의 관계안에서 친목


*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교제이다.

교회의 세가지 사명 - 전도(케리그마, κηρυγμα)  봉사(디아코니아, διακονια) 친교(코이노니아, κοινωνια)

 

* 성도는 누구인가?

1. 기독교인의 교제-

2. 순교자들과 교제-

3. 성례전(상타 sancta)-


* 성자들의 반열에 참여하게 된다→ 신자들이 구원에 참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참여한다

-그리스도와 교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와 교제

-선교와 교회의 일을 통해서 중재되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교회행정은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위해


* 형제애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정리]

성도의 교제는 신령한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성도의 교제는 성례전과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성도의 교제는 신자들을 구원에, 그리스도에게 참여하게 한다.

 

사도신경과 고백 12-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인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성자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님이며, 그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주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묻히시고 장사되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기도와 희망으로 하나님우편과 재림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를 고백한다.

∴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참여하게 하며, 내적인 경험을 외적으로 확대한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바라보며, 예배는 성령의 일이고 신앙의 행위이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고백으로 신령한 교제이고 말씀과 성례전으로 고백된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the forgiveness of sins;


* 우리는 어떤 존재일까요?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전통적으로 기독교의 죄의식은?


* 사도신경에서 죄의 용서는 어떻게 고백되었는가?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 루터는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이 조항에서 손을 뗄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다.”

- 바르트는 “그것은 진지하게 기독교적인 삶으로 불리워지는 모든 것의 공통분모이다.”


* ‘죄’라는 개념의 오해?

* ‘용서’라는 개념의 오해?


* 단지 죄의 용서뿐인가?

(마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 창조적인 새로운 시작

 

[정리]

우리의 삶에는 죄의 용서가 고백되어야 한다.

우리의 용서는 창조적으로 세상을 향해야 한다.

 

사도신경과 고백 13-몸이 다시 사는 것과

 

(고전 15:12-20)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인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성자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님이며, 그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주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묻히시고 장사되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기도와 희망으로 하나님우편과 재림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를 고백한다.

∴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참여하게 하며, 내적인 경험을 외적으로 확대한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바라보며, 예배는 성령의 일이고 신앙의 행위이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고백으로 신령한 교제이고 말씀과 성례전으로 고백된다. 죄의 용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고백하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향하여 한다.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몸이 다시 사는 것과,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 부활은 기독교의 시작이고, 제자들은 부활경험을 선포한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 육의 부활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과거 현재 미래

→ 우리의 직접적인 고민이고 미래이고 고백이다.


* 육의 부활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고전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육의 부활 vs 죽음의 문제?

- 구약은?

- 신약은?

- 사도들은?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롬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육의 부활 vs 영혼불멸

- 기독교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와 운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 고백의 희망을 근거로 하기 때문


* 육의 부활을 통한 구체적인 근거 3가지

1. 육의 부활은 기독교적인 구원을 기대하는 전부를 말하다.

- 변증가 저스틴(Justin) “하나님은 인간을 삶과 부활로 불러내셨다. 이것은 인간 일부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육과 영으로서 인간 전체에 해당된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2. 육의 부활은 기독교 희망의 전체적인 현실관계를 강조한다.


3. 육의 부활은 더 넓게 이해되어야 한다.

- 몸(σομα 소마) vs 육(σάρζ 사륵스)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σάρζ)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요 1:14) 『말씀이 육신(σάρζ)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부활의 희망

1. ‘하나님과 함께 하는 나’를 희망한다.

2. 죽음은 대답이 아닌 질문이며 부활이 대답이다. hh

3. 나의 죽음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으로서 그의 죽음에 참여한다.

4. 나의 죽음은 인류의 죽음이고, 인류의 부활은 나의 부활이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개인적인 인격적인 사건을 넘어 인류와 역사적인 영역으로, 우주적인 사건으로 고백하자.

6. 부활은 하나님의 우주적인 승리이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

7.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이고,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8. 부활의 선포는 살리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

[정리]

산자의 하나님은 신실한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지키시고 우리는 육의 부활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고백한다.

 

사도신경과 고백 14-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 복습 ]

- 사도신경은 주도적인 고백,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고백이다.

∴ 하나님은 아버지로 우리 삶에 오셔서 전능함으로 구원을 주시고 창조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신다.

∴ 성자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주님이며, 그는 성령으로 마리아의 주도적 고백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를 위해 주도적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사 죽으시고 묻히시고 장사되고 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가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증인되게 하시고, 우리의 구원과 기도와 희망으로 하나님우편과 재림 심판하러 오신다. 그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우리는 늘 우리와 함께 함으로 그를 고백한다.

∴ 성령하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고 참여하게 하며, 내적인 경험을 외적으로 확대한다. 교회는 성령의 활동의 장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원사건을 바라보며, 예배는 성령의 일이고신앙의 행위이다.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고백으로 신령한 교제이고 말씀과 성례전으로 고백된다. 죄의 용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고백하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향하며, 우리는 몸이 다시 삶으로 부활을 선포하는 자가 된다.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 예수님의 소원? 우리의 소원?


* 영원한 삶과 유사한 사상들

1. 심리적으로 현실을 극복하려는 경향 - 불교의 해탈이나 니르바나

2. 영혼불멸설 - 종교학적이고 철학적인 용어

3. 구약에서는 영생을 말하지 않는다는 견해 - 스올과 죽음

4. 유토피아니즘(utopianism) - 공산주의


* 성경에서 영원한 삶은?

1. 성경은 생명을 중요시 여긴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2. 지상의 것과 영원한 것, 시간과 영원을 구분하거나 대조하지 않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한다.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3. 영원한 삶은 하나님 앞에서만 생각될 수 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니,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발견할 때까지 불안합니다.’(고백록 I.1)

→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1. 안식을 주신다.

2. 상처의 치유를 주신다.

3. 하나님은 빛이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4. 하나님은 사랑이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영생을 주셨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 영생이란? 아이오니오스 αιώνιος

1. 질적인 표현이고 생명이다.

2. 하나님의 약속이고 선물이다.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3.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영생이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영원한 삶을 얻으려면?

1. 인지-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2. 믿음-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종합하여 표현하는 것이 성례이다.


* 영생은 언제부터?


* 요약, 영원한 삶이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마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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