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 복음서 02. 마리아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성경인물탐구/복음서인물 2013. 4. 17. 12:51

 

[마리아는 왜 엘리사벳에게 갔을까?]


▷ 마리아의 방문

(눅 1:39-40) 『[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눅 1:39-40) 『[39] 그 무렵에 마리아가 일어나, 유대 산골에 있는 한 동네로 서둘러 가서,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였다.』

-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 ‘이때’는 천사가 떠난 직후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하러 떠난 것을 표현한다. ‘일어나’(아나스타사 ’αναστασα)는 누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 여행을 위해 준비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즉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듣고 엘리사벳에게 갔고 3개월을 머문 후 요한이 출생하기전 돌아온다.

- 빨리 산골로 가서 : 산골(오레이넨 όρεινην)은 유대산지를 가리키며, 엘리사벳의 동네를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학자들에 의하면 나사렛에서 150km 떨어진 헤브론 남쪽 유타(Juttah) 지방으로 추정한다. 이는 나사렛에서 출발하여 4일 이상 걸려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 문안하니 : ‘아스파조마이’(άσπάζομαι) ‘인사하다, 환영하다, 경의를 표하다, 포옹하다’ 단순히 형식적이고 고상한 인사가 아닌 늙은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천사의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함과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 인사하는 것이다.


Q. 마리아가 처한 상황은 무엇이고 왜 엘리사벳에게 갔을까?

▷ 정황에 대한 상상력

Q1. 왜 마리아는 ‘빨리’ 즉 서둘러서 엘리사벳의 집에 갔을까? 천사가 나타나 자신에게 특별한 은혜가 임한 것을 안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엘리사벳의 임신을 들었을 때 급하게 그에게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한다.

cf. 누가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온 것을 메시야가 오심을 준비하는 고백의 연장선에서 이야기한다. 엘리사벳은 태동을 느낀다. 즉 급하게 온 마리아의 상황은 위험한 상황이지만 누가는 엘리사벳의 태동을 통해 서로의 특별한 은혜를 나누는 3개월이 되게 한다.

(눅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Q2. 만약 마리아에게 이런 나눔을 할 수 있었던 엘리사벳이 없거나 가지 않았다면? 나사렛에서 그대로 계속 있었어야 했다면? 이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침묵하였던 것과 달리 더욱 감추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정혼한 여인의 간음으로 받아들여져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다.

(신 22:23-24) 『[23]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cf. 약혼은 정혼을 의미하며, 히브리어로 ‘키두쉰’은 거룩을 의미하는 ‘카도쉬’에서 파생되었다. 실제적인 혼인관계로 이해되고 남편이 있는 여인이 된다. 유대인에게 ‘약혼’은 법적 구속력이 있게 혼인을 약속한다는 표현이다. 부부생활은 신랑이 신부를 집으로 데려온 뒤에서야(혼인식 뒤에야) 시작되었다. 그런데 마리아의 경우 임신했다는 것은 남편있는 여인의 간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제일 무거운 형벌인 돌에 맞아 죽게 된다. 문제는 정혼한 상태에서 임신한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모두에게(친정과 시댁의 부모와 공동체까지) 씻을 수 없는 수치가 되고 가장 기본구조인 가족공동체가 깨지는 위가에 처하게 된다.

Q3. 결국 마리아가 나사렛에 그대로 있었다면? 굉장히 위험했을 것이다. 요셉도 조용히 파혼을 하려 했고, 사람들이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 마리아를 돌로 쳐 죽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cf. 천사가 수태고지를 말할 때 마리아도 이런 상황이 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소원했고 그 이야기는 요셉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엘리사벳과는 나누게 될 것이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Q4. 그렇다면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았을까? 마리아는 말없이 갔을까, 아니면 말하고 엘리사벳에게 갔을까? 천사의 수태고지를 들은 직후 간 것으로 볼때 일반사람들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요셉이 고민한 것으로 볼때 마리아는 자신에게 일어난 사실, 천사의 수태고지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cf. 그 이야기를 들은 요셉은 일단 마리아에게 엘리사벳에게로 가 있으라고 했을까?

Q5. 약혼녀의 임신사실을 알게된 요셉은 어떻게 하려 했나? ‘의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마태복음의 특성상 ‘의롭다’는 것은 ‘율법적이다’는 느낌을 준다. 즉 그가 율법적으로 행동해야 했고 가만히 끊으려 했던 것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셉의 결정은 이미 율법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방법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끊으려’ 했다. 즉 율법적으로 돌에 맞아 죽게 하지 않는다. 아니면 자신의 집안도 수치가 되기에 말하지 못할 수도 없다. 상황적으로 볼때 일반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 대해 요셉은 깊은 고민을 하여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마 1:18-19)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Q6.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가고, 이후 이것을 고민하는 요셉에게 천사의 현몽은 언제 있었을까? 바로는 아닌 것같고 요셉이 그 일을 생각한 것을 볼때 여러날의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cf.천사는 요셉의 감정을 그대로 읽어준다.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cf. ‘이 일’은 ‘이 일들’로 단수가 아닌 복수형이다. 즉 단순히 마리아의 임신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한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생각하다’ 역시 능동적 표현이 아닌 수동형으로 그런 모든 일들이 요셉은 생각되어지고 있었다. 자기 아내가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되는 요셉은 그로 인해 번민이 굉장히 심하여 파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cf. 이렇게 번민하며 파혼을 생각하는 요셉에게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천사가 꿈에 나타난 것이다. 그 천사는 요셉의 감정을 읽어준다. ‘마리아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

(눅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 천사는 사가랴와 마리아에게도 ‘무서워하지 말라’ 한다. 이는 자신에게 나타난 천사에 대해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기에 안정시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그가 고민하고 있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성령으로 된 것임을 말해준다.

Q7. 요셉은 마리아를 어느 시점에 데려 오나? 요셉은 천사의 현몽으로 마리아의 이야기를 믿게 되었고 마음의 걸림이 해결되자 마리아를 데려온다. 이런 과정은 어느정도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마 1:20) 『 ..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1: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Q8. 요셉은 마리아를 언제 데려오나? 마리아가 석달뒤에 갔다는 것은 요셉의 고민이 정리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을 때일 것이다. 아내를 데려왔다는 것은 그 3개월이 약혼의 기간이 지났음을 의미할 수 있다.

(눅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마 1:24-25)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Q9. 그렇다면 요셉이 마리아를 데려온 곳은? 같은 동네인 나사렛이 아닌 150km 떨어진 엘리사벳의 집일 수 있고, 혹은 거기서 돌아온 마리아를 데려왔을 수도 있다.

⇒ 즉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듣고 요셉에게 말한뒤 엘리사벳에게 와서 석달간 피해 지낸다. 그 사이 마리아는 단순한 피신이 아닌 엘리사벳과의 특별한 메시아에 대한 나눔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이 기간동안 요셉은 고민했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주었으며 이후 정식으로 결혼생활을 하도록 되었다.


[정리]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는 요셉에게 알리고 급히 엘리사벳에게 갔다.

이것은 천사의 말을 확인하는 은혜이며 동시에 피신이었다.

이 기간동안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요셉의 마음을 움직이고 데려오도록 했다.

마리아는 이 기간을 추억할 때 피신의 시간이 아닌 나눔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마리아의 신중한 고백]

▷ 천사를 만나는 마리아와 사가랴의 공통과 차이

 

마리아

사가랴

천사방문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인사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놀람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부름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진정

핵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이름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32] 그가 큰 자가 되고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물음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대답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예표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말씀은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고백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 천사의 방문

(눅 1:26-27)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 내용의 중심과 대상은 마리아와 임신이지만 주어는 천사 가브리엘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다.

-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 나사렛을 잘 모르기에 큰 지역부터 알려준다.

-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 누가가 요셉이 다윗의 가문 출신임을 굳이 밝히는 것은 메시야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예언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cf.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눅 1: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 은혜를 받은 자여 → 카리토오(χαριτό́ω) ‘값없이 은혜를 베풀다, 거저 주다’ 이 단어가 완료수동태분사로 쓰여서 마리아는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주시는 은혜와 호의를 입은 자이며 그 상태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천사의 나타남 이전부터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었다는 것.

cf. 그러한 은혜를 마리아는 알고 있었나? 우리의 삶은 어떤 상태로 계속 되고 있을까?

- 평안할지어다 → 카이로(χαί́ρω, rejoice) ‘유쾌하게 되다, 행복하다, 유복하다, 안녕(일반적으로 특히 인사로서)

→ 은혜받음, 평안하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 천사의 소리이며 우리의 상태


▷ 마리아의 반응

(눅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 천사의 방문은 준비되거나 예상된 방문이 아니다. 마리아는 초자연적인 실체가 자신에게 갑자기 나타났기에 심하게 놀란다. 그럼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미를 신중하게 생각한다.

cf. 마리아는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빠르게 판단하고 있다. 이런 신속한 판단이 끝에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 천사의 예고-예수의 오시는 목적은 구원과 다스림이다.

(눅 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 인간의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약한 자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관대한 처사이며, 인간이 무조건적으로 받게 되는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다.

cf. (창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즉 은혜받기 합당한 조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은혜를 발견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 기준에서 호의를 베푸실 때만 가능하다.


(눅 1: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잉태하여,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미래시제로서 단언의 의미이며, 천사의 예고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납득이 안되는 미래의 일들에 대해 확실성을 보장하고 있다.

- 예수 → 히브리어 ‘여호수아’와 동일하며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 예수의 잉태는 그 아들을 통한 인류구원이다. 미래시제를 통해 확실성을 예수의 오시는 목적을 보이고 있다.

cf. 우리의 삶에는 있는가? 지금 우리는 이 확실한 미래를 듣고 가고 있다.


(눅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 그가 큰 자가 되고 → 미래의 어느시점에 비로소 큰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큰 자라는 사실을 단언하는 표현이다.

-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 성부의 성자가 된다.

cf. 사람에 의해 진실한 고백으로 예수께서 이렇게 불린 적은 없다

1 하나님에 의해 수세 때와 변화산 때에만 있다.(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2. 사람에 의해

a 물에 빠진 베드로를 구하자 - (마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b 백부장의 고백-(막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c 베드로의 고백-(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

d 나다나엘의 고백 - (요 1: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3. 불신과 조롱으로

a 재판때 불신의 질문 - (마 26:63)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b 조롱하면서 (마 27: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 귀신과 사단에 의해

a 귀신에게서-(막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b 사탄의 시험중에 - (마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그 조상 다윗의 왕위 → 단순한 다윗 가문의 출생을 의미를 넘어 메시야는 다윗혈통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예수께서 유대인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야이심을 예언한 것이다.

(눅 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야곱의 집 → 좁은 의미의 혈통을 넘어 영적인 이스라엘과 모든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 하나님의 통치가 영원하심을 나타낸다.

▷ 모든 이야기를 들은 마리아의 반응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 현재시제를 사용함으로 과거의 모든 행동을 포함한 현재상태를 나타내며, 이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한다.

→ 마리아의 분명한 반응은 상황을 정확히 인지 판단하고 있다.

cf. 사가랴의 의심과는 마리아의 반응은 다르다. 사가랴는 안됨을 말하고 마리아는 어떻게 가능하는가를 묻는다. (눅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 천사의 대답-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눅 1: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 성령이 임함을 말함으로 예수탄생의 신비함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 마리아의 자궁에 생명이 생겨나게 하는 창조의 능력이다.

- 덮으시리니 → 에피스키아조(ἐπισκιά́ζω) 그늘지게 하다, 싸다. 구약에서 구름이 성막을 덮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재함을 나타낸다.

cf. 우리의 삶에는 어떤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덮혀 있을까?


(눅 1:36-37)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 친족 → 정확이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다. 엘리사벳은 레위지파이고 마리아는 유다지파이므로 이 둘은 조상의 혼인으로 형성된 친족일 것이다.

-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 모든 생식기능이 완전하게 정지되어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를 말하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가 알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의 이야기를 한다.

-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 이중부정으로 통해 강조하고 있다.


▷ 마리아의 고백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38) 『마리아가 말하기를 보십시오, 나는 주의 여종입니다. 천사님의 말씀대로 나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 말씀이 조금도 훼손됨 없이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 인간의 상식으로는 납득되지 않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있다는 천사의 말을 받아들임을 고백한다.


▷ 마리아 반응과 고백의 특징

(눅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눅 1: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

⇒ 상황은 굉장히 놀랍고 두렵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마리아의 반응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굉장히 신중하고 빠른 판단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고백으로 승화시킨다.


▷ 복있는 여인으로 불려진다.

(눅 1:42-45)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의 찬양과 고백-하나님의 이미지]

천사의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 급하게 엘리사벳의 집으로 간다. 그런 그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은 복중에 성령충만하고 기쁨이 넘치고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1:39-45)


▷ 마리아의 입장에서 이런 엘리사벳의 환대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1. 마리아가 처한 상황은 어떤가? 일반인이 보았을 때 율법적으로 결혼전 임신으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다. 그런 마리아가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도주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2. 이런 상황에서 천사를 만난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간”(39) 것은 어떤 마음일까? 불안과 두려움에 의한 도주인가, 기쁨을 표현한 발걸음인가?

3. 그렇게 도착한 사가랴의 집에서 엘리사벳의 성령충만한 환대와 큰 소리의 찬양은 어떻게 들렸을까? 같이 성령충만함을 나누나, 아님 불안과 두려움의 자신과 다른 엘리사벳을 보며 당황해 할까?

⇒ 그러나 46-56절에서 마리아의 찬양은 불안이 아닌 기쁨을, 두려움이 아닌 성령충만을 보인다.


(출 4:18-20) 『[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 마리아의 찬양 - 감정

(눅 1: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 찬양하며 - 메갈뤼노(μεγαλύ́νω)  ‘훌륭하게 만들다, 증가하다, (상징적으로) 찬양하다, 크게 하다, 웅장하게 하다, 크게 보이다’

→ 비유적 의미로 주를 ‘크게 높여 드리다’는 의미로서 주를 찬양하는 마리아의 마음이 형식적이 아닌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임을 나타낸다.

직설법 현재형을 사용함으로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생생한 느낌을 전함으로 마리아의 진실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 기뻐하였음은 - 아갈리아오(ἀγαλλιά́ω) ‘하늘로 치솟아오를 것같은 충만한 기쁨’을 의미함으로 마리아의 기쁨이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cf. 영혼(soul)-마음(spirit)(표준새번역, 마음-영혼), 주-하나님 내 구주, 찬양하다-기뻐하다 : 평행대구구조로서 시적 감흥을 더욱 살리는 문장이다.

⇒ 마리아의 감정은 현재 하나님을 향하여 열정적으로 높여 들이고 있고, 자신도 너무나 기뻐함으로 높여드림을 말한다. cf. 지금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넘어 찬양과 기뻐함이 넘치고 있다.


▷ 마리아의 찬양 - 이유

(눅 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 호티(ὅτι)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이라고 찬양한다.

- 비천함 : 타페이노시스(ταπείνωσις) (지위나 감정에 대해) 억압, 굴욕, 낮은 신분.

  비천한 :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 짓눌린, 굴욕감을 느끼는, 낙담시키는, 초라한, 낮은 등급

- 돌아보셨음이라 : 에피블레포(ἐπιβλέ́πω) = 위에서(에피 ἐπι) + 바라보다(블레포 βλέβω)

- 보라 이제 후로는 →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무엇인가로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말한다. 즉 낮고 비천한 한 여인이 메시야를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 가장 복되고 귀한 여인으로 변화되었고 그 모습이 모든 세대에 계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말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말한다.

- 복이 있다고 → 마카리조(μακαρίζω) 아름답게 하다, 행복하다고 하다.

⇒ 사람은 자신의 비천함에만 집중하며 힘들어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낮은 모습을 위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은 그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기뻐한다고 하며, 한 시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cf.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오히려 자신의 현재 부족한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것을 봐달라고 기도한다.


▷ 마리아의 찬양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

(눅 1:49-50)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 능하신 이가 ...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 마리아는 메시야 탄생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그분이 거룩하심을 고백함으로 자신의 삶과 상황을 연결하고 있다.

-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 거룩하심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을 고백한다.

⇒ 마리아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이 있음을 고백한다.

cf.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고 있을까?


▷ 마리아의 찬양 - 마리아가 보는 것

(눅 1:51-53)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힘과 능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 마리아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내보이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음을 말함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비천한 계집종의 위치에서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 비록 세상에서 권세있는 자들이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리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 반대로 세상 가운데 낮고 천한 자들일지라도 또는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이 높이신다고 고백한다.

- 주리는 자를 좋은 것(ἀγαθό́ς)으로 배불리셨으며 →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선한 것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의미. 이는 단순한 채움이 아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가득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빈손으로’는 ‘좋은 것’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부족할 것 없는 부자임에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텅비었음을 말하며, 보내셨다는 말은 ‘밖으로 멀리 내보내어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의미.

⇒ 마리아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굉장히 건강하며 바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의 부족과 비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늘의 하나님을 올려다보게 한다.

cf. 이러한 이미지가 어린 예수님이 성장하는데 아버지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좋은 아버지상을 주었을 것이다. 

cf.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ἀγαθό́ς)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마리아의 찬양 - 역사속에서의 구체적인 모습

(눅 1:54-55)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하나님의 행동 : 도우신다, 긍휼히 여기신다, 기억하신다, 말씀하신 것같이 영원히 하신다.

→ 메시야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고백하고 있다.

cf. 마리아의 일관된 고백 → 여종인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1:56)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정리]

굉장히 위급한 상황임에도 마리아는 기쁨과 찬양을 고백한다.

이는 일관된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건강하고 바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하나님의 이미지는 바른 메시야상에 대한 고백과 어린 예수님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마리아의 찬양과 고백-하나님의 이미지]

천사의 수태고지를 들은 마리아, 급하게 엘리사벳의 집으로 간다. 그런 그를 맞이하는 엘리사벳은 복중에 성령충만하고 기쁨이 넘치고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1:39-45)


▷ 마리아의 입장에서 이런 엘리사벳의 환대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1. 마리아가 처한 상황은 어떤가? 일반인이 보았을 때 율법적으로 결혼전 임신으로 돌에 맞아 죽을 상황이다. 그런 마리아가 다른 지역으로 간 것은 도주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2. 이런 상황에서 천사를 만난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간”(39) 것은 어떤 마음일까? 불안과 두려움에 의한 도주인가, 기쁨을 표현한 발걸음인가?

3. 그렇게 도착한 사가랴의 집에서 엘리사벳의 성령충만한 환대와 큰 소리의 찬양은 어떻게 들렸을까? 같이 성령충만함을 나누나, 아님 불안과 두려움의 자신과 다른 엘리사벳을 보며 당황해 할까?

⇒ 그러나 46-56절에서 마리아의 찬양은 불안이 아닌 기쁨을, 두려움이 아닌 성령충만을 보인다.


(출 4:18-20) 『[18] 모세가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생존하였는지 보려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 마리아의 찬양 - 감정

(눅 1: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주님을 찬양하며』

- 찬양하며 - 메갈뤼노(μεγαλύνω)  ‘훌륭하게 만들다, 증가하다, (상징적으로) 찬양하다, 크게 하다, 웅장하게 하다, 크게 보이다’

→ 비유적 의미로 주를 ‘크게 높여 드리다’는 의미로서 주를 찬양하는 마리아의 마음이 형식적이 아닌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임을 나타낸다.

직설법 현재형을 사용함으로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닌 현재의 생생한 느낌을 전함으로 마리아의 진실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내 영혼이 내 구주 하나님을 높임은』

- 기뻐하였음은 - 아갈리아오(ἀγαλλιά́ω) ‘하늘로 치솟아오를 것같은 충만한 기쁨’을 의미함으로 마리아의 기쁨이 그대로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cf. 영혼(soul)-마음(spirit)(표준새번역, 마음-영혼), 주-하나님 내 구주, 찬양하다-기뻐하다 : 평행대구구조로서 시적 감흥을 더욱 살리는 문장이다.

⇒ 마리아의 감정은 현재 하나님을 향하여 열정적으로 높여 들이고 있고, 자신도 너무나 기뻐함으로 높여드림을 말한다. cf. 지금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만 있는 것이 아닌 그것을 넘어 찬양과 기뻐함이 넘치고 있다.


▷ 마리아의 찬양 - 이유

(눅 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 호티(ὅτι)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비천함을 돌아보셨기 때문이라고 찬양한다.

- 비천함 : 타페이노시스(ταπείνωσις) (지위나 감정에 대해) 억압, 굴욕, 낮은 신분.

  비천한 :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 짓눌린, 굴욕감을 느끼는, 낙담시키는, 초라한, 낮은 등급

- 돌아보셨음이라 : 에피블레포(ἐπιβλέ́πω) = 위에서(에피 ἐπι) + 바라보다(블레포 βλέ́βω)

- 보라 이제 후로는 →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무엇인가로 새롭게 변화되었음을 말한다. 즉 낮고 비천한 한 여인이 메시야를 잉태하는 그 순간부터 가장 복되고 귀한 여인으로 변화되었고 그 모습이 모든 세대에 계속적으로 이어질 것을 말한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완전히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음을 말한다.

- 복이 있다고 → 마카리조(μακαρίζω) 아름답게 하다, 행복하다고 하다.

⇒ 사람은 자신의 비천함에만 집중하며 힘들어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낮은 모습을 위에서 하나님이 바라보신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은 그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기뻐한다고 하며, 한 시점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cf. 하나님을 몰랐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오히려 자신의 현재 부족한 것에 집중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것을 봐달라고 기도한다.


▷ 마리아의 찬양 -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

(눅 1:49-50) 『[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 능하신 이가 ...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 마리아는 메시야 탄생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그분이 거룩하심을 고백함으로 자신의 삶과 상황을 연결하고 있다.

-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 거룩하심처럼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을 고백한다.

⇒ 마리아는 자신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긍휼하심이 있음을 고백한다.

cf. 우리의 삶에는 무엇이 있다고 보고 있을까?


▷ 마리아의 찬양 - 마리아가 보는 것

(눅 1:51-53)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 하나님의 크고 무한하신 힘과 능력을 반복적으로 강조함으로 마리아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긍휼이 있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자신을 지나치게 내보이는 자에게는 심판이 있음을 말함으로, 마리아는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히 깨닫고 자신의 비천한 계집종의 위치에서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 비록 세상에서 권세있는 자들이라도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당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내리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 반대로 세상 가운데 낮고 천한 자들일지라도 또는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이 높이신다고 고백한다.

- 주리는 자를 좋은 것(ἀγαθό́ς)으로 배불리셨으며 →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선한 것으로 필요한 것을 채우신다는 의미. 이는 단순한 채움이 아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가득 차고 넘치는 상태를 의미한다.

-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 ‘빈손으로’는 ‘좋은 것’과 대조되는 표현으로 부족할 것 없는 부자임에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텅비었음을 말하며, 보내셨다는 말은 ‘밖으로 멀리 내보내어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의미.

⇒ 마리아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이미지는 굉장히 건강하며 바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의 부족과 비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늘의 하나님을 올려다보게 한다.

cf. 이러한 이미지가 어린 예수님이 성장하는데 아버지가 없고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좋은 아버지상을 주었을 것이다. 

cf.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ἀγαθό́ς)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마리아의 찬양 - 역사속에서의 구체적인 모습

(눅 1:54-55) 『[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 하나님의 행동 : 도우신다, 긍휼히 여기신다, 기억하신다, 말씀하신 것같이 영원히 하신다.

→ 메시야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고백하고 있다.

cf. 마리아의 일관된 고백 → 여종인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눅 1: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눅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눅 1:56) 『마리아는 엘리사벳과 함께 석 달쯤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정리]

굉장히 위급한 상황임에도 마리아는 기쁨과 찬양을 고백한다.

이는 일관된 고백이면서 동시에 그가 바라보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건강하고 바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녀의 하나님의 이미지는 바른 메시야상에 대한 고백과 어린 예수님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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