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복음서 08. 예수께 찾아왔던 니고데모

성경인물탐구/복음서인물 2013. 12. 19. 07:01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예수께 묻다]

(요 3: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 신분을 밝히는 니고데모 - 소속(바리새인), 이름(니고데모), 신분(유대인의 지도자)

→ 그는 산헤드린의 의원으로서 유대인들 중에서 지도자계급에 속한다.

cf. 요한저자가 당시 정통한 랍비요 유대의 최고중앙의결기구이며 최고 재판소인 산헤드린의 의원인 니고데모를 집중 언급하는 것은 유대사회의 엘리트 중에도 예수께 관심을 갖는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Q. 이런 신분의 니고데모는 왜 위험과 곤란을 감수하고서라도 무엇을 알고 싶어 예수께 왔을까?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언제? 밤에 찾아온다. 저자는 그의 방문시간을 밝힌다. 이는 그가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지도자로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cf. 요한복음에만 3번 나온다.

1. 요 3:1-21 밤에 찾아오다.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

2. 요 7:45-52 예수를 잡으려 할때 소극적이나 반대의견을 말한다. (요 7:50)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3. 요 19:38-42 예수의 장례에 함께 한다. (요 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 왜? 그는 당시 예수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유대종교지도자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밤을 택할 정도로 질문할 것이 있었다.

cf. 반대자에게 찾아오는 경우는 두가지다. 그를 넘어뜨릴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정말 궁금증을 갖고 찾아오는 경우다. 전자는 자신의 의도를 숨기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 누구? ‘우리가 .. 아나이다’라고 한다. 혼자가 아님을 말하며 자신과 같은 신분의 대표로 자신이 왔음을 말한다.

- 평가와 존중?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니고데모는 동료그룹을 대신해서 예수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예수의 여러 정보와 행적에 대해 이미 들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cf. 이것은 바리새파의 의견과 반대된다. 그는 후에 예수를 잡으려 할때 소극적이지만 반대의견을 말한다.(요 7:45-52)

- 내용과 이유?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는지 그 근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할 수 있는 표적을 보인다는 것이다.

⇒ 유대교지도자인 니고데모는 예수에 대한 정보를 들은 그룹을 대표로 하여 밤에 찾아온다. 그 그룹은 그들이 들은 정보로 통해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니고데모의 관심, 그것은 시대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 표적(σημειν) : 지시(특히 의례적으로 초자연적으로), 기적 표적 표시 이적 sign


(마 12: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눅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요 6:22-40)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정리]

한 사람의 관심은 시대적인 관심을 질문한다.

그 관심은 행동으로 옮기게 하고 건강한 관심은 메시야를 향한다.

건강한 관심은 살리는 역할을 하고 이후에도 영향을 준다.

건강한 관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질문하는 니고데모과 대답하는 예수님]

 

 

Q.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질문하기를 원하실까?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계실까?


(요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 표적을 질문한다. 개인의 관심이며 시대의 관심을 질문한다. 질문은 예수께서 메시야이신지 확인하길 원했고 그 증거로 예수께서 보이시는 표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메시야이심=표적을 행함’으로 이해한다.

cf.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표적인가? 신적인 기적을 우선 보기 원하지 않을까?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눈에 보이는 표적을 통해 메시야를 확인하길 바라는 니고데모의 질문을 들으며 예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 거듭(ἄνωθεν 아노덴), ‘위로부터’(장소), ‘일찍부터’(시간), ‘다시’, → 거듭나다(γεννηθη ἄνωθεν 겐네데 아노덴) ‘위로부터 태어나다, 다시 태어나다’ → 전과정이 하나님의 의해서 가능하다

-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조건은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즉 하나님의 의해 다시 태어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 예수의 대답은 동문서답같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공동관심에 대해 니고데모가 전혀 생각지도 알지도 못했던 내용을 말씀하고 있다.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 예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한 그는 시간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이 어떻게 뒤로 가냐고, 어미의 배로 다시 들어가냐고 묻는다.

cf. 예수의 의도는 위에서 아래였으나 니고데모의 이해는 시간적 방향적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 니고데모는 진리에 관심이 많아 예수께 물으러 왔으나, 율법에 정통한 반면 신령한 지식은 부족하거나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 니고데모의 이해는? 혈육적인 이해였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서 할례를 받음으로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율법의 유대적 이해 안에서 생각한 것이다.


(요 3:5-8)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cf. 물과 성령은 무엇일까? 물=회개, 성령의 임함?

⇒ 예수의 의도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육이 아닌 영적으로, 후퇴가 아닌 위로부터 다시, 하나님의 의해 태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혈육은 그 출처가 보이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났기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 놀랍게 여기지 말라 → 니고데모의 반응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놀랄 정도의 반응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거부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  바람이 임의로 불매 → 바람이 사람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지 않듯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 사람도 그러함을 강조하신다.


(요 3: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 수사적 질문을 통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한다. 율법에 정통하며 아브라함의 혈육적 관계안에서 이해했던 부분을 넘어 받아들일 수 없음을 말한다.

(요 3:10-15) 『[10]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 니고데모는 율법에 정통한 이스라엘의 선생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위치가 진리를 배우는 사람이 아닌 가르치고 인도해야 하는 사람임을 말씀한다. 그럼에도 남을 가르치는 그 자신조차도 하나님의 본질적인 모습을 알지 못함을 책망하신다.

cf. 이스라엘의 교사에 대해 예수의 주로 하신 책망은 ‘소경이 인도한다’ 것

(마 23:16)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 우리는 그것을 증거하지만 너희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땅의 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위의 것, 위에서 내려온자를 어떻게 이해하겠냐고..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한 백성들에게 불뱀재앙이 있을 때 거기서 구원받는 방법은 놋뱀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영생을 얻음을 말씀하신다.

⇒ 이렇게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의 진리에 대한 마음은 받어주면서도 오류에 대해서는 고쳐주시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신다.

⇒ 니고데모의 오류의 질문은 오히려 복음의 핵심을 나타내고 있다.

cf. 요한복음서가 기록될 당시 유대주의와 영지주의가 기독교신앙을 위협하고 있었다. 혈통과 같은 땅의 것을 추구하는 유대인과 영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바른 하나님의 의도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 3:16-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 땅의 것을 바라보며 이방을 거절하는 유대주의에게, 하늘의 지혜만을 원하며 이 세상을 악하다고 보는 영지주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 그 아들을 보낼 정도로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것 등 당시에 바르지 않은 생각과 종교관에 대해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고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이라 한다.

[정리] 한사람의 질문의 대답으로 하나님은 그 이상을 넘어 주신다.

한 질문이 다음 시대의 질문에 대답을 받게 한다.

한 질문은 지금 우리의 삶에도 대답을 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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